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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가 스물 몇 살에 시작해 여든두 살, 죽기 한 해 전에야 마침표를 찍은 작품이다. 60년이라는 집필 기간 자체가 이 책의 성격을 말해준다. 이건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가 아니라, 한 인간이 평생에 걸쳐 계속 되물었던 질문의 퇴적층이다. 지식으로 세계를 남김없이 알아내려다 실패한 노학자가 악마와 계약을 맺는다. 조건은 유명하다.
파우스트가 순간을 향해 말하는 그때, 영혼은 메피스토펠레스의 것이 된다. 즉 이 계약은 쾌락의 대가가 아니라 만족의 금지다. 파우스트가 파멸하는 유일한 길은 어떤 순간에 안주하는 것이며, 그가 구원받는 길은 결코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근대적 인간의 초상이 여기서 나온다. 끊임없이 갈망하고, 결코 도달하지 못하며, 바로 그 미완성 때문에 살아 있는 존재.
1부는 읽기 좋다. 그레트헨의 비극은 지금 읽어도 잔혹할 만큼 구체적이다. 파우스트의 형이상학적 갈증이 한 평범한 여자의 삶을 어떻게 통째로 부수는지?어머니를 죽이고, 오빠를 죽게 하고, 제 아이를 죽이고, 감옥에서 미쳐가는?괴테는 봐주지 않고 끝까지 따라간다. 여기서 메피스토펠레스는 유혹자라기보다 파우스트가 이미 원하던 것의 실행자에 가깝다. 악마의 진짜 무서움은 그것이다.
2부는 다르다. 그리스 신화, 헬레네, 연금술, 지폐 발행, 간척 사업이 뒤엉킨 이 방대한 알레고리는 솔직히 통독이 고통스럽다. 서사가 아니라 상징의 백과사전에 가깝고, 주석 없이는 절반도 못 따라간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은 값을 한다. 눈먼 파우스트가 자기 무덤을 파는 삽 소리를 간척지 건설의 소리로 착각하며 그토록 미뤄왔던 그 말을 내뱉는 순간?인간의 모든 위대한 기획이 얼마나 웅장한 착각 위에 서 있는지가 한꺼번에 드러난다. 그런데도 그는 구원받는다. "언제나 갈망하며 노력하는 자, 그를 우리는 구원할 수 있노라." 이 결말이 관대한 것인지 냉소적인 것인지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미학적으로 보면 이 작품은 재현의 문제와도 맞닿는다. 파우스트가 헬레네를 불러내 소유하려다 결국 그녀가 연기처럼 사라지고 옷자락만 남는 대목은, 아름다움이란 결코 붙잡히지 않으며 오직 사라짐으로써만 존재한다는 진술로 읽힌다. 순간을 정지시키려는 욕망이 곧 죽음이라는 이 작품의 논리는 이미지와 시간에 관한 사유로 확장될 여지가 크다. 한국어판은 정서웅(민음사) 번역이 무난하고, 전영애(길) 판은 주석이 압도적으로 상세해서 2부를 제대로 읽으려면 이쪽이 낫다. 대부분의 독자는 1부만 읽고 덮는데, 그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다. 다만 2부를 건너뛰면 이 작품이 왜 괴테의 필생의 과업이었는지는 끝내 알 수 없다.
멈추지 않는 것이 저주인 동시에 구원이라는 명제. 이건 200년 전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무언가를 계속 만들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이야기로 읽게 되는 책이다. |
| 학교 다닐 적 한 달 내내 가방에 들고 다니며 결국 다읽었던 적이 있다. 이해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읽은 것이다. 괴테의 직품들은 대게 그러듯이 읽어도 뭘 읽은 건지 도통 알 수 없다. 그만큼 고전들은 나에게는 여전히 난해하다. 메피스토펠레스의 신과의 내기속에 파우스트의 방황, 그리고 마지막에는 구원..기독교적인 색채가 강하다. 몇 번이고 다시 반복해서 읽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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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번역과 주석의 도움이 절실한 책이다. 시대적 문화적 코드가 다르고, 형식이 중요한 희곡이란 장르 속에서 상징적인 단어와 그 속의 맥락을 읽어내야 하는 책이니 만큼 번역과 주석의 도움이 절실했다.
5년 전 쯤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된 파우스트를 읽어 본 적이 있다. 번역과 주석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던 시점으로 당시의 파우스트는 번역에 많은 궁금증이 뒤따랐고, 모든 주석을 묶어 책의 말미에 배치해놓은 탓에 매번 책을 뒤적거리며 읽어야 했던 불편함으로 가득했다(아마 번역된 희곡의 운율을 주석의 방해 없이 온전히 즐기고, 필요한 주석만을 책의 말미에서 찾아 읽으라는 편집자의 의도였겠지만 대부분의 주석을 찾아 읽어야했던 내겐 꽤나 불편했던 편집 방식이었다).
