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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걷는 즐거움 다비드 르 브르통/문신원 북라이프/2014.3.31. sanbaram
교통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걷기를 멀리하게 되었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대중교통이 발달하면서 현대인들은 걷는 일이 극히 드물어졌다. 걷더라도 도심의 짧은 거리가 보통이기에 예전처럼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느리게 걷는 즐거움>은 <걷기예찬>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게 되자 10년이 지난 후 다시 내놓은 책이다. 여기서는 유명인들이 걷기에 대해 한 말이나 그들의 철학 등을 이야기한다. 요즘의 오지처럼 대중교통이나 이웃의 왕래가 적었던 예전에 오솔길을 걸으면서 겪었던 경험을 말하고, 그때의 느낌을 여기저기서 피력한다. 그리고 현대인들이 걷기를 통해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는지 저자의 경험을 통해 안내하기도 한다. 저자 다비드 르 브르통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이다. ‘몸’의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바탕으로 <몸과 사회>, <몸과 현대성의 인류학>, <고통의 인류학>, <몸의 사회학> 등을 썼다.
길은 지식을 나눠주고, 정신을 가다듬고 늘 겸손한 자세로 돌아가 길이 가진 절대적인 힘을 돌아보기에 알맞은 존재의 철학까지 전파하는 대학과도 같다고 말한다. “길은 익숙한 세상의 관례적인 도식을 허물어 예상치 못했던 일이 언제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장소요, 확신 속에 안주하기보다는 오히려 확신을 깨뜨리는 장소이다. 길은 감각과 지성을 깨우는 영원한 경계 상태, 다양한 느낌을 열어주는 서막이다.(p.11)” 길을 걷는 사람에게 시각은 결코 거리에 대한 철학적 감각이 아니라 포옹의 느낌이자 풍부한 방향 감각이다. 눈으로만은 볼 수 없는 무수한 인식들을 제공하여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라고 말한다.
“여행자에게 교차로는 단순한 다른 방향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이 아니라 때로는 존재의 선택이 불가피한 곳이거나 시련과 마주칠지 말지의 요행에 달린 곳이기도 하다.(p.55)” 그런데 한편으로는 혹시나 순탄한 길로 이끌어 삶의 흐름을 바꿀 만한 개인적 진실로 이어졌을지도 모르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향수도 있다. 길은 어디가 되었든 당신이 지금 이순간에 있는 바로 그 장소가 가장 아름다운 장소이다. 그러니 이런 곳에서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서 아니면 다른 어떤 세상에서도 행복을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하라고 저자는 말한다.
“걷기가 숭고함의 목적을 추구한다면 여행의 끝에 다가갈 걱정보다는 내면의 변신을 꾀할 걱정이 앞서는 순례자에게는 대개는 자발적인 장애물들로 가득하다. 수고, 인내, 끈기, 피로, 결핍은 그들이 추구하는 내적 지향성에 빠져서는 안 될 요소들이다.(p.215)” 아일랜드 순례자들은 구두를 벗고 크로프 패트릭(일명 ‘순례자의 산’)의 돌 더미 위로 기어 올라간다. 콤포스텔라의 옛 순례자들은 맨발로 걷는다든가 단식을 하는 것과 같은 다양한 고행들을 자초했다. 정신적이라기보다는 종교적인 맥락에서는 아무리 신들이 자주 개입을 한다 해도 걷기는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이지 소풍이 아니다. 티벳 사람들에게 전진에 산재한 모든 장애물들은 성숙해지고 순례자의 결단력을 시험하기 위한 시련들이다.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 보행자는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지 않고 자신에게 부족한 길을 찾아 나서지만, 그에게 부족한 것은 그의 열정을 이루는 무언가다.(p.230)” 이처럼 매순간 자신의 탐색을 북돋우는 것을 찾기를 바란다. 우리는 늘 길 끝에서 뭔가가, 오로지 우리만을 위한 뭔가가 우리를 기다리리라는 느낌을 받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독자 또한, 걸으면서 자기만의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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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아내와 함께 주말을 이용해서 서울근교에 있는 걷기에 좋은 길을 찾아다닐 무렵, 다비드 르 브르통교수의 <걷기예찬; http://blog.yes24.com/document/6828945>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걷기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이라도 받으면, <걷기예찬>의 모두(冒頭)에 나오는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라는 구절을 꼭 인용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양기화, 아내와 함께 하는 주말걷기, 신동아 2012년 12월호, 356-359; http://blog.joins.com/yang412/13036544). 브르통교수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사회학교수로 재직하면서 ‘몸’의 문제를 천착하여 <몸과 사회> 등 많은 저서를 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걷기예찬>은 단순한 산문집이 아닙니다. 철학적이고 진지하고 깊이가 있습니다. 걷기를 통하여 몸의 세계를 회복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기계문명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어느 새 우리 몸의 본래적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걷기는 우리 자신을 인간 본연의 차원으로 되돌려 놓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느리게 걷는 즐거움>은 ‘걷기’에 ‘느림의 미학’을 더한 브르통교수의 신작입니다. 