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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무관하면서 무관하지 않다.
얼핏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이지 않는 거미줄처럼 얽혀
무연하지 않게 우리의 삶 주변에 놓여 있다는 사실,
그러한 관계는 결국 모든 인간의 삶은 닮아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소설은 상처를 감싸 진주를 품어내려는 영혼들의 이야기이다.
『은주 : 진주를 품은 여자』는, 가정으로부터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가출한 ‘은주’가 타인과의 소통과 자성의 시간을 보낸 뒤 상처를 치유해 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 소설이다. 또한, 다문화가족을 조명하는 가운데 문화와 문화가 섞이는 일은 단시간에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기다리고, 다름을 이해하고, 함께하려는 마음을 키울 것을 독려한다. 가족구조가 붕괴하고, 상대에 대한 배려 없는 개인주의가 만연한 사회현상을 보면서 주변 사람과의 관계와 소통의 부재를 조용히 꾸짖는 듯하다.
![]() 우리는 모두 '은주'다. 지나치리만큼 헌신적 역할을 자처하고,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를 못하는 소위 천사표 '은주'는 가족 안에서 난무하는 폭력을 더이상 견디지 못해 가출을 결심한다. 도피처로 삼은 곳은 그녀의 연인 '에민'의 나라 터키, 단 한 번도 따뜻한 가족의 사랑을 받아본 적 없던 은주는 그곳에서 에민의 아버지 '파샤'를 통해 부성애를 느끼고 안정감을 찾아간다. 그러나 가족들에게 행한 폭력이 자해와 정신착란 증세로 나타난 아버지와, 오히려 폭력의 주체가 되어버린 엄마의 소식에 집으로 돌아간다. 술을 마시고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 온몸에 매 맞은 멍이 든 채로 아버지에게서 받은 울분을 자신에게 풀려는 어머니, 아버지를 그대로 닮아 가던 오빠. 징글징글하게 묶여 있는 인연의 끈이고, 보고 싶지도 않고, 화해하고 싶지도 않지만, '가족'이라는 멍에때문에 벗어날 수가 없다. 그 누구도 자신의 뿌리를 부정한 채 완전한 혼자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폭력은 할아버지에게 되물림되었고, 어머니는 할머니의 인생살이에 치여 불만과 폭언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삶의 궤적이었으며, 유전처럼 내려오는 병의 근원에는 전쟁이 있었다. 나라와의 전쟁, 사람과의 전쟁, 자신과의 전쟁, 세상과의 전쟁, 전쟁이 가져다 준 보이지 않는 상흔이었다. 할머니의 고백을 통해, 숨겨왔던 출생의 비밀, 어머니가 짊어진 고통의 무게 등을 확인하게 된다. 알고 보면, 모두가 상처 많고 불쌍한 인생이다.
애정 없는 국제결혼의 상처와 함께 다문화가정의 속살을 해부했다. 국제결혼 자체가 일종의 약소국 여자들 사고파는 인신매매라는 점에서 대다수는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애정도 없이 아버지뻘 되는 남자에게 시집와서 노예생활하는 것이나 진배없는 '소피아',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메싸', 피부색과 얼굴이 달라 또래 친구들에게 소외되는 '현수', 경제적 빈곤, 문화 차이 등의 어려움을 다뤘다. 이는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과 갈등이 주요 원인이다. 외국에서 나고 자란 배우자의 국가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 없이는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 문화적 충돌에 대비하여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도록 서로가 이해하고 배려하는 성숙한 문화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은주를 읽는 내내 생각했다. 어쩌면 상처는 폭력의 또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고. 전혀 상반된 모습같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맥락이라고.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상처 투성이의 영혼이라는 것을.. 우리는 엄마의 탯줄과 연결되는 순간부터 상처를 안고 태어난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가족과 친구, 연인이나 동료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하고 자존심을 다치기도 한다. 다친 부위는 거듭해서 상처가 나고 곪아 터지기를 반복하면서 트라우마로 정착되기도 하고 무력감과 분노감, 좌절감 등을 경험하면서 굳은 살이 배긴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건 나를 만들어 준 것이 가족이고, 가족은 어떠한 경우에도 서로를 책임지고 보듬어야 한다. 은주처럼, 혈연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 필연을 팽개칠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전혀 연계성 없는 타인들조차 서로 거미줄과도 같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들과 소통하는 가운데 삶의 무게도 가벼워지는 것이다. 서로가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거울이 되는 가운데 사랑의 온기가 피어오르고 행복이라는 나무가 세워지는 것이다. 절박한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애환과 타인에 대한 따스한 연민이 행간마다 녹아 있다.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이 땅의 아픈 영혼들에게 더운 국물처럼 따뜻한 위로와 온기가 전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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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생각한다. 