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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과 비판- 권성우 『비평의 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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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과 비판- 권성우 『비평의 매혹』       권성우 비평은 매혹과 비판의 경계지점을 떠도는 영혼의 글쓰기를 지향한다. “비평에 대한 정밀한 자의식”(79쪽)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매혹의 글쓰기가 권성우 비평의 한 흐름을 이룬다면, 2000년대를 전후하여 문학권력의 폐쇄적 담론구조를 비판하는데 초점을 맞춘 ‘비판적 글쓰기’는 권성우 비평의 다른 흐름을 형성한다.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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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과 비판

- 권성우 『비평의 매혹』

 

 

 

권성우 비평은 매혹과 비판의 경계지점을 떠도는 영혼의 글쓰기를 지향한다. 비평에 대한 정밀한 자의식(79)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매혹의 글쓰기가 권성우 비평의 한 흐름을 이룬다면, 2000년대를 전후하여 문학권력의 폐쇄적 담론구조를 비판하는데 초점을 맞춘 비판적 글쓰기는 권성우 비평의 다른 흐름을 형성한다. 비평의 자의식(매혹)이 문학권력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매혹으로서의 비평을 불가능하게 하는 문학권력의 편협한 논리를 비판하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 그러므로 창작과 비평>, <문학과 사회>, <문학동네등 주류 문학잡지들의 완강한 자기동일성의 구조를 성찰하는 그의 비평적 행보는 실상 그가 초기 비평에서 중시했던 매혹적인 비평과 본질적인 면에서 다르지 않다. 작품에 대한 매혹과 비판의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권성우의 비평은 매혹의 글쓰기를 방해하는 문학제도-문학권력을 향한 비판으로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먼저 권성우 비평에서 제기되는 매혹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그가 매혹당한작품은 그가 그토록 중시하는 비평가의 자의식을 생성케 한 힘이다. 김윤식·김현·이문열·이인성·이성복·김영현·박상우·유하 등이 그를 매혹시킨 타자들이라면, 그러한 타자들의 담론(작품)을 가로지르는 문학적 맥락이 권성우라는 한 비평가(주체)의 내면 속에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가를 물어야만 우리는 권성우 비평의 중심에 들어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 비평적 타자들이 권성우의 비평적 자의식을 확인하는 매개항으로도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그가 박상우 소설에서 종래의 생산양식 이론과 계급이론의 지평으로서는 포착할 수 없는 특수한 지배관계와 휘황한 이데올로기의 심층에 존재하는 욕망의 그림자와 다양한 삶의 논리와 표정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읽어낼 때, 그것은 그대로 작품을 대하는 비평가의 자의식이 작품의 의미와 무관할 수 없음을 드러낸다. 그의 말대로, 인간의 삶에는 분명 생산양식 이론과 계급이론의 지평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틈새가 있을 것이다. 권성우는 그러한 틈새를 욕망이라는 말로 개념화하고 있는 바, 이런 점에서 박상우 소설은 본질적으로 비평가의 자의식이 인간의 욕망에 닿아 있음을 확인하는 계기로 나타난다 하겠다. 1980년대 민중문학론에 대한 대타적인 관점에서 펼쳐지는 이러한 주장은 권성우가 주장하는 매혹의 비평이 선택과 배제의 의미망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선택과 배제의 역학은 물론 비평가라면 피해갈 수 없는 본질적인 힘의 원리이다. 인간의 삶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무언가를 선택하면, 선택한 만큼 무언가가 배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그것은 담론의 일종인 비평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데올로기를 부정하는 순수문학이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무언가를 부정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긍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택과 배제의 담론 자체보다는 선택과 배제의 담론적 기준이 과연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이 실제적인 문제가 되겠다. 권성우는 문학을 구체성과 일상성 그리고 복합성의 산물(210)로 파악한다. 문학의 구체성은 등장인물의 내면을 흐르는 복합적인 욕망을 통해 드러나거니와, 자기실현욕구라고 말할 수 있는 욕망의 구조는 인간의 본질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이념이나 사상보다 월등 본질적(301)이라는 언급에서, ‘욕망의 현상학을 중시하는 그의 문학관을 단적으로 포착할 수 있다 하겠다.

