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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연결된 나로 살아가기 위하여, 이정일의 <소설 읽는 그리스도인>을 읽고
"타인과 연결된 나로 살아가기 위하여, 이정일의 <소설 읽는 그리스도인>을 읽고" 내용보기
청파동네에서 이정일 작가님은 자신의 왜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인생에 대한 깊은 슬픔 속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만나주셨는지를 나눠주셨다. 소설의 문장 하나 하나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고, 깨우침이었는지, 소설 안에서 상상을 하며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경험을 했다고 전했다. 남다른 감성과 민감함의 소유자임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멋진 작가로, 또 후배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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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동네에서 이정일 작가님은 자신의 왜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인생에 대한 깊은 슬픔 속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만나주셨는지를 나눠주셨다. 소설의 문장 하나 하나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고, 깨우침이었는지, 소설 안에서 상상을 하며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경험을 했다고 전했다. 남다른 감성과 민감함의 소유자임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멋진 작가로, 또 후배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로 살아가는 저자만을 보면, 그의 남다른 감성과 민감함이 그저 부럽기만 할 지 모르겠으나(특히 나처럼 둔한 사람이라면) 그러나 도리어 그런 특성 때문에 그는 무리 안에 들 수 없었고 외로웠다.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다는 것은 깊은 외로움이고 이 외로움은 우울로, 슬픔으로 전이된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의 내면에 가장 깊고도 주요하게 흐르는 감정은 슬픔이라고 했다. 나는 인생을 이해하는 가장 큰 키워드의 감정, 인생을 인생답게 하는 주효한 감정이 슬픔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슬픔을 주셨을까? 서녘으로 넘어가는 노을이 세상을 붉게 물들이며 사라질 때마다, 아름다움에서 느끼는 묘한 슬픔이 나를 휘감곤 한다.  일몰의 아름다움은 늘상 슬픔을 재해석하게 했다. 슬픔이 이렇게 아름다운 건 모순이라 느꼈지만 슬픔은 삶과 삶을 가장 잘 연결하는 끈일 수 있겠다, 슬픔이야말로 서로를 묶어주는 가장 강력한 접착제일 수 있겠다 싶어서, 그래서 노을이 저리도 아름다운가보다 했다.
이런 나의 생각은 그리 허황되지 않았는지, 저자 이정일은 자신의 슬픔으로부터 문학을 일구어냈고, 청파동네에서 경험했듯 소설이라는 공통분모로 사람들을 묶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슬픔의 사회화'라고 부르고 싶다. 

        사실 소설은 나에게 관심 밖의 영역이었다. 30대부터 40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20대부터 나는 열성적인 신앙인이었고 그 때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예수를 안다는 것은 인생의 답을 아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그래서 소설을 읽지 않았다. 소년과 청소년시절 꽤 많은 동화책과 소설을 읽었고, 남성 작가 중에는 이청준님을, 여성작가 중에는 박완서님을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날 박완서님의 <아주 오래된 농담>이란 책을 끝으로 소설은 그만 읽기로 마음 먹었다. 문제만 잔뜩 나열해 놓고 답을 주지 않는 소설이 얄미웠다고나 할까. 비로소 40대 중반의 나이에 들어서야 소설을 읽을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는 내 신앙에 일종의 지각변동이 일어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시 박완서님의 소설들을 꺼내 읽으며, 그녀가 인간의 내면을 얼마나 적나라하게 전시해놓았는지를 경험하며 혀를 내둘렀다.