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화목한 가정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지.. 어릴 적에는 우리 집 외 다른 집은 모두가 화목한 줄 알았다. 형제자매가 많았던 우리 집은 늘 시끄러웠고, 요란했다. 부모님은 그 모습마저도 화목함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조용한 절간(?)같은 집보다는 요란하고 시끌벅적한,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이 화목한 집이라 말씀하셨지만.. 진짜 화목한 가정은 어떤 것일까? 화목의 사전적 의미 말고, 진짜 화목한 가정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화목한 가정의 이미지만으로 그런 가정을 만들려고 헛꿈을 꾸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가정을 갖기 전 나는 생각했다. 화목한 가정이란... 같이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고 즐겁고 위안이 되는 것이라고.. 가슴 속에 담아 두었던 말들, 고민, 그리고 생각들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는 마음을 가진, 그래서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사람들의 집단.. 하지만 가정을 갖고 아이를 키우면서 화목한 가정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게 되었다. 어른들은 흔히 열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은 없다고 말하지만 확실한 건, 자식 중에서도, 형제자매 중에서도 나와 궁합이 맞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나와 맞지 않은 형제자매는 혹은 가족과 함께 있는 건 솔직히 유쾌하진 않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모두가 함께 움직이며 화목함을 과시하려고 한다. 그 안에서 곪아터지는 건 시간문제면서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 그걸 제대로 바라보는 순간 ‘화목’이란 이름의 허상이 깨질 수도 있으니까.
어릴 적부터 부모의 폭력에 노출되어 온 은주. 그녀는 온순하고 조용한 성품으로 그런 부모 밑에서도 바르게 자랐다. 논술 학원 선생님이면서 다문화센터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봉사를 하며 생활하지만 그녀는 하루하루는 가시밭길이다. 그런 은주가 기대고 의지하는 사람은 친구 성희의 엄마 지숙. 지숙은 과거 동생의 도움 요청을 무시한 사건 때문에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런 아픔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다문화인 들에게 더욱 정성을 쏟는다. 터키에서 온 에민은 은주에게 한글을 배우며 가까워지고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은주는 폭력적인 부모 때문에 에민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은주는 아버지(하동만)의 폭력에 견디지 못해 가출을 감행하게 되고, 그녀를 찾기 위해 사람들은 분주해 지는데...
어릴 적 부모로부터 받은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나의 해결책이라 생각했던 결혼. 하지만 결혼은 결코 도피처가 되지 못한다. 아버지라는 폭력에서 벗어났을지는 몰라도 남편이라는 더 큰 폭력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폭력은 정신병의 일종일까? 술을 마시고 칼부림을 하던 남자는 술이 깨고 나면 자신이 한 행동이 무서워진다. 자신의 가족이 자신을 떠나게 될까봐 전전긍긍하지만 술을 마시고 나면 그런 기억들은 모두 사라지고 다시 폭력을 일삼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개선하려고도 하지 않는 폭력 가정의 아이들은 그래서 뿔뿔이 흩어지고, 자신의 부모와 같은 인생이 싫다고 말하면서도 똑같은 인생을 살게 된다.
미치도록 싫었던 부모의 모습 그대로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정신적인 치료를 받지 못한다면 언제든 나타나게 되는 것이 폭력 아닐까? 가족은 소중한 것이고 모든 뿌리는 가족에게서 온다고 말한다. 하지만 요즈음의 가족은 뭔가 비어버린 느낌이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모른 채, 침묵으로 일관하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화목한 척하는 연기를 한다. 가정 폭력이 예전보다 줄었다고 말하지만 진짜 그런지 모르겠다. 대부분의 폭력은 가정에서 일어나고 그 주체는 언제나 부모였다. 가족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면 폭력의 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굴레..
읽는 동안 나쁘지 않았지만 나는 왜 산만함을 느꼈는지 모르겠다. 어떤 책이든 하나의 주제가 그 소설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책을 읽으며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건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정폭력, 다문화가정, 외국인과의 사랑, 각 가족 구성원의 상처.. 너무 많은 의미들을 담다보니 내용이 산만해진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날라치면 다른 인물들이 나오고, 그에 대한 결론 없이 또 다시 다른 사연들이 나와 ‘뭐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세상에는 참 많은 은주들이 존재하고 그 은주들의 다양한 사연을 담은 것이라 해도 결국은 가족, 가족의 사랑이 주제라면 보다 간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엄마를 부탁해>에서처럼 주인공이 사라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은주는 표지처럼 예쁜 아가씨였을까. 그러나 그녀가 품어온 삶은 차마 견뎌내기 힘들지 않았을까. 가족이 보호막이 되어주어야 하는데, 가족으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가족 내 폭력. 그것은 벗어나기 힘든 굴레일 것이다.