 

박상우와 김영현의 소설을 읽는 그의 시선이 매혹의 시선에 닿아 있다면,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그는 인간의 욕망을 이분법적으로 유형화한 작품이라고 평가하면서 비판적으로읽어낸다. 사상이라는 큰 범주로는 다가갈 수 없는 욕망의 세계는 권성우를 매혹시킨 타자들의 담론(작품)을 규정한다. “의식과 사상의 밑자리로서의 욕망의 구조에 대한 정밀한 탐구, 이데올로기의 그림자로 서식하는 주체의 고유한 실존의 흔적 찾기, 문명과 산업화라는 두꺼운 거죽의 심층에서 생명의 숨을 쉬고 있는 뿌리와 시원을 향한 그리움과 동경으로 표현되는 매혹적 비평의 수사학은 그가 인정한 바대로 낭만주의자로서의 권성우의 실존(권성우는 나 역시 박상우에 못지않은 낭만주의자(257)라고 고백한다)을 구성하는 비평적인 기준이라 하겠다.

 

1980년대 문학에 팽배한 계몽주의적 문학관은 낭만주의자를 자처하는 권성우의 실존과는 대립적인 장소에 놓인다. 그와 정남영 사이에 벌어졌던 김영현 논쟁은 실상 이러한 권성우의 낭만주의적 동경의 미학이 정남영의 문학적 당파성의 담론과 맞부딪치면서 이루어진다. 그는 정남영의 비평을 그야말로 앙상하며 교조적인 현실주의 이론으로서 김영현의 소설을 조망하고 분석(177)한다고 비판하며 김영현의 소설은 좀더 근원적이고 존재론적이며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적 세계와 인간의 본능과 욕망의 뿌리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보여주고 있(182)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이 중요하다는 것, 그에 비한다면 사상은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무시하고 억압한다는 것, 문학의 정치성(넓은 의미에서의)은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그려내는 문학을 통해서만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 권성우가 김영현의 소설을 바탕으로 내세운 진정한 비평미학인 셈이다.

 

이처럼 권성우는 욕망의 정치학을 통해 계몽주의적 담론에서 벗어나지 못한 1980년대 문학을 타자화하고 그로써 자신이 걸어가야 할 비평(매혹)의 길을 발견한다. 하지만 이러한 매혹의 길에는 이미 욕망과 동경이라는 낭만주의적 어사로 1980년대 문학을 타자화하는 비평가의 인정욕망이 자리잡고 있다. 타자에 대한 매혹은 한편으로 매혹될 수 없는 또 다른 타자들을 배제하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 권성우는 그러한 배제의 역학을 비판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가 추구하는 낭만주의의 이념적 틀(‘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을 탈피하지 못한다.

 

“‘계몽주의로부터의 탈각(223)이라는 비평가의 욕망은 낭만주의를 향한 비평가의 열정과 연결되어 타자화의 논리를 구축하는 비평적 힘으로 작동한다. 그가 사상의 등가성을 전제로 한 문학적 다원주의를 비평의 기준으로 제시하는 이유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각각의 봉우리에서 최고의 수준에 도달한 문학가의 작품과 인생, 운명에 대하여 좋을 글을 쓰고 싶(171)다는 권성우의 욕망은 곧바로 각 입장의 상대적인 등가성과 그 나름의 내적인 구조와 논리, 각 사상의 고유한 운명과 표정이 존재할 뿐이다(188)라는 주장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또한 다원주의는 말 그대로 근원혹은 중심이 여러 가지 있다는 것이다. 각 근원의 상대적인 독자성을 충분히 인정하자는 생각이 다원주의의 기본 정신(151)이라는 문학적 다원주의의 선언으로 나아간다. 김윤식과 김현 비평의 자장 속에서 피어난 권성우의 이러한 비평관은 1980년대 문학의 계몽주의로부터 탈각하여 그가 이른 비평의 장소를 뚜렷하게 드러낸다 하겠다.

