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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대학 1학년 시절 마지막 세미나 '교재'였고, 따라서, 내가 처음으로 '완독'한 홍세화씨의 책 되겠다. 책은 '문화비평 에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듯, 한국의 문화를 전적으로 프랑스-구체적으로는 프랑스의 '똘레랑스'문화-의 문화와 비교하며 비판하고 있다. 저자가 '본의아니게' 프랑스에서 줄곧 생활해 온 터라, 프랑스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그렇다고해서 그가 덮어놓고 프랑스를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사회의 선진성에 관한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우리나라의 정치, 사회적 병폐를 거론하기 위한 '도구'로 복무하고 있으며, 그러한 프랑스 똘레랑스의 이면-인종문제-에 대해서도 충분히 거론하고 비판되고 있다. 또한 '제1세계'에서의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 한국을 비판하다보면 쉽게 빠지는 오류, 즉 한국에 대한 폄하나 원망은 이 책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그것은 아마도 저자가 '제1세계'의 휘향찬란한 외향과 스타일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뚜렷한 주관과 신념에 의해 서술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모국 사회에 대한 비판이 질시보단 애정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세미나가 끝나고, I형이 했던 한마디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근데 우리는 도대체 왜 이모양일까? 얘들이라고 특별히 잘난것도 아닐텐데." 글쎄, 지금 내 생각엔 한국의 독자적인 '근대'는 고작 50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프랑스도 '똘레랑스'가 자리잡기 위해서 오랜 기간과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필요했다), 그 초입부터 좌우파간의 '전쟁'-이러한 극단적인 정치행위(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정치의 끝으로 보았다지?) 속에서 중간파가 살아남을 여지는 없다-으로 인해 극우 일변도의 정치교의가 '교조화'되는 속에서 시작했다는 점, 50년이 지나도록 국가보안법 같은 다른쪽을 배제하려는 법적 장치가 그대로 온존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장구한 사회적 합의를 통한 똘레랑스 문화가 자리잡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는 점이 그 원인이 아닐까 싶다. 홍세화씨의 문장은 다소 문학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의 글에는 '이성으로 비관하고 의지로 낙관하려는'한 인간의 노력이 보인다. 시간이 꽤 지난 책이지만, 읽어보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관용과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정의라는 가치가 그때나 지금이나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돌고 있기 때문에. |
| 언제라도 기회가 되면 아예 프랑스에서 살고 싶을 정도로 프랑스 문화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만약 나에게 지금 수억이 생긴다면 짐을 챙겨서 저자가 말하는 빠리로 당장 뜨겠다. 이런 나의 생각에 어떤 분들은 조국의 은혜를 모르는 망할 놈이라 비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팔리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는 시장의 상품 리스트에 국가도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가 아닐까? 소수 5%의 부르주아 계급이 전체 소비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는 불평등한 국가보다 사회정의가 지켜지고 환경친화적인 국가에서 살고싶지 않은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 (소수의 기득권자들 빼고 말이다.) 프랑스 사회와 문화를 한국 사회와 문화와 비교하는 방법으로 쓰여진 것이 어떤 분에게는 탐탁치 않게 여겨질 수도 있다. 즉 봉건시대이후 근대에서 현대로 발전해온 역사가 일천한 한국과 소위 민주주의의 역사적 발전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와 같은 선상에서 사회적, 문화적 차이를 논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양적 비교로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대한 시간의 양적 단위가 한 사회, 국가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결정적인 요소는 전 사회구성원의 사회의식과 사회적 실천이며 매 순간 순간 그 시대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투쟁하였는가가 현재를 규정하고 나아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긴 역사의 프랑스는 질적으로도 우수했고, 짧은 역사의 우리나라는 기분나쁜 점이 너무 많다. 