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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일상을 추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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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란 철학자가 탄생한데는 뒤에서 이를 묵묵히 지켜봐준 그르니에란 고마운 스승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비록 제자는 그 은혜를 다 값지도 못한채 스승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스승의 마음속엔 오랜도록 제자의 회색 그림자가 지워지질 않는다. 그래서 스승은 펜을 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런 맘으로 한자한자 제자를 써내려갔다. 카뮈란 청년을, 그리고 철학자가 된 카뮈를...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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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란 철학자가 탄생한데는 뒤에서 이를 묵묵히 지켜봐준 그르니에란 고마운 스승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비록 제자는 그 은혜를 다 값지도 못한채 스승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스승의 마음속엔 오랜도록 제자의 회색 그림자가 지워지질 않는다. 그래서 스승은 펜을 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런 맘으로 한자한자 제자를 써내려갔다. 카뮈란 청년을, 그리고 철학자가 된 카뮈를... 그가 이 책을 쓴 목적은 한가지다. '카뮈를 추억하기 위해서', 단지 그것 뿐이다. 이젠 추억으로 기억될 뿐인 제자에 관한 스승의 고백, 제자이지만 조심스러웠던 카뮈를 추억하는 그르니에의 마음엔 제자를 향한 따스함이 숨쉬고 있다. 불어엔 문외한이지만 민음사에서 출판된 네권의 그르니에 전집은 하나같이 문체가 미려했다. 그것은 본디 그르니에 글의 참맛이랄 수 있지만 번역의 공이 더 크다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른 세권에 비해 글이 가진 선율이 부드럽지 못하고 딱딱했다. 읽는 내내 부자연스럽고 조화롭지 못한 느낌을 받았다. 김화영 선생님이 번역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인상깊은구절]
그는 친척과 친구를 만족시키려 하면서도 이 고독을 어떻게든 지키고 싶어했다. 고독은 괴로움의 한 원인이지만 동시에 창작하는 이에게는 불가결한 것이기 때문이다.
m******0 2004.10.1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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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를 추억하며] 카뮈와 그의 스승이 나눈 내밀한 역사의 기록
"[카뮈를 추억하며] 카뮈와 그의 스승이 나눈 내밀한 역사의 기록" 내용보기
이 글은 아마도 카뮈의 갑작스런 죽음과 그러한 죽음 앞에서 제자이며 동시에 인생의 든든한 동반자이기도 했던 사람과 나눈 그르니에의 내밀한 우정의 기록이자, 아무런 꾸밈과 과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종의 넋두리이다.   장 그르니에는 수필이란 문학 장르가 예의 그러하듯 자신의 글에서 어떠한 체계와 작위도 허용치 않으며 물흐르듯 써내려간다. 단, 카뮈를 추억한다는 목적에
"[카뮈를 추억하며] 카뮈와 그의 스승이 나눈 내밀한 역사의 기록" 내용보기

이 글은 아마도 카뮈의 갑작스런 죽음과 그러한 죽음 앞에서 제자이며 동시에 인생의 든든한 동반자이기도 했던 사람과 나눈 그르니에의 내밀한 우정의 기록이자, 아무런 꾸밈과 과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종의 넋두리이다.

 

장 그르니에는 수필이란 문학 장르가 예의 그러하듯 자신의 글에서 어떠한 체계와 작위도 허용치 않으며 물흐르듯 써내려간다. 단, 카뮈를 추억한다는 목적에 있어서는 단일함과 일관성을 놓치지 않은 채 말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의 글을 따라 카뮈를 '가까이 느끼는' 데 있어서는 어떠한 내용적 부족함도 느낄 수 없다. 난 단지 그가 내면에 새겨놓은 카뮈와의 우정의 기록들을 글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리듬에 따라 감지하고 수용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리듬을 잘 탔을 때 찾아오는 한없는 공감과 그에 따르는 벅찬 감동을 가슴 한가득 끌어 안으면 족한 것이다.

