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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죽음을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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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 발달로 인한 평균수명의 연장과 환경의 영향으로 갈수록 암 환자는 증가추세이다. 현대인의 사망원인 중 암이 1위가 되고 있으며, 연장된 평균수명까지 생존할 경우 암환자는 국민 3사람당 한사람 꼴이다 는 통계도 있다. 암이라는 질병은 이제 특별한 질병은 아니다. 암은 그 종류에 따라 생존율도 달라진다. 암 치유를 나타내는 5년 생존율이 80%를 넘는 유방암과 갑상선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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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학의 발달로 인한 평균수명의 연장과 환경의 영향으로 갈수록 암 환자는 증가추세이다. 현대인의 사망원인 중 암이 1위가 되고 있으며, 연장된 평균수명까지 생존할 경우 암환자는 국민 3사람당 한사람 꼴이다 는 통계도 있다. 암이라는 질병은 이제 특별한 질병은 아니다. 암은 그 종류에 따라 생존율도 달라진다. 암 치유를 나타내는 5년 생존율이 80%를 넘는 유방암과 갑상선 암이 있는 반면에 폐암이나 간암환자는 평균 30%의 생존율을 보이고 있다. 췌장암같이 생존율이 한자리수 이하인 암도 있다. 또한 암은 치료기간이 길고, 상당한 경제적 부담을 야기한다. 또한 완치에 이르기까지 꾸준한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이러한 경제적인 요인을 제외하고라도 암을 치료하는 방사선 요법과 약물 요법 등은 환자에게 엄청난 고통과 구토, 머리 빠짐, 체력 저하 등의 부작용을 동반한다. 이로 인해 치료 기간 동안 환자 개인은 물론 가족들이 받는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쓴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작가의 암투병기이다. 저자인 크리스토퍼는 속된말로 잘나가는 정치학자 겸 저널리스트로서 방송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보였으면 영미 언론이 선정한 ‘100인의 지식인’ 5위에 오를 정도의 저명인사였다. 펴내는 책, 출연한 방송마다 화제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뛰어난 비평가이자 탁월한 논쟁가였다. 그런 그가 20106월 저서홍보를 위해 전국 투어에 나서 한참 인기를 구가하고 있을 때 몸의 이상을 느끼고 찾아간 병원에서 식도암 판정을 받는다. 그의 암은 이미 4기를 지나 치료시기를 놓친 뒤였고, 다른 기간으로 암이 전이되어 그의 치료가능성은 5~20% 정도였다.

 

  외계인 같은 종양덩어리를 치유하기 위한 그의 병원생활은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환자만이 알 수 있는 고통의 순간과 삶에 있어서 자신의 성취를 놓치기 싫은 인간적인 고뇌, 그리고 갈수록 허약해져가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죽음으로 한발씩 다가가면서 느끼는 그의 진솔한 투병기가 기록되어 있다. 우린 흔히 몸이 아픈 이들에게 아무 생각 없이 위로라고 위안을 말을 던진다. 그리고 위로랍시고 환자의 입장이 아닌, 건강한 우리들의 입장에서 환자를 위로한다. 그것이 위로가 아니라 환자의 의지를 꺾는 비수가 되어 그들의 가슴에 꽂히는 줄도 모르고서 말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그는 무신론자이다. 죽음을 앞둔 암환자로서 그는 삶에 대한 연민이나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하루라도 ej 살고 싶다고 애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순간순간 암이라는 외계인에 잠식되어가는 자신의 몸과 갈수록 약해져가는 체력, 그럴수록 삶에 있어서 이루고픈 성취에 대한 미련 등만을 얘기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의 몸은 더 나약해지고, 약해져간다. 함암 치료를 위해 투약된 약들에 자신의 몸이 잠식되어가는 순간순간들이 대한 그의 기록은 두렵기까지 하다. 그는 병원에 입원해있으면서 체력이 회복될 때 마다 노트북을 끓어 안고 자판을 두드렸다. 삶의 마지막을 향해가는 여정에서도 작가로서의 자신의 자존감을 지켜가면서 말이다.

 

  우린 그저 암이라는 질병이 치료하기 어렵고 그 치료를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치료과정에 환자가 당하는 고통이 어느 정도 인지는 모른다. 언젠가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들의 수기를 보면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행동-즉 음식을 먹는 것, 물을 마시는 것-등이 그들에게는 평생의 소원일수도 있다는 글을 보았다. 그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고통이었다. 그것과 마찬가지다. 그만큼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있어 삶의 순간순간은 더욱 소중하고 또 소중하다.

 

  그는 죽음을 겁내지도 고뇌하지도 않았다. 죽음이후의 사후세계에 대한 어떤 기대도 갖지 않는다. 그저 담담히 맞아들인다. 죽음보다도 더한 육체의 고통은 호소하면서도 죽음이나 내세에 갈등하지 않는다. 그리고 본인이 세상을 떠나고 난 이후 스스로에 대한 평가만을 두려워했다. 죽음이란 우리가 피한다고 피할 수도, 외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건 회향이고 귀환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의 우리의 모습이 어떠해야하는지를 그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준다. 어쩌면 죽음에 대한 그의 무관심이 삶에 대한 압도적 긍정을 표출하는 것은 아닌지. 그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의 본분과 자신의 일에 매진했던 그. 대부분의 암환자들이 생을 조금이라도 더 늘이기 위해, 살기위해 몸부림치며 자괴감과 허탈감에 빠져 생의 마지막 순간을 허비하곤 한다. 하지만 작가는 그렇게 생의 마지막을 보내기보다는 자신의 의식이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작가로서 글을 쓰면서 생을 마감한다. 그의 죽음이야말로 삶에 있어서 가장 긍정적인 모습이며, 마지막 한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낸 그의 삶이야말로 죽음에 대항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만큼 매 순간순간 삶에 충실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생에 대한 가장 긍정적인 접근은 아닐까하고 말이다.

 

  생명이 있는 것은 죽는다. 이것은 변치 않는 진리이다. 어쩌면 우리네 삶은 죽음을 통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 완성된다. 그러기에 죽음은 생명을 가진 우리가 반드시 다다를 목적지이고, 또한 고향이기도 하다. 그래서 죽음을 향해 가는 삶은 매순간이 더없이 소중하다. “헛되게 보낸 나의 오늘은 어제 죽음을 맞은 누군가가 그렇게 누리고 싶은 시간이었다는 상투적인 문구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삶은 매순간이 소중하다. 죽음이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그 순간을 목적에 두기 전에는 죽음에 대해 생각지 않는다. 아니 외면한다. 하지만 우리가 삶의 영위를 위해 호흡을 하는 그 순간순간도 죽음을 향한 여정의 발걸음이다. 그 여정의 끝에 언제 다다를지는 오로지 신만이 아신다. 언제 죽음이 우리 삶에 완성을 꾀하더라도, 지금 바로 이 순간 죽음이 우리를 찾아오더라도 어떤 미련과 회환도 없이 순순히 그 부름에 응답할 수 있도록 삶의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죽음을 대하는 우리 삶의 본질은 아닐까. 어쩌면 저자는 그 진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렇듯 담담히 죽음의 여정을 기록으로 남겼는지도 모른다. 죽음에 대한 진실은 사후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바로 이 순간에 있다는 것을.

