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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먹어야 살 수 있다. 그러니 먹거리는 삶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먹거리를 생산하고 거래하고 먹는지가 지나간 삶과 현재의 삶,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19세기 프랑스의 법률가이자 미식가인 브리야 사바랭은 <미각의 생리학>에서 "당신이 먹는 것을 말해준다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고 했다. 먹는 음식이 그 사람의 정체성을 말해준다는 뜻이다. 어떻게 먹느냐는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보여주기도 하고, 젠더 정체성을 규정하며, 문학작품이나 드라마, 영화 등에서는 성격과 인물들 간의 관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할까?
이 책은 음식 문화 전체를 살펴보고, 먹거리의 순환으로 본 소비문화를 짚어 보고, 생명을 위한 본능적인 욕구를 넘어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위한 먹거리를 생각해 본다. 먹거리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체계가 구석기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변해 왔는지, 요리가 자연적인 것들을 문명적이고 사회적인 존재로 바꿔 놓는 과정을 통해 음식 안에 담겨 있는 인간의 삶을 돌아본다. 산업화와 시장경제 속에서 먹거리가 자연에서 온다는 사실은 사라지고 욕망을 채워주는 상품으로만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사실 자연에서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먹거리가 건강하고, 안전해야 사람도 건강하고 안전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한 개인이 자신을 드러내는 식생활 습관은 그가 태어나고 살아온 문화 속에서 사회화된다. 개인은 자신이 속한 사회 속의 관습을 배우고 익히며, 문화의 먹거리 분류체계에 익숙해지게 된다. 단순한 수렵과 채집에서 시작되어 농사를 짓고, 가축을 사육하고, 식재료를 조리하고 저장하는 가공 과정에서 음식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먹거리를 장만하고 먹는 과정이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며 먹거리를 둘러싼 관례와 위계, 나아가 상징적인 의미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러한 음식문화는 자연환경에 따라,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그리고 사회적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져왔다.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금기 음식문화,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에서 세계의 음식이 된 피자, 먹방과 쿡방의 전성시대, 먹거리의 대규모 산업화와 세계화, 녹색혁명, 곤충의 종말, 풍요 속의 결핍인 비만과 기아 등 굉장히 다양한 음식과 문화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우리는 먹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지, 더 나은 미래와 자연환경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음식물쓰레기를 줄이고, 친환경 먹거리를 소비하는 등 현재의 먹거리 체계를 바꾸기 위한 방법 등 중요한 화두를 던져주고 있기도 하다. 먹는 일은 날마다 이루어지는 생활의 일부분이다.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는 존재이니 말이다. 먹는 일은 생명을 유지하는 활동이면서 가장 일상적이고 사회적인 활동이기도 하다. 우리는 살면서 '밥 먹어야지'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다. 거리에 나서면 어디든 먹거리가 넘쳐나고, TV에서도 온라인에서도 온통 먹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다양한 먹거리를 풍요롭게 누리는 동안 우리가 정작 잊고 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위한 먹거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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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년 전만 해도 난, 먹기 위해서 산다 주의였다. 후즐근해도 편하기만 하면 옷은 충분히 제 역할 하는 거였고, 손에 들고 다니는 걸 싫어해 가방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으며 화장하거나 펌 하는 등의 꾸미는 건 귀찮은 존재였다. 자유롭게 다니며 즐기고 맛있게 먹는 것, 그게 내 삶을 이루는 초석였다. 그래서 맛있다더라 귀동냥 한 곳은 어디에 있건 가서 맛봐야 했고 맛집 찾아 여행 계획 세우며 토속음식도 더불어 끼우면서 설레는 등, 이왕 먹는 것 비싸더라도 맛있는 곳에 가서 제대로 먹자가 내 신념였다.
그런데 요몇년 사이, 세월은 이길 수 없다는 말처럼 나이 들수록 느껴지는 육신의 노화는 살기 위해 마지못해 먹는다로 바뀌기 시작했다. 호볼호가 명확했던 탓에 회식자리 가서도 내 밥그릇은 제대로 챙겼는데 요즘은 설령 내가 먹을게 없다해도(편식이 심한 탓에) 몇 젓가락 끄적거리다 말지 뭐~ 시큰둥해진 것이다.
그래설까, #생명과공존의먹거리 가 눈에 띈 이유가? 생일때 찰밥에 미역국 차린 밥상 대신 치킨이나 피자 기프트콘으로 생일밥상을 대신해도 좋아하는 걸로 잘만 먹었다면 그건 제 역할 다한 거라 생각하는 편이다. 카카오톡으로 축하 및 조의카드가 도착하고 직접 가는 대신 축의 및 조의금을 클릭 한번으로 이체해도 의미만 전달 됐다면 된 거라 생각한다. 키오스 주문결재 후 가져가 먹는게 얼굴 맞대고 주문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편한 것처럼 모든 건 시대에 따라 삶의 방식에 따라 선호도에 맞춰 달라져 가고, 음식 또한 다를게 없다 여기는 것이다.
