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이란 극한 속에서도 생은 지속되어져야 했다. 존재 그 자체가 중요한 사람들에게 이데올로기라던가 신념 이런 것은 어쩌면 그들과 무관한 것이지 않았을까. 그저 하루하루 고통받지 않고 배불리 먹고 살고 싶었던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그 시대가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들에 순응하며 살아왔을 뿐이다. 바람 부는 대로 내몰리며 살아온 그들의 삶은 얼마나 비참하고 참혹했던가. 한편 자의식을 가진 지식인들은 또 어떠했을까. 그들의 신념과 상충되는 현실 속에서, 그들은 구부러져야 했을까, 부러져야 했을까.
해방의 기쁨도 잠시, 혼란 속에 휩싸인 사람들. 어제의 지배자가 오늘은 쫓겨나고 있다. 일본인이 아닌 소련인, 미국인이 그 자리를 차지했을 뿐, 민초들의 삶은 어쩌면 변한 것이 없는 듯 하다. 때론 그 동안 당한 것들을 갚아주려는 듯, 잔혹함과 광기에 휩싸여 일본인과 민족 반역자들을 숙청해 나가는 통에 또다른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어쩌면 숙청당하는 이들의 일부분도 그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택했던 것 뿐, 모두가 사실은 역사 속에서 피해자는 아니었을까.
![]()
'이해랑'과 '마츠무라 준이치로'라는 두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한 사내. 자신이 일본인인지 조선인인지에 대한 의식조차 없이,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기억을 잃어버린 그는 과거 자신의 행적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엄마를 잃고 조선예악원에 머슴으로 팔려갔던 해랑, 우연한 기회에 뛰어난 피아노 실력으로 주목을 받았으나 하필 그가 연주한 곡은 일본의 혼령들을 위한 진혼곡이었으니. 그 일로 그는 모두에게 비난을 받게 되나 단장은 만회할 기회를 주겠다 한다. 조선의 밀정이 되라는 것! 그래서 그는 일본 경무국장의 집 머슴으로 들어가게 된다. 거기서 만난 운명의 여인 나오코. 나오코는 해랑, 아니 이제 마츠무라 준이치로가 된 그의 피아노 실력을 알아보고 함께 협연을 제안한다. 마츠무라 준이치로가 비밀 밀정이라는 것을 알 리 없는 다른 조선인들은 모두 그를 변절자로만 여기는데... 그런 모든 기억을 잃은 해랑은 과거의 자신을 찾기 위해 쫓기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과정은 정말 눈에 그리듯 생생하고 흥미진진하다. 그 와중에 밝혀지는 사건의 전말과 수많은 진실들.
역사란 승리한 자들의 기록이라고 하지. 한 시대에서 추구되는 정의와 역사란 정말 전대의 승리와 후대의 불의로 이어지는 것일까. 해방과 동시에 예전의 사상은 모두 부정되어지는 혼돈의 역사 속에서 개인이 정의하는 역사란 그들 경험에 따라 제각각으로 정의되어지지 않았을까. 그런 비극적인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히 여겨야 할 뿐, 그 시대의 나라도 어쩔 수 없지 않았을까. 해방이 끝나도 여전히 끝나지 않은 참혹한 현실 속에서 살아내야 했던 그들.
예술은 시대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자체에 의미를 두어야 하는 것일까. 오직 예술, 그 자체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이 맞는 것인지, 대의 명분까지 책임지는 것이 맞는 것인지. 분명 예술이란 건 그 파급력도 크고, 현실과 무관할 순 없는데. 그러나 또 너무 많은 사상과 이데올로기로 포장하려는 것은 아닌지.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읽어나갔고, 만화같은 분위기의 삽화들도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많은 질문을 내게 던져주었다. 역사의 의미와 예술의 명분, 존재 이유에 대해.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헉!' 신음 같은 탄성이 나왔다. 또다른 반전과 거대한 진실을 마주한 기분이랄까. 이것은 직접 확인하시길 빈다.
구절 받아적기
p 79. 그 사람이 누구라는 게 정해져 있는 건 아니오. 세상에 사실이란 건 없으니까.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으로 자신이 누구인가 결정될 뿐이오. 자기가 어떤 일을 하느냐로 말이오.
p 119. 꼭 모든 것을 밝혀내는 것만이 진실이라 할 수는 없다. 때로 덮고 잊는 것이 삶의 진실일 수도 있다. 생은 여러 겹의 빛깔로 스스로를 에워싸고 있는 것이니. 굳이 그것들을 벗겨낸다고 해봤자 남는 것은 쓸쓸함뿐일 것이다. 사는 일이란 다 뒤죽박죽된 일들 뿐이니까. 하지만 자신을 둘러싼 무수한 허위들에서만은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p 261. 그건 핑계에 불과해. 세상은 대개 핑계로 이루어져 있어. 그 핑계가 거대한 목표처럼 치장되곤 하지. 그래서 핑계라는 것은 명목적으로 중요한 거야.