 

 

 

* 이 리뷰는 예스 24의 리뷰어 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h*****o 2014.04.09. 신고 공감 4 댓글 3
리뷰 총점 종이책
어느 날 갑자기 외계인 같은 병이 찾아오다
"어느 날 갑자기 외계인 같은 병이 찾아오다" 내용보기
그는 어느 날 갑자기 극심한 통증을 느껴 구급차에 실려 간 뒤부터 ‘건강한 사람들의 세계’에서 ‘병자나라의 국민’이 되어버린다. 전에는 관심도 없던 나라였는데 뜻하지 않게 그 나라의 국민이 되고나서야 그 나라에 관한 모든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누구나 궁금해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왜 하필 나인가?” 그리고 스스로 말한 대답에서 그가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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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느 날 갑자기 극심한 통증을 느껴 구급차에 실려 간 뒤부터 ‘건강한 사람들의 세계’에서 ‘병자나라의 국민’이 되어버린다. 전에는 관심도 없던 나라였는데 뜻하지 않게 그 나라의 국민이 되고나서야 그 나라에 관한 모든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누구나 궁금해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왜 하필 나인가?” 그리고 스스로 말한 대답에서 그가 보통 사람과는 좀 다른 면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대답은 “안 될 것도 없잖아?”다.


저자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맹렬한 논쟁가로, 정치학자이며 저널리스트로,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펴낸 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던 중 자신이 가진 역량을 제대로 쏟아내기에 딱 좋은 나이라고 할 만한 61세에 식도암에 걸렸다. 이 책은 자신에게 느닷없이 찾아온 외계인 같은 암과 함께 지낸 19개월간의 투병기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처음 자신의 병을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이 진지하게 세워놓았던 앞으로의 계획들을 실천할 수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자신이 쓴 《신은 위대하지 않다》를 통해 자신이 무신론자임을 내보였는데 대해, 많은 종교인들이 자신의 병을 보고 신이 내리는 벌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종교적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조목조목 논박한다. 하지만 책의 뒤쪽으로 갈수록 그의 어조는 약해지면서 건강할 때와 병이 들었을 때의 신념이나 주장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중반부분을 읽으며 그가 다가오는 죽음을 조용히 받아들이려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병은 고통을 동반한다. 치료 과정의 어려움을 버티게 해주는 것은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진통제 주사라고 말할 만큼 통증이 주는 고통이 극심함을 말하고 있다.


병이 깊어갈수록 저자가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더 이상 글쓰기를 하지 못하게 될 때를 상상해보는 일이다. 글을 쓰고,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일이야말로 저자가 평생을 해온 일이다. 자신이 살아가는 가치를 점점 더 잃어가고 있음을 앞서 상상해보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인 8장에는 저자가 마지막으로 혼신의 힘을 빌려 적어두었던 메모들이 그대로 적혀있다. 그는 무신론자였지만 죽음 앞에서는 신자가 낫지 않을까 조심스레 말한다.


내가 종교에 귀의한다면 그것은 무신론자의 죽음보다 신자의 죽음이 더 낫기 때문이다.


자신 앞에 불쑥 다가온 병에 대해 그는 이렇게 표현한다.


누군가 나를 발로 차서 시간적으로 훌쩍 앞서나가는 듯한 현기증. 결승전을 향해 발사된 느낌




태어난 이상 누구나 죽는다. 그 죽음은 지극히 개별적이기에 온전히 그 경험을 나누기는 힘들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이론처럼 많은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단계를 그친다고 하는데 저자가 겪어가는 단계의 과정이 그다지 격렬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저자가 죽음을 삶의 다른 모습임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그렇더라도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이 쓴 글을 읽는 다는 것은 조심스럽고도 가슴 아픈 일이다. 짧은 내용이었지만 오랫동안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죽음 앞에 서있는 한 사람을 보는 일이 내내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구가 돌아가는 동안 살아있는 모든 것은 죽는다. 그것을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딴청을 부리며 살아가지만 이런 책을 통해 내게 올 시간을 조용히 생각해 보는 것. 그래서 좀더 중요한 것과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이 이 책이 내게 건네는 인사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t******e 2014.04.03. 신고 공감 4 댓글 10
리뷰 총점 종이책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 나를 믿어야지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 나를 믿어야지" 내용보기
원제 - Mortality (2012년)   저자 - 크리스토퍼 히친스           저자는 무신론으로 꽤 유명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의 베스트셀러 중에는 ‘신은 위대하지 않다 God is Not Great, 2007’라는 책도 있다고 한다. 그런 그가 말기 식도암 판정을 받았다. 그것도 가장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을 때 말이다.     과연 그런 상황에서 그는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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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Mortality (2012년)

  저자 - 크리스토퍼 히친스

 

 

 

 

  저자는 무신론으로 꽤 유명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의 베스트셀러 중에는 ‘신은 위대하지 않다 God is Not Great, 2007’라는 책도 있다고 한다. 그런 그가 말기 식도암 판정을 받았다. 그것도 가장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을 때 말이다.

 

  과연 그런 상황에서 그는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분노하다가 결국에는 종교에 귀의한다고 하는데, 과연 그도 비슷한 길을 걸었을까? 아니면 끝까지 신은 없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고, 그에 걸맞은 죽음을 준비했을까?

 

  무신론은 신이 없다고 믿는, 그러니까 천국이나 지옥, 환생, 윤회 등등을 믿지 않는다는 뜻으로 봐도 되는 걸까?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지옥에 가면 어떡하지라고 죽은 뒤를 상상하는 것도 무섭지만, 그냥 그것으로 끝이라는 상상도 무척이나 두렵고 오싹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지막에는 종교에 귀의하나보다. 천국에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위안이 될 테니 말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암 말기라는 판정을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수용하고 치료에 전념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주변을 정리한다. 이 책은 그 와중에 겪고 느낀 것을 적은 것이다.

 

  책의 분위기는 저자가 그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있냐에 따라 유쾌하기도 하고, 때로는 진지하기도 하며 우울하기도 하다. 저자는 자신의 몸을 잠식하고 있는 암세포를 외계인이라고 부르면서 극복하고 이겨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비관적인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듯, 항암치료 과정에 일어나는 변화를 긍정적이면서 약간은 비틀어서 표현한다. 마치 ‘암아, 네가 아무리 날 괴롭혀도 난 널 두려워하지 않을 거다.’라는 심정으로 고통을 해학으로 승화시키는 느낌이었다. 그는 자신의 아픔이나 불안함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어쩌면 결국 모든 인간은 죽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받아들인 것 같았다.

 

  후반으로 갈수록 그의 글은 점점 짧아진다. 아마 예전처럼 길게 메모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나 보다. 게다가 식도암이니 말로 전할 수도 없을 테고. 저자는 말기 암 판정을 받은 후 일 년 만에 숨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 짧은 몇 줄에서도 그가 얼마나 암과 싸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니다, 그의 표현을 빌면 ‘나는 암과 싸우고 있지 않다. 암이 나와 싸우고 있다.’가 맞을 것이다.