걷기에 느림을 업그레이드하게 된 것은 걷기는 단순히 공간에서만 이루어지지 않고 시간도 동원되는 행위라는 점을 깨닫게 된데 있다고 합니다. 걷기는 시간을 버는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우아하게 잃는 일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저자는 “걷기는 시간을 충분히 차지하되 느릿느릿 차지하는 일이며, 삶의 의욕을 꺾는 현대의 그 절대적인 필요성들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다.(62쪽)”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실 느림은 옛것으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새로운 트렌드이기도 합니다. 모 통신사의 ‘빠름빠름빠름’이라는 광고카피가 빠름을 추구하는 요즈음의 추세를 잘 나타낸다고 한다면, ‘느림’은 빠름을 추구하는 트렌드에 대한 반동이라고 하겠습니다. 밀란 쿤데라는 소설 <느림; http://blog.yes24.com/document/6603394>에서 “속도는 기술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의 형태”라고 하면서 느림의 즐거움이 사라진 것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느림의 미학을 설파한 피에르 쌍소는 일찍이 “(느림) 그것은 모든 것이 우리를 서두르게 만들고 있는 이 사회, 그리고 우리가 자발적으로 그 요구에 따르고 있는 이 사회 속에서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 과제이다.”라고 했습니다.(피에르 쌍소 지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12쪽, 동문선, 2000년) 그리고 ‘길은 느리게 살 수 있는 지혜와 작은 일에도 감탄할 줄 아는 지혜를 준다.’라고 적었습니다. 역시 걷기가 느림을 회복하는 좋은 방법이 되는 이유라는 것을 설파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일에 쫓기던 제가 걷기의 매력에 눈을 뜨게 된 동기는 대책 없이 불어나는 체중을 줄이기 위해서 시작한 산책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운동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그저 빠르게 걸었습니다. 체중이 적절한 수준으로 줄어든 다음에도 체중을 유지하기 위하여 산책을 이어갔고, 산책은 주말을 이용한 근교의 하이킹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모 일간지의 주말섹션에 소개되는 걷기에 좋은 길을 따라 걷다가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걷기 여행; http://blog.joins.com/yang412/12825144>에 소개된 52개의 코스를 따라 걷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부터는 걷기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고, 느리게 걷는 즐거움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걷기예찬> 10년 후에 저자는 “오솔길이나 도로 지나기, 숲이나 산을 활보하기, 힘겹게 언덕을 올랐다가 내려가는 기쁨을 만끽하기, 이 모든 걷기는 오로지 자신의 신체 수단 하나에만 몸을 맡긴 채 세상과 연결되는 느낌을 누리고자 하는 인간에게 어울리는 일이다.(9쪽)”라고 다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빠른 속도, 유용성, 수익,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요즘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걷기는 느림, 유연성, 대화, 침묵, 호기심, 우정, 무용성을 우선시하는 저항행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저자는 우리가 걷는 길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길은 대학과도 같다. 단순히 지식을 나눠주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정신을 다듬고 늘 겸손한 자세로 돌아가 길이 가진 절대적인 힘을 돌아보기에 알맞은 존재의 철학까지 전파하기 때문이다.(11쪽)” 자, 그럼 느림으로 업그레이드된 브르통의 ‘신(新) 걷기예찬’을 살펴볼까요? 저자는 걷기야 말로 인간의 본질로 회귀하는 길이라고 설파합니다. “천천히 길을 걷노라면 세계 내의 존재가 관능의 극치에 도달하는 순간들을 맞이하게 된다. 받을 줄 아는 자에게는 은총이 넘쳐나는 세상의 낯익은 구성 속 작은 돌파구, 평행한 세계에서 감춰진 비밀의 천 사이로 보이는 장면들과도 같은 순간들이다.(114쪽)” 제가 주말에 다녀온 곳들 가운데 유독 기억나는 곳은 오산에 있는 마등산 솔숲으로 난 길입니다. 빽빽하지 않은 소나무들 사이로 난 좁은 오솔길에는 솔가루가 수북하게 떨어져 있고, 솔향이 진하게 넘치고 있었습니다. 걷는 것에 더하여 볼거리와 냄새까지 더해진 것이 기억을 강하게 한 것 같습니다. 아! 산비둘기가 우는 소리도 있었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역시 카프리의 정원을 걷다가 공간을 찢는 듯한 새울음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래, 그 울음소리가 한순간에 세상을 내면의 공감으로 바꿀 수 있더군. 우리는 새가 제 스스로의 가슴과 세상의 가슴을 구분할 거라고는 여기지 않으니까.(126쪽)” 탈 것으로 이동할 때보다 걷을 때는 자연에 대한 관심이 예리해집니다. 그리고 느리게 걸을수록 더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도심에서는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사방에 널려 있고 사람들과 자동차들이 만들어내는 소음으로 인하여 오감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자연에 들면 오감을 뒤흔드는 소음들이 사라지면서 자연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자극을 오롯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세상은 아낌없이 선물을 주고 여행자 또한 탐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모든 여행은 감각을 통한 전진이요, 관능으로의 초대이다. 