p 355. 일정 때 자신을 지키며 살 수 있는 길은 자신을 속이는 길밖에 없었어. 많은 조선인들이 자신을 속여 밀정이 되고 변절자가 되고 첩자가 되었어. (...)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 것이니까. (...) 더 중요한 것은 치욕과 모멸을 견디는 것이지. 이를 악물고 견뎌야 할 것을 견디는 거. 이 세상에 목숨을 걸고 살아남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어욧!
|
|
어느날 눈을 떠 보니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 주변의 다른 모든 사람들은 나를 아는것 같은데, 스스로는 자신이 누구이며 왜 이런 상황에 있는지 낯설기만 하다. 그래서 자신이 누구인지 과거가 어떠한지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에서 하나둘 드러나는 자신과 얽힌 과거의 이야기들. 어쩌면 약간 진부한 줄거리일 수 있지만 주인공과 시대상이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읽는 동안 주인공에 몰입되어 갈수록 어느 한 사람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그 시대의 우리민족 전체가 겪었던 정신적인 문제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스스로 지우고 싶은 과거였기에 기억하지 못하다가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여 결국은 과거를 백일하에 드러내야 했던 그 아픔.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결코 모든 것을 다 드러내지 못하고 일부분만은 가려져야 했던 일들이 가슴을 저미게 한다. 한국이름 이해랑, 일본이름 마츠무라 준이치로. 일제강점기 독립투쟁을 위한 조직의 밀정이 되기 위하여 뼛속까지 일본인으로 변화하기 위하여 일본 경무국장의 양아들로 변신한 주인공이다. 그러나, 총상을 입고 기억을 잃은 상태로 깨어나 스스로를 찾아 가는 과정에서 일본인들은 밀정 이해랑을 찾아서 제거하려 들고, 한국인들은 친일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마츠무라를 제거하려고 든다. 그 와중에 친일 고등경찰을 지냈던 사람은 일제의 허위 정보인 금괴를 찾으려 이해랑을 쫒는다. 어느쪽으로도 탈출구를 찾을수 없는 주인공의 끊임없는 생존 투쟁의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은 스스로의 정체성에 수많은 의문을 제기한다. 스스로가 조선인인지 일본인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자문을 하고 있다.
이야기는 결국 이해랑은 자신이 조선인으로 밀정이 되었음을 인정받고 조선인으로써의 행복한 삶을 이어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과정에서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밀정지만 조선예약단의 단장에까지 이르는 국재명의 비리가 드러나게 되는데, 우리시대의 단면을 꼭 찝어내는 것 같아 가슴이 쓰려온다. 아직도 친일파가 물질적으로 부유하게 평온한 삶을 영위하고 독립투사들의 후손이 생활을 연명하는 것을 보면서 두 장면이 소설책위로 오버랩되는 느낌이다. 그러나 마지막 이해랑의 이모라고 불리는 여자의 독백에서 엄청난 반전을 일으킨다. 이해랑은 자기가 지어준 이름이며, 옆집 일본사람집의 둘째아들인데, 첫째아들과 어머니의 죽음 직후 자신이 그 둘째를 데려다가 마치 조선인인양 조선예악단에 팔아넘겼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과연 주인공은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그토록 찾아헤메던 자신의 정체성을 올바로 찾은 것일까? 저자가 모든 독자에게 물어보는 질문인 나는/당신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마지막 읖조림을 넣어둔것은 아닐까? 시대 배경이 일제강점기이기에 우리의 많은 선조들이 자신을 버리고 세상에 순응하여 살아남아야 했기에 이 이야기는 더욱더 읽는 이들로 하여금 가슴을 저미게 한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될수도 있기에. 알려진 사실과 진실은 또 다들수 있지마 알려진대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과연 진실을 모른채 누구에게 죄를 물을수 있을 것인가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가상의 소설이기는 하지만 스스로에게 나는 누구이며, 어떤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가장 원초적인 질문을 던져준다.