 

  예전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종교를 믿으며, 죽은 뒤의 자신이 믿는 신의 품에 갈 것이라 믿으며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요즘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많이 줄어든 것 같다. 대표적인 무신론자인 저자의 죽기 직전까지 남긴 글을 읽으면서,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하는지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저자가 두려워했던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질병의 영향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아니었을까?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종교가 아니라, 생각하는 능력,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글로 쓰는 능력 그리고 남들과 의사소통을 하는 능력이라고 저자는 생각했던 것 같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기듯이, 저자는 이미 없지만 그의 저서는 남아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런 삶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v********0 2014.04.10. 신고 공감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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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지식인 크리스토퍼 히친스에게 향하는 마중물
"진보적 지식인 크리스토퍼 히친스에게 향하는 마중물" 내용보기
외국 영화를 보면 임종 직전의 사람들은 대부분 종교인을 찾는다. 하다못해 사형을 언도받고 형이 집행되는 수감자들에게도 종교인이 보내지곤 한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싶어 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아마도 내 생각엔 혹시 신이 있다면 그리고 천국과 지옥이 정말로 있다면 뒤늦게라도 플러스 점수를 얻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 어떤 삶을 살아왔건 믿기만 한다면 천국의 열쇠를 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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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영화를 보면 임종 직전의 사람들은 대부분 종교인을 찾는다. 하다못해 사형을 언도받고 형이 집행되는 수감자들에게도 종교인이 보내지곤 한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싶어 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아마도 내 생각엔 혹시 신이 있다면 그리고 천국과 지옥이 정말로 있다면 뒤늦게라도 플러스 점수를 얻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 어떤 삶을 살아왔건 믿기만 한다면 천국의 열쇠를 쥔 셈이라니 그 정도 도박쯤이야 무엇이 대수랴. 죽음은 두려운 것투성이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신을 찾는 것이리라. 다행히(?) 동양권에선 서양에서 같은 임종은 없다.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도 임종의 순간에 신부를 찾는 일은 없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가족의 얼굴을 보고 두 눈에 담기도 바쁜 시간에 신을 찾아 뫼시어야 하다니 쓸데없는 짓이다.


신의 부재를 주장했던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암 선고를 받은 이후 그를 싫어했던 사람들은 그의 발병이 신의 노여움을 산 것이라고 고소해했다고 한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두려운 소멸의 순간에 정녕 신을 찾지 않을 것인지에도 관심을 두었다. 이에 대해 히친스는 '전지전능'한 신이 내릴 수 있는 벌이란 것이 고작 지난날 그의 생활양식과 그의 많은 나이가 발병원인이 되었을 암이라면 그의 무기고는 빈약하기 짝이 없는 셈이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더불어서 신의 나라 신도인 이들도 숱하게 암에 걸려 죽고 있음을 지적하고, 그의 발병을 고소해하는 집단이 있는 반면 쾌유를 비는 집단 가운데 신을 믿는 사람들이 많은 아이러니도 쓰고 있다. 이런 글에 그의 시니컬한 매력이 돋보이는데, 마치 빌 브라이슨 아저씨의 또 다른 면모를 보는 듯하다. 오, 내 취향.



세속주의자 또는 무신론자인 수많은 친구들이 내게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 "이걸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자네야." "자네 같은 사람 앞에서 암은 상대도 안 돼." "자네는 틀림없이 극복할 수 있어." 상태가 좋지 않은 날은 물론 좋은 날에도 이런 간곡한 말들은 살짝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 수 있다. 만약 내가 이 세상을 떠난다면, 이 모든 동지들을 실망시키는 꼴이 될 테니까 말이다. 그러다 보니 또다른 세속적인 문제가 생각난다. 만약 내가 병을 이겨낸 뒤에 신앙인들 쪽에서 흡족한 표정으로 자기네 기도가 응답을 받았다고 주장하면 어쩌지? 그것도 왠지 짜증스러울 것이다. (p. 39)



그의 말대로 정말 신이 전지전능한 존재이고 자신을 믿지 않는, 특히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목소리 높이는 자를 벌할 작정이었다면 고작 내리는 벌이 암인 것이 우스울 정도이다.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자신의 모습이라도 드러내어 큰 소리로 탓하고 불과 번개와 천둥소리로 죄인을 벌해야 하지 않는 걸까. 자비로운 신이어서 그렇다면 과거에는 왜 그런 일들을 벌였단 말인가. 자신이 선택한 족속이 아니라고 내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인간이 아니라고 다른 이의 제물은 본 척 만 척 하며, 부모에게 제 자식을 자기를 위한 제물로 바치라고 하질 않나. 날마다 노래와 기도로 찬양받기를 원하다니, 인정을 못받아 한맺힌 것 같다. 보통 인간이 벌였을 일이면 욕을 들어먹어도 불로장생 할 만큼 먹을 짓이다. 이게 정녕 신이 지닌 성격이라면 사이코패스도 이런 사이코패스가 없다.



나는 팔, 손, 손가락의 통증을 줄여준다는 주사를 맞은 직후에 이 글을 타이핑하고 있다. 손가락 같은 말단부위의 감각이 사라지는 것이 이 통증의 주된 부수효과다. 이런 증상을 느낄 때면 나는 글 쓰는 능력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비이성적이라고 할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글 쓰는 능력이 사라지면 '살고자 하는 의지' 또한 크게 희박해질 것 같다는 확신이 미리 든다. 나는 글쓰기가 단순한 생계수단이 아니라 삶 그 자체라고 당당하게 자주 말하곤 하는데, 이건 진심이다. 한때 사라질 것처럼 보였던 목소리는 성대에 일시적으로 주사를 놓아 조금 나아졌지만, 목소리가 사라질까봐 걱정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지금 손이 죽어 버려서 나를 글쓰기와 생각의 세계로 연결해주는 매개를 잃어버리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나의 인격과 정체성이 허물어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p. 101)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종교관은 내 마음에 쏙 드는데, 그의 장난꾸러기 같은 말투도 그가 암 투병 중에 쓴 글임을 감안해도 재미있다. 모진 고통을 견뎌내며 몸을 가눌 힘이 있으면 간신히 펜을 움직이거나 구술하는 정도였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철한 시각을 유지한 것이 존경스럽다. 자신의 병과 본인의 병에 대한 태도를 관찰자의 입장에서 지켜보며 집필한 것 또한 흥미롭다. 만일 내가 그처럼 아프다면 세상이 내게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투정부리거나 짜증을 내지 않고 견딜 수 있을지, 비교적 중립적인 입장에서 따져들던 이런저런 생각의 기조를 유지할 수 있을지, 나의 생명을 좀먹는 병마를 한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며 그에 대해 기술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의 다른 저서는 아직 접하기 전인데, 건강할 때의 그는 어떤 날카로운 논조로 글을 썼을지 궁금해진다. 죽음과의 거리가 점차 가까워져 매일같이 죽음의 얼굴을 마주하면서도 기존의 생각과 주장을 꿋꿋이 지켜나간 이라면 찾아볼 만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경우 그의 강렬한 주장이 온전히 담겨 있지도 않고, 암으로 인한 죽음에 대해 심도 깊은 고찰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조금 아쉽다. 다만 크리스토퍼 히친스라는 인물과 그의 주장에 대해 관심을 가질 정도의 마중물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l*******c 2015.09.14. 신고 공감 3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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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히친스, 암과 싸우다!
"크리스토퍼 히친스, 암과 싸우다!" 내용보기
2010년 6월 8일. 히친스는 신간 홍보를 위해 전국투어를 하던 첫 날 암 진단을 통고받는다. 식도암 4기. 그는 '전이'되었다는 단어에 가장 주목하면서 의기소침해진다. 그의 부친도 식도암으로 일흔아홉 살 때 돌아가셨다.그가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나이는 예순한 살. 18개월 뒤 2011년 12월 15일 휴스턴에서 사망했다. 한창 일할 나이가 아닌가? 자신의 고향 영국을 다시 보고싶어 했
"크리스토퍼 히친스, 암과 싸우다!" 내용보기

201068. 히친스는 신간 홍보를 위해 전국투어를 하던 첫 날 암 진단을 통고받는다. 식도암 4. 그는 '전이'되었다는 단어에 가장 주목하면서 의기소침해진다. 그의 부친도 식도암으로 일흔아홉 살 때 돌아가셨다.

