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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의 저자 한병철의 책이다. 내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취미에 있어 취미를 넘어서 좀 더 프로패서널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는데 매번 한계에 부딪히는것이 서사였다. 나만의 스토리, 감정과 주관의 목소리가 늘 부족했다. 내가 무얼 말하고 싶은걸까? 임경선 작가의 말대로 자신의 감정을 징징대며 읆어내놓는 그런 이야기는 그만 쓰고 싶다. 풍경을 실사처럼 묘사한 그림에서도 나의 실력을 체감한다. 서사. 간절한 나의 욕망이다. 작가는 급변하는 스마트 세상속에서 서사의 위기를 꼬집었다. "진정한 이야기란...마치 피라미드 안에 밀폐된 채 수천 년 동안 보관되어 오늘날까지 발아력이 보전된 씨앗과도 같다. 모든걸 내보이지 않는다. 이야기는 그 힘을 내면에 모은 채 보전하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다시 펼쳐낼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정보는 완전히 다른 시간성을 보인다. 정보는 좁은 최신성의 폭 때문에 매우 빠르게 소진된다. 정보는 오로지 찰나의 순간에만 작동한다. 영구한 발아력을 지닌 씨앗이 아니, 티끌이나 다름없다. 정보에는 발아력이 결여되어 있다. 한번 인식되고 나면, 이미 확인을 마친 부재중 메시지처럼 무의미성 속으로 침잠한다." "기억은 가까운 것과 먼것을 전제한다. 경험한 모든 것이 간격없이 현재로 존재한다면 즉 가용한 상태라면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다. 체험한 것의 빠짐없는 재현은 이야기가 아니라 보고서나 프로토콜에 불과하다. 이야기하거나 기억하려는 사람은 많은 것을 잊어버리거나 생략 할 수 있어야 한다. 투명사회는 이야기와 기억의 종말을 의미한다. 어떤 이야기도 투명하지 않다. 투명한 것은 정보와 데이터뿐이다." "디저털화된 후기 근대에 우리는 끊임없이 게시하고 좋아요를 누르고 공유하면서 벌거벗은 공허해진 삶의 의미를 모르는 척 한다. 오늘날의 위기는 사느냐, 이야기하느냐가 아닌 사느냐, 게시하느냐가 된 데 있다. 내면의 공허가 셀카 중독으로 이어진 것이다. 나에게는 안정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의미 제공이 결여되어 있다. 셀카는 텅빈 자기의 복제이다." "세계는 계속 탈신비화되어간다. 신화적 불은 꺼진 지 오래다. 더 이상 기도하지 못한다. 내밀한 명상 역시 하지 못한다. 숲속의 신화적 장소도 잊혔다. 오늘날은 여기에 더 결정적인 것이 추가된다. 이제 우리는 신화적 장면을 회고적으로 그려낼 수 있는 이야기할 능력마저 상실해 가는 중이다. " "이야기로서의 이론은 사물들을 관계성 안에 집어 넣은 후에도 왜 그렇게 관계되어 있는지 설명하는 질서가 있다. 이론은 사물을 이해하게 해주는 개념적 맥락을 발전시킨다. 반면 빅데이터는 완전히 열려 있다. 이론의 종말은 결국 정신 개념과의 작별을 뜻한다. 인공지능은 개념없이도 작동한다. 지능은 정신이 아니다. 사물의 새로운 질서, 새로운 이야기는 정신만이 할 수 있다. 지능은 계산하고 센다. 정신은 이야기한다. 데이터 기반 정신과학은 정신을 탐구하는 과학이 아니라 데이터과학이다. 데이터는 정신을 몰아낸다. 데이터와 정보로 가득한 세상은 이야기할 능력을 위축시킨다. " "철학이 자신을 학문, 심지어 정확한 학문이라고 주장하는 순간에 철학의 쇠락이 시작된다. 학문으로서의 철학은 본래의 서사적 성질을 부정한다. 이로인해 언어가 박탈된다. 그러면 철학은 침묵한다. 오늘날 서사의 위기는 철학에도 해당되며, 철학을 종말로 이끈다. 우리에겐 더 이상 철학을 향한 용기, 이론을 향한 용기, 즉 이야기할 용기가 없다. 우리는 사유가 결국 그 자체로 이야기하는 것과 이야기의 단계를 거쳐 나아가는 것임을 지각해야한다. " "오늘날 우리는 접촉이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는 소비 가능한 대상을 어루만질 수 없다. 단지 그것을 쥐거나 소유할 뿐이다. 디지털 장치를 상징하는 스마트폰만 하더라도 총체적 가용성의 환상을 만들어낸다. 스마트폰의 소비적 습성은 모든 생활 영역을 포괄한다. 스마트폰은 타자에게서 타자성을 빼앗기도 하고 타자를 소비 가능한 대상으로 전락시키기도 한다. (타자성 : 나와 구별되는 다른 존재나 집단에 대한 인식이해관계 설정을 포괄하는 철학적윤리적문화적 개념)" "접촉은 우리를 자아 안에서 밖으로 꺼내준다. 접촉의 빈곤은 결국 세계 빈곤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우리는 우울하고, 외롭고, 불안하게 만든다. 디지털화는 이러한 접촉의 결핍과 세계 빈곤을 계속해서 악화시킨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고립시키는 것은 늘어가는 연결성이다. 여기에 바로 파멸적인 네느워킹의 변증법이 존재한다. 네트워킹되어 있다는 것은 연결되어있다는 뜻이 아니다. " "스토리텔링은 도구화하고 상업화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서사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날것의 사실 또는 숫자보다 효과가 좋다. 감정은 무엇보다 서사에 반응한다. 스토리는 판다는 것은 결국 감정을 판다는 말과 같다. 자본주의는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전유함으로써 전 반성적 층위의 삶을 점령해 버린다. 그럼으로써 의식적 통제와 비판적 성찰을 피해간다. 작가의 글에는 확실한 기승전결이 있다. 서사의 위기에 대해 서사적으로 독자를 이해시킨다. 친절하게도 마무리에는 정답을 정확하게 알려준다. 대한민국이 낳은 세계적인 또 한명의 철학자라고 자부한다. (이 책에 흠결이 있다면 오타가 너무 많다) "삶은 이야기이다. 서사적 동물인 인간은 새로운 삶의 형식들을 서사적으로 실현시킨다는 점에서 동물과 구별된다. 이야기에는 새 시작의 힘이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모든 행위는 이야기를 전제한다. 이와 반대로 스토리텔링은 오로지 한 가지 삶의 형식, 즉 소비주의적 삶의 형식만을 전제한다. 스토리텔링의 세상에서는 모든것이 소비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우리로 하여금 다른 이야기. 다른 삶의 형식, 다른 지각과 현실에는 눈멀게하는 스토리의 중독시대에 서사의 위기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