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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5] 그리스도 예수가 아닌 나사렛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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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 나사렛 예수?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 역사적 인물로서의 예수는 나사렛 예수라고 각각 구분해서 표현한다고 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예수는 바로 나사렛 예수이다.   흔히 현대사 연구는 자료가 너무 많아서, 고대사 연구는 자료가 너무 적어서 어렵다고 하는데, 나사렛 예수에 대한 연구도 마찬가지다. 저자에 따르면 나사렛 예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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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 나사렛 예수?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 역사적 인물로서의 예수는 나사렛 예수라고 각각 구분해서 표현한다고 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예수는 바로 나사렛 예수이다.

 

흔히 현대사 연구는 자료가 너무 많아서, 고대사 연구는 자료가 너무 적어서 어렵다고 하는데, 나사렛 예수에 대한 연구도 마찬가지다. 저자에 따르면 나사렛 예수에 대해 “확실하게 신뢰할 수 있는 실증적 역사적 사건은 두 가지뿐이다. 첫째는 예수가 기원후 1세기 전반에 팔레스타인에서 유대 민중 운동을 일으킨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이며, 둘째는 그러한 예수를 로마 당국이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했다는 사실이다.1)

그렇기에 저자는 이 두 가지 확고한 진실에 정경(正經)으로 인정받은 4대 복음서2) 외에 도마복음, 빌립복음, 요한의 비밀서, 막달라마리아복음 등 다양한 외경(外經) 1세기 전반의 팔레스타인의 상황 등을 참조하여 나사렛 예수의 실체를 재구성하는 방식을 택했다.

 

예를 들면, 우리는 로마황제의 호적 등록 칙령으로 나사렛 마을에 살던 요셉 일가가 고향으로 갔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복음서에서도마태복음누가복음에만 언급3)되어 있고, 사실과도 다르다.

기원후 6, 유대가 공식적으로 로마의 속주가 되던 해에 시리아 총독 퀴리니우스가 호적 등록을 실시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호적 등록 대상은 누가 기자의 말처럼 ‘로마 영토 전체’가 아니라 유대와 사마리아, 이두메아에 사는 모든 사람과 재산과 노예였다. 예수의 가족이 살던 갈릴리는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기원후 6년에 실시된 퀴리니우스의 호적 등록과 예수의 탄생을 연관시킨 것 자체가 누가의 실수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마태복음의 기록처럼 예수가 기원전 4년쯤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한다). 호적 등록은 과세를 위한 것이었는데 로마의 법은 개인의 재산을 산정할 때 출생지가 아닌 거주지의 재산을 기준으로 했다.4)”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나사렛 예수는 베들레헴이 아닌 나사렛에서 태어난 것이 명확하다.

그렇다면마태복음누가복음의 저자는 왜 이런 무리수를 썼을까? 그것은 아마도 예수가 메시아가 아니라는 주장에 대응하여,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난다는 예언을 충족시켜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저자는 1세기 팔레스타인의 역사적 상황[1]와 나사렛 예수의 행적[2]을 묘사한다. 덕분에 우리는 마르크 블로흐의봉건사회처럼 건조하지만 생동감 있게 그 당시 상황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나사렛 예수, 정치적 혁명가?

 

일반적으로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고 ‘다른 쪽 뺨마저 대는’ 평화주의자로 묘사되는데, 이러한 습관적인 이해는 그 당시의 정치적으로 불안한 세계에 대해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비정치적인 설교자라는 예수의 초상에 뿌리를 둔다.5)

하지만 이러한 예수의 모습은 나사렛 예수가 아닌 바울에 의해 창조된 그리스도 예수의 모습에 불과하다.

 

1세기 팔레스타인은 로마 제국의 통치와 귀족 대제사장들의 탐욕으로 민중의 신음소리가 높았던 곳이었다. 그렇기에 스스로 메시아를 자처하는 인물들이 끊임없이 등장하여 민중을 배경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이것은 말세(末世)를 구제하기 위해 미륵보살(彌勒菩薩)이 하생(下生)한다는 미륵하생신앙(彌勒下生信仰)을 내세워 반란을 일으키는 경우6)를 떠올려보면 될 것이다.

 

덕분에 그 당시 로마제국에서는 메시아를 반역자와 동의어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나사렛 예수는 한 번도 자기가 메시아라고 공개적으로 말한 적이 없다. 한 번도 자기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나사렛) 예수가 자신을 가리킬 때 사용한 호칭은 바로 ‘사람의 아들(人子, the son of man)’이었다.7)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성전(聖殿) 정화’는 그가 묵시적으로 메시아로 나설 것임을 암시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저자도 이를 “로마라는 국가가 그깟 갈릴리 작은 언덕 마을 출신 시골뜨기를 왜 그토록 집요하게 쫓아가 체포하고 고문하고 처형했는지, 도대체 왜 그가 그토록 그들의 지배 체제에 위협이 되었는지 보여8)”주는 사건이라고까지 평가한다.

 

게다가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나라가 곧 이 땅 위에 이루어지리라는 것이다. 바야흐로 하느님이 이스라엘의 영광을 되돌려줄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질서가 붕괴되지 않는 한 이스라엘은 회복될 수 없다. 따라서 이 말은, 로마 황제를 몰아내고 하느님이 이 땅의 통치자가 되리라는 사실을 의미한다.9)”고 받아들여 질 수 밖에 없었다.

 

이러니 나사렛 예수가 카리스마 넘치는 선동가 혹은 혁명가로 비치는 것도 당연하다.

 

어쨌든 이런 방식으로 저자는 종교라는 베일 속에 가려있던 나사렛 예수에 대해 그 참모습을 알려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스도 예수로 재탄생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당한 후, 예수의 친동생, 의로운 사람 야고보를 수장으로 하여 예수살렘을 근거지로 성장을 한다. 그리고 그 성장과정에서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아람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가난한 농민이나 어부 중심의 ‘유대파’와 그리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도시의 여유있는 사람들 중심의 ‘헬라파’로 갈라진다.

불행히도 유대 민족주의와 혁명주의에 기반한 ‘유대파’는 대제사장 아나누스에 의해 지도자 야고보가 돌팔매형으로 살해당한데다가, 로마에 대항한 유대인의 반란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면서 힘을 잃고 사라진다. 반편 ‘유대파’에 의해 배척당했던 ‘헬라파’는 재외 유대인인 다아스포라 유대인의 입맛에도 맞게 예수의 메시지를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기원후 70년 예루살렘이 파괴되면서 이제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스스로의 생존과 존속을 위해 나사렛 예수에게서 유대 민족주의와 혁명주의 색채를 지울 수 밖에 없었다. 이는 ‘헬라파’를 대표하는 바울에 의해 시작되었던 그리스도 예수의 확산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움직임에 따라 로마인을 대상으로 선교하기 위해 집필된 복음서에서, 예수의 처형 결정을 내린 로마 총독 빌라도[본명 폰티우스 필라투스(Pontior Pilatos)]가 예수가 잘못이 없음을 알고 풀어주려고 애쓰는 인물로 그려지는 것처럼, 기독교에서 로마인들이 껄끄러워할 부분을 미화하거나 제거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평화주의자로 인식하게 된 원인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나사렛 예수를 복원하려는 저자의 설득력 있는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행간에 숨겨진 역사적 진실을 읽는 방법을 읽는 방법에 눈을 뜨게 된다.

