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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모든 서양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각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플라톤 철학의 자기반성은 '기억'이라는 테마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인데, 이는 '대상의 동일성은 사유의 동일성에 기초한다'는 피히테의 주장에서도 반복된다. 니체의 등장 전까지 서양철학은 '기억'에의 의존을 떨쳐버리지 못했는데, 이는 다시 말해 플라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억'이라는 능력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또 주체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연결고리인 기억에 반기를 들고 '망각'을 주장하는 장자의 생각과도 상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장자는 '기억'이 아닌 '망각'을 택했을까. 망각, 새로운 출발점 기억을 부정하고 망각의 능동적, 창조적인 힘을 믿었던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니체의 말은 곧, 기억에 의해 지배 받는 인간은 스스로에게조차 규정되어지고, 정형화된 인간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이야기다. 과거의 기억을 통한 주체의 자기 동일성 확보 작업은 타인과의 소통에 일차적인 장애물이 된다. 여기서 출발해 장자는 타자와의 교류를 위한 첫번째 요건으로 '망각'의 자유를 되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들뢰즈의 생각을 빌려보자면 '자의식의 동일성이 강해질 수록 세계와의 관계는 멀어질 것'이며, 반대의 경우에서만 타인과의 관계는 좁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유가 바로 장자 철학의 중심인데, 이를 살펴보기 위해 책에 인용된 공자가 여량을 유람하던 당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삼십길이나 되는 폭포수에서 자연스럽게 수영하는 사나이를 보고 공자가 놀라며 어찌 그런 경지에 도달했냐고 묻자 답하기를, '그저 물이 빨이들일 때 들어가고, 밀어낼 때 물길을 따라 나오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우리가 육지에서의 삶을 잊고 물의 흐름에 몸을 맞기는 것은, 나 스스로의 동일성을 잊고 상대에게 맞춰가고자 할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소통의 필요조건이다. 이 사나이는 소통의 필수요건인 '망각'을 실천함으로써 물과 하나가 되고 있다. 칸트는 이론적 관심이나 실천적 관심이 아닌 무관심으로 대상을 대할 때 그 심미적인 아름다움에 접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타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는 점에서 칸트와 장자에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장자의 철학에는 마주침을 넘어서 창조의 감정이 있지만, 칸트의 철학에서는 숭고함을 느끼는 압도적인 감정의 선에서 멈춘다는 점이 다르다. 시간과 타자의 유사성 소통의 전제인 '허(虛)'를 위한 마지막 개념으로 '시간을 없애라'는 장자의 주장을 살펴보자. 이 사유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는 레비나스의 주장을 인용한다. 서양전통 철학에서 '시간'의 개념은 과거에서 연유하여 우리 마음의 기대역량에 의해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레비나스는 그것은 틀렸다고 하며, 현재 안에서는 미래의 등가물을 절대 발견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간의 단절성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다시 말해 과거의 나로부터 미래의 나를 규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 타자와의 관계에도 유사한 패턴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어떠한 기대도 없이 시간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타자와 조우할 때 어떠한 기억과 기대에도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자의 말을 빌리자면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르는 공백의 상태가 바로 타자와의 교차점인 것이다. 하지만 주의할 것은 그것은 단순히 소통을 위한 필요조건이라는 점이다. 이는 곧, 망각을 했다고 해서 소통이 가능할 수는 있지만, 무조건 합일에 이르는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뜻이다. 책을 덮고 망각이 왜 자유스러운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자.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 타자와 마주칠 준비가 되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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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다 못 읽고 앞부분 밖에 읽어보지 못하긴 했지만, 강신주 박사의 어느 다른 책 보다도 강렬했습니다. 정말 마음에 듭니다. 한 장 한 장 읽으며 행복했습니다.^^
프롤로그에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모두 함축되어 들어있는듯 하구요.. 황지우 작가님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 이라는 시를 인용하신 부분도 굉장히 인상깊고 감동적이었습니다.
강박사님이 머릿글에서 밝히신 바와 같이 책이 작고 얇은 편이긴 하지만 내용은 굉장히 심도가 깊어 다 읽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릴듯 하지만
읽는 내내 행복한 시간이 될것 같습니다. 책 값에 비해 너무나 좋은 내용이 들어있는것 같아서 책 값이 너무 저렴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드는 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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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이야기는 노나라 임금과 바닷새 이야기 였다. 노나라 임금은 바닷새를 위해서 산해진미를 차려주었지만, 바닷새는 한입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 음식이 사람들을 위한 음식이었지, 바닷새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노나라 임금은 인간의 입장에서 바닷새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했지만, 바닷새는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모든 노력이 허사였고, 결국 바닷새는 굶주려 죽고 말았다. 상대방을 파악하지 않고 접대하면 누구나 노나라의 임금과 같은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올바르게 파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시간의식을 지우라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라는 베스트 셀러도 있는 걸로 아는데, 시간의식을 지울 때 인간은 순수한 아이처럼 만물을 굽어 살필 수 있다고 역설하는 듯 했다.