아빠의 폭력과 엄마의 폭언 속에 은주는 최대한 자신을 꽁꽁 싸매고 살아간다. 그러다 가출을 감행한다. 제주도로 떠난 첫번째 가출은 다시 잡혀오며 실패로 끝나고, 터키로 떠난 두번째 가출은 위독한 아버지 소식을 전해듣고 그녀 스스로 가족에게로 돌아온다. 글쎄, 나라면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가족이니까, 가족이기에 이해할 수 있었을까. 가족이기에, 가족이니까 더 원망스럽진 않았을까.
세상엔 참 비참하고 처연한 삶도 많구나. 게다가 남의 나라에 사랑도 없이, 어쩌면 가난 때문에 맘에도 없는 결혼을 선택한 수많은 다문화 가정의 여성들. 누군가는 보란 듯 잘 살아나가고 있지만, 누군가는 그 속에서 방황하고, 또 누군가는 거기서 벗어나려 한다. 그것은 어쩌면 비극이 아닐까. 그런 삶까지 모두 수용해서 살아나갈 포용력이 아마 나에게는 없지 않을까. 어쩔 수 없어서 살아나가야 하는 그들, 그 속에서도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 다른 남자와 도망가버리기도 하는 그들. 농촌 총각과 외국 어린 신부들의 이야기는 TV에도 자주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이다. 처음부터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취업을 목적으로 순진한 농촌 총각을 대상으로 사기결혼을 했다는 이야기들도 있고, 속아서 팔려오듯 시집 와서 남편의 구타와 폭언에 힘겨워 극단의 상황까지 몰려지는 어린 신부들의 이야기들도 있다. 그런 이야기들이 들려올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서로 맘 맞아 사랑한다 믿고 결혼하더라도,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데, 그들은 어쩌다 그런 상황으로 내몰린 걸까. 어쩔 수 없어서,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그렇게 정말 내몰려 온 것은 아닐까.
그러나 은주는 자신에게 닥친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외할머니를 통해 자신의 비밀도 알게 되고, 사랑하는 터키인 남자친구 에민과 그의 아버지를 통해서도 자신을 조금씩 치유해 나간다. 은주와 에민의 인연은, 에민의 할아버지와 은주의 외할머니부터 이어져온 운명은 아닐까? 드러내놓고 있진 않지만, 짐작할 수 있다.
너무 많은 삶을 담아내려 하다보니, 조금 어지러운 경향도 없지 않았다. 하나도 해결된 것 없이 그냥 그렇게 지나가는 삶의 단면들만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주인공인 '은주'에게 어쩌면 희생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모든 것이 스스로의 선택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그런 게 또 가족, 그리고 삶이 아니겠는가. 삶은 어쩌면 그리도 무심히 흘러가는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결국 또 나의 선택으로 귀결되는 문제인 건가. 인생에 피해서 될 일은 없다. 끌어안고 받아들이거나, 맞서 싸워나가거나. 은주는 지금 그 둘을 함께 해나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녀의 삶에 응원을 보낸다. 수많은 은주의 안쓰러운 삶에도.
구절 받아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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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졌다 한다. 그 여자는 "그년이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p9- 덕혜옹주를 통해서 많은 독자들을 확보한 권비영 작가의 신작소설이 나왔다. '은주'... 강렬한 첫 문장부터 인상적이다.
