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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너무 습진 곳은 아니니? 어제는 비가 왔는데, 비속에서 너를 처음 만나서 그런지 네가 묻힌 곳이 축축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영원한 신혼여행지에서 현식씨는 만났니? 벌써 오래 전에 만나, 이제 한 숨도 울컥하지는 않겠지.
안녕. 너를 만나러 가는 날은 무척 설레었어. 빨간 밤하늘에 펼쳐지는 광주 이야기라...나는 벌써부터 눈물이 날 채비를 하고 있었단다. 우습지? 그런데 막상 너를 만나니 눈물이 쉽게 안나오더라고. 너는 너무 생생해서 너무 진짜 같이 생생해서, 그냥 신파극 보듯 눈물이 안나고 괜히 거리를 두고 싶어지는 거야.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는 것은 너의 절규들, 너의 고백들이었어. 그러다가 하루쯤이 지나니까 연극의 구석구석의 풍경과 말들이 약효를 드러내더라고. 어금니에 박혀서 나오지 않는 딸기씨처럼 무언가 영 불편하고 괴롭더라. 눈앞에 너는 금새 없어져버렸지만 책속에 너는 영원히 살아있을 것 같어서 책을 읽었다. 아직도 딸기씨는 빠지지 않았지만 너에게 말을 걸고 싶었단다.
그러면서도 막상, 내가 숨터지게 공감한 것은 너와 현식씨의 구호보다는 바들바들 떨리는 무릎 붙들고 앉아 '누가 나 나가라고 안해주나' 목숨 건져주기를 기다리는 내 또래 남자 시민군들의 모습이었다. 내가 그때 그곳에 있었어봐야, 너만큼 못살고 방정맞게 그곳에 남아있었어도 결국 내 목숨 찾는다고 도망갔을 거라고 생각하니 니가 신경질 나도록 부럽더라. 너처럼 애처로운 사랑하고 싶어서. 너처럼 치열하게 광분할만한 시대를 짊어지는 숙명을 갖고 싶어서. 너처럼 절정을 지나 죽고 싶어서.
시대가 많이 변했다, 민정아. 뜨거운 피 가진 대학생들은 오월이면 목숨걸고 술 퍼마시는 축제를 열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장사를 하고 네가 부르짖던 '민주'는 우리들 중의 몇몇의 이름에나 있을까, 우리의 구호 속에서는 사라진지 오래. 아직도 평등하지 않은 세상, 아직도 싸울 일이 많은데 잘산다 착각하고, 나만 잘살자 경쟁하고 달려간다.
이게 아닌데, 이렇게 사는게 아닌데, 대학까지 와서 이러는게 아닌데 싶으면서도 그냥 쉽게 산다. 네 마지막 음성, '우리를 잊지 마세요' 하였는데 오월축제 너의 이름, 흥청거리는 캠퍼스 안쪽 켠에 간신히 붙어있을 뿐, 관심 두고 보는 학우도 몇 없다. 어떻하니, 민정아. 너 육신 난 곳, 너 혼 죽은 곳, '광주'는, 통곡할 것도 안타까운 것도 없고 피터지게 싸울 명분도 없는 우리에게 부러운 전투의 장소야. 5월의 대동제때마다 벽에 걸린 짓이겨진 얼굴을 볼 때마다 사실은 무서우면서도, 대모판에 나가서는 여경떴다고 실망하는 우리에게 '투쟁'과 '민주'의 허울은 너무 멋진 외출복이야.
그게 부끄러운지 몰랐다, 나. 너에게는 네가 절실하게 필요한 들불야학이 있고, 절박하게 써야할 선전문이 있고 싸워야할 아버지가 있고, 형이라고 부를 존경하는 선배가 있고, 오빠라고 부를 목숨 같은 연인이 있었는데, 나에게는 이렇다할 게 아무 것도 없다고 느껴졌어. 싸워서 이겨야 할게, 두고 두고 이기는 싸움을 할게 없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것은 정말, 허울좋은 외출복이었던 거지. 네가 겪었던 건 스스로 빛나기 위한 악세사리가 아니라, 갑자기 닥친 현실, 그 현실이 무서워서 달아나고 싶은데도 그러지 않았던 건 운명이 아니라 너의 흔들리듯 흔들리듯 흔들리지 않았던 청춘이 가진 힘이었던 거지.
