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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러버] 나의 미국 인문 기행
"[북클러버] 나의 미국 인문 기행" 내용보기
서경식 선생님의 책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읽은 후부터 저자의 열성적인 팬이 되어 하나씩 찾아 읽고 있었다.그런데 가장 최근에 출간된 나의 미국 인문 기행이 마지막 유작이라는 것을 알고 너무 안타깝고 아쉬웠다.코로나 기간을 특히나 힘들게 겪으신 것 같았고, 필체에 많이 지치셨다는 느낌을 받았다.p47 '2016년의 뉴욕, 트럼프의 노골적인 인종차별과 전쟁 도발이 먹구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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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선생님의 책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읽은 후부터 저자의 열성적인 팬이 되어 하나씩 찾아 읽고 있었다.
그런데 가장 최근에 출간된 나의 미국 인문 기행이 마지막 유작이라는 것을 알고 너무 안타깝고 아쉬웠다.

코로나 기간을 특히나 힘들게 겪으신 것 같았고, 필체에 많이 지치셨다는 느낌을 받았다.

p47 '2016년의 뉴욕, 트럼프의 노골적인 인종차별과 전쟁 도발이 먹구름처럼 세계에 나지막이 드리워지고 있다."

이 지침은 어쩌면, 집필 당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감, 지식인으로서의 책임감과 문제의식으로 심적인 고통을 더 느끼셨던건 아닐까 싶다.
2024년 또다시 트럼프의 당선을 우려하게 된 지금, "설마 그가 대통령이 또 되는 일은 없겠지"라고 사람들은 중얼거리지만
예상을 뒤엎는, 불길한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우리는 한번 겪은 바 있으니...
서경식 선생님이 살아계셨다면 아마 더 큰 허탈감으로 충격으로 집필 자체를 중단하셨을지도...  
한편으로는 오히려 그래서 더욱 집필에 몰두하셨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통해서 미국 유명 화가들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 
c*******m 2024.07.28.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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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늘 깨어있다는 것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늘 깨어있다는 것" 내용보기
지난해 말 서경식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하게 됐다. 선생님의 소식을 접한 후 나의 젊은 시절, 한창 열정이 넘쳐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그 시절의 ‘젊디 젊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그 때 내가 그토록 치열하게 살고 했던 부분들은 30여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변해왔는지, 다른 사람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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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서경식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하게 됐다. 선생님의 소식을 접한 후 나의 젊은 시절, 한창 열정이 넘쳐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그 시절의 ‘젊디 젊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때 내가 그토록 치열하게 살고 했던 부분들은 30여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변해왔는지, 다른 사람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기 보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강력한 실천 만을 고집스럽게 밀어붙였던 그 시절의 ‘시퍼렇던 나’는 지금 어떠한 색을 띄고 있는지, 애써 드러내지 않고 숨겨두었던 나의 그 모습이 계속 겹쳐진다.

지적 호기심일지 아니면 같은 처지를 겪는 연대일지, 늘 ‘날이 바짝 서있던’ 대학 시절 선생님의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접했었다. 생각과는 달리 다소 전문적인 미술적 지식과 견해가 필요했었고, 그리고 선생님의 사유나 감각에 미치지도 못하는 인식의 수준으로 헉헉대며 겨우겨우 책장을 끝까지 넘기기에 급급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당장 두 형이 정권의 탄압에 의해 수감돼 있는 상황에서 ‘너무 한가하고’, ‘너무 동떨어진’ 사고가 아닌가 철없던 시절 그때의 ‘나’는 선생님을 그렇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저 나의 오만한 생각과 나의 편협한 판단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재단했던 그 시절의 부끄러움이 다시금 떠오른다. 진정한 성찰이 결여된 오만한 지성, 길게 보지 못하는 조급함, 함께하는 존재들에 대한 무심함, 실제 행동과 말이 상이한 적도 많았던 이중성,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 대한 끝없는 관대함까지 그 시절의 나는 치열하게 산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허위와 오만, 아집으로 가득 찬 그런 상태였다.

선생님의 선종에 부끄러웠던 지난 날의 나를 진정으로 돌아보고, 사과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에 대해 사과하며 진심 어린 용서를 구하고, 다시는 그런 오만함과 편협함을 드러내지 않겠다고 나 스스로 다짐해 본다.
가슴에 응어리진 限과 가득 찬 울분을 거친 감정의 소리로 표현하지 않고, 선생님은 늘 한번 더 고민하고 생각하며 부드럽지만 날카롭게 드러내셨다. 그러한 덤덤함과 담대함이 더 가슴을 요동치게 하고, 더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감정까지 솟아오르게 하는 힘이리라.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서경식의 감각’이라고 변명하면서, 부질없지만 그가 떠난 자리에서 광부가 갱도 안으로 들고 들어간다는 카나리아의 이야기를 뼈아프게 기억한다. (…) 선생은 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경고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재일조선인과 자신의 글을 카나리아에 빗댔다. <옮긴이의 말 中>

故 리영희 선생님과 함께 나의 젊은 날을, 치열하게 살아가고자 했던 내 청춘의 시절을 그럼에도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게 해주신 서경식 선생님의 마지막 글을 함께 하며, 그럼에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선생님이 던져주신 ‘화두’를 받아 안아본다.