주인공 은주가 사라졌다. 사라진 은주를 그년이라 칭하는 여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은주의 엄마다. 은주가 사라졌다며 다짜고짜 자신(지숙)을 찾아와 딸년이 어디 있는지를 밝히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행패를 부리는 여자... 지숙은 은주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은주가 한없이 불쌍하고 안쓰럽다는 생각에 마음이 어지럽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세상에 온전히 믿을 수 있는 내 편은 가족 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가족... 가장 끈끈하게 맺어진 관계이지만 남보다 더 못한 가족도 세상에 존재한다. 은주의 가족이 바로 그러하다. 전쟁으로 인해 얻은 상처와 기억은 폭력을 대를 이어 멍들게 한다. 아버지의 부추김에 이끌려 사업을 벌였다가 망하게 되자 그 화를 온전히 가족에게 풀어 놓았던 은주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 은주의 오빠는 폭력에 시달리다 못해 마음이 황폐해지고 대물림되어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사라진 은주는 지숙과 함께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인 여성들에게 다문화센터에서 한글을 가르치며 그들이 한국에 잘 적응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 이주 여성들의 모습은 우리사회가 현실에서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사랑보다는 가족들을 위해 기꺼이 나이차가 나는 남자와의 결혼하고 어떻게든 적응하고 살아보려 하지만 생활은 녹녹치 않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자식이 다른 외모로 인해 따돌림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마음이 얼마나 힘들고 아플지... 주위를 돌아보면 결혼한 이주여성들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보듬어주고 이해하여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지... 읽을수록 마음이 답답하고 안타까운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은주는 용기를 내어 사랑하는 터키인 에민과의 사랑을 꿈꾸지만 아픈 아버지, 어머니부터 제대로 돌보고 난 후에 떳떳한 모습으로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싶다. 형제의 나라라는 터키... 은주가 잠시 에민의 집에 머물며 에민의 아버지가 들려주는 한국전쟁과 안타까운 사랑이야기, 그가 은주에게 보여주는 배려는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 은주를 한 없이 아끼고 신경 써주는 지숙 역시 오래전에 부모님의 뜻과는 다른 길을 갔던 여동생을 외면했던 일이 그녀의 마음의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그로인해 이주여성들, 은주에게 그토록 마음을 썼다.
읽을수록 참으로 마음이 아픈 책이다. 사람이란 게 얼마나 이기적이고 간사한지..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는 어리석음... 가정을 이끌 가장으로 인해 은주네 가족은 지옥이 따로 없는 고통스런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 병이 들었으면 스스로 고치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늦게나마 그런 노력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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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 여자는 "그년이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p.9)
주인공 은주는 사라져 보이지 않고 은주의 친구인 성희 엄마(지숙)의 입을 통해 은주의 근황을 듣게 된다. 은주는 왜 갑자기 가출을 하게 된 것일까? 전날밤 부모의 부부싸움을 견디다 못한 가출? 아니면 아버지의 구타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해서 생겨난 탈출? 이상한 것은 은주 엄마(오경애)는 왜 없어진 은주를 성희 엄마에게 와 찾고있는 것인지. 그녀의 말에 의하면 자신보다 은주에게 더 지극정성을 보여주는 이가 성희엄마라고, 그것이 사라진 은주를 성희네 집에서 찾는 이유라 한다.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엄마의 뜻에 따라 논술학원을 하게 된 은주, 그녀가 모든 것을 버려두고 하루 아침에 사라져 버렸다. 어떻해 하면 의붓딸도 아닌 사라진 친딸을 찾으면서 '그년이 사라졌다'는 말을 할수있을까?
가끔은 가족이기에 남들보다 못한 경우를 당하게 되기도 한다. 가족이란 믿음하에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안겨주었던 것인지도. 가족이니까 내가 조금 아픈 소리를 해도 나를 믿어주고 이해해줄 것이란 생각에 오히려 더 심하게 대해올수 있었던 것인지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족이란 외적인 포장을 뒤집어쓰고 나도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복지관다문화센터'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일도 함께 하던 은주, 지숙은 그녀의 빈자리를 채워 은주가 돌아올 자리를 지켜내고자 노력한다. 싫어하면서 닮아간다고 했던가?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던 은주엄마가 어느순간 가해자가 되어 남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나쁘다고 욕할수 있을까? 나쁜다는 생각보다 애달픔이 먼저 일어났다.
주인공 은주를 말하지만 '성희 엄마' 지숙이 화자가 되어 은주의 가출을 말하고, 은주가 돌아와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성희 엄마 지숙이 이 책속의 진정한 주인공 아닐까 싶다. 은주의 가출을 소재로 삼지만 그속에서 은주가 온전히 주인공 역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속에는 외국에서 시집와 다문화 가정을 형성하며 살아가는 여자들과 그들의 가족들도 등장한다. 우리나라에도 그네들이 들어온지 오래되었음에도 아직 그들이 낯설게만 느껴지는 현실에서 책을 통해서마나 그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얼굴색이 다르다고 말씨가 다르다고 그들을 마음에서 무작정 내치고 있던 것은 아닐까? 우울해지지 않으려 책을 읽는데 오늘 따라 책도 같이 우울하게 만드네~
