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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예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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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저자 나이스비트(John Naisbitt)는 20세기 후반 세계적 사회변동의 근저에 흐르는 거대한 물결의 줄기들을 정리해 보여줌으로써 미래학자로서 큰 명성을 얻었다. 이 책은 세계적 변동 추세를 요약진술하고, 이러한 변화가 어떠한 도전적 환경을 제공할 것인지 전망한 다음, 낙관적이고 강력한 비전으로 여기에 대응할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나이스비트는 지난 20여 년간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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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저자 나이스비트(John Naisbitt)는 20세기 후반 세계적 사회변동의 근저에 흐르는 거대한 물결의 줄기들을 정리해 보여줌으로써 미래학자로서 큰 명성을 얻었다. 이 책은 세계적 변동 추세를 요약진술하고, 이러한 변화가 어떠한 도전적 환경을 제공할 것인지 전망한 다음, 낙관적이고 강력한 비전으로 여기에 대응할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나이스비트는 지난 20여 년간 세계적으로 정치, 경제, 사회를 형성해 온 거대한 원동력 중에서 충격의 파장이 가장 큰 두 가지 메가트렌드를 ‘세계경제의 글로벌화’와 ‘아시아의 근대화’ 라고 전제하였다. 경제의 글로벌화를 추진해 온 힘은 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른 네트워킹이며, 경제가 거대화, 네트워크화될수록 개인 또는 소수 행위자의 힘이 커진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 하나의 국가나 지역이 세계를 지배하는 일은 없으며, 경제 활동의 중심이 아시아로 이동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전망한다. 경제 통합이 진전됨에 따라 아시아는 세계 최대 시장이 되며, 서양이 독점해 온 문화세계를 보다 풍요롭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이스비트의 분석에 따르면, 20세기 말의 세계는 일견 모순인 것처럼 보이는 현상들로 가득 차 있으며, 글로벌 패러독스가 당연한 사실이 되고 있다. 이러한 세계는 변화의 속도에 뒤진 사람에게는 위험과 술책이 가득한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이스비트는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이 눈앞에 펼쳐진 기회의 시대로 본다. 21세기의 명암은 급격한 변동과 글로벌 패러독스의 결과로 나타날 거대한 도전적 환경에 인류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는 메가챌린지를 세 가지로 전망하고 있다. 첫 번째는 새로운 경제 제도의 구축 및 새로운 유형의 비즈니스 모색이다. 1980년대 말 사회주의권의 몰락은 경제적 중요성이 증대된 세계의 움직임을 반영한 일대 사건이었다.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와의 경쟁에서 승리한 것 같지만, 사실은 자본주의 시스템도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전까지의 경제를 이해하는 데 유용했던 전통적 경제 이론이나 시스템은 더 이상 글로벌 경제에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까지 사람들은 정보의 가치를 어떻게 계산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지식, 정보, 창의성과 같은 무형의 재산을 정확히 고려할 수 있는 경제 모델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산업시대에는 물리학적 모델이나 기계론적 세계관이 통용되었다. 예컨대, 에너지 집약적, 직선적, 거시적, 기계적, 결정론 등의 개념이 경제 이론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나 글로벌 경제는 거대한 생물체와 같이 자기조직화에 의해 생존하고 진보한다. 새로운 경제는 생물학적 모델로서, 정보집약성, 미시성, 자기조직성, 내적 균형, 적응성, 포괄성 등의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여기에 적합한 이론과 제도적 틀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새로운 경제에서 비즈니스의 성공을 확보하는 유일한 방법은 네트워킹이다. 네트워크 경제는 지금까지의 경제와 마찬가지로 ‘실재’일 뿐 아니라, 이전보다 훨씬 강력하다. 국가 또는 국경의 개념이 퇴색되면서 네트워크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어떻게 네트워크 경제를 만들어 갈 것인가? 새로운 경제의 주역은 바로 개개인이다. 누구나 새로운 경제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활동하는지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수용 의지, 배우고자 하는 호기심, 새로운 비즈니스 방식에 친숙해지려는 적극성이 중요하다. 두 번째 메가챌린지는 새로운 민주주의 제도의 확립이다. 세계는 정부에 의해 운영되는 체제에서 시장에 의해 운영되는 체제로 바뀌고 있다. 산업시대 국가의 틀 속에서 만들어진 통치구조가 정보경제의 글로벌화된 세계에서 적합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중앙집권이나 상명하달식의 리더십은 더 이상 효과적이지 못하며, 기존의 대의제도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컴퓨터와 통신기술에 의해 국가권력이 약화되면서 개인의 힘이 대폭 강화되었다. 