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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값진 것은 단순한 명화 설명집이 아닌 명화를 통해 나를 바라보고 행복해지는 연습을 하라는 작가의 숨은 의도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김선현교수님의 책은 모두 구입하고 있다 그림의힘을 처음 접한 뒤 힘들때 성경의 귀절이 한 귀절이 때로 나를 감동시키듯 명화에 짧게 담긴 글들이 나에게 큰 힘이 되었었기 때문이다 이번책은 좀더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다 명화를 먼저 보도록 하고 작가일생과 살아온 배경 그림을 그릴때의 상황등... 작가가 명화를 통해 알리고자 하는 의도를 우리가 쉽게 알아차리도록 설명한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책을 읽다보면 아... 하고 뭔가 깨달음 같은 탄식을 경험해 볼 수 있기도 하다 그리고 뭔가 느끼는 그 순간 또 한번 나에게 질문이 주어진다 다시 한번 명화들을 보며 내가 어려움을 이겨내야만 하는 이유 살아가야하는 이유 내가 지금 행복해야하는 이유 작가는 내가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좀더 쉽게 명화라는 촉매를 통해 나아갈 수 있게 한다 혹 지금 살아가야하는 이유 행복해져야하는 이유를 찾기 어려운 이들이 있다면 바로 읽어보길 강추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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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객관적으로 들여다 본다는 것’. ‘나를 정확하게 이해한다는 것’. 짧지 않은 인생을 거쳐오며 늘 ‘나’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나’를 내 스스로가 이해하며 타인과 세상에 대한 사랑과 관대함, 용서를 펼치고 싶음은 오랜 나의 버킷리스트 같은 것이었다. “나를 알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를 이해하고, 과거의 나를 끌어안은 후, 시시때때로 바뀌는 나를 통합적으로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 화가가 자화상을 통해 진정한 ‘나’를 만난 것처럼 여러분도 명화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머리말 中) 이 책은 미술 작품을 해설하는 책이 아니라, 조용히 나 자신을 마주하게 만드는 하나의 거울에 가깝다. 명화를 이해하기보다, 그 그림 앞에 서 있는 나의 마음 상태를 먼저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조용히 수많은 화가들의 자화상을 응시하며, 나 또한 내 스스로를 조용하게 응시할 수 있게 해준다. 김선현 작가는 자화상을 ‘자신을 드러내는 그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응시하는 태도로 읽어낸다. 윤동주의 「자화상」을 떠올리며 그 어떤 것에도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성찰했던 화가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점점 분명해진다. ‘나는 지금 나를 얼마나 정직하게 바라보고 있는가’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은 육체적 고통과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삶의 열정을 잃지 않으려는 고백처럼 다가온다. “칼로의 자화상은 자신에 대한 성찰히며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고백입니다. (…)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깊은 내면과 만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 문장은 상처를 덮거나 지나간 일로 정리하려 했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치유란 회피가 아니라 직면이라는 사실을, 프리다 칼로의 시선은 너무도 분명하게 보여준다. 본인의 생애 동안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 상황에서도 더 안 좋은 현실 앞에 다시 서야했던 칼로가 끝끝내 인생을 살아내는 힘은, 자기 현실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직면하며 쌓아 올린 단단한 ‘자기 확신’이었을 것이다. 에곤 실레의 자화상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는 실레처럼 아물지 않고 남아 있는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몸과 마음 곳곳에 남아 있는 흔적들을 알아채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았는지, 이 문장은 오래 마음에 남는다.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감정은 ‘불안’이다. 페르낭 크노프는 말한다. “누구나 불안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 불안을 제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불안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겨왔던 나에게 이 문장은 하나의 전환점처럼 다가온다. 불안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성장을 예고하는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불안해 하는 나 또한 ‘나’이고, 불안을 받아들이며 헤쳐나가는 것 또한 ‘나’라는 생각을 새삼 떠올려 본다. 그렇기에 키키 드 몽파르나스의 “재능과 자유로움과 아름다움을 가졌다면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보여지는 이미지 못지않은 내면의 단단함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자기의 삶을 자신이 이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문장 또한 하루하루 단단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의 의미를 떠올려 보게 한다. “마지막 순간에 여러분이 스스로에게 던질 질문은 무엇인가요. 자화상은 그 질문에 앞서 직면한 이들이 보여주는 답이 아닐까요.” <에두아르 마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줄 알아야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폴 고갱> 두 대가의 말처럼 내가 내 스스로를 바라보며 나에게 던지는 말은 무잇인지 떠올려 본다. 특별할 것 없이 그저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는 삶에서 내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무엇이고, 내가 나로 살아가게 하는 것들은 무엇일지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자화상은 또한 ‘보여지는 나’와 ‘실제적인 나’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다. 앤디 워홀은 경계하듯 말한다.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의 긍정적인 모습들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평가나 인기에만 몰입하는 건 위험합니다. 내 자신의 내면이 충분히 성장해야 합니다. 내면의 나와 소통하고 외적 평가에 비춰지는 내 모습도 살펴가는 균형이 필요합니다.” 이 문장을 읽으며 외부의 시선으로 나를 판단해왔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실제적인 ‘나’가 아니라 그렇게 보여지고 싶었던 이상화된 ‘나’를 통해 공허함을 달래려 했던 시간들, 그러나 그럴수록 오히려 군중 속의 외로움이 더 커졌던 기억들. 