일본 제국주의의 개가 되어 사욕을 추구했던 자들이 해방이후 정치권력을 잡는 역사의 정의가 실현되고 (조, 중, 동 3총사는 두말할 것도 없다), 파쇼 군사정권의 수괴들 마찬가지로 역사의 심판도 받지 않고 잘먹고 잘 살고 있다. 반면 프랑스 국민들은 2차대전 당시 나치에 부역한 자들에 대해서는 유명한 프랑스식 사고 "똘레랑스"대신 "앵똘레랑 스"를 외치며 철저히 단죄를 했다. 이런 역사적 정의를 바로세우고자 치열하게 노력을 한 사회적 의식의 차이에서부터, 교육, 언어 등등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비판을 들으면 동의를 넘어서 왜곡된 사회구조에 대한 분노까지 일게된다. 프랑스라는 사회를 거울로 우리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는 진행이 꽤 흥미진진했지만 그 주제가 사회적 정의 일변도로 진행이 되었으 면 좀 지루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의상의 유행이나 음식문화, 재밌는 사회현상등의 소재들을 맛갈나게 분석 제공함으로써 다양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가만히 보면 이런 양 국가에 대한 비교 속에서 프랑스의 장점을 말하는 저자의 목소리에 한국을 폄하하거나 과거 개인적 사건을 근거로한 원망보다는 애정이 깃들어 있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불쌍한 한국어"라는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영어 지상주의가 판치는 한국사회를 향해 망명객인(지금도 망명중인지는 모르겠다) 저자가 제말 한국어를 사랑하라고 외치는 것에 뭔가를 느껴야 하지 않을까? 한국사회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 글쓰기는 한국을 향한 애정표현이다. 글의 마지막 "그대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안다"에서는 파리의 어느 역에서 우연히 모스크바행 기차가 있음을 발견하면서 철도로 서울, 부산에 이르고 싶다는 저자의 동화같은 소망을 읽다보면 이 책 밑 에 깔린 조국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나 개인적으로는 "철학카페에서의 토론 한마당"에 다루어진 프랑스 인들의 모습이 너무도 부러웠다. 카페에서 학자 아닌 일반 사람들이 모여서 사회전반에 대한 토론 하는 모습이 보편화되어 있음에 그 문화적 저력을 깨닫는다. 그렇다고 아카데믹한 철학을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실업과 자아상실" 같은 실생활과 맞물린 주제들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기반은 철학을 매우 중요한 교육으로 생각하는 교육제도에서 비롯한다. 대학을 졸업한 후, 약 3년간 삶에 대해서 사회, 문화에 대해서 친구 나 직장동료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어 본 경험이 거의 없다. 이건 내 개인적인 과오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할 것이지만 그래도 그런 생활과 그런 삶을 즐기는 인간들이 있다면 어째 이렇게 만나기가 힘든 것일까? 직장에서는 책상위의 컴퓨터만 바라보며 하루의 소중한 시간을 회사를 위해 전심전력하며 가끔 휴게실에서 담배피며 하는 이야기란 주로 회사와 관련된 경제적 소재들 뿐이었다. 그외 많은 친구들과의 모임.. 술과 웃음반 농담반으로 채워지는 것에 이젠 어지간히 지쳤다. 그 와중에 만난 몇 안되는 지인들과의 만남 에서 한 이야기들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은 이런 나의 갈증 때문 일터이다. 만나서 진지한 이야기를 꺼내면 왕따되지 않을까하는 고민 이 제일 힘든 고민이다. 저자는 토론문화가 전무한 한국 사회의 모습을 교육제도 및 언론 등 전반적인 사회제도와 결부시켜 이야기를 전개하는 상당부분 공감이 가는 부분들이다. 홍세화씨의 "쎄느...한강..."은 프랑스와 한국 두 나라의 문화를 단순히 현상비교한 것이 아니라 사회, 역사적 배경을 분석했으며 또한 사회정의라는 가치기준으로 정치,사회, 문화, 교육 제도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강화 또는 새롭게하는 긍정적인 글이 었다고 본다. 불행하게도 나에게 뜬금없이 수억이 생길리도 없고, 설사 생긴다해도 워낙 성격에 굼떠서 빠리로 가는것은 아마 힘들것이다. 또한 프랑스 가 관용적 성격이 강하고 합리적인 사회공동체로서 유일한 대안일리는 없다. 저자가 이야기한대로 프랑스 역시 제국주의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과거가 있으며 그 과정에서 알제리 출신의 식민지 국민을 학살하는 파쇼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는가? 물론 언론 일각에서 전혀 보도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래 내가 태어나 몸담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뭔가를 실천하는 것이 생산적이고 더 편하겠다. 