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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협회에서 근무하는 루는 미지의 세월이 쌓여 기묘한 아름다움이 된 집을 조사하는 업무를 갑작스레 담당하게 되고, 거기다 그곳에 머무르며 집의 일부인 곰을 돌보는 일조차 맡게 될 상황에 처한다. '상황에 처했다'는 말은 그녀가 곰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느낀 기쁨을 고려하면 조금 맞지 않는 표현이지만. - "게다가 곰의 존재는 마치 엘리자베스 시대에 온 것 같은 이국적인 기쁨을 주었다." 루가 곰을 마주할 때마다 그녀의 서술이 다소 현실과 멀어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편안한 듯 공포스러운 듯, 애정있는 듯 무심한 듯한 곰. 마치 루가 머무르게 된 외딴 섬의 모습이 일견 척박한 듯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풍요한 - 그녀가 맛있게 먹은 곰보버섯, 캔디, 넓은 집, 빼곡한 서재 - 것과 닮아 있다. 곰은 이름 없이 그냥 곰이라고 불린다. 루가 펼쳐보는 책들에서는 여러 나라의 언어로 곰의 이름이 등장하면서도, 이 곰만을 위한 고유한 이름은 소설의 마지막까지 공백으로 남는다. 그냥 곰. 혹은 야생동물이라고 불리우거나. 늘 질서정연한 서류 같은 삶을 살아오던 루도 곰을 곁에 두면서부터 곰의 이름없음과 비슷한 불확정적이고 비정형적인 감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 "그러나 이곳에서 그녀는 제 존재를 정당화할 수가 없었다. 이 모든 카드와 세세한 정보와 분류가 다 무슨 소용인가? 저마다의 질서로 기록되고 분류되어 결국에는 그녀로 하여금 체계를 찾고 비밀을 파헤칠 수 있도록 해주는 그것들이 처음에는 아름다웠으나 지금에 와서는 죄책감을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 그것들은 진실에 대한 이단일 뿐이었다." 그리고 루는 촛불을 켜도 덜어지지 않는 깊은 어둠 같은 곰에게 마치 바람 앞 촛불처럼 속절없이 흔들리며 이끌린다. 그녀는 외딴 섬 속의 혼란스러움을 조심스레 직시하며, 인간들 틈에서 책상 위에 드러눕는 하녀가 되기보다 곰과 함께 벽난로 앞에서 흐트러지기를 선택한다. - "그녀는 남자들의 에로티시즘이 아니라 그들이 여자에게는 에로티시즘이 하나도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것이 싫었다. 그로 인해 여자들은 하녀밖에 될 수 없었다." 생소하지만 점차 선명해지는 감각들은 예상치 못한 결말로 나아간다.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게 되는 소설. #도서제공 https://www.instagram.com/p/C3aTeBIS2wf/?igsh=a3Z3d3Jla3NhYzZ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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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곰』관능적이다 못해 파격적이고 다소 충격을 선사할 수도 있을 작품이다. 호불호가 분명 갈릴 수 있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작품 그 자체, 특히나 주인공인 루의 행동을 놓고 보면 여성이 성역활에서 있어서 지나치게 수동적이거나 자신의 매력이 타인(특히 상대 남성의 기준과 잣대)에 의해 재단되고 평가받는 것에서 벗어나 오롯이 주체적이고도 자신에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분명 의미있는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저자인 메리언 엥겔은 국내에서 『나의 곰』을 통해서 처음 선보이는 작가이기도 한데 캐나다 총독 문학상 수상 작가이기도 하단다. 게다가 『시녀 이야기』의 마거릿 애트우드, 단편 작가로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앨리스 먼로와 함께 캐나다를 대표하는 작가라는 점에서 이번 초역이 더욱 의미있게 다가오면서 그동안 보여준 작품들이 여성의 삶, 여성의 관점에서 초점을 맞춘 작품들을 많이 선보여 왔다는 점도 의미있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솔직히 주인공인 루와 곰의 에로틱한 사랑을 그린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파격적이긴 하기에 마음을 먹고 읽어봐야 할 작품이란 생각은 확실히 말해두고 싶다.