그가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나이는 예순한 살18개월 뒤 20111215일 휴스턴에서 사망했다. 한창 일할 나이가 아닌가? 자신의 고향 영국을 다시 보고싶어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 히친스가 누구던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논객이요, 누구와 무슨 주제라도 기꺼이 토론하고 논쟁할 수 있었던 석학이었다. 40여 년간 칼럼, 에세이, 기사와 책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쏟아냈던 문인이었다. 2005년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와 정치평론지 「프로스펙트」가 공동 실시한 ‘세계 100대 지식인’ 온라인 투표에서 5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암이 나와 싸운다!"
이 책은 히친스의 암 투병기다. 그렇게 거칠 것 없고 자신만만하던 남자가 막 환갑을 맞은 무렵, 갑자기 말기 암 진단을 받았으니 이 얼마나 허망한 노릇인가.

'감정도 없고 맹목적인 외계인'. 히친스는 암 덩어리를 이렇게 부른다. 이놈의 '최선'이란 것이 곧 숙주와 함께 죽는 것이라니, 모르긴 해도 외계인처럼 기괴하고 이질적인 것이었으리라.

자신의 몸이 친구에서 적으로 돌아선다. 자신이 몸의 주인이 아니라 몸 그 자체라는 유물론적 명제 앞에 그는 솔직해지고, 나약해지며, 두려움에 빠져든다. 잠시 특유의 위트와 해학으로 맞서보지만, 이내 마치 노새한테 등을 차인 것 같은 고통 속에 절망한다. 원제도 "Mortality".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을, 그 자신도 잘 알았다.

그가 화학치료를 받으면서 살이 6킬로그램 빠지고, 머리카락도 사라지고, 얼굴에 있던 수염도 없어지게 되었다. "어느 날 면도날이 갑자기 수염 자국을 전혀 만나지 못하고 얼굴을 의미 없이 미끄러지게 될 줄은 몰랐다."고 고백하는 모습에 묘한 서글픔이 배어 있다. 더 있다. "콧털이 사라졌다. 콧물이 줄줄 흐른다. 변비와 설사가 번갈아가며."

암이 점점 진행되면서 입안에 궤양이 생겨 제대로 먹지 못하게 되거나, 갑자기 목소리가 아이처럼 새된 소리로 변해 버리거나 심지어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서 두려움은 점점 커져만 간다. "침을 삼킬 때마다 지옥같이 지독한 통증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그는 온 몸을 압도하는 듯한 고통 속에서 "만약 내가 이런 상황에 대해 미리 자세히 들었다 해도 치료받기를 선택했을까?"라고 자문한다. "너무 힘들어서 숨을 몰아쉬고 몸부림을 치고 저주를 퍼부으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 같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고 토로한다.

히친스의 대답은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미리 어떤 대비를 했다 해도 진통제들을 비웃으며 나의 핵심을 공격해대는 이 통증을 감당할 수 없었으리라"는 것. 그는 내내 '암으로 인한 몸의 고통'를 상세히 묘사해 나간다.

 

내가 처음 결정을 내리던 시점보다 지금 엄청나게 약해진 상태라는 사실 또한 피할 수 없다. (중략) 폐렴 때문에 온몸이 지쳐서 완전히 무기력해진 것 역시 내게는,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에 이만 항복하라고 권하는 치명적인 위협이었다. 이런 무기력 상태에 맞서 싸우지 못하고 늘어져 있을 때면, 체념과 숙명론이 무섭게 휩쓸고 지나갈 때가 자주 있었다. - 98쪽

 

이렇듯 이 책은 한 인간이 난데없이 생존과 죽음의 기로에 맞닥뜨린, 절박한 고뇌를 여실히 보여준다. 히친스는 종교, 철학 그리고 생존과 죽음에 대해 다룬다. 새로운 치료법에 귀가 솔깃하기도 하고, 레너드 코언의 노래 그것이 당신의 뜻이라면(If it be your will)〉에 빠져들기도 한다. 코언은 'I'm your man'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가수.
 
아래에 코언 노래를 링크걸어 놓았으니 여러분들도 한번 들어보시라. 쇠약해 가던 히친스는 밤늦은 시간에는 이 노래를 듣지 않았단고 고백한다. 코언의 목소리가 너무 부러웠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마음이 하염없이 약해지기 때문이었을까 



그에게 자산은 펜과 목소리였다! 글을 쓰고, 강연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 이는 자신이 살아가는 큰 활력이었고,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증거였다.

 

나는 팔, 손, 손가락의 통증을 줄여준다는 주사를 맞은 직후에 이 글을 타이핑했다. 그는 글 쓰는 능력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에게 글쓰기는 삶 그 자체이기에 글 쓰는 능력이 사라지면 ‘살고자 하는 의지’ 또한 크게 희박해질 것이다. 나는 손이 죽어 버려서 글쓰기와 생각의 세계로 연결해주는 매개를 잃어버리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나의 인격과 정체성이 허물어지는 것을 느낀다. - 101쪽

 

그에게 가장 큰 위안은 곁에서 지켜주는 아내와 수시로 찾아주는 친구들이었다. 그는 자신의 몸이 쇠약해지는 것보다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가는 것을 더 아파했고, 더 이상 가족, 친구들과 음식과 술을 함께 할 수 없는 것에 절망했다.

또한 "치료가 불가능하다면, 병세가 조금 누그러지는 것만이라도 좋다"라면서, "내가 되찾고 싶은 것은 우리 언어에서 가장 간단한 단어 두 개를 가장 아름답게 늘어놓은 것, '말의 자유(freedom of speech)'"라고 토로한다.
 
무신론자인 그는 신은 위대하지 않다》에서 종교와 신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신의 그늘에서 벗어나야만 인간은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 니체와 맥락이 같다.

히친스는 자신이 목구멍(!) 암에 걸린 것을 두고 일부 종교인들이 신을 모독한 것에 대한 신의 복수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익살을 부린다. 하지만 책 말미에 언급된 메모를 보면 죽어가는 자신도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내가 종교에 귀의한다면 그것은 무신론자의 죽음보다 신자의 죽음이 더 낫기 때문이다."(128)

나는 히친스의 이야기를 통해 죽음에 관해 깊이 성찰할 수 있었다.  고인은 마지막 가는 길까지 자신의 깨달음을 전해주려 한 것일까. 나는 그에게 어느 정도 빚을 지게 됐다. 그대여, 부디 평화로이 영면하시라!

