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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그럴 것이다.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게 될 것이고, 또 언젠가는 떠나면서 남아있는 누군가를 걱정할 것이다. 먼저 떠나는 게 나을까 아니면 남은 인생이 나을까?
연은 해변 모델에 모수와 살았다. 그런 어느 날 모수가 병으로 죽자 연은 모수 대신 해변 모텔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인적이 드문 무도라는 곳이고 찾는 투숙객도 거의 없다. 설상가상으로 해안선 침식으로 이 모텔은 퇴거 명령을 받는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인터뷰이와 인터뷰어로 만나 연인이 된 연극배우 천과 아나운서 한나. 어느 날 한나가 투병 중인 전 연인에게로 돌아가자 혼자된 천은 이곳 해변 모텔에 장기 투숙한다. 홀로 남겨진 연과 천. 그들은 특별할 것 없는 하루를 그저 살아간다. 그저 망망대해 같은 그곳에서. 각자의 상실을 견디면서.
감사하게도 나는 아직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떠나지 않았다. 부모님도 살아계시고 남편도 아이들도 있다. 물론 사람을 잃는다는 게 누군가 먼저 떠나는 것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일로 아주 친했던 친구를, 평생 같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늙을거라 생각했던 친구의 손을 놓고, 그로 인해 마음의 상처가 깊었던 적도 있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 연애했던, 한때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로 아파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는 것만큼의 상처는 아닐 것이다. 사실 아직까지는 이런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남겨진 사람의 마음. 그 마음을 아직은 경험하고 싶지 않다.
떠나고 난 이후 남은 사람들의 삶.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거라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마음속에서는 무수한 전쟁이 일어날지라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그 마음이 세상에 혼자 망망대해를 걷는 기분이라도.
책의 배경은 어둡고 무겁다. 미래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이 흔해져 버린 세상이다. 국가도 사람들의 죽음을 어떻게 하지 못하고 잔여물만 남아있는 세상이다. 불안과 우울이 넘쳐나는. 그런 세상. 그래서 연과 천은 그곳에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봤는지 모르겠다. 언젠가는 자신들도 죽을 테니까. 그나마 남아서 죽음을 애도해주는 누군가가 있어서 떠난 사람은 덜 추웠을까? 아직은. 죽음이 남의 이야기 같을 때가 많다. 사람은 태어나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지만 아직은 마음의 준비도 되어있지 않다. 내일을 예측할 수 있는 하루. 그 하루가 나에게 주는 기쁨과 감사함.
연과 천의 마음.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삶. 살아있기에 사는 건지, 살기에 사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산다. 나에게는 지켜야 하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오늘. 오늘을 감사해하며 오늘을 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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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망망대해라는 건 무엇일까요"(9) 첫 문장이 먹먹하다. "무슨 말인지는 당신도 알고 있지 않나요? 이미 알고 있지 않나요 당신도? 우리는 지금 함께 망망대해를 건너가고 있잖아요"(10) 내가 읽은 건 분명 소설인데 시적이다 시인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음률이 살아 있는 소설이어서 읽기가 수월했다. 그저 읽기가 쉬웠다는 것이지 내용이 쉬웠다는 것은 아니다. 중의적인 부분들도 많았고 꼽씹어야 하는 표현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려 넘어지지 않고 후다닥 끝을 향해 달려갔다. 