흠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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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홍세화의 자신의 책무로 삼고 있는 한국 사회를 향한 대사회적 발언의 첫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새로 부제로 붙은 ‘프랑스라는 거울을 통해 본 한국 사회의 초상’이라는 문구에서 보듯이 이 책 전반에는 저자가 프랑스와 한국을 비교하면서 한국 사회가 일상과 정치, 경제적 영역에서 좀 더 진보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애정 어린 충고가 담겨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 들게 만드는 많은 생각을 갖게 만드는 책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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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더 전에 쓰여진 책이라 지금은 프랑스의 상황도, 홍세화 씨의 생각도 조금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2008년 개정판 이전의 1999년도 판이다.) 책을 읽고 처음 든 생각은 그분이 프랑스에서 살던 삶을 참 사랑했구나 하는 것이다.
이 책은 당시 프랑스 사회의 면모들에 대해서 살펴보지만 그를 통해 본 우리나라의 모습까지 포괄하고 있다. 대개는 비평하거나 안타까워하는 모습이다.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나눈다'라는 제목은 책 후반부에서 나온 말인데, 이조차 우리나라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고 있는 이야기 였으니 사실 그가 하고픈 말은 우리나라에게 있었으리라. 그러한 것들을 읽으며 그의 프랑스 사랑이 과하다고 조금은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한 것 보니 나도 편견이 있는 사람인가 보다. 하지만 역시 부러운 마음이 더 크다.
그가 본 프랑스는 개성있고 위트있고 정의롭고 저항하고 대립하는 가운데서도 균형점을 찾은 시민들이 있는 곳이다. '나는 프랑스다' 라고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할 수 있는 말인가. 프랑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그들에겐 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국민은 행복할까?
한가지 더 인상 깊었던 대목은 '사회 정의가 질서에 우선한다' 라던 관념. 책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이야기들을 보니 빅토르 위고의 책에서 읽은 인물들의 모습은 후세대들을 통해서도 아직도 흐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주의라는 의미에 시장경제와 사회정의를 둘 다 포괄할 수 있는 사회. 실감이 안나 경험해 보고 싶어진다. 이 콧대 높은 사람들의 나라가 참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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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의 젊디 젊은 나는 왜 홍세화씨를 이제야 알았는지 스스로 반성(?)을 해본다. 어쩌면 지금에서야 안것도 크나큰 행운이니 . 이 책을 읽고나서 그제서야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 를 구독하려 한다. 책을 접하기전엔 그저 프랑스 문화와 한국 문화의 비교 우위를 분석해보는 책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그 속에 담겨진 크나큰 반성과 통찰이 숨겨져있다고 본다. 물론 전반적인 내용은 프랑스 문화를 통해서 바라본 한국 문화의 문제점을 요목 조목 짚어주며 전개해나간다. 프랑스라는 나라를 정말로 한번쯤은 가보고싶게 만든다 ㅎㅎ 정말로 책속에선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지금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어진다 . 프랑스의 복지정책 , 노동자들의 파업 혹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의식 ,영어 공용화에대한 그들의 자세 , 교육 현실, 사회정의냐 질서냐 ? , 사람사는 이야기 등등 거시적인 국민 의식 개혁에서부터 소소한 사람사는 일상 까지 ..어려울것만 같았던 책이 홍세화씨의 문장력과 논리력 덕분일까 참 쉽고 편하게 다가왔다 . 개인적으로 홍세화씨의 팬이 된듯한 기분이다 . 특히나 이책에서 나 스스로 감동 받았던 부분은 모국어에 대한 그들의 자세 였다. 우리것을 우리것 자랑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의현실과는 그저 동떨어진 현실 같았다. 그렇다 이책에서 말하는것처럼 국수주의에 가까운 민족주의는 좋지않다. 허나 나스스로는 과연 미세하고도 얕은 민족주의에 감정을 갖고있었는지도 의구심을 들게 한다. 책은 1번읽고 완성하는것이 아니니 기회가 된다면 또 읽고 싶어질정도로 매력적인 책이라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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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지 꽤 된 이 책을 이제서야 읽어보게 되었다.