 

어떤 글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큰 울림이 전해져 왔다는 것은 단순히 그 작가를 좋아한다는 표현만으로 그칠 수 없는 좀더 심층적인 수준의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윤리학에서는 옳고그름의 판단근거에 있어서 좋고나쁨이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음을 이론적으로 명시해두고 이를 '정의주의(emotivism)'로 명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윤리적인 판단에 특정 대상에 대한 호오의 감정이 개입되고 있음을 의미하며, 이는 판단이라는 과정이 오로지 이성에 의거해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서 및 감정 영역과도 깊게 개입되어 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여타의 작가들에게서도 그래왔지만 카뮈의 글을 읽고 나면 설명할 수 없는 공감과 동질감에 놀라워하곤 했고 그런 과정은 이 책을 읽는 내내에도 이어졌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는 내면의 심원한 공명에 괜스레 진지해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어린 시절에 이른바 교양 있는 환경에서 살지 못한 사람, 주의에서 책 읽는 것을 보지 못한 사람의 경우에, 오늘날 교양이라 불리는 것에 대한 존중, 아니 오히려 숭배라고 해야 할 어떤 태도가 더 강렬해지고 따라서 한없이 더 중요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법이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정신의 소산을 좀처럼 매춘의 대상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게다가 순전히 변덕 때문에 한 작가에서 다른 작가로 옮겨가는 일도 없을 뿐더러, 박학하다고 인정받고 싶어서 정신의 소산을 꼬리표에 따라 분류하고 진열대에 늘어놓지도 않는다."(157쪽)

 

카뮈의 글과 그의 행적이 만들어낸 온갖 기록들을 통해 내 자신이 점점 더 그와 가까워지고 숨쉬고 있음을 느끼고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지닌 세계관이 나의 그것과 어떠한 측면에서건, 수준에서건 조응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카뮈를 통해 나를, 나를 통해 카뮈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u***f 2009.10.13. 신고 공감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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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를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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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니에의 글에 만연된 "순수한 고독"에의 매혹은 "카뮈를 추억"하는 와중에도 쉬지 않는다. 그는 카뮈로부터 존재의 제일원리로서의 '고독'을 보았으며 그가 그 고독을 성공적으로 '승화'시키는 모습을 추억한다. 일찌기 아버지를 여의고 힘겨운 삶의 수레바퀴 속에 깔려 살아야 했던 카뮈는 그 스스로의 증언처럼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창작을 택했다." 창작은 갇혀버린 고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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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니에의 글에 만연된 "순수한 고독"에의 매혹은 "카뮈를 추억"하는 와중에도 쉬지 않는다. 그는 카뮈로부터 존재의 제일원리로서의 '고독'을 보았으며 그가 그 고독을 성공적으로 '승화'시키는 모습을 추억한다. 일찌기 아버지를 여의고 힘겨운 삶의 수레바퀴 속에 깔려 살아야 했던 카뮈는 그 스스로의 증언처럼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창작을 택했다." 창작은 갇혀버린 고립을 고독의 열림으로 인도하는 듯 하다. 고립은 범죄를 낳지만 고독은 "예술"을, 또는 생명의 예술적 단계랄 수 있는 "법열"을 낳는다. 카뮈는 삶의 가난과 비참 덕에 교양의 공식으로부터 자유로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로인해 그는 교양의 가치를 뿌리로부터 섭취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꼬리표달린 삶, 인증서 위주의 삶, 학위지향의 삶을 낳는 교양의 공식 대신 삶의 뿌리를 맛보는 교양의 진짜 힘을 터득했다. 대개 가난한 자들에게 예술은 헛깨비이지만 은혜롭게도 가난한 자들이 예술의 끈쩍끈쩍한 고갱이를 정면으로 만날 가능성이 더 크다. 즉 예술창작과 향유의 질적 고귀성은 가난한 자의 단박함과 순전성에 더 가까운 것이다. 카뮈를 추억하며....