허(虛)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오직 사랑하는 타자가 그에게 손을 내밀 때에만 우리는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는 날개가 있는 것이 난다는 것을 들어보았겠지만, 날개가 없이 난다는 것은 듣지 못했을 것이다. 너는 앎으로 안다는 것을 들어보았겠지만, 알지 못함으로 안다는 것은 듣지 못했을 것이다. - 54p 백지 tabular rasa 도의 지도리를 도추라하는데, 이는 태풍의 눈과 같다. 조삼모사의 고사에서 원숭이 주인은 원숭이를 사랑해서 원숭이들의 뜻에 따라서 정했다. 아이는 순진무구함이며 망각이고, 새로운 출발, 놀이, 스스로 도는 수레바퀴, 최초의 움직임이며, 성스러운 긍정아닌가? 그렇다. 모든 것이 장난감이에요. 비디오는 장난감이죠. 그림도 장난감이죠. 나 역시 장난감이예요. <백남준, 살아있는 아트 연대기> 비디오는 독점할 수 없을 뿐만아니라 쉽게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의 공동재산이다. 장자는 우리에게 개인적인 즐거움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동시에 타자와 함께 그 즐거움을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송나라 사람이 '장보'라는 모자를 밑천 삼아 월나라로 장사를 갔지만, 월나라 사람들은 머리를 짧게 깎고 문신을 하고 있어서 그런 모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장자는 이 짧은 단편으로 우리에게 타자성과 차이의 진리를 말하려고 했습니다. 제물론 편에 등장하는 논증들은 모두 이 두 가지 테마, 즉 '타자성의 테마'와 '판단 중지의 테마'를 직조하면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장자는 이 두 가지 테마의 분리 불가능성을 '양행'이라고 규정합니다. 조삼모사에서 타자성은 원숭이의 분노로 표현되고, 판단중지의 테마는 원숭이의 분노에 따라 상황이 변화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즉 양행이란 타자성의 테마와 판단 중지의 테마 두 가지를 함께 지칭하는 것입니다 장자가 권고하는 수양론은 타자와 소통하기 위해서 일종의 판단중지 상태를 우리 마음에 확보하려는데 있다. 호접몽 : 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반드시 구분이 있다. 나비가 되어야 할 때 나비가 되고 장주가 되어야 할 때 장주가 될 수 있는 생성의 긍정입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비워야만 우리는 타자와 소통할 수 있는 가벼움과 경쾌함, 도약의 힘을 얻을 수 있게 되지요. - 164p
시간을 없애라(無古今)! -168p 모든 기대가 좌절되는 경우에, 레비나스는 우리가 진정한 미래를 확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 183p 미리 기대를 좌절 시켜라! 견독의 상태는 자신의 유한성을 철저하게 자각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금을 없애라.(시간을 없애라) 고금을 없앨 수 있다. 기억과 기대에 의존하는 지각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간의식을 제거한다면, 우리는 타자와 조우할 떄 그 결에 맞추어 "마중하고 맞이하며 훼손하고 이루어주지 않음이 없게" 됩니다. 이렇게 타자와 소통하고 공존하는 상태를 장자는 영령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영이란 얽힌다. 령은 안정된다는 의미입니다. - 195p "타자와 얽혀서도 그것과 공존하는 상태를 달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시간의식을 제거하는 수양을 지속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이 제목은 장자가 '타자와의 소통'문제로 항상 속 앓이를 해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붙인 것입니다. - 203p
노나라 임금과 바닷새 이야기. 코나투스 : 기쁘면 증가, 슬프면 감소 타자와 더불어 봄이 되어야 한다 : 여물위춘(如物爲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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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장자만큼은 길이 미리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길은 우리 자신이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고 당돌하게 외쳤습니다. 장자에게서 길은 우리가 목숨을 걸고 만들어야만 하는 길, 그래서 우리의 피와 땀이 묻어 있는 흔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장자가 이야기하는 도, 즉 그 길의 끄트머리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이곳에서 우리는 바로 타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장자는 우리에게 인문학의 정신이 인간에 대한 사랑에 있다는 점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짐을 줄여야 합니다. '망각'은 절대로 허무주의를 상징하지 않습니다. 사정은 정반대입니다. 장자의 망각은 철학 사상 가장 긍정적인 개념입니다. 그렇습니다. 망각이란 타자로 비약하기 위한 가벼움과 경쾌함을 얻기 위한 노력입니다. 간혹 장자가 비움을 뜻하는 '허虛'라는 글자를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타자로 비약하는 데 장애가 되는 일체의 무거움과 우울함을 비운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암울한 기억을 망각한다고 해서, 다시 말해 타자로 비약하는 데 장애가 되는 모든 무거운 것들을 비운다고 해서, 필연적으로 우리가 타자에게 건너가는 데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망각과 비움이 없다면, 우리는 타자에게 비약하는 일을 기대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수영의 비법을 궁금해하는 공자에게 수영의 달인은 다음과 같이 겸손하게 이야기합니다. "물이 소용돌이쳐서 빨아들이면 저도 같이 들어가고, 물이 나를 물속으로 밀어내면 저도 같이 그 물길을 따라 나옵니다. 물의 도를 따라서 그것을 사사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물과 연결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자신을 망각하고, 물의 복잡하고 다양한 흐름들에 맞추어 '감각-운동'을 수행해야만 합니다. 오직 물의 흐름에 개방되어 있는 감각-운동을 통해서만, 우리는 물속에서 '귀신처럼' 수영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장자가 단순히 주체를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그가 문제 삼는 것은 주체라는 '감각-운동'을 통해서 구성되는 결과물입니다. 땅에서 편안해하던 주체가 물에서도 편안해하는 주체가 되기 위해서, 그는 자신에 대한 기억 혹은 주체의 동일성을 망각해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장자에 따르면 우리가 수영을 잘하기 위해서는 육지에서 생활하면서 얻었던 자의식을 철저하게 버려야만 합니다.