물론 이러한 방법이 오늘날과 같이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도 유용할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행간의 진실을 읽는 것도 또 하나의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이 아닐까?



1) 레자 아슬란, <젤롯>, 민경식 옮김, (와이즈베리, 2014), p. 26

2) 복음서는 공자의 사상을 담은논어나 부처의 사상을 담은 불경처럼 예수의 행적을 실제로 보고 쓴 것이 아니라 예수에 대한 교리를 전하기 위해 문서나 구전형태로 전해지던 예수 전승(Jesus Traditional)을 신학자인 복음서 저자의 관점에서 편집한 신학문서다.

3) 레자 아슬란, 앞의 책, p. 65

4) 레자 아슬란, 앞의 책, pp. 70~71

5) 레자 아슬란, 앞의 책, p. 185

6) ()나라 말 한산동(韓山童) 등에 의한 백련교의 난, 후삼국 시대의 궁예, 조선 숙종 때의 여환(呂還) 등이 대표적인 미륵신앙을 이용한 반란이다.

7) 레자 아슬란, 앞의 책, p. 206

8) 레자 아슬란, 앞의 책, p. 123

9) 레자 아슬란, 앞의 책, p. 184 

w******f 2014.08.05. 신고 공감 11 댓글 10
리뷰 총점 종이책
민족 해방을 이끈 혁명가로서의 나사렛 예수에 대하여
"민족 해방을 이끈 혁명가로서의 나사렛 예수에 대하여" 내용보기
성서 속에는 유대인의 역사가 있다. 역사는 성서를 낳았다. 그렇다면 성서는 역사 책인가. 아니다. 성서는 복음서다. 신을 찬양하고 받들며 예수의 종교적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다. 동시에 성서는 시대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기록 속에서 역사를 축출하는 일에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폭넓은 지식이 필요로될 것이다. 성서를 해석할 수 있는 언어적, 문화인류학적 기반지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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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속에는 유대인의 역사가 있다. 역사는 성서를 낳았다. 그렇다면 성서는 역사 책인가. 아니다. 성서는 복음서다. 신을 찬양하고 받들며 예수의 종교적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다. 동시에 성서는 시대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기록 속에서 역사를 축출하는 일에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폭넓은 지식이 필요로될 것이다. 성서를 해석할 수 있는 언어적, 문화인류학적 기반지식과, 역사를 해석하고  종교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통찰력, 그리고 무엇보다 숭숭 구멍뚫린 기록의 부재를 틈 빈틈 없이 막아낼 수 있는, 정교한 논리로 무장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수십년동안 이런  작은 단서들을 한줄씩 꿰어 모아 맞춘 퍼즐을 역사라고 부르려면 논리와 감동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기술이 필요하다. 2천년 동안 문명과 문명을 통해, 문화와 문화, 민족과 민족 사이, 대륙을 넘고 대양을 건너 뿌리내린 종교적 믿음을 뛰어넘을 수 있는 빈틈없고 단단한 논리와 설득이 필요하다. 이란 태생, 문학 작가이면서 종교학자, 복음주의 기독교에 심취했다가 이슬람으로 개종한 저자 레자 아슬란은 이 일에 도전했다.

 

실존했던 예수, 역사 속의 예수를 당시 사회, 종교, 정치적 맥락에서 바라본다면, 거기에서 드러나는 예수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기대했던 모습과 다를 수 있다. 성서의 기록 속에는 2000년 동안 숭배받아온 한 사람의 행적과 그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적혀 있다. 그의 메시지는 전파되고 기억되고 확장되어 어떤 하나의 종교적 세계 속에 사람들을 하나로 묶었다. 이 책은 그 과정을 역사적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선언한다. 역사속에서 예수는 혁명가였다고.

 

종교냐 역사냐. 때로 이 둘은 상충한다. 그래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 이 둘이 합치하지 않을 때 선택은 믿음의 양과 학문적 진실이라는 잣대 사이에서  부유한다. 성서의 목적은 복음의 전파이고 역사서의 목적은 전체 맥락에서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목적이 다르면 사건을 기술하는 방법, 사건에서 골라낸 장면이 다르다. 어린 아이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나서 줄거리를 말해보라고 하면 아기들은 영화의 전체 맥락보다는 자기가 기억하는 부분, 인상깊었던 부분만 이야기한다. 영화중 극히 일부분, 아주 사소한 장면 하나가 아이에겐 기억과 재생의 전부가 된다. 응 자동차가 방귀를 뿡 꼈는데 놀랐어.  신발을 물 속에 빠뜨렸는데 잡으려고 뛰어갔는데 신발이 키득 키득 자꾸 자꾸 도망가서 못잡았어. 어른들은 언제 자동차 경적 소리와 관련된 씬이 있었는지, 언제 신발을 가지고 노는 씬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영화를 보고 말하는 장면은 유일하게 재생가능한 장면, 유일하게 기억하고 기록 가능한 장면이다. 그러니까 영화 전체의 줄거리와 맥락이 역사 라고 한다면, 6세 짜리 아이가 유일하게 기억하고 다시 말로 기억을 재생해낼 수 있는 몇몇 장면들은 성서 속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저자의 역사적 맥락으로 해석하는 나사렛 예수와 성서 속 예수 그리스도의 차이를 그렇게 이해했다.

 

이렇게 말 해도 될까. 나는 종교에 대해서 말할 때 조심스럽다. 누군가가 본 것을 내가 못 보았다고 '그것은 없다'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본인이 두 눈으로 확실히 보았을 때 본 사람은 단호하게 '그것은 있다'라고 말한다.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극명해서 충돌은 불가피하다. 조금 있는 것과 많이 있는 것, 조금 없는 것 많이 없는 것 사이에는 수많은 타협이 채워질 수 있지만,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나는 내가 보았는지 안 보았는지, 안보였는데 보았다고 얘기 하는 것인지, 보아 놓고 못봤다고 시침떼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 불확실하고 혼란스런 종교를 떠난 이유는 보았다고 리드하는 사람이 추구하는 세계의 모순 사이에서 갈등했고 언젠가 봤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꺼라던 꿈을 잠시 접었기 때문이었다.그런데 정말? 정말 내가 종교를 떠났을까? 다른 말로, 내가 떠났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곳에 속해 있었고, 그곳에 속해 있었다고 말 할 수 있을 만큼 그러니까 부활한 예수의 모습을 보았던 것일까? 다시 다시. 내가 뭘 보았거나 말았거나 내가 정말 떠나기나 한걸까. 나는 거기 미련이란 걸 두고 껍데기만 빠져나와 홀가분히 잊어버리고 말면 될 것이었나.

