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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참새 시인과 마찬가지로 강우근 시인 역시 1995년에 출생했다. 『너와 바꿔 부를 수 있는 것』은 2021년에 등단한 시인의 첫 시집이다. 이젠 첫 시집을 출간하는 시인들이 2020년 이후에 등단했다. '젊은 시인'의 정의가 점점 나와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깜짝깜짝 놀라면서도, 이렇게 꾸준히 '신인' 시인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첫 시집'을 읽을 수 있다는 일이 기쁘고 감사하다. 이 양가 감정은 아마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자의 감정이 점점 지배적이 될 거란 희망을 품어본다. 일반화의 위험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어떤 추세나 추이, 혹은 흐름 같은 것을 읽을 수는 있을 텐데, 요즘 내가 주목하면서도 궁금해하는 건 남녀 성별에 따른 뚜렷한 차이다. 가령, 여성 시인들의 경우 대체적으로 세상에 대한 급진적이고도 도발적인 시선들을 많이 보여준다면, 남성 시인들의 경우는 정적이고 사유하는 '착한 소년'같은 이미지가 두드러지는 듯하다. '젊은 시인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본다면 황인찬 정도부터 시작된 듯한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남성들 중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유독 시인이 되는 것일 수도 있겠고, 혹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이 사회 전체로 볼 때 대표성을 띄는 것인지 아니면 매우 예외적인 것인지도 궁금하긴 한데, 결코 공격적이지 않고 선하고 순한 마음을 가진 '착한 소년'으로서의 화자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도 이중적일 수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이것은 리얼한가 의심과 회의가 들면서도 본능적으로 마음이 가게 된달까. 그러나 이러한 양가 감정과 이중적인 태도들 속에서도 궁극적으로 바라게 되는 것은 그가 지향하는 '인간과 자연과 사물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삶'이 결코 깨지지 않길, 그가 끝내 좌절하거나 실패하거나 상처 입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용기 없는 사람의 용기로, 그가 울면서 했던 기도가 모두 이루어지길. 늘 조용한 꿈을 꾸며, 그런 꿈을 받아 적는 동안 일어난 일을 시라고 부르는 삶을 계속 살 수 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