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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영 작가님이 소설 쓰기 전, 오랫 동안 단편영화와 영상 설치 작품을 만들며 살아왔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젊은 여성 예술인에 대한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내는구나. 결혼 임신 출산 육아 살림 같은 가부장사회가 만든 제도와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예술씩이나 하는, 혹은 하려는 젊은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남성 중심의 자본주의 세상은 여성 예술가에게 유독 혹독해서 '검은 일기'의 '나'를 마녀 사냥한다. 젊은 여성 작가인 화자는 작품에 대한 날선 댓글에 '이미 죽었는데도 몇 번씩이나 더 찔리는 심정'이다. 어느 죽은 여성의 일기를 바탕으로 단편 소설을 써달라는, 꽤 좋은 보수와 조건의 의뢰에 설레기보다는 '왜 나한테. . .'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기회 앞에서도 자신의 커리어를 의심하며 쪼그라든다. '남쪽에서'의 시나리오 작가 역시 영화재단의 초청으로 호텔에서 머물며 시나리오 교정 작업을 하는데 조식 먹는 것도 사치스러운 일 같아 직원들 눈치를 본다. '내가 재능 비슷한 것을 낭비하는 동안 친구들은 내가 모르는 어른의 삶 속으로 하나둘 사라졌다'고 자조한다. 어른이라는 블랙홀, 지금이 그 안으로 빨려들어갈 자기 차례가 아닌지 갸웃거린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 대해, 그것의 의미를 전혀 알지 못한다는 느낌에 외로워'지지만, 행진이 끝난 것 같아 좀 지겹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십 년이 넘도록, 평생에 걸쳐, 보이지 않아도 쓰는' 다른 작가의 삶에 멈칫 한다. '어딘가에 존재하는 질서를, 그 깊고 어두운 세계'를 상상하며 배고픔도 잊고 망연하다. 가족들마저 젊은 여성 예술가들의 행보를 가로막는 난관이 된다. 결혼만이 살 길이라며 난희에게 매 순간 '단지 한 명의 여자일 뿐임'을 상기시키는 어머니가 있다. 난희는 영화 속 산발의 미친 여자, 혐오스런 마츠코가 될까봐 불안 초조하다.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면서도 거주지인 중국인 거리와 사람들에게 애정이 생기지 않으니 왜 모든 것이 적당한 장소에 존재해주지 않는지, 자신의 쓸모와 인생이 전부 의문이다. 지금의 재능마저 과거의 유물이 되는 건 아닌지 불안해 하면서 '대개 인생은 그렇게 흘러간다'는 자조가 쓸쓸하다. 기사식당에서 마주친 남자 노동자들이라고 밥벌이의 삶이 수월하고 순탄하기만 하겠는가. 매일매일 쓸모없어지기 위해 노동하는 현실, 노동은 하지만 여전히 가난한 삶은 피차일반. 그래도 난희는 '아무것도 팔지 않고 아무에게도 밥을 차려주지 않는' 그들이 부럽다. 과분하도록 헌신적인 여자를 막 대하다가 버림받은 아버지 같은 부류의 남자들일지언정 그들이 가진 힘, 그 거침없음이 부러운 거겠지. '시차와 시대착오'의 명식도 난희 아버지와 닮았다. 막 결혼해 온 세상이 자기 발밑에 있는 것 같던 1980년 봄 광주에서 일어난 일에 눈 귀를 닫는다. 권력의 입장을 옹호하며 스스로 그쪽이라 착각하는 건 명백히 비논리적이고 시대착오적인데 명식은 이마저도 자연스런 시차라 여기는 걸까. 미루가 딸이 아니라 아들이길 바라는 것은 시차일까, 시대착오일까.. 미루가 예술계 주변부에서 고군분투하는 사이 남자 동기들은 승승장구하고 주식과 코인으로 돈을 벌며 시류에 편승해 '진짜' 세상을 살아간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원하던 '남자 아이'가 되고 싶었다고, 결코 '여자 아이'는 되고.싶지 않았던 미루. 그녀는 남자아이만큼, 혹은 그 이상 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자 수많은 시도를 해왔다. 그러면서도 남자에게 사랑받으려 노력하며 평범과 행복이라는 집에 갇혀 미친 여자가 되어버릴까봐, '어머니의 세계'에 속해버릴까봐 두렵다. 묵묵히 자기 길을 걷고자 하지만 아버지의 경제력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서글프다. 대부분의 화자가 젊은 여성.예술가인 이 소설들에는 예술가로서의 충만감이나 안정감보다는 불안, 초조, 우울, 허무가 크게 그려진다. '당신의 밝은 미래'의 '당신'도 공원으로 변신한 쓰레기 매립지를 주제로 작업하며 "죽으면 사람도 쓰레기가 되는 거'라며 '이번 프로젝트는 폭망'을 예감한다. 남자라면 받지 않았을, 여자 작가라서 받는 질문, "왜 이런 일을 하죠?" 그러니 안전을 위해, 이상한 여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녹화 버튼을 누르지 않은 '당신'. 스스로의 작업을 스스로 불신하는 만드는 이런 현실은 정말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런데 누구의 말마따나 쓰레기조차 될 수 없다면? 'JHY를 위한 짧은 기록'에서 단편소설의 자료 조사 차 호텔을 예약했으나 코로나에 걸린 JHY를 대신해 화자가 호텔에 묵는다. 