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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쳐 못 읽고 <지구 끝의 온실>을 마저 다 읽고 나서야 읽을 수 있었다. <파견자들>은 전작들보다 작가의 세계관이-우주관이라고 해야 하나- 점점 더 훨씬 넓어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작가가 말했던 아주 작은 순간의 감정이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가 된 것에 대해 감탄해마지않을 수 없었다. 사실 빠져들어 아무 생각없이 읽을 수 있었다. 읽다가 의식이 돌아올 때쯤, 나의 의식은 종말론, 혹은 인간의 본질 내지 본성 보다는 식물의 세계를 그려보다가 지구 종말의 세계를 생각해보았다. 얼마 전 읽었던 최재천 교수의 <곤충사회>도 떠올랐다. 곤충이나 식물 혹은 균류들보다 훨씬 적은 역사를 가진 인류가 어찌 이리도 흉포스러운지를 생각케 했다. 미래소년 코난의 이미지가 겹쳐 올랐다. 반쯤 파괴된 지구에서 살아남기위한 인간의 노력이, 그중에서도 그 상황에서도 권력을 탐하는 온갖 인간 군상의 포악한 모습을 그려보게 하였다. <미래소년 코난> 이후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세월이 흘렀어도 결국 그려지는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인간의 모습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듯 하였다. 더 심해졌다라 이끌어야하나, 더욱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겨야 하나? 어느 방향으로든 기대하고픈 상황은 아니었다. 저자는 "몇 년 전 한 미술 전시에서 발표한 짧은 이야기가 이 소설의 씨앗이 되었다. 그때 나는 인간이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그래서 인간은 물질적으로 바깥 세계와 뒤얽혀 있고 그 사실은 우리의 세포와 단백질, 분자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게다가 인간의 몸 속에는 수많은 '외부에서 온 존재들'이 같이 살고 있으며, 어느 정도는 실제로 우리를 구성한다. 인간이 '우리'라고 말할 때 그것은 꼭 인간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짧은 이야기는 범람체의 모티브가 된 균류, 곰팡이에 관한 책들을 만나며 긴 이야기로 발전했다. 하나의 개체가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서 끝나는지, 그 질문을 던지는 것조차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상한 존재들이 이 행성에 같이 살고 있다니. 그러자 다음 질문이 따라왔다. '범람체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개체에 속해 있지 않은 존재, 인간과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느끼는 존재를 상상하기 위해, 지구의 다른 생물들의 감각 세계를 조사한 책을 살폈다. 인간의 감각적 자원이 그것을 상상하기에 얼마나 모자란지를 새삼 느꼈지만, 꼭 한 번 쯤은 도전할 가치가 있는 작업이었다." 과거에도 인간이 인간이 아닌 타 종이나 생물들, 곤충이나 식물군 등에 흡수되거나 공존하는 그런 이야기들은 있었다. 지구상의 가장 오랜 곤충이라는 바퀴벌레와 하나가 되는 인간이라든가, 식물과 하나가 되어 식물의 감각기관이 되어 살아가는 인간이라든가하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당시에는 그저 괴기스럽고 그로테스크하다는 느낌이 더컸었다. 김초엽은 인간을 균류나 곰팡이와 하나가 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보이고 있다. 어쩌면 가장 단순한 모습으로 인간의 진화(?) 혹은 퇴화로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해보았다. 저자는 나와 같은 류의 생각이 아니라 특정인물들인 "그들의 호기심, 앞으로 나아가는 힘, 자신을 직면하는 용기를 들여다 보고 긴 모험을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한다. 나 혹은 그 누군가일진 모르지만 그들이 닥친 현실에 그들의 (호기심 속) 선택과 함께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는 인류의 모습들을,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때 용기가 필요로 한다는 걸 이야기하며, 우리에게 필요한게 결국 능동적인 용기를 갖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나'라는 존재의 경계는 어디까지인지를 질문하고도 있었다. '나'는 어디까지가 '나'인 것일까? (범람체와 하나가 되어가는 '나'는 나의 구성물질들이 분해되어 흡수되고 동화되어 '나'가 '나'로서의 물리적 경계를 허물게 된다면, '나'는 '나'인가?) "나는 너의 일부가 될 거야. 어떤 기억은 뇌가 아니라 몸에 새겨질 거야. 너는 나를 기억하는 대신 감각할 거야. 사랑해. 그리고 이제 모든 걸 함께 잊어버리자." 기억하는 대신 감각한다는 말이 깊은 시름에 가라앉게 만든다. 어쩌면 우리는 모든 기억을 뇌의 허상에서 벗어나 기억하는 것이 아닌 감각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는 느낌이 일었다. ( 존재론의 문제를 내려놓고 소설로 돌아가면) 우주로부터 불시착한 먼지들 때문에 지구가 변해버렸고, 늘 우리와 함께 할 것 같았던 지구가 낯선 행성처럼 보일 때, 우리가 우리의 현실이 낯설어보이고 내가 꼭 불시착한 외로운 잔류자 혹은 현실에 하나되지못하고 겉도는 이방인이라면, 지구를 오염시킨 범람체들에게 오염되어 범람체화되어가는 '나'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이 무엇이든, 진실이 어떻든 간에'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살아가야 하는 '나'에게 결국 능동적인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벌써부터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잊고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인간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인간답지 않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 본질을 잊은 채, 존재가치를 잊은채 현실에 안주하며 허덕이며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잊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곳이 어떠한 모습이든, 내가 현재 어떠한 상태이든, 우리는 이곳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게다가 우리는 '나'가 비록 '나'로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더라도, 그렇게 여겨지지 않더라도 '나'를 생각하고 사랑해야 하며, 감각해야 한다. 그러면 어찌되었든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자유자리뷰, #파견자들, #김초엽, #퍼블리온, #202310, #존재에대한섬찟할만큼아름다운시선, #나는너의일부가될거야, #너는나를기억하는대신감각할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