 

이 책은 역사서이다. 적어도 세 개의 파트 중 첫번째 파트는 완전히 역사서이다. 예수가 태어나가 약 1세기 전부터 십자가 사건이 있고 난 후 1세기 후까지 팔레스타인 지역의 로마 점령과 유대인들의 저항등의 고대 역사를 매우 흥미롭게 전하는 대중을 위한 역사서다. 책의 반을 역사에 할애하는 이유는 성서 속 예수가 살았던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다. 예수를 역사적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배경을 정확히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 아슬란은 그 시대의 역동적인 역사적 배경을 흥미롭게 그려냄으로써 역사적 인물로서의 혹독한 변혁의 시대를 살았던 역사적 예수를 독자에게 설득하는데 이미 반쯤 성공했다. 여기에 역사의 본질이 있다. 개인을 보면 답이 안나오는 것도 역사 속에서 보면 한 줄기 빛처럼 개인의 행보에 대한 그 목적과 의식이 선명히 보인다. 역사속에서 유대의 지도자들,  대제사장들과 귀족 계급들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고 그들의 개가 되어 민중을 픽박하고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리려 신과 예법을 이용했다(특히 신성모독과 압제에 대한 저항으로 400년만에 이민족의 통치에서 벗어나 겨우 한 세기 동안 자기들의 '신성한 땅'을 스스로 통치한 하스모니아 왕가의 후손들은 스스로 나라를 로마에 바쳤다.) 백성들은 민족의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했다. 로마 총독과 점령군을 몰아내고, 썩어 빠진 유대 종교 지도자와 유대 귀족들을 파멸시키고 민족을 해방시키고 그들의 통치할 실제적 왕이 필요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혁명가가 되어  메시아를 자처하고 민족의 해방을 꿈꾸며 대중을 선동하고 지배계급에 폭력적으로 저항하며 다녔고 그러다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거나 석형에 처해졌다. 예수도 그들 중 하나였다.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형에 처해진 수많은 혁명을 꿈꾸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것이 레자 아슬란이 역사속에서 찾은 진실이고, 단호하게 내린 결론이다. 그는 종교적 세계관에서의 예수를 부정하지 않는다. 마리아의 처녀잉태와 예수의 부활과 오병이어의 기적과 병든 자를 살린 마법과도 같은 예수의 행적에 대한 성서의 서술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서 속에 서술된 그 행적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이었느냐만 중요하다는 것이다. 종교속에서는 그 메시지가 진실이라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 두 개의 상반된 견해. 모순되고 상반된 견해들이 공존한다면, 개인의 선택에 따라 진실은 편리하게 공존한다. 개인이 직접 볼 수 없다면 믿는 것이 진실이 되고, 개인이 직접 보았다면 본 것이 진실이 된다. 어떤 한 개인이 보았다는 사실이 역사와 논리에 모순된다면 개인이 본 것은 쉽게 허상이 될 수 있지만, 많은 집단이 2천년을 넘게 보았다고 믿어왔을 때, 그것이 역사와 논리에 모순된다면 역사는 시간 속에 묻혀버린다. 어쨌든 과거는 시간 더미 속에 묻혀버렸다. 나는 궁금하다. 진실을 본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본 것과 믿는 것의 차이를 떼어낼 수 있는지. 음성을 듣고, 방언을 하고, 십일조를 내고,  월급보다 많은 건축 헌금을 내고, 평온한 주말 집집마다 벨을 눌러 아침잠을 깨우고 말씀을 전하러 다니는 선량한 교인들 하느님의 자식들이 본 것과 대형교회의 비리와 목사직의 제왕적 세속을 지지하고, 더 큰 파이 조각을 갖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본 것은 같은 것이었는지, 그들이 들은 진짜 메시지가 궁금하다.

g******1 2014.05.05. 신고 공감 6 댓글 10
리뷰 총점 종이책
젤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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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에는 집 근처 교회에서 크리스마스에 주는 선물이 좋아 친구 따라 교회에 몇 번 다닌 적이 있다. 신앙적인 이유 없이 선물에 눈이 멀어 몇 번 찾아간 교회지만 그곳에서 하느님, 예수, 모세 등 성경책에 나오는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시간이 흘러 종교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된 계기도 있었고 제대로 믿고 싶어 교회에도 몇 번 다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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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에는 집 근처 교회에서 크리스마스에 주는 선물이 좋아 친구 따라 교회에 몇 번 다닌 적이 있다. 신앙적인 이유 없이 선물에 눈이 멀어 몇 번 찾아간 교회지만 그곳에서 하느님, 예수, 모세 등 성경책에 나오는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시간이 흘러 종교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된 계기도 있었고 제대로 믿고 싶어 교회에도 몇 번 다녔지만 역시나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교회 다니기를 그만 두었다. 지금은 아무런 종교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로 지내지만 한 번씩 종교를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석가탄신일, 예수탄신일을 붉은 날로 지정되어 있어 어린 시절에는 별다른 놀이를 즐기지 않았기에 TV에서 하는 종교 영화를 아무 생각이 보았다. 그래서인지 석가는 물론이고 예수에 대해서도 성경책을 읽지 않아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젤롯'은 예수란 인물을 기독교 종교의 입장이 아닌 시대를 이끌었던 정치적 혁명가란 의미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예수가 어떻게 정치적 혁명가일까? 궁금증을 자아내는 문구 때문에 더더욱 호기심을 자극한 책이기도 한다.

 

예수가 활동하기 이전에 에루살렘을 중심으로 변화하는 시대상황을 이해하기 쉽게 간략하게 풀어내면서 스토리를 시작한다. 로마가 자신들이 지배하는 땅에 대한 정치적, 종교적 입장은 강한 규제 보다는 어느 정도 그들이 가진 종교를 인정하고 묵인하는 선에서 타협을 보면서 지낸다. 

 

로마 내부의 혼란스런 상황으로 인해 로마 통치를 받고 있는 도시들도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에루살렘 역시 마찬가지였다. 로마에 맞선 민족 저항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유대인들은 그들을 구해 줄 메시아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을 기다리게 된다.

 

책에서는 예수가 나타나기 이전에도 이미 많은 사람이 구원자란 이름으로 나타났었다고 밝히고 있다. 

 

항상 시끄러운 논쟁 중 하나인 나사렛 예수의 생모에 대한 이야기다. 동정녀 마리아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아버지 요한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알려지지 않는다. 예수가 죽고 난 후 예수가 사생아란 소문이 돌기도 했다. 예수에게 형제들도 있었고 당시 팔레스타인 사회 분위기상 예수가 결혼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예수에게 세례를 준 세례 요한이 유대 제사장 가문에서 자랐을 정도로 부유하고 지식층에서 자란 것에 비해 예수는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인물이다. 예수는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사람들과의 불편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로에 대해 인정하고 호의적이었다. 예수의 위기와 죽음, 승천에 바리새파 사람들의 역할이 있었음을 새삼 알게 된 사실이다.

 

지금과 달리 마술사와 수행자의 구분이 어려웠던 시절이라 마술과 기적이 가진 이중적인 모습에 대한 이야기, 당시 팔레스타인 전반에 자신을 메시아라고 외친 사람들이 넘쳐났던 시대상이 그 동안 본 영화를 토대로 저절로 연상이 된다.

 

모세 율법의 열렬한 추종자 사울... 기독교로 개종해 바울이라고 부르는 인물은 예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그를 상세히 묘사하고 있으며 대세장의 죽음을 둘러싸고 그가 고대 유대파와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의 틀을 마련하는 계기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예수가 죽고 난 후 예수가 설교 당시 사용한 아람어를 쓰는 동생 야고보를 비롯한 가족, 열두 제자의 주축이 된 유대파와 그리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이끄는 헬라파는 수시로 충돌하며 지금의 기독교를 이끄는 커다란 두 개의 파로 나눈다. 사용 언어와 신분차이가 각기 다른 행보를 갖게 한다. 바울이 이끈  율법에 얽매이지는 않는 자유로운 기독교는 로마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열렬한 개종자들을 만들어 낸다. 그럼에도 배척당한 그의 종교가 신학성서를 만드는데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는 것이 아니러니 하다.