역사협회의 루가 캐리섬으로 오기 전 그녀가 만나왔던 남자들은 그녀를 오롯이 동등한 존재로 대하지도 않았다. 자신들의 기준에 부합할 때 그녀는 좋은 여자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루는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경험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루가 곰에서 성적 이끌림을 경험하는 부분 역시도 어떻게 보면 이전에 자신이 만났던 나쁜 남자들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감정적인 부분들이 분명 있었을 것인데 그런 한편으로는 과연 동물과 사람의 이성적 관계가 가능한가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야생의 동물이 인간과 쉽사리 교감하기 쉽지도 않은데 그 이상의 관계가 가능한가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작품 속 곰은 루를 그 어떤 인간 남성보다 더 존중하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어쩌면 이렇게 파격적인 소재를 통해서라도 여성이 실제 남성과 연애, 교제, 다양한 관계 속에서 억압받거나 위해를 받거나 그 존재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그래서 진정으로 정신적, 육체적 교감을 주고받지 못하는 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자 함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상당히 파격적이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소재 너머에 메리언 엥겔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알것 같은데 이와 함께 과연 캐나다 현지는 물론 해외에서는 이 작품의 출간이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켰을지가 살짝 궁금해졌던 작품이기도 하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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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동물성애자>라는 책이 있다. 주파일(zoophile), 이른바 동물성애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에 가까운 책이며, 저자가 실제 주파일의 실례를 심층적 인터뷰와 근접 관찰을 통해 기록했기에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주제임에도 설득력이 높았다. 그 책의 추천사에는 '읽는 이의 식견을 묻는 위험한 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지만, "종도 편견도 넘어선 사랑"이라는 부제 그대로 주파일도 LGBTQA...으로 이어지는 인간의 다양한 성적지향에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하는게 그렇게 이상하지 않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그래서 이 책 <나의 곰>에 대한 기대가 컸다. <나의 곰>은 주파일에 대한 소설이며, 이성애자였던 한 여성이 수컷 곰에게 강렬한 성적 끌림을 느끼는 과정이 밀도 있는 문장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연애와 매우 닮았다. 주인공 루는 깊은 교감을 나눈 상대와 결국 이별하지만, 너무 멀리 함께 갔다고 느껴질 정도로 욕망의 충족을 경험한다. 사실, 이 관계가 피비린내 나는 걸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곰은 예측이 되지 않는 '동물'이고, 야생 동물의 이빨과 발톱이란 슬쩍 갖다대기만 해도 인간의 몸을 찢을 수 있는 흉기가 된다. 거기다 루는 자기를 찢어 달라는 둥 너무 열정적이고 겁이 없었다. 그런데 여성의 연애란 사실 위험한 일 투성이가 아니겠는가. 데이트 폭력에 가정 폭력, 연인이든 가족이든 백퍼센트 안심을 하기엔 힘든 세상이다. 그래서 더 루의 연애가 오싹하면서 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나보다 훨씬 힘이 세다고? 이건 인간 여성이 인간 남성과 하는 연애와 다를게 없지 않은가. 생각해보면 책에 둘러싸인 삶을 사는 서지학자인 루가 문명과 동떨어진 곳에서 야생 그 자체인 곰과 관계를 갖는다는 것도, 여성의 몸과 정신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남성과 관계를 갖는다는 것과 매우 닮아 있다. 그런데 여기서 곰은 오히려 인간 남성보다 더 루를 존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함부로 먼저 루에게 다가오지도 않고, 관계시 루에게 상처를 입히지도 않는다. 굶겨도 루에게 음식을 요구하지 않고, 사슬에 묶이거나 풀려있거나 상관없이 사슬을 당기거나 멀리 가지조차 않는다. 이전에 루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섹스를 요구하거나 '집안의 하녀'가 되기를 바라는 인간 남성보다 오히려 더 멋진 연애 상대가 되어 준다. 