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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서리가 둥근 네모는 디자인 침해라는 애플의 주장은 조롱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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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이 삼성에게 자신들의 디자인 침해를 주장했던 내용 중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의 모양이라는 항목이 있었다. 미국 내 법정에서 대부분의 애플의 주장에 삼성이 패소했지만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 이라는 디자인 부분에서는 배타적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것은 애플의 영원한 세계적 조롱 거리가 됐다. 우리는 사각형, 세모, 네모와 같이 일반적인 형태에 대해 그것이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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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이 삼성에게 자신들의 디자인 침해를 주장했던 내용 중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의 모양이라는 항목이 있었다. 미국 내 법정에서 대부분의 애플의 주장에 삼성이 패소했지만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 이라는 디자인 부분에서는 배타적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것은 애플의 영원한 세계적 조롱 거리가 됐다. 우리는 사각형, 세모, 네모와 같이 일반적인 형태에 대해 그것이 자기만의 독창적인 디자인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태생적으로 네모이고 납작할 수밖에 없는 스마트 폰 모서리에 디자인 변화를 주기 위해 조금 둥글리고 슬림하게 만들었다고 디자인 침해를 주장한다는 사실은 오히려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억지스럽고, 빈약한 지를 반증한다. 그러나 진실은 둥근 모서리 디자인 너머에 있다. 삼성은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애플이 5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디자인한 아이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사용자 인터페이스 등을 집중적으로 벤치마킹하여 여러가지 디자인적 조합들을 다각도로 응용하고 변형하여 전설의 명기가 된 갤럭시 시리즈를 세게 시장의 정상에 세웠고, 그 결과 세계 시장 탈환에 성공했다.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은 애플 주장의 일부일 뿐, 전체적으로는 누구라도 인정할 명백한 표절이었다. 

 

처음, 이승우 작가의 <지상의 노래>를 읽었을 때의 느낌은.. 아 이건 내 수준의 제한된 언어와 빈약한 사유로 리뷰가 가능한 종류의 소설이 아니야.. 였다. 소설을 제대로 이해할만한 정보를 찾아 인터넷을 뒤지던 중 내가 만난 키워드는 '표절'이라는 자극적인 단어였다. 이 작품(표절)을 쓴 김주욱 작가가 이승우의 <지상의 노래>를 자신의 작품을 표절한 것이라 주장하는 기사였다. 게다가 공모전 심사 위원에서 자신이 낙선시킨 작품을 표절했다니, 쇼킹 그 자체였다. 신동아 2013년 3월호 기사이고 인터넷에 전문이 공개되어 있다. 이것이 다시 소설로 엮여 나왔다.


기사 중 실명을 밝히지 않은 K라는 비평가 겸 교수는 '그 텍스트를 가져다놓고 다시 읽으면서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신동아는 표절이라는 사실을 납득시키기 위한 근거로 교수이면서 동시에 문학평론가인 사람의 권위를 이용하면서 막상 실명은 밝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건 어떤 문학평론가가 그러는데 표절 맞다더라.라는 거다. 문학 비평가가 표절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의 소신을 실명으로 직접 표절을 사회에 알리고 비평하는 것이 비평가의 의무 아닌가? 그 비평가는 무엇때문에 실명을 밝히지 않는가. 김주욱이 주장하는 중견문학인들의 문학권력 때문에? 그렇다면 비평가들은 모두 문학권력의 눈치만을 살피고 그들에게 기생하고, 표절당한 젊은 문학지망생의 억울함을 묵과하나? 

 

소설가 이승우는 책에서 G라는 인물로 묘사되는데, 이 책에서 G라는 인물은 대략 이렇게 묘사된다.

비평가들로부터 윤리적 관점이 창작의 궁극적 동기여서는 안된다는 비평을 받기도 했다.

G는 후배들이 자기를 보는 줄 착각하고 계속 재미없는 농담을 했다.24

항상 예의바른 행동에 억양도 나지막하고 차분한 선비인 양했다. 24
맛없는 안주같은 중견 소설가 27
G의 의뭉스러운 눈빛을 계속 피해가며 25
유독 G는 의뭉스러워서 대면하기 싫었다. 29

 

독자는 이렇게 처음부터 표절을 당했다고 상상하는 작가의 임의적 감정과 판단에 의지해, G로 변신한 이승우를 만난다. 작가가 표절의 주장을 소설을 통해 알리고 싶었다면 자신의 판단을 납득시킬 수 있는 행동과 대화에 디테일이 있어야 한다. 이 책에 한 인간으로서의 G는 없다. G의 인격과 도덕성은 정당한 사유 없이 형용사로 정의된다. 소설 <표절>은 1인칭 시점으로 '내'가 느낀 G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로 전달하다가, 3인칭으로 시점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3인칭 전지적 시점에서도 작가는 객관적이지 않다. G의 내면에 깊숙히 들어가서 G의 고뇌와 G의 처절한 창작에 대한 몸부림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G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의 행동에 감정적으로 개입하여 마땅찮은 시선을 보낸다.  

