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눈을 떳더니 난 어느새 스물 여섯이 되어있었다. 대학에 입학한 후로 스물 여섯까지의 내 인생은 훌쩍 건너 뛴 것마냥 이뤄 놓은 것이 없고 무의미한 날의 연속이었다. 내가 살아있을 이유가 무엇일까? 문득 난 제레미의 삶을 따라간다. 눈을 뜨면 2년이 지나있고 또 다시 잠들었다 일어나면 또 몇년이 훌쩍 지나가 있다. 내가 생각지도 않았던 삶, 내가 경멸했던 삶,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삶인 것같은데 지금 내가 서 있는 현실은 내 과거를 말해준다. "이건 내가 원하던 삶이 아니야..." 하지만 인생은 지나오면 돌아갈 수 없다. 바로 잡으려 해도 내 과거의 행동이 내 발목을 붙잡아 돌아갈 길이 없다. 너무 늦어버린 후회.. 이건 제레미처럼 기억 상실증, 정신분열증이 없는 사람이라도 너무 공감하는 내용이다. 우리는 어릴때 꿈이 있다. 내가 비록 힘은 없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어떻게 살아가야 겠다는 올바른 이상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와 타협하고 내 자신과 타협하면서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열심히 달려간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문득 "이건 내가 생각했던 삶이 아니야..."라고 해도 이미 시간은 늦어있다.. "아브라함 크리코비치 랍비"의 말처럼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세상이 너무 힘들다고 나쁜 일을 하고, 세상이 너무 힘들다고 자살을 선택한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우리가 세상에 나온 이유, 분명 내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있기떄문에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목숨을 마치 자기 것인양 경시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당신의 제레미의 삶을 어떻게 볼 것인가? 나는 두려웠다. 내가 제레미처럼 내 의지를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한채 모든 걸 잃고 나서야 비로서 깨달음을 얻을까봐.. 아니, 너무 늦게 꺠달아 다시는 일어날 기회가 없을까봐.. 이 책의 끝장면을 당신은 어떻게 보았는가? 나는 가슴이 먹먹해지다가 제레미의 삶이 다시 한번 시작 될 것만 같은 느낌에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마지막구절.."그리고 누군가 그의 손을 잡았다" 라는 글을 보며 난 그의 손을 잡은 사람이 빅토리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책이 처음 시작되었을떄 제레미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의 전부라고 생각 했던 빅토리아에게 시련을 당하고 자살을 했다. 마음이 약해질까봐 부모님과 신도 모두 외면하고 버렸다. 하지만 생사를 넘나들며 그 꿈과 같은 자신의 일생을 보며 그는 세상에 중요한것은 한가지가 아니란 것을, 자신의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달았을 것이다. 제레미가 깨어나고 비록 빅토리아는 아직 다른 남자에게 있어도 제레미는 엄마의 손을 잡으며 회한의 눈물을 흘리고 툭툭 털고 일어나 삶을 열심히 살것이다. 내가 살아있다면 난 뭐든지 할 수 있으므로..내가 살아있다면 내 의지대로 내 살을 꾸려 나갈 수 있으므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이 있나?" 또 "내가 내 삶을 내 의지대로, 내가 정한 방향으로 잘 이끌어가고 있나?" 라는 의문을 가졌다. 부끄럽지만 아니라고 말해야 겠다. 난 내가 해야할 일을 미룬채 내가 편한일에 이끌려 내가 내 삶을 이끄는 것이 아닌 삶이 나를 이끌도록 내버려 두었다. 아직은 돌아갈 수 있다. 난 아직 젊으니까. 하지만 이대로 내가 편한 삶에만 나는 놓아둔다면 먼 훗날 정신차렸을떄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을 후회할지 모른다. 제레미는 자살을 하고 그 후의 인생을 나에게 보여 줌으로써 나를 반성하게 만들었고 제레미가 다시 깨어남을 암시함으로써 나에게 다시 시작해 보자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난 제레미를 항상 곁에 두며 내가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떄 그의 삶을 꺼내보고 반성하며 힘을 내는 그런 계기가 되도록 할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야말로 한번도 쉬지 않고 단숨이 읽어버렸다. 그만큼 흡인력이 있으면서도 나에게 쉴새없이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책을 읽으며 당신은 어떤 꺠달음을 얻고 제레미의 미래를 어떻게 예측할지 모르겠으나, 당신이 처한 현실에 따라 제레미가 당신에게 말해주는 교훈은 다 다를 것이다. 현대 사회에 너무 바쁘게만 살아온 당신이 이 책을 꼭 읽고 삶의 의미와 의문을 가져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
별 기대없이 잡았는데... 완전 흥미진진하게 봤다. 뒷장이 궁금해져서 단숨에 읽어버린 책.