워낙 유명한 책이지만 사실 사볼 생각은 안했는데 알고보니 내 책장에 꽂혀있었다.
막내고모의 세례명이 써있는 것을 보면, 막내고모가 대학시절에 사놓았던 모양이다.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제목이 만만해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왠걸...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음에도 너무나도 읽고 이해하기 편했다.
워낙 정치,사회적인 지식이 부족해서인지 홍세화님의 표현력과 문장력, 그리고 사상과 비판에 감동을 받아서인지 내겐 너무나 신선하고 재미있는 내용들이 가득했다.
초중고 12년을 마치고도 한번도 생각해보지않았던 '교감의 필요성'이 특히 그랬다. 그 외에도 물론 내가 발끝에도 닿지못했던, 못했을 많은 재미있는 내용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누구에게든 추천해주고 싶고 홍세화님의 다른 책들도 얼른 읽어 봐야겠다.
책이 나온지 거의 10년이 되었지만 역시 좋은 책은 좋은 책이다!
물론 책이 언제 출판되었는지는 책의 질과 상관이 없다만..
워낙 소설이 아니라 사회비평에세이라서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했지만 한국사회는 참 10년이 지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너무 공감가는 대목이 많으니까...
읽어보길 너무도 잘한 것 같다. |
| 도서명 :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지은이 : 홍세화 펴낸곳 : 한겨레신문사 출판일 : 1999년 5월 31일 1쇄 발행 / 319쪽 세 번째로 접하는 홍세화씨의 작품이다. 전에 접했던 작품에서도 항상 느꼈듯이 이 책또한 프랑스라는 사회를 빗대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현상에 대해 마치 이방인이 바라보는 듯한 시선으로 조목조목 하게 서술해 가고있다. 하지만, 그 시선이라는 것이 이방인과는 달리 따뜻한 사랑이 철철 넘쳐 흐르기에 책을 읽는 시종일관 아프고, 슬프고, 부끄럽고 , 분노하는 내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 땅의 슬픈 현실로 인해 2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동안 유배생활을 해야만 했던, 그에게 현재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일종의 도덕적 의무감이라고 표현해야 옳을까? 그의 젊은시절을 공유하지는 못했지만, 나 또한 그와 같은 젊은 시절을 살아가고 있기에 지금 이 현실에서의 나의 삶이 과연 올바른지에 대해 다시한번 깊은 의심과 고민을 가져본다. 물론 그 당시와의 사회적인 상황이 많이 변했다고는 하나. 이 책을 읽다 보면 그 당시의 사회와 지금 이 사회가 무엇이 얼마만큼 변하고 , 좋아졌는지 의문이 들정도다. 오래된 책이 개정판이 나오고, 촌스러운 디자인 표지가 고급스러운 양장본으로 재판되었다고 해서 그 책의 본질까지 바뀔수 있겠는가? 그 책의 내용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며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것이다. 물론 기술적인 발전으로 인해 세련되게 보여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 사이에서 본질을 해석하는 것 또한 그 책을 선택하는 우리 독자들이 몫이 아닐까 생각한다. 프랑스라는 선진사회와 우리나라 현실을 빗대어 조목조목 쓰여진 이 작품은, 자칫 프랑스라는 사회의 것은 무조건적으로 월등하다는 식의 사대주의적 관점으로 곡해되어 읽혀질수도 있지만, 조금만 천천히 그리고 깊이있게 들여다 보면, 단순한 사대주의가 아닌 우리것에대한 애정이 깊이 깔려있는 자기 반성의 글쓰기라는 것을 느낄수 있다. 자식이나 제자의 회초리를 때리는 부모와 스승의 마음이 어찌 편하기만 할 수가 있겠는가? 이 책을 보면서 사실 프랑스라는 나라에 대햇 많은 매력을 느끼게 된것도 사실이다. 