 

형님은 문학상과 창작기금 잘 챙겨 먹잖아요.

부러우면 너도 열씸히 써. 먹물들이 좋아 할 얘기로 말이야. 128

이 소설 <표절>에는 또 다른 소설이 있고, 그 속에 또 다른 소설이 있고, 그 속에 또 소설이 있다. 소설들 속에서는 알파벳으로 된 인물들과 사람이름으로 되 인물들이 섞여 있는데, 알파벳 대문자 이름은 실제 현실의 인물들을 말하고 이름으로 된 인물은 완전 가상의 이름을 말하는 듯하다. 그 모든 소설 속 소설에는 이승우에 대해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모든 그의 정보들을 그대로 가진 G가 등장하고, 그 G는 계속해서 의뭉스럽고, 탐욕스럽고, 창작의 소재가 고갈되어 베껴쓸 다른 작품들을 찾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고, 여자 교수와 여자 아이를 음흉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늙고 심술맞은 기득 권력이다. 한편 본인을 빗댄 Q는 그와는 반대이다. 그는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가지고 있으며, 새로운 디자인과 직접 발로 얻은 정보로 남들보다 앞서는 창작물을 만들어 내고, 다른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모방한다. 그리고 자신 Q의 작품과 작품 활동을 끊임없이 알리고 방어한다.

 

골치 아픈 철학적 사유가 깔린 부분을 읽으면서는 무슨 말인지 무슨 뜻인지 몰라도 작가가 인간 존재에 대해서 다른 해석을 내린 것 같아서 밑줄 치면서 곰곰이 따져 보기도 했다.

다시 실제 작가가 표절 이라 주장한 실제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예를 들어 피카소의 작품이 누구의 표절작이라고 하자. 우리늘 피카소의 그림이 매우 훌륭하기 때문에 그것이 누구의 작품을 실제로 표절한 것이든 아니든 원작자라고 주장하는 화가의 작품에도 경외감을 갖게 되고 그의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다. 처음 원작자가 사용한 기법, 사용 재료, 의미, 미학적 가치 등등. 마찬가지로 문학 작품에서 표절을 말하려면 해당 작품의 서사가 무엇을 전달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김주욱 작가와 말이 안통하는 부분은 이런 것들이다. 작가는 이승우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에게 이승우의 글은 스스로 언급한 것처럼 '골치아픈 철학적 사유가 깔린 부분이고 무슨 말인지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이고,  '문학상과 창작 기금을 챙겨먹'기 위해, '먹물들이 좋아할 만한 소설'만을 쓰는 중견 작가이다. 작가 김주욱에게 이승우의 글은 먹물들이 좋아할 글이지 자신은 좋아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작품에 대한 해석을 통해 이승우의 <지상의 노래>가 표절이라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대신 이승우가 가진 팩트들을 가진 작가 G를 창조하고 자신의 주장에 유리한 부패하고 무능한 문학 권력과 변태적이고 의뭉스런 인격을 불어넣어 인신공격을 한다. 그는 자신이 가진 이승우 작가의 모든 정보를 이용해서,  G라는 교수의 꼬투리를 잡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중견 소설가는 공지영 박범심류의 인기 작가가 아니고 매체에서도 무관심한지라 사생활이 노출되어 있지 않다. 그러다보니, G에 대한 행동과 심리 묘사가 얼개 없이 허술하다.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창작지원금과 책의 홍보용으로 인용된 그에 대한 비평 등은  Q의 G에 대한 정보가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가늠하게 한다. 그래서, G는 거의 이런 사람이다 라는 사실을 독자에게 주입시키기에 급급하면서 실제로 가장 중요한 작품에 대해서는 직접 구체적으로 비평하지도 못한다. 

 