행복한 감각들은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순간, 그곳에 있음을 수없이 확인시켜 준다.(67쪽)” 때로는 길이 세상의 경계가 무너진 장소로 안내하기도 합니다. 저자는 쥘리안 그라프가 프랑스 중부 트롱세 지역의 숲길을 걸었을 때의 경험을 인용합니다. 달도 없는 발 깊은 숲을 가로지르다 보니, 숲은 질서와 무질서가, 어둠과 빛이, 생기와 무기력이, 믿음과 두려움이 결합되어 뒤섞인 세계였던 것입니다. 시각은 거의 먼 곳을 보지 못하고 귀를 쫑긋하고 세워 청각을 극도로 긴장시켜도 세상의 분명한 경계를 가늠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 내장산 숲속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었습니다. 대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세상으로 안내할 길을 찾을 수 없어 당황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길은 때로 세상의 경계가 무너진 곳으로 안내한다는 저자의 설명에 공감하는 이유입니다. 그라프가 한밤중의 숲에서 경험한 세상의 경계가 무너진 듯한 느낌에 대하여 저자는 ‘밤은 어떤 이들에게는 감사와 안도감 그리고 내향성을 주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는 제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인지도 모른 채 공포와 위협을 구현하기고 한다.(71쪽)’라고 밤의 양면성을 설명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전자보다는 후자인 편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제가 삼군사관학교에서 16기로 군의후보생 훈련을 받을 때, 처음으로 100km행군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저녁을 일찍 지어먹고 학교를 떠나 이튿날 해질 무렵에 복귀하는 훈련입니다. 학교를 출발해서 어둠이 오기 전까지는 그런대로 대오가 유지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정 무렵이 되면서 대오가 흩어지면서 앞에 가는 대원도, 뒤에 따라오는 대원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오로지 동행하는 대원 하나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게 밤길을 가다보면 곁에 가는 대원이 정말 사람일까 싶은 생각이 들어 무서운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별이 총총한 밤에 대한 낭만주의는 버려야 할 것이라고 권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존 뮤어가 요세미티 계곡에서 보낸 밤처럼 특별한 경우도 있습니다. “어둡고 거대한 두 암벽 사이로 보이는 좁은 하늘 띠에서 맑은 별빛이 반짝였다. 내가 그곳에 누워 그날 하루의 교훈들을 마음속에 되새기는 사이에 갑자기 보름달이 염려의 표정이 역력한 얼굴을 내밀어 협곡을 굽어보는 듯해서 깜짝 놀랐다. 마치 홀로 있는 내가 걱정스러워 살펴보기 위해 방 안에 들어온 사람처럼 하늘의 제자리를 벗어나왔다고 말하는 듯했다.(75쪽)” 그래서일까요? 밤에 걷는 일은 시간을 기막히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별이 총총한 그 세계, 어슴푸레한 달빛은 태초 이래로 거의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밤길이 더 낭만적이었을까요? <희망의 발견>의 저자 실뱅 테송(Sylvain Tesson)은 “장거리 보행자에게 글이란 가장 강렬한 진정의 순간이다(…). 저녁마다 글을 쓰면서 여행자는 또 다른 표면으로 길을 계속 이어가고 페이지 위에서 전진을 연장한다.(89쪽)”라고 했답니다. 걸으면서 경험하는 찰나의 느낌마저도 잊지 않고 기록으로 남겨놓는 습관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정의 흔적을 사진으로 남기는 사람, 혹은 꼼꼼한 부분까지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는 사람 등 다양한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언젠가 기억은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지만,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준 축복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망각의 영향으로 여정의 흔적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희미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걸을 때 느낀 감동을 기록으로 남겨놓으면 뒷날 읽어보면서 그때의 감정을 되살릴 수 있으며, 이렇게 붙들어온 느낌을 다시 기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록은 또한 나 아닌 다른 이에게 그와 같은 여정을 뒤따르고자 하는 동기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제가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걷기 여행>을 따라간 것처럼 말입니다. 서울성곽을 따라 남산의 북쪽 산책길을 걸은 적이 있습니다.(http://blog.joins.com/yang412/11603555) 그때 남긴 글에 “도심에 4km 가까운 산책길을 만날 수 있는 대도시가 얼마나 될까 싶다”라고 적었습니다. 서울 도심에는 특색 있는 산책길이 산재해있습니다.(김영록, 박미경 지음,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걷기 여행: 서울, 수도권) 도시를 걷는 일에 대하여 저자는 다소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도시에서 걷는 일은 군중, 익명성과 마주치는 일이다.’라고 한 저자는 “도시의 보행자는 지나면서 서로의 삶의 사건들을 간파하고, 존재의 단편들을 주워 모으고 도시를 자신이 일등석을 차지한 극장으로 바꾸어놓는다.(179쪽)”라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도시를 걸으면서 만나는 타인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존재에 불과할 뿐이 아닐까요? 