YES마니아 : 로얄 h*******c 2014.04.04.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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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서도 당당한 무신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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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크리스토퍼 히친스를 알게 된 것은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알게 되면서였다. 도킨스의 저작이 히친스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와 비교되는 것을 보면서, 언젠가 한번 히친스의 저작을 읽어보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보다 먼저 읽은 책이 바로 히친스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이었다. 헌데 처음 이 책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란 제목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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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크리스토퍼 히친스를 알게 된 것은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알게 되면서였다. 도킨스의 저작이 히친스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와 비교되는 것을 보면서, 언젠가 한번 히친스의 저작을 읽어보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보다 먼저 읽은 책이 바로 히친스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이었다. 헌데 처음 이 책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란 제목을 보고서는 내가 알고 있는 히친스가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제목이 반어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들이 살면서 종교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는 분야, 혹은 시간이 바로 죽음과 관련되는 때가 아닐까 싶다. 히친스도 그의 저작 [신은 위대하지 않다]에서, 종교는 항상 복종과 감사와 두려움을 강요하고, 현재의 삶은 한심한 것이며, 내세를 준비하기 위한 막간에 불과하다고 여기게 만든다고 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죽음과 종교를 떼어서 생각한다는 것에 크나큰 두려움을 느꼈으며, 그것은 무신론자, 혹은 신과 관계없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도 죽음에 임박해서는 신을 찾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내세를 걱정하면서 말이다.

 

또한 사람들은 암과 같은 불치의 병에 걸렸을 경우 신의 기적을 바라며, 종교에 귀의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종교의 속성을 잘못 이해한 까닭이라고 그는 또 말했다. 그는 인간은 신과 종교를 창조했고, 그 종교는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서 무지와 미신이 필요했다고 한다. 현대에 가까워올수록 기적은 사라지고 또한 있다 해도 천박해지고 있다며, 그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무지에서 깨어나 자연현상에 대해 이해하고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신 없이 죽는다는 것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혹이라도 자신에게 기적이 발생하기를, 아니면 죽은 다음 세계에 대한 불안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히친스 자신이 식도암 말기로 진단받고 이후 1년여간 치료를 받으면서 숙명적으로 마주친 죽음에 대한 사색의 기록이다. 그는 처음 진단 결과를 통보 받은 후 느꼈던 당혹감에서부터, 치료에 아랑곳하지 않고 점점 악화되는 몸, 그리고 고통을 느끼며 점차 존재에 대한 상실감마저 갖게 된다. 더불어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종교에 귀의하라는 권유를 받지만, 그는 결코 신에게 기대지 않고 홀로 자신에게 찾아온 죽음과 대면한다. 그는 신 없이도 죽음 앞에서 홀로 서 있을 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그가 죽음과 맞선 상황에서 기록한 글들은 우리에게 죽음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주기에 충분하다.

 

사실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 가장 힘든 것은 아마 상실감일 것이다. 이제는 낯익은 것들로부터 영원히 결별할 수 밖에 없다는 감정이 몸의 고통이나 내세의 불안에 앞서 드는 생각일 게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어떻게든 삶을 이어가고자 하는 것 인지도 모른다. 히친스 역시 삶을 고집했다. 그러나 그가 고집한 삶은 상실감,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한 삶이 아니라 존재가 상실되어 감에 따라 역설적으로 느껴지는 삶의 아름다움에 대해서였다. 그는 죽음과 마주하면서 슬픔과 무력감을 감추지 않는다. 대신 살아있는 것의 소중함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는 또 죽음에 대해 무관심했다. 죽음 이후를 불안해 하지 않고, 죽음이라는 것을 존재와 함께 할 수 없는 것으로 본 그였기에 죽음에 대해 고뇌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하자고 말들 한다. 그것은 그만큼 삶을 더 알차고, 충실하게 보내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렇지만 막상 죽음 앞에서 초연해지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히친스가 들려주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는,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 것인지, 또한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든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k*****1 2014.04.03. 신고 공감 2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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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연하게 죽는다, 신 없이. 나를 위해 기도하지 마.
"나는 의연하게 죽는다, 신 없이. 나를 위해 기도하지 마." 내용보기
히친스는 도킨스와 함께 대표적인 무신론자다. 히친스와 도킨스가 다른 점은, 히친스가 좀더 뜨겁다는 것이다. 도킨스는 어디까지나 과학자라는 느낌. <신은 위대하지 않다>에서 느낀 것도, 히친스가 종교 때문에 부당하게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분노하는지를 느낄 수 있어 이 사람은 참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더 오래 살면서 저작을 많이 남겨 주길 바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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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친스는 도킨스와 함께 대표적인 무신론자다. 히친스와 도킨스가 다른 점은, 히친스가 좀더 뜨겁다는 것이다. 도킨스는 어디까지나 과학자라는 느낌. <신은 위대하지 않다>에서 느낀 것도, 히친스가 종교 때문에 부당하게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분노하는지를 느낄 수 있어 이 사람은 참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더 오래 살면서 저작을 많이 남겨 주길 바랬는데 병에 걸려 사망했다. 사망하기 전, 자신의 사망의 기록을 남겼다. "신 없이" 어떻게 죽는지 보아라, 이것이 무신론자의 죽는 법이다, 라고 외치기라도 하듯이. 두려움 없이 담담하게, 자기답게 죽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인 히친스는 나약한 소리 한 마디 없이 자기 자신의 죽음까지도 똑바로 응시하며 그 길을 걸어갔다.

YES마니아 : 로얄 z***o 2015.09.1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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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없이 죽어선 안 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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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리처드 도킨스와 더불어 대표적 무신론자인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스완송', 그러니까 그가 세상에 가장 마지막으로 내놓은 유작이다. 2011년 12월 15일, 그는 식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은 그렇게 떠나기까지의 마지막 여정을 담고 있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히친슨을 수식하는 것들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것들이 특히 대표적이다. 논쟁가,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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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리처드 도킨스와 더불어 대표적 무신론자인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스완송', 그러니까 그가 세상에 가장 마지막으로 내놓은 유작이다. 2011년 12월 15일, 그는 식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은 그렇게 떠나기까지의 마지막 여정을 담고 있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히친슨을 수식하는 것들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것들이 특히 대표적이다. 논쟁가, 독설가, 무신론자. 그는 40년간 수많은 칼럼, 에세이, 기사 그리고 책을 썼지만 이러한 수식어를 갖도록 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단연 '신은 위대하지 않다'라는 책일 것이다. 그의 이름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린 장본인이기도 한 이 책에서 그는 제목 그대로 신을 신랄하게 공격했다. 무엇보다 이 책은 그동안 종교가 신의 사랑과 인격성을 설파해온 것에 반발해 사실 신은 지극히 야만적이고 폭력적이며 따라서 이런 신에게 사랑을 바라는 건 자기모순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리하여 종교가 겁주는 대로 '신 없이 사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해 물론 가능할 뿐만 아니라 신이 있는 것보다 오히려 더 낫다고 단언한다. 이 책은 정말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켰고 리처드 도킨스와 함께 종교계 주적 중 하나로 만들었다. 그런 그이니만큼 그의 최후는 아무래도 세인들의 관심을 끌 수 밖에 없었다. 특히나 그동안 그에게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대었던 사람들은 이런 최후의 순간에도 과연 그가 신을 안 믿는지 어디 한 번 두고보자 는 심정이었다.


 그들은 그걸 신의 복수라고 생각했다. 목소리로 신을 부정했기 때문에 신이 하필이면 바로 그 목에다 암을 생기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신에게 용서를 빌고 그에게 구원받을 것을 설득하는 메일들이 잇달아 날아오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모임까지 생겨난다. 유투브에까지 그런 동영상이 걸린다.


