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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김수성 정도는 파삭파삭 말라가는 마음을 남 탓하지 마라 스스로 물주기를 게을리해놓고 서먹해진 사이를 친구탓하지 마라 유연한 마음을 잃은 것은 누구인가 짜증 나는 것을 가족 탓하지 마라 모두 내 잘못 초심을 잃어가는 것을 세월 탓하지 마라. 애초부터 미약한 뜻에 지나지 않았다. 안 좋은 것 전부를 시대 탓하지 마라 희미하게 빛나는 존엄의 포기.(-17-) 질문 인류는 이제 손쓸 수 없이 늙었나요 아니면 아직 매우 젊은가요 누구도 대답할 수 없을 것 같은 질문 모든 것에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 우리는 지금 대체 어디쯤? 삽삽한 초여름의 바람이여 (-49-) 지천명 어떤 사람이 와서 이 꾸러미의 끈 어떻게 푸느냐고 묻는다. 어떤 사람이 와서 뒤엉킨 실 묶음 어떻게 좀 해달라고 한다. 가위로 자르라고 조언하지만 싫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돕는다 꼼지락 꼼지락 살아있는 인연으로 이런 것이 살아있다는 그런 것인가 그렇지만 별로 휩쓸리고 휘둘려 지치고 지쳐 어느 날 갑자기 깨닫는다. 어쩌면 아마 수많은 친절한 손이 도와주는 것이다. 혼자서 처리해 왔다고 생각하는 나의 여러 연결점에서도 여태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티 내지 않고, (-73-) 되새김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닳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소녀 시절 아름다운 태도 정확한 발음의 멋진 여성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내가 애쓰는 걸 간파한 듯 무심하게 이야기했습니다 풋풋함이 중요해요. 사람에 대해서든 세상에 대해서든 사람을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게 되었을 때 타락하기 시작하죠 떨어지는 걸 감추려 해도 감추지 못한 사람을 여러 명 보았어요. 나는 뜨끔했습니다 그리고 깊이 깨달았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갈팡질팡해도 되는구나 어색한 인사 추하게 빨개진다 실어증 자연스럽지 않은 행동 아이의 나쁜 행동에도 상처를 받는다. 믿음이 안 가는 생굴과 같은 감수성 그것을 단련할 필요는 조금도 없었던 거구나 나이 들어도 갓 핀 장미 연약하고 밖을 향해 피는 것이야말로 어렵다. 모든 일 모든 좋은 일의 핵심에는 떨리는 약한 안테나가 감춰져 있다 분명 나도 예전 그 사람과 비슷한 나이가 되었습니다. 되돌아보며 지금도 가끔 그 의미를 조용히 되새길 때가 있습니다.(-95-) 2006년 2월 17일 ,지주막하출혈로 이바라기 노리코는 사망하였다. 생전 윤동주의 시를 사랑하였던 그녀, 한국인이 좋아하는 일본인, 이바라기 노리코 덕분에 일본 교과서에 윤동주의 시가 다수 수록될 수 있었으며,우리는 이바라기 노리코에 대해 우호적인 시선을 고수하고 있다. 시집 『이바라기 노리코 시집 (개정판)』 에는 식탁에 커피향 흐르고,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이외에 그녀가 생전 남긴 시집을 품고 있으며, 윤동주 시 4편도 담겨져 있었다. 시를 읽으면서, 회상이라는 단얼르 떠올리게 되었다. 회상은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다. 과거를 성찰하였고, 나는 나 자신의 민낯을 마주하게 된다. 옳고 그름에 대해서,나에 대한 과거와 현재르 서로 연결해 나가는 것이다. 1945년 2월 16일 세상을 떠난 시인 윤동주의 삶, 그가 생각했던 삶의 부끄러움을 마주하였다.자신의 생에 대한 남다른 자화상과 마주하게 되었으며, 시는 우리의 마음 언저리의 숨어 있는 인생의 본질을 파고들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와 삶에 대한 가치관, 이것이 무료하게 느꼈던 것들은 이제 소멸되어 졌으며,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어여쁘게 바라보았다.시를 통해서, 또다른 시들을 통해서 내 삶을 하나하나 반추하게 된다. 잘 살고 있는지, 나는 지금 어떠한 상태인지, 그 것이 나를 성찰하고,회상하는 힘이 되고 있다. 윤동주의 삶과 윤동주의 시를 사랑했던 일본인 이바라기 노리코 씨는 윤동주의 시에서 자신의 시적인 영감을 얻었고, 같은 시대를 살아왔다는 것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발자취를 따라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윤동주의 시에서,그 시대의 아픔을 읽었다. 일본과 조선 사이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와 의미들을 느낄 수 있다. 시는 나에게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는 힘과 에너지다. 