|
|
잘 읽혀지는 소설을 한 편 만난 것 같다. 이야기가 시공간을 왔다갔다하면서 이루어지지만 비교적 선명하게 전개되어 가서 그런지 내용이 나에겐 잘 다가왔다. 역사적인 흔적과 맞물려 창조된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전개되기 때문에 그 시공간의 이야기들이 기존의 상상 속에서 흥미롭게 전해졌다. 해방 전의 시간과 해방 직후 시간들이 겹쳐지면서 순차적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일제 세력에 동조해야 했던 인물과 해방 운동을 전개하면서 아픔을 겪었던 인물들의 이야기가 겹쳐서 전개되면서 흥미롭게 펼쳐졌다. 더구나 내가 어린 시절에 자랐던 공간이 이야기의 시작점이 되어 더욱 가까이 느껴지면서 읽힌 듯하다. 나에겐 꽤나 흥미롭게 읽힌 책이다. 첫 장면이 상당히 긴장감 넘치게 전게 된다. 두 남녀가 한적한 곳에서 사랑을 나누고 그곳에 자객이 숨어들면서 저격이 일어난다. 장면은 시간상 이 글 전체 내용의 중간 부분에 해당된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중간 지점에서 장면이 상당히 관능적으로 묘사되면서 한 인물의 저격 장면이 연출되는 것이다. 그 인물은 일본인 여인과 함께 산사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변을 당한다. 그리고 그 장면 후 생명마저 신비롭게 처리되고 이야기는 둘로 나뉜다. 결국은 그 인물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되지만 처음 부분에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읽게 된다. 인물 해랑에 관한 이야기다. 해랑은 가족들이 죽어버리고 옆집 여인에 의해 조선예악원에 팔리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을 해주면서 성장하게 된다. 성장하면서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을 가진 사람으로 표현되고, 다른 사람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듣기만 하여도 그것을 연주해낼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인물로 표현된다. 그래서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집단이었던 조선예악원에서는 그를 정보를 빼낼 수 있는 사람으로 삼아 경성 경찰서로 들여보내게 되고 그곳에서 그는 간부들에게 신임을 얻게 한다. 그는 또한 무술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시합에서 우승을 하는 상황까지 연출되며 경무국장를 지키는 시위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경무국장의 젊은 아내였던 피아니스트 나오코에게 음악적인 능력이 인식되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일제 말기 전쟁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총독부는 군자금을 모으기 위해 나오코를 중심으로 음악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한다. 그 때 나오코는 해랑과 함께 연주하지 않으면 하지 않겠다고 하고, 경무국장은 그렇게 하라고 허락한다. 그때부터 해랑과 나오코는 모든 면에서 가까워지는 관계 형성이 되고, 심지어 마음까지 나누게 된다. 해랑의 일본 이름은 마츠무라 준이치로다. 그는 두 개의 이름으로 그렇게 두 가지 일을 하면서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조선예악원 단장의 살해 사건이 터지게 되고 경무국장이 죽게 되는 일이 벌어지는데 마츠무라 준이치로가 경무국장을 죽인 살인 용의자로 몰리게 된다. 일제 말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혼란스러운 여러 일들이 일어나는데 당시 이름을 얻고 있던 마츠무라 준이치로가 그 상황 속에 깊이 관계를 맺게 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본인이 아무리 그렇지 않아도 사회가 만들어 나가는 울타리 속에 엮여 나가게 되면서 그의 삶은 꼬이게 된다. 또 한쪽은 해방 후 경북 조그만 소도시인 하양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해랑을 은실이 보호하고 있다. 그들을 지역 청년들이 매국노라고 잡아 죽이려고 한다. 해랑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쫓기는 상황이 되고 있음을 보면서 자신을 찾는 여정을 시작해 간다. 경성으로 올라가기 위한 노력과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 이루어진다. 그러면서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한편 일본이 패전국이 되고 조선에 있던 많은 일본인들이 그들의 나라로 돌아가기 위해 애를 쓰는 장면이 연출된다. 그 속에 돌아가려고 부산에서 배를 타려던 나오코는 자신의 행적을 알아보는 사람들에 쫓기어 도망가게 되고 결국 철원까지 흘러든다. 그곳에서 위기에 처했을 때 해랑과 한번 만나는 장면도 그려진다. 그러나 해랑이 기억력을 상실했기에 그녀가 자신과 어떤 관계인지 모르고 스쳐 지나간다. 해랑은 서울에 올라와 조선예악원에 들리게 되고, 그곳에서 국제명 단장을 만나게 된다. 그들 사이에 미묘한 감정이 흐르게 되고 그가 사건의 주요 인물임을 독자들이 느낄 수 있게 된다. 뒤에 가면 그가 일경의 스파이로 활약했고 해랑이 누명을 쓴 조선예악원 단장을 살해한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해방 후 혼란스러운 가운데 조선예악원의 진실을 알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단장직을 그가 맡게 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는 일이 진행되어 가면서 진실이 밝혀지고 법에 의해 처단된다. 또 해랑은 경무국장의 집에 들리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살인 혐의자로 경찰에 잡히는 바가 된다. 