 그래서 말인데, 이 책은 대답이다. 바로 그런 그들의 냉소와 바람 그리고 기도에 대한 냉정한 대답인 것이다.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신을 전혀 굽히지 않았다. '신 없이 어떻게 죽을 수 있는가?'라는 그들의 물음에 그는 이런 식으로 기꺼이 대답한 것이다. 몸으로, 삶으로 직접.  신 없이 어떻게 죽을 수 있는 지 말이다. 이 책은 그 기록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소크라테스적 죽음의 재현과도 같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셨을 때 그는 죽음이 어떻게 찾아오는지 보겠다며 끝까지 두 눈을 부릅뜨고 죽음이 찾아오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고 한다. 크리스토퍼 히친스도 이와 같다. 끝까지 냉정하고 차분하게 자신을 객관화한다. 인정에 호소하지도 않고 동정을 구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신랄하게 보여줄 뿐이다. 마지막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리얼리티 쇼처럼. 신 없이 죽어가는 과정을.


 이 책의 원래 제목은 'MORTALITY'다. 죽음을 뜻하는 허다한 말들 중에서 이 말은 특히나 '필멸', '반드시 죽음', 이렇게  '피할 수 없음'을 강조 하고 있다. 우리들 중 누구도 이 궤적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히친스도 그랬다. 그는 2010년 6월 8일, 자신의 새책을 위한 홍보 여행을 시작한 첫 날. 아무런 예고도 없이 죽음으로 가는 여정의 티켓을 받았다. 


 살면서 자다가 죽을 것 같은 기분으로 눈을 뜬 적이 지금까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마치 내 '시체'에 족쇄로 묶여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의식을 되찾은 6월의 어느 이른 아침은 그런 것들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누군가가 가슴과 흉곽 전체를 텅 비워버린 다음 서서히 굳는 시멘트를 채워넣은 것 같았다.(p. 19)


 당연히 그 역시 괴로워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미래가 말살되어 버리는 순간 앞에서 아무리 히친스라 하더라도 냉정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결국 어차피 도래할 죽음. 그는 지금 일어나는 모든 울분들이 무엇인지 잘 안다.


 다음 10년 동안 할 일들을 진지하게 계획해두고,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계획한 일들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정말로 살아서 아이들의 결혼식을 볼 수 없을까? 세계무역센터가 다시 솟아오르는 것도 볼 수 없을까? 헨리 키신저나 요세프 라칭거 같은 늙은 악당들의 사망 기사를 쓸 수는 없더라도 읽는 것은 할 수 없을까? 하지만 나는 이런 종류의 쓸데없는 생각들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감상과 자기 연민이라는 것을.(p. 24)

 

그리고 이런 냉정함이 찾아온다.


 "왜 하필 나인가?"라는 멍청한 질문에 우주는 아주 귀찮다는 듯 간신히 대답해준다. "안 될 것도 없잖아?"(P. 25)


 이왕 이렇게 되었다면 신 없이 어떻게 죽을 수 있는지 그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한다. 히친스. 그는 자신이 몸소 겪어야 말을 하는 사람이다. 경험이 바탕되지 않는 말은 섣불리 하지 않는다. 물고문이 가져오는 고통을 말해야할 때 그는 정말 물고문이 얼마나 사람의 몸과 마음을 망치는 지 알기 위해 자신에게 실제 그것을 자행하도록 했다. 그 정도로 그는 자기가 겪은 것과 알고 있는 것만을 쓰는 사람이다. 내 생각에 히친스는 죽음에 대한 자신의 말도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자기가 신 없이 죽을 수 있다는 걸 말했다면 그 삶의 모습마저도 그러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 기록은 조금의 꾸밈도 없이 일어난 사실 그대로를 써야 한다고.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그렇게 써내려나간 기록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 흔히 기대하곤 하는 것들은 하나도 없다. 암과의 모진 싸움 속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나가는 영웅적인 면모도, 삶의 끝자락에서 타인과의 유대를 통하여 다시금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식의 읽는 이도 감동으로 치유되는 이야기도, "왜 나만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지?" 식의 토로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히친스는 '왜 심장병이나 신장병도 암처럼 오래도록 사람을 고생하게 만드는 병임에도 불구하고 투쟁이나 싸움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면서 유독 암에게만 그런 말을 붙여 그 과정을 영웅적인 투쟁으로 보이게 하는지 의문을 표시하며 '잘 지냈어요? '어떻게 괜찮아요?' 같은 환자들에게 의례히 묻곤 하는, 설령 뭔가 환자에게 도움이 되도록 건네는 말이라 할지라도 고문과 다를 바 없는 과잉 배려라고 생각한다. 비록 그런 친절은 바로 코 앞에 닥친 막막한 현실을 조금이나마 잊게 하려는 마음일 것이나 그렇다고 피할 수 없는 고통이나 죽음이라면 차라리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도록 하고 솔직하게 지금 현존하는 고통이나 비극적 상황에 대해 말을 나누는 게 나을 것이라 말한다.


 죽음이 언젠가는 도래하고말 생리적 현상이라면 거기에 대해 그 이상의 아무런 의미도 더 보태거나 빼지말고 그냥 직시하고 마지막 숨을 내쉴 때까지 그저 충실히 삶을 이어가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지 않을까 하는 뜻을 내비치는 것이다. 그렇게 여기엔 종양으로, 그리고 화학치료로 육체가 망가지는 고통은 있어도 거기에 대한 슬픔과 곧 삶을 떠나게 된다는 자각에서 오는 한 같은 것은 없다. 치유를 위한 기도도, 내세를 위한 기도도 그는 원하지 않는다. 그저 홀연히 세상을 떠나게 될 때까지 어떻게든 남은 시간을 충실히 보내고 싶을 뿐이다. 진정 그것 뿐이다. 이 기록 역시도 바로 그 충실을 위한 것이다. 사실은 그럼으로써 보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신 없이 어떻게 죽을 수 있는 지 말이다.


 예전에 한 드라마가 암 세포도 생명이라고 제거 수술을 거부한다고 해서 많은 이들의 조롱을 받은 적이 있다. 재밌게도 히친스가 마치 거기에 대해 답변한 것과도 내용이 있었다. 그는 암세포도 생명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무생물적인 현상에 생물적인 성질을 부여하는 한심한 오류(P. 31)'라고 답한다. 


 내가 식도에 생긴 종양을 '감정도 없고 맹목적인 외계인'으로 묘사한 것은 나조차도 그것에게 모종의 생명체 같은 성질을 부여하지 않을 수 없었던 탓인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이 실수였음은 알고 있다. 무생물적인 현상에 생물적인 성질을 부여하는 한심한 오류의 한 사례인 것이다. 암 덩어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유기체가 필요하지만 암덩어리는 결코 살아있는 유기체가 될 수 없다. 그것의 악의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것의 '최선'이 곧 숙주와 함께 죽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숙주는 암 때문에 죽어버리거나, 아니면 암을 박멸하고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내는 수 밖에 없다.(P.32)


 암만 특별하게 투쟁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과 이렇게 종양에 생명체 같은 성질을 부여하는 것에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에게 도래한 상황이나 고통에 뭔가 의미를 부여하고자 함인 것이다. 그는 어떻게든 이 상황이 시시포스의 형벌처럼 무의미하지 않으며 어떻게든 의미가 있을 것을 원한다. 그래야 그것을 당하고 있는 그 존재도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건 바로 이대로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투쟁으로 영웅적으로 만들고 생명체로 만들어 고통에 의미를 부여한다. 맞다. 이 모든, 사실은 무익한 노력의 본질엔 바로 '자기 연민'이 있다. 이대로 허무하게 없어질 자신이 불쌍해죽겠다는 고백이 있는 것이다. 히친스가 이런 말을 하는 건, 그것이 신에 대한 태도에도 그대로 통하기 때문이다. 죽기 전에 신에 의지하는 것. 그것 역시도 정말로 신을 믿거나 의지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기 연민 때문임을 말이다.