어릴 적 나의 모습과 성장하면서 현재의 모습들을 겹쳐 놓으며, 내가 미래에 남겨놓을 씨앗에 대해서 스스로 씨앗을 남길수 있는 새로운 인생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 아이가 성장하여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풋풋한 어린 시절을 잊지 않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를 통해 얻을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어두 컴컴하고, 암울했던 시기에도 그 안에는 아름다움이 공존하였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스함이 숨쉬고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것과 과거에 죽어가는 것, 나의 시간의 편린에서 추하지 않도록 살아가며, 그 안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한번 더 생각해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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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라기 노리코 / 스타북스 우연히 한국 시인의 시를 읽고 순수하고 맑은 시에 감동받아 일본 교과서에까지 실리도록 힘쓴 일본의 여류시인, 그녀는 한글을 한국인보다 더 사랑한 일본인이었고 그토록 사랑했던 시인은 윤동주이다. 그녀는 일본시에 서정시만 있음을 토로하며 한국시에 대한 끊임없는 예찬을 아끼지 않았다. 작가소개
일본을 대표하는 여류시인이며 국가와 민족, 언어, 이웃과의 소통 등의 주제를 쉽고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하여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시인이다. 시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과 행복을 찾으려 노력했다. 대표 시로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네 감수성 정도는』 이 사랑받고 있다.
이 책에는 서른 편 이상의 시가 수록되어 있고 글 구석구석에서 시인이 씩씩하고 밝은 표현을 하고자 노력함을 읽었다. 맑고 깨끗하며 시원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해 누가 읽어도 사로잡힐 수 있는 힘을 가진 글이 다수이다. 말의 힘을 시 속에 가득 담아 잘못된 것은 바르게 지적할 줄 알고 좋은 것은 눈치 보지 않고 좋다는 표현을 아끼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시는 역사적 어둠의 현장과 비극적인 장면을 생생하게 담아두어 박해받은 한국인의 아픔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시 속에 담아두었다. 누구보다 조선을 사랑했고 조선의 시인을 극찬하며 일본 교과서에 그 시가 실리게끔 힘을 썼다. 한글의 세계에 깊이 빠져 지은 시 『이웃나라말의 숲』은 그녀가 한글과 윤동주 시인을 얼마나 동경하고 있는지를 너무도 섬세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유명한 시가 많음에도 특히 아를 자극한 시는 『지천명』이다. 정말 지천명을 넘겨봐야 이해할 수 있는 시였다. 혼자서 이루어 지금까지 온 줄 알았는데 살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삶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고 그녀의 시처럼 깨달음을 준다.
휩쓸리고 휘둘려 지치고 지쳐 어느 날 갑자기 깨닫는다. 어쩌면 아마 수많은 친절한 손이 도와주는 것이다. 지천명 중
시에 대해 친밀감이 적었다. 단어와 짧은 문장 속에 함축된 뜻을 찾아내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는 그 편견을 깨주었다. 그녀가 왜 그토록 윤동주의 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것조차도 궁금해진다. 생전에 하직 인사를 미리 작성해 두었던 센스 있는 시인, 그녀 다운 작별 인사를 읽고 그 매력에 더욱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전한 메시지 중『 네 감수성 정도는』에서 따끔히 나를 혼낸다. 초심이 사라지는 것을 생활 탓으로 돌리지 말고 감수성 정도는 지키라고 호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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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라기 노리코 시집』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 한국을 사랑한 일본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 사실 시를 그리 즐겨 읽는 편이 아니어서 알고 있는 시인은 손에 꼽힐 정도로 몇 안 됩니다. 그런 제가 <이바라기 노리코 시집>을 읽어봐야겠다 생각한 이유는 바로 이바라기 노리코 시인으로 인해 '윤동주' 시인의 시가 일본 교과서에 실렸다는 내용 때문이었어요. 