이승우의 작품 <지상의 노래>는 무겁고 어렵고 복잡하고 옴니버스 형태의 다중적 인물이 각기 다른 세계를 살아가다가 어느 한 지점으로 수렴되는 구조적으로 복잡한 형태를 갖는다. 게다가 표절이라고 주장하는 부분은 작품의 일부인 6장 카다콤 중에서도 일부인 미용실이라는 작업공간이다. 300여 쪽 중 서너장에 불과하고, 그 서너장 중 마저도 나의 판단으로는 <허물>의 풍경, 주제와는 비슷하지 않다. 미용실 내 거울 이 나오고, 소파에 앉았다는 표현을 <허물>에서 먼저 썼으니 표절이라는 주장이다. 그림의 예를 들자면, <허물>이 인물화라면, <지상의 노래>는 대성당의 벽화라고 할 때, 벽화의 한 쪽 구석 아주 작은 어떤 사람의 얼굴 표정이 그 인물화  그림을 표절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6장 카다콤 부분을 펼쳐보자.   미장원 장면은 그 중 주요 인물인 후의  인생 여정 중 매우 일부이며 미용사와 미용실 자체의 공간적 배경은 이 작품내에서  거의 상징성을 갖지도 않는다. 후가 접대하는 사모님은 미용실이 아닌 마사지실이고 그 공간은 김주욱이 <허물>에서 묘사한 생동감 넘치는 미의 창조로서의 공간과 달리 폐쇄된 금기의 공간이고 사람들 몰래 육체적 욕망을 사고 파는 공간이다. 또한 후가 미용실에서 일을 하게 된 동기는 김주욱의 <허물>과는 달리 미용 기술을 배우거나 욕망을 채울 목적이 아니라 오로지 누이를 찾기 위해서다.  그가 찾는 그의 누이가 1장쯤의 어딘가에서 시골의 미용실에서 떠나기 마지막까지 일했기에 누이는 도시의 어딘가에서 미용실을 할 것이란 정보를 듣고,  이 도시 저 도시의 미용실을 하나씩 찾아 헤매다가 우연히 성접대까지 하게 되는데 누이의 소식을 알려주는 그 성접대의 공간인 마사지실이 바로 <허물>에서 그대로 베꼈다는 그 생동감넘치는 미용실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상의 노래>에서 성행위가 이루어지는 마사지실이라는 공간은 <허물>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미용실, 식당, 커피전문점, 술집, 길에 채이는 이런 일반적인 직업군에 대해 소설적 모티브니, 영감이니 하는 말로 자신만의 아이디어라며 배타적 권리를 행사하려는 것은 아이폰의 모서리가 둥근 네모를 자기들만의 디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니, 그냥 네모 자체를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다.  두 소설은 주제도 문체도 다르고 소설을 크게 분류하자면 범주 자체가 다르다. 허물은 미용실에서 일어나는 현장감이 자세하다.  이승우의 <지상의 노래>는 관념적이고 철학적이다. 특정 행위에 대한 배경적 묘사는 최소한으로 이루어지고 인물이 무엇을 생각하는가와 무엇을 행동하는가에만 집중한다. 그래서 생생한 현장감이 없고, 또, 그래서 <지상의 노래>에서 후가 전전한 곳이 미용실이건 식당이건 당구장이건 목욕탕이건 별 상관이 없다. 단지 누이가 있을 만한 곳이며, 성을 판매할 수 있기만 하면 소설의 정체성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만큼, 미용실이라는 공간 자체가 중요한 곳이 아니다. 반면 <허물>에서 미용실은 소설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다큐나 현장 취재보다도 더 상세하게 미용 행위, 미용 용어, 미용인에 대한 예술적 갈망이 드러난다. 또한 <허물>의 최명규가 미용실을 전전하는 이유가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인 것에 반해 <지상의 노래>에서 후가 미용실을 전전하는 이유는 오로지 누이가 일하는 미용실을 찾기 위한 여정일 뿐, 미용 기술을 배우거나 할 목적은 전혀 없다.

 

소설은 삼각 ,사각적인, 중첩의 액자 구조로 되어 있는데 내부 액자와 외부 액자들 사이들이 딱히 구별해야 할 이유도 별로 없고, 그렇다고 또한 같은 인물이 액자 사이를 오가는 유기적 관계도 잘 드러나지 않고, 무엇보다도 나로서는 왜 이런 구조를 택했는지 이해가 안된다.  맨 안쪽 가운데 있는 소설이 실제 김주욱이 이승우에게 표절당했다는 작품 <허물>인듯 한데. 이것은 표절의 문제를 떠나 단독 작품으로 읽는 재미가 있다. 미장원 내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생생함이 작품에 생기를 주고, 뱀 사육이라는 독특한 소재와 치밀한 현장 취재가 강렬한 행동 사건들과 맞물리며 독자를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그러나 이 맨 안쪽 작품만으로 소설을 냈다면?  물론 <표절>만큼 이목을 끌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름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때문에 나는 이 작품 <표절> 및 표절 스캔들을 둘러싼 김주욱 작가의 진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진실로 본인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 맨 안쪽 소설에서는 G나 Q, R과 같이 현실 인물로 설정한 알파벳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순수한 문학의 형태는 차명규와 김원장 최건호라는 완전 허구의 이름을 이 안쪽 소설일 뿐이다. 그 바깥쪽은 모두 김주욱 자신 Q와 이승우 G가 현실에서 그들이 가진 객관적 팩트들을 그대로 가지고 반복적으로 재등장한다.