피에르 쌍소는 시골길을 걸을 때만큼이나 우리의 후각을 설레게 해주는, 독특한 향기를 풍기는 은밀한 길들을 도시에서도 일찌감치 발견할 수 있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도시 역시 우리에게 소리를 들려주고, 냄새를 풍기고, 감촉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느낌들은 실체적인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와 도시의 존재 사이에 교감이 일어남을 느낀다는 것이며, 도시에서 특유의 고유한 음색과 분위기를 느끼려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도시에게 섬세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권하고 있습니다.(피에르 쌍소 지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2, 97-112쪽, 동문선; http://blog.yes24.com/document/4636207) 역사가 오래된 서울은 참으로 다양한 모습을 감추고 있습니다. 초현대적인 모습이 있는가 하면, 북촌처럼 수백 년 전의 모습을 간직한 곳도 있습니다. 그런 곳들은 천천히 걷지 않고는 볼 수가 없습니다. <느리게 걷는 즐거움>을 마무리하면서 저자는 ‘걷기는 용어의 물질적 그리고 정신적 의미에서 땅에 발을 딛는 것, 즉 자신의 존재 속에 똑바로 서는 일이다(220쪽)’라고 정리합니다. 그리고 “모든 길은 우선은 자신의 내면에 묻혀 있다가 발길 아래 기울고, 특정한 목적지로 이끌기 전에 자신에게로 이끈다. 그리고 때로는 마침내 자아의 행복한 변화에 도달하는 좁은 문을 열어준다.(230쪽)”라고 마무리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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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서시기: ~190501(수) 2) 서적분류: Book / 여행 3) 구입목적: 내가 걷는 이유를 명확히 알기 위해서 4) 키 워 드 : 길을 걷는 사람은 자기 시간의 유일한 주인이다. 5) 공감내용: "걷기는 근심 걱정의 무게로 너무 무거워 삶을 방해하는 생각들의 가지치기인 셈이다." p.32 - 걷기를 하다보면 정말 좋은데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걷기'의 장점이 너무 많아 한 단어로 정의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저자는 한권에 걸쳐 ('걷기예찬'까지 2권째) 걸으면서 느끼는 그 모든 감정을 잘 나눠서 설명해 주고 있다. 걸어본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 한결 정리된 마음으로 걷기를 실천할 수 있을 듯.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나면 나 자신이 바뀔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한다. 걷기라는 행위를 통해 나 자신을 비우고 정령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정리하고 싶다. 그러고나면 바뀐 내가 있지 않을까? 이 책은 그 모든 것을 경험한 선배들의 경험담이다. 6) 점수: ★★★★★ ps. 해당 내용은 개인적인 감상으로 개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각자 읽어보고 판단하세요. ※ 공감가는 문장 '가능한 한 가많이 앉아 있지 마라. 자유롭게 움직이며 나오지 않은 생각은 절대 믿지 마라. 모든 편견은 마음속에서 비롯된다.' -프리드리히 니체 p.0 '타인이 더는 경쟁 상대가 아니라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 한 사람이라는 보편적인 인간성의 근원으로 회기하는 일이다.' p.9 '걷기는 정체성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시켜준다. ... 걷기는 나다워야 한다는 부담에거 벗어나게 해주고,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압박과 사회적 그리고 개인적 책임감으로 인한 긴장을 풀어준다.' p.28 '걷기에 대한 이야기나 길에 대한 명상을 읽는 일은 언제나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일이다.'p.92 '걷기는 용어의 물질적 그리고 정신적 의미에서 땅에 발을 딛는 것, 즉 자신의 존재 속에 똑바로 서는 일이다. ... 걷는 것은 자신의 길을 되찾는 것이다. ... 자신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의지이다.' p220 ※ 참고사항 글을 읽는 내내 아주 공감하면서 읽고 있는데도 쉽게 읽히지 않았다. (당초 저자의 글이 그런건지 번역이 불편한건지) 내가 초보 Reader 여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읽기좋게 풀어 주거나 문장을 끊어 주었다면 더 소장하고 싶은 책이 되었을 텐데 아쉽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빛이 너무도 은은하고 청명해서 수면에 최소한의 살랑거림도 잔물결도 하나 없는 그런 황금물결 속에서는 한 번도 미역을 감아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19세기에는 특히 많은 아메리카인디언들이 보호구역으로 강제 이주하면서 그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그 힘을 느끼고 젖어들 줄 아는 보행자들을 통해 풍부해져야만 존재하는 장소들의 기억과 힘도 함께 사라졌다.' '왜 나에게는 진작부터 여행만이, 돌아온다는 생각을 배제한 여행만이 우리에게 문을 열어주고 우리의 삶을 정말로 바꿀 수 있는 반면, 모두가 좋아하는 산책과 몇 시간만 있으면 우리의 부착점으로, 익숙한 집의 담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모험도 즉흥성도 없는 소풍은 마법사의 마술 지팡이를 휘두르는 것과 비슷한, 보다 은밀한 무술에 가깝다는 느낌이 박혀 있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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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떠한가? 산업시대를 거쳐 정보화시대를 살아가면서 시간을 쪼개고 쪼개 바쁘게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삶은 만족스러운가?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빠른 발걸음과 도로를 오가는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질주는 남들보다 조금 더 앞서가야 한다는 조급증과 강박증이 아니었을까 싶다. 마음에는 조금의 여유가 자리잡을 틈이 없다. 