우리 현대시를 일본어로 번역해 '한국 현대 시선'을 펴내고, 윤동주에 관한 글을 써 일본 고교 교과서에 실리게 한 사실만으로도 '이바라기 노리코'를 달리 보게 합니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보고 극작가의 길로 들어섰고 결혼 후, 잡지 등에 시를 투고하면서 시인으로 활동한 이바라기 노리코. 윤동주 시인에 대한 관심을 계기로 한글을 배우기 시작해 한국 문학 번역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하네요. 관동대지진 때 한국인 살해 사건을 다룬 '장 폴 사르트르에게', 고대 일본 이주민들의 차별 대우를 고발한 '칠석' 등 한국을 소재로 한 시를 여럿 발표한 전후 여성 시인 중 가장 폭넓은 사회의식과 비평 정신을 보여준 일본의 대표적인 지한파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입니다. 그녀의 시집을 처음 접하고 시를 만나기 전 그녀의 하직 인사를 먼저 읽게 되었는데요. 갑작스러운 이별에 인사를 전하지 못한 이들에게 이렇게 인사하는 방법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일 처음에 실려 있는 '네 감수성 정도는'을 읽다가 피식 웃음이 났어요. 말라가는 마음, 서먹해진 친구 사이, 짜증 나는 것, 초심을 읽어가는 것, 안 좋은 것 전부를 '남 탓'하지 말라고 하네요. 모두 내 잘못이라고.. 위트 넘치면서도 할 말 딱 부러지게 하는 센스가 넘쳐나는 시였습니다. 그녀의 대표작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읽으면서는 예쁘고 싶었을 그 시절 전쟁으로 무너져가는 많은 것들을 함께 본 느낌이었어요. 이바라기 노리코가 어떤 사람인지 느껴질 정도로 감성적이고, 때론 강인한 모습이 잘 담겨 있는 <이바라기 노리코 시집>. 시를 즐겨 읽으시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시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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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는 시를 즐겨 읽는 편은 아니지만 윤동주는 안다. 우리나라 시인들 이름은 많이 알지 못하지만 윤동주는 안다. 일제 강점기 시대 '순수 청년' 윤동주는 일본에 유학 가 시를 쓰고 문학을 했지만 시집 한 권 내지 못한 채 이국 땅에서 스러져갔다. 다행히 그가 남긴 많지 않은 시들은 일제 강점기를 헤쳐 나온 시인들의 힘으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윤동주는 〈별 헤는 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서시〉 등을 남겨 우리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 시인이다. 가슴속에 하나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 〈별 헤는 밤〉 중에서 함께 나란히 유학 길에 오른 동향의 죽마고우 송몽규는 더욱 독립운동에 매진하지만, 절망적 순간에도 시를 쓰며 시대의 비극을 아파하던 윤동주의 가슴속 말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러나 그가 남긴 시는 일제의 폭압을 견뎌내며 결국 우리들 곁으로 돌아왔다. 원고더미 속에 그대로 잠자고 있다가 해방 후 그의 형처럼 뒤를 돌봐주던 〈향수〉의 시인 정지용에 의해 첫 시집이 출간됐다. 위의 내용이 우리가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윤동주다. ![]() 그러나 동시대를 살았던 일본의 여성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에 의해 시인 윤동주와 그의 시가 4편이나 일본 교과서에 실렸다니 처음 듣는 이야기이고, 충격적이다. 시인 윤동주가 왜 일본 교과서에 실렸을까? 의아하고 궁금하다. 이 책 『이바라기 노리코 시집』의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는 우리나라와 많은 인연이 있는 일본의 여성 시인이다. 그는 한글과 한국, 그리고 윤동주를 사랑한 일본의 '국민 여류시인'이라고 한다. 국내 시인들에게는 이미 잘 알려진 시인이지만, 이바라기 노리코에 대해 몰랐단 점은 독자가 시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셈이다. 부끄럽지만 그의 시집을 읽고서 그나마 알게 되었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는 특별한 인사말을 남기고 2006년 타계했다. “그 사람이 떠났구나” 하고 한순간, 단지 한순간 생각해 주셨으면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오랫동안 당신께서 베풀어 주신 따뜻한 교제는 보이지 않는 보석처럼, 나의 가슴속을 채워서 빛을 발하고, 나의 인생을 얼마만큼 풍부하게 해 주셨는지…. 깊은 감사와 함께 이별의 인사말을 드립니다. 고마웠습니다. 2006년 3월 길일." 