광주를 지나온 사람들은 아무리 퍼내도 바닥이 드러나지 않는 장독을 지닌 것처럼 보였어. 술자리에서는 아무리 들이 부어도 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으로, 시에서는 아무리 쏟아내도 다 쓸 수 없는 감정의 도화선처럼 보였는데, 지나온 사람들이 아닌, 거기에 청춘을 꽂은 너 같은 사람들을 잊고 있었나 보다.
열심히 살아야 겠다. 민정아. 내가 염원하던 치열한 전투는 사실 내 안에 있는걸. 내가 이기지 못한 나의 이기(利己), 내가 벗어나지 못한 가벼움, 자만심과 싸우는 것. 잠자고 있니, 민정아. 오늘 밤 꿈에는 내 속으로 들어와 네 부글부글 끓던 청춘의 안타까움을 수혈해주렴. 아직도 끊임없이 헷갈리는 옳게 사는 것. 당당하게 사는 것. 살짝 귀띔해주렴. 지금은 해방된 나라, 그 먼 곳에서도 안녕. 安寧...
이천년 오월. 전대 78학번 민정이에게, 78생 숙대 97학번 태영이가. [인상깊은구절] 아, 가는 곳마다 계엄에 걸린 땅! 슬픈 내 청춘아 너는 어디에 서 있는가? 쇠파이프에 터져 피 흐르는 저 이마마저 내 눈에는 왜 이다지도 찬란한가? 차라리 끌려가는 자가 화려하다. 아. 누군가 물집 같은 내 청춘, 터뜨려주었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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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시인의 시는 그의 시집을 통해서나, 다른 잡문에 삽입되어 있는 글을 통해서 몇 차례 접해본 적이 있었다. 감성적이고 약간은 허무주의적인 냄새가 나는 그의 글(초기시는 정반대의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했다. 왜냐하면 잘 알려진 몇몇 시인들의 달콤하고 간지러운 사랑노래를 혐오하는 나의 문학적 편견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신문에서 야외연극(시극) 오월의 신부에 대한 기사가 황지우시인과 김광림 연출자, 그리고 배우들의 사진과 함께 실린 기사를 읽게되었다. 배우들이 터저나오는 울음때문에 대사연습을 하는데 애를 먹었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이책을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지만 그보다는, 5월 광주의 비극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고 그래서 더욱 다가가기 힘들어하고 심지어 알기 꺼려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에 오월의 신부를 주저없이 골랐던 것 같다.
시극이라는 용어(?)는 고대 그리스나 고대 로마의 문학가들이나 창작했던 고색창연한 막연한 느낌에 조금 어렵게 느꼈는데, 말그대로 극의 대사들이 시로 이루어진 것임을 처음 알았다. 말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문학의 양식이 시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시극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잘 알 수 있다. 참으로 다루기 힘든 주제인 5월의 광주를 시를 통해서 다가갈 수 있었던 건 참 좋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황지우 시인의 그 나약하게만 느껴졌던 이미지가 외유내강의 이미지로 바뀐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광주 민주화 항쟁을 잘 알아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것이 소중한 소득이었다. [인상깊은구절] 잘 가라, 내 사랑, 내사랑, 내 전부인 사람이여 내가 서 있는 쪽, 자꾸만 흐려지는 풍경 뒤돌아 보지 말고 잘가라, 내사랑 내 살아있는 날들, 그대 눈빛 앞에서 숨이 멈출 것 같은 절정을 지나왔으므로 나, 한세상 잘살았다 말하리 울면서 뒤돌아 보는 그대여 사랑은 견딜 수 없어서, 스스로 빛나는 것. |
| 80년 광주에 관한 수많은 글들이 있고 영화도 있고 연극도 나왔다. 저마다가 다 그 해를 다양한 각도와 관점에서 비추어주고 있다. 그 잔인하고도 슬펐던 기억들이 점점 사그라져 가는 지금, 어쩌면 이제는 진부하다고까지 생각할 지도 모르는 그 해의 기억을 황지우가 시극으로 내놓았다. 평소 그의 시를 그리 많이 읽어본 적도 없고 잘 이해하지도 못했지만 이 시극은 처음 잡는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내가 태어난 다음해 봄에 일어난 사건. 그때엔 아무것도 알지 못했지만 이제 조금 알게 된, 그리고 알아야만 할 일. 우리는 이 시극을 읽으며 바로 그때 그들과 함께 있게 된다. 지금 내 나이의 그들이 이루어낸 값진 희생과 졌지만 이긴 그 투쟁을 늘 기억할 것이다. |