빠른 흐름에서 살다보니 겨우 찾아온 여유로움과 한적함이 낯설고 뭔가라도 해야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워놓고 있다. 저자의 <걷기예찬>은 읽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의 표지 그림과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느리게 걷는 즐거움을 많이 걸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비행기를 탈 때는 구름과 하늘이 전부였고 철도를 탈 때는 그보다는 느리지만 풍경을 감상하면서 갈 수 있고 자동차나 전세버스를 탈 때면 조금씩 주변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자전거를 탈 때는 어떤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보면 풀내음과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오고 잠시 쉬어갈 수 있다. 이제 발로만 걸어보자. 발로 느리게 걸으면 더 많은 소리들이 들려온다. 모든 것이 내 발걸음을 따라 천천히 흐르기 때문에 자연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고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면서 걷는다. 최근 몇 년간 걷기대회를 완주하면서 느낀 것은 직접 내 발로 경험함으로써 온전히 자연과 같이 걷고 마음의 성취감이 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즐거움과 느낌은 걷는 각자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다. 느리게 걸으면서 눈으로 들어오는 풍경들은 내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 이 책은 걷기가 왜 좋은지, 천천히 걸음으로써 얻는 것은 무엇인지 알려준다. 걷기 위해서 반드시 어떤 목적이 있어야 하는 건 절대 아니라는 말처럼 우리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더 많이 걸을 수 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주변 공원을 산책해볼 수 있고, 저녁에 퇴근해서 천천히 동네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걷기를 생활화하다보면 마음에 큰 무게로 자리잡은 근심, 걱정이나 우울증을 걷어낼 수 있다. 생활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 때문에 큰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건강을 되찾고 다이어트에도 성공할 수 있다. 걷는 것은 참 좋다. 자신의 동력을 이용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 더욱 솔직하고 사람을 부지런하게 만들어준다. 올해도 걷기대회가 있을 것이다. 모두 참여해서 완주함으로써 또 만족감을 느낄 것 같다. 둘레길을 걸을 계획을 세워놓고 있는데 땀은 많이 흐르고 힘들 수도 있겠지만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오래전에 서울대공원 주변 둘레길을 걸은 기억때문인지 내겐 힘든 일이 아니다. 걷는 즐거움을 알게 된다면 왜 저자가 끊임없이 느리게 걷자고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매일매일 바쁘게만 생활하는 도시인들은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더 많이 걸어볼려고 한다면 환경도 개선하고 더욱 활력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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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걷는 즐거움]위대한 고전의 첫 문장도 발끝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내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내 생각도 흐르기 시작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책에서)
예전엔 빠름이 최선인 줄 알았다. 하지만 빠름으로는 고통과 불행을 해결하지 못함을 체득하게 되면서 느림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래서 제목에서부터 공감이 가는 책이다. 몸은 속도전에 익숙해져 버렸지만 마음으로라도 느리게 하고 싶어서 차를 타기보다 걷기를 자주하고 있다. 인스턴트보다 슬로우 푸드에 익숙해지려 하고 있다. 원래도 걷기를 좋아했지만 이 책을 읽으니 더욱 도시의 골목길 따라, 물 따라, 산길 따라 걷고 싶어진다. 그렇게 느리게 걸으며 걷기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다.
저자는 어떤 길을 걸으며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헤르만 헤세, 빅토르 위고, 밀란 쿤데라, 니체 등의 작품들도 그 첫 시작은 발끝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여류 소설가인 버지니아 울프는 걸으면서 풍성해지는 생각들은 우주에 빠져 들게 되어 '하늘의 절반'이 된다고 했다.
루소는 고독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생각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도 걷기라고 했다. -나는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거의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정신을 움직이려면 몸을 부단히 움직여야만 한다.
몽테뉴는 그의 <수상록>에서 말했다. -앉아 있으면 생각이 잠든다. 다리를 흔들어주지 않으면 정신은 움직이지 않는다.
많은 문학가, 수학자, 과학자, 철학자들은 걷기를 통한 사색과 명상으로 위대한 업적들을 이루어 왔음을 알고 있다. 걷기에는 목적이 없어도, 방향이 정해지지 않아도 좋다. 김삿갓 방랑기가 되어도 멋진 걷기일 것이다.
인생은 나그네길이요, 인간은 여행자다. 일생 동안 걷는 길은 누구나 여러 갈래 일 것이다. 사색의 길, 글쓰기의 길, 그림 그리는 길, 만남의 길, 헤어짐의 길, 침묵의 길, 수다의 길 등이 있을 것이다. 같은 길이라고 시간에 따라 계절에 따라 누구와 함께 동행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물론 풍경도, 내 마음도, 얻는 것도 모두 다를 것이다.
