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멸렬한 생의 한가운데에서 방황하는 소시민 화려한 수사나 기교가 넘치는 소설은 느끼하다. 차라리 냉정하고 엄격한 소설이 낫다. 물론 그 각 스타일 나름대로의 미학은 인정한다. 구성과 인물과 사건에 따라서 스타일이 결정된다. 하지만 그보다는 작가 개인의 성정에 의해 문체와 문장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김원우의 소설은 재미있는 사건이나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편이다. 한마디로 지루하다. 그의 주인공들은 멋대가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V 주말드라마나 일일극에 나올 법한 소시민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TV 드라마를 통해 익숙한 소시민의 모습은 아니다. 드라마의 소시민들은 현실 또는 미래에 대해서 기대를 하고, 조금은 선량한 행동을 하고, 어설픈 화해무드를 반복하며, 가족이기주의에 물들어 있으며, 때때로 소시민이란 위치를 즐기기까지도 한다. 한마디로 드라마의 소시민들은 뻔히 보이는 속물성을 감추려고 애쓴다. <세 자매="" 이야기="">의 화자인 영애는 서른 두 살로 두 아이의 어미이다. 그녀는 월급날이면 어김없이 열 두시를 넘기는 남편을 기다리며 교육 대학 동창생인 명혜를 떠올린다. 소설 첫 문장은 '또 명혜로부터 연락이 끊겼다'로 시작된다. 이 문장의 엄청난 복선을 나는 이 소설을 다 읽고나서야 깨달았다. 소설은 첫 문장이 잡혀야 한다, 첫 문장이 핵이다,라는 그 의미를 오래간만에 느끼게 한 소설이다. <세 자매="" 이야기="">란 첫째 명혜, 둘째 명미, 셋째 지혜를 비롯한 그녀들의 이혼한 부모의 얘기이다. 화자는 명혜를 통해서 그 자매들과 부모의 삶을 엿본다. 샌님처럼 조용하지만 꼼꼼하고 야문진 아버지는 덜렁대고 분수 없이 일만 벌리는 어머니의 빚 탕감을 핑계로 이혼을 요구하고 새 여자와 살림을 차려서 아들만 셋을 낳지만 세 딸과의 인연은 끊지 않는다. 그는 처음 기대와 달리 야물기 그지없는 젊은 아내와 학교 성적이 엉망인 아들들에게 날이 갈수록 실망을 느낀다. 가족 구성원이 바뀌었지만 그의 어깨는 그리 가벼워지지 않았고 행복해지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는 자기 앞가림을 하는 이쁘고 똑똑한 딸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종종 해줌으로써 애비 노릇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조금은 덜려는 인물이다. 돈 쓰기 좋아하고 인정에 헤프며 살림은 나 몰라라한 어머니는 계주 노릇으로 졸딱 망한 뒤 신발 가게를 차렸지만 이 또한 수완없이 덤비기만 해서 말아먹고 만다. 결국 그녀는 잇속이 빠른 명미가 결혼했을 때 식모와 다름없는 더부살이를 한다. 거기다가 명미네가 해외로 발령을 받아 나가게 되자 아이를 떠맡아 길러주게 된다. 사리판단이 어수룩한 어머니를 미워하고 찬찬한 아버지를 좋아하는 명혜는 순진하지만 독립심과 자기 주장이 강하며 맏딸로써의 책임감을 묵묵히 감수한다. 부모의 이혼 때문에 그녀는 연애에 대한 환상이나 기대를 일찌감치 접었고 결혼에 대해서는 더더욱 회의적이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선생 노릇 일 이년만에 결혼한 영애와 달리 명혜는 대학원 진학도 하고 나름의 삶을 개척해 나가지만 연애는 늘 삐걱이고 여전히 집안 걱정으로 살아가는 노처녀가 되어버린다. 작가는 세 자매 중에 한 사람을 택해서 소설을 이끌지 않고 영애를 화자로 설정해서 각 세대별 여성의 삶의 궤적을 보여준다. 남성 작가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성 심리를 묘사하는 그 세부가 놀랍게 치밀하며 공감 또한 불러일으킨다. 그와 내가 처음으로 그짓을 벌인 것은 그의 어머니가 하향한 바로 그날 밤이었다. 온갖 수치심과 조바심이 뒤범벅된 채로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나는 몸을 맡겼다. 내 몸은 내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내게 특정한 개인이 아니었다. 나도 특정한 여자가 아니었고, 특정한 목적으로만 소용되는 암컷이었다. 그는 대단히 씩씩하게 발기한 핏덩어리를 앞세우고 있는 익명의 어떤 사내일 뿐이었다. 그리고 성(性)에 대 해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권리만을 휘두르고 향유하는 단순한 수컷에 지나지 않았다. 낑낑거리면서, 어떤 말도 일부러 자제하면서 그 짓을 해치우고 나느 그는 엉망진항이 된 내 몸뚱아리와 그보다 더 어수선해진 내 심사를 내팽개치고 벌거숭이 몸을 잔뜩 웅숭거리며 방을 빠져나갔다. 허망한 짓거리였다. 화장실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말갛게 천장을 노려보면서 누워 있었다. 아마도 그때만큼 내 의식이 또록또록했던 적은 일찍이 없어지 싶고, 그때만큼 내 의식이 갈피를 잡지 못한 적도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66p 27줄~ 67p 10줄 그러저럭 성실하고 무던한 남편과 별 탈 없이 크는 두 아이를 키우며 안온한 생활을 영위해온 영애는 명혜를 통해서 자기 삶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곱씹어 보고 뒤돌아본다. 영애는 남편과 시댁의 권위에 무력하게 살아가는 자기의 삶이 명혜의 고달프지만 의지가 반영된 삶에 비해서 허위가 많다는 것도 조금씩 조금씩 들추어보기 시작한다. <그림 밖의="" 풍경="">과 <임지로 가는="" 길="">의 주인공들 또한 자기를 둘러싼 혈연 지연 등의 관계와 인물들 속에서 속세적이랄 수 있는 행동과 사고를 하면서 살아가지만 때때로 그 부도덕함과 오만스러움에 움찔 놀라기도 한다. 이들은 현실과 미래가 변하리라고 기대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다. 순간순간 밀려오는 그 허망함과 거짓됨에 남 몰래 몸서리를 치면서도 의연하게 대개의 소시민처럼 살아간다. 작가가 그들을 통해 보여준 것, 말하려는 것은 소시민의 속물적 추악함이 아니라 그들 나름대로의 번민과 방황이며 평생을 그리 살리라는 예언이다. 그러나 그 기약할 수 없는 세대의 끝에는 변화가 기다리고 있다. 물론 변화는 그리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 오랜 세월 속에서 천천히 쌓여가고 그 켜가 다져지면서 조용히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나는 이 소설집을 보고나서 번민과 방황을 하는 생의 의미를 새삼 되새겨 보았다. (*)임지로>그림>세>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