시인은 이 인사말을 생전에 써 두었음을 밝히고, 세상을 떠나게 됨을 알리고 있다. '연, 월, 일'을 빈칸으로 남기며 병명(자주막하출혈)과 당부말을 함께 남겼다. "내 의지로, 장례·영결식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이 집에는 제가 살지 않으니 조위품이나 꽃 같은 것들을 보내지 말아주세요. 반송 못하는 무례를 더하게 됩니다."란 짧은 글이지만 독자에게는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이토록 시를 사랑한 사람이였나 싶다. 마치 시처럼 세상을 떠나는 모습이다. 그가 윤동주와 한글을 사랑했다는 사실은 그의 문학적 행적에서 드러나지만 그의 시에서도 "충분히 그럴 것 같다"는 인식을 주기도 한다. 시 〈내가 가장 예뻤을 때〉에서 독자는 제국주의의 일본이 국민들에게 남긴 것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음을 독자는 발견했다.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 나라는 전쟁에서 졌다 이런 엉터리 없는 일이 있느냐고 블라우스의 소매를 걷어 올리고 비굴한 거리를 쏘다녔다 (중략)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서는 재즈가 넘쳤다 담배연기를 처음 마셨을 때처럼 어질어질하면서 나는 이국의 달콤한 음악을 마구 즐겼다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중에서 1945년 일본이 패전했을 때 이바라기 노리코의 나이는 열아홉 살이었다고 한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그 이듬해 그녀는 지금의 토호대학인 제국여자약전 약학부를 졸업했다. 말이 대학이지, 여학생들은 전쟁에 동원되어 해군 약 제조공장에서 일하는 이른바 ‘군국주의 정신대 소녀’나 다름없었다. 이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동인지 《카이》를 창간하고, 1955년에 출간한 첫 시집 『대화』에 수록한 시에서부터 넘치는 상상력을 보여 주었다. 이바라키 노리코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시인이 32살 때에 20대 초기를 회상하며 쓴 시로서 일본의 국정교과서에도 실렸다. 온 거리가 대공습으로 와르르 무너진 건물 안에서 천정을 보았을 때 “파란 하늘 같은 것”이 보였다는 증언으로 시작하는 이 시에는 죽어가는 사람들, 전쟁에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 남자들이 등장한다. 이 전쟁을 그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단정 짓는다. 남자도 흉내 내기 힘든 대담한 표현이다. “비굴한 도시를 으스대며 쏘다녔다”는 표현처럼 그녀는 자유롭게 활보한다. 뒤늦게라도 청춘을 즐기고 싶다는 역설적 표현을 통해 시인은 역경을 이겨내는 긍정적인 노래로 이 시를 승화시키고 있다. ![]() 민윤기 서울시인협회 회장(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시 한 편을 통해 1억 일본인들을 패전국 상처에서 구해 히망의 길로 인도했다"고 전제하고 《요미우리신문》이 극찬한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 속에는 식민 지배 시절 조선의 아픔과 연민이 담겨 있는 시가 많다."고 말한다. 또 노리코는 윤동주의 사진을 우연히 접하고 맑고 청아한 모습에 반해 그의 시를 읽게 되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평생 한국과 교류했다고 밝힌다. 시인 민윤기는 시집 뒷 부분 「부록 2」에 "한국인들을 볼 때마다 곧고 맑은 결정처럼 단단하고 굳센 사람들이라고 느낄 때가 많은데, 모국어를 향한 마음이 그 중심적인 핵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는 이바라기 노리코가 생전에 한글날을 맞이하여 기고한 글 일부를 소개한다. 10월 9일 한글날 《월간시》는 10월호 프런트 스토리로 그의 '한글 사랑' 이야기를 실었다고 전한다. 「부록 2」에 따르면 이바라기 노리코는 2006년 세상을 떠나기 전 생전에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일본 시는 희로애락 가운데 노(怒)가 없다. 그러나 한국시에는 그 노가 있다.", "일본에는 서정시인만 있다. 시인의 사회적 영향력도 한국에 비해 미약하다."는 말이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서정시인을 비판할 뿐만 아니라 그런 문학 풍토나 문단의 행위를 비판하는 대표적 시로 평가받는다. 이 시뿐만 아니라 이바라기 노리코가 발표한 많은 시는 역사적인 어둠과 비극적 현장을 생생하고 분명하게 담고 있다. 예를 들면 "조선의 수많은 사람들이 대지진의 도쿄에서 왜 죄 없이 살해되었는가?"(〈장 폴 사르트르에게〉)라며 1923년 9월 1일에 발생한 관동대지진의 당시의 조선인 학살을 증언한 시도 발표했다. 이 시는 "잘 안 되는 것은 모두 저놈들 탓이다"라며 일제 강점기 시절 유대인 못지않은 박해를 받다 온 한국인이 당한 아픔을 어느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인식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표현 속에도 패배주의적인 비장감은 없다. 