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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경-최영희 등] 260320_살아남은 자의 시선으로 뒤집어 보기
"[소인경-최영희 등] 260320_살아남은 자의 시선으로 뒤집어 보기" 내용보기
교육은 대개 이상향을 가르친다. 올바른 것, 참된 것, 그를 바탕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더 나은 무언가가 되기를 고대한다. 도덕이나 철학, 역사 등을 통해서 가르치는 이야기는 보통 그렇다. 군자, 즉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을 배워서 정서와 인성을 함양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이다. 모두가 군자가 되어야만 할까? 그것이 정말 가능할까? 개개인 모두가
"[소인경-최영희 등] 260320_살아남은 자의 시선으로 뒤집어 보기" 내용보기

교육은 대개 이상향을 가르친다. 올바른 것, 참된 것, 그를 바탕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더 나은 무언가가 되기를 고대한다. 도덕이나 철학, 역사 등을 통해서 가르치는 이야기는 보통 그렇다. 군자, 즉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을 배워서 정서와 인성을 함양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이다. 모두가 군자가 되어야만 할까? 그것이 정말 가능할까?


개개인 모두가 군자 혹은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소수의 천재가 세상을 이끈다고 하지만, 소수의 천재만으로 세상은 굴러가지 않는다. AI로 인해 천재적인 소수의 힘이 더 강력해지겠지만, 다수의 평범한 사람, ‘소인’도 필요하다. 최소한 천재들의 물품은 소비해야 할 테니 말이다. 그렇지 않을까?


오대십국시대의 풍도는 역사상 가장 많은 주군을 섬긴 재상이자, 절개 없는 사람의 대명사로 불린다. 누군가는 염치없는 자라고 비판했지만, 스스로 장락노라 칭하여 <소인경>을 남겼다. 염치는 없을지언정, 능력은 출중했다. 왕조가 바뀌어도 매번 살아남았지만, 백성들을 구할 때는 목숨을 걸었다. 한 사람을 하나의 가치로만 판단할 수 있을까?


교육은 이상향을 가르치고, 역사는 승자 위주로 기록된다. 충성의 가치를 칭송하는 이유는 그만큼 충성하기가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고, 풍도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바뀌는 것은 어쩌면 승자가 바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강한 자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 풍도의 말대로 “알고 모르는 것은 읽는 사람에게 달려(p.27)”있는 게 아닐까?


군자라고 해서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군자이기 때문에 행실에 제약이 많다. 남들의 모범이 되기 위해 눈치도 봐야 하고, 자신의 신념과도 싸워야 한다. 얻는 것 없이도 희생해야 하고, 때로는 목숨까지 내던져야 한다. 반면, 소인은 다르다. 소인이기에 자유롭게 행할 수 있다. 눈치 보지 않아도 되고, 살아남기 위해 노골적으로 행동해도 거리낄 게 없다. 군자가 나을까? 소인이 나을까?


누구나 군자가 될 수 없다. 이상향을 배워도 따르기도 힘들다. 모두가 본능을 거스르고 살 수 없다. “스스로의 생존과 자유를 지키는 평범한 개인(p.82)”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능력은 군자가 되거나, 천재가 되거나 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렇다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이상향일까, 아니면 냉혹한 현실일까?

군자로 살지, 소인으로 살지 그건 각자가 정할 일이다. 다만 정하기 전에, 한 번쯤 소인의 눈으로 세상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일독일자 260318 / 작성일자 26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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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도의 말과 같이, 알고 모르는 것은 읽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p.27

善惡有名, 智者不拘也. 天理有常 明者不棄也. 道之靡通. 易者無虞也(선악유명 지지불구야 천리유상 명자불기야 도지미통 역자무우야) 선과 악은 그저 이름에 불과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선악이라는 이름에 결코 얽매이지 않는다. 시대에 따라 세상은 변하기 마련이지만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이치는 분명 존재한다. 이런 이치를 깨닫고 버리지 않는 사람이 바로 현명한 사람이다. 세상의 상식과 예의가 달라져서 보편적 도리가 통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변화의 흐름을 이해하고 나를 바꿀 수 있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p.29

君子無得 小人無失, 得失無由心也. 名者皆虛, 利者惑人, 人所難拒哉. (군자무득 소인무실 득실무유심야 명자개허 이자혹인 인소난거재) 군자라고 해서 더 얻는 것도 없고 소인이라고 해서 더 잃는 것도 없다. 군자든 소인이든 실제적인 득실은 인격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이름은 헛된 것이고 이익은 실질적인 유혹이다. 그러나 사람은 어느 쪽도 거부하기 어렵다. p.30