개인은 휴대용 텔레컴퓨터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새로운 정보를 입수할 수 있으며, 중요 사안에 대해 어느 곳에서나 투표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기술의 진보는 개인이 지닌 힘과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민주제도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로컬한 것과 글로벌한 것 양 측면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적절한 정치시스템은 어떠한 것일까? 새로운 정치 제도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것은 인덕, 신뢰, 인간의 도량에 기초한 ‘하이터치 리더십’이 될 것이다. 과거의 경직된 기계적 리더십 스타일과 비교하면 인간적이고 유기적인 리더십이다. 새로운 리더십은 직무나 지위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덕으로 사람들의 양심에 호소하게 될 것이다. 경제도 사람도 이미 통제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그러므로 조직을 소규모 단위의 네트워크로 긴밀하게 연결하여 사람들에게 자기관리의 폭을 넓혀 주어야 한다. 리더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주는 촉진자가 되어야 한다. 세 번째 메가챌린지는 문화적 정체성의 제고이다. 지금까지 대부분 사람들은 문화적 정체성, 가치관, 전통 등을 국가의 틀 속에서만 생각해 왔다. 글로벌한 세계에서 국가는 더 이상 문화적 정체성을 확정짓는 틀이 아니다. 국가 중심의 세계에서 전통과 정체성은 분명히 양자택일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글로벌한 세계에서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다종선택으로 바뀌고 있으며, 중요한 경제 단위도 국가가 아니라 네트워크로 옮겨가고 있다. 국가의 울타리가 무너지고 문화가 융합될수록 사람들은 더욱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인정받고 싶어 할 것이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라 컴퓨터 네트워크가 보편화되면서 사이버 공간이 새로운 활동공간으로 등장하고 있다. 사이버 공간은 가상의 공간이 아니며 새로운 현실 그 자체다. 이처럼 테크놀로지에 둘러싸여 생활하게 될수록 인간은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게 된다. 과학의 세계가 생활의 모든 면에 침투하여 일상생활이 하이테크화 될수록 심오한 의미를 추구하는 마음도 강렬해지기 때문이다. 그 욕구는 기술이나 과학에 의해 충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사이버 공간에서의 활동이 일상화될수록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탐구와 주장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나이스비트는 역설이 가득하고 선택의 폭이 넓어진 세계에서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서는 모험정신과 적극적 학습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지의 바다를 헤쳐 나가는 개인은 단순한 선원이 아니라 바로 선장이며, 정해진 항로를
l****s 2000.08.0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미래사회를 막연히 핑크빛으로 그려내지는 말아야 한다
"미래사회를 막연히 핑크빛으로 그려내지는 말아야 한다" 내용보기
"메가트렌드2000"은 우리나라에 많은 책이 번역되어 있는 나이스비트의 저작이다. 그는 미래사회학자로서 명망을 쌓았고, 실제로 1980-90년부터 이후의 미래를 줄기차게 예견했다. 그 주요한 축은 익히 다 아는 것이고 또, 새로운 경제제도와 비즈니스 유형, 그리고 새로운 민주주의의 형태는 다수 지금의 사회에 구축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지적하고 싶은 점은 나이스비트의 견해가
"미래사회를 막연히 핑크빛으로 그려내지는 말아야 한다" 내용보기
"메가트렌드2000"은 우리나라에 많은 책이 번역되어 있는 나이스비트의 저작이다. 그는 미래사회학자로서 명망을 쌓았고, 실제로 1980-90년부터 이후의 미래를 줄기차게 예견했다. 그 주요한 축은 익히 다 아는 것이고 또, 새로운 경제제도와 비즈니스 유형, 그리고 새로운 민주주의의 형태는 다수 지금의 사회에 구축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지적하고 싶은 점은 나이스비트의 견해가 기술결정론적 낙관론은 아니냐하는 점이다. 미래사회의 기술적 하부구조는 이미 어느정도의 방향성을 띄고 예측되고 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그것들이 과연 우리가 일방적으로 적응되어야만 하는 물질적 질곡은 아니냐하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근자에 여러 대학원에서 설립되어 연구되고 있는 과학기술학(STS)가 더 주목받아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사회적 구성주의에 바탕을 두고 과학기술이 어떻게 사회에 수용되어야 하며 그 문제에 관해 논의되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과학기술은 우리의 사회를 기술적으로 더 편리하게 할지는 몰라도, 그 의미에 있어서 그런 기술사회가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이고 당위적인 세계인지에 대해서는 과학자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구성원의 다수인 시민들의 합의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나는 무작정 미래사회를 기술적으로 더 진보한 사회인만큼 핑크빛으로 그려내기 보다는, 이 사회가 인간이 실재로 더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일 수 있도록 하는 제도와 논의가 시급하다고 본다.
e****l 2002.01.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