배경은 어떤 정체 모를 바이러스 감염이 발생하고 사망자가 늘어나고 죽는 것이 다반사인 세상, 기온이 45도를 육박하는 날씨 속에 정부는 대책이 없고 무지하고 무능하다. 황량한 바닷가에 쓰러져 가는 해변 여관 투숙객도 마땅히 없고 관광지도 없는 그곳에 모수와 연이 산다. 투숙객으로 천이 왔다. 천은 한나와 이별 뒤 이곳으로 왔다. 모수는 병에 걸려 사망하고 모수의 유령과 연이 함께 한다. 모수에게는 유품도 별로 없다. 하지만 매일 객관적 사실을 기록한 일기가 가득하다. 어쩌면 연은 그 일기로 버티고 일기로 내일을 생각하게 된다. "쓰다" 라는 동사는 진행형이니까 쓰는 행위는 어쩌면 살아 있음을 함께 함을 증명하니까. 그래서 전반적으로 어두운 이 소설이 끝까지 침몰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극에 살아 남은 사람들. 망망대해에 넘치는 파도 속에 갇혀가지만 숨 쉴 구멍을 열어주는 그런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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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겹이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읽으면서 겹이 벗겨지는 순간과 마주하면 짜릿함을 느낀다. 작가가 만든 겹을 독자가 걷아내는 일, 벗겨내는 일을 재독이나 삼독에서 가능할 것이다. 물론 내 입장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겹을 내버려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랜만에 읽은 이장욱의 소설 『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 은 내게 그런 소설이었다. 그러니까 겹이 있다는 걸 느꼈지만 나는 그 겹을 걷어내지 않았다. 아니 걷어낼 수 없었다. 대체로 인간은 복잡하지만 삶은 의외로 단순하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와 연결되고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시스템 안에 있다가 밖으로 나온다.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자의로 누군가는 타의로. 이장욱의 소설 속 인물도 그렇다. 소설을 이끄는 화자 ‘연’과 ‘천’은 연인의 죽음과 부재로 남겨진 사람이다. 연은 남편 ‘모수’와 함께 ‘해변 여관’을 운영한다. 말이 운영이지 조만간 철거가 예정된 곳이다. 바다가 있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없는 곳의 허름한 여관을 찾는 이가 없다. 모수가 병으로 죽고 연은 의미 없는 하루를 보낸다. 모수와 보낸 시간을 떠올리며 혼잣말을 하고 모수의 짐을 정리한다. 연극배우인 천은 연인인 ‘한나’가 떠나자 방황하다 해변 여관에 투숙한다. 연과 천은 종종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지만 대화를 나누지는 않는다. ‘연’과 ‘천’이 번갈아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니까 모수와 연, 한나와 천의 만남과 헤어짐이다. 모수는 도청 공무원이었고 기록하는 자였고 방송국에 제보했고 파면당했다. 연은 이혼 후 모수를 만났고 인연을 맺었다. 천은 자신을 인터뷰하러 온 한나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지만 한나가 죽음을 앞둔 자신의 옛 연인에게 돌아가면서 헤어졌다. 해안선이 침식되는 섬, 그곳의 해변 여관처럼 연과 천은 폐허의 삶을 살아간다. 연은 사라질 여관을 떠나지 않고 천은 그곳에 머문다. ![]() 모수는 일기를 쓰는 사람이고 말이 없었고 정확하게 설명을 하지 않았다. 사실만 기록하는 사람이었다. 그에 반해 연은 생각이 말로 흘러나오는 사람이었고 모수의 말과 생각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모수가 떠나고 그가 남긴 노트는 정리하지 못한다. 모수의 유령이 볼 수도 있으니까. 그것이 연이 모수를 기억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다. 돌아오지 않을 한나를 그리워하는 천도 다르지 않았다. 국지전이 일어나고 지구는 뜨거워지고 무서운 태풍이 오는 세상이지만 그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국가는 개인의 상실이나 상처 따위는 관심이 없고 바다는 밀려왔다 쓸려가고 세상은 점점 더 나쁘게 돌아가니까. 모수가 일기를 쓰는 일은 그런 세상을 견디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똑같은 하루는 없잖아요. 매일이 다르잖아요. 일기를 쓰면 그런 게 느껴지는데.” (87쪽) 매일 같은 날씨는 없으니까. 