군대 간 큰 아들래미 왔다고 좋아하는 갈매기살 구워 먹이는 아빠의 맘이나, 작은 아들래미 논산 훈련소 보낸 뒤 쓸쓸한 마음에 닭도리탕 시켜놓고 소주잔 기울이는 마음이나... 우리 삶의 희노애락이 음식과 함께 녹아든다는 느낌이 크다. 그게 바로 음식 안에 담긴 삶, 아닐까?
식혜만 해도 엿질금 우려낸 물에 찹쌀고들밥 짓어 붓고서 삭혀 집에서 품 들여 만든 것이 제일이라 여겼는데 캔으로 간편하게 나오더니 요즘은 덜 달고 건강을 생각했다는 다양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모양이다. 설날이 다가온다고 박스 채 선물 배달 된 식혜를 나눠 마시면서 내가 산 찰나의 삶에서조차 이렇게 식문화가 바뀌는데 역사의 큰 테두리에서 본다면 얼마나 굴곡진 변화를 겪으며 소용돌이쳐 왔을까 싶어 새삼스러웠다.
비가 오면 괜스레 기름 냄새 폴폴 풍기는 해물파전이 생각난다. 비오면 부침개, 마치 날씨에 맞춘 루틴처럼 우리네 발길은 붙들어 매는데 아무 생각없이 식재료 사다가 넓적한 후라이팬에 두툼하게 전 부쳐 찢어 먹는 나를 발견할때면 괜스레 우습다. 마치 정수기에 물컵 갖다대면 알아서 물이 나오는 것처럼 비라는 매개가 자연스레 전 부쳐 먹고 앉게 했으니 말이다.
이렇듯 한꼭지씩 읽을때면 '맞넹~' 격한 공감에 박수 치다가 '정말?' 다양하고 풍족한 먹거리 소비가 풍요로운 삶의 여유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말에선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며칠전 논산훈련소 갔을적에 주변 맛집들을 검색하다가 #우렁쌈밥 에 솔깃해서는... 시골이니 쌈채소가 싱싱하지 않겠느냐, 집된장으로 만든 우렁쌈장이 제맛이지 않겠느냐... 했다가 핀잔만 들었다. 되려 시골이 도시만 못할 수도 있다면서. 그래도 넉넉한 쌈밥 한상 받으면서 훈련소 오는 아들들에게 정성스레 만들어 대접하고 부족하면 채워주는 그 손길에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쓴맛이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이유라던가 급한 성질머리대로 먹는 즉시 에너지원이 되고 쾌락을 일깨우는 단맛에의 유혹이라던가... 꽤 흥미롭고 재미난 자극을 주는 글또한 심심찮게 등장해 읽는 재미가 소소했다.
크게 결핍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와선지(내게 주어진 여건에 맞춰 살자는 주의라 그런거지 풍족하게 살아 그리 느낀 건 아니다) 다른 건 부족하게 쓰더라도 먹는 것만큼은 먹고 싶을때 가급적 빨리 그 욕구를 해소하자는 신념이 강해선지 굶주리고 있는 이들에 대한 기사는 내것인냥 느껴지지 않았다. 먹고 살기 위한 노력 없이 베풀어 주길 기대하는 심리를 너무 많이 봐와선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네가 해주는 게 당연하다'면서 당당하게 손 내밀며 요구하는 이들을 볼때면 기가 막힌다. '호의를 권리' 인냥 여기는 이들이 많아짐에 따라 측은지심이 배덕한 마음인냥 생각되는 것이다. '내 돈은 내 돈이고, 네 돈도 내 돈이다' 라고들 생각하는지 애 타고 동정심 자극해 돈 빌려 놓고는 돈 없다 배 째~ 돌변하는 이들도 적지 않고 다른 이들이 어떻게 피해 보든 내 안일만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모습을 볼때면 사회 구조의 변화가 모든 걸 뒤바꾸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자연재해로 생겨난 경제적 기아와 빈곤으로 생겨난 구조적 기아에 대한 예시를 읽으며 괜한 생각의 확장까지 하게 됐다.
