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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츠쯔젠에 매료된 것은 아시아 청년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놓은 <물결의 비밀>을 읽고 서다. 이 속에는 츠쯔젠의 단편 ‘돼지기름 한 항아리’가 수록되어 있다. 소설을 읽으며 겨울이면 영하 30도가 넘는 동토가 스르르 느껴졌고, 그 땅에서 살아가는 가족들의 숨결이 느껴졌다. 소설에는 어릴 적 7남매가 같이 했던 내 어릴 적 기억과 더불어 고향 마을의 다양한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특히 돼지기름을 이고 가는 엄마의 모습은 내 어머니의 고된 젊은 날과 비슷해 감정이 더 짙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이런 감동은 장편 <어얼구나강의 오른쪽>이나 <뭇 산들의 꼭대기>로도 그대로 이어졌다. 그러니 작가의 단편 모음집 <가장 짧은 낮>이 나온다니 가장 먼저 주문을 누를 수 밖에 없었다. 책을 받아 들고 나는 너무 빨리 읽기가 싫어서, 맛있는 과자를 먹듯이 천천히 한편 한편 읽어갔다. 다행히 ‘돼지기름 한 항아리’도 수록되어 있었다. 이번에 수록된 단편은 표제작을 비롯해 16편이다. 단편의 생명력은 소재에서 나온다. 장편처럼 스토리텔링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츠쯔젠의 단편은 소재나 스토리텔링 모두가 인상적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라이프 에로티즘’이라 불릴 정도로 범인들의 성적 느낌도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위화, 쑤통 등 대부분의 중국 작가들도 그런데 츠쯔젠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7남매가 함께 살았던 만큼 나 역시 어릴적부터 관련 호기심을 안고 살았다. 아이들이라 해서 그 분야에 관심이 없을 리 만무한데, 츠쯔젠은 그런 시각으로도 성적 묘사를 잘 해낸다. 첫 소설 ‘깨끗한 물’은 설날을 앞두고, 가족이 소년 톈두의 방에 만든 목욕대야에서 차례대로 목욕을 하는 춘지에 전날의 모습을 담고 있다. 우리 집 역시 명절 전이면 식구들이 이런 방식으로 목욕을 했기 때문에 어떤 소재보다 사실적인 느낌이다. 이제 어린애처럼 되가는 할머니부터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엄마, 아빠의 목욕까지. 소년의 눈에 뿌연 수증기로 가득찬 목욕은 정겨운 소재다. ‘해빙’은 문혁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지역 사람들의 애환을 잘 묘사한 소설이다. 학교 교장을 지내던 쑤저광은 문혁 때 하방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런 어느날 지역의 대도시 정부가 그를 부른다. 문혁 때를 생각하면 다시 올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쉽지 않다. 쑤교장은 그 집안의 안부를 한때 자신의 아내를 흠모했던 도살업자 왕퉁량에게 부탁한다. 이윽고 그가 떠난다. 이 이야기도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대학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한 친구는 두 번의 교통사고를 겪자 앞 날을 보장하지 못하겠다며, 내가 자기 가족의 뒤를 부탁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다. 때로 앞날이 예측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그런 부탁을 한가 보다. 지금은 어느 학교서 교감선생을 하고 있는 그 친구는 이제 소식마저 끊어 버렸다. 이 소설의 결말도 나와 친구처럼 데면데면하게 끝난다. 표제작 ‘가장 짧은 낮’은 인상적인 작품이다. 내가 가장 가고 싶어하는 북방은 겨울밤이 상대적으로 짧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 즉 동지날은 자오즈(우리 만두)를 먹는 등 수많은 관습을 만들어 낼 수 밖에 없다. 주인공은 아들이 마약으로 인해 감호시설로 들어간 후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해 가방 의사를 하는 사람이다. 동북3성을 주유하며 수술을 하는 그는 다롄 근처의 시골에서 항문수술을 하고, 집이 있는 하얼빈으로 향하는 고속철도를 탄다. 흔히 문혁기간의 묘사로 익숙한 중국 소설이 아니라 고속철도를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재밌다. 환자의 배려로 고속열차의 특등칸에 탄 나는 철도 기술자를 하는 청년과의 대화 속에 자연스럽게 중국 청년들의 애환을 담는다. 삼포세대가 결코 한국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웃픈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다. 나는 과연 무사히 그날 안에 집에 도착할 수 있을까. 보하의 강가에서 오리를 키우고, 만두를 만들어 파는 루쉐는 강가 중간에 들어선 모래채취선이 눈에 거슬릴 수 밖에 없다. 우선은 기계음이 시끄럽고, 어디서 온지 모르는 이들이 부담스럽다. 그러던 어느날 싼 찐 암오리 한 마리가 없어진다. 당연히 모래채취선의 남자들을 의심채 찾아간다. 그리고 얼마 후 시장에서 만두를 파는 루쉐를 찾아 온 덩치 큰 남자는 그녀에게 오리값을 치룬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오리를 잡아먹은 것은 사람이 아니라 매라는 것을 깨닫는다. 루쉐와 거한은 어떻게 될까. 