똑같은 하루처럼 보이지만 똑같은 하루를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살아간다는 건 분명 매일은 다른 삶이니까. 한나는 천이 그런 삶을 살아가기를 바랐을 것이다. 천이 배역의 삶이 아닌 천 스스로의 존재로 살아가기를 원했다. 그런 의미에서 천이 한나를 따라 사막으로 취재 여행에서 한나가 한 말 “다음 구름에서 쉬어 가요. 구름이 그림자를 드리우는 곳에서.” (126쪽) 은 소설을 관통한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다음 구름에서 쉬어 가요.” 연의 중얼거림을 따라서 천이 중얼거렸다. 언젠가 자신이 해본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그 말을 한 것이 한나였다는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연의 중얼거림이 듣기에 좋았고 듣기에 좋은 것은 따라 하기에 좋을 따름이었다. 천이 제 말을 따라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연이 그를 바라보았다. 천도 연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다가 다시 수평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평선 너머의 망망대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연은 몽상가도 아니고 생물학자도 아니고 옛사랑을 추억하는 사람도 아니고 단지 살아가는 사람이었는데, 그것은 천도 마찬가지였다. (154쪽) 해변 여관 옥상에서 연이 담배를 피우며 중얼거리는 말도 그것이다. 쏟아질 듯한 이 여름의 열기를 살아내는 나에게도 필요하다. 단지 살아가는 사람, 어떤 세상이 와도 단지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 그것이 남겨진 자로 살아가는 모두를 위로한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막막하고 여전히 슬픔에서 허우적거리는 이들에게, 남겨진 자의 곁에 머물려 떠도는 모수의 유령 같은 이들에게도. 나는 이장욱의 아름다운 겹을 벗겨내지도 걷어내지도 못했다. 봄에 읽고 여름에 다시 읽었지만 이해할 수 없어서 좋았다. 알 수 없는 세계라서, 그 세계에 감탄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오히려 그 뜨겁고 황홀한 겹에 갇히는 게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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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 이장욱 45도까지 기온이 오른 여름, 높아진 해수면, 국지전…. 종말의 상황에서 소중한 사람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남편인 ‘모수’가 사망한 후 남은 흔적들을 더듬으며 살아가는 ‘연’과 연인인 ‘한나’를 떠나보낸 ‘천’. 두 사람의 이야기인 것 같으면서도 결국 주인공은 네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작가님의 말에 따르면 이 소설의 원제는 「침잠」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1m씩, 조금씩 더 깊이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높은 기온으로 인해 텁텁한 바닷바람을 들이마시는 것 같은 기분. 등장인물들과 우울을 공유하게 될 줄이야…. ?? 하지만 삶은 추리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라고 연은 결론을 내렸다.(p.15) ?? 임계점을 지나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모든 것은 한꺼번에 급격하게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무너진다. 인간의 몸도 인간의 마음도 인간의 도시도 그럴 것이다. 마침내 인간이 없는 세상조차도. 그런 세상에는 ‘무너지다’라는 단어조차 없겠지만.(p.47) ?? ”어쨌든 진실이 고체라면 곤란하잖아요. 딱딱하기도 하고 부서지기도 하니까. 거기 딱 있는 것 같고. 부수고 싶고.“ ”그렇죠. 딱 있는 것 같고. 부수고 싶고. 실제로 잘 부서져요. 진실이란.“(p.52) ?? 예상하던 일이 일어나면 사람은 예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충격을 덜 받는다. 예상을 성실하게 하면 어떤 일이든 생각보다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데 이런 건 모수가 생전에 했던 말이었다. 죽음은 그렇지 않을 텐데. 예상을 아무리 해도 죽음은 그렇지 않을 텐데.(p.81) ?? 다음 구름에서 쉬어 가요. 