 그러니 히친스에게 신 없이 죽을 수 있는 것엔 아무런 문제도, 어려움도 없다. 자기 연민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되는 것이다. 이 책의 대부분에 걸친 현재 자신의 육체가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한 신랄한 묘사도 그리고 어떤 위안과 유대감을 가지려는 병원이나 지인들의 친절에 까칠하게 구는 것도 알고보면 그 때문이다. 언제나 냉정하게 자신을 바라봐서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죽음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경험이다. 따라서 죽음에 대한 생각도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서도 이 책이 하나의 대답이라고 했지만 히친스가 자신의 삶을 정답으로 여기는 것도 아니다. 무신론자로 산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삶에 뚜렷한 정답이 없다는 것과 같다. 종교가 특히 그렇지만 정답이란 많은 부분 도그마가 되어 그 진실 여부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없이 사람의 삶을 구속한다. 무신론자는 그렇게 구속 받는 것을, 나아가 그런 구속을 줄 수 있는 것을 일체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그러므로 무신론자는 전도하지 않는다. 그냥 자신의 삶을 살 뿐이다. 그 삶의 여정을 보고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든 오로지 그들의 몫인 것이다.


  히친스는 이 책의 제목을 'MORTALITY'라고 했다. 이것은 '지금은 내 이야기이지만 언젠가는 바로 너의 이야기이다.'라는 것을 암시하기 위함인 것 같다. 필연코 다가올 수 밖에 없는 죽음 앞에서 히친스가 '나는 이렇게 살다 가는데 너는 어떻게 살다 갈 것인가?'를 묻는 것 같은 뉘앙스를 이 제목은 풍기고 있다. 그렇게 이 책 자체는 독자에게 하나의 질문이며 이제 독자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죽음에 대한 태도의 역사적 변화를 밝혀 유명해진 필립 아리에스라는 역사가는 근대 이후로 죽음이 점점 개인화되고 부정적인 것으로 변모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건 공동묘지가 점점 공동체 사회로 부터 멀어지는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고도 한다. 그렇게 현재는 체계적으로 죽음을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고 그럼으로써 삶에서 배제해 왔다. 어떤 학자들은 그러한 삶에서의 죽음 추방이 지금처럼 삶을 욕망 추구의 극단적 현장으로 만들어버렸다고도 한다. '언제나 죽음을 염두에 두라'는 '메멘토 모리'는 중세인들 모두가 뇌리에 새겨둔 격언이었다.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죽음과의 대면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들은 현명하게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들에게도 바로 그런 대면이 필요한 것 같다. 모의 장례식 체험처럼 말이다. 그렇게 이 책은 당신을 고해성사를 받듯 죽음과의 대면으로 데려간다. 거기서 무엇을 얻게 될 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이끄는 대로 한 번 걸음을 내맡겨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진심으로.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l****1 2014.04.14.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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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기도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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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병에 걸렸을 때 생기는 변화 하나는, 믿음이 가던 말들과 익숙한 원칙들을 다시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p. 87)누구든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모든것에 용서를 구하고 자신의 일생에서 잘못된 부분을 생산벨트에서 불량품 찾아내듯 발견하려 할 것이다. 특히, 이러한 과정은 종교인이 바라보는 무신론자에게 매우 유의미 하고 기대감이 들게 하는 순간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평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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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병에 걸렸을 때 생기는 변화 하나는, 믿음이 가던 말들과 익숙한 원칙들을 다시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p. 87)


누구든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모든것에 용서를 구하고 자신의 일생에서 잘못된 부분을 생산벨트에서 불량품 찾아내듯 발견하려 할 것이다. 특히, 이러한 과정은 종교인이 바라보는 무신론자에게 매우 유의미 하고 기대감이 들게 하는 순간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평소 ‘신은 위대하지 않다’던 크리스토퍼 히친스를 생각할 때 일부 극렬한 종교인들은 그에 대해 서슴없이 악담을 쏟아 부었다. 대표적인 주장은 신을 모독하던 그에게 목소리를 잃게 만드는 식도암에 걸리게 된 것은 틀림없는 신의 징벌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내심 기대를 걸고 있던 이들은 히친스가 자신의 평생의 주장이 잘못된 것이며 사실 신은 실재하면서 나같은 이에게 이토록 큰 고통을 준다고 생각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히친스는 이러한 소소한 기대를 저버리며 말하기를, 신의 복수라는 것이 고작 과거 자신의 생활방식으로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암’ 뿐이라면 그의 무기고는 텅 빈 것에 다름 없다고 한다. 그의 말처럼 벼락을 내리거나 경외감을 불러 일으키는 처벌을 가하는 것이 훨씬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유용하지 않겠는가. 오히려 그의 걱정은 그가 회복했을 때 이것은 신도들의 기도 덕분이라는 주장 같은 것들이었다. 


이 책은 저자가 극심한 고통과 방사선 치료를 견뎌 내며 잠깐 잠깐 의식이 돌아오거나 몸이 안정을 찾았을 때 생각나는 것을 모아 놓은 책이다. 삶의 여분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그마저도 언제 오는지 알 수 없을 때 내가 쓰는 말은 어떨 것인가. 조금도 진실하지 않을 수 없으며, 사사로운 말보다는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수백가지 말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는 말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에 대한 비난이나 악의를 두는 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죽음을 앞두고 어울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쩌면 우선순위에서 더 중요한 말들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그가 어떤 존재에게 악의에 가득찬 말을 쏟아 낸다면 그것은 그에게 지금 가장 하고 싶은 말이 그것이라는 생각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삶은 죽음을 이해할 수 없다


니체의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

너를 죽일정도의 고통이 아니라면 너를 더 강하게 만들 것이다. 

이 말이 죽음을 앞두고 있는 누군가에게 들린다면 어떤 생각이 들것인가. 저자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런 격언들이 갖는 무책임함에 대해 냉소한다. 폴린 케일의 말을 인용해 ‘그곳을 사람이 격려 때문에 죽을 수도 있는 곳’이라고 한 것은, 그만큼 죽음을 앞둔 환자들에게 긍정적인 마음이나 희망적인 생각이 강요된다는 의미기도 하다. 스스로 잘 견뎌내고 있고, 내가 암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암과 나와 싸우고 있는 저자에게도 사람들의 격려는 때때로 오히려 힘빠지게 하는 어떤 것이 되기도 했다. 니체의 이러한 격언 또한 사람들이 죽음을 경험하지도, 눈 앞에 두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저 죽음을 지금의 고통에 비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는 생각한다. 사실 우리에게 죽음은 그저 비교 대상이거나, 상대적인 고통의 크기를 비교 할 때 인용되는 정도였던 것이다. 