 

두번째 안쪽 액자에서  김주욱 자신은 Q이고 자기 작품을 표절한 교수는 G이다. 이 두번째 액자에서 G는 실제 언론에 알려진 교수의 약력을 그대로 가져왔다. 지방대 교수, 한국보다 외국에서 더 알아주는 작가, 노벨상 후보감, 관념적인 글, 아버지와의 관계를 소설적 모티브로 삼는다는 점 등이 그렇다. 그런데 그렇게 실제 인물의 객관적인 평가와 팩트를 소설의 인물에 그대로 차용하면서 동시에 작가 자신이 만들어 낸 허구의 부정적 이미지를 덮어 씌었다. 표절에 대한 의심이 진의라고 해도 그 방법이 노골적이고 치졸하다. 상습적인 표절, 여대생을 향한 음흉한 시선, 긴 생머리에 대한 은밀하고 변태적 욕망이 그런 것들이다. 반면 본인과 대응되는 Q라는 인물은 본인 삶에 대한 애착과 자전적인 저술 태도가 배어있다. 일본 잡지에서 디스플레이 디자인을 그대로 베꼐내는 풍토 속에서 독특한 소재를 이용한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승부를 걸고, 자신이 만든 시안이 다른 브랜드에서 그대로 도용당한다. 또 공모전에 출품할 의상 스케치를 여자 디자이너에게 보여줬는데 제작이 불가능하여 포기했던 디자인을 그 여자 디자이너가 그대로 갖다가 수정하여 공모전 대상을 수상하고 유명 브랜드로 이직하는 것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렇게 본인의 분신인 Q를 옹호하려면 왜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전환했으며, 왜 K라는 교수를 통해 소설을 쓰게 했는지. 여기서 한 가지 의문. 왜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베끼는걸까? 이 소설에서처럼 표절이 Q에게 유독 많이 일어나는 것은 그의 아이디어가 워낙 독창적이고 우수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아이디어를 베끼는 건가? 혹 모서리가 둥근 네모는 모두 아이폰의 아류작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

 

이제 세번째 액자로 나와 보자.  이 프레임은 아마도 이것이 넌픽션이라는 것을 강하게 강조하기 위하여 자신과 Q, 이승우와 G를 직접 연결시키기 위한 장치로 쓰인 듯한데, 여기서는 작가 G가 표절했다는 Q의 주장의 세부 내용을 분노와 좌절감과 섞어 전달한다. 여기서도 객관적인 사실에 주관적인 감정을 섞어 진실을 왜곡한다. 여기서도, Q와 G 사이에 실제로 오간 이메일과 표절 시비에 대한 G의 대응 내용, 뉴아시아 기사 내용이 픽션을 거의 가져다 쓴 듯했고, 나머지 부분 G 작가의 작가로서의 비양심적인 심리 묘사로 강한 Q의 감정 이입을 유도한다. 문학으로 갖추어야 할 은밀함이나 메타포 없이, 직접적으로 감정적으로 표절 스캔들을 무마하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는 비루한 인간으로 묘사한다.  

 

여기까지가 마지막 액자에서 K라는 교수가 이 표절 사건을 소설화 한 소설이다. 맨 바깥쪽 액자는 그 전 액자 세 번째 액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K라는 교수가 Q를 대신해서 그 안쪽 소설들을 쓰고 바깥쪽으로 나와 원래의 1인칭으로 전환된다. K교수는 여류 소설가이고 후배 Q를 대신해서 표절 시비를 소설로 쓰는 역할을 한다.  이 마지막 액자가 실제를 그대로 반영하는 걸 조금 더 강조하기 위해 K라는 인물을 1인칭으로 등장시켜 G에 대한 1인칭적 느낌과 주관적인 서술을 보태고 Q를 초월자적 선의의 인물로 묘사하는 데 이용된다. Q가 나에게 다가와 키스한다는 이 뜬금없는 마무리. 이건 또 뭥미. 이런 여러겹의 프레임적 구성은 참신한 시도라기 보다는 G를 향한 일차원적 분노를 겹겹이 포장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사실 이렇게 길게 리뷰를 쓸만한 컨텐츠를 갖지는 않았다.  단지 이승우의 지상의 노래를 읽고 난 후 표절 시비가 다른 신문이나 잡지에는 전혀 실리지 않고 유독 한 잡지사에 기고된 후 그 정황을 알고 싶었는데.  기사에서 주장한 것 이상의 컨텐츠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이 책 내의 작가의 원 소설 <허물>과 <지상의 노래> 둘 다 읽어본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표절 이라는 자극적 소재와 마치 중견 소설가의 비리를 고발하려는 듯한 문장으로 독자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호소하는 이 책은 뜨기 위해 작정하고 둔 치졸한 무리수로 읽히는 건 왜일까. 책을 읽는 행위는 자기 시간을 투자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자신이 앙심을 품은 기성 작가에 대한 표절의 고발이라는 자극적 소재를 이용하여 시선을 끌고, 창작이라는 문학이라는 고귀한 이름으로 소중한 독자의 시간에 왜곡된 자신의 주장과 넋두리를 심는 건 표절만큼 위험한 발상이다.
 