 

익히 알고 있는 예수의 생애는 물론이고 당시 시대상황, 성전, 메시아, 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웅장함이 느껴지는 이야기다. 한 편의 소설과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동안 어설프게 알고 있는 예수란 인물이 아니라 한 시대를 이끌었던 혁명가 예수를 만날 수 있다. 더불어 지금의 기독교가 어떤 틀을 갖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 알게 된 시간이었다.

 

저자가 얼마나 심혈을 기우려 만든 책이란 것을 주석을 보면 알 수 있다. 책에는 여러 사람들이 발표한 문헌을 토대로 책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에 힘을 실어주고 있고 이해를 돕는다. 혁명가로서의 예수를 보며 풀어 놓는 이야기는 종교인뿐만 아니라 나 같은 무신론자, 타종교를 믿는 사람, 일반인이 읽어도 거부감 없고 흥미롭게 다가오는 책이라 여겨진다. 

 



q******5 2014.03.30. 신고 공감 3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역사 속 예수의 삶과 사상《젤롯 ZEALOT》
"역사 속 예수의 삶과 사상《젤롯 ZEALOT》" 내용보기
예수를 연구하는 방법 중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신앙의 대상으로서 '그리스도 예수'와 역사적 인물로서 '나사렛 예수'로 나뉜다고 한다. 《젤롯 ZEALOT》의 예수는 역사적 인물로서 보는 '나사렛 예수'이며 거기에서도 하느님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해 민중운동을 일으키다 로마 당국에 의해 처형된 열성파 인물로서 '정치적 의식이 투철한 유대 혁명가' 관점에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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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연구하는 방법 중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신앙의 대상으로서 '그리스도 예수'와 역사적 인물로서 '나사렛 예수'로 나뉜다고 한다. 《젤롯 ZEALOT의 예수는 역사적 인물로서 보는 '나사렛 예수'이며 거기에서도 하느님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해 민중운동을 일으키다 로마 당국에 의해 처형된 열성파 인물로서 '정치적 의식이 투철한 유대 혁명가' 관점에서 다룬다.

 

《젤롯 ZEALOT 기독교의 기원을 연구하다가 신앙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와 역사적 인물인 나사렛 예수의 모습 사이에 괴리감을 느낀 저자가 역사 속에서 살아 숨 쉰 예수 이야기를 전하고자 실존 인물로서의 예수 즉, 기독교가 생기기 '이전'의 예수의 모습을 되도록 많이 찾아내기 위해 기획되었다. 바로 정치의식이 투철한 유대 혁명가로서의 예수다.

 

 

복음서에 전해진 예수의 초상보다 역사적으로 훨씬 더 정확한 나사렛 예수의 초상을 그리기 위해 예루살렘의 역사적 배경은 물론 유대 전통에 뿌리박은 예수의 정치적이고 현실적인 가르침이 어떻게 오늘날 우리가 바라보는 예수상으로 변했는가를 보여준다. 이 땅 위에 하느님의 통치를 이루려는 예수의 메시아 운동이 실패한 뒤에, 그의 추종자들이 예수의 활동과 정체, 유대교 메시아의 본성과 정의를 어떻게 재해석했는지에 대해 다룬다. 덧씌운 신학적인 요소를 찬찬히 벗겨내 복음서에서 캐낼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이야기에서 다시 출발한다. 신앙의 대상이 된 예수 '그리스도'에서 벗어나 역사 속 '진짜' 예수를 찾는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은 성서의 문학적, 신학적 관점을 배제하고 1세기 팔레스타인 역사 속에서 살아 숨 쉬던 예수의 모습을 재구성하고 있다.

 

 

기원전 63년에 로마의 지배가 시작된 예루살렘. 로마의 과시적인 관행 정책상 초기에는 유대인들의 유대신인 하느님에 대한 그들의 신앙에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특별한 민족이라는 자의식이 강한 유대인들은 폭동을 일으키며 로마와 대치상태를 이룬다. 외세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겠다는 흔들리지 않는 헌신과 뜨거운 신념이 그들사이에 쌓여만 갔다.

 

 

『 경건한 유대인이라면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는 상관없이 누구나 인정하고 또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인데, 바로 '열심 Zeal'이라는 것이다. 』 - p84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긴장이 고조된 시기에 살았던 인물인 '나사렛 예수' 출현의 의미를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본다. 당시 자신들의 '열심'이라는 이상을 수호하기 위해 극단적인 폭력의 힘을 빌리려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들을 '젤롯 Zealots'이라고 불렀다.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예수가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열심'이었다. 예수의 활동 자체가 현재 질서의 붕괴를 전제하며, 그를 재판하는 모든 사람에게서 그 권력을 빼앗는 데서 시작한다. 함께 고난을 당하던 그 지역 전체에 두루 퍼져 있는 반 유대적 정서와 반 성전적 정서를 공유한, 진짜 갈릴리 사람인 예수가 선교하니 그를 따라다니며 섬기는 이들이 늘어난 반면 로마는 예수가 자신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하는 거짓말쟁이라고 여겼다. 로마 제국은 예수를 선동죄로 처형했다. 나사렛 예수의 마지막 며칠에 관련된 모든 것은 이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을 토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데 어쩌다가 불과 수년 만에 하늘과 땅의 창조자가 되어버렸는가? 입맛에 잘 맞도록 예수의 메시지를 재해석하자 예수의 모습은 혁명적인 젤롯에서 로마의 전통적인, 신격화된 인물로 변화했다. 이로써 유대교와의 관계도 끊기고 예루살렘 파괴 이후 기독교는 전적으로 이방인의 종교가 되었다. 바울이 만든 그리스도가 역사적 예수를 집어삼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종교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기독교안에 두 개의 진영이 경쟁하는 구도로 정착되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세계적인 종교의 기틀을 갖추게 된다.

 

 

논쟁적인 부분, 학술적인 논의를 더 원하는 이라면 저자와 반대의견 학자들의 문헌도 언급하고 있는 방대한 주석부분을 참고하면 좋겠다. 기독교에 관해, 예수에 관해 잘 모르고 있는 상태인 나로서는 성서의 내용이 나올때나 예수와 관련한 각종 논쟁적인 부분을 언급할 때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젤롯 ZEALOT》의 전체적인 관점이 신앙의 문제를 벗어나 역사 비평적 방식으로 다루고 있어 예수가 활동하던 1세기 팔레스타인 시대 사회, 종교, 문화, 정치적 맥락을 이해하며 그 시대 생활상을 느껴보기에는 입맛을 잘 맞춰 준 책이 아니었나싶다.

 

 

 

 

이달의 사락 l****5 2014.03.23.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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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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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 예수 vs 그리스도 예수이 책은 나사렛 예수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무슬림.                                                                                                                                                                                                                                                       '그리스도' 예수는 후에 복음서를 기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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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 예수 vs 그리스도 예수

이 책은 나사렛 예수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무슬림.                                                       
                                                                                                                                                                                                '그리스도' 예수는 후에 복음서를 기록한 기자들이 당시 시대상에 맞게(정치적, 종교적으로) 각색한것이라고 주장한다. 상당한 부분이 허구라고 말한다 (부활까지도).

여기서 이 책의 한계를 드러낸다

 저자 스스로 언급했듯이 그들에게(복음서 기자들)에게 역사란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성서는 역사책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의 사고와 언어형태에 자신을 적응시킨, 하나님의 메시지이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인간의 경험에 의해 제한된다. 다시 말해, 성서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어떻게 이해해 왔는가에 대한 기록인 것이다.