오히려 낙관적이다. 밝다. 바로 이런 점 덕분에 전쟁의 풍경을 숨 막히는 비극적 어둠으로 표현하는 다른 시인들과 달리, 이바라기 노리코는 이 한 편의 시만으로도 전후시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열었다는 평을 얻었다. ![]() 「부록 1」에는 이바라기 노리코가 윤동주 시인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직접 읽고 느낄 수 있도록 일본 교과서에 실린 그녀의 수필 「하늘과 바람과 별의 시」 전문을 번역해 실었다. 이 수필에서 이바라기 노리코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시작하는 〈서시〉를 소개한다. "이 시는 20대의 젊은이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청결한 시풍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사람이 오래 살다보면 많은 일을 겪게 되며넛 이처럼 영혼까지 맑아지는 시를 쓰기는 어려워진다. 젊은 나이에 죽은 시인에게는 젊음이나 순결을 그대로 간직한 맑고 깨끗함이 후대의 모든 독자들까지 매료시켜 언제나 수선화 같은 상큼한 향기를 풍기게 한다. 윤동주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고 하지만 사고나 지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다. 그는 1945년, 일본이 패망하기 6개월 전인 2월 16일 만 스물일곱의 나이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고 말았다."(p.104) 이바라기 노리코는 이 수필에서 윤동주는 죽을 때 한국어로 크게 외친 후 숨을 거두었다고 밝힌다. 그녀가 직접 찾아다니며 밝힌 윤동주의 옥사 행적이다. 간수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큰 목소리로 외치다가 절명했다는 증언을 남겼다. 이에 더불어 노리코는 "부연하자면 윤동주는 분명히 일본 검찰의 손에 의해 살해당한 것으로 이러한 배경을 알지 못한다면 이 시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윤동주의 사인은 일본인 스스로 그 전모를 반드시 밝혀야 한다"는 노리코의 주장은 1984년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완역 출간한 이부키 고의 노력을 전한다. 이부키 고는 윤동주의 배경을 알기 위해 그가 유학했던 도쿄, 교토, 시모가모 경찰서, 후쿠오카 형무소 등 그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며 80대가 된 전직 특별 고등 형사와도 만나는 등 모든 노력을 기울였지만 윤동주의 옥사에 대한 진상을 끝내 밝혀낼 수 없었다고 시집에 적어놓았다는 사실도 전해준다. 그러나 노리코는 언젠가는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를 찾아 옥사의 전모가 한 점 의혹도 없이 소상하게 밝혀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고 고백한다. ![]() 이 시집에는 시 35편이 4장(章)에 나뉘어 실려 있다. 4개의 장의 제목은 〈1. 네 감수성 정도는〉, 〈2. 내가 가장 예뻤을 때〉, 〈3. 처음 가는 마을〉, 〈4. 식탁에 커피 향 흐르고〉 등이다. 각 장의 표제어는 시의 제목이 그대로 쓰였으며, 다나카 가즈오는 「후기를 대신하여」를 통해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의 마음을 읽다』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는데, 멍청하게도 거기에 이바라기 노리코 자신의 시가 없다는 것을 처음엔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야말로, '자신의 생각을 깊게, (중략) 우물을 파듯 파 내려가면 지하에 흐르는 공통의 수맥에 닿듯이 진체에 통하는 보편성에 도달한다'(『시의 마음을 읽다』에서 인용)는 시인 것입니다. 저는 어느 날엔가 제 손으로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집을 편찬하며 이 『시의 마음을 읽다』에 필적할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꿈꾸게 되었습니다."고 썼다. 이는 노리코 시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극찬한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저자 : 이바라기 노리코(いばらぎ のりこ,茨木 のり子, 본명 미우라 노리코) 일본 현대시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되는 「내가 가장 예뻤을 때」로 유명한 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子, 1926~2006)는 전후(戰後) 일본 문단을 대표하는 여성 시인이다. 이바라기는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시인이기도 하다. 