삼성이 아이폰을 베껴 천문학적 배상금을 물도록 판결났음에도 불구하고, 모서리가 둥근 네모 라는 디자인적 요소에 대한 애플의 주장은 조롱거리이다.  아이폰이 미국 법정에서 삼성을 상대로 이긴 건 삼성이 실제로 구석 구석 많은 디자인 요소와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벤치마크하고 표절했기 때문이지 모서리가 둥근 네모 라는 일반적인 형태 때문은 아니었다.




g******1 2014.04.05. 신고 공감 6 댓글 14
리뷰 총점 종이책
모서리가 둥근 디자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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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에 대한 표절 논란이 일었을 때 어느 평론가가 그랬다. 둘 다 읽어봤는데, 조경란의 <혀>가 훨씬 완성도 있더라고. 그 발언에 아연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작품의 완성도가 높기 때문에, 더 잘 썼기 때문에 표절 운운할 가치가 없다고 단정 짓는 그의 태도가 과연 어디에서 나왔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어떤 의도로 그런 발언을 했든 작품의 완성도를 먼저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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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에 대한 표절 논란이 일었을 때 어느 평론가가 그랬다. 둘 다 읽어봤는데, 조경란의 <혀>가 훨씬 완성도 있더라고. 그 발언에 아연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작품의 완성도가 높기 때문에, 더 잘 썼기 때문에 표절 운운할 가치가 없다고 단정 짓는 그의 태도가 과연 어디에서 나왔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어떤 의도로 그런 발언을 했든 작품의 완성도를 먼저 따지는 것은 표절이라는 본질을 왜곡하고, 표절 당한 사람을 폄하함으로써 결국에는 권력에 힘을 실어주는 행위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독자로서 내가 <지상의 노래>가 표절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은 그가 <허물>을 심사했고, 심사평까지 썼다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폰의 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대변되는 일련의 문제 때문이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아이폰의 곡선은 설사 그것이 애플의 크리에이티브티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 할지라도, (실제로 스티브잡스는 애플 제품의 기능성보다 디자인에 집착할 만큼 디자인적인 요소를 중요시했고, 맥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아이폰의 디자인에도 둥근 조약돌로 대변되는 부드러운 곡선을 차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삼성이 그 사실로 언플을 하든, 그로 인하여 천하의 애플이 조롱의 대상이 되든 개인적으로는 애플 입장에서 충분히 논거로 제시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실은 누구나 가장 실용적인 스마트폰을 디자인하려면 어쩔 수 없이 수렴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방향이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지상의 노래>를 읽고 표절 시비가 붙은 6장 카다콤에 대해서 석연치 않았던 것은 그것이 '스마트폰이 디자인적으로 수렴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방향'과는 거리가 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느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는 <지상의 노래>의 후가 남자 미용사가 되는 과정이 부드러운 곡선의 그것처럼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었다. 후는 누이가 미장원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지역의 미장원을 두루 돌며 누이를 찾아나서는데, 뜬금없이 미용사가 된다. 그전에 미용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미용에 뛰어난 손재주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연관성이라고는 그의 누이가 미장원에서 일했다는 것밖에 없는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창작자 스스로도 이런 설정이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작품 속에서 미장원 원장은 그러지 말고 미장원에 취직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후에게 권유를 하고, 마침 그 미장원에 남자 미용사가 있어 후 스스로 남자도 미용사가 될 수 있다는 납득을 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후가 미용사가 되는 것은 개연성이 부족하다. 누이를 찾아야 하는 목적을 가진 주인공이, 그것도 지역에 수십 개가 넘는 미장원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지역에서 지역을 넘어 누이를 찾아야 하는 주인공이, 업계 특성상 한두 달 머물면서 일할 수 있는 곳도 아닌 미용업에 종사하기로 결심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수십 군데에 한두 달씩만 머문다고 해도 한 지역을 도는 데 몇 년은 걸릴 성싶고 굳이 미용사가 되지 않더라도 곳곳의 미장원을 매일 빠짐없이 훑는 게 더 빠른 방법이다. 어쩌면 후는 실은 누이를 찾고 싶지 않았던 걸까.) 더구나 이전까지 미용 기술이라고는 전혀 없던 남자에게 불쑥 미용사를 해보라고 권하는 원장이나, 시대적 배경상 남자 미용사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 남자 미용사를 등장시켜가면서까지 후에게 미용사의 옷을 입히려 하는 것은 내 기준에서는 상당히 억지스럽다. 이것은 마치, 누이를 찾고자 하는 주인공의 여정에 가장 적확한 설정을 작가가 창조해낸 것이 아니라 미장원이라는 배경을 빌려 쓰기 위해 후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힌 듯한 인상마저 준다.

