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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도시, 마드리드 스페인의 수도이자 제1 도시인 마드리드는 “광장을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물고 펼쳐져 있는 빛의 도시다.1)” 왜냐하면 “서로의 가슴에 상처를 주고받는 도시의 밀림에서 얻은 욕망을 잠시 내려놓아도 좋을 공간2)”인 스페인 광장[Plaza de España], 거미줄처럼 뻗어 나온 도로망의 중심이자 마드리드의 관광의 실질적 시작점인 솔 광장[Puerta del Sol], 과거에도 현재에도 많은 젊은이들이 열정을 발산하는 축제의 공간인 마요르 광장[Plaza Mayor], 마드리드 시민들의 느긋한 산책공간이자 마드리드의 허파인 부엔 레티로 공원(Buen Retiro Park), 현대판 광장이라고 할 수 있는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Estadio Santiago Bernabéu] 등 다양한 광장들이 시민들을 향해 열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광장들에서 펄떡거리는 도시의 심장소리를 들려주는 축제들은 스페인에는 안달루시아의 알람브라 궁전,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Antoni Gaudi Cornet; 1852~1926), <돈키호테>로 유명한 미구엘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1547~1616), 20세기의 천재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정도만 아는 우리에게 마드리드가 있음을 격렬하게 어필한다. 중세의 향기, 톨레도 “톨레도를 보지 않았다면 스페인을 본 것이 아니라3)”는 말이 있다. 이는 톨레도가 마드리드 이전에 스페인의 수도였기 때문이 아니라, “로마, 서고트, 이슬람, 모바사베(이슬람문화로 편입된 기독교 문화), 무테하르(기독교 문화로 편입된 이슬람문화), 기독교 문화, 유대 문화가 비빔밥처럼 어우러진 중세의 보물섬이 톨레도(이기 때문이다.) 톨레도의 거리는 가파르고, 좁고, 이리저리 꼬이고, 비틀리고, 좁아졌다가 넓어지기를 끝없이 반복하며 중세의 리얼리티와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모든 것이 변하는 오늘날 톨레도는 모든 것이 변하지 않는 상태로 존재하는 시간의 섬이다.4)” 톨레도 대성당
메스키타 델 크리스토 테라 루스 사원(寺院) 그뿐 아니다. 툴레도 북쪽언덕에는 이슬람 건축물로는 드물게 메스키타 델 크리스토 테라 루스 사원[Mezquita del Cristo de la Luz]이 기독교 지배하에서의 온갖 수난을 견디고 온전하게 남아 있다. 이는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든 기독교 지배하에서 “눈에 보이는 유대 및 이슬람 건물들이 모두 가톨릭 부속 건물로 개조6)”당했던 상황을 고려하면 기적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각종 시련을 버티고 서로 다른 문화를 융합하여 꽃피웠던 톨레도는 이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바로 현대문화의 물결이다. 여기에 대해 톨레도는 과거의 전통에 따라 대처하고 있다. 바로 “파괴가 아닌 재생으로 낡고 오래된 건물의 수명을 다시 살려 새로운 현대기능을 수용하는 것이다. (즉,) 시대의 양심에 따라 문명의 주인은 새로운 장비와 옷과 문화를 향유하며 살아갈지라도 중세의 빛나는 문화유산은 그대로 포용하고 공존7)”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통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이며, 이질적인 문화를 포용해가는 방법일 것이다. 이슬람의 눈물, 알람브라 궁전 알람브라 궁전 하지만 이곳도 이슬람 상징성이 강한 건물에 닥쳐온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일제에 의해 경복궁 일부를 헐어 총독부 건물이 들어섰듯이, 알함브라 궁전의 측면은 정복자인 스페인의 부부왕(카스티야의 이사벨 여왕과 아라곤의 페르난도 왕)의 아들인 카를로스 5세를 위한 궁전을 짓기 위해 뜯겨져야만 했다. 그 결과 “‘마치 운석이 알람브라 궁전에 떨어진 것처럼’ 단순하고 급진적인 사각형의 건물8)인 카를로스 5세 궁전이 알함브라 궁전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게 되었다. 바르셀로나의 자랑, 가우디 구엘 공원 안토니오 가우디라고 하면 천재 건축가 정도로만 생각하기 쉬운데, 의외로 그는 한때 이베리아 반도에서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웠던 이슬람 건축문화를 현대적으로 되살린 건축가이기도 하다. 바르셀로나 곳곳에 이슬람의 모자이크 장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자연의 결을 따라 지어진 구엘 공원[Park Güell], 파도치는 물결처럼 자유로운 곡면이 인상적인 카사밀라[Casa Milá], 바르셀로나의 정신적 통합을 기원하며 설계되어 100년이 넘게 여전히 공사중인 성가족 대성당[La Sagrada Família] 등 그의 작품들이 널려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안토니오 가우디의 “모든 작품이 같은 디자인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지가 다르고, 건축주가 다르고, 건축가의 체험과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가우디는 항상 새로운 영감으로 건축하였다.9)” 그렇다. 안토니오 가우디는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추구했다. 그렇기에 그는 지역성이 강한 카탈루냐 지방의 자연에서 배운 풍부한 상상력과 그곳의 건축 유적들에게서 배운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힘을 활용하여 “자유곡선으로 공간을 창조10)”하였다. 성가족 대성당 가우디의 후계자들 구겐하임 박물관 프랑크 게리(Frank Gehry; 1929~)는 빌라오라는 도시에 혁신적인 디자인의 구겐하임 박물관을 남겨 이미 그 자체로 신화(神話)가 되어버린 안토니오 가우디의 후계자임을 과시했다. 즉, 기존의 미술품과 유물을 보관하는 세련된 창고 정도로 인식되어 왔던 박물관을 “건강한 박스공간에서 해방하여 도시의 조각품으로 새로운 기능을 추가11)”하였던 것이다. 반면 또 다른 계승자라고 볼 수 있는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 1951~ )는 바르셀로나가 아닌 “발렌시아의 투리아 강(江), 인공 대지를 화폭 삼아 근육질의 아름다운 건축물12)”을 남겨 안톤니오 가우디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이렇게 이 책은 스페인 각 지역의 건축물을 뒷이야기와 함께 맛깔지게 설명하여, 스페인으로 가고 싶은 열망을 충동질 헤댄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을 많이 누렸다는 왕(=아브드 알 라흐만 3세; 891~961)조차도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갠 행복했던 날은 불과 14일뿐이었다고 말한 것을!”라는 말이 전해온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행복을 찾아 그리고 열망에 순응하여 스페인으로 향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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