생각보다, 결말은 예상처럼 진행된 듯 하여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정말 읽어볼만했다는.
매년 정신을 차려보면 잠든 사이 1년이 휙 지나가 있는 남자, 그때마다 자신이 생각하던 모습과는 다른 자신의 모습. 그 속에서 느끼는 삶과 사랑의 의미. 이 책을 읽노라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역시, 살아있음에 감사해야하는 건가. 그것도 의식있는 자신의 참 삶에! 그리고 사랑이 살아있음에?! ㅎㅎ
구절 받아적기
|
|
이 책은 '우연히' 읽게 된 책이다. 우연, 우연이라.... 책을 읽는데 '정말 우연'이었다고 말 할 수 있는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 '책장 앞에서 눈을 감고 집어든 책이 이 책이었소' 하는 경우? 아니면 '친구한테 선물받았어요. 그래서 읽게 된 책이죠' 같은 경우? 가만 생각해보면 그 중에도 선택은 따랐기 마련이다. 그냥 집어 들었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읽지 않을수도 있고 선물을 받았더라도 반드시 읽기로 연결되는 것은 아닐 수도 있기에. 다시 말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능동적인 행위이다. 음악처럼 그냥 귀를 통해 들려오는 것도 아니고 영상처럼 눈을 통해 보여지는 것도 아니다. 책은 반드시 '능독적으로 읽어나가는 행위를 통해 진정으로 읽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입수하게 된 경위는 읽고 싶은 책들을 카트에 담다가 도서구입총액이 구입목표치에 약간 미달했고 그러다 눈에 띈 이 책을 카트에 담음으로써 나름의 완벽하게 빵빵한 카트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쓰잘데기 없어보이는 이야기를 뒤에서 하도록 하자.
이 책은 자살을 시도했던 한 남자 제레미의 이야기이다. 자살미수(어쩌면 자살에 성공했을 수도 있다; 이런 애매함을 못견디는 자라면 직접 한 번 읽어보도록)에 그친 한 남자의 이야기. 그리고 이어지는 삶의 고통. 스스로의 의지로 이겨낼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삶. 정말 안타깝고 답답했다. 나의 한 순간 한 순간이 생경하고 낯선 것들로 가득차 있다면 어떨까. 그것은 매 순간이 두려움일 것이다. 낯선 장소, 알지 못할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의 이해못할 관계들. 더군다나 이것들이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것들이라면. 나는 차리라 제레미가 죽음에 성공했어야 한다는 생각마져 들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나갈수록 내게 주어진 삶이 얼마나 감사한지, 그것들을 내 마음대로 내 의지대로 헤쳐나갈 수 있음이 얼마나 다행인지, 제대로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나는 이 땅에 태어났고 그리고 인생이라는 것도 더불어 나에게 주어졌다. 그 인생이라는 것은 나의 것이고 또한 내 삶안의 것들은 대부분이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나의 선택과 상관없이 주어지는 것들도 있다. 이를테면, 부모, 인종, 성별, 성씨 등등) 나는 오늘 점심을 먹고 누구를 만날지 그 사람과 어떤 곳에서 어떤 차를 마실지 선택하고 저녁에는 텔레비젼의 어떤 프로그램을 시청할지를 선택할 수 있고 할 수 있고 몇 시에 잠들지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선택하여 읽을 수도 있다. 이처럼 인생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우연처럼 주어지지만 우리는 수없이 많은 찰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연으로 시작한 것들도 모두 우리의 선택으로 그것이 내 삶안에 여전히 머무르게 할 것인가, 아니면 이것을 그 순간 몰아낼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다. 이렇게 주도적으로 내 삶을 영위할 수 있음에 감사한 일이 있는지, 내가 선택할 수 있음을 감사한 일이 있는지.