성서를 기록한 기자들, 그것을 필사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범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 내용에 오류가 있느냐, 역사적으로 사실이냐 여부는 사실 크게 중요한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성서가 하나님의 목적과 사명을 드러내고 그것을 충족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 책은 한번 읽어 볼 만하다.

다만 다소 도발적인 내용에 대한 균형은 잡고 읽으면 좋겠다.

나사렛 예수와 그리스도 예수.

둘 다 맞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4:18,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여기서 나오는 헬라어 '자유'에는 '용서'의 의미도 함께 담고 있다)

*그래서 같이 비교하며, 찾아가면서 읽으면 좋은 책들을 소개한다
<예수 이야기>, 조반니 파피니
<복음은 그렇게 전해지지 않았다>, 개리 윌스
<예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개리 윌스
<예수 평전>, 폴 존슨
<사반의 십자가>, 김동리
<로마인 이야기 14>, 시오노 나나미
<성경의 탄생>, 존 드레인
<세 종교 이야기>, 홍익희
<예수는 왜 죽었는가>, 빌 오라일리 외
<기독교의 기본 진리>, 존 스토트
 그리고 <비전성경>, 개역한글판.

YES마니아 : 로얄 r*******2 2015.02.08.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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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롯》 비종교인에게도 흥미로운 예수에 대한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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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말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나사렛 예수' 즉, 역사적 인물로서 중점을 두는 연구와 신앙의 대상으로 받드는 '그리스도 예수' 연구이다. '나사렛 예수'에도 예수를 윤리적 교사, 사회 개혁가, 정치적 혁명가, 심지어 마술사나 퇴마 사로 보는 등 여러 가지라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예수를 '정치적 의식이 투철한 유대 혁명가'라고 말한다. 저자의 시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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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말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나사렛 예수' , 역사적 인물로서 중점을 두는 연구와 신앙의 대상으로 받드는 '그리스도 예수' 연구이다. '나사렛 예수'에도 예수를 윤리적 교사, 사회 개혁가, 정치적 혁명가, 심지어 마술사나 퇴마 사로 보는 등 여러 가지라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예수를 '정치적 의식이 투철한 유대 혁명가'라고 말한다. 저자의 시각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기독교를 믿는 아니든 간에 이 책 속에서 그려지는 역사적 예수의 모습은 매우 흥미롭다. 무엇보다 종교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억지가 없어서, 비 기독교인인 내가 읽기에도 크게 무리가 없었다.  예수에 대한 역사적 주장이 잘 검증되고 세밀하게 연구되고 어마어마하게 권위가 있다 하더라도, 그 주장에 반박하는 반대편 주장 역시 똑같이 잘 검증되고 세밀하게 연구되고 권위가 있다는 말로 서두를 시작하는 것만 보아도, 저자의 시각이 편협 되지 않았음을 잘 보여준다 하겠다.  

 

 

1부에서는 로마 제국의 통치와 귀족 대제사장들의 탐욕으로 민중들의 신음소리가 높았던 시대가 그려진다.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할 것이라는 과거의 예언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스스로 계시를 받은 메시아임을 자처하는 인물들이 끊임없이 등장하여 반란을 일으켰던 혼란스러운 시대의 모습이다. 1세기 팔레스타인의 역사적 상황을 훑으며 메시아들 중 하나로 등장했던 예수의 모습이 어떠했을 지를 짐작할 수 있도록 보여준다. 2부에서는 예수에 관련된 주요 사건들이 흥미롭게 그려지고 있다. 성전 정화 사건을 비롯해서 본격적인 선교에 나서는 모습과 나병 환자 등을 치유해주었던 일화 등 역사적 사실관계를 비롯해서 예수가 꿈꿨던 세상이 점차 구체화되어 보여진다. 이어지는 3부는 예수 십자가 처형 이후, 예수의 동생 야고보를 중심으로 예루살렘을 근거지로 한 유대 파와 주로 로마에서 활동했던 바울의 헬라 파로 나뉘어 진행된 예수 운동을 그려진다. 예루살렘 함락 이후 기독교가 로마의 시민을 대상으로 포교되었으며, 로마의 정권 교체 속에서 박해 받았다 다시 국교로 인정되고 그렇게 현재 기독교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 것이 보여지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그 동안은 예수의 모습이 로마에 사는 초기 기독교인들을 선교하기 위해 혁명가와는 거리가 멀게 그려졌다는 것에 대해 들려주고 있다.

 

마치 역사소설인 것처럼 스펙 타클하고 긴장감 넘치는 전개는 논픽션으로서의 매력을 충분히 발산하고 있다. 20년에 걸친 학술적인 연구와 토론을 밑바탕으로 그려진 나사렛 예수는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예수 그리스도와 전혀 같지 않다. 저자의 설득력 있고 흥미로운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로마 제국이 위세를 떨치던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초기 기독교 형성 과정을 자연스레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이슬람교도에, 이란 출신의 저자가예수에 관해 연구한 작품을 발표했다는 데 심기가 불편해진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미디어인 폭스 TV가 저자를 불러놓고 공격적으로 인터뷰한 걸로 유명하다. 누가 봐도 명백히, 미국 내 반 이슬람 감정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에 이런 편견이 없는 진실을 추구하기를 바란다는 대답으로 오히려 반 이슬람 감정에 대한 반성과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논쟁의 기회를 열었다고 한다. 그만큼 논쟁을 불러일으키지만,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인 것 같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r*******n 2014.04.03. 신고 공감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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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롯 ZEALOT]-기독교의 나라 미국을 논쟁에 빠뜨린 화제작
"[젤롯 ZEALOT]-기독교의 나라 미국을 논쟁에 빠뜨린 화제작" 내용보기
나는 비종교인으로 종교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해서 종교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다만 종교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으로 인해 타 종교에 대한 배척으로 전쟁까지 불사하는 이들에 대한 거부감이 나를 종교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그런 내가 선뜻 이 책 <<젤롯>>을 읽어보려고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존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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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종교인으로 종교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해서 종교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다만 종교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으로 인해 타 종교에 대한 배척으로 전쟁까지 불사하는 이들에 대한 거부감이 나를 종교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그런 내가 선뜻 이 책 <<젤롯>>을 읽어보려고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존 유욕타임스 1위와 20년간의 연구로 복원한 인간 예수를 만날 수 있으며 "예수는 정치적 혁명가였다"는 작품 소개에 호기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20년 이상의 역사적 고증을 통해 완성된 예수의 전기로 교회의 틀에 갇혀 신적인 존재로서만 알려진 "예수 그리스도"를 벗어나 유대의 독립과 민중을 위해 싸운 혁명가 '나사렛 예수'로서의 면모를 제시하고 있는 논픽션(출판사 서평 中)이라는 점이 상당히 매혹적이었다. 아마 종교로서의 예수가 아닌 인간이었으며, 혁명가였던 예수를 만난다는 점에 흥미를 갖지 않을 독자를 없으리라.