걷기의 즐거움은 나만의 유일한 시간을 얻는다는 점이 아닐까. 걷는 시간은 엉켜있던 복잡한 삶의 실타래들을 하나하나 풀게 되는 시간일 것이다. 걷는 동안 주변의 소리에, 보이는 것에 온 몸의 감각이 깨어나기도 할 것이다. 걷기 도중에 기대치 않았던 멋진 만남이 준비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걷기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산길 활보하기, 계단 길을 오르고 내리기, 벽화가 있는 골목길을 걷기, 느린 걸음으로 걷기, 침묵으로 걷기, 호기심 가득 걷기, 사람들을 관찰하며 도시를 걷기, 자연을 관찰하며 시골길 걷기 등…….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걷기는 호젓한 산길 걷기이다. 특히 새싹이 돋는 이른 봄날, 봄소식을 알리는 작은 꽃들과 인사하며 좁다란 오솔길을 걷는 것이다. 낯선 곳이든 친숙한 곳이든 걷기는 언제나 즐겁다.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는 체험을 하게 된다. 정리정돈에 관한 책을 읽으면 집안 정리정돈을 자주 하게 되고 티타임에 대한 책을 읽으면 차를 꺼내 마시게 된다. 걷기를 예찬한 책을 읽으니 자꾸만 문밖을 나서고 싶다. 조금이라도 더 걷게 되고 조금이라도 더 둘러보게 된다. 오늘도 잠시나마 도시의 보행자가 되어 꽃길을 거닐었다. 내일은 꽃잎 떨어진 길 위를 걷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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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여유 있게 아무 목적없이 걸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분명히, 걷다 보면 많은 것들이 눈에 띄고, 바람을 느끼고, 꽃을 보고, 나무를 보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등의 '걷기의 매력'을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 걸어본지가 언젠지 모르겠다. 너무 여유 없이 살고 있나 보다. 다행히도 '느리게 걷는 즐거움'이라는 책을 통하여 지금이라도 이런 삶을 한 번쯤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의 기억들이 되살아 났다. 내가 걸으면서 보고 느꼈던 것들, 지금 껏 잊고 지냈던 것들 이다. 딱히 걷기 위해 걸은 것은 아니었지만, 중학교 때의 학교길은 그 어떤 걷기 보다도 좋은 추억을 남겨 줬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하게 되었다. 그때는 주로 혼자 다녔기 때문에 적당히 고독했고, 많은 생각을 하였고, 땅위에 있는모든 것들을 보다 섬세하게 관찰 할수 있었다. 물론 학교길이라는 목적이 있는 걷기 였다는 한계는 있지만..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우리 동네의 큰 냇가를 건너야 했기 때문에 매일 논두렁을 지나, 냇가를 건너고 또 논두렁을 지나야 했다. 논두렁을 지날 때면 볏이삭에 맺힌 이슬에 바지가 젖기도 하고, 냇가를 건널 때면 장마비로 불어난 냇물 때문에 양말과 신발을 벗고물을 건너야 하는 경우도많았고 겨울엔 얼어붙은 징검다리를 잘못 밟고 미끄러져 그 차가운 냇물에 빠지는 경우도 많았다.
하루 종일 흙바닥 한 번 제대로 밟아 보지 못하고 사는 날이 많은 지금은 그때가 아련하게 그립기만 하다. 그때 밟았던 흙, 스쳤던 이슬, 계절마다 바뀌는 들판의 색깔들, 이른 봄 피어난 버들강아지, 흐르는 냇물에서 헤엄치던 물고기들, 크기와 모양, 색깔이 제각각인 수 많은 돌들, 햇빛에 반짝이던 잔잔한 물결, 걸터 앉아 쉬기도 하고, 책도 보았던 크고 납작한 돌들, 가을날의 맑고 높은 하늘, 여름날의 갑작스런 소나기, 겨울날 쌓인 눈위의 첫 발자국, 학교길에 한 참을 따라오던 강아지, 이 모든 것들이 내가 걸으면서 내 눈으로 촬영한 기억속의 사진첩이다. 자동차를 타고 다녔다면 전혀 갖지 못했을 장면들이다.
'느리게 걷는 즐거움'은 제목 그대로 걷기의 즐거움에 대하여 말하는 책이다. 걷기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들, 사유할 수 있는 것들, 느림의 철학 등, 걷기에 대한 수 많은 서적들의 내용들을 인용하면서 걷기를 예찬하기도 하고, 걷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이야기 한다.
-걷기의 매력 걷는 여행은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롭고 활기찬 일이다.(본문 18페이지) 걷다 보면 가만히 몸이 흔들리며 서서히 몽상에 빠져들고, 몽상은 피로를 덮어 가려준다(본문 19페이지).