최근들어서 심심찮게 자살을 보게 된다. 얼마전에도 연예인 C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반면 살기 위한 몸부림 끝에도 죽음을 맞게 되는 사람들을 본다. 이들 모두에게 탄생과 동시에 생이 주어졌다. 그러나 어떤 생은 견디기 힘든 일 투정이며 죽음으로 그것을 종결짓고 싶어하고 또 다른 생은 제대로 해보지 못한 일들이 떠오르고 사랑할 사람들을 놓을 수가 없어 끝나지 않기만을 바란다. 이들에게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바로 생을 바라보는 자세다. 그리고 생을 살아내는 자세다. 이 책에서는 그 두 인물을 제레미라는 한 남자를 통해 모두 볼 수 있었다. 때로는 다 버리고 싶은 그 찰나의 삶이 때로는 정말 간절하게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보고 싶은 삶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푸시킨의 시 중 '삶의 그대를 속일지라도' 에는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버린 것 그리움이 되리니'라는 싯구가 있다. 미래를 향해 달린다, 앞만 보며 전진한다.... 등등. 이처럼 삶이 오로지 미래를 위한 것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설사 자신이 목표로한 미래에 도달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인간은 좀 더 나은 미래를 여전히 갈망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도 미래를 꿈꾸었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고 내일 죽게 될 자도 미래를 갈망할 것이다. 그러나 미래라는 순간이 반드시 우리에게 약속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면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지금 이 순간, 현재를 어떻게 살아내는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지금을 나답게 사는 일이 아닐까 말이다.
이제 서두에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해보도록 하자. 인생은 우연처럼 우리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생 속의 모든 것이 우연은 아니다. 생각해보라. 아주 많은 부분이 당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 나의 선택은 내 생을 만들어갈 재료들이 된다. 그렇다면 나는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 반면 나의 선택이 나를 불행하게 할 수 있다. 때로는 이 모든 선택들이 합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으며 오판으로 인한 그릇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재를 잘 살아가다보면 신중하게 삶의 재료들을 선택하게 된다면 내가 바라는 미래는 분명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당신, 아직도 잃은 것과 상처받은 것과 절망의 순간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는가? 내 인생은 편안한 소파에 기대앉아 드라마보듯 바라만 보고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내 인생은 반드시 '내 스스로 능동적으로 살아가려고 할 때 진정으로 값진 삶이 되는 것'이다. 당신의 인생 속 카트에 담겨있는 것들이 불완전해보이고 아쉽게 느껴지는가? 아직까지 내 인생의 카트는 빈 공간이 많으며 그 곳에 채울만한 찬란하게 아름다운 것들과 값진 것들은 너무나도 많다. 이렇듯 나의 삶은 내가 DIY 하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당신은 이제 어떤 것으로 채워나가려 하는가? |
|
참으로 오랫만에 영화를 읽은 느낌이다. 소설이라 하기엔 내 삶에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자인 티에리 코엔에게 박수를 치고 싶은 마음이 요동친다. 본래 소설은 잘 읽지않는 나이지만 이 소설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접할 수 있었던 것같아 느낌이 좋다. 소설의 반전은 둘째치고라도 엉성할것만 같은 줄거리에 허를 찔린 느낌은....... 아! 하고 바로 내가 현세를 살고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용솟음 쳤다. 약간은 종교적인 색깔이 비춰진건 사실이지만 전체적인 소설의 내용이 가슴을 따뜻하게 해 준것 같다. 혹여나 영화로 만들어질듯한 기대를 하며... |
|
|
|
티에리 코엔 저/김민정 역| 밝은세상| 2007년 10월| 페이지 283| 400g| 정가:9,800원
스무 번째 생일날, 빅토리아를 지고지순하게 사랑한 제레미는 구애를 거부당하고 자살기도를 한다. 의식을 잃었던 제레미가 눈을 떠보니 사랑하는 빅토리아가 옆에 있다. 어떻게 이런일이?