 

저자 레자 아슬란은 작가이자 종교학자로 복음주의 기독교에 심취했다가 이슬람으로 개종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무조건적인 믿음으로 한 복음주의 기독교의 기반이 명백한 잘못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신자가 아닌 학자로서 종교학을 공부하고 성서를 연구하면서 역사적 예수의 삶과 그가 살았던 세계에 대해 공부할수록 예수에 더 끌렸다고 한다. 연구 결과, 그는 훨씬 더 헌신적인 나사렛 예수의 제자가 되었고 예전보다 더 신실해졌다고 말한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독자들, 특히 기독교 독자들에게 이 책이 예수가 살았던 세계의 완전한 감각을 제공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예수가 누구였는지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이해 하에 두는 것이 열쇠라 했으며 이 책은 그것을 담고 있다고 했다. 종교 부문에서 이례적으로 아마존 전체 베스트셀러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오른 이 작품은 역사상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인 예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저자에 의하면 예수는 '정치적 의식이 투철한 유대 혁명가'였다. 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하느님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해,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웠음을 외치며 민중 운동을 일으키다가 로마 당국에 의해 처형된 '열성파' 인물이다. 이 책은 1세기 팔레스타인, 로마 제국의 통치 하에 수난 당하며 여러 차례 봉기를 일으키기도 했지만 결국 예루살렘이 함락되며 멸망에 이른 역사적 배경을 소상하게 밝히는 것은 물론, 복음서 저자들의 저술 동기, 그리고 예수 동생 야교보와 바울의 관계를 조명하면서 유대 전통에 뿌리박은 예수의 정치적이고 현실적인 가르침이 어떻게 점차 희석되면서 결국 오늘날의 우리가 아는대로의 예수상으로 변화했는가를 흥미롭게 개진하고 있다. (본문 12,13p 추천사 中)

 

이 책은 종교를 떠나 실존 인물로서의 예수, 즉 기독교가 생기기 '이전의' 예수 모습을 많이 찾아내기 위해 기획되었다. 그렇다면 예수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그는 2,000년 전 갈릴리 시골 지역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돌아다닌 인물이었으며,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겠다고 추종자들을 끌어모아 매시아 운동을 펼친 정치의식이 투철한 유대 혁명가였다. 비록 그가 성전을 공격했으나 선동죄로 로마에 체포당하고 처형당했지만 말이다. 그는 죽음과 함께 역사적 인물인 진짜 예수가 아닌 신앙의 대상인 예수가 되어야했다.

 

2,000년이 흐른 오늘날, 바울이 만든 그리스도가 역사적 예수를 완전히 집어삼켜버린 셈이다.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제자들을 이끌고 갈릴리를 배회하던 혁명적 젤못에 대한 기억, 예수살렘 성전 제사장들의 권위에 반발한 매혹적인 설교자에 대한 기억, 로마의 압제에 도전하다 실패한 과격한 민족주의자에 대한 기억은 역사의 뒤편으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본문 308p)

 

예수가 할동하던 시대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종교적 배경을 소개하고, 예수 운동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역점을 둔 <<젤롯>>은 예수에 대한 맹목적 믿음으로 거부감을 들게했던 이들을 배제하고 예수의 삶과 사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 작품이었다. 역자는 예수의 진면목이 궁금한 이들, 그러나 예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 또한 예수에 대해 좀 알고 있는 이들이나 예수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이들, 여러 가지 이유로 예수를 알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있다. 사실 역사적 인물로서의 예수가 아닌 그리스도 예수에 대해서만 알고 그들을 추종하는 이들에 대한 거부감으로 예수의 진면목을 알고자 하지 못했던 나에게는 이 책은 생각지도 못했던 혁명가였던 역사적 인물을 알게 해 주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게는 종교 서적으로서가 아닌 역사 인문 서적으로서의 작품으로 더 의미가 있었다는 뜻이다. 책을 읽다보면 이 책이 기독교인들에게는 반감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비종교인에게 예수라는 인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기독교인들에게도 환영까지는 아니더라도 반감을 표할 작품은 아닐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함께 해 본다. 이 책은 예수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작품이었으니 말이다. 결국 저자가 그랬듯이 예수를 알게 됨으로써 상당수의 독자들이 예수에 대한 믿음이 신실해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s*****2 2014.12.0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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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를 걷어낸 인간 예수 《젤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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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세상을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여도 확실히 세상은 재미있어 진다. 역사에는 지구가 네모인 줄만 알았던 적도 있었고  숫자 0이 존재한다고 말했다가 사형을 당했던 수학자들도 있다. 역사는 우리에게 과거와 현재를 크로싱하여 진리를 깨우쳐주는 위대한 소산물이다. 시대를 관찰하고 입증하며 과거의 사건을 비평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역사. 그 역사 안에서 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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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세상을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여도 확실히 세상은 재미있어 진다. 역사에는 지구가 네모인 줄만 알았던 적도 있었고  숫자 0이 존재한다고 말했다가 사형을 당했던 수학자들도 있다. 역사는 우리에게 과거와 현재를 크로싱하여 진리를 깨우쳐주는 위대한 소산물이다. 시대를 관찰하고 입증하며 과거의 사건을 비평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역사. 그 역사 안에서 나사렛 예수를 찾아낸 여정이 이 책 《젤롯》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란 혁명 때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에 심취하였다가 이슬람교로 개종한 종교학자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예수의 시대를 관찰하고 입증하는 방법으로 예수에게 덮여있는 신학의 수건을 걷어내고  '인간' 예수, 즉 나사렛 예수의 삶에 대한 새로운 조명을 시도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성서를 종교가 아닌 학문으로 볼 수 있도록 하며 과거  복음주의 기독교가  기반으로 하고 있는 축자영감설(축자영감설을 지지하는 이들은 성서의 원본이 문자적으로 오류가 없다고 보기 때문에, 성서의 문자적 해석을 최선의 해석으로 보거나 성서내용을 과학적 사실이나 역사적 사실이라고 해석한다.)성서무오설(성서에는 오류가 없다)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에 의의를 제기한다. 종교학자인 저자는 예수를 복음주의 기독교의 기반으로서가 아닌 학자로서 나사렛 예수의 역동적인 삶에 다가갈수록 인간 예수이자 당시 로마 제국의 잔혹한 압제에 저항한 혁명가의 예수를 역사에서 불러내었다. 

 

 

 

 

 신화와 현실이 구분되지 않은 시대 

 

저자가 주목한 것은 신약의 기자들- 마태, 마가, 누가,요한, 바울,야고보-에 의한  예수님의 기록에 대한 해석을 새롭게 한다. 저자는 예수의 시대, 지금으로부터 이천년 전의 고대 사회에서는 신화와 현실이 구분되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영웅이야기의 사실 관계 자체는 거짓이지만, 그 밑에 깔려 있는 메시지는 참된 것으로 인지했음에 주목한다. 예를 들면  동정녀 마리아의 수태고지라는 신화를 만들어낸 성서의 진실은 지도상에서는 표시조차 되어 있지 않은 가난한 마을 나사렛에서 태어난 유대인 목수의 아들이라는 예수의 출생의 진실을, 신약 기자들이 밝히는 예수 탄생 비화(헤롯의 대학살을 피해 피난 중 베들레헴이라는 마굿간에서 태어난 기록)는 역사적으로 불가능한 일임을 짚어낸다.  저자는 신약성서의 기자들이 실제 일어난 역사적 배경과의 차이점을 구약에서 예언하였던 구세주라는 신학적 메시지를 덧씌우는 하나의 신학적 장치로 설명한다. 가난한 유대인 청년이었던 예수에게 신화적 이미지가 덧씌워질 수 밖에 없었던 역사적 배경은 예루살렘의 역사를 통해 밝히고 있다. 당시 로마의 억압에 저항하여 똘똘 뭉쳤던 젤롯이라는 혁명당들에 대한 로마의 보복으로 예루살렘은 초토화되었고 이에 뿔뿔히 흩어지게 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는 강한 유대감이 형성되었는데 그 구심점의 역할을 한 것이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후, 예루살렘을 근거지로 한 복음전파였다. 예수를 신격화한 결정적인 역할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었다.  

