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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를 사랑하기 위한 질문 29」
"「한국 근대사를 사랑하기 위한 질문 29」" 내용보기
근대사는 두꺼운 한국사 책에서 학생들이 가장 기피하는 부분이다. 크게 2가지 이유 때문인데, 우선 배우고 나면 너무 허탈하다. 우리의 조상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했던 나라는 결국 일제에 의해 멸망했고, 다양한 혁명적 시도는 일제의 탄압에 모두 좌초됐다. 이런 상황에서 '전 계층이 참여해 민족대통합을 이뤘다'거나 '과거 왕정시대의 구습에서 벗어난 새로운 사상을 도입하
"「한국 근대사를 사랑하기 위한 질문 29」" 내용보기

 

 근대사는 두꺼운 한국사 책에서 학생들이 가장 기피하는 부분이다. 크게 2가지 이유 때문인데, 우선 배우고 나면 너무 허탈하다. 우리의 조상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했던 나라는 결국 일제에 의해 멸망했고, 다양한 혁명적 시도는 일제의 탄압에 모두 좌초됐다. 이런 상황에서 '전 계층이 참여해 민족대통합을 이뤘다'거나 '과거 왕정시대의 구습에서 벗어난 새로운 사상을 도입하려 했다'는 의의들은 별로 와닿지도 않는다. 두번째로, 독립을 열망했던 단체들끼리 이름이 너무 비슷하다. 신간회·신민회·대한 독립군단·대한 독립군·한국 독립군 등은 그저 나의 시험점수를 깎아먹는 존재들일 뿐이다.

 하지만 사실 고대사나 현대사에 비해 근대사는 '역사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데에 가장 적합하다. 고대사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너무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느껴져 현실감이 떨어진다. 그리고 현대사는 그와 직결되는 인물·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이 지금도 남아있어 지나친 감정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와 달리 근대사는 현재 우리의 삶과 비교적 가까우면서도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는 전통과 현대의 가교로서 기능하기 때문에 역사 입문용으로 안성맞춤이다. 그리고 특히 이 책은 근대사의 이런 매력을 한층 더 부각시켜주어 근대사를 아는 데에 그치지 않고 '사랑'할 수 있게 한다.