한국어를 직접 배웠을 뿐 아니라 동시대 한국 시인들의 시를 일본어로 번역하였고, 시와 수필을 통해 한국 문화를 알리기도 하였다. 윤동주의 시와 생애에 대해 쓴 수필은 일본에서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일본의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수록되었다. 이바라기는 한국어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많은 한국인들을 알게 되었고, 한국을 수차례 방문하면서 한국 문화를 몸소 체험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집필한 수필집 『한글로의 여행』(1986)은 한국 문화 입문서로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역자 : 윤수현 독학으로 일본어를 공부하여 통번역의 길로 접어들었다. 기업에서 다년간의 실무 경험을 거쳐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한일통번역과를 졸업했다. 윤동주100년포럼에 참여하여 『장 콕토 시집』『폴 발레리 시집』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전문 통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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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라기 노리코 시집』 이바라기 노리코 (지음) | 윤수현 (옮김) | 스타북스 (펴냄) 나와 같은 결의 사람을 만난 느낌이 든다. 이바라기 노리코 시인... 시인이 윤동주 시인을 알게 된 계기가 어느날 우연히 접한 그의 시와 사진이라고 한다. 청초한 시어들과 단아하고 말쑥한 젊은 청년의 모습은 이바라기 시인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에 대해 궁금증을 일게 했다. 궁금증이란 그것이 해소되면 이내 관심이 식을 법도 하지만 이바라기 노리코는 아니었다. 한국어를 공부했으며 더 나아가 윤동주 시인을 알리는 일에 누구보다 중점을 두었다. 일본 교과서에 윤동주 시인이 시가 실리는 것에 기여하기도 했다. 사실 나도 윤동주 시인에 대해 알게 된 계기는 그의 훈훈한 모습을 통해서였다. 사진 속에서 비쳐나오는 그 모습은 사춘기 어린 소녀의 가슴을 콩닥이기에 충분히 젊고 멋졌다. 그리고 그의 시들은 너무도 서정적이고 흡사 모범생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바라기 노리코 시인은 내게는 윤동주 시인을 통해 알게된 시인이다. 그녀의 시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가장 좋아한다. 대표작이기도 하지만 제목과 달리 그렇지 못한 삶이 그려지는 시이기에 더욱 더 애절한 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자신의 가장 좋은 시절을 그다지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기에... [내가 가장 예뻤을 때]란 제목이 왠지 기시감이 있었는데 전에 이 제목으로 한 어떤 소설을 읽었기 때문이다. 아마 공선옥 소설가의 표제어였을 것이다. 그것이 원조가 아니라 이바라기 노리코 시인의 이 시가 시작이라니... 아마도 오래 전부터 이바라기 노리코를 알 운명이었나보다. 그것이 바로 지금이었을뿐... 좀 더 오래도록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어들을 곁에 두고 싶다. 그리고 그녀의 시들을 주변과 나누고 싶다. 그녀가 그 시절 윤동주의 시어들을 나눴던 것처럼 말이다. 어떤 시들은 어둡고 애처롭지만 어떤 시어들은 상당히 유머스럽다. 그 시절에도 위트를 잃지않으려던 시인의 기개가 보인다.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지원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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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중에 한 명이 시인 '윤동주'이다. 윤동주의 시 한 편을 안 읽은 사람이 없을 것이고 그 시의 의미를 알고 마음이 안 아픈 한국인이 없을 정도로 윤동주 시인의 시는 아직도 한국인들이 최애하는 시인이다. 그런 윤동주의 시를 다른 언어로 번역해도 시에서 주는 고유의 감성과 정서, 언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지는 못할 것이다. 게다가 윤동주 시인의 시들은 그 시대상을 반영영하고 시대적 아픔을 노래하기 때문에 오롯이 윤동주의 시를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윤동주 시인의 시가 가진 아름다움과 감동을 자신의 언어로 번역한 시인이 있다. 일본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이다. 이바라기 노리코는 윤동주의 시를 일본인들이 무관심하다는 것이 미안했고 직접 한글 공부를 해 윤동주 시인의 시를 알렸다. 그런 노력으로 1990년 일본 고교 검정교과서에 윤동주 의 시가 일본어로 게개된 것이다. 