구름이 그림자를 드리우는 곳에서.(p.126) ?? 바다는 황량할수록 바다 같을 것이었다. 바다는 두려울수록 바다 같을 것이었다. 바다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수록 바다 같을 것이었다.(p.1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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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수, 연, 천, 한나 네명의 이야기. 모수는 병으로 사망하고 남은 연은 해변호텔을 운영한다. 해안선 침식으로 모텔은 퇴거 명령을 받은 상황이다. 모수는 죽은 후 아내에게 유령으로 나타나고, 연은 모수가 남은 일기장 처분을 고민한다. 천은 호텔을 유일한 투숙객이다. 원래 연극배우였으나 인터뷰 도중 하나를 만나 연인이 되었다. 하지만 한나는 전 연인인 엑스에게 돌아가고 천은 혼자 호텔에 투숙한 것이다 모수-연, 천-한나의 서사에 기억할만한 특별한 매듭이 없다. 그들의 삶이 분명한 교차하는 지점도 없다. 하지만, 중간중간 그들은 살짝 스친다. "시간은 물질이고 물질이 이동하면 변화가 일어난다"고 한다. 죽음과 이별, 그 뒤의 상실감과 애도 역시 시간과 함께 형태를 달리한다 서사보다는 알듯말듯 느낌이 드는 책 #뜨거운유월의바다와중독자들 #현대문학 #핀시리즈 #이장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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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
** '글을 읽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었으므로 힘이 들었지만 끈질기게 읽어나갔다.' (151쪽) 이 구절은 처음 책장을 넘기며 들었던 나의 심정과 같다. 모수의 장례식장 풍경으로 시작된 도입으로부터 연과 스치듯 묘사되는 형사 이야기. 자꾸만 중얼거리는 연. 모수의 유령을 의식하는 연의 이야기가 유령들이 부유하는 세계 속에서 유영하는 것 같기도 했고, 황무지의 한가운데서 말라비틀어진 채 버석한 공기 속에 숨막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소설 속 배경은 종말의 끝을 향해 걸음하는 것 같이 메마르고 삭막한 느낌을 준다. 국경에서 발생되는 국지전이라든지, 해안선의 침식, 칠월의 기온이 45도나 된다든지. 모수의 죽음 또한 갑작스럽지만 당연하게 그려지는 변이로 인한 것이고 한나의 전 직장동료이자 남편이었던 실장의 죽음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바다와 해변여관의 주인이자 전직 공무원이었던 모수와 부부의 연을 맺은 연. 발작같이 터진 웃음으로 아나운서 일도 그만둬야 했던 한나와 메소드 연기를 떠나 캐릭터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 천. 네 사람의 관계성은 동떨어진 곳에 배치된 듯 하지만 스치듯 마주한 적이 있기도 하고 결국 사소하게나마 엮이기도 한다.
연은 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말로 중얼거리는 사람이다. 의도치 않게도 말이다. 생각을 중얼거리면서도 상대방의 마음에 대해 핵심을 짚기도 하고, 적잖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책을 좋아해 서점 직원으로 일했던 연이 매니저였던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고 헤어지게 되는 것이 전혀 갑작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웠던 것처럼. 연의 중얼거림은 모수의 유령을 인식하면서 더 극대화되는 것 같았다. 과연 모수의 유령은 무엇인가.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사실 그대로를 기록했던 모수. 몸이 크고 과묵한데다 일까지 꼼꼼하게 잘 하던 사람이 내부고발자가 되어버린 까닭이라든지, 일기광인 그가 사실을 기록하는 것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 그렇게 쌓인 일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했던 연과 모수의 유령.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모호하게 느껴졌던 그 존재가 사실은 "모수의 유령"을 통해 세상 바깥으로 말을 걸고 기록하는 주체가 연이었음이 드러나는 구간에서는 혼란스럽기도 놀랍기도 했다. 망망대해란 무엇인가. 물에 잠겼지만 언젠가는 다시 떠오르게 될 거란 기다림으로 같이 건너가고 있다는 것인가. 망망대해처럼 아득하다. 하지만 연은 다시 중얼거리고 있다. 단지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이다.