-느림 걷기는 시간을 버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우아하게 잃는 일이다(본문 62페이지)
-온몸이 감각이 열리다 소리들이 침묵의 보석상자에 담기기라도 한 듯 새들이나 동물들의 울음소리, 샘물이 수런대는 소리 또는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 소리에도 소스라쳐 놀란다.(본문 66페이지)
-그곳에서는 별조차 다르다 밤에 걷는 일은 시간을 기막히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다. 하늘에 별이 총총한 그 세계, 어슴푸레한 달빛은 태초 이래로 거의 바뀌지 않았다. (본문 70페이지)
-뜻밖의 조우 걷다 보면 지역에 따라 양이나 염소, 암소, 때로는 항소, 말, 멧돼지, 노루, 사슴, 수많은 새들과 마주친다.(본문 83페이지)
느리게, 특정한 목적지 없이 걷는 것의 매력은 온몸의 감각으로 자연의 모든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잠시 잊고 살았던 걷기의 매력을 되찾은 듯하다. 시간이 날때마다 집 근처 산책로라도 걸어야 겠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하여 이 책의 본문 내용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본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우리가 느낀 것을 느꼈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리고 비록 중요한 일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본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식으로 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끝까지 가장 소중한 기쁨으로 남을 것이다."(본문 92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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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돌아가는 삶에서 느리게 걸어보다 시청 근처에서 볼 일이 있어서 들렀다가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빠르게 걷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있어서 걷는다는 것은 주변을 살펴보고 시간을 음미하는 그런 여유로운 행위가 아니라 그저 목적지에 가고 오고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의 유명한 사회학자인 다비드 르 브르통이 쓴 이 책 [느리게 걷는 즐거움]은 현대인들이 너무 쉽게 잊고 있는 걷기의 즐거움과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지금 당장 저녁을 먹고 동네 한 바퀴를 걷고 싶어질 것이라고 장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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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여가 패턴이 달라지고 있다. 그 전에는 특별한 장소를 방문해 휴식을 취하거나 유명관광지를 둘러보는 일정이 주를 이루었다면, 이젠 어디가 되었건 두 다리를 이용해 걷고자 하는 이들이 증가했다. 제주 올레길을 시작으로 지리산 둘레길, 북한산 둘레길 등이 생겨났으며, 최근에는 각 지자체마다 생활공간 속 걷기 좋은 장소들을 찾아 둘레길 등으로 지정하고 있다. 여행사의 발 빠른 대응 역시 이루어지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읽은 건지 지난해 처음 운행을 시작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끈 V-Train 노선을 따라 걷는 백두대간 비경길 여행상품이 나오기도 했다. 나 또한 얼마 전 화천 비수구미길을 걸으며 걷는 즐거움을 만끽한 바 있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 건강도 챙길 수 있는 방법, ‘걷기’가 각광을 받고 있다. 많은 이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은 사실 새로운 게 아니다. 이미 이 책의 저자인 다비드 르 브르통은 10년가량 전 ‘걷기 예찬’이라는 책을 저술했다. 당시만 해도 몸을 움직이는 게 마치 죄악이라도 되는 것 마냥 대다수의 사람들이 앉은 자리에서 꼼짝 않는 고약한 버릇을 지니고 있었다. 일부러 시간을 내고 돈을 지출해 헬스클럽에 등록하고,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등 인위적인 움직임이 보편적이었다. 십 년의 시간동안 강산만 달라진 게 아니라 사람도 바뀌었다. 아무리 느린 속도로 걸어도 걷는 동안 우리는 주변 환경의 변화를 겪는다. 만나는 사람이 달라고, 우리 자신도 어쩌면 달라진다. 단조로운 일상을 극복하는 데 걷기는 효과적이다. 어딜, 얼마나 빠르게 느리게 걷느냐가 전적으로 걷는 주체의 몫인 것을 고려하면 걷기만큼 혁명적(!)인 행위도 없지 싶다. 게다가 걷기는 몸을 움직임으로써 생각을 잠재울 수 있는 행위이기도 하다. 마음이 번잡할 때마다 내가 집을 나서 걷고자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몸이 힘들수록 머리는 단순해진다. 가빠오는 숨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머리는 그 이상의 것들을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살아 있고 지금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따름이다. 그렇게 가끔은 머리를 비움으로써 나는 다시금 복잡한 일상에서 떠밀리지 않을 자신감을 획득한다. 걷는 단순한 행위가 죽어가던 나를 되살린 것이다. 시대에 따라 걷기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달랐다. 역설적이게도 교통이 충분히 발달하지 아니 했던 시절 우리는 덜 걸었다. 생활 반경을 더는 넓힐 엄두 자체를 못 냈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존재의 출현을 반길 만큼 물질적, 정신적으로 모두 풍족하지 못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어떠한 복장을 했건 걷는 주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날카로웠다. 믿을 만한 사람의 소개장 등을 통해 걷는 주체는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고는 했다. 사람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그 시절의 걷기는 다분히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렀다. 환경오염 등의 문제를 떠올린다면 마냥 긍정적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걷기의 반경이 넓어지면서 사람들의 발걸음은 인간사회를 벗어나 자연으로 향했다. 미지의 세계가 주는 두려움은 상당했다. 지금에야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도 같으나 오래전 우리는 거대한 곰의 존재를 걱정해야만 했다. 어두컴컴해지면 오로지 감각에만 의존해 걸어야했고, 그런 끝에 낭떠러지에 위태로이 앉아 잠을 청한 자신을 아침에 발견하는 일이 발생키도 했었다. 그래도 걷기의 형태가 달라졌기에 자연과 우리 사이에 존재 한다 믿었던 경계를 허물 수 있었다. 머리로만 받아들이고자 안간힘을 썼던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는 명제를 가슴으로 이해하는 데엔 걷기의 힘이 컸다. 걷기는 여러모로 평등하다. 튼튼한 두 다리만 있다면 우리 모두는 걸을 수 있다. 아프리카 빈국 선수들이 마라톤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걸 떠올려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나이가 들고 건강을 잃은 이들이 지난날의 걷기를 떠올리며 무기력에 빠지고는 하는 것 역시 당연한 결과다. 건강을 잃는다는 건 걷는 즐거움의 상실로 이어진다.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닌 걷기지만, 걸음으로써 우리는 삶의 의욕을 불태운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들이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오늘도 나는 걸었고, 앞으로도 살아 있는 한 나는 걸을 것이다. 그리하여 인생이 즐거울 수 있다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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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걷기에 꼭 어떤 목적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는거 같다. 걷는 방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조급할 이유도 없지만 그렇다고 뭐라고 할 사람들도 없다.
