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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을 걷다 보면 강아지와 함께 걷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아이가 앉아 있어야 할 거 같은 유아차에도 강아지가 타고 있는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몇몇 이들은 그 모습을 보곤 눈살을 찌푸리고 ‘쯧쯧’ 혀를 차기도 하지만, 앞으로는 더욱 빈번히 목격하게 될 장면임이 분명하다. 예전에는 ‘애완동물’이라는 용어가 곧잘 사용됐다. 최근에는 ‘애완’ 대신 ‘반려’라는 표현이 사람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법은 완고하다. 법의 변화 속도는 시대가 달라지는 속도보다 언제나 늦곤 했다. 인간과 동물의 더불어 사는 삶이 보편화되었다고는 하나, 법은 아직 이와 같은 변화에 대응치 못하는 측면이 크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솔직히 동물로 인해 법정을 찾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었다. 개개인의 합의가 원만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나 찾는 곳이 법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떠한 편견도 가지지 않았다고 스스로 여겨왔지만, 동물과 관련하여 발생한 문제라면 복잡하지 않을 거라며 가벼이 여기는 측면이 있었다. 내가 예상한 거보다 사례가 다양했다. 지나치게 전문적이면 어쩌지 싶었는데, 일상에서 겪을 법한 내용들이 다수라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동물의 사진을 찍어 자신의 SNS계정에 올렸을 때 문제가 발생할까? 커플이 같은 공간에 거주하며 동물을 키우다가 헤어졌다면, 함께 살던 동물은 누구에게 귀속될까? 피를 나눈 자식보다 더 애틋한 반려동물에게 내 유산을 상속한다는 유언은 실효성이 있을까? 기존에는 인간 사이에서만 성립하던 관계의 확장이 동물에게도 과연 이루어질 수 있는지가 이 경우들에서 핵심 논점인 듯했다.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나, 대부분의 국가에서 (적어도 법을 통해 보았을 때) 동물을 인간에 준하는 대상으로 여기지는 않고 있었다. 성문화된 규정을 읊었을 때 독일이나 우리나라나 엇비슷해 실로 놀라웠다. 차이는 법을 적용할 때 발생했다. 같은 법도 달리 해석한다면 결과는 달라지게 된다. 조금 더 문제를 심화시켜 저자는 반려동물을 둘러싼 인간의 태도에 대해서도 물었다. 동물을 키우는 문화가 확산이 되더라도 모든 사람이 반려인으로 거듭나지는 않는다. 여전히 동물에 부정적 혹은 적대적인 태도를 지닌 이들은 존재하며, 꼭 그 때문이 아닐지라도 불특정 다수가 함께 부대끼는 곳에서의 에티켓은 중요하다. 전세 혹은 월세로 살 집을 구할 때 자신이 강아지를 키우고 있음을 밝혀야 하는가? 동네의 관리 규정에 따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단지 내에서 강아지를 키우지 않기로 약속했다면 이를 꼭 지켜야만 하는가? 음식점에 출입하려는 장애인 보조견을 막아서는 행위는 불법인가. 마지막 장에서는 조금 더 심화된 듯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뜻하지 않게 거리에서 만나 예뻐하던 동물이 타인을 해했다면 나는 그 동물의 주인으로서 배상의 책임을 져야 하는가? 나의 반려 동물을 타인의 반려 동물이 공격했을 경우에 사살은 정당방위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 유기 동물을 구조해 입양시킬 때 책임비를 징수하는 행위는, 온라인을 통해 동물 양육을 위한 기부금을 모금하는 행위는 법에 저촉되는가 등등. 엄밀히 말한다면 동물만을 위한 법은 없었다. 법을 해석하는 인간이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법적 다툼의 결과는 뒤바뀌는 듯했다. 그래도 더디나마 이 영역에서도 변화는 생성되고 있었다. 사물이 아닌 생명체, 그것도 인간과 교감하는 독특한 지위를 지닌 생명체로서 반려동물을 인식하는 경향이 점차 높아지는 게 느껴졌다. 모두가 만족하기는 어렵다. 동물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 서로를 배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다 보면 법에 기대지 않더라도 지혜롭게 상대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