 

그러니, ! 이제야 알겠다, 왜 비평가 김현이 30여 년에 걸친 세월 동안, 심지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으면서도 쉬임없이 글쓰기의 노동을 계속해 왔는지를! 그것은 영원히 멈출 수 업는 열정·욕망, 부재에 대한 그리움, 존재에 대한 그리움, 목마름때문이었다. 그 목마름은 육체적 생명이 다해야만 비로소 사라지는 그러한 목마름이었던 것이다. 김현의 죽음과 목마름을 아쉬워하던 김윤식의 내면을 우리는 앞의 장에서 엿본 바 있다. 그러나 목마름으로 치자면 김윤식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비평가가 아니었던가. 김윤식은 김현의 목마름에서 그 자신의 얼굴을 보았고 운명을 읽었던 것이다. 그 역시 30여 년 동안 그 누구보다도 쉬임없이 책읽기와 글쓰기의 노동에 자신의 인생을 바친 비평가였던 것이다. 그의 책읽기는 그 목마름의 적절한 대상을 발견하기 위한 영원한 구애의 몸짓이었고, 그의 글쓰기는 그의 목마름을 야기시킨 대상을 언어로 표현하여 그 목마름을 해소시키기 위한 끊임없는 우물 파기의 여정이었다. 아마도 그 목마름은 그가 이 땅에서 숨을 쉬고 있는 한 지속될 것이다. (59~60)

 

권성우가 이야기하는 매혹은 대상을 향한 김윤식·김현의 목마름과 다르지 않다. 대상에 향한 비평가의 욕망을 분석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인용문에서, 우리는 김윤식과 김현의 목마름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있는 권성우의 욕망을 읽을 수 있다. 진리에 대한 목마름(동경)이 현실과는 다른 세계를 동경(김윤식의 표현으로는 환각’)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때, 거기에는 비평가의 실존만이 오롯하게 부각된다. 김윤식이 주장하는 사상의 등가성이 폭압적인 세상과 대면한, 한 비평가의 실존과 연결되듯 권성우의 문학적 다원주의는 계몽주의적 문학담론과 맞서야 했던 권성우의 실존을 대변한다.

 

문제는 사상의 등가성에 대한 김윤식의 담론이 권성우 비평에서는 매개지점이 부재한 채 봉합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김윤식이 학문적 금기 대상이었던 카프문학(비평)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1970~80년대의 폭압적인 체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사상의 등가성이라는 담론에 도달했다면, 권성우는 김윤식이 직면한 실존적 상황을 배제한 채 사상의 등가성을 문학적 다원주의와 연결하고 있다.

 

김영현 논쟁의 와중에서 발표된 김영현 소설과 정남영의 비평문에 대한 열네 가지의 단상에서 구체적으로 거론되는 사상의 등가성은 권성우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상의 깊이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심오한 탐구(171)에 이르기 위한 비평적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사상의 등가성의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 “‘민족문학이라는 어사는 이제 우리의 의식에 육화된 가장 강력한 문학적 권력의 체계이다.”(146) 이처럼 권성우가 이야기하는 사상의 등가성 담론은 민족문학이라는 타자를 설정함으로써 권성우 비평의 핵심에 등장한다.

 

물론 정남영의 비평을 대상으로 전개하는 그의 이러한 주장은 문학을 혁명(당파성)의 도구로 단순화하는 도구적 문학관을 비판하는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정남영의 비평을 민족문학과 동일시하고, 그를 통해 사상의 등가성 담론을 제기함으로써 권성우는 민족문학에 내포된 시대적 맥락을 간과하게 된다. 그는 “80년대를 풍미했던 마르크스주의 열풍과 한국 현대문학사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가져온 민중문학이라는 거대한 해일에 대한 정밀한 이해 없이는 90년대 문학에 불어닥친 환멸과 허무주의의 막막한 늪을 결코 온전히 건널 수 없을 것(129)이라는 온당한 주장을 펼치지만, 한편으로 그는 1980년대 문학을 계몽주의적 문학관으로 규정한 후, 1980년대 문학에 나타난 풍부한 현실인식의 세계를 의도적으로 배제한다철저하게 타자화된 1980년대 문학은 다원주의·허무주의·상대주의의 입장에서 전복되고 해체된다.

 

매혹의 길에 이르는 권성우의 비평적 도정은 이렇듯 사상의 등가성과 문학적 다원주의의 회랑을 거쳐 비평가의 자의식을 중시하는 비평(에세이)의 세계에 도달한다. 자의식은 돌려 말하면 비평가의 욕망일 것이다. 욕망이 항상 타자에 대한 욕망을 통해 생성되는 주체의 욕망이라면, 그의 비평적 자의식은 본질적으로 1980년대 문학을 타자화함으로써 생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매혹과 비판의 경계에서 글쓰기를 시작한 권성우는 여전히 매혹의 장소에서 자신이 가야할 비평의 길을 꿈꾸고 있는 셈이다.