아니 프랑스라는 나라 자체보다는 그 곳에 살고있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정서에 대해서 매력을 느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물론 프랑스라는 나라는 지금까지도 씻을수 없는 거대한 범죄를 저지른 악의축중의 하나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현재에도 그 흔적은 전 세계 요소요소에 그네들의 아픔을 간진한채 여전히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악의축이라 불리우는 프랑스라는 나라가 현재에도 꾿꾿이 살아갈수 있는 이유는 대혁명이라는 근사한 그리고, 훌륭한 경험을 했기 때문일것이다. 또한 무수한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자기내 내부에서 발생하는 대세에 반하는 목소리에대해서 귀 기울이려 하고, 시간이 흐른뒤에도 그 대세의 결과에 관계없이 옭고 그름을, 참과 거짓을 분명히 하려는 양심이 지금 프랑스를 존재케하는 이유라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 근,현대사의 투영은 그네들의 몸짓에 비해 한없이 초라하고,부끄러우며 분노케하는 것이 사실이다. 얼마전 열렸던 월드컵에서 초반 프랑스가 졸전을 거듭하자, 자국내 언론에서 이런 보도가 나왔다. 소위 프랑스 대표라는 팀에 진정한 프랑스인은 몇 명이나 있는가라는 인종차별적 발언이 실린것이다. 그네들의 문어발식 정책경영으로 인해 사실 프랑스라는 나라에는 수많은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들에게있어 인종순혈주의니 민족주의니하는 것은 어색한 말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중에도 분명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순종 프랑스운운하는 극우적 민족주의자들도 분명히 속해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 현실에 좌,우가 공존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남,북 대치라는 상황에서 어쩌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좌익이라는 것이 용공이고 , 그 것이 곧바로 현정권에 대한 전면적인 도발로 생각하는 극단적인 사고에서는 좀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남북을 가르며 흐르고 있는 한강은 수없이 많은 한강대교들에도 불구하고, 왜 자꾸 멀어져가게끔 느껴지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밀려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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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출간된지 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읽기 주저하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일부러 읽기를 거부하였다. 다른 나라, 특히 선진국을 통해 우리나라를 비교 분석하려는 자세에 대한 거부감이 나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 전에 사회과학 서적 가운데 프랑스 유학파들이 쓴 책을 보았고 그 책이 나의 국가 정체성을 자극, 좀 기분을 나쁘게 했기 때문이다. 한번 체하게 만든 음식은 손이 잘 가지 않는 법이 독서습관에도 들어 맞는 격이었다.
그러나 한번 체했던 음식이 계속 그럴 수는 없는 법. 오히려 더 조심스럽게 먹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조심스러운만큼 더욱 더 음미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이번 홍세화씨의 책 역시 조심스럽게 음미하고 생각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는 내용의 책이 간과하기 쉬운 객관적이면서 공정한 평가, 개인의 체험이 보편성을 이루면서 이루어져야 하는 비교 평가 등이 중심을 잃지 않고 논지를 이끌어 갔다는 점에서 높이 평하고 싶다.