이바라기 노리코 역시 일본의 시인이었고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를 읽다보니 왜 윤동주 시인을 좋아했는지, 일본인들에게 윤동주의 시를 소개하고 싶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시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자신이 가장 예뻤던 시절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있지만 결코 아름답지 않은 시대였다. 시인이 가장 예뻤을 때엔 거리가 꽈르릉하고 무너지고 주위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전쟁이었다.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시절과 전쟁으로 암흑이 된 세상이 대비된다. 그런 시절에도 라디오에서는 재즈 음악이 흘러넘치고 그 음악을 듣고 즐긴다. 19살의 시인에게 전쟁은 무슨 의미였을까? 자신의 가장 예뻤을 시기에 전쟁의 참상을 시로 보여준다. 시 '네 감수성 정도는'이라는 시는 점점 말라가는 마음에 관한 시다. 자신의 말라가는 마음은 스스로 물주기를 게을리했기 때문이기에 남을 탓해선 안 된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모두 자신의 탓이며 초심을 잃어하는 것이 세월 탓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안 좋은 것을 전부 시대 탓이라고도 하지 마라고 한다. 누군가를 탓하고 싶은 심정은 이해하지만 모두 자신이 지킬 수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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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라기 노리코 시집 이바라기 노리코/윤수현 스타북스 시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구수한 누룽지를 솥에 끓이고 있는 어느 시골의 한적한 모습이라고나 할까. 일본여류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상은 특유의 정겹고 구수한 목가적인 느낌때문에 대중들의 사랑을 많이 받을 거 같단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고향의 향수를 담뿍 안겨주기도 한다. 시인은 유언장을 미리쓰고 병명과 사망일시는 빈칸으로 두고 유족에게 자기가 죽으면 빈칸을 채워서 정한 지인들에게 보내라하였다. 평소에 노리코상을 잘아는 지인들은 그답다고 했다한다. 그 유언장은 영원한 작별의 인사를 슬프지않도록 하는 장치를 넣은 것 같지만 결과는 영영 떠난 것이기에 오히려 슬픔의 여운이 길었다. 시인은 80세에 작고하였고 시집의 수록된 시들은 어릴적의 누군가를 연모했던 시절, 괄괄했던 시절, 개구쟁이 시절 그 때 그시절 느꼈던 감정과 경험을 잘 담아냈다. 그래서 더 애틋하고 공감이 가고 미소가 지어진다. 참고로 윤동주 시인을 남다르게 보고 그의 시에 공감하여 일본문부과학성에 부탁해 일제에 저항하는 내용의 시를 교과서에 수록케 종용한 일은 노리코상이 얼마나 시인으로서 문학인으로서 중립적이고 정직하고 올바른 사람인지 보여주는 일화다. 각박한 콘크리트 상자에 부대끼는 현대인들에게 자연친화적이며 전원적인 감성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장담컨대, 그녀의 시가 독자들의 마음을 따뜻한 봄의 느낌처럼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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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단을 대표하는 이바라기 노리코 시인의 특별한 시집이 한권을 읽었습니다. 현대시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되는 「내가 가장 예뻤을 때」로 유명한 시인입니다. 이바라기 노리코는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시인이라고 합니다. 한국어를 직접 배웠을 뿐 아니라 동시대 한국 시인들의 시를 일본어로 번역하였고, 시와 수필을 통해 한국 문화를 알리기도 했다고 하니 왠지 시집에 애착이 가고 친숙한 기분이 듭니다. 하나더 놀라운 사실은 일본 교과서에 윤동주 시인의 시4편도 수록한 시인이라고 합니다. 아직은 제법 쌀쌀 하지만 시집과 함께 따뜻한 봄날을 기다리면서 읽은 시집입니다.
이바라기 노리코는 오사카에서 태어나 시 잡지 「시학」의 투고란 「시학 연구회」에 투고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두 편을 투고하였으며, 그 중 한 편인 「유소로운 노래」가 선자 무라노 시로 선정되어 1950년 9월호에 게재되기도 했으며 1976년부터 한국어를 배우시 시작해서 일본에 한국 현대시를 소개하는데 주력한 시인입니다. 이바라키 노리코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그녀가 32살 때에 20대 초기를 회상하며 쓴 시로서 일본의 국정교과서에도 실렸습니다. 일본에서는 꽤 유명한 시인이었나 봅니다.
