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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거니, 거식하다거니
"가자거니, 거식하다거니" 내용보기
문신 5[지은이 윤흥길, 펴낸 곳 문학동네, 444쪽]를 읽고 가자거니,가기가 좀 거식하다거니, 순금과의 승강이질이 이어진다.더 정확히 말하자면, 손자 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며느리 눈치보여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 관촌댁.천석꾼 영감은 그 세도가한테 처음부터 끝까지 모멸당하고, 그 수모에 대한앙갚음으로 영감은 위풍당당한 경부 나리 대신 만만한 이연실에게 천석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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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5[지은이 윤흥길, 펴낸 곳 문학동네, 444쪽]를 읽고

가자거니,

가기가 좀 거식하다거니, 순금과의 승강이질이 이어진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손자 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며느리 눈치

보여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 관촌댁.

천석꾼 영감은 그 세도가한테 처음부터 끝까지 모멸당하고, 그 수모에 대한

앙갚음으로 영감은 위풍당당한 경부 나리 대신 만만한 이연실에게 천석꾼

집안 출입 금지령을 내렸다.

그 바람에 사부인과 안면 트고 정식으로 인사 나눌 기회는 단 한 차례도

갖지 못했다.

아직도 생면부지 매일반인 안사돈인데, 손자 얻은 연후에야 비로소 그 손자

핑곗거리 삼아 맞대면한다는 건 사실 이만저만 거식한 노릇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막상 만나자마자 아이고, 사부인이다.

강보에 둘둘 말린 채 잠들어 있는 손주를 안아 보는 데도 성공한다.

“아이고, 요게 뉘시단가? 오매, 오매, 내 새깽이네! 금쪽같은 손주를 보듬는

호강을 다 누리네그랴!” 하면서 연실에게는 이삿짐 싸서 시방 당장 본가로

들어오라 일단 역정도 부리고 본다.

웬일인가.

초례상이 두 눈 씻고 봐도 관촌댁 시야에 안 들어오는 것이었다.

작은 소반에, 찬물 한 대접과 촛대 한 쌍만이 가년스럽게 올라앉아 있다.

궁상맞은 수준의 파격적 혼례를 상상도 못했던 터라 관촌댁은 남우세스러워

차마 낯을 못 들 지경이다.

더구나 머슴 신춘복인데.

그래도 순금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사십 세 미만의 배우자 없는 여성을 징용 대상으로 삼는다는, 여자 정신대

근로령이 공포되어, 그걸 피했으니 말이다.

요 며칠은 춘복 씨 훈장님 노릇에 흠뻑 빠져 있다.

“엊저녁에는 두 가지 말을 하시드라.”

“정말 그러셨어요? 두 가지 그 말이 뭐였어요?”

“여보, 배 고파. 먹을 것 조깨 줘.”

짧은 완성형 문장 하나 익히도록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그러나, 삽시간에 온 집안이 아니, 온 동네가 난리다.

천석꾼 데릴사위가 징용에 뽑혀서 이역만리 타지로 떠나게 되었다네, 하는

소문이 그새 짜하게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부병자자!

아, 순금은 자기 손으로 춘복 씨 몸에 직접 새겨줄 결심을 한다.

처음부터 염두에 둔 글자는 ‘봄’이다.

봄이 아니고는 신춘복이나 춘풍이란 이름 둘 다 설명되지 않는 까닭이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견갑골과 겨드랑이 사이 공간에 ‘봄’을 그린다.

첫 바느질이 피부를 뚫는 순간, 춘복 씨는 비명을 내지르며 벌떡 일어선다.

돗바늘 묶음으로 찌를 때마다 새빨간 핏물이 방울방울 맺혀 흘러내린다.

간소하다 못해 초라하게 느껴지는 환송식이 끝나자, 천막 안 국민복들이

퇴장하고 덩치 커다란 자동차 한 대가 입장했고, 울지 않는 응소자는

춘복 씨가 유일한 듯했다.

그렇게 속절없는 이별이 되고 만다.

이날 평생.

그렇다, 부용에게 배낙철은 악몽과도 같은 존재다.

독자인 나도 너무 뻔뻔하여 열받는데도, 부용은 낙철을 찾아간다.

“야, 이 악덕 지주 아들놈아!” 하는 호통 소리가 귓전을 때리더니, 낙철은

부용의 왼팔을 덥석 낚아챈다.

그리고 물어뜯는다.

최명배 영감처럼, 귀용처럼, 부용도 물어뜯기고 만다.

이빨 끝이 살 뚫고 뼈마디까지 으드득 파고드는 듯한 느낌이다.

하마터면 꽥하고 비명까지 내지를 뻔했지만 참았다.

이모가 뜯어말려도 물어뜯고 있었다.

좀 이상하다 싶었는지, 눈을 지릅떠 부용을 올려다본다.

양쪽 어금니 꽉 문 채 낙철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맞섰다.