선택이란 대부분 원하는 모두를 얻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하나를 위해 나머지를 포기하는 일이다. 이름과 실질을 모두 얻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이름보다는 실질을 추구하는 쪽이 현명하다. 그래야 두루 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p.43

富貴有常 其道乃實 福禍非命 其道乃察 實不爲虛名所羈 察不以奸行爲耻 無羈無耻 榮之義也(부귀유상 기도내실 복화비명 기도내찰 실불위허명소기 찰불이간행위치 무기무치 영지의야) 부귀영화를 누리는 데는 불변의 법칙이 존재한다. 그것은 오직 실질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길흉화복은 결코 운명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이 이치를 두루 통하게 하는 데 있다. 실질은 허울 좋은 명예에 휘둘리지 않는다. 통찰은 간교한 행위도 포용한다. 실질을 통찰하고 힘쓰는 것이 바로 출세의 비결이다. p.47~48

君子言心 小人攻心 其道不同 其效自異哉(군자언심 소인공심 기도부동 기효자이재) 군자는 마음에 대해 논하지만 소인은 마음을 공략할 줄 안다. 군자와 소인이 향하는 길이 서로 같지 않으니 도달하는 곳도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p.48

프로페셔널은 자원의 한계와 조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일정 수준의 질을 유지해야만 한다. 그래야 그 일을 계속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효율적인 분배와 소비는 프로페셔널의 제1조건이다. p.54

풍도는 역사적으로 그에 걸맞은 명예를 누리지 못했다. 예의범절을 중시하고 대의명분을 내세우는 후대의 도학자들은 그를 변절자, 속물, 기회주의자라고 질타했다. 세태의 변화나 부침에 관계없이 실질에 힘쓰며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던 것이 풍도의 주요한 출세 전략이었다. 나라의 살림을 맡은 재상으로서 백성의 안위와 평온한 삶을 최우선시했던 그 자신의 생애가 이를 증명한다. 풍도가 보여준 이러한 현실주의 정치가로서의 가치는 현대에 이르러 재조명되었다. p.55~56

上不離心, 非小人難爲. 下不結怨 ,非君子勿論. 禍於上 無辯自罪者全 禍於下 爭而罪人者免(상불리심 비소인난위 하불결원 비군자물론 화어상 무변자죄자전 화어하 쟁이죄인자면) 화가 위에서 올 때는 시비를 가리지 말고 잘못을 인정하며 반성해야 무사할 수 있다. 화가 아래서 올 때는 일일이 책임을 따져 물어야만 죄를 모면할 수 있다. p.65

道義失之無懲 禍無解處必困, 君子莫能改之 小人或可諒矣(도의실지무징 화무해처필곤 군자막능개지 소인혹가량의) 도덕과 정의를 지키지 못한다고 해서 징벌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화를 당했을 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반드시 곤경에 처한다. 따라서 군자는 화를 당했을 때 그 상황을 바꿀 수 없지만, 소인은 경우에 따라 화를 모면할 길을 찾을 수 있다. p.65

왕의 권위나 국가의 위상, 문인으로서의 명예나 중원인으로서의 자부심 따위보다 백성의 안위를 우선시했던 그 생명 중시의 태도야말로 풍도가 여러 왕조를 거치며 ‘부도옹(不倒翁)’이라 불린 진정한 이유라고 여겨진다. p.74

위기는 대부분 ‘나의 방식’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 때문에 온다. 따라서 ‘남의 방식’을 빌리는 것은 자존을 버리는 포기가 아니라 자존을 구하기 위한 지혜일 수 있다. / 위태로운 위(危)는 산기슭에서 사람이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모습을 가리키며, 위기란 사람이 아찔하게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순간을 말한다. 위기에 처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행동은 먼저 자신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도움의 손길을 청하는 것이다. p.79

전통적인 의미에서 소인은 군자와 달리 이익을 앞세워 의리를 저버리는 사람으로 하찮게 평가되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소인은 스스로의 생존과 자유를 지키는 평범한 개인이다. 자율적으로 질서를 준수하면서 국가에 부담을 지우지 않는 법치 사회의 시민이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자기 자신도 꼼꼼히 돌보는 야무진 사람, 자기 삶에서도 억울하지 않은 사람. 그가 바로 ‘소인’이다. p.82