자살한 날은 2001년 5월 18일, 깨어난 날은 2002년 5월 18일. 어리둥절한 가운데 제레미는 지상의 천국같은 생일을 보내고 까무룩 의식을 잃는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2년 후, 제레미에게는 빅토리아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토마가 있었다. 의식을 잃은 사이에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전혀 즐기지 않았던 일을 열심히 하는 남자가 되어 있었다. 그 다음에 깨어날 때에는 또 한명의 아이와 빅토리아와의 불화, 냉정해진 친구 황폐해진 생활, 망가져가는 자신, 부모의 가슴에 대 못을 박은 나쁜 행동들을 저절렀다는 것이 하나하나 밝혀지며 깨어날 때마다 아픔과 슬픔을 겪게되지만, 깨어있지 않은 제2의 제레미가 기억상실증을 이유로 만행을 저질러 놓은 상황이라 변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상황은 이미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나빠졌고 제2의 제레미는 가족에게 지독하게 위험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런식으로 제레미는 44년간 잠들었다가 깨어나기를 아홉번을 반복하고 수족을 쓸수 없을 만큼 망가졌을 때에야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가족과의 극적인 화해를 할 수가 있게되었다. 제레미의 자살 후의 삶은 괴롭고 극단적이고 처절했다.
나도 자살을 죄악 시 하는 종교를 갖었던 탓에 이 소설의 의도가 보였다. 죽을 용기로 살라는 어른들의 말씀처럼 제레미도 용기내어 살았으면 지금보다 훨씬 맘 고생없이 즐거운 생을 살았겠다 싶은 마음이 들지만 그리 순탄하게 살았다면 소설로 쓰여지지 않았겠지. 책은 전체적으로 빠르고 재밌지만 의미를 두고 읽기는 좀 가볍지 않나 생각된다. 그리고 어떤 영화에서 비슷한 형식의 극을 본 기억이 있어서 조금은 식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혹시나 이 책이 영화로 나온 것은 아닐까 생각해봤지만, 그 영화조차도 자세히 기억은 안난다. 이미 창작의 시절은 끝난 것인가라는 생각을 해봤다. - 행복한 왕자님의 책장에 있던 것을 선물받음 |
|
한 청년이 자살을 하려고 한다. 실연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꽃다운 20살의 청춘을 마감하려 한다.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신을 원망하며, 그의 존재를 부정하며 지금의 절망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것도 그의 생일 날 약, 위스키, 마리화나에 생의 마지막을 걸려고 한다. 사랑하는 그녀가 눈에 아른거리고 부모님이 눈에 밟혀 잠시 망설여지지만 그는 약과 위스키를 삼킨다. 그렇게 지고지순한 사랑에 상처를 받은 채 삶을 포기해 버리고 만다.