 

 

o*****s 2018.01.0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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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비평, 그 주술적 매혹으로의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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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권성우(현재 숙명여대 국문과 교수)는 누구인가. 그는 현재 문학판의 투사가 되어있다. 그의 첫번째 문학평론집인 본서는 지금의 투사적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그의 행보를 큰 윤곽만으로 크로키해본다면 '매혹에서 비판으로' 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도정속에 이 책은 그의 문학적 출발점에 놓여져 있다. 1993년에 쓰여졌으니 이제 꼭 10년이 흐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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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권성우(현재 숙명여대 국문과 교수)는 누구인가. 그는 현재 문학판의 투사가 되어있다. 그의 첫번째 문학평론집인 본서는 지금의 투사적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그의 행보를 큰 윤곽만으로 크로키해본다면 '매혹에서 비판으로' 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도정속에 이 책은 그의 문학적 출발점에 놓여져 있다. 1993년에 쓰여졌으니 이제 꼭 10년이 흐른 셈이다. 근래에 내놓은 책들('문학권력'- 특히 이 책은 강준만과 공저이다 , '비평과 권력' , '주례사 비평을 넘어서' 등)은 그 제목만을 일별해 보아도 이 처녀작과 매우 다른 느낌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나는 최근 나온 평론집까지 꼼꼼이 읽어 보았고, 어김없이 그 글들에 매혹당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내 손에 자주 스치는 책은 여전히 '비평의 매혹' 이다. '비평'이란, 그의 순수한 눈빛과 더불어 앞날개에 적혀 있는 바로는 '재미있고 쉽게 읽히면서도 인식의 넉넉한 깊이를 동반하며 어떤 글보다도 매혹적인 글쓰기' 이다. 일반적 비평의 정의라기 보다는 권성우가 꿈꾸는 애정어린 비평의 모습일 것이다. 문학비평에 처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라면, 혹은 기름기 넘치는 현학의 폭력이 아닌 소박한 문학적(비평적) 진정성에 목마른 이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라고 전해드리고 싶다. 책 곳곳에서 글쓰는 이의 입김이 훈훈하게 느껴질 것이다. 활자에도 향기가 있을 수 있다면 이 책은 분명 권성우의 체취가 진하게 묻어있을 것이다. 또한 요즘 다시 불거지고 있는 '모더니즘과 리얼리즘 논쟁' (이는 영원한 주제일 것이다)에서 한 비평가가 펼친 치열한 고민의 무늬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나는 첫번째 글인 ' 동경과 분석, 그리고 유토피아'(김화영, 김현, 김윤식의 예술기행 형식의 글들을 섬세하게 비교, 고찰하고 있다) 와 바로 이어지는 '비평이란 무엇인가'(김윤식과 김현의 비평론에 관한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를 유난히 좋아한다. 물론 이 책에 실린 모든 글을 충분히 읽어내는 것은 그렇게 쉽지는 않다. 우선 비평이란 장르가 1차문서에 대한 메타적 진술이기 때문에 그러하겠지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학작품들을 틈틈이 찾아 읽으면서 자신의 느낌과 비교해 본다면, 혹은 동일한 1차 텍스트를 평가한 다른 평론과 비교해 읽는다면 오히려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었던 독특한 재미가 쏟아질 것이다. 한 번 읽고 모든 게 이해되는, 그래서 다시는 손이 가지 않는 책은, 그리 좋은 책이 아닐 것이다. 나는 부드러운 손길에도 속지 한쪽, 한쪽이 보기좋게 누렇게 익어가는, 나와 같이 조금씩 조금씩 닳아 나이들어가는 이 책을 그래서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다. 덧붙여... <권성우의 그="" 이후="" 문학권력="" 비판="" 작업에="" 대한="" 발문=""> 우리의 문학판은 지난 몇년에 걸쳐, 오랫동안 공론화되지 못했던 '문학권력'의 치부를 볼쌍사나웁게 드러내었다. 굳이 푸코의 설명을 늘어놓지 않더라도 세상 구석구석 '권력의 장'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일말의 순수함, 자유, 희망을 기대하게 되는 다름아닌 '문학'이란 영역에서 또다시 '검은 권력'이란 단어를 마주하게 될 때, 적어도 나는 크게 꺾어졌다. 그래도 환부는 활짝 젖혀 새로운 바람을 쐬어야만 치유될 수 있다. 상처는 스스로 숨기게 마련이다. 권성우의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발걸음에 건투를 빈다.