智不拒賢 ,明不遠惡, 善惡咸用也. 順則爲友, 逆則爲敵, 敵友常易也. 貴以識人者貴, 賤以養奸者賤. 貴不自貴, 賤不自賤, 貴賤易焉. 貴不賤人, 賤不貴人, 貴賤久焉.(지불거현 명불원악 선악함용야 순즉위우 역즉위적 적우상역야 귀이식인자귀 천이양간자천 귀부자귀 천부자천 귀천역언 귀불천인 천불귀인 귀천구언) 지혜로운 사람은 어진 사람을 거절하지 않고, 사리에 밝은 사람은 악한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다. 선악을 두루 활용할 줄 알아야 성공한다. 뜻을 맞추면 친구가 되고 거스르면 적이 되므로 적이냐 친구냐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 사람 알아보는 일을 귀하게 여기면 나도 귀하게 되고, 소인을 거두는 일이라고 천하게 여기면 나 역시 천하게 된다. 사람의 귀천은 절대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며 어떻게 사람을 알아보고 거두느냐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귀한 사람이 사람을 알아보고 거두는 일을 귀하게 여기는데 천한 사람이 그 일을 천하게 여긴다면 귀천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다. p.86~87

君子仁交, 惟憂仁不盡善 小人陰結 惟患陰不制的. 君子弗勝小人 殆於此也(군자인교 유우인부진선 소인음결 유환음부제적 군자불승소인 태어차야) 군자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사람을 사귀며 그 마음을 지키지 못할까 근심한다. 소인은 사사로운 목적으로 사람을 사귀며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할까 걱정한다. 군자가 소인을 이길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p.87

‘나’에게는 네 가지 모습이 존재한다고 한다. 나도 알고 남도 아는 나, 나는 알지만 남은 모르는 나, 남은 알아도 나는 모르는 나, 나도 남도 모르는 나. 대부분의 경우 사람은 스스로에 대해 다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내 모습이 절반이라면, 남이 아는 내 모습도 절반이다. / 과연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심지어 내 모습의 4분의 1은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른다. 게다가 이 세상에서 나는 한 사람이고 남은 여럿이다. 내가 나에 대해 하는 말이 더 많을까, 아니면 남이 나에 대해 하는 말이 더 많을까? 결국 나에 대한 말들 대부분은 내가 아닌 남에게서 온다. 나는 어쩌면 남의 말에 의해 결정되는 존재일지 모른다. /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 크다거나 작다거나 많다거나 적다거나 잘생겼다거나 못생겼다거나 하는 판단도 비교할 대상이 없으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비교에서 내가 언제나 판단의 주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절반의 경우에 나는 비교의 객체가 된다. 좋은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대개 나와 뜻이 맞는 사람을 좋아하고 뜻이 맞지 않는 사람에게 거리를 둔다. 때로는 거리를 두는 데 그치지 않고 싫어하거나 심지어 미워하게 되기도 한다. p.90~91

지혜 지(智)는 알 지(知)에서 근원한 글자이지만 이 둘은 의미적인 측면에서 차이를 지닌다. 안다(知)는 것이 교육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식의 섭렵을 나타내는 반면, 지혜롭다(智)는 것은 이치를 바르게 알고 일을 잘 처리해 내는 정신적인 능력을 표현한다. 지(智)가 알 지(知)에 날 일(日)을 추가해 만든 글자인 것처럼, 지혜는 무수한 시간을 거쳐 경험으로 녹여낼 때 비로소 깨달음과 통찰을 이끌어낼 수 있다. p.94

節部低金 人困難爲君子. 義不低命 勢危難拒小人. 不畏人言 惟計利害 此非節義之道 然生之道焉(절부저금 인곤난위군자 의부저명 세위난거소인 불외인언 유계리해 차비절의지도 연생지도언)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하지 않으면 절개도 지킬 수 없으니 상황이 궁색해지면 군자가 되기 어렵다. 목숨을 건다고 정의가 실현되지 않으니 생명이 위협받으면 소인이 될 수밖에 없다. 이익과 손해만 따지는 것은 절개와 정의를 지키는 도리가 아니지만 그 또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p.104

“군자는 되기 어려운데 얻는 것이 적고 소인은 꺼리끼는 것이 없는데 이익이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소인인 것이다.” p.111

고대 중국의 시인 굴원은 원래 초나라의 왕족으로 대부의 지위에까지 올랐던 사람이다. 그러나 사람이 지나치게 청렴하고 강직해서 그와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의 모함을 받았다. 결국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쓴 채 먼 지방으로 유배되고 말았다. 그는 나라를 위해 일생을 바치고자 했던 뜻을 이루지 못한 비통함에 “세상이 흐려서 온통 악에 물들었는데 나 홀로 깨끗하고, 여러 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그 때문에 죄를 입고 추방되었네”라고 읊조렸다. 그때 마침 굴원이 서 있던 물가를 지나던 어떤 배에서 사공 하나가 그 시를 듣고 이렇게 화답했다고 한다. / “물결치는 창강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물결치는 창강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지.” / 사공의 이 말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가 비록 세계에 던져진 존재이고 그 조건 자체를 바꿀 수는 없지만 스스로의 삶에 태도를 결정할 수는 있다는 말이다. p.113~114