 이 책이 어떤 점에서 그런 매력을 지니는지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사를 사랑하는 방법부터 고민해봐야 한다. 어떤 대상을 사랑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크게 2가지이다. 먼저, 그 대상을 '안다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 설령 그것이 착각에서 기인한 것일지라도, 이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특히 소설가 김영하 작가는 이 '안다는 느낌'을 받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시련이나 적대자와 대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대상에 대한 경계심이 사라질 뿐 아니라 그의 본모습을 보았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큰 도움이 된다. 각 사건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그 사건에 관련된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이르는 내용들을안네의 일기백범일지와 같은 생동감 있으면서도 감정이 적당히 담긴 문체로 풀어냈고, 이는 마치 그 사건을 직접 겪은 사람의 일기 한 페이지를 훔쳐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두 번째 조건은 그 대상을 '이해'하는 것이다. 철학자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한 대상을 사랑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이해는 단순한 앎을 넘어 맥락을 파악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책은 이 부분에서도 탁월하다. 이 책이 대상으로 삼은 사건들 중 흥선대원군이나 고종, 명성왕후와 같은 인물과 아관파천, 갑신정변 등의 사건들은 지금까지도 역사학자들뿐만 아니라 국민들 사이에서까지 그 평가가 극렬하게 나뉘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 책이 내놓는 답변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마치 원자(atom)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원자는 결합과정에서 그 껍질 속에 존재하는 전자들을 얻거나 버리는데, 이는 구조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이다. 명성왕후처럼 지나치게 신격화되어있는 대상의 지위는 끌어내렸고, 흥선대원군이나 고종처럼 비판의 초점이 잘못된 대상은 바로 볼 수 있도록 그 이면에 숨겨져있던 맥락들을 밝혔다. 명성왕후를 명성황후라 칭하는 사람들이 정작 고종은 황제의 칭호를 붙여 부르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나, 잘 알려지지 않았던 개혁군주로서의 고종을 조망한 것처럼 말이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원자가 전자를 조정하여 안정적인 구조를 유지할 수 있듯이, 근대사에 대해 타당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타당한 평가란 정답을 의미하지 않는다. 애초에 어떤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평가하는 데에 정답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 평가의 과정에서 2가지는 지켜져야 한다. 첫째, 누락된 맥락이 없어야 한다. 자신이 긍정적/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일면에만 주목하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결과를 미리 정해놓고 실패의 원인을 찾으면 안 된다. 확증편향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책은 근대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나아가 '사랑'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이쯤에서 일부는 "우리가 왜 근대사를 사랑해야 하지?"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고종이 지나치게 박한 평가를 받건, 명성왕후가 너무 신격화됐건 그 모든 결과는 망국(亡國)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질문은 3가지를 간과한 것이다. 우선, 위에서 밝혔듯 결과를 미리 정해놓은 평가는 절대 타당할 수 없다. 좋은 결과를 낳았다는 이유로 모든 과정이 장및빛으로만 평가된다면 한 개인이나 집단이 옳다고 믿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해지는 일체의 옳지 않은 수단들도 정당화될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는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결과적으로 실패했기 때문에 그 과정을 전부 '단지 실패한 결과를 낳은 보잘 것 없는 것' 정도로 평가하면 너무 많은 것을 놓치게 되며 자신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에만 주목하여 잘못된 평가를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결과주의 프레임에 갇혀, 실패의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수많은 교훈들을 져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는데, 관련된 이야기가 「장자(莊子)」에 소개되어 있다. “쓸모가 없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야 무엇이 참으로 쓸모가 있는 것인가를 말할 수 있다. 땅이 넓지만 사람이 서 있는 데는 발을 둘 곳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발을 둘 곳만을 남기고 그 주위를 깊숙이 파 버린다면 사람이 서 있을 수 있겠는가?”라는 장자의 말로 설명되는 이 사자성어는 '쓸모없(어 보이)는 것의 쓸모'를 의미한다. 실패한 결과를 낳은 과정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 배울 점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셋째는 맥락적으로 사고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당시의 상황이나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당시로서는 최선'이었을지 모르는 선택들을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한 가지 예로 책 1장에 소개된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들 수 있다. 쇄국정책은 흥선대원군의 권력욕과 결합되어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오늘날 많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 지적은 초점에 어긋난 것이다. 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만약 우리가 쇄국정책을 포기하고 문호를 전면개방했다면 상황이 더 나아졌을까? 확언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반드시 더 나은 결과를 불러왔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중요한 것은 개국과 쇄국의 두 가지를 적절히 병행하지 못하고 오직 한 가지만을 고집했다는 점이다. 즉 흥선대원군이라는 한 명의 역사 속 인물을 비난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비난의 초점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개국은 망국, 쇄국은 부국강병'이라는 흥선대원군의 경직된 사고나 오늘날의 '쇄국정책은 망국, 개국은 부국강병'이라는 식의 이분법적 프레임이 전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의도했던 의도치 않았던, 결국 이런 식으로 비판하는 것은 흥선대원군의 실패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셈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의 「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라는 제목은 「한국 근대사를 사랑하기 위한 질문 29」인 셈이다. 사실 이를 깨닫기 위해 600쪽에 달하는 이 무겁고 두꺼운 책을 전부 꼼꼼히 읽을 필요는 없다.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는 없겠지만 앞표지와 뒷표지, 서문만으로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모두 알 수 있다. 앞표지에는 제목만 적혀있고 뒷표지에도 추천사가 대부분이라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이 3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먼저 앞표지에는 「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라는 제목이 나와있고, 뒷표지에는 추천사와 더불어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라는 E.H 카의 말이 써있다. 우선 이 둘만으로도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E.H 카가 말한 '대화'는 과거와 현재라는 두 주체 간의 의사소통(conversation)이 아니다. 갓 태어나 무지몽매(無知蒙昧)하지만 아직 그만큼 무한한 변화와 성장의 가능성을 품은 어린아이와 같은 '현재'라는 주체가, 더 이상 변화하거나 성장할 수는 없지만 무궁한 지혜를 품고 있는 노인과 같은 '과거'라는 주체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며 성장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게다가 질문에 대한 답변도 아이가 직접 찾아내야 한다는 점에서 이를 의사소통(conversation)으로 이해하는 것은 더더욱 잘못되었다. 마지막으로 서문을 보면 중간쯤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래서 질문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봉건과 외세라는 이중적 위기에 어떻게 대응했으며, 무엇을 이루려고 했는가?'로 말이죠.". 이를 통해 우리는 앞·뒤표지에서 추론한 대화를 시도하는 '현재'라는 어린아이의 동기를 읽어낼 수 있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과거 역사와의 대화 과정에서 망국과 식민지라는 어두운 결과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근대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난 뒤에, 그 안에서 각자의 주관에 맞는 배움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할아버지는 왜 망했어요? 바보같이." 따위가 아니라, "'과거' 할아버지는 그래서 망했구나. 그래도 ~ 하느라 고생했어요. 이해해요. 앞으로 나는 안 그럴게요." 정도의 대화인 셈이다.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 사람들에게 답변하기 위해 가장 많이 인용하는 말은 단채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일 것이다. 신채호 선생의 말씀처럼 우리는 그 역사가 찬란한 장밋빛이건, 칠흑같은 잿빛이건 근대사와 더불어 우리의 모든 역사를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모든 역사를 일일이 사랑할 필요도 없고, 사랑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그 안에서 단 하나라도 사랑할만한 장면을 만나고, 그 순간의 기억과 느낌을 머리와 가슴에 간직한다면, 우리는 신채호 선생이 말한 '역사를 잊고 미래를 잃은 민족'이 아니라, '역사의 한 순간을 가슴으로 사랑하며 찬란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도약할 수 있는 멋진 발판을 마련해 준 이 책의 가치가 더욱 널리 알려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p*****0 2019.04.14. 신고 공감 3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