당시 어지간히 불편했던 모양인지 그 때의 기억이 선명히 남아있었고, 시간이 흘러 다시 파우스트를 찾아 읽고 싶어진 지금 여러 출판사들 중 현대지성의 파우스트를 선택하게 된 첫 번째 이유가 바로 번역과 주석을 아우르는 편집방식이었다.
5년이라는 시간 역시 물론 큰 변수로 작용했겠지만, 현대지성을 통해 다시 읽은 파우스트는 이전의 경험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깊은 울림과 웅장함을 선사했다. 적재적소에서 나를 기다리는 주석 덕에 흐름의 끊김 없이 극에 몰입할 수 있었고, 그로인한 집중은 고스란히 작품 속 매력으로 나를 이끌었다. 자연스러운 번역 덕에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독백과 대사들에 시선이 머물렀고, 무대 구석구석을 훑어보는 여유가 생겼으며, 아름다운 문장에 밑줄 그으며 기분 좋은 전율을 경험했다. 다시 읽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번뜩 떠올랐고, 두 번째 여정이 현대지성과 함께여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뒤따랐다.
학창 시절, 한 학급을 이끄는 반장은 잘해봐야 본전이다는 말을 친구들과 주고받은 적이 있다. 학급을 잘 이끌어도 쉽게 티가 나지 않는 자리, 반면 학급을 못 이끌면 비난이 즉각 뒤따르는 자리가 반장의 자리라는 취지의 대화였다. 주석과 번역을 아우르는 편집이 어쩌면 반장의 자리와 사뭇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매끄럽게 운영되는 학급 뒤에는 티가 나지 않을 뿐 좋은 반장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듯이, 매끄럽게 읽히는 책 이면에는 티가 나지 않을 뿐 좋은 번역가와 편집자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최소한 매끄럽게 읽힌다는 측면에서, 나아가 독자로서 편집에 스민 사려 깊은 배려가 이따금씩 느껴진다는 측면에서 현대지성의 파우스트는 좋은 편집의 한 가지 예로 내게 비친다. 한 가지 좋은 편집의 결과물이 여기, 현대지성에서 출간되었음을 리뷰 작성 기회를 통해 알려본다. |
| 쳐다만보던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파우스트를 결국 주문했다. 일단 마음이 든든하다, 뭔 명품을 산 기분이다. 아니다 분명 도서의 명품을 구입한 것이 맞다. 천천히 곱씹으며 읽고 느끼고 있다. 몇 번을 음미하면서, 생각하면서, 의문하면서. 쉽지는 않지만 뜻은 헤아릴 수 있다. 은은한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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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는 인간의 끊임없는 탐구심과 욕망, 도덕과 구원 사이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1부는 개인적 욕망과 사랑, 2부는 역사, 철학, 예술, 국가에 대한 총체적 비유다. 괴테는 이 작품에 평생을 걸었고, 유럽 문학사 최고의 정신적 유산 중 하나로 평가된다. 괴테의 인생의 역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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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괴테를 너무 늦게 알아버린것이 천추의 한이 될 정도로 너무 좋은 명작이다 파우스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도 주인공인 싱클레어가 파우스트의 대사 "두려운 영혼을 가진 자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라는 문구도 이야기 한다. 그만큼 파우스트는 후대의 작가들에게 어마어마하게 영향을 미친 책이다. 인생의 단 한권의 소설을 찾는다면.. 그건 바로 파우스트가 되기를.... |
| <파우스트>는 주인공인 파우스트 박사가 인간의 지식과 권력을 넘어서 무언가 더 깊은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이야기입니다. 파우스트는 자신의 지식에 한계를 느끼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습니다. 그는 세속적인 쾌락과 권력을 추구하면서 여러 모험을 겪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사랑, 배신, 그리고 인생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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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입니다 이번에 합본으로 나온대서 사봤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파우스트 자체가 연극 조로 쓴책이라서 필독서 인걸 아는데 항상 읽는걸망설입니다 개인적으로 단편집이나 연극대사조로 써있는 책을 별로 안좋아 합니다 같은이유로 세익스피어 책들도 읽고싶지가않아요 유명한 책들인데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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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투성이 삶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진장한 자기실현의 길로 나아갈 힘을 주는 온갖 학문에 통달하고 마법까지 익혔지만,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느껴 절망한 노학자 파우스트 이런 그 앞에 메피스토펠레스라는 악민가 나타나 솔깃한 제안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