끝까지 웃을 수 있게


고통의 순간에도 나를 구원해 주는 것이 있다면 나는 그것이 긍정적인 마인드와는 조금 다른 형태의 ‘유머’라고 하고 싶다. 물론 크게 범주화 시키자면 같은 쪽에 속하겠지만 유머는 조금 냉소적인 태도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는 4기 암의 좋은 점이 5기 암은 없는 점이라고 한다거나, 영국을 못 볼것 같냐는 질문을 하는 친구에게 ‘나는 기꺼이 받아들이니, 너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는 식의 생각은 보는 우리에게 안타까운 웃음을 준다. 랜디 포시 교수의 ‘마지막 강의’는 사람들에게 이런 느낌을 안겨주는 대표적인 강의였다. 그는 암 말기 환자이지만 여전히 여기 있는 분들보다 팔굽혀 펴기를 잘 할 수 있다고 시범을 보이고, 암에 대한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경건해야 할 도덕적 의무를 가지고 암 환자를 대하는 이에게 재미 없게 구는 것 만큼 서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도 없다. 아마도 죽음을 앞둔 변화에서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것은 3분의 1이나 줄어버린 몸무게도, 갑자기 나오지 않게된 목소리가 아닌 그를 불쌍하게 여기는 타인의 시선이었던 같다. 


그의 마지막 장은 아주 짧은 문장들로 이뤄졌다. 글의 길이가 짧아진다는 의미는 그가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짬짬이 여유가 생길 때 온 정신을 끌어모아 글을 썼다는 뜻일 것이다. 그는 일찌감치 죽음의 과정을 인정하고 글을 쓰면서 그에 대한 반응까지 보았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죽고 난 후에 들었을 말들을 여전히 살아서 읽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었다. 이는 한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겠지만, 한편으론 괴로운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마지막까지 그는 신이 내리는 벌이 고작 암이라면 그는 그야말로 안쓰러운 존재라고 말하는 자신감을 보이면서도, 오히려 타인의 동정에 대해서는 약한 모습을 보인다.  


약간의 동정이 서린 말은 의도와 달리 최종적인 느낌을 준다. 과거시제, 도는 마치 고별사 같은 느낌 때문이다. 꽃을 보내는 것은 생각만큼 좋은 일이 아니다. (p. 125)

YES마니아 : 로얄 c****o 2015.10.18. 신고 공감 1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 나를 위해 기도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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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두렵고 무섭게 느껴지는 것 중 하나는,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로서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순간, 즉 죽음의 과정일 것이다. 그것은 삶에 대한 욕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과 관련하여, 죽음이란 것이 우리의 의지로 거부하거나 회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그 때가 되면 쉽게 수긍하고 인정하기를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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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두렵고 무섭게 느껴지는 것 중 하나는,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로서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순간, 즉 죽음의 과정일 것이다. 그것은 삶에 대한 욕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과 관련하여, 죽음이란 것이 우리의 의지로 거부하거나 회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그 때가 되면 쉽게 수긍하고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심리가 우리 내부에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어찌 되었든 죽음은 의학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조금은 늦출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현재까지 없는듯하다. 죽음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달갑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 한번쯤 시간을 내어 고찰해보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 많은 것을 의미하고 시사한다. 이를테면 지나간 자신의 인생의 모습이 과연 어떠했는지를 곰곰이 반추해보면서, 소중한 시간을 너무 헛되이 소비해버린 것은 아닌지, 혹은 삶의 목적이나 이유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만약에 자기 자신에게 언제쯤 죽음이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사전에 인지하게 되는 경우, 죽음 앞에 맞서 당당하게 이를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고 의연하게 대처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만큼 우리로 하여금 심리적 중압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들 대부분은 죽음에 임박했음을 느낄 때, 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던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게 되는데, 특히 그중에서도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신을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특별히 무엇이 달라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신에게 기대지 않으며 겸허히 죽음을 마주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서 주목된다.


이 책의 저자는 리처드 도킨스와 함께 이 시대의 대표적인 무신론자로 알려져 있는 크리스토퍼 히친스다. 사실 그는 자신의 저서 신은 위대하지 않다 라든가, 논쟁이라는 책을 통해 광신과 독선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거침없는 독설로 인해,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꺼려지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비평가로서 현학적인 말솜씨와 많은 기고문을 통해 방송과 언론에 노출됨으로서 우리 사회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는데, 불행하게도 62세라는 나이에 식도암말기 판정을 받은 직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생을 마감했다. 이 책은 당시만 해도 칼럼니스트이자 자신의 저서 출간과 관련하여 의욕적으로 바쁜 활동을 보이던 중에, 식도암이라는 뜻하지 않은 발병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얼마 안남아 있던 짧은 시간동안, 죽음을 눈앞에 둔 그의 마지막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아져 있어 눈길을 이끈다. 무신론자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그는 살아생전에 유독 종교에 관한 날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는데, 아마도 이를 의식했던 것일까 책 속에는 신에 의지하려는 조금의 호의적인 모습도 보이지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죽음을 눈앞에 둔 현실을 부정하는 등의 갈등하는 태도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의사의 권유에 따라 여러 치료의 과정을 거치면서 몸에 나타나는 여러 변화들을 통해, 죽음이 곧 자신에게 닥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인식했었던 듯하다. 그러나 책 속 그의 글을 읽다보면 마치 죽음은 자신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어떤 불안감이나 두려움을 호소하거나 심지어 일말의 고뇌도 없는 것 같은 자세를 보인다. 그러면서도 한편에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무력감을 떨치기라도 하듯 블랙유모를 섞어가며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낸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일반 독자들에게 있어서는 아무래도 친숙하게 느껴지지도 않을뿐더러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 더 많을 것이다. 그렇다보니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면서 관조적으로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히친스는 죽음 앞에서도 연약한 모습은 고사하고 죽는 그 순간까지도 정상인과 다름없는 조금의 흔들림도 보여주지 않는다. 물론 식도암의 증상이 점차 깊어지면서 앞으로 더 이상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자괴감에 잠시 빠지기도 하지만, 이는 죽음과는 또 다른 별개의 문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저서와 칼럼과 강연 등을 통해 신의 존재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독설을 퍼부어왔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서 전 세계 기독교 신자들로부터 참기 힘든 모욕과 저주의 발언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책 속에는 이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자주 언급되어있음을 볼 수 있는데, 당신이 그토록 신을 모독했기 때문에 신이 당신에게 식도암이라는 벌을 내려주었을 거라는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들에 대해, 그는 경전과 종교의 가르침에는 수백 년 동안 남의 불행을 고소해하는 심보를 주류신앙으로 만들어버린 구절들이 수 없이 많다는 식으로 가볍게 넘겨버리고 만다. 죽음을 앞에 두고 신을 의지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우리들 각자의 판단에 따른 저마다의 몫이다. 하지만 인간은 나약하기 때문에 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통념을 깨트리며 죽음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그의 삶의 자세는, 그저 단순하고 가볍게 넘길 만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신에 대한 통렬한 비판만큼이나 죽는 순간까지도 인간의 삶에 강한 애착을 보였던 그의 실존주의적인 모습을 독자들이 한번 깊이 사유해 볼만하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 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p*******3 2014.04.0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