소설을 읽으면 찾아오는 남자에게 생니를 뽑아서 모았다는 배비장전의 고사도 떠오른다. 물론 루쉐는 이가 아닌 남자들의 손톱이다. 항일전쟁 당시 할아버지의 일본군과 치열한 대결을 다룬 ‘말 장화를 삶다’나 계부와 갈등으로 외양간에 사는 소년의 흥미로운 세상사 이야기인 ‘무월霧月의 외양간’도 재밌다. ‘돼지기름 한 항아리’는 다시 읽어도 츠쯔젠의 탁월함이 다시 느껴지는 소설이다. 샤오차이허 벌목장에서 일하는 남편 라오판의 편지를 받고, 3아이와 그곳을 향하기 위해 집을 정리하는 나는 집을 정리하는 방법을 찾는다. 도살업자 훠다옌은 집 대신에 자신이 새로 만든 돼지기름 한 항아리와 바꾸자하고 고민 끝에 승낙한다. 아이도 벅찬데 나는 기름이 든 항아리를 안고, 샤오차이허로 긴 길을 떠난다. 목적지에 도착전 남편을 대신해 마중나온 추이다린과 함께 말을 얻어타고 가다가 그 이쁜 항아리는 깨지고, 결국 흩어진 돼지기름을 수습해 남편의 임지에 도착한다. 돼지기름을 먹은 검은 개미 덕분인지 다시 아들 마이를 얻는 이들 가족의 주변에는 다양한 사건들이 펼쳐진다. 침대열차 안의 하룻밤을 배경으로 한 ‘눈 커튼’은 중국인들의 타인을 보는 시선을 흥미롭게 묘사한 글이다. 침대 칸을 처음 타본 할머니가 표를 바꾸지 못해 발생하는 사고를 두고 벌이는 에피소드다. 이 소설에서 나오는 기차는 잉워(硬臥)칸으로 루완워 보다는 등급이 낮은 침대칸 열차다. 1998년 9월 여행으로 만난 중국을 시작으로 중국에 거주하면서 수없이 중국 열차를 탔기 때문에 거의 모든 수준의 중국 열차를 타본 나로서는 너무 재밌는 기억을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아울러 기차에서 만났던 수많은 중국 사람들의 인상도 다시 생각났다. ‘말 한 필, 두 사람’은 노부부와 가족 같이 살아가는 말 한 마리의 생에 대한 이야기다. 부부의 정과 중국인들이 말이나 소 같은 가축을 어떻게 보는 지 알 수 있다. 나 역시 시골집에서 소들과 어린 시절을 같이 했기에 그런 정서들이 적지 않다. 때로는 형제 같고, 자식 같은 역할을 하는 가축의 모습이 정감있게 다가왔다. ‘꽃잎 죽’은 왈자배기 아들이 문혁기간에 벌어지는 가족간 에피소드를 그려낸다. 교장선생님인 아버지는 당연히 지식분자이기 때문에 수없이 수난을 겪을 수 밖에 없다. 큰 딸은 아버지를 멀리하겠다는 맹세의 글을 쓰고, 아들이 아빠를 무시해야 하는 현실 속에 어른들은 그 시기를 어떻게 겪어가는 지를 볼 수 있다. ‘가는 비 내리는 그리그해의 황혼’은 작가가 방문한 음악가 그리그의 고향 노르웨이 베르겐을 방문하는 여정과 작가가 장편소설을 쓰기 위해 잠시 머물던 모나진의 기역을 겹치면서 한 지역이 갖는 정서를 잘 풀어낸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도 오랜만에 유튜브에서 그리그의 음악을 찾아들으면서 그 정서를 만나봤다. 개인적으로 중국을 여행할 때, 작가들의 고향에 가면 그 정서가 남달랐다. 위화의 소설적 배경인 항저우나 하이옌, 쟈핑야오의 고향 샨시, 루쉰의 고향 샤오싱, 장리자나 장자자의 고향 난징, 모옌이 고향 산둥, 쑤통의 고향 지앙쑤, 옌롄커의 고향 허난, 다이시지에의 고향 쓰촨 등에 가면 나는 그들의 소설을 생각한다. 물론 헤이롱지앙 성 북방 지역에 가면 츠쯔젠을 생각할 텐데, 나는 하얼빈 북쪽을 아직 가보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친구들아 눈 보러 와’나 ‘백설의 묘원’은 북방의 상징인 눈을 배경으로 한다. 내 고향 영광도 유난히 눈이 많은 곳이기에 눈이 주는 감정은 남다르다. 다만 우리 고향의 눈은 많이 와도 지나치게 오래 남아있지는 않는다. 비교적 남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가 어릴적 살았는 강원도 인제나 그 북쪽이 눈들은 터널을 만들 만큼 긴 시간 남아있는데, 하얼빈은 이것을 관광지원으로 만드는 빙등축제를 하기도 한다. 소설 전체에 대해 나는 옮긴이가 쓴 말도 깊이 공감한다. “츠쯔젠 소설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하층 서민들의 삶 깊숙한 곳에 녹아 있는 따스한 정과 인성의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처연한 서정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들판에 핀 꽃 한송이, 길가에 구르는 돌 하나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 만물의 영혼이 자신의 영혼과 서로 작용하고 자기 삶 속 깊숙이 들어와 있다고 믿는다..... 이 소설집에는 중국 북방 서민들의 강인한 삶의 에너지와 소박하고 순수한 심성, 온갖 재난과 곤경을 관통하는 인성의 에너지, 외부세계의 냉혹함과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인간 내면세계의 온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명에 대한 존중이 가득 담겨 있다.” 문학을 하는 이들이 있다면 나는 이 소설을 꼭 권하고 싶다. 가장 큰 이유는 문체다. “오리는 살이 찌고 강물은 야위었다. 풀잎은 누렇게 변하고 바람이 차가워졌다.”라는 문장 등 내가 감탄할 수 밖에 없는 수많은 묘사들이 좋았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후보에 찬쉐가 올랐지만 나는 중국 작가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있다면 찬쉐나 위화보다는 츠쯔젠이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녀의 소설이 얼마나 영문화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이 상이 놀라운 문학적 성취에 대한 보상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