책속의 은주 뿐 아니라 주변에도 수많은 '은주'들이 살아간다. 우울해질때 책을 읽게 되는 이유가 바로 함께 공감할 무엇인가의 대상을 찾고자 함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은주' 안에 나를 녹여보내고 희망을 얻어 다시금 살아야 할 이유를 얻고 싶은 것, 그것이 여자들이 소설 속에 빠져드는 이유일게다. 전작인 '덕혜옹주'는 원망할 누군가의 대상이 있었다면 이 책속의 주인공 '은주'에겐 그 누군가의 대상이 가족이기에 원망할수 없고 그래서 더욱 슬프게 여겨진다. 폭력의 희생양이었다 가해자가 되버린 은주엄마를 원망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까? 아니면 가족들을 폭력을 행사하던 가해자였다 이제 피해자가 되어버린 아버지를 원망해야 할까? 누구나 가슴속에 말할수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은주'였다.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오히려 엄청난 힘과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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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 속으로 모래나 이물질이 들어오면 두 가지 반응이 생긴다고 한다. 모래나 이물질을 무시하거나 이물질을 탄산칼슘 성분으로 감싼다. 이물질을 무시하는 경우에는 결국 조개도 죽게 되지만 이물질을 계속해서 감싸면 그 이물질이 마침내 진주로 변한다고 한다. 이 소설은 바로 그런 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덕혜옹주의 저자 권비영이 새롭게 선보인 <진주를 품은 여자, 은주>는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다 가출한 은주를 찾고자 은주의 어머니가 은주 친구 성희의 어머니인 지숙을 찾아오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작품 초반부에는 은주의 이야기보다는 은주 주변을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가 그려지면서 소설은 두 가지 주제를 병행해서 보여준다. 한 가지는 은주가 가정에서 겪는 폭력과 상처들을, 또 다른 한 가지는 다문화가족이 겪는 고통과 슬픔을 그려낸다. 먼저 은주의 이야기부터 살펴보면 술만 먹으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아버지와 남편의 끝없는 폭력을 견뎌내면서 남편처럼 은주를 달달 볶아대는 어머니, 아버지와의 폭력에 맞서다 결국은 가출해버린 오빠 용주.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 이 폭력의 근원에는 각자가 가진 아픔과 이유가 있다. 특히 마지막 순간에 밝혀지는 어머니의 비밀은 나름 이유 있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상처를 감싸는 방법이 가족을 향한 폭력이나 학대라면 어떠한 이유라도 그 모든 것이 그저 핑계거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가정폭력으로 얼룩진 삶을 살던 은주는 융이 말한 페르소나, 즉 가면을 쓰고 착한 딸 노릇을 하지만 마침내 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가출을 한 것이다. 이런 은주의 상처와 고통은 어떻게 치유될 수 있을까?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삶이란, 존재의 확인을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 행동하고 거미줄 치듯 관계를 만들어 가는 일이다. (p.134) 타인이라 생각했던 이들조차 깊고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면 그들의 인생이 내 인생과 다르지 않다. 타인의 인생이 곧 내 인생일 수 있는 것이다(p.371) 그렇다. 은주의 상처는 동생 지영과의 일로 또 다른 상처를 가진 지숙과 연인인 에밀과의 관계를 통해 서서히 회복된다. 은주처럼 우리의 상처는 우리 옆에 있는 누군가와의 관계를 통해 치유된다.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이 그렇게 다르지 않기에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상처를 무시하지 않고 직시하는 은주의 모습은 상처를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어내는 과정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이런 치유의 과정이 소설 전반에 펼쳐져 있다 보니 묵직한 소설의 주제가 작품의 분위기를 어둡고 침울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반대로 너무나 따뜻함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또 다른 줄거리인 다문화가정의 이야기도 역시 큰 줄거리에서는 은주의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서로 달라 보이지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면 그들과 우리의 삶은 서로 다르지 않다. 작가는 이를 서로 다른 은주와 친구들의 관계에서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서로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바라보는 시각도 행동도 많이 달랐다..... 그렇지만 넷은 참 잘 어울렸다.(p.53) 문화가 다르고, 음식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지만 그런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아픔보다는 기쁨이, 편견보다는 사랑이 넘치는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우리 주변에는 알게 모르게 아픔을 지니고 사는 이들이 많다. 또한 시대가 변해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이기도 하다. 이렇게 아픔과 다양함을 넘치는 지금 우리에게는 다른 이들을 밀어내는 힘이 아니라 그들을 서서히 끌어당기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곱씹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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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의 권비영님의 신간이라길래 무조건 읽고 싶었다. 하지만, 제목에 여자 이름이 적혀 있어서, 그냥 그녀의 이러저러한 불륜 내지는 사랑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내가 잘못 짚어도 한참을 잘못 짚었다. 은주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으니까.