  로마의 압제에서 유대인들을 해방시키려다가 실패한 인물이 아닌, 이 땅의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는 천상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굉장히 혁명적인 책이다. 예수를 성서나 종교의 이미지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재조명이라는 자체는 무척이나 혁명적이다. 특히 저자가 말하였듯 지나치게 신비주의와 근본주의(무조건적인 믿음)에 빠져 있는 우리나라 교회 종교지도자들에게는 반갑지 않은 책일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세상을 조금만 다르게 보아도 전혀 다른 세상이 되는 것처럼, (다만, 논픽션치고는 추측이 많다는 것이 조금은 불편함으로 남지만) 신비주의를 걷어낸 인간 예수의 모습은 예상외로 신선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2 2014.03.3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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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정치적 혁명가, 나사렛 예수를 만나다 [젤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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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혁명가, 나사렛 예수를 만나다 [젤롯]                                                 자동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가거나 여행을 떠나 보면 한 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파노라마로 이어진 연속의 풍경들을 보게 되는데 그 곳에서 꼭 만나게 되는 표식이 있다. (뭐, 굳이 떠나지 않더라도 우리 아파트 내에서 고개만 돌려도 벌써 몇 개가 보인다. ) 바로 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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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혁명가, 나사렛 예수를 만나다 [젤롯]

 

 

                                       

 

 

자동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가거나 여행을 떠나 보면 한 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파노라마로 이어진 연속의 풍경들을 보게 되는데 그 곳에서 꼭 만나게 되는 표식이 있다. (뭐, 굳이 떠나지 않더라도 우리 아파트 내에서 고개만 돌려도 벌써 몇 개가 보인다. )

바로 십자가이다. 낮에는 그런 대로 건물 틈에 가려져 있거나 세상을 공평히 비추는 백색의 햇빛 아래 묻혀 있기 십상이지만 저녁 어스름이 내릴 무렵이나 흑색의 어둠이 지배하는 밤이 되면 어김없이 붉은 빛을 발하는 열십자의 표식. 특히 어두운 밤에 휘 둘러보면 검은 색을 배경으로 봉긋이 떠올라 있는 붉은 네온의 빛은 그로테스크한 공동묘지를 방불케 하며 갑자기 소름이 오소소 돋게 만든다.

신을 섬기는 성전임을 알리는 십자가가 이 나라 도시며 시골 할 것 없이 구석구석을 잠식해 들어가 있는 것을 집 아닌 다른 곳으로 떠나 보면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 경주의 양동민속마을로 가족 나들이를 떠났다고 하자. 시대적 배경이 과거인 드라마나 영화의 세트에서 한 번씩 현대적 감각의 건물이나 간판들이 보이면 옥의 티라고 짚어내듯이, 민속마을의 정겨움이나 시간을 거슬러오르는 듯한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찾아간 그 곳에서 십자가를 발견한 순간 왠지 모르게 김이 팍 새버리는 느낌적 느낌. 아는 이는 아실 터~~.

눈만 돌리면 시야에 걸리는 거대한 십자가의 공동묘지 속에 우리가 사는 아파트가 덩그러니 들어서 있다고 생각하면, 참, 굳이 발버둥치며 크고 비싸고 좋은 곳을 골라 집을 마련해 본들 무덤 한가운데일 뿐이라는...어쩔 수 없는 허무함의 촉수들이 나를 발끝에서부터 나를 감싸돌아 올라온다.

무신론자이기에 성전의 표시에다 대고 이런 날려차기를 함부로 해대는지도 모르겠다.

절박함이 없어서 절대자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훗날, 정말로 내가 세상에 기댈 데 없고 붙잡을 끈 하나 없는 혼자라는 것을 느낄 때, 영혼의 구원을 위해 종교에 귀의하게 되는 날을 맞이할지도 모르겠지만...전지전능한 예수!, 우리를 구원할 예수!라는 등의 선전구호는 아직 내 귀에 와서 제대로 꽂히지 않고 빠른 속도로 귓등으로 사라지고 만다.

 

“나사렛 예수”는 역사적 인물에 중점을 둔 이름이고, “그리스도 예수”는 신앙의 대상으로 받드는 이름이다. [젤롯]이 “그리스도 예수”에 대해 얘기하는 책이었다면, 몇 장 읽지 않고 미련없이 이 책을 덮어버렸을 것이다.

 

 

 

교회에 대한 알 수 없는 반감만이 남아 있는 나에게도 어린 시절, 교회의 지하 예배당에서 또래 아이들과 기다란 벤치에 주루룩 앉아 손뼉을 치며 성가 합창을 해대던 기억이 남아 있다. 어떻게 그 자리에 앉아 있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사랑하는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혀 붉은 피를 흘리시면서 사흘 만에 돌아가셨네”

뜻도 모른 채 흥얼거리던 이 노래가 아직도 리듬, 박자, 가락 하나 잊히지 않고 되살아난다. (역시 조기교육의 힘이란, 어린 세포들의 생기왕성한 활동이란~~)

이 노래가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 책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나사렛 예수”로서의 삶을 짧고 강렬하게 표현한 가사 때문이다.

 

“나사렛 예수”로 예수를 연구하는 갈래도 여럿이어서 윤리적 교사, 사회 개혁가, 정치적 혁명가, 심지어 마술사나 퇴마사로 보는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책의 저자는 ‘정치적 의식이 투철한 유대 혁명가’로서의 예수에 보다 집중하고 있다.

 

나사렛 예수에 대한 보도 가운데 확실한 역사적 사건은 두 가지.

첫째, 예수가 기원후 1세기 전반에 팔레스타인에서 유대 민중 운동을 일으킨 유대인이었다는 사실.

둘째, 예수를 로마 당국이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했다는 사실.

 

 

        

 

 

기독교가 생기기 이전의 예수, 정치의식이 투철한 유대 혁명가로서의 예수. 그는 2000년 전 갈릴리 시골 지역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돌아다닌 인물이며,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겠다고 추종자들을 끌어모아 메시아 운동을 펼친 인물이다.

결국, 처형당했으니 실패로 끝난 그의 활동으로 예수는 잊혀졌는가? 오늘날 수많은 성전과 ‘십자가의 무덤’을 우리나라, 아니 전세계에 퍼뜨린 “그리스도 예수”로서의 인물상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이 책은 혁명가 예수를 말함과 동시에, 이 땅 위에 하느님의 통치를 이루려는 예수의 운동이 실패한 뒤에, 그의 추종자들이 예수의 활동과 정체 뿐 아니라 유대교 메시아의 본성과 정의를 어떻게 재해석했는지에 대해 다룬다.