 

또 하나는 미장원에 근무하면서 사모님에게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후에 대한 설정인데, 이 부분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후의 캐릭터와 일관성이 별로 없다. 초반에 후는 누이를 (겁탈한 것도 아니고 그저) 마음에 품은 데 대한 죄의식으로 기도원에서 매일 기도하며, 그리스 신화까지 끌어와 여러 지면을 할애해 자신의 내면을 탐색하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카다콤에서는 어떠한가.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빼내기 위해 사모님에게 성적 서비스를 제공할 만큼, 그리고 그러한 행위에 어떤 자의식도 가지지 않을 만큼, 심지어 그러한 행위에서 자신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성적 쾌감을 맛볼 만큼 욕망에 충실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이 캐릭터는 오히려 돈 되는 미용 기술을 배우기 위해 스스럼 없이 원장의 위크 포인트를 겨냥할 줄 아는 <허물>의 명규 캐릭터에 더 가깝다.)

 

내면의 죄의식과 욕망의 근원을 천착하는, 숭고하기 이를 데 없는 후라는 캐릭터가 어째서 카다콤에 와서는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아무렇지 않게 행할 수 있는 상이한 캐릭터로 변질되는 것일까. 이 과정은 자연스럽지 않다. 미용사 설정은 오히려 작가가 6장에 이르기까지 다소 진부하고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공들여 쌓아온 후의 캐릭터를 흔들고 무너뜨리는 데 일조한다.

 

6장 카다콤에서 작가가 캐릭터의 여정을 극적으로 형상화하기 위해 미장원이라는 배경을 채용한 것이 아니라, 미장원이라는 배경을 쓰기 위해 캐릭터가 무너지는 것을 방치한 것이 아닌가 어리둥절해한 것은 이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부드러운 곡선으로 수렴하기 위해서라면 이러한 설정은 효과적이지도, 자연스럽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는 그저 내가 <지상의 노래>를 읽고 받은 인상일 뿐, 법적 시비를 가리자면 김주욱 작가가 불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봐도 원곡의 영향을 받았다고 느껴지는 상습적인 표절 작곡가라도 표절이 인정되는 마디 이상을 표절하지는 않는다. 하물며 문단에서 인정 받는 중견작가가 그렇게 뻔히 드러나는 수준 낮은 도용을 할 리는 없지 않을까.  

 

그리고, 이 작품만 놓고 봤을 때는 <표절>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감당하기에 작가의 역량이 아직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서툴고 무딘 칼부림이 자신의 주장을 대변하는 데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작가가 깨닫게 되었으면 한다.   

 

누군가에게는 우아하고 완성도 있는 도용 쪽이 거칠고 투박한 문제제기보다 성향에 맞을지도 모르겠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용이라고 보는데, 왜 그렇지 않은지 납득시켜달라는 요구에 어떤 소통도 거부한 채, 스스로를 피해자로 규정짓고, (명성과 기득권이 있기에 가능했을) 해명성 소설을 문예지에 발표하는 사람 앞에서 '우아하고 품위 있게' 그저 침묵했어야 했을까. 무디고 투박한 칼이라도 휘둘러 천박한 칼춤이라도 추고 싶었을 작가의 심정에 마음이 기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여 나는 우아한 도용과 천박한 문제제기,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어쩔 수 없이 후자 쪽에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다. 거친 문장으로 더듬거릴지언정, 그리하여 이 소설의 어느 부분에서 작가가 자기 자신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스스로 똥물을 뒤집어 쓸지언정, 누군가 한 번쯤은 문제제기 해야 할 소재였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c***4 2014.04.08.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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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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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신선하기도 하고, 조금은 애매모호하기도 한 소설이라고 정의 내리고 싶다. 한마디로 이 소설을 표현한다면 말이지. 요즘 세상은 표절이 넘쳐나는 세상이 아닌가. 밝혀내지 못한 표절들이 넘쳐나는 세상들이다. 내 것을 가로채 자기 자신것마냥 쓰고 있는 사람들. 표절의 세상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은 문장이 아닐까 싶다. 나 또한 지금까지 살면서 다른 '표절'을 안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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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신선하기도 하고, 조금은 애매모호하기도 한 소설이라고 정의 내리고 싶다. 한마디로 이 소설을 표현한다면 말이지. 요즘 세상은 표절이 넘쳐나는 세상이 아닌가. 밝혀내지 못한 표절들이 넘쳐나는 세상들이다. 내 것을 가로채 자기 자신것마냥 쓰고 있는 사람들. 표절의 세상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은 문장이 아닐까 싶다. 나 또한 지금까지 살면서 다른 '표절'을 안했던 적이 없었다. 라고 단정지을수는 없을것 같다. 표절이 난무하는 시대에 깨끗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소설과 거리가 먼 마케팅 일을 하였고, 사업 실패 후 상처를 달래주는 소설을 만났다고 저자 김주욱 씨는 말했다. 그리고 첫 장편소설로 탄생한 이 소설이 <표절>이다. 조금은 집중을 해가며 읽어야 좋을 책이니 다른 분들도 집중해서 읽어가시길 부탁드린다.