곧 허물어져 재건축될 호텔의 구석구석을 사진 찍어 자료로 모으던 '나'는 어느 순간, 호텔을 배경으로 한 수많은 소설들이 이미 사라졌음을 깨닫는다. 이 순간에조차 세계의 한 부분이 까마득히 완전 삭제되는 건 아닌지 멈칫 한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호텔이 재건축(요절)되듯 너무 많은 예술이 요절하고 요절당한다. 우리는 곧잘 시간을 거스르고 시대를 증명하는 예술의 힘과 영원성을 이야기하지만 이 소설은 탄생과 동시에 잊히고 사라지는,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는 예술도 많음을 상기시킨다. 요절한 천재 작가의 희소성 있는 작품, 내로라하는 거장의 작품, 부자들의 컬렉션에 선정된 운좋은 작품이 아닌 이상 쉽게 외면당하고 사라져가니까. 그래서 윤고은 작가는 <불타는 작품>에서 그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작가가 가장 애정하는 작품을 불에 태우는 의식을 거행하는 재단의 이중성을 그린다. 이런 세태에 하물며 문학작품이야 말해 뭐하누. 드라마, 영화로 제작되는 원작은 그나마 찾아 읽나? 읽는 내내 '정신 나간 여자, 미친 여자, 바람피고 자살한 여자'로 폄훼된 우리 많은 여성 예술가들이 떠올랐다. 그들의 불안하고 우울했던 삶을 더듬어 보고 늦게나마 보듬어 보려는 사랑이 담긴 소설집이다. 생을 잠식하는 불안과 우울, 허무와 공포를 단순히 그들 내면에서 나온 '광기'로 몰아부친 역사. 여전히 진행형으로 몰아부치며 한 사람의 작가가 아니라 '여성'이라는 몸으로써 재단하고 평가하는 현실. 자본과 권력의 힘으로 예술마저 좌지우지하는 신자유주의 세태가 안타깝고 씁쓸하다. 소설 속 여성 예술가들의 고군분투가 담담해서 더 안쓰럽다. 소설 속 인물과 작가를 동일시하는 걸 거부하지만 영상예술가로서, 작가로서 그 길을 걷고 있는 전하영 작가라서 이런 이야기를 첨예하면서도 다정하게 다룬 것 같다. 소설에서 제안한 대로 성실한 쓰기와 꾸준한 산책으로 불의에 반항하고 편협에 저항하시길 바란다. 더 열심히 읽으며 응원하겠다. 약자에겐 더 열악한 현실이고 가혹한 세상이지만 그래도 발 딛고 버티며 쓰고 찍고 만들고 짓는 모든 창작자들을 우러르며 지지한다. 사라지지 말고 살아내시길. #시차와시대착오 #전하영 #소설집 #여성예술가들의고군분투 #예술가로사는삶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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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영 작가님 소설집 정말 기다려왔는데 출간된 걸 확인하자마자 바로 구입했어요! 처음 전하영 작가님 작품을 접한 게 어떤 작품이었는지는 이상하게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다만 단편들을 쭉 읽다보니 '영향'이거나 '남쪽에서'였을 것 같아요). 어쨌든 무슨 작품이 계기였는지는 정확히 생각나지 않지만 그 작품을 읽고 너무 좋았고, 인상적이어서 전하영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에 호기심이 생기고 소설집이 나오면 사서 읽어보고자 기다려왔습니다. 작가님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솔직함이 좋아요. 또 문장들을 아주 공들여 쓰셨다는 것이 느껴져요. 가장 좋았던 작품은 '시차와 시대착오'인데, 작품 속 미루 캐릭터가 몹시 인상적이었어요. 악의 없는 어떤 한 마디에 상처를 입고 혹은 두려움을 느끼고 관계에서 도망칠 수 밖에 없었던... 책 재미있었어요. 앞으로 보여주실 다른 작품들도 기대가 됩니다. |
지금 여기같은 말은 문학상 수상집을 보면 빠짐없이 사용되는 문구다. 그러나 전하영의 작품은 확실히 지금 여기를 나타내고 있다. 예술에 대한 고뇌와 삶이라는 문제를 고찰해 한국의 청년이 겪는 일을 가시화해냈다. 특히 경로 이탈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이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면 젊은 작가상수상집에 실린 그녀는 조명등 아래...를 읽어보길 바란다. 사진은 경로 이탈 중 일부를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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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단편들이 대부분 비혼 여성 작가가 중심이다. 그들의 삶은 힘들고 약한 존재로 표사되지만 열심히 살고 있다. (숙희가 만든 실험영화)는 숙희와 윤미가 등장하는데 숙희는 혼자인 삶을 사는 여자다. 중년 아줌마임을 자각하면서 충격을 먹고 혼자인 삶이 두려워서 한 참 어린 남자를 만나지만 끝에는 그와의 만남이 귀찮게 느껴질 정도로 주체적이게 된다.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은 웬만해서는 새로운 경험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떠한 상황이든 과거의 삶 속 어느 순간을 다른 식으로 반복한다는 느낌을 피하기 어려웠다. 다른 말로 하면 당황하는 일이 적어졌다는 뜻이었다. P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