막혀 있던 생각들을 가볍게 떨쳐버리고 사색하는 마음을 갖고 싶다면 좋은 게 걷기 아닌가 한다.
이 책은 걷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과 감동들을 고스란히 옮겨놓고 있어서
자신만의 길을 되찾아가는 긴 여행이 되어주기도 한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랭보, 빅토르 위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 헤르만 헤세, 니체 등
걷기를 사랑했던 수많은 작가들의 글과 작품들이 있다.
굳이 좋은 곳 아름다운 장소를 찾아 멀리 여행 갈 필요없이
내 주위에 가까운 곳 부터 찾아 떠나는 즐거움을 찾아보고 싶다.
내 마음 먹기에 달려있지 않나한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들...나무들, 꽂들, 향기로움 가득한 길을 걷다 보면
마음속 가득하게 들어오는 상큼함을 느낀다.
"실은 어디가 되었든 당신이 지금 이 순간에 있는 바로 그 장소가 가장 아름다운 장소이다.
그러니 이런 곳에서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서 아니면 다른 어떤 세상에서 라도
행복을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하라" (p.193) 오래걷기...
걷기를 사랑했던 많은 작가들을 글을 통해서
그저 읽기만 해도 많은 힐링이 되는 도서이기도 하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가까운 곳이라도 떠나고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지금 당장 걷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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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평소에 걷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 걷는 것보다는 둘이나 그 이상 함께 걷는 것을 좋아한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신랑때문에 우리 두사람은 운동하러 나갈때 달릴것인가 걸을 것인가를 두고 각기 의견을 피력한다. 다비드 르 브르통 작가의 10년 전에 내신 책이라는 <걷기 예찬>이라는 책은 아직 읽어보질 못했다. 그 책 이후에 얼마전 내신 책이 이 책인데, 그만큼 걷기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는 것을 볼수 있지만, 책을 읽다 보면, 더 그런 생각이 짙어지게 된다.
이 책은 저자의 걷기에 대한 즐거움에 대해서 쓴 글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명인들의 글귀를 많이 인용한 책이기도 하다. 또는 걷기에 관한 책속의 글들을 많이 적어놓으셨다. 그 책들은 최근의 책들보다 상당히 오래전에 쓰여진 책들 중심으로 인용을 해놓으셔서, 이 책 또한 최근에 나온 책이라는 느낌보다는 상당히 오래전에 쓰여진 책 같다는 느낌이 강했다. 현대적인 걷기에 대한 책이 아니라, 걷기에 관한 고전 한 권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걸으면, 걷고 있으면 신선하고 풍성한 생각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생각에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게 되고, 마음을 환기하게 된다. 요즘 아파트 주변에는 공원을 의무적으로 만들게 되어 있는데, 마음이 답답하거나 할때는 혼자 나가 산책을 잠깐씩 하고 나오는것도,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끔씩 갇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빠르게 걷는 것보다 느리게 걷는데서 오는 즐거움은 수십가지나 된다. 그 즐거움들이 어떤것들인지 책에서는 인용구들과 함께, 또한 경험한 사람들의 글귀들과 함께 설명해 나간다.
책을 읽으면서 꽤나 공감하거나, 나도 이렇게 해야겠다. 라는 부분이 있었는데, 루소는 자신만의 여행 일지를 만들라고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오래된 여행의 기억들은 잊혀지기 마련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사실 나 또한 기억력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 오래전에 여행한 곳들의 기억들이 스러져가고 있음을 종종 느낀다. 요즘은 사진들이 있기는 하지만, 나만의 여행일지를 하나 만드는 것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 운동화로 갈아신고 바로 나가서 걷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내가 모르는 길로도 가보고 싶어졌고, 나만의 걷기의 즐거운 시간을 느껴보고 싶었다. 지금은 늦은 밤이니, 내일 나가봐야겠다.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서- '으면서 길을 잃은 순간이지만 마주한 풍경은 황홀하다.' 는 책 속 글귀가 오래도록 내 곁에 남아 있다.
길을 걷는 사람은 사소한 사건이나 여정에 대한 매력에 따라, 전진을 표시하는 사건들에 따라, 가로지른 장소들 특유의 마력 또한 애절함에 이끌려, 그리고 그날 마주치게 될 줄 전혀 몰랐다가 뜻밖에 합류하게 되는 내면의 지리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개척한다. (p.53)
걷기는 세상의 쾌락으로 이어지는 통로이다. 잠깐 쉬었다가 갈 수도 있고, 내면의 평정도 찾을 수 있으며, 주변 환경과 함께 끊임없이 살을 맞대며 아무런 제한도 장애도 없이 장소의 탐험에 몰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걷기는 인간의 높이와 발걸음에 맞춰 서서히 변화하고 장소들을 끈기 있게 길들여 발견의 시간을, 식물 또는 광물의 경계들의 통로를 내어준다. 감각은 그 리듬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하며 다급하게 몰두 하지 않고 장소에 젖어든다. (p.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