 

등단한지 20년이 지난 50대 독신여성인 문창과 강사인 우혜미는 후배 Q가 유명한 작가 G가 자신의 소설을 표절했다며 억울하다고 두 소설을 비교 해달라며 자신을 찾아오게 되면서 책의 이야기는 시작한다. 여기서 Q를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그는 나의 생각에 작가인 김주욱씨 인것 같았다. 그러나 우혜미는 이 표절 사건을 소설로 만들자고 후배인 Q에게 제안한다. 그래서 탄생된 이야기가 소설로 진행된다.

 

소설 속 소설이 탄생하게 되고, Q의 이야기와 Q의 소설을 표절한 G의 이야기가 나오고 급기야 표절된 G의 소설이 등장한다. Q가 학생으로 있을때 일본 화가의 그림을 표절한 교수의 비밀을 알게 되었고, 공모전에 자신의 출품작을 표절해 당산된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게 되면서, Q는 자신만은 표절이나 모방을 하지 않고 끝까지 자존심을 지키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시작된 소설 쓰기. 하지만 세상은 그의 자존심과는 상관없이 표절과 표절을 일삼는 세상이었다.

 

이 소설은 신선했다. 표절이라는 주제로 쓴 소설은 처음이라서 그런것인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표절을 했지만 그것을 가져와 내 것을 덧입히는 건 표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나의 말과 글이라는 것은 알고 보면 누군가 했던 말이지. 누군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가 정리되어 나오는 것이야. 글쓰기도 마찬기지지. 좋은 글쓰기는 독서를 통해 저장되었던 누군가의 말이 정리되어 나올 때 가능한 거야. 넓게 보면 세상의 모든 말과 글이 나의 것이지. 좋은 글이 머릿속에서 넘쳐나야 좋은 글을 쓸 수 있어. 그러려면 많이 읽고 많이 사색해야 해. (p.75)

 

t****6 2014.04.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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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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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이라는 단어를 최근에 자주 접한다. 대학의 학위논문은 물로이거니와 노래의 리듬이나 가사, 때로는 보고서의 표절 시비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한편으로 노래의 예를 들어 표절을 생각해본다. 노래는 음계와 음표의 길이, 음표의 숫자로 기록되고 연주되며, 불려지는 우리에게 행복감과 즐거움을 안겨주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그럼 현재 세계를 통틀어 얼마나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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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이라는 단어를 최근에 자주 접한다.

대학의 학위논문은 물로이거니와 노래의 리듬이나 가사, 때로는 보고서의 표절 시비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한편으로 노래의 예를 들어 표절을 생각해본다.

노래는 음계와 음표의 길이, 음표의 숫자로 기록되고 연주되며, 불려지는 우리에게 행복감과 즐거움을 안겨주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그럼 현재 세계를 통틀어 얼마나 많은 노래가 악보로 정리되어 불려지고 있을까? 그냥 생각해도 하루에도 몇곡의 노래가 들려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엄청난 양의 악보가 인쇄되고 녹음되어 매체로 판매되거나 음원사이트를 통해 판매 또는 배포되고 있다. 그런데 그 속에서 표절 아닌 표절 시비가 붙는것은 당연히 있을 수 있고 실수라고 해도 비슷한 노래가 들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래를 위한 소재를 찾아 다지는 작사 작곡가들이 그래서 더 어려움을 겪는것은 아닐까? 인간의 기억력에도 한계가 있기에 모든것을 제치고 새로운 곡을 만든다는것이 점점 더 어려워 지는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확률적으로 보면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곡과 가사를 창작할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유한한 한계에 부닥치지 않을까 생각된다.

소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SF라든가 논픽션의 경우에는 일상 생활중에서의 요소와는 달리 더 많은 창작이 가능하겠으나 우리 주위의 일반 상황을 각색하여 소설의 소재와 주제로 삼는다면 이것 또한 어느 순간에는 유사한 상황에 놓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렇다면 동일한 상황속에서 주어진 소재를 다룰때 유사한 주제가 창조될 가능성은 높아질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 보면 표절이라거나 내것을 참조하지 않았냐는 분쟁의 소지가 될 확률이 높아질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표절시비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일반인으로서 이런 시비에 휘말린적이 없어 단지 생각만으로 생각해 볼 뿐이지만 내가 박사학위 논문을 쓸때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조금은 이해가 갈 만하다. 과학 분야의 실험 결과에서는 동일한 결과가 나올 확률이 많다.  그래서 대부분은 이러한 부분을 참조하여 실험을 하였고 실험의 결과에 대해서는 앞의 논문과는 다른 결과를 얻었다는 식으로 서로의 결과를 이용하거나 참조하는 경우가 많기에 항상 결과를 제공한 논문을 참고문헌에 표시하게 되어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동일한 결과가 도출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동일한 경과는 동일하게 , 달리 해석된 부분에 대해서는 결과에 대한 인과관계를 명확히 하여 분쟁의 소지를 줄여나간다. 그래서 학술논문에는 표절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실상 이런 표절 의혹에 대해 어떤 형태로 최종 조율되고  결론이 내려지는지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것 같다. 그런데 가끔은 재판을 통해 손해배상이나 저작권의 폐기 같은 형태로 진행되는것으로 알고 있다.