상처를 감싸 '진주를 품어 내려는 영혼들의 이야기'-뒷 표지의 말 진주는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운 보석을 얻기 위한 아픔은 조개의 부드러운 살이 찢기는 고통 만큼이나 쓰라리고 매서운 것이었다. 그 모든 것을 감내해야 진주가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진주란 보석은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은주라는 여인의 이름이 적혀있으나 전체적인 이야기는 다문화 여성들, 다문화 가족들에 대한 한국의 현주소와 같은 문제와 다문화와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없더라도 폭력의 대물림으로 인해 얼룩져버린 슬픔 등이 녹아있는 피하고 도망치려 하지만 결국 그 안으로 다시 되돌아오게 되고 그 아픔마저 다 끌어안고 살다 비로소 화해하고 이해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신랑이 출근하고 아이가 일어나기 전 그 잠깐의 시각동안 어제 오늘 책을 한권씩 읽었다. 물론 다 읽진 못하고 그때부터 읽기 시작해, 아이 등원 후의 시간까지 이어 마저 읽은 책들. 어제는 여름 빛을 오늘은 은주를 읽었다. 그리고 두권의 책 모두 다 재미있었다. 마음같아선 아이가 오기 전까지 한두권의 책이라도 더 읽고 싶었는데 백수가 바빠 죽는다더니 뭐 이리 딴 일에 신경쓸게 많은지 하루 한권의 책도 요즘은 간신히 읽어내고 있는 중이다. 어쩜 부모가 이럴수 있을까 싶은, 그런 이야기부터 시작을 한다. 다 큰 딸이 집을 나갔다. 어미란 사람은 다짜고짜 딸이 의지하고 지낸 친구 엄마를 찾아와서 딸을 내놓으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예의범절이라곤 도무지 엿볼수 없는 안하무인격의 엄마, 얼마나 몰상식하고 못되게 굴었는지, 얼마나 딸 아이가 상처를 받았을지 금새 상상이 간다. 아빠는 딸을 죽일듯이 때리고, 엄마는 딸이 버는 돈을 무조건 다 뺏어가고, 마치 딸이 자신의 금전 출납기인양 이제야 네가 날 배불려주는구나 이런 식으로 아이를 궁지로 내몰았다. 어디서 그런 착실한 딸이 나왔을까 싶은데, 요즘 아이 같지 않게 참하고 선량했던 은주는 부모의 그런 굴레에서 벗어나기도 힘들었거니와 너무나 당연한듯이 돈을 뺏어가고 구타하는 부모들의 모습은 정말 부모가 맞을까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그리고 친구 엄마인 성희의 엄마, 그녀는 은주에게 남다른 애정을 갖고 도와주고 보살펴준다. 하지만 그녀도 지금은 은주가 어디로 갔는지 알수가 없다. 다만 그 부모에게서 벗어나기를, 어디론가 제대로 숨기를 바랄 뿐이다. 성희네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 혼자 아이를 키워왔지만 여러 좌절과 시련이 있었음에도 의지하고 대화를 나눌수있는 가족, 딸아이가 있음에 안도하며, 스스로를 추스리기 위해 노력해온 성희의 엄마가 있었다. 여러 일을 해오다가, 지금은 다문화 가정의 한국어 강사로 나가며 봉사하는 삶에 열성을 보이고 있고, 그녀가 마음을 쓴 은주도 다문화 여성을 위한 한국어 강사로 활동하는데 동참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성희네에 우연히 하숙을 왔던 터키인 남자, 에민이 다문화 가정 여성들을 위한 영어 교육 등에 나서게 되었고 은주와 여러모로 마음이 맞고, 은주의 참한 모습에 반하여 둘은 서로 좋아하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집나간 아들에, 하나 남은 딸을 자신의 돈줄로 생각하는 은주 엄마에게 에민이 성에 찰리가 없었다. 은주도 한때 괜찮은 집안의 남자와 사귀어보기도 했지만 남자쪽에서 은주네 가정이 한참 처진다며 결혼을 파토낸적도 있었는데 말이다. 에민과 자유로이 만날수도 없고, 엄마 아빠의 옥죄여 오는 족쇄의 굴레는 너무나 심하고 은주는 그렇게 아주 멀리 도피를 한 줄 알았는데.. 그 머나먼 제주까지 어떻게 엄마가 찾아왔을까? 혹시 경찰에 수배를 한 것일까? 은주는 가족에게 정말 개끌리듯 다시 끌려가고 말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은주네 이야기만으로도 머리가 아파 올 지경인데 사실 하나하나의 가정사들을 들여다보면 어쩜 이다지도..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집안의 가난때문에 한국에 시집온 다문화 여성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부정적인 시각(성희, 난희)에서부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아니, 그러기에 더더욱 불쌍한 그들을 끌어안고 보듬어야한다는 성희엄마, 은주 등의 사람들의 시각까지. 여러 생각이 동시에 부딪히기도 하고, 실제로 다문화 여성들의 행복하기만 한 삶보다 그렇지 않은 삶이 보이기도 한다. 대부분 남편과 20살 이상 차이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에도 남편과 알콩달콩 잘 사는 소피아 같은 신부가 있는가 하면, 소피아의 주선으로 시집을 왔지만 다른 동남아 남자와 눈이 맞아 가출하고 도망을 간 타냐 같은 여성도 있다. 그 어느 쪽도 현재 우리네 다문화 가정의 현실의 모습이었다. 또, 일본에서부터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 한국에 왔으나 그와 좋은 인연이 되지 못해 마냥 해바라기 신세로 기다리는 준코가 있고 자신을 옥죄고 집밖에도 못 나가는 남편 탓에 갑갑하지만 태어난 아기를 통해 고국을 보고, 유일한 희망이자 삶의끈으로 살아왔던 메싸는, 자신을 닮아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아들 현수가 못내 걱정스럽고 미안하기만 하다. 아들은 결국 집을 나가고 메싸는 정신없이 아이를 찾아다닌다.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데, 동남아에서 시집온 다문화 가정에 우리와 형제국가라는 터키인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나라의 폭력에 얼룩진 어려운 가정 등의 이야기까지. 