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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전작 <체리토마토파이>가 잔 할머니의 목소리로 느긋하게 노년과 죽음을 이야기했다면 이 책 <다시 만난 사랑>은 성인이 된 딸의 목소리로 나이든 엄마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일흔세 살 엄마는 52년 전의 첫사랑을 만나 편지를 주고 받고 서로의 집을 오가며 다시금 우정과 애정에 설렌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어린 옥희는 두 어른의 밀당과 어머니의 복잡한 속내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소설 속 화자는 엄마의 다시 만난 첫사랑과 벅차오르는 느낌을 지지하며 공강하려 애쓰는 중년이다. 다만 '나만의 엄마'를 빼앗긴 듯한 불안에 허우적거리기도 하고 낯선 아저씨에게 아빠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씁쓸하고 서글프다. 아저씨와 함께 하는 어색한 시간 속에서 아버지의 부재를 새삼 깨달으며 아빠를 그리워한다. '웅숭 깊은 애착'과 '저물어가는 생의 정으로 끈끈'했던 엄마와 아빠의 관계가 막을 내리고 혼자라서 홀가분하다는 엄마를 응원했는데, 여전히 '나의 엄마'로 있을 줄 알았던 엄마가 첫사랑을 만나 키스를 하고 결혼 서약을 하고 장거리 동거로 '나'와 멀어지게 된다. 시시콜콜한 속내까지 터놓을 수 있었던 단짝 친구 엄마가 어느새 사교적 관계로 변해간다. 군인 출신 그자비에 아저씨는 아빠의 자리에 이어 엄마까지 '점령'하며 '나'에게 허탈감을 안겨준다. 이런 복잡미묘한 감정 묘사가 섬세해서 먼 나라 남의 엄마 이야기이지만 공감하며 읽었다. 장거리를 오가며 연애와 동거를 반복하던 엄마는 이제 미용실에 앉아 있는 것도 귀찮고 힘들다며 염색도 하지 않은 채 늙어간다. 첫사랑을 다시 만나 반짝이던 눈빛도 여든, 아흔이 되어가며 빛을 잃고 총명하던 기억도 망가지기 시작한다. 딸은 다시 시작된 엄마의 사랑보다 엄마의 늙어감과 변화가 원망스럽다. <디어마이프렌즈> 고현정이 연기했던 딸의 모습이 오버랩되더라. '세상 모든 자식들은 눈물 흘릴 자격도 없다 우리 다 너무 염치없으므로'라고 했던가. 다행히 책 속의 딸은 아저씨의 죽음 뒤 다시 혼자가 된 엄마의 노년을 맞딱뜨리면서 내 행복보다 엄마의 행복을 먼저 챙기려는 성숙함을 보인다. 늙어가는 엄마의 시간을 원망하던 철부지 딸이 엄마의 건강을 염려하고 다정히 보살피려 애쓴다. 고령의 노인들이 시간과 함께 쌓아올린 다정함과 인내심, 너그러움을 배우려 노력한다. 엄마의 평온한 일상에서 깨우친 것이기도 하고 아저씨를 할아버지라 부르는 둘째아이의 천진함에서 배운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 소설은 엄마의 첫사랑과 노년의 장거리 연애 이야기가 아니라 엄마를 이해해가는 딸의 이야기로 읽어야 맞다. '웅숭 깊은 애착'이나 '생의 정으로 끈끈한', '마음 깊이.우러나는 애정과 우정'은 이성 사이에만 유효한 요소가 아니다. 에너지를 잃어가는 나이든 엄마와 아직은 젊은 에너지를 간직한 딸 사이에 더 필요한 성분들인 것이다. 시간이 관계를 변화시키고 죽음이 관계를 끊어내더라도 마음과 기억과 애도는 언제까지라도 이어지니 서로를 뿌리치지 않는 한 웅숭 깊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노년에 찾아온 첫사랑이라는 책 소개에 혹해서 읽었지만 이 책은 중년의 딸에게 찾아온 깨달음의 이야기이다. 엄마의 52년 만의 첫사랑 이야기가 아닌 중년의 딸이 깨달은 사랑, 새롭게 깨우친 사랑의 의미에 관한 성찰이다. 엄마와의 애착 관계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젊은 엄마가 내게 베풀었던 다정과 너그러움을 중년의 내가 어떻게 배우고 되돌려드릴 수 있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나이듦이 낡음이 아님을, 늙음이 퇴화나 소멸만은 아님을 깨우치게 한다. 나이듦의 자유와 행복을 우리 염치없는 자식들이 어찌 지지하고 응원해야 하는지도 생각해볼 일이다. 엄마와 아저씨의 사랑에 축복을 주셨던 신부님의 말씀에서 나도 배운다. 진정한 애정은 나의 단단함으로 상대를 일으켜 세우는 일, 존중과 부드러움으로 조심스레 자제하는 일, 사랑의 거리를 유지하며 상대의 경계를 존중하는 일, 타인에게서 경이를 발견하며 서로의 영혼을 살포시 포개는 일, 그렇게 상대와 나를 지키는 일임을. 아, 근데 울집 어머니들… 요양원에서 보내는 시간 속에도 존중과 애정이 있나. 자유와 행복은 고사하고 갇힌 시간 위에 두 분은 각자 어떤 것들을 쌓고 계시는지. . . 나는 역시나 염치없는 자식이다. <책 속으로>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언제가 될지 모를 이별을 무릅쓴다는 것이지요. 281p 나는 다정함을 다시 배워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 자신과 나의 자잘한 근심들을 조금은 잊고 엄마를 보살펴야겠다, 얼마 남지 않은 엄마의 행복을 나의 행복보다 먼저 생각해야겠다. 나의 행복은 생이 계속되는 한 꾸려나갈 시간이 있지만 엄마의 행복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엄마를 챙긴다는 것은 아저씨를 챙긴다는 뜻이기도 해요. 엄마가 끝까지 사랑하기로 선택한 사람이니 나도 마음을 써야지요. 285p 그런데 애정이란 뭘까요? '상처 입은 새'를 손으로 안아 올리듯 조심스럽게 소중한 사람의 손을 잡을 때, 나는 무엇을 합니까? 내가 느끼는 것은 무엇입니까? 가슴이 벅차오르고 두근거리는 느낌, 그 약동이 나를 타인에게 향하게 합니다. 내가 느끼는 것은 개방성, 내 안의 확장입니다. 나는 나보다 더 큰 무엇에 녹아드는 기분이 듭니다. (…) 그렇지만 애정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나긋나긋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어로 '애정'은 '스토르게(storge)'라고 하는데 이 단어의 어근 '스테르(ster)'는 '단단한'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애정은 단단한 것입니다. 애정은 굳건하게 지지합니다. 사랑의 에너지는 흔들리지 않고 줄기차게 만듭니다. 애정은 상대를 약하게 만드는 나긋나긋함이 아닙니다. 애정은 살과 살을 맞대고, 영혼과 영혼을 맞대고, 존재와 존재를 맞대고 전해지는 내면의 창조적인 힘입니다. 290p #다시만난사랑 #베로니크_드_뷔르 #이세진옮김 #청미출판사 #엄마와딸 #사랑의의미 #진정한애정 #부모와자식 #사랑하는일은 #나의단단함으로 #상대를일으켜세우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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