온 거리가 대공습으로 와르르 무너진 건물 안에서 천정을 보았을 때 “파란 하늘 같은 것”이 보였다는 증언으로 시작하는 이 시에는 죽어가는 사람들, 전쟁에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 남자들이 등장합니다. 이 전쟁을 시인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단정 짓습니다. 남자도 흉내 내기 힘든 대담한 표현입니다. “비굴한 도시를 으스대며 쏘다녔다”는 표현처럼 그녀는 자유롭게 활보합니다. 마지막 연에 나오는 루오 역시 뒤늦게 명성을 얻은 할아버지 화가이다. 루오처럼 뒤늦게라도 청춘을 즐기고 싶다는 역설적 표현을 통해 시인은 역경을 이겨내는 긍정적인 노래로 이 시를 승화시키고 있습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거리는 꽈르릉하고 무너지고 생각도 못한 곳에서 파란 하늘 같은 것이 보이곤 했다
이바라기 노리코는 2006년에 세상을 떠나기 전 생전에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본 시는 희로애락 가운데 노가 없다. 우리나라 사람은 ‘노여움’이 많을까요? 일본에 대한 과거의 감정이 그렇지 않나 생각됩니다. 한국시에는 그 노가 있다.” 그리고 “일본에는 서정시인만 있다. 의미 심장한 말입니다. 전쟁을 같이 겪고 우리와 이웃해 비슷하다고 생각되었지만 시인이 이야기하는 점은 전혀 달랐습니다. 시인의 사회적 영향력도 한국에 비해 미약하다고 말한 냉철한 시인으로 일본 시인들을 향해 이렇게 거침없는 비판을 할 수 있는 지식인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과 교류하고 한국과 한글과 윤동주를 사랑한 가장 매력적인 일본의 여류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집은 독자가 시인을 처음 알고 접한 첫 시집입니다. 가장 유명한 시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시를 꼭 읽어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 나라는 전쟁에서 졌다 /이런 엉터리 없는 일이 있느냐고/ 블라우스의 소매를 걷어 올리고 비굴한 거리를 쏘다녔다.’ 내가 가장 예뻣을때가 반복되면서 반전을 주는 점이 재미있는 시입니다. 한국을 좋아해서 한국어를 10년이상 공부한 시인의 <이웃나라의 말의 숲>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시집을 많이 읽지 않는 요즘 스타북스에서 출간된 두권의 시집이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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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라기 노리코 시집''을 통해서 윤동주 시인의 시를 사랑했던 '이바라기 노리코'라는 일본 시인에 대해서 알게 되어 새로움과 감사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정성 뿐만 아니라 냉철함을 겸비한 시인에 대한 외경심을 가지고 있던 '이바라기 노리코'이기에 더욱 윤동주 시인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아서 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비판적 시각의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갖춘 시인에 대한 생각들을 해보게 만들어주는 '이바라기 노리코'! 그와 함께 일본의 여류시인으로 아름다운 시들로 국민적 정서를 아름답게 가꾼 장본인이었다는 내용에도 마음이 그대로 가는 것 같았습니다. '이바라기 노리코'의 대표적인 시들도 만나고 자신의 마음을 가득 채운 윤동주 시인의 시에 대한 감상과 감동의 탄성도 마음으로 느끼는 기분이었습니다. 뜨거운 마음과 정서, 거기다 비판적인 지식인으로서의 문학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 시인이 사랑한 윤동주 시인의 이야기까지 모두 생각하면서 '이바라기 노리코'의 아름다운 시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등을 느껴보게 되어서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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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몰랐던 이야기여서 더 보고 싶던 이야기를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큰 기쁨이자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시집 <이바라기 노리코>를 만나서 더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바라기 노리코는 '윤동주의 시를 일본 교과서에 수록한 국민 여류시인'으로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어떻게 일본 교과서에 우리 윤동주 시인의 시를 수록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만큼 윤동주 시인의 시를 사랑하고 한국인과 정서적으로 교류하고자 했던 이 분에 대해서 더 궁금증이 일어났습니다. 역사에 대해서도 시로 풀어내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이 독자의 마음에도 그대로 와닿는 듯해서 더 암송해보게 되는 좋은 시들이 많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