그 모든 이야기가 한권의 소설 속에 이렇게 옹골차게 담겨있다는 것이 신기하였다. 내가 생각했던, 착각했던 은주라는 여자의 그저 사랑, 불륜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가 사랑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식으로 쓰여진 소설들은 많이 아쉽기만 했으니까. 은주와, 성희 엄마와 그리고 에민의 이야기, 그보다 넓게는 너도 나도 다 피해자이고 희생자일 수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나의 업보가 내 자식에게 이어질 수도 있고, 세상의 말종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선행을 하고 있는 나보다 나을 수 있다는 그런 이야기. 손가락질을 받을 자가 과연 누구일지. 책을 다 읽고 나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그런 책이었다. 은주. 한번 꼭 읽어봄직한 소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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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의 작가 권비영의 너무나도 오랜만의 신작이라 기대가 컸다. 과연 은주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하는 기대치가 최고조에 달해있었기에 책을 덮는 순간 약간의 실망감이 오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네~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은주는 우리사회속에서 흔히 만날수 있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참 아픈 상처를 꽁꽁 싸매고 있는 여자였다. 온순하고 조용한 성품으로 다문화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은주를 보면 절대로 그녀의 상처를 짐작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그녀는 다른누구도 아닌 부모의 폭력에 대항하지 못한채 그저 끌어안고 있는 상처가 있다. 그녀의 고통을 아는 친구 엄마인 지숙은 과거 자신에게 도움을 청했던 동생을 외면했던 상처가 있기에 더 은주를 포용하고 이해하고 보듬어준다. 다문화센터에서 만나게 된 에민이라는 터키유학생. 그와 사랑을 하면서도 그 사랑을 키워볼 자신이 없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에 에민을 어느 선 이상으로는 들여놓지 않았고, 그런 은주의 모습에 갈등하게 되는 에민. 곪은 상처는 언제고 터질수밖에 없듯이 은주는 가출을 하게 되고, 자신의 제주도로의 가출이 실패하자 이번에는 에민의 고향이 터키로까지 가출을 감행한다. 어찌보면 그 온순했던 은주가 살고싶어서, 살아야겠다는, 숨통을 열어보이고 싶다는 의욕이었을것이다. 그곳에서 그녀는 에민의 아버지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제각각의 고통과 상처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해소하고 풀어가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려준다. 은주는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놓고 치유하기 시작했고, 또 사람으로 받은 상처는 다른 무엇도 아닌 사람으로 치유됨을 또 보여준다. 터키에서 이제껏 맛보지 못했던 자유를 누려가던 은주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알게되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사실. 은주는 아마도 새롭게 태어날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자신의 가족들을 외면하지는 않는다. 그들에게도 자신과는 다른 그들만의 상처가 잠재되어있음을 알게 되고, 그 상처를 보듬어안음으로써 자신의 응어리졌던 마음을 풀어낼수 있을 것이고, 조금씩 관계가 개선되는 가족의 모습을 갖춰갈것이란 믿음을 선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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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한 켠이 아려온다. 그리 넉넉치 않은 가정에서 태어나 가족들로부터 온갖 학대를 받아온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은주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엇나가지 않고 착하게 살아가려고 애쓴다. 하지만 아버지가 칼을 들고 위협하던 그 날 두 번째 가출을 감행한다.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은주는 찜질방이나 호텔 등을 전전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노력해보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은주의 어머니는 악착같이 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지숙에게까지 찾아가 으름장을 놓으면 행패를 부리는데 원래는 그도 착한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어릴 적 겪어던 성폭력의 아픔과 고된 삶이 그녀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가난하고 고된 삶 속에서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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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무수한 상처를 감싸 아름다운 진주를 품는 영혼들!