내가 정말 무엇 때문에 이러고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던 순간들. “지금 누군가 여러분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긴다면 어떻게 묘사할까요. (…) 세월을 담고 있는 자화상은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에드바르트 뭉크에게 자화상은 ‘객관적인 인생 기록이 아니라 내면의 고통을 되돌아보고 자아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수단’이었다.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현실성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극단적인 표정의 얼굴들은, 어쩌면 그만큼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고자 했던 흔적일지도 모른다. 자기 향상은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욕망이고 자기 확인은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자신을 올바로 인식하려는 욕망입니다. 늘 쫓기듯 살아가며, 말과 행동의 괴리에 대해 자책하며 늘 반성과 참회로 마무리되는 하루하루의 삶이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고 느낄 때도 꽤 있었는데 아마도 실제적인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자기 확인’이 부족해서였음을 책을 느끼며 깨닫게 된다. 내가 내 스스로를 제대로 바라보고, 내가 나를 이해하고, 나에게 관대할 때, 그럴 때에 타인에게도 세상에도 포용하고 용서하고 관대함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내 잘못일까?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 자책하기보다는 자신의 고민을 바로잡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각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고 포용력을 기르는 것이 진정한 여유입니다.” <프레더릭 레이턴> 자신의 그림을 내면을 비추는 거울처럼 다루었던 ‘모딜리아니’, 늘 ‘사랑’의 힘을 믿으며 ‘사랑’만이 최우선 가치이자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작품에서 보여줬던 ‘샤갈’,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유년시절의 트라우마를 해결하고 진정한 자신을 찾으려고 애썼던 ‘르네 마르리트’, 진정한 나와 만나려는 스스로의 의지가 가장 중요함을 일깨워 주었던 ‘마리안내 폰 베레프킨’, 자화상은 예술의 응결체로 자신의 열악한 여건에서 택한 종착점이자 영혼의 반영이고 자아실현이며 자기 치료법으로 다루었던 ‘고흐’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말하고 있다. 내 모습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내 안의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고, 그 상처를 치유하면서 나 또한 새로운 길과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이 책은 또한 끊임없이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누군가가 나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긴다면 나는 어떤 얼굴로 그려질 것인지. “자화상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자화상에는 자신이 바라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숨김없는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거나 자기 내면이 폭발하기도 합니다.” (파블로 피카소) 자화상에는 바라는 모습이 담기기도 하고, 숨김없는 내면이 폭발하기도 한다. 그 싸움은 고통스럽지만,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진정한 나’에 가까워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이 책은 여러 화가들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과의 싸움이 무의미 하지 않음을 또한 우리에게 끊임없이 일깨워주고 있다.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사고를 유연하게 통제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마지막에 충만한 수 있기를 바랬던 ‘르누아르’, 삶의 무대에서 각자 주어진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다 보면 어느새 단단해진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제임스 앙소르’, 중요한 것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고 최선을 다해 움직였다는 것임을 일러주는 ‘라이오넬 파이닝어’ 등 수많은 화가들이 나에게 격려의 말을 건네주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이 힘들더라도, 끝끝내 나는 더 발전해 있을 것이고, 그 과정들이 또한 더 단단하게 해줄 것이며, 나의 미래는 나의 오늘보다는 조금은 더 빛이 날 것이라고,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너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라고. 수많은 명화들과 함께 책을 마무리하며 김선현 작가는 다시 한번 말하고 있다. “자화상은 작가가 자신을 알기 위해 거울에 비춰보듯이 환경 속에서 자신의 역할과 모습을 돌아봄으로써 자신의 자의식을 보여주는 매체입니다.” (작가의 말 中) 그래서 이 책은 명화를 이해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보다, 나 자신을 바라보는 방법을 조심스럽게 건넨다. 상처를 외면하지 않는 용기, 불안을 인정하는 태도, 보여지는 나와 내면의 나 사이의 균형. 『자화상, 내 마음을 그리다』는 더 나은 내가 되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의 나를 충분히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고 말해준다. 어쩌면 자화상이란 나를 설명하는 그림이 아니라, 더 이상 나에게서 도망치지 않겠다는 하나의 침묵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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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에곤 실레, 마르크 샤갈, 장 미셸 바스키아,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내가 아는 화가도 있었다.
페르낭 크노프, 키키 드 몽파르나스, 베브 두리틀, 장 마크 나티에, 마리안네 폰 베레프킨, 라이오넬 파이닝어..... 처음 만나는 화가들도 참 많았다.
p157~158 그가 열 네 살이 되던 해에 그의 어머니는 성폭행을 당하고 수치심을 견디지 못해 치마를 얼굴에 뒤집어쓰고 강에 빠져 죽습니다. 불행하게도 마그리트는 어머니의 자살 현장을 목격하고 맙니다. 1920년대 그의 초기 작품에서 얼굴을 천으로 가린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그때의 충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르네 마그리트의 충격적인 삶과 그의 그림들은 나에게 깊은 충격이었고 감동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