이제껏 낙철을 대할 적마다 속절없이 맛봐야만 했던 열패감의 수렁에서

부용을 단숨에 건져 올려준 상처가 남는다.

소련의 대일 선전포고와 히로시마 피폭 이후 사흘 만인 8월 9일 나가사끼에 투하된 두 번째 원자폭탄 소식이 뒤따라 돌았다.

양복쟁이 사내, 배낙철이 성큼 대문간에 들어서서는 “나여, 형!”하고 불렀다.

일본이 항복하고 말았다고, 다짜고짜 말했다.

내가 부러 방안 풍수 우리 부용 형 만나려 온 거라고 했다.

일제 행형 당국을 속일 작정으로 작전상 부러 미친개 흉내를 냈다고 했다.

천황의 항복선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단코 덜하지 않은 충격이다.

“제 일신 안보 허겄다고 주변 사람들 닥치는 대로 희생물 삼다니.

너란 인간은 참말로 상종도 못헐 독종이구나!

너 맨치로 지독헌 인간은 이날 평생에 첨 본다.”

“내가 전비를 뉘우치고 가일층 분발혀서 사회주의 운동에 목숨 바쳐 헌신 허는 것이라고 믿고 있어.”

부용은 다시 무슨 말로 섣불리 대꾸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 네가 도모하는 사업에서 우리 귀용이는 제발 놓아달라는 말만

하였다.

귀용에게 해방은......해방의 의미는......

불안할 뿐이다.

천석꾼 영감 내외가 뒤늦게 받아들인 해방의 의미는 걸음마 연습보다 더도

덜도 아닌 바로 그것이다.

해방이 바로 걸음마고 걸음마가 다름 아닌 해방이다.

부용 자신에게 해방은 일차적으로 고향 땅에 사립학교 설립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게 되었음을, 이차적으로 아들 천년쇠를 조선식 본명으로 출생신고

하고 호적에 올릴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해방 후의 산서는, 배낙철 패거리가 부르는 조선독립만세와 황대장 패거리가

부르는 대한독립만세 소리가 뒤섞여 읍내를 휩쓸고 다닌다.

결국에는.

또다시 배낙철로 귀결된다.

가슴 철렁 내려앉게 만드는 이야기가 황대장 입에서 흘러나온다.

시방 친일 부역자 반동 지주를 처단하려는 음모가 일각에서 꾸며지고

있다는 거였다.

치안대장 감투 쓰고 즈네들 세상 만났다고 미쳐 날뛰는 배낙철 일당이라고

했다.

또한 학교 건축 자금 확보를 위해 전답들을 시세보다 싼 가격으로 매물로

내놓지만 팔리지 않는다.

사회주의 세상이 오면 제일 먼저 토지의 무상 분배가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산서 바닥에 쫙 깔려 있어서다.

해방 직후 혼란은 갈수록 더 악화하는 추세이고, 두메산골 산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뒷이야기]

윤흥길 소설가는 소풍 삼아 과거 속을 배회하다 우연히 얻어걸린 것이

이 소설의 첫 번째 모티브가 되는 부병자자 풍습이라고 고백한다.

두 번째 모티브로 맞닥뜨린 것은 ‘밟아도 아리랑’이란다.

일제강점기 말, 강제 동원으로 전쟁터나 산업 현장으로 끌려간

조선인 징용자들이, 모지락스레 버티면서 노상 입에 달고

살다시피 한 노래였단다.

지금도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던 사람들의 노래...

YES마니아 : 플래티넘 j*****5 2024.04.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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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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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웅장한 소설은 페이지마다 사람들이 부딪쳐서 지껄이고 따지면서 이야기가 들끓는다. 사람들은 시대에 맞서거나 야합하거나 외면한다. 어떠한 시대에도 삶은 가지런할 수가 없는데, 이 소설은 수많은 지류와 역류를 거두면서 파행하는 강물의 흐름을 보여준다.윤흥길의 글은 사람의 존재와 사람의 생활, 그 양쪽을 끌어안으면서 이 끌어안기에서 분출하는 언어의 활력을 보여준다. 인
"문신" 내용보기

이 웅장한 소설은 페이지마다 사람들이 부딪쳐서 지껄이고 따지면서 이야기가 들끓는다. 사람들은 시대에 맞서거나 야합하거나 외면한다. 어떠한 시대에도 삶은 가지런할 수가 없는데, 이 소설은 수많은 지류와 역류를 거두면서 파행하는 강물의 흐름을 보여준다.

윤흥길의 글은 사람의 존재와 사람의 생활, 그 양쪽을 끌어안으면서 이 끌어안기에서 분출하는 언어의 활력을 보여준다. 인간의 비루함이나 시대의 야만성에 대해서 쓸 때도 그의 글은 언어의 활기에 가득차 있다. 이 활기는 생활의 구체성에서 나온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b******y 2024.03.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