“저는 지금도 툭하면 여행을 떠나곤 합니다만, 그것은 ‘거주’를 찾아 헤매는 방랑과도 같은 것이죠. (…) 하지만 여행을 떠날 수 없게 된다 한들,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것입니다. 저에게는 일상의 ‘거주’ 또한 여행 같은 것이니까요.” <머리말 中>

어딘가에 속하고, 내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하는 정체성이야말로 나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평생을 방랑자와 같은 심정으로, 늘 ‘거주’할 대상을 찾아 헤매셨던 선생님의 그 행보가 다시금 떠오른다.

“나라는 인간의 중요한 일부를 이루고 있는, 그런 절실한 기억이다. 그 기억들은 내 속에 있는 ‘선한 아메리카’의 기억과도 연결된다.”

형들의 구명운동을 위해 자유의 희망의 상징이던 미국을 방문했던 지난 날의 기억과 함께 30년 만에 다시 찾은 미국.
자본주의의 최정점에서 민주주의와 자유의 상징이던 나라가 ‘다름’에 대한 차별이 횡행하고, 자기중심주의, 불관용 등이 널리 퍼진 곳이 되어 버린 미국. 그럼에도 선생님은 ‘선한 아메리카’에 대한 희망, 그 속에서 정의와 ‘진실’의 목소리를 이야기하는 희망의 요소들을 또 다시 발견하시고자 하는 그 애틋함이 느껴진다.

“러시아의 유대인 마을에서 무일푼으로 파리로 건너온 생 수틴(Chaim Soutine, 1894~1943). 그 거칠고 불온하지만 섬세했던 인물의 초상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언의 대화를 나눴던 「수틴의 초상」은 그 후로 내 인생을 통틀어서 잊을 수 없는 작품이 되었다.”

“마치 무성영화의 슬로모션이라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 데자뷔 ……. 그때 강한 기시감이 덮쳐왔다. 동시에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의 작품 「나이트 호크스」가 뇌리에 또렷하게 떠올랐다. 지금 내 모습은 그 그림 속 남자와 같지는 않을까.”

산업화가 한창 진행되던 1930년대 미국.
그 화려함 속에 감춰진 사람들의 허망함과 상실감, 공허함 등을 표현했던 ‘에드워드 호퍼’는 지금 이 시대에도 충분한 공감을 전해주고 있다. 지난해 말 우리나라에서도 특별전이 열렸는데, 깊이 있게 호퍼를 만나볼 수 있었다. 호퍼가 그렸던 그 시대, 선생님이 처음 미국을 방문했던 1980년대, 그리고 내가 호퍼의 작품을 관심있게 지켜보는 202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 감정은 나도 모르는 연대 의식이 생길 만큼 거의 비슷한 것 같다.
이것 또한 예술 작품이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다가오고, 또한 공감하게 하는 힘일 것이다.

“얼마나 힘겨운 삶이었을까, 얼마나 불운했을까. (…)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나 같은 인간에게도 살아가는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 그녀를 동정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이 위로받고 싶었던 것뿐이지는 않았을까.”

“뜻밖에 발을 멈춘 채 넋 놓고 본 작품이 바로 조지 벨로스(George Bellows, 1882~1925)의 「이 클럽의 두 회원」이었다. 단순히 주먹질을 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이를 구경거리로 삼아 도박을 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닌 너무나도 명백한 어리석음과 잔혹함. 그것은 억울한 정치범 여덟 명을 순식간에 처형해버리는 행위, 야당 정치가를 공항에서 사살하는 행위와도 어딘가 서로 통한다.”

어찌보면 사람이 가장 잔인하다고 할 수 있다. 남의 고통을 아무렇지도 않게 낄낄거리며 즐길 수 있고, 남의 아픔을 더 아프게 파헤치며 대리만족과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고, 남의 슬픔과 실패를 이용해 나의 성공의 발판으로 삼고 있는 등 인간의 ‘선한 의지’와 ‘평화와 사랑의 마음’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요즘이다.