이 소설은 <덕혜옹주>로 잘 알려진 권비영 작가가 5년 만에 내 놓은 소설이다. <덕혜옹주>가 역사문제를 담았다면, 이 소설은 사회문제를 담고 있다. 다문화 가정 이야기, 가정폭력에 대한 이야기, 유아성폭행, 6.25 참전 용사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까지 담았다. 어둡고 구석진 곳, 인권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의 눈물이 마르고 닳아 진주를 만들어 내는 이야기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온 아시아 청춘들의 아픔과 애환과 희망이 담겨 있다.
주인공인 은주는 조용하고 소심하고 소극적인 25세의 여자다. 그런 은주에게는 비밀스런 아픔이 있다. 그것은 아버지의 폭력, 어머니의 폭언이 심하다는 것이다. 어느 날 은주는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의 폭언에 못 이겨 가출을 하게 된다. 그녀의 오빠도 이미 가출 한 상태다.
지숙은 복지관의 다문화센터에서 한글을 가르치며 다문화 가정의 엄마역할을 하고 있다. 은주는 딸의 친구이기도 하고 함께 한글을 가르치는 동료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불우한 환경을 잘 아는 터라 늘 마음에 걸렸던 아이다.
민들레 홀씨처럼 흩어져 날아온 꽃잎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 기특하고 가여웠다. 저 자신의 우울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 꽃잎을 다독이는 은주의 마음이 더없이 아름다웠다. (책에서)
가출한 은주는 제주도로 도피했다가 아버지에게 들키게 된다. 지독한 인연의 끈일까, 아니면 미련일까. 분명 부성애는 아닌 것 같은데……. 자신의 핏줄에게 어찌 그리도 매정하고 잔인할 수가 있을까. 은주는 어머니의 폭언의 사슬에서 벗어나고자, 아버지의 무지막지한 폭력을 벗어나고자 이스탄불로 날아간다. 자신을 사랑하는 터키인 에민에게 끌렸던 걸까. 그곳에서 6.25 참전 용사였다는 에민의 아버지 집에 머물게 된다. 던지고 깨고 부수는 그녀의 집안과 대조적으로 에민의 집에서는 연륜이 묻어나는 물건들이 가득함에 놀라게 된다. 은주는 자신의 아버지와는 너무도 다른 따뜻한 미소를 지닌 에민의 아버지를 보게 된다. 그리고 한국 여인과의 사랑을 털어 놓는데…….
은주는 아버지가 위급하다는 소식에 한국행을 결심하게 되고 천륜을 거역할 수 없었던 그녀는 부모님들을 요양원에 보내게 된다. 할머니에게서 6.25전쟁에 대한 충격적인 이야기도 듣게 되고……. 자신의 비밀스런 이야기까지 듣게 된다.
콧등이 시큰했다. 아, 인간은 끊임없이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구나. 할머니의 따사로운 말에 가슴이 훈훈해졌다. (책에서)
이 책에는 각자의 아픔과 비밀을 간직한 사람들이 나온다. 베트남에서 온 소피아, 일본에서 온 준코, 조선족인 영희와 정자, 카자흐스탄에서 온 알리사,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안나에게도 나름 슬픔과 비밀이 있다. 은주의 친구들인 성희, 근숙, 난희에게도 각자의 비밀스런 아픔들이 있다. 그리고 할머니에게도, 엄마에게도, 지숙 샘에게도, 에민에게도, 에민의 아버지에게도…….
은주의 엄마와 아빠를 보고 있으면 무슨 부모가 그래.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상처들을 알고나니 애틋한 마음이 저절로 들게 된다.
어딘가에는 있을 부모의 모습, 폭력에 물들어가는 어느 가정의 모습일 듯해서 안타깝게 읽게 되는 소설이다.
저자의 말처럼 각자 색깔이 다른 슬픔의 강을 품고 있는 걸까. 은주의 무표정 뒤의 슬픔만큼이나 모두들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저리게 한다. 진정한 용서란 세월이 지나야 할까. 핏줄 사이에 용서란 무의미한 걸까. 폭력은 폭력을 낳고 미움은 미움을 낳는다던데……. 부모의 폭력과 미움이 유전인자가 되어 대물림 하지 않기를 빌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서로 상처를 입히지 않기를 빌며…….
관용주의를 펼쳤던 오스만제국의 피를 물려받은 터키의 속담을 나누고 싶다.
도와주어라. 도와준 것을 잊어버려라. 잊어버린 것도 잊어버려라. (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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