그래서 루는 곰을 상대로 마음껏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 '몸 위로 별들이 떨어지고 타오르고 또 타오르던' 끝내주는 시간을 갖는다. 뭐, 여타의 연애처럼 말그대로 상처로 이 관계도 끝이 나지만, '정말이지'라는 말 한 마디로 좀 과했지만 나쁘지 않은 연애를 깔끔하게 끝낸다. 스스로가? '강해지고 순수해진 기분이 들었다'고 하니, 이 연애가 꽤 괜찮았던 게 아닐까. 주파일에 대해 '수간'이란 혐오의 말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금기와 비정상으로 가는 경계란 매우 아슬아슬하고 그 기준이란 것도 결국은 인간이 정하기 마련이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사랑과 관계가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깊이 고민해본 적이 있다면, 주파일의 방식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 책을 읽는 것이 오히려 사랑과 관계에 대한 내 좁은 식견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출판사 이벤트로 책을 제공받고 쓰여진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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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곰>은 역사협회의 직원 ‘루’가 캐리섬에 조사를 목적으로 파견되며 ‘곰’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억압되고 고립된 주체의 욕망은 단순히 무엇을 바라는 것 이상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그건 삶의 회복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읽힙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적어도 사랑에 관해서라면요. 사랑은 어떤 기준에 의해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시대에 무엇보다 사랑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정체성과 연관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루’ 또한 ‘그(곰)’와의 사랑을 통해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아갑니다. 경계를 뛰어넘는 사랑, ‘루’는 뜨거운 불길 속에 자신을 내던지지만, 그건 우리에게 희생이 아니라 회복으로 다가옵니다. ‘루’가 머무는 공간은 수많은 책과 지식인들의 사진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루’가 만난 것은 현학적인 사유도, 고도의 문명도 아닌 오직 ‘곰’과의 순수한 사랑이에요. <나의 곰>은 망망대해 같은 삶에서 한 존재와 한 존재가 만나는 아름다운 순간을 그려내고 있어요. 저는 <나의 곰>으로 메리언 엥겔을 처음 마주하게 됐어요. 작품을 읽으며 번역이 참 잘 되어 있다고 느꼈어요. ‘곰’이 등장하는 순간들, ‘루’의 내면 등이 긴장감 있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책의 완성도가 높아 인상 깊게 다가오는 작품이에요! 존재한다는 것의 감동을 느끼고 싶은 분들께 메리언 엥겔의 <나의 곰>을 추천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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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가 말했다던가, 책은 도끼여야 한다고. 카프카가 그런 말을 남긴 이유는 한 권의 책은 읽는 사람에게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깨달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겠지만, 독서의 제1 목적을 즐거움에 두고 있는 나 같은 흥미 위주의 독자에게 이러한 도끼 같은 책은 자극적이거나 충격적인 사건을 다룬 쪽에 가깝다. 현실이 이러하니 그날의 읽을 책을 고를 때 파격적이라든지 충격적이라는 홍보 문구가 쓰인 곳에 제일 먼저 눈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최근에 출간된 책 중 파격을 이유로 화제가 된 책을 꼽자면 아무래도 <헌치백>을 빼놓을 수 없겠다. 장애 여성의 임신과 중절을 소재로 “위악을 떨고 타락을 열망하는 발칙하고 도발적인 인간 선언문”이라 홍보된 <헌치백>은 꽤나 호들갑스러운 띠지의 문구에 걸맞게 작가인 이치카와 사오의 재기 넘치는 문장으로 그녀의 솔직하고 날카로운 진심의 일부를 담아낸 소설로 보인다. 그러나 즐거웠던 독서의 경험과 별개로 이 책으로 충격을 받았냐고 하면 아무래도 글쎄올시다…. 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어쨌거나 2024년의 대한민국은 간통죄가 폐지되고 낙태죄를 위헌이라 판결한 나라인 것이다. 