[인상깊은구절]
대단히 검소함 - 취미가 매우 소박함 - 욕구가 거의 없음. 내가 식당에서 그와 함께 점심을 먹을 때, 그는 많이 먹지 않았다. 사실 그의 주된 식사는 저녁 식사였다. 아침에는 글을 썼고 오후에는 의무적인 일을 처리했으며, 저녁에는 기분전환에 시간을 보냈다. 어쨌든 그는 (작은 것이 아니라) 적은 것으로 만족했다. 화려함이나 축제를 좋아했따. 그러나 늘 그런 것은 아니었다. 많은 양도 안락도 그 자체로는 좋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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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그르니에로부터 듣는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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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각을 세웠던 사르트르의 눈에 비친 카뮈는 독선적이고 까다롭다. 신경질적이고 엉뚱한 곳에 화풀이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실제로 카뮈는 곁을 잘 주지 않는 성격인 듯하다. 아파서 결석한 카뮈을 방문한 선생 그르니에게 조차 퉁명스러웠다니 말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우정을 쌓던 사르트르와 카뮈의 관계가 단절된 데에는 시대적 상황과 함께 지식인으로서 라이벌관계인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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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립각을 세웠던 사르트르의 눈에 비친 카뮈는 독선적이고 까다롭다. 신경질적이고 엉뚱한 곳에 화풀이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실제로 카뮈는 곁을 잘 주지 않는 성격인 듯하다. 아파서 결석한 카뮈을 방문한 선생 그르니에게 조차 퉁명스러웠다니 말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우정을 쌓던 사르트르와 카뮈의 관계가 단절된 데에는 시대적 상황과 함께 지식인으로서 라이벌관계인 두 사람이 서로 자존심을 세우려했기 때문은 아닐까?

    사람에 대한 평가는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카위를 추억하며]를 읽으며 생각하게 된다. 책에는 열일곱의 카뮈가 자라온 불우한 환경과 내면의 상처를 보듬고 이해해 주었던 그르니에의 애틋함이 절절히 녹아있다. 그르니에가 선생자리를 추천했지만 카뮈는 일은 많고 봉급이 적었던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여느 선생 같았으면 감히 내가 추천해 준 자리를...’이라며 노여워했을 법도 하지만, 그르니에는 카뮈의 선택이 옳았다고 지지해준다.

    모든 위대한 작가가 그렇듯이 카뮈는 자신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켜 깊은 울림이 깃들어있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창작을 택했다는 카뮈에게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고 작가의 세계로 이끌어 준 사람이 바로 그르니에다. 그르니에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가난한 처지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카뮈의 침묵 안에 부당하게 상처받은 짐승의 울부짖음과 자존심으로 비춰지는 수줍음이 있음을 간파했다.

 

“....다만 나는 나 스스로에게 온 이 같은 행운을 기뻐할 뿐이다. 그 어누 누구보다도 적절한 시기에 스스로의 마음을 경도하고 스승을 얻고, 그리하여 여러 해 여러 작품들을 통하여 그 스승을 끊임없이 존경할 필요를 느꼈던 나 자신에게는 더 없이 좋은 행운이었다.”

- 장 그르니에 []중에서 알베르 카뮈의 서문

 

    존경과 감사, 사랑과 이해를 바탕으로 평생을 교류했던 스승과 제자사이가 부럽고, 상처 많은 카뮈가 장 그르니에같은 자애롭고 사려 깊은 선생을 만났다는 사실은 어쩐지 마음이 놓인다.

r****g 2014.09.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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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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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뮈를 추억함"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장 그르니에가 까뮈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 추억을 담담하게 기술한 책이다. 사실 나는 이런 쟝르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일까? 요즘 밤에 잠이 안오면 서재에서 종종 이런 류의 책을 꺼내 읽곤 한다. 그러고보면 자잘한 이야기를 조근거리는 그들의 세계가 나름대로 나와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독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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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뮈를 추억함"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장 그르니에가 까뮈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 추억을 담담하게 기술한 책이다. 사실 나는 이런 쟝르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일까? 요즘 밤에 잠이 안오면 서재에서 종종 이런 류의 책을 꺼내 읽곤 한다. 그러고보면 자잘한 이야기를 조근거리는 그들의 세계가 나름대로 나와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독자들에게 이런 독법을 권한다. 잠언은 잠 안오는 밤에 혼자서 조용히 읽을 것. 글을 쓴 저자들도 그런 쟝르의 글쓰기는 분명 밤에 혼자서 사색과 명상에 빠져 글을 썼을 것이다. 이 책은 까뮈와 그르니에의 진득한 우정을 보여주면서도 이상하게 외로움과 쓸쓸함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한 번쯤 읽어보면 자신의 내면을 게워내어 다시 살아가는 힘이 될 듯하다. 밤을 하얗게 지새우면서. 하얀 밤에 잠언을 듣다.
e****l 2001.12.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