       그 때 적어놓은 글이다.
"박완서님의 소설을 내리 세 권을 읽고나니,문학이 가져다주는 쓰나미가 이런 것인구나 싶다. 내가 지금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것들, 또 때로는 나의 심연을 외면하며 그럴 수밖에 없다며 치부하고 외면했던 것들을 다시 널어놓고 파헤쳐보고 싶은 욕구가 일어난다. 오늘같이 햇빛이 그 어떤 것이라도 감출 수 없을 것 같은 쨍쨍한 날, 널다란 마당에 이런 저런 빨래감을 널어놓고 살피고 싶은 마음이랄까. 어디에 묵은 때가 있는지 말이다"

       어쩌면 그 때 나는 <소설 읽는 그리스인>이라는 책에서 말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로의 첫 걸음마를 뗐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읽기는 새로운 생각과 부드러운 감성이 싹을 틔울 토양을 만드는 작업이고, 세상을 감지하는 더듬이 하나를 더 갖는 일이다. 소설은 우리가 날마다 직면하는 고된 일상에 위로를 주고 동시에 자신과 타인의 살아가는 삶의 맥락을 깊이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래서 소설을 읽을수록 우리의 시야는 넓어지고 삶은 풍성해질 뿐 아니라 나를 둘러싼 세계와 하나님에 관한 계시에도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52p)"

        소설은 자기 계발서처럼 우리에게 답을 주지 않는다. 도리어 우리에게 질문을 던져준다함이 맞을 것이다. <소설 읽는 그리스도인>에서도 자주 언급된 작품,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읽어보아도 그렇다. 낯설지 않은 익숙한 세계의 나는 신앙의 안전망 안에 기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침묵>의 로드리고나 기치지로의 모습을 보면서, 순교의 참혹한 현장 속에서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간접 경험하면서, 익숙하지 않는 세계에 던져진 나 자신을 목격한다. 내가 로드리고라면, 내가 기치지로라면? 그래서 질문하게 되는 것이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고통 앞에서 침묵하시는 하나님은 과연 살아계신 분이신가. 하나님의 침묵은 과연 사랑인가 유기인가, 등을...

          회의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번도 다른 세계를 열어보지 않은 일이다. 저자는 <배움의 발견> 등과 같은 소설(실화)의 예를 들어, 지나친 확신이 갖는 교조주의적 신앙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암시해준다. 나 안에 갇혀 있으면 나를 가장 잘 알 것 같지만, 자기 객관화를 거치지 않은 나란 무지하기 이를 데 없는 어리석음의 극치이겠다.  하여 나를 벗어난 세계를 엿보지 않는 사람은 결국 자신과 만나는 기회도 잃어버리고 만다. <소설 읽는 그리스도인>의 작가는 끊임없이 자신과 만나라고 말하고 있다.

"휴가 계획을  세우느라 고민해도 나다운 나로 산다는 게 뭘까 고민하지 않는다. 소설은 그런 삶에 안주하려는 나에게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게 하는데 그게 바로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타인이나 사건처럼 나도 이해의 대상이다 우리는 나를 만나야 한다(161p)"

      저자는 이 만남의 여정에서 '나'란 존재는 '심리적 죽음'을 경험한다고 한다. 이전의 타성에 젖어서 알지 못했던 세계의 나로부터 발돋움하는 국면, 그래서 변화하기 위해 맞닥뜨리는 여정에서의 '심리적 죽음' 말이다. 이 여정에서 나는 진짜 나와 직면하게 된다. 소설이 이런 여정을 돕는다고 저자는 매우 설득력있게 주장한다.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한 자는 누구나 약자'라고 한 은유작가의 말을 빌어, 결국 소설이 자기와 직면하고 자기의 언어를 갖게 하는데, 그래서 자기만의 세계를 갖는데 충실한 안내자가 된다고 알려준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실을 말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 관한 사실도 말할 수 없다'라는 칼로의 말을 인용해서 저자는 자기를 알고 자기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타인과 연결되기 위한 전초전임을 유추하게 한다.
자기만의 언어(또는 세계)를 마치 자기만의 성을 세우고 고립되었다고 착각하면 안된다. 자기 이해의 국면에  심리적 죽음이 포진하고 있듯, 누구든 좌절과 연약함의 현장을 맞닥뜨리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그래서 나는, 나에 대한 이해가 타인에 대한 이해로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비판적 사고로 갱생된 나의 세계의 반대편에는 휩쓸리고 몰개성적인 타인의 세계(클리셰)가 있다. 타인의 시선과 판단에 좌지 우지 않는 나는 비로소 씨앗이 될 수 있다. 나는 저자의 글이 이렇게 해석되었다. 이런 자아가 씨앗이 되어 심길 때, 그 씨앗 자체는 화려하고 탐스럽지 않지만, 그 씨앗의 열매는 '다른 사람의 인생 속에서 맺힌다'(238p)고.. 그래서 우리가 나로 살아가는 눈부신 인생을 살려면 이해관계가 얽혔을 때 자기에게 불리한 쪽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남들 눈에 사소하게 보여도 자기에겐 한없이 중요하게 느껴지는 가치관을 지킬 수 있어야(240p)' 한단다.