천은 연극배우이다. 메소드 연기를 넘어서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 사람. 걸음걸이, 말투, 생각조차도. 한나는 그런 천에게 매료되었음에도 타인과 함께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천의 그런 특성은 <데칼코마니>라는 연극에서 더 극대화된다. 무대 좌우 끝에서 같은 범인의 연기를 하는 두사람. 천은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을 의식하지 못한 채 안토니오의 발자국을 따라 걷고 말을 했다. 결국 천은 연출가로부터 연기에 절제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연출가의 말 또한 따라 중얼거리는 천. 그런 그의 모습을 누구보다도 더 이해하고 알고 있었던 한나는 천이 사로잡힌 사람임을 알았다. 자신이 하는 연기에서 그 역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로잡힌 사람. 한나는 각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말하며 천을 떠났고 나중에는 변이의 대한 소식 한켠으로 그 죽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중독자들이란 누굴 이르는 것일까. 기록하는 것에 사로잡혔던 모수, 자신의 역할에 사로잡혔던 천. 이 둘을 이야기 하는 것일까. 단지 모든 것이 끝난 후에도 "그 이후"를 살아갈, 시작을 기다리는 사람들인 것일까. 무언가 또렷한 답을 구하고 읽는 게 아니어서 의문들은 그냥 의문으로 남겨두었다. 이장욱 시인이라는 호칭에 더 익숙했던 내게 소설을 떠올리면 <고백의 제왕>이나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이 떠오른다.
소설 속 배경은 현실과 완전 동떨어진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더 현실적이다. 사람들과 엮이는 관계성이라든지, 세상이 나만 따돌리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의 심리라든지. 냉철한 시선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비극을 그리냐 하면 묘하게 긍정적이다. 어쨌든 보통의 사람들이고 살아가고 있고 살아갈 수밖에 없고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살아가는 한 기다림과 발견은 계속될 것이라는 듯.
(사담이자만 어쩌다 보니 핀시리즈 소설은 오랜만에 읽은 것 같다. 사실 시인선만 무지성으로 지르고 있었어서 소설 쪽으로는 시선이 잘 안가기도 했다. 핀 시리즈 신간이 출간될 때 친필사인본의 기획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소장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가지고 있었다. 운 좋게도 서평단을 통해 도서를 먼저 제공받게 되었지만 친필사인본도 잃을 수 없어 추가로 구매했다. 마음이 두배로 풍성해진 듯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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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유월의 바다. 매일, 매번 치는 파도도 다 다른 것들일 것이고.. 바람이 부는 방향도 다를 것인데.. 유월의 바다는 매일 같은 모습일 것 같다. 무엇인가가 끝난 이후의 이야기들이 잔류해 있어 그럴까. 연은 모수와 해변여관에서 지내가 모수가 죽은 후 홀로 해변여관으로 돌아왔다. 퇴락한 바닷가의 여관에는 손님은 없지만.. 장기 투숙객 천이 있다. 천은.. 한나와 헤어지고 해변여관으로 왔다. 딱히 바다가 보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연은 혼자 생각한다고 하는 것들을 자기도 모르게 말하고는 했다, 모수는 그 말을 잘 들어주고 대답해주는 사람이었고.... 모수는 매일 일기를 쓰고 연은 모수가 죽은 후에도 그 일기를 태우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천은 연극배우였는데 본인이 하는 배역에 항상 사로잡혔다. 천은 그래서 한순간도 혼자 있지 않았다. 세일즈맨과 바냐 아저씨와 어떤 날은 텔레비전의 기상캐스터와 함께 있는 사람이었고.... 한나는 그런 천에게 항상 이물감을 느꼈다.. 그 이물감을 각자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로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연과 천이 담배를 피우는 해변여관 옥상.. 담배 연기는 어디로 날아갈까. 그렇게... 아름답지도 않은 유월의 바다를 바라보다 보면.. 그들도 그 바다를 떠날 날이 오겠지. p.126 다음 구름에서 쉬어 가요. 우리는 또 태양 아래에서 살아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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