그러나 그의 자살은 일러도 너무 이르다. 사랑의 아픔을 이겨보지 못하고 자살을 한다는 것이 이르다는 것이 아니라, 책의 첫장을 열자마자 그의 절망이 드러나며 자살하려 한다는 것이 이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약을 삼키고 위스키를 마셔 버림으로써 잠시 다음 이야기의 전개에 의문을 갖게 한다. 그가 죽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만 짐작할 수 있을 뿐, 어떠한 모양으로 그려질지 의아하면서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결국 그는 다시 깨어난다. 그가 원했든 원치 않았던지간에 상황을 파악해 보려 하지만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자신이 그렇게 원했던 빅토리아가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빅토리아는 제레미에게 나긋나긋하다. 현실이 아닌 꿈 같은 상황에서 정신을 차려보려 하지만 자신이 자실을 하려했던 순간만 기억날 뿐, 빅토리아가가 왜 자신곁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더군다나 제레미가 자살했던 날로부터 꼭 1년이 지난 자신의 생일이라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다.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 1년의 시간, 그 공백기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제레미가 기억하려고 애써도 자살 후의 일들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빅토리아의 말을 들어 봐도 자신이 정말 그랬는지 확신없는 상태에서 솔직하게 기억 상실증에 걸린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빅토리아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지금의 행복을 만끽하려 하지만 무언가가 석연찮다. 기억상실증이라고 하기엔 1년의 일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 의아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마치 다른사람이 자신의 삶을 대신 살고 있는 듯, 하고 있는 일도 친한친구도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 보기로 하고 입원을 한 제레미는 잠이 들기 전, 이상한 기도 소리를 들으며 알 수 없는 노인의 형태를 본 후 정신을 잃고 만다. 그러나 그가 깨어났을 때는 병원에 입원했던 어제가 아니라 2년의 세월이 흐른 자신의 생일날이었다. 자기 곁엔 빅토리아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있었고 한 가정의 단란함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이상했다. 2년의 시간이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2년의 흔적을 좇고 자신의 위치를 찾아 보려 하지만 공중에 붕 뜬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병원에서와 똑같이 갑작스러운 기도 소리와 노인의 출연으로 잠에 빠져들고 그는 계속해서 시간을 건너 뛰며 자신의 생일날 깨어난다.
그는 깨어 날때마다 자신의 위치와 가족들의 상황을 파악해야 했고 언제 잠이 들어 깨어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의 방식이 아니더라도 빅토리아와 두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삶을 대신 살고 있는 또 다른 제레미는 가족과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만 주는 악랄한 모습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의 절정에서 진짜 제레미로 돌아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지만, 가짜 제레미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준 상처를 캐내 가면서 잃어버린 삶 보다는 그들의 행복을 찾아주려 애쓴다. 그것은 가짜 제레미가 가족들에게 접근을 못하게 하는 방법이라 생각하고 조취를 취해보긴 하지만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자신은 불행에 불행을 거듭하여 빅토리아와 두 아들, 자신의 부모님의 삶도 망쳐 버리고 깊은 상처와 회한과 운명에 관한 단념으로 늙어 갈 뿐이었다.
자신에게 삶이 얼마 남지 않았았을 때, 한 랍비와 만나게 된다. 그 랍비는 자신이 감옥에 있을 때 자신의 상황을 모두 고백하고 도움을 청했던 랍비였다. 그때 랍비는 자신의 말을 다 들은 후 짐작을 하면서도 결국 답을 주지 않고 떠나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음을 느낄 때, 그 랍비는 자신이 왜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는지 말해준다. 제레미는 자살을 한 날 실제로 죽은 것이다. 가짜 제레미가 뜯어 버렸던 시편을 중심으로 수수께끼를 풀어 나가 보니, 그의 자살은 신에 대한 도전이었고 신은 그에 대한 응징을 했으며 결국은 용서를 해주신다는 의미였다. 제레미는 자신의 그런 상황에서 용서를 빌어 본 적이 없다. 랍비의 이야기를 들은 후 자신이 충실히 살아갈 수 있었던 소중한 삶, 가족의 소중함, 사랑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잘못을 깨달으며 용서를 빈다. 그리고 그는 목구멍으로 튀어 나오는 알약을 뱉기 위해 빅토리아의 이름을 부른다.