c*******1 2003.04.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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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에 대한 권성우의 남다른 자의식이 느껴지는 평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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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에 대한 권성우의 남다른 자의식이 느껴지는 평론집.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도 평론에 대해서 - 그것을 꿈꾸는 한 사람으로서의 자의식이 한껏 부풀어 오른 때여서 책과의 궁합이 참 잘 맞아떨어졌다. 이 책을 읽기 전의 어느 날 권성우의 홈페이지에 몇 시간 동안 게시판의 글들을 읽으면서 그의 평론 세계의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었다. 문학권력 논쟁이 아니더라도 그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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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에 대한 권성우의 남다른 자의식이 느껴지는 평론집.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도 평론에 대해서 - 그것을 꿈꾸는 한 사람으로서의 자의식이 한껏 부풀어 오른 때여서 책과의 궁합이 참 잘 맞아떨어졌다. 이 책을 읽기 전의 어느 날 권성우의 홈페이지에 몇 시간 동안 게시판의 글들을 읽으면서 그의 평론 세계의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었다. 문학권력 논쟁이 아니더라도 그의 문학이나 문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등도 고개를 끄덕일만했다. 이렇게 저자를 저자의 책을 통해서만이 아닌 그 이외의 자잘한 인터뷰나 신문기사보도, 북리뷰 특히 다른 책에서의 언급이나 인용에서 먼저 만나고 나서 그 책을 접하면 책을 통한 저자와의 대화도 남다른 것이 되곤 한다. 강준만과 함께 쓴 <문학권력>을 읽었을 때보다 권성우의 세계를 조금은 더 깊숙이 본 듯 하다. 워낙에 <문학권력>이 강준만의 목소리가 컸고 또 문학비평이라기 보다는 문학사회학적 문제제기에 가까운 것이었기에 문학평론가로서의 권성우를 여실히 보여주기엔 미흡했을 것이다. 전에 읽은 이명원의 <해독>도 많은 생각거리와 감동의 파장을 선사했는데 권성우의 이번 평론집도 그렇다. 이명원이 "제가 개인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비평가는 권성우(...) 미학적 다원주의를 독특한 방식의 역사적 방향성과 결부시키는 시도를 지속해 왔을 뿐 아니라, 자기 비평의 한계를 섬세하게 응시하면서 의미있는 자기갱신의 노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304쪽)"라고 했을 때의 그 평가를 이번 독서에서 실제로 찾아낼 수 있었던 것도 또 다른 수확. 이명원에서부터 권성우로 거슬러 올라간 독서이기에 이 둘의 차이와 공통점은 무엇인지도 생각해보았다. 두 젊은 비평가는 비평에 대한 자의식이 상당하다. 또 에세이에 대한 옹호도 유사하며 평론 자체에 대해서 공부를 하기도 한 문학도이기도 하다. 게다가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에 대해서도 상당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다. 한편, <비평의 매혹=""> 당시의 문단과 비평계의 움직임은 민족, 민중문학론에 중심을 두고 있는 듯 한데 그렇지만 권성우는 '기형도를 좋아하는 노동해방문학가'를 말하고 있다. 내 좁은 시야로는 지금의 자유주의적인 문학관이 넘실대는 문단에서는 그렇지 않은 듯 한데, 이명원은 역사의식 있는 문학관을 옹호하고 있다. 독서가 미흡해서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이명원에서 권성우로 거슬러 올라간 것처럼 김현이나 김윤식과 같은 비평의 대가들, 그리고 다른 이들의 비평세계를 어서 접해 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는 동안 편안했고 위안이 되었다. 아마도 쉽고 부드럽게 쓰여진 권성우 글의 특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자유롭고 그러나 문제의식 있는 사유도 한몫 했던 것이리라. 기말 시험 기간 동안에 휴식의 일환으로 읽었던 이 평론집을 통해서 <태백산맥>을 읽던 때의 추억도 더듬어 보기도 했다.
n****w 2003.11.14.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