“디아스포라”라는 말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했었는데, 예수의 추종자들이 만든 세력들과 예수 제자들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헬라파’를 가리키는 말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길거리에 모여 성가를 부른다거나 자신의 놀라운 신앙체험을 바탕으로 포교활동에 나선 사람들이 ‘회개하십시오’라고 울부짖으며 집집마다 거리마다 다니는 행동을 볼 때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어쩌면 저 모습이 내 미래에 있을 한 장면을 아닐까 싶어 지레 겁을 먹으면서 때때로 정신줄을 바짝 조여매는 계기로 삼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나사렛 예수의 간략한 일생이나마 혁명가로 소개된 글을 접하고 보니 예수에 대한 막연한 반감, 뚜렷한 이유를 제시하지도 못한 채 눈살만 찌푸렸던 그 반감-아마도 광신도들의 무분별한 행동으로 인해 파생된 거부감이지 않을까-이 약간은 사그라 들게 되었다.

어쨌거나 예수는 실존했던 인물이며, 나름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목숨까지 바치며 온 생을 다해 전력투구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한 인간으로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마가복음이니 마태복음, 누가복음, 요한 계시록 등 머리가 다 아파지려고 하는 수많은 복음서들에 얼마만큼의 역사적 진실이 들어있는지는 오직 신만이 아실 것이고, 예수 사후의 “신앙화”와 관련된 작업은 오직 신앙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아는 것이 힘이다”는 진리다!!

 

YES마니아 : 골드 s*******e 2014.06.14.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가장 신비한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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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으면서 상대적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 않는 인물은 예수이다. 예수는 본인이 한줄의 글도 남기지 않았고 그의 사후 그의 제자들이나 그를 따르는 인물들에 의해서 성경이라는 종교적 경전을 통해서 알려진 것이 거의 전부이다. 성경은 역사적으로 자세한 기록을 남긴 사료라기 보다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 의해서 신학적인 작업이 가미된 종교적 기록이
"가장 신비한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 내용보기

역사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으면서 상대적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 않는 인물은 예수이다. 예수는 본인이 한줄의 글도 남기지 않았고 그의 사후 그의 제자들이나 그를 따르는 인물들에 의해서 성경이라는 종교적 경전을 통해서 알려진 것이 거의 전부이다. 성경은 역사적으로 자세한 기록을 남긴 사료라기 보다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 의해서 신학적인 작업이 가미된 종교적 기록이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성경을 사료로 사용하는 것을 꺼려한다. 사료써서 신뢰성이 없다는 이유이다. 그러나 그 당시 역사적 예수를 복원하기 위해서 반드시 성경의 사복음서를 참조해야 한다. 예수 생존과 가장 가까운 기록은 성경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에 신학계나 역사학계에서 역사적 예수를 복원하기 위한 활발한 활동을 벌였는데 1차 사료로써 성경보다는 2차 자료로써 자료들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역사적 예수를 복원하는 작업조차도 신뢰성이 떨어진다.

 

예수를 연구하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이다. 첫째는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리스도로써의 예수, 즉 신앙적 예수로 연구하는 것이다. 최근에 성경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많이 나온다. 최근에 ‘노아’가 그러했고 또 조만간 ‘선 오브 갓’이라는 예수 생애에 관한 영화가 나온다. 두 번째 영화는 그 내용이 얼마나 성경에 충실한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개봉한 ‘노아’는 이야기의 전체적인 얼개만 성경을 차용했을뿐 내용이나 인물이나 메시지는 전혀 다른 것이였다. 한마디로 영화 ‘노아’는 성경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해낸 다른 이야기이다. 즉 노아의 내용과는 철학과 메시지가 전혀 다른 것이다. 후자 ‘선 오브 갓’도 어떻게 그려질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전자와 같이 다른 메시지가 담겨 있지 않을까 한다. 이와같이 적어도 성경에 충실하게 그려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아무리 성경 이야기라 할지라도 단순히 새로운 창작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꺼낸이유는 바로 역사적인 예수를 연구할 때 빠지기 쉬운 오류가 바로 이와같다는 것이다.

 

이 책 <젤롯>은 이란 사람으로 처음에는 기독교인이였다가 이슬람으로 돌아간 레자 아슬란이 쓴 책이다. 솔직히 나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예수 이야기는 무수히 많이 리메이크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책은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자료에 의한 역사적 예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러가지 자료를 가지고 이야기를 끌고 나가고 있고 역사를 소설처럼 직조하여 써내려가는 서술이 상당히 매력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의 제목처럼 ‘젤롯’ 즉 그 당시 로마에 반대한 유대 정치당을 뜻하는 것으로 예수가 바로 정치의식이 투철한 ‘유대 혁명가’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로마 제국에 맞서서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한 혁명가로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종교학자이므로 그가 역사적 사료를 사용하여 서술해 나가는 예수 이야기는 충분히 귀기울여 들을만 하지만 최종적인 결론으로 예수를 ‘정치의식이 투철한 유대 혁명가’라는 것은 적어도 가장 역사적 예수와 근접한 저작인 사복음서에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을 오래동안 천착하여 읽어온 바로 사복음서는 절대로 예수가 정치적인 인물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가 전파한 ‘하나님 나라’는 로마제국에 대항하는 정의와 사랑의 정치적 나라가 아니다. 예수는 정치적이지 않았으며 정치에 대해서 직접적인 개입이나 언급이 없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말을 책잡기 위해서 세금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가이사에게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라는 질문을 했을때도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말하면서 정치적인 올무를 벗어났다. 실제로 예수는 정치적 혁명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인간을 죄의 올무에서 해방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오셨다고 하셨다.

 

지금까지 예수가 새롭게 조명되고 저술되는 것이 확실히 그가 논쟁적이거나 신비의 인물인 것은 틀림없다. 이렇게 이천년동안 지속적으로 재정의되고 재진술되는 것을 보면 예수라는 인물은 이 세상 역사적 관점과 지성적 관점에서 벗어나 있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역사가 예수라는 인물을 기점으로 나뉘고 지금까지 흘러간 역사의 흥망성쇠가 이 한 인물의 영향력을 간과할수 없는 것이 확실하다면 역사적 관점이 아니라 다른 관점을 들여다 볼필요가 있다. 역사와 신앙은 분리되지 않으며 신앙은 현실에서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적어도 가장 시간적 거리가 근접한 성경을 통해서 진지하게 예수를 연구해 본다면 역사적 예수와 신앙적 예수 사이에 간격은 좁혀질 수 있을 것이다. 인류가 자신의 근원을 궁금해하고 자신들의 역사의 미래를 궁구한다면 그 중심에 놓여있는 한 인물이 역사 흐름의 본류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2천년전의 인물이 누구인지 재구성하는 것인 고고학 지식의 하나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한 인물의 영향력이 살아있다면 오늘날 예수가 누구인지 사려깊은 사람은 생각해 볼 수도 있는 문제이다.

 

우리가 아는 한, 예수가 태어날 즈음 나사렛에는 목수가 할 만한 일거리가 별로 없었다. 전통적으로 예수의 직업은 어쨌든 목수(그리스어로 ‘테크톤’)로 알려져 있는데, 신약성서 전체에서 그가 목수라는 보도는 딱 한 번 나온다.(마가복음 6:3) 이러한 보도가 사실이라면, 일용직 직공인 예수는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최하층 계급에 속하는 셈이다. 그 밑으로는 거지나 노예만 있었을 뿐이다. 로마인들은 목수로 번역한 그리스어 ‘테크톤tekton’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나 문맹 소농을 가리키는 속어로 사용했는데, 예수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YES마니아 : 골드 f****1 2014.04.03.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