나무는 바람을 만나서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나무가 비어 있는 구멍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타자와 만나서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비어 있는 피리와 같기 때문입니다. 비워질 때에만 나는 마주치는 타자에 걸맞은 소리를 낼 수 있는 피리가 될 수 있습니다. 욕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비우고 가볍게 살아가야 합니다. 마음을 활짝 터서 타자와 연결되어야 한다! 타자와 연결되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비워야만 한다! 비움이 전제될 때 모든 것이 비로소 아름답게 풀려나가게 된다. '비움'이나 '망각'은 '닫힘'이나 '상승'이 나이라 '열림'과 '소통'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울은 과거에 대한 기억이나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갖지 않고, 철저하게 현재 마주친 타자를 지각하는 마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장자는 과거에 대한 기억이나 미래에 대한 기대가 현재의 지각을 왜곡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비움虛'이라 혹은 '망각忘'이라는 개념을 강조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장자는 우리에게 마음을 거울처럼 비워야 한다고 자주 이야기합니다.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가 삶에서 마주치는 타자와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집요할 정도로 자기중심적 존재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결국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타자와 마주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냐에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장자의 통찰력이 빛을 발합니다. 탈 중심적 존재로서 지인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비움의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모든 화공들이 그림을 그리라는 명령을 받고 군주에게 예를 다할 때, 한 명의 화공만은 바로 숙소로 들어와 "옷을 벗고 다리를 쭉 뻗어 벌거숭이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장자가 주목하는 벌거숭이가 된 화공은 일체의 외적 권위를 비워버렸다는 것, 즉 비움의 마음 상태를 달성했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하겠습니다. 비운 뒤에야 우리는 타자와 마주칠 수 있고, 오직 그럴 때에만 하나의 울림이 우리 내면에 발생할 수 있는 법입니다. 장자에 따르면 아름다움은 비움, 마주침, 그리고 울림의 과정을 거쳐서 최종적으로는 창조로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런 아름다움이 표현되는 과정이 기본적으로 비움이나 망각이라는 과정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입니다. 자의식을 비우지 않는다면, 우리는 타자와 마주칠 수도 없고 따라서 어떤 울림도 발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 자신을 잃었다. 그것이 바로 '호접몽胡蝶夢', 즉 '나비의 꿈'이야기입니다. '나비'의 하늘하늘 자유롭게 날아가는 이미지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장자가 '호접몽' 이야기를 통해 정신적 자유로움을 노래한다고 말합니다. 또 나비 꿈에서 깨어나 장자가 자신이 나비인지 장자인지 모르겠다고 한 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이 이야기가 일종의 상대주의와 회의주의를 피력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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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알기로는 강신주박사는 장자관련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하지요. 장자 통입니다.
그러니 할 애기가 많을 것입니다. 요새 들어 장자를 말하는 이가 많아졌지만 얼마전만 하더라도 거의 노자였지 장자는 드물었던 시기였지요. 그래서 강신주박사의 장자이야기는 흥미롭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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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의 망각과 자유는 말 그대로 망각에 대한 이야기 이며 장자 철학의 출발이라고 볼 수 있다. 장자는 사랑하기 위해 우리는 망각해야 한다고 했다. 장자가 주장하는 망각은 단순히 기억력 상실이 아닌 긍정적 발전을 위해 비움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수영을 배우고자하는 자는 육지에서의 능숙한 걸음걸이를 자의식에서 완전히 망각해야 수영을 능숙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망각은 새로운 세계와 소통할 수있는 긍정적 역량이라고 볼 수 있다. 노나라 임금이 바닷새를 사랑하여 고기도 주고, 술도 주고, 노래도 불러줬지만 결국 그 새는 사일만에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는 노나라 임금이 기억하고 있는 사랑의 방식을 그대로 바닷새에게 적용했기 때문에 비극이 초래됐다는 것이다. 사랑의 방식이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바닷새는 그 사랑이 부담스럽고 오히려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철저한 망각이 그래서 중요하다는 것이다.
망각은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을 위해 필요하다. 그 망각은 허무주의가 아니라 현실에 기반을 둔 통렬한 비움이다. [출처] [서평] 장자읽기의 즐거움 '망각과 자유' - 강신주|작성자 이스트힐 노아파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