이 기이한 이야기를 읽고 난 후, 내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뜨거움은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제레미처럼 신에 대한 기만이라기 보다, 나의 삶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대충 살아 버리는 교만 때문이었다. 제레미의 자살 이후로 펼쳐지는 그의 삶은 가슴이 저릿저릿 거릴 정도로 불행하고 상처 투성이인 삶이었다. 제레미 자신에게만 그 상처가 닿았다면 견딜 수 있었을지도 모르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 모습은 제레미가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이 누굴까, 왜 저러는 것일까 제레미 뿐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수 많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제레미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에 빠져 버렸다. 선한 모습이 드러 나는게 자신의 모습이라면 그 반대의 요소가 짙게 나와 버렸던게 가짜 제레미였던 것이다.
자신이 아니라고 거부할 수 없는 제레미의 독특한 삶을 보면서 많이 우울했었다. 너무나 어두웠고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모든것을 제레미는 되돌려 보려 했지만 가끔씩 깨어나는 자신의 생일 날 하루로는 부족 했었다.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했는지 뼈저리게 느낀 셈이니 그 과정은 가혹했으나 다행일지도 모른다. 반전이 있었기에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지도 모르지만, 또 다른 제레미가 되기 전에 내 삶 뿐만이 아닌, 타인의 삶의 소중함을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우리는 혼자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그 관계 속에서 때로는 실수도 하고 상처도 주지만, 그런 소중한 사람들로 인해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인 우리가 그것을 깨닫지 못했기에 신의 개입을 나타냈을지는 모르나, 용서를 빌면 된다 생각하고 잘못을 저지르는 어리석음을 나타내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은 아니였을까. 모든것을 쉽게 생각하지 말지어다. 그 댓가는 가혹함으로... |
|
읽고 나서 예상치 못한 기분을 안겨주는 책이 가끔 있다. 그 책이 아무 기대 없이 그냥 집어든 것이었을 경우 그런 감정은 더욱 깊이 남게 되는데 바로 티에리 코엔의 "살았더라면"이란 책이 내게 그랬다.
책표지에는 두 남녀가 손을 잡고 해변을 걷는 모습이 나와 있다. 그리고 시계의 모습을 형상화 한 그림도 있다. 얼마전 화제가 되었던 "시간여행자의 아내"라는 소설을 떠올리게 만드는 표지였다. 소설의 시작은 스무살의 청년이 사랑고백에 실패한 후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이다. 어릴적부터 연모해오던 여자가 사랑을 받아주지 않자 자기 마음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다며 삶을 비관하고 절망적으로 신을 원망하면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놀랍게도 사랑했던 그 여인과 함께 살고 있었고, 과거는 어찌되었든 그렇게 그는 행복하게 살아갈수 있을것만 같았다. 하지만 잠이 들고 깨어날 때마다 몇년의 시간이 흘러있고 자기 주변은 점점 엉망으로 변해가고 그 역시 점점 파렴치한 인간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의 곁을 떠나가기만 한다. 몇년에 한번씩 제 정신이 돌아오는 그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대로 자신과는 상관없이 흘러만 가는 생에 대해 절망할 수 밖에 없고, 생은 점점 파국으로 치달아간다.
놀라운 비밀이 밝혀지는 결말,, 어찌보면 겨우 이거였어?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생명이 경시되고 있는 요즘 자살하는 이가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본다면 이 소설이 많은 교훈을 안겨주는 것은 분명하다. 소설 초반에서 주인공 제레미는 사랑고백에 실패했단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했다면 그런 좌절은 앞으로의 더 나은 삶을 내다본다면 아무것도 아닐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소중한 삶을 버릴정도의 고통은 없을 것이며 인간의 그 어떤 삶도 고통으로만 얼룩진 경우는 없다.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언젠가는 죽음을 맞게될 인생일텐데.. 그때 죽고싶지 않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점점 망가져가는 제레미의 삶,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로 가득차 과거로의 회귀를 열망하는 그를 보며 지금 주어진 평범해 보이지만 의미있는 이 삶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