이 책을 통해 홍세화씨가 책머리에서 한 의미심장한 말을 잊지 못할 것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보다 나은 사회 건설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곁에서 바라보고 싶고 옆에서 이를 위해 칭찬과 격려와 훈계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바로 홍세화씨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라는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를 보여준다. 우리와 다른 점들을 말이다. 왕따 문제, 노동문제, 교육문제, 사회제도와 사회의식 등등. 나는 책을 읽는 가운데 내 멋대로(?) 작가의 의도를 탐색했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나 다른 것이 틀릴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서 틀리다는 것은 본래 틀리지는 않지만 사회 구조상 틀리다고 간주받을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있으며 본래 틀린 것 두가지로 구분 지을 수 있다. 난 홍세화씨가 제기하는 프랑스와 한국과의 다른 점들은 후자의 틀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본래 틀린 것. 한국이 본래 틀린 것이다. 본래 틀린 줄을 모르니까 프랑스라는 하나의 표준을 보여준 것이다. 하나의 예로 각 정당의 색깔이 정책으로 구분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지역으로 결정되어지는 희극적인 현실을 들 수 있다. 지역을 자극하고 자기가 어느 출신임을 강조할 수는 있으나 자기 정치의 색깔은 꼭 어느 한 색깔에 가까워야만 하는 현실. 빨간 점 하나라도 묻기를 거부하는 사회의식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프랑스의 자기색깔 드러내기가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홍세화씨도 학생운동 시절의 피해자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홍세화씨는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바로 프랑스 얘기가 아니라 결국엔 우리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도 서두에 한국의 젊은이들이라고 읽어주었으면 하는 독자를 좁혀 놓은 것도 바로 이때문이다. 우리가 본래 이런 것들이 틀렸으니 한국을 짊어질 젊은이들이 보다 나은 한국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한국의 현대사가 특수하게 한쪽으로만 열린 사회가 되었으니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벗어난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시대적 사명을 완곡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명 가운데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통일임을 홍세화씨는 유라시아 횡단 철도를 통해 언급하고 있느지도 모른다. 파리에서 부산까지, 부산에서 헤이그까지 그리고 함부르크에서 부산까지...이것이 "젊은 벗, 나는 그대에게로 가는 길을 안다"면서 가르쳐 준 길이다.
프랑스 유학만을 준비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그리 유용하지 않다. 그저 프랑스 유학을 통해 우리나라를 더욱 발전시키고자 하는 젊은이에게 이 책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이 점을 항상 주지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프랑스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그 얘기에 다 동참한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다 젊은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프랑스와 비교했을 때, 한국의 교육 현실은 그 자체가 사회적 억압의 구체적 모습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억압의 수단으로 비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 사회는 사회구성원을 사랑하는 논리에 비해 지배하는 논리가 훨씬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사회의 어린 새싹들에 대한 교육은 사랑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사랑에 기초했다면 그렇게 억압적일 수는 없다) "경쟁에서 승리한 자가 패배한 자를 지배한다"는 '적자생존의 논리'와 '강자 지배 논리'에 순응시키는 것이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줄곧 '추려내기'를 할 뿐, '끌어올리기'를 하지 않는다. |
| 이책은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 이어서 프랑스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가 쓰여진 글이다 이 책의 내용중에서 르몽드 신문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고 정말 프랑스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사회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신문에서 필자를 소개할때 실업자이면 ~~는 실업자다 라고 소개하고 자크 시락 대통령은 자크 시락은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이다 라고 소개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비서실에서 불편한 심기를 들어내도 끄덕 하지도 않았다는데 그 이유는 대통령부터 실업자에 이르기 까지 평등하기 때문이라 했다. 그리고 서울 평화상에 관한 홍세화씨의 생각도 나와 비슷했다. 솔직히 서울 평화상이라고 하면 권이도 없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 상이다. 그런 상을 거금과 함께 주면서 낭비하지 말고 아프리카 같은 저문화개발국에 금속활자상 같은 것을 만들어서 우리나라가 세계최초로 금속활자를 개발했다는 것을 잘 모르는 외국에 알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는 것이였다. 정말 좋은 생각 인 것 같았다. 그러나 홍세화 씨가 외규장각도서 반환에 관한 생각은 너무 프랑스 편인것 같은 인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응 최소수당제라는 제도가 프랑스에 있다는데 우리나라도 프랑스 처럼 거미줄처럼 세심하게 짜여진 그런 사회보장제도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프랑스에 관해서 깊고 심도있게 알 수 있어서 좋았고 정말 읽고 후회 안할 책인것 같았다. |