주체가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여성의 성과 욕망은 <헌치백>이 수상한 아쿠타가와상이 속한 문학계에서 자주 파격으로 설명되곤 한다. 이러한 설명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처음 베스트셀러에 오르고도 한참이 지난 현재의 여성 독자들에게 진부함을 가져다줄 뿐, 그다지 새롭거나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다. 자극적인 홍보 문구가 야속하게도 띠지가 약속한 충격을 느끼는 일은 매우 드물고, 혹여 충격을 받게 되더라도 그뿐이라 책을 읽다 보면 금세 무뎌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동안 도발적이라든가 관능적이라 소개하는 책들을 피해 왔는데 우연히 바로 이 책 <나의 곰>을 접해버리고 말았다. 1976년도에 출간된 <나의 곰>은 현재도 영문 제목을 검색하면 캐나다에서 가장 논쟁적인 소설이라는 제목의 게시글들이 뜰 정도로 파격적인 소재를 다룬 소설로 곰을 사랑하게 된 여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런 소재를 보면 한국인이라면 단군신화를 곧장 떠올릴 텐데, 이 책에서 등장하는 곰은 신화나 민담 속의 비유적인 존재가 아니라, 정말 곰이다. 곰에게 안겨있는 여인이 그려진 표지로 유명한 이 소설은 책에서 표현된 그대로 곰에 대한 한 여인의 성애냐, 아니면 캐나다 역사에 대한 은유이냐, 혹은 곰이라는 완전한 타자를 통해 여성이 주체성을 회복하는 이야기인가를 두고 아직도 사람들의 해석이 갈리는 문제작이다. 그 어떤 파격적인 책도 다 읽고 난 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처음의 충격이 사라져 희미하게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소설, <나의 곰>은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읽는 동안 느꼈던 혼란스러운 감정이 잊히지 않는다. 조금 색다른 도끼를 찾고 있는 독자라면 한 번쯤 시도해 볼 만한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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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애트우드, 앨리스 먼로와 나란히 캐나다 문학을 대표로 하는 저자의 작품을 처음으로 만나본다.
제목이 '나의 곰'인데 사실 소개 내용을 읽었을 때는 동물과 어떤 보이지 않은 교류차원으로 다룬 내용이 아닐까 했었는데 읽은 후엔 좀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토론토 역사협회 사서인 루는 종이 속에 파묻힌 채 역사적 자료들을 찾는 일을 하며 삶의 의미에 대해 만족스럽지 않음을 느끼며 생활하던 중 한 대령의 후손이 유증한 저택의 서재를 조사하러 온타리오 주 북부에 있는 캐리 섬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친 자연적인 여름 풍경과 함께 저택 뒤 통나무 집에 살고 있던 곰과도 점차 친숙해진다.
그동안 남성들과의 연애가 좋지 않았던 기억들, 외로움이 커지면서 점차 곰에게 이끌리는 자신의 마음, 즉 성적으로 끌리는 것을 느끼는데..
인간과 동물과의 사랑이야기, 보통 감정적으로 우정과 사랑으로 가득 찬 감동을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파격적인 내용들을 읽어 나가기가 익숙지 않았다.
루가 느낀 여성으로서 진실된 사랑 찾기(?), 기존의 남성 우위의 사랑 앞에 사랑의 감정이란 확신을 갖고자 했지만 실망만 클 뿐이었던 그녀가 곰에서 느꼈던 마음은 인간 남성들에게 얻지 못한 것들이다.
이는 무엇을 원하지도 않았고 위협적이지 않았으며 되려 그녀를 배려한 듯한 모습들의 곰의 행동으로 보이곤 했는데 루에겐 이것이 사랑은 제외하고 사랑의 행위에만 집중하고 강요하던 남성들보다 더 나은 존재임을 인식하고 그녀 스스로 주체가 되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모습은 자유로운 한 인간의 모습처럼 다가온다.
읽으면서 [성스러운 동물성애자]라는 책이 많이 떠올랐는데 이 책의 내용도 당시 충격이 컸던 기억이 있던지라 이 작품에서 루가 보인 행동이 주파일의 또 다른 작품으로 와닿았기에 저자의 이런 날 것의 감정을 그대로 보인 부분들이 '사랑'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경계를 뛰어넘는 사랑에 대한 것을 우리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며 이해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고 특히 이 작품에서 보인 사회적으로 남성들 파워 속에 여성들이 지닌 한계를 벗어나 자기 스스로 사랑과 욕망을 통해 주체성을 회복해 나간다는 점과 사랑과 관계라는 차원에서도 많은 것을 다뤄볼 수 있는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출판사 도서협찬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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