코로나 시국을 겪어오면서 식당 가서 먹는 것보단 배달팁 낼지언정 집에서 편하게 앉아 먹는게 당연해지고 찌개며 전골에 다른 사람 숟가락질이 거북해져 1인 밥상을 선호하게 됐으며 빠르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가 사랑 받는 등 다양한 음식 선택의 카테고리에서 편향된 식습관을 가짐으로써 지방을 좀더 몸속에 축적하게 됐다. 덕분에 체중이 1 kg씩 증가할때마다 무릎에 가해지는 압력이 3~5배가량 팍팍 늘면서 무릎통증으로 애늙은이 된 기분이다. 물리치료나 연골주사도 그때뿐이니 결국 근육량을 늘릴 수 있는 식단과 운동을 주기적으로 하면서 체중감량을 해야하는데 풍족한 먹거리와 식탐 많은 내겐 생고문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선지 음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흘러 넘쳐 우리를 괴롭힌다, 그야 말로 속이 텅 빈 풍요다... 절절이 와닿았다. 돈만 있으면 기꺼이 먹을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이 내 몸을 건강을 이롭게 하며 충만감을 준다고 확답할 수는 없다. 정신적 박탈감이나 빈곤을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을 볼때면 차라리 적당한 결핍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지기도 한다.
뭐... 밥이 아닌 과자를 주식으로 먹는 내가 할 소린 아니겠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종이책 질감을 느끼면서, 내가 소비하는 음식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방향성을 가늠해 본 유익한 시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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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서 먹거리는 늘 존재해왔습니다. 가정에서는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 누구와의 만남에서는 차나 술을 마시거나 음식을 먹거나 하며 대화를 나눕니다. 일을 하다가도 중간에 차를 마실 수 있고, 간식을 먹기도 합니다. 이렇듯 먹거리는 생명유지 및 사회적인 활동에서 필요한 존재입니다. 이제는 음식문화가 변화되어 이왕이면 분위기 있는 공간에서 색다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자 합니다. 음식의 다양화도 시작되었구요. 먹방과 맛집블로그가 넘쳐나는 것 보면 뭔가 달라졌구나 싶습니다. 딱 여기까지가 먹거리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왜냐면 우린 소비하는 사람이니깐요.
이제 좀 더 넓은 시야로 먹거리를 생각해 봅니다. 풍요롭고 다양한 먹거리를 생산하고 가공, 유통하는 과정을 말입니다. 이 책은 이러한 과정을 설명하면서 이후에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이야기합니다. 풍요로운 먹거리의 생산과정은 화학 농법을 기반으로 한 대규모 경작과 집중식 가축사육을 기반으로 하고, 다양한 가공식품 등을 생산합니다. 이러한 대량 생산은 패스트푸드와 같은 외식 산업의 증가를 가져옵니다. 그 결과 식사의 외부화와 외주화가 확대됩니다. 음식의 종류는 많은데 전 세계에서 먹는 음식물의 4분의 3이 겨우 12종의 식물과 5종의 동물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갈수록 적은 종과 품종에 기대어 음식을 먹는다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작물의 다양성 수준이 낮아지면 병해충 발생이 더 자주 일어나고, 기후변화에 내성이 약해져 지속 가능한 농업을 어렵게 합니다. 자유무역이란 이름하에 있는 세계 식량 시장은 식량 위기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어느 나라는 굶주리는 국민이 많은 것 보면 알 수 있습니다. 2030년에도 여전히 세계 인구의 8%가 굶주림에 직면한다고 하네요.
요즘의 먹거리는 산업화와 시장경제 속에서 상품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상품을 먹는 거구요. 상품을 먹어갈수록 유통되는 먹거리가 안전하고 건강한지 생각도 못한 채 음식중독에 빠져갑니다. 자연환경까지 생각하기에는 무리이겠죠? 저자는 이 모든 이야기를 하고서 마지막에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할까?"
자연에서 온 먹거리가 안전해야 사람도 안전하다며 건강하고 맛있은 음식을 어떻게 확보하고 먹을지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몇 가지 제안을 합니다. 환경을 오염시키고 생물다양성을 파괴하는 화학농법에 의존하는 대규모 단일경작으로 생산한 먹거리보다는 친환경 먹거리를 소비하고,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유통과정을 거치지 않는 지역농산물을 이용하자고 합니다. 또한 음식물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먹는 양을 조절하자고 합니다. 좋은 먹거리를 위한 제안이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실천이 개인의 건강을 챙길 수 있고 나아가 자연환경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하니 우리 모두 실천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했던 먹거리가 이 책을 통해 깊고 큰 의미를 전달해 준 것 같습니다. 모두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좋은 먹거리는 건강에 좋고, 친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하게 생산되고, 공정한 노동을 보장하고, 누구나 접근 가능한 적정한 수준의 먹거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