    '이 어려운 것을 소설이 해내지 말입니다'라고 시종일관, 이렇게 저렇게 얘기하고 있다. 

     

#나에게 키워드, 나로 살아가기 위한 소설읽기
#이웃을 읽기 위한 소설읽기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소설읽기
#성경을 읽는 눈을 열어주는 소설읽기
#씨앗을 만드는 소설읽기
#이정일 저자의 <소설 읽는 그리스도인> 강추
z******h 2024.03.02.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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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는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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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하는 신앙의 통로로 바라보게 해주는 책이다. 그리스도인이 왜 소설을 읽어야 하는지, 문학이 어떻게 삶의 감수성과 영성을 넓히는지  설득력 있게 풀어낸 점이 인상적이다. 신앙과 문학을 함께 고민하는 독자에게 특히 의미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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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하는 신앙의 통로로 바라보게 해주는 책이다. 그리스도인이 왜 소설을 읽어야 하는지, 문학이 어떻게 삶의 감수성과 영성을 넓히는지  설득력 있게 풀어낸 점이 인상적이다. 신앙과 문학을 함께 고민하는 독자에게 특히 의미 있는 책이다.

YES마니아 : 골드 t****e 2026.06.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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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는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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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통찰, 그리고 먼저 맛본 자의 혜안이 그의 신앙과 함께 여과 없이 잘 드러나 있다. 문학이 기독교 신앙을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체험하는 시작점으로 이 책을 삼아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저자의 궁극적인 바람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저자의 메시지에만 귀 기울이는 게 아니라 실제 삶에서 문학을 읽어나가면서 신앙의 깊이와 풍성함을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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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통찰, 그리고 먼저 맛본 자의 혜안이 그의 신앙과 함께 여과 없이 잘 드러나 있다. 문학이 기독교 신앙을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체험하는 시작점으로 이 책을 삼아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저자의 궁극적인 바람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저자의 메시지에만 귀 기울이는 게 아니라 실제 삶에서 문학을 읽어나가면서 신앙의 깊이와 풍성함을 직접 맛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c****4 2025.01.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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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설읽기 멘토이신 이정일목사님의 신간 [소설읽는 그리스도인]이 도착했다.오랜 시간 설렘으로 기다려온 책이라 무척 기쁘다.전작 [문학의 숲에서 하나님을 만난다]와 [문학은 어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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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설읽기 멘토이신 이정일목사님의 신간 [소설읽는 그리스도인]이 도착했다.오랜 시간 설렘으로 기다려온 책이라 무척 기쁘다.전작 [문학의 숲에서 하나님을 만난다]와 [문학은 어떻게 신앙을 더 깊게 만드는가]는 내가 읽은 책들중 역대급으로 많은 밑줄을 긋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엄청난 내공을 지닌 책들이었다.이번 책도 미리 볼펜을 준비해서 많은 밑줄을 그으며 감동 감탄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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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설읽기 멘토이신 이정일목사님의 신간 [소설읽는 그리스도인]이 도착했다.오랜 시간 설렘으로 기다려온 책이라 무척 기쁘다.전작 [문학의 숲에서 하나님을 만난다]와 [문학은 어떻게 신앙을 더 깊게 만드는가]는 내가 읽은 책들중 역대급으로 많은 밑줄을 긋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엄청난 내공을 지닌 책들이었다.이번 책도 미리 볼펜을 준비해서 많은 밑줄을 그으며 감동 감탄할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다.좋은 책은 읽기 전부터 마음을 행복하게 만든다.
i*****l 2024.05.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