그리고 비밀자금을 노리는 자들에 의해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 의식이 점차 깨어나게 되고 자신이 아무도 죽이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조선예악원 단장 살해 사건을 조사하던 류형도는 경찰서 고문실에서 일제 시대에 자신을 고문했던 인물이 버젓이 경찰로 남아 있는 것을 분노한다. 그리고 해랑을 고문하는 현장에서 그를 징치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해랑의 포승을 고문하는 사람 몰래 풀어놓는 일을 감행한다. 그래서 해랑은 탈출을 하게 되고, 고문하던 고문기술자는 해랑 때문에 피해를 입게 된다. 나오코는 미군정에 잡혀 심문을 당하던 중, 외국어가 됨을 알고 미군정의 통역이 되어줄 것을 부탁 받고 그렇게 한다. 그러다 일제 시대 자신이 행한 일로 인해 전법 재판소에 회부 되고 재판을 받게 된다. 나오코는 예술적인 일 때문에 그러한 행사에 참여를 한 것이지 목적의식을 가진 것이 아니라고 강변을 하고, 재판 과정에서 불리하게 몰리나 의연한 모습을 보인다. 그것을 지켜보는 해랑은 안타깝다. 해랑은 자신이 민족을 위해서 일했다는 것이 밝혀져 전범에서 제외되었으나, 나오코는 음악으로 조선 민중들을 전쟁으로 내몰았다는 혐의를 받고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마지막에 반전이 한 번 이루어진다. 이제까지 일본인으로 행사를 했던 나오코가 한국인이고 해랑이 일본인이라고 밝혀지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전범의 문제도 많이 희석된다. 가치관이 무엇이고, 민족이 무엇이며, 인간의 삶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란 물음에 풍자적으로 답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음악과 애정 그리고 민족의 문제까지 다양한 소재를 통해 일제 말기의 상황을 재구성해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글, 스릴러적 구성을 통해 긴장감을 느끼며 읽어나가도록 만드는 글, 흥미와 깨달음을 독자들에게 주는 글이다. 가치관의 혼란이 일어나고 있는 해방 직후의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면서 일제시대 변절자들을 징치하지 못하고 넘어간 해방 후의 공간도 보여준다. 그 점은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책을 들면 쉽게 빨려 들어가는 글이다. 읽고 있는 사이, 등장인물들이 살아서 내게 다가왔다. 조금은 과장과 우연적인 구성이 있으나, 그런 것들을 상쇄할 정도로 이야기가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보통 이런 글들이 다 읽고 나면 허무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음미하게 만드는 요인이 많다. 감사한 읽음을 한 듯하다. |
|
<읽은 기간: 2022.8.27.~9.22>
우리 민족의 비애와 울분이 넘치는 일제강점기. 그 일제강점기를 바탕으로 쓴 소설로 큰 줄기는 기억을 잃은 남자가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과정을 스릴러 형식으로 전개하고 있다. 내용만으로 보면 그렇게 크게 색다른 점은 없다. 기억을 잃은 남자가 느끼는 혼란스러운 감정, 그리고 자신이 조선인인지 일본인인지 모르는 상태로 자신을 둘러싼 살인사건 등 다른 스릴러 소설에서도 흔하게 나오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을 읽은 후 생각할 부분이 있다고 느꼈다. 순수한 예술에 대한 혼이 시대적 감정과 배치될 때 어느 것을 우선시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중 일본이 만주를 침략하고 대동아전쟁을 강행할 무렵 우리나라는 일제의 침략 병첨기지로써 물자를 수탈하고 젊은이들을 전쟁으로 내몰았다. 이때 사람들을 독려하기 위해 예술가들이 자선음악회를 열었던 것이 사실이다. 소설 속 여자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이 천재 피아노 연주가로 나오는데 친일 음악회를 열었던 것에 대해서 정치는 도구일 뿐 나는 음악을 하고 무대만이 중요하다라고 서술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글을 읽고 ‘아 당시 친일을 했던 예술가들 중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겠다’라고 생각을 했다. 무대를 하는 것 자체가 정치나 시대적 현실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사람은 나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환경에 의해서도 존재를 규정하는데, 이때 환경 중 중요하게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국적 및 시대적 환경이다. 많은 예술가들이 친일하지 않고 그 시대를 암울하지만 묵묵히 이겨낸 것처럼 무대를 위해 나의 연주를 위해 친일을 한다는 것은 편하게 살기 위한 합리화라는 생각이 들어 저 주인공의 대화가 나는 공감이 가지 않았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소설은 꽤 많지만 내가 읽은 소설 중에 가장 그 시대를 잘 나타낸 소설은 박경리 저자의 ‘토지’이다. 스릴러는 없지만 지식인의 고뇌 및 허무 그리고 독립 운동가들의 삶, 그리고 일반 서민들의 삶에서 느끼는 차별들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의 시대를 서술하고 있으나 단권이고 밀정과 일본인과 조선인의 사랑을 묘사한 부분이 많아 시대상 전반을 그려내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스릴러 전개 부분에서도 긴장감을 조성하는 부분이 많이 없어 다소 늘어지는 점이 아쉽다.
스릴러도 일제강점기 시대상도 잘 표현하지는 못한 소설 해랑의 리뷰를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