한나라 때의 백과사전인 <회남자>에 이런 구절이 있다. / “사람은 여유가 있으면 양보하고 부족하면 서로 다툰다. 양보를 하면 예의가 생겨나고 다투면 폭력이 난무한다.” p.115

“사람이 총명하기도 어렵고 어리석기도 어렵지만, 총명한 사람이 어리석게 굴기는 더욱 어렵다. 조금 내려놓고 한 발짝 물러나면 마음이 편해지니 훗날 복이 오지 않을 리 없다.” / 청나라 서예가 정섭의 말이다. p.118

군자라고 해서 언제나 반드시 군자일 수 없고 소인 역시 언제나 반드시 소인일 수 없다. 태평성대에는 소인도 굳이 정도를 지키지 않으면서 부당하게 재물을 모으거나 사람을 현혹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세상이 어지러우면 군자라고 불리던 사람도 간사해질 수 있으며 법으로도 이러한 행위를 막을 수 없게 된다. 이 점은 곧 우리 삶에서 절대적인 군자란 있을 수 없으며, 역시 절대적인 소인도 있을 수 없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즉, 세상의 이치는 반드시 천성을 따르는 것만도 아니고 또 반드시 행동에 따르는 것도 아니며 그저 ‘추세’에 따르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군자와 소인을 만들어내는 ‘상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p.119

天恩難測 惟財可恃(천은난측 유재가시) 하늘의 복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으므로 다만 스스로 가진 것에 의지해야 한다. p.124

중국의 유명한 속담에는 “호랑이를 그리되 가죽은 그릴 수 있지만 뼈는 그리기 어렵고, 사람을 알되 얼굴은 알 수 있지만 그 마음까지 알 수는 없다(畫虎畫皮難畫骨,知人知面不知心)”는 말이 있다. p.137

해명은 사실을 간략하게 말하는 데서 그치고 사건은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힘써야 한다. 단순히 일을 막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을 찾아 매듭짓는 것이 우선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일이라면 정직한 사과가 가장 빠른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아니 땐 굴뚝에서도 연기는 날 수 있지만, 연기에서 진짜 불시가 튀는 일만큼은 막아야 한다. p.156

僞部足自禍 眞無忌人惡. 順其上者 僞非過言 逆其上者 眞亦罪焉(위부족자화 진무기인오 순기상자 위비과언 역기상자 진역죄언) 꾸밈만으로는 화가 될 수 없다. 실질은 끊어도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윗사람을 따르는 일이면 꾸밈도 허물이 아니지만, 윗사람을 거스르는 일이면 실질이라도 죄가 된다. p.160

君子制於親 親爲質自從也. 小人畏於烈 奸恒施自敗也 理部直言 諫非善辯 武嫌乃及焉 情非彰示 事不昭顯 順變乃就焉(군자제어친 친위질자종야 소인외어렬 간항시자패야 이부직언 간비선변 무혐내급언 정비창시 사불소현 순변내취언) 군자는 인정에 약하므로 주변 사람을 볼모로 삼으면 저절로 따르게 된다. 소인은 매서운 기세를 두려워하므로 지속적으로 약점을 파고들면 스스로 항복하게 될 것이다. / 이치를 따질 때는 완곡하게 표현해야 하고 충고를 할 때는 지나치게 따지지 말아야 한다. 상대방이 싫어하지 않아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은 훤히 드러내지 말아야 하고 일은 너무 티 내면서 하지 말아야 한다. 상황을 보아가며 움직여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 p.179~180

사실 인간관계에도 수많은 가치의 선들이 있다. 나의 선과 상대의 선, 사적인 선과 공적인 선 등이 그렇다. 그렇다면 혹시 이 수많은 선들 사이의 균형점이 우리가 말하는 ‘상식’이 아닐까. 상식은 사회의 구성원이 공유하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가치관, 일반적인 견문, 이해력, 판단력, 사리 분별을 말한다. 상식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공유 가치’라는 점이다. 공유되는 것이기에 공유하는 사람들이 달라지면 상식도 달라진다. 만 명의 사람들에게는 만 개의 가치가 존재할 수도 있다. 그 가치들의 교집합이 우리 사회가 인준하는 상식이 될 것이다. p.198

상식이란 각자의 가치가 공유되면서 찾아가는 균형점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남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할지라도 그 마음 밖으로 밀려나지는 않을 것이다. p.199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다. p.217

YES마니아 : 플래티넘 s*******1 2026.03.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