| 저는 프랑스 문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불문학과를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프랑스라는 나라와 그 언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마도 고등학교 시절 제 2외국어 시간(프랑스어)의 영향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수업을 들으면서 느꼈던 것이 있다면 하나는 프랑스어의 부드러운 발음이고 또 하나는 수업을 하시는 선생님의 자유로운 수업 분위기였습니다. 프랑스어 수업은 다른 수업과는 다르게 어딘가 부드러움과 활기가 함께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선생님의 개방적인 사고와 교수 방법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아니 그것보다도 더 근본적인 이유는 프랑스 문화의 자유스러움의 미학이 선생님 안에 배어 자연스럽게 수업 중에 묻어 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수업 중에 바로 이 책을 저희들에게 권해 주셨습니다. 그땐 여유가 없어서 책을 읽지 못하다 이제서야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어 가면서 "아~~~! 이런 것이 구나"하는 말이 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첫 페이지에 작가가 한국과 프랑스를 비유한 그 부분은 정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이런 곳이 구나...우리 나라 사회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고 자유로움 가운데 원활하게 사회가 돌아 가는 프랑스 사회가 내심 부럽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젊은이의 생각이 열려 있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좀 더 넓고 깊게 생각할 수 있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 보다도 제가 이 책에서 얻게 된 가장 큰 소득은 나 자신이 이 사회의 나쁜 면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동화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 나라 사회를 부정하고 힐난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나는 깨어있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일었습니다. 시냇가에 있는 나무의 낙엽이 시내에 떨어지면 그 시내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흘러가듯이 저는 이 사회의 큰 흐름에 따르며 살았지만 한번도 그 시냇물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생각 조차 하지 못하고 살았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시내의 큰 흐름보다 힘없고 의지없는 나뭇잎의 한계에 안타까움이 일어났습니다. 조금더 예민해 져야 하겠습니다. 나약한 타성을 꾸짖고 세상 속의 우뚝 선 나로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명 한명의 정신이 깨어 있어야 완전히 깨어있는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랑스인들은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자신의 색을 냈던, 의미있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각인의 개성을 중시하고 가치를 존중해 주었던 프랑스 사회가 있었기에 그 사회는 자유스러움이 허락되었고 그 자유스러움은 어떤 상황에도 유연한 대처를 할 수 있는 프랑스의 강함을 허락했습니다. 부드러움은 강함을 이끌어 낼 수 있지만 강함을 결코 부드러움을 이끌어 낼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양파를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나라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양파 껍질을 하나 하나 벗겨가듯 써내려간 작가의 펜대가 때론 야속하기도 했지만 책을 다 읽은 후 저는 진정으로 값진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안고 있었던 문제가 이런 것이구나 그렇다 이것은 고쳐야 겠다. 그리고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우리 문화의 소중한 것을 우리 스스로 발전시켜야 겠구나.' 균형적인 사고로 우리는 그렇게 우리 사회의 양파 껍질을 스스로 하나씩 하나씩 벗겨나가야 할 것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 청년의 소임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자율을 바탕으로 즐거움으로 해야할 일들일 것입니다.즐거움이 없는 자율은 또 하나의 타율이기 때문입니다.자유로움의 미학이 우리 사회를 잘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가 되었으면 합니다.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는 신동엽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이 사회의 껍데기를 없애야 할 것입니다. 포들한 알맹이가 빛을 발하는 생기있는 한국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 사회를 알려주고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 이 책은 우리에게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한국 사회를 더욱 사랑하게 해준 이 책이 전 정말 고맙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