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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빈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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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에서 벌어진 폭력의 가해자이자 그 전쟁에 휩쓸렸던 피해자이기도 한 남자가 50년 동안 몸으로, 죄의식으로 새긴 고통의 기억- 소설을 소개하는 첫 문장이 너무나 아팠다. 짐짓 외면하고 살았던 내 오라버니에 대한 회한, 없는 척 덮어두었던 상처가 덧나는 아픔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과 달리 가족이 있었고 환경이 불우하지도 않았던 큰 오라버니는 가족 누구와도 상의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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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에서 벌어진 폭력의 가해자이자 그 전쟁에 휩쓸렸던 피해자이기도 한 남자가 50년 동안 몸으로, 죄의식으로 새긴 고통의 기억-


소설을 소개하는 첫 문장이 너무나 아팠다. 짐짓 외면하고 살았던 내 오라버니에 대한 회한, 없는 척 덮어두었던 상처가 덧나는 아픔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과 달리 가족이 있었고 환경이 불우하지도 않았던 큰 오라버니는 가족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은 채 베트남 참전을 자원하였다. 파병 직전 뒤늦게 알게 된 가족들은 충격에 빠졌고 아버지의 상심과 노여움은 무척 컸었다. 오라버니는 살아서 귀국하였으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였고 기행을 일삼아 가족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고엽제 후유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에 대하여 알지 못했던 시대였다.


우리 가족, 특히 나와 오라버니는 베트남전쟁에 대하여 대화를 한 적이 거의 없다. 대화 자체가 어려웠다. 오라버니와의 소통을 포기한 대신 베트남전을 소재로 쓴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을 읽었었다.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이었으므로 독자로서는 감동했으나 허깨비가 되어 돌아온 내 오라버니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지는 못했다. 자신의 참전 경험을 토대로 훌륭한 문학작품을 생산한 박영한 작가와 폐인이 되어 망가진 오라버니가 대비되어 가슴이 더욱 아플 뿐이었다.


베트남전의 실상이 밝혀지고 오라버니가 잘못된 전쟁의 희생자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늦어있었다. 정신적 문제에 이어 신체적 이상 징후까지 나타났으나 병원 치료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스스로 개발한 치료법이 있다고 우기는 오라버니 앞에 가족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세상과 가족으로부터 점점 고립되었으며 62세에 갑작스런 심정지로 세상을 떠났다. 오라버니가 생전에 정부를 원망했고 고엽제 전우회마저 불신했음을 알기에 가족들끼리 조용히 장례를 치렀고 유골은 선산에 묻혔다. 남은 형제들은 사이가 특별히 나쁜 것도 아니고 다툰 적도 없으나 잘 만나지 않는다. 각자의 가슴에 묻은 죄책감과 슬픔을 알기에 그걸 건드리게 될까봐 서로가 조심스럽고 불편한 것이다.


『롱빈의 시간』은 내 오라버니가 생전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주인공 구자성을 통해서 나에게 들려주는 소설이다. 그는 내 오라버니보다 더 오래 살아 고통도 그만큼 길었으나, 생애의 마지막 힘을 다하여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였으며 자신에게 남은 모든 것을 바쳐 피해자들에게 사죄하였다. 기구하고 비극적인 일생이었으나 그의 마지막은 숭고하였다. ‘살리고 싶었으나 살릴 수 없었던 소녀’에 대한 구자성의 죄의식은 그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가해자가 되도록 강요받은 피해자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구자성은 힘들게 구술하여 남긴 기록을 모두 지우고 세상을 떠난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다 읽은 책을 덮지 못하고 되짚어 읽다가 새삼 가슴을 후비는 문장을 만났다. ‘이 세상에 끝이란 없다.’ ‘그가 겪고 저지른 일에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 구자성의 50년은 소설 속 주인공의 시간에만 머물지 않는 지독한 현실이며 아직 살아있는 피해자들과 2세들에 의해 계속 연장될 숫자인 것이다.


『롱빈의 시간』을 읽을 즈음 배달된 시사 잡지에는 공교롭게도 고엽제 피해자 2세들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고엽제 후유증이 2세들에게도 유전되어 고통이 대물림되고 있다는 사실을 훨씬 전부터 알고는 있었다. 하여, 내 오라버니가 낭인으로 홀로 떠돌다 돌아가신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보상과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2세들의 현실을 다룬 기사 앞에서, 오라버니의 죽음을 끝으로 그 추악한 전쟁에 대하여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이기심이 부끄러워졌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왜 『롱빈의 시간』을 읽었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가? 끝내고 싶었고 끝났다고 믿고 싶었을 뿐, 내 마음에서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트남 참전 군인들은 가난했던 조국의 경제 발전에 기여했으나 경제적 풍요에 의해 달라진 세상은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새로운 세대는 어두운 과거사에 관심이 없고 무거운 스토리보다는 가볍고 감각적인 스토리를 원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러하기에 더욱 작가는 ‘베트남전쟁 피해자들의 고통과 상처’라는 무겁고 아픈 소재를 외면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롱빈의 시간』에 이미 10여 년을 바치고도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토로하는 정의연 작가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를 바친다.

f*****1 2025.09.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