“자본가에게는 ‘국가를 초월한 관대한 이해심을 보여줄 기회’였고, 디에고 리베라 입장에서는 자본주의 심장부에 자신의 ‘(공산주의적인) 예술관을 침투시킬 기회’로 파악되었기 때문이다. (…) 1986년에 디트로이트 미술관에서 만났던 리베라의 벽화. (…) 리베라는 공업화의 진전에 앞서 사회주의의 꿈을 그렸다. 이는 조국 멕시코의 발전과 민중해방의 꿈이기도 했다. (…) 세계 각지에서 해방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리베라의 작품은 지금도 말을 건네고 있다. (…) 사상가, 정치가로서는 패배자인지 모르지만, 예술가로서 디에고 리베라는 다른 평가를 받아야만 한다.”

사회주의 혁명과 조국의 발전을 위해 사상가로서, 정치가로서 한평생을 활동했던 리베라를 접한 것은 ‘프리다 칼로’의 남편으로서였다.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끝끝내 절망하지 않고 “마지막 날,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견딜 수 있다.”고 자신이 말한 것처럼, 자신의 희망과 사랑을 위해 삶 자체를 투쟁처럼 그녀의 슬픔에 깊이 공감하며 리베라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완전히 그들의 삶을 이해하기는 힘들겠지만, 자본주의의 최첨병이던 미국에서 사회주의자로서 대중에게 침투하려 했던 리베라의 노력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개인적인 생활과 ‘프리다 칼로’에 대한 상처는 결코 잊지 못하겠지만.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 1525~1569)이 그린 「죽음의 승리」는 그저 자연재해로서의 역병만을 묘사한 작품이 아니다. 인간은 재난과 역병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에 의해 살해당하는 존재다. (…) ‘대재앙’은 비단 역병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 혼란에서 시작되어 자기중심주의와 불관용의 정신이 만연하고 파시즘이 대두하는 그런 시대를 일컫는다.”

“그 위대함은, 참화 한가운데서 철저하게 이를 응시하며 기록하고자 했던 정신에서 기인한다. (…) 인간을 둘러싼 물음이 ‘죽음’과 깊이 결부된 이상, 이 시점에서 쓰고 그리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복잡하고 곤란한 상황 속에서 ‘인간’을 다시 바라보게끔 하는 정신적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휴머니즘(인문주의)의 발전과 심화가 페스트의 참화와 함께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분연히 불의와 부조리에 맞서 싸운다는 것. 현실에서의 핍박과 어려움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정의와 진리를 위해 나서는 삶. 그러한 삶을 살았던, 살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한다.

“선진국이 간섭을 정당화하는 것이 예전에는 ‘종교’를 내걸며 이루어져 왔지만 현대는 ‘인권’이나 ‘민주주의’를 앞세우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월러스틴에 따르면, 서구를 중심으로 한 범유럽 세계의 지도자와 주류 미디어, 체제 친화적 지식인의 레토릭에는 자신의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보편주의에 호소하려는 언사가 넘쳐난다. 그들이 ‘타자(상대적으로 빈곤하며 발전도상에 있는 국가와 국민)’와 관련한 정책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특히 그러하다.”

“얼마나 지적이며 도발적인 작품인가!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작품을 만드는 아티스트가 여전히 존재한다. 이를 뉴욕 한복판에서 공개하는 미술관이 있다. 미국에도 아직은 기대할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다.”

“‘선한 아메리카’ 역시 여전히 분투 중이다. (…) 트럼프 대통령이 내린 입국금지조치에 대한 항의 의사를 담아 모마는 해당 국가 출신인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했다. 전시 해설에는 “환대와 자유라는 궁극의 가치가 이 미술관과 미국에게 불가결하다는 점을 확실히 드러내기 위해 전시를 기획했다.”라는 내용이 쓰여 있다. 「게르니카」의 망명지였던 모마다운 기상이 여기에도 살아 있다.”

“예술은 언제나 어떤 악몽의 시대에도 관용, 연대, 공감을 추구하려는 인문 정신이 살아 있음을 가르쳐준다. 예술에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예술가들은 때로는 정치가들이나 사상가들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의도를 표출한다. 그것이 비록 지금의 현실에서 탄압과 핍박과 고통을 수반할지라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글로, 그림으로, 음악으로, 때로는 직접적인 활동으로 그렇게 자신들의 의지와 생각을 적극적으로 펼치며 사회의 정의와 진실과 평화와 공동의 행복을 위해 분투한다.

그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청년 시절 학생운동의 언저리에서 사회 정의를 위해 맞서 싸웠다고 무용담처럼 이야기하는 내 수준에서는 도저히 감당이 안될 무거움과 묵직함이다. 사실 당시의 나는 스스로 닥쳐오는 현실이 너무 무서웠고, 그려갈 미래가 불안했고, 특히 ‘내가 계속 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 또한 비겁함의 또 다른 모습이겠지만.