"표절"이라는 소설을 통해 표절한 자와 표절 당한자의 마음이 어떨까라는 점에서 큰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다. Q와 G의 소설을 통해 이러한 당사자들의 마음을 조금은 읽을 수 있었던것 같다. 표절을 당한자는 그 억울함에 표절한자에게 사과와 경위를 듣고 싶어하지만 표절한자는 표절한 소설이 사회적 또한 재산권의 측면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면  사과와 원저자와의 원만한 해결책이 도출될것 같으나 그 소설이 사회적으로 유명세를 탄 상황에서는 섣불리 이러한 행동을 하지 못한다. 작가의 권위와 위신에 큰 치명상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무법인을 통해 대응하게 되고 또 표절 당한자는 더욱 억울하게 생각하기에 또 다른 법적 대응을 할 수 밖에 없는 치킨런 게임을 하게 되는것 같다.

그런데 실상은 소설가 Q는 소설가G에 대해 많은것을 바라지 않는다. 무명이기에 유명의 소설가에게 밉보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느끼는 갑과 을의 관계와 유사하다. 사회적 약자가 강자를 쉽게 이길 수 없고 이긴다하더라도 많은 시간과 돈이 부과되는 싸움에서 초기에 지쳐버리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유명한 소설가와 무명의 소설가 간의 다툼에 있어 무명의 소설가는 작은 말 한마디를 바라지만 현재까지의 명예를 고수하기 위한 유명 소설가의 대응은 다르다는것을 알 수 있다.

이 소설에서는 사건의 당사자들간의 표절에 대해 대응하는 심리적 상태를 엿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소설에 있어서도 많은 지식이 필요하다는것을 알 수 있다. 배경속에 들어있는 미장원에서의 풍경과 머리를 손질하는 사람들의 일상과 기술 그리고 사회성에 대해 저자는 상세하게 묘사해주었고 "허물"이라는 Q의 초기 소설에 등장하는 뱀의 특성과 사육에 대해서도 잘 묘사해주었다.   그리고 뱀과 미장원과 환각그이라는 소재는 인간의 심리를 잘 묘사해준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소설의 구성도 다른 소설에 비해 독특한 맛을 가진다. 보통의 소설이 일상과 과거를 오가는 상황에서 펼쳐지는 사건의 전개가 주를 이룬다면 이 소설은 큰 소설속에 두개의 소설이 더 존재한다. 도합 하나의 소설이 세개의 소설로 구성되어있는것으로 이러한 소설은 나로서는 처음대하는 소설의 형태이었기에 뭔가 새롭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Q의 소설에 대한 G의 심사평이 Q의 소설 저작에 도움이 되어 두번째 소설을 완성할 수 있었는데 두번째 소설의 내용이 표절이 되어 G와 Q사이의 분쟁이 아마도 이 소설의 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표절을 바라다 보는 제삼자의 입장이 참으로 궁금하다. 당사자가 아니기에 이렇게 아니면 저렇게 해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제삼자의 입장의 묘사도 새롭다고 봐야 할 점인것 같다.



l*****7 2014.04.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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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느낀점이랄까... 누구나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부정할 수 있고 대상을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부정하고 거부하는 곳에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는 법. 당신이 하지 않은 것에 당신의 욕망이 있는 법. 작은 나눔을 원했을 때 왜 소통을 거부하고 흘끔거리기만 했을까. 작은 나눔이라도 원했을 때 성의껏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보지 못했을까. 표절의 무심함이나 정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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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느낀점이랄까...

누구나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부정할 수 있고 대상을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부정하고 거부하는 곳에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는 법.

당신이 하지 않은 것에 당신의 욕망이 있는 법.

작은 나눔을 원했을 때

왜 소통을 거부하고 흘끔거리기만 했을까.

작은 나눔이라도 원했을 때 성의껏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보지 못했을까.

표절의 무심함이나 정당함의 논리가 무엇인지 알 도리는 없지만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정당함과 억울함을 토로하기보다는 대상을 마주보고 진정으로 나누어보시라.

대상은 소설이 아니라 진짜 사람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항변할 게 아니라

하지 않은 곳 속에 꼭꼭 숨어라.

그대의 머리카락이 보인다.

 

y********n 2014.03.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