| 여자의 일생에 있어서 가장 예쁘고 고운 모습인 신부가 보여주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봄의 진한 내음과 함께 오월의 신부는 그지없이 순결하고 청초하고 단아하며 티끌 없는 투명한 파란 하늘이다. 그런데 그 신부의 백옥 같이 맑은 살결에 선홍빛 피가 번진다. 이 책을 읽어 가는 내내 이런 느낌이었다. 너무나 선명한 붉은 핏빛. 내가 1980년의 참혹했던 광주를 처음 접한 것은 한창 민주화 운동이 뜨겁던 그 무렵 성당에서의 광주 항쟁 사진 전시회에서였다. 사진속의 처참한 광경에 소스라치게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결국 세월이 흘러 광주에서 시작된 민주화의 씨앗은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뜨거운 열기 속에서 꽃피어 군부 독재의 사슬은 끊어지고 자유라는 벅찬 공기를 호흡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펼치며 약간의 각오를 해야 했다. 어린 시절 경악했던 사진 속 그 장면들이 다시 되살아 날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희곡 형식으로 되어있다. 잘 나가는 시집으로 만난 적이 있는 황지우라는 꽤 이름 알려진 시인에 의해서 쓰여진 글이다. 희곡의 특성답게 현실감이 매우 뛰어 났다. 마치 그 비극의 날에 광주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 자체는 허구이지만 그 시절에 충분히 일어나고도 남았음직한 이야기이며 오히려 더 생생하게 역사의 비극을 증언해 주는 느낌이었다. 광천동 본당 주임신부였던 장신부의 독백과 미쳐버린 시민군 기획실장 허인호가 나오는 첫 장면은 과거의 비극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준다. 가난한 동네인 광천동에서 신부, 건달, 야학 교사, 여공 등 등장 인물들은 가난하지만 꿈이 있고 희망을 버리지 않으며 때로는 청춘의 사랑에 마음 아파하며 살아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이다. 그러나 난데없이 찾아온 계엄군의 군화 발에 그들의 평범한 일상은 파괴되고 만다. 들려오는 암울한 소식들로 공포에 휩싸이며, 죄 없이 죽어간 희생자의 주검 앞에서 흐느낀다. 이처럼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들을 폭도로, 빨갱이로 억울하게 몰아 부치는 독재정권의 서슬 속에서 그들은 무기를 들었다. 자신의 형제와 누이들이 무고하게 죽어갈때 택할 수밖에 없는 정당 방위였다. 군대가 국민을 지키기 위한 총과 총과 칼을 거꾸로 돌렸을때 등장 인룸들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사랑을 지키느냐 버리느냐, 계속 싸우느냐 협상하느냐, 남느냐 후퇴하느냐... 이 문제는 결국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등장 인물들은 갈등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선택해야 했고 자신의 신념을 따른다. 마지막 도청에서의 장면은 온 몸에 전율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경계에서 한발자국만 슬쩍 옆으로 내딛으면 충분히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하며 남아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남게 한 힘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광주를 빠져나갔던 시민군 선전부장 오민정을 아무 미련 없이 그 지옥 같은 광주로 돌아오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시민군 대변인인 김현식에 대한 사랑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한 듯 하다. 그것은 자신의 신념에 대한 신앙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도청에서 마지막 최후를 맞이했던 이들은 압제의 총과 칼 앞에서 세상 그 누구보다도 당당하고 자유로웠을 것이다. 그들은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했고 살아남는 사람들은 평생을 한 많은 죄인으로 살아가야 했다. 정작 그들은 죄인들이 아닌데도... 시인의 글답게 곳곳에 함축적인 표현들이 많았다. 이런 점 때문에 책장 넘기기가 마냥 쉽지만은 않았지만 행간 깊숙이 숨겨진 의미는 또 하나의 떨림이 되어 감동으로 다가왔다. 마치 머리 속에서 좋은 연극 한편이 공연되고 있는 듯 했다. 코러스로 표현된 장중한 대사나 주인공들의 생생한 말투와 행동은 장면 하나하나 손에 잡힐 듯하다. 오월의 비극은 아직도 계속 되고 있다. 다만 무관심 속에서 잊혀지고 있다. 아니 애써 잊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겪는 살아남은 자의 처절한 고뇌는 바로 우리의 고뇌이며 아픔이다. 지금 우리가 그나마 맛보고 있는 민주주의의 단 열매도 광주 영령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언제 오월의 신부를 찾아 망월동에 가서 아직 숭고한 희생을 잊지 않는 이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자식에게도 꼭 말해 주리라. 그 날, 시리도록 찬란하고 숭고한 핏빛을 발하던 오월의 신부에 대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