“가능한 한 좋은 그림을 그리려고 마음을 다잡고 꾸준히 노력해 온 결과, 전 생애의 무게를 걸고 다시 한번 얘기해두자. 너는 단순히 코로를 취급하는 화상과는 다르다. (……) 너는 내가 아는 한 그런 화상이 아니다. 나는 네가 현실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지니고 행동하면서 그에 따라 방침을 정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건만, 그런데 너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 <빈센트 반 고흐의 ‘유서’ 中>

“벤샨은 보통 ‘사회적 리얼리즘’ 작가로 불린다. 하지만 (…) 현실의 충실한 재현이라기보다 마치 어린아이의 그림 같은 감촉과 조형 감각을 보여준다. (…) 슬픔이나 노여움 같은 감정이 지닌 본질을 이렇게 따뜻하게 전할 수 있다니 …… 예술가는 항상 오만함에 맞서는 기개와, 시퍼렇게 살아있는 권력을 향한 모멸의 태도를 갖춘 자라고 벤 샨은 이야기했다.” <「현대미술 제1권 벤 샨」 中>

위대한 예술가들이 존경받는 것은 그들의 작품이 뛰어나서도 있겠지만, 그들의 행동과 삶이 또한 작품과 함께해서 일 것이다. 나의 길을 묵묵히, 꾸준히 해 나간다는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다.

“나는 생각한다. 그런 날까지 살아남는다면, 수많은 아픔 속에서도 적어도 한 줌의 기쁨을 지닌 채 지난날을 회상할 수 있는 “사랑으로 가득 찬” 기억을 갖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허무나 냉소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나가고 싶다, 싸워나가고 싶다.”

“사람은 승리를 약속받았기에 싸우는 것이 아니다. 넘쳐나는 불의가 승리하기 때문에 정의에 대해 묻고, 허위가 뒤덮고 있기에 진실을 위해 싸운다. (…) 모어, 모문화, 역사로부터 추방된 수많은 디아스포라가 지구상을 유랑하고 있다.”

“여러 아이덴티티를 껴안고 살아가는 상태는 자기가 분열된 상태를 뜻한다. 복수의 아이덴티티가 서로 대립할 때, 자기 분열의 아픔은 점점 커진다. (…) 성과 이름을 둘러싼 어색함을 이해할 수 없는 다수자는 이런 아픔 또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이라는 국가가 ‘선한 아메리카’의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기대를 놓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 적어도 내 젊은 나날들, 그 암흑 시대에 ‘선한 아메리카’는 나를 격려하며 힘을 불어넣어주던 존재였다.”

“내 정신을 더 소진시킨 것은 그런 상상 같은 세계와, 내 주위에서 펼쳐지는 ‘일상생활’ 사이의 괴리였다. 나에게는 그런 ‘일상생활’이 허구였고, 어두운 상상 속의 감옥이나 형장이야말로 진실이었다. (…) 그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병들고 괴로워하는 상황. 진실은 거기에 있다.”

해를 거듭하며 여전히 진행 중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대한 폭격, 그리고 더욱 커지는 자기중심주의와 자국 우선주의, 약자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폭력, 상식과 진리와 정의가 손쉽게 부정되는 상황 등 여전히 이 시대는 선생님께서 평생을 고민하셨던 화두가 현재 진행 중이다.

“세계 곳곳에서 천박함이나 비속함과는 거리가 먼, 진실을 계속 얘기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우리의 벗이다.” <「진실을 계속 이야기하자」 中>

선생님의 말씀처럼 다시 한번 ‘진실’을 말하고, ‘정의’를 위해 내 위치에서 싸워 나가고, 누군가의 독점적인 행복이 아닌 모두의 연대적인 평화와 행복을 위해 내 스스로의 투쟁을 해 나가보려 한다. 내 삶을 내가 증거하고, 내가 믿는 것을 나의 행동과 말이 증거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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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님의 통찰력있는 글을 좋아한다. 미국 사는 내게 이 책은 여러모로 의미있었다. 몰랐던 것도 많이 알게되고 식견이 넓어진 느낌? 이제 작고하셔셔 서경식님의 새글들을 못본다니 너무 아쉽다. 기회되면 인문 기행으로 나온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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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님의 통찰력있는 글을 좋아한다. 미국 사는 내게 이 책은 여러모로 의미있었다. 몰랐던 것도 많이 알게되고 식견이 넓어진 느낌? 이제 작고하셔셔 서경식님의 새글들을 못본다니 너무 아쉽다. 기회되면 인문 기행으로 나온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겠다. 
e******4 2024.08.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