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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석 신부님을 기억하시나요. 《울지마톤즈 학교》는 이태석 신부님으로부터 배우는 네 개의 메시지를 담은 책이에요. 저자는 KBS PD로 30년 가까이 100여 편이 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그 중 하나가 2010년 4월 11일 방영된 KBS 스페셜 <수단의 슈바이이처, 이태석 신부> 라는 짧은 다큐멘터리였는데 엄청난 호응을 받으며 후속편이 방영되었고, 영화 <울지마 톤즈>를 제작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구수환 PD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서 이태석 신부님을 생전에 만난 적도 없을뿐더러 전혀 들어본 적도 없었는데, 2010년 1월 초 우연히 인터넷에 한 신부의 선종을 알리는 기사를 보게 되었고 순전히 호기심으로 살펴보게 되었대요. 수단의 슈바이처, 의사 출신 사제, 아프리카를 자원한 최초의 한국인 신부에 대해 취재하면서 그분이 살아온 삶 속에는 방송을 하면서 정말 만들고 싶었던 세상, 하고 싶었던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걸 느꼈고, 전율했다고 해요. 주인공이 생존해 있지 않아 전국 각지를 돌며 지인들을 만났고, 지인 중 생전의 모습을 찍어 놓은 테이프가 있어서 영상자료를 구할 수 있었는데 그 영상을 보며 이태석 신부와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대요. 수많은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제작해온 베테랑 PD가 이태석 신부로 인해 삶의 전환점에 섰고, 이태석의 사랑과 헌신을 알리기 위해 전국적인 강연과 함께 사단법인 이태석재단 이사장으로서 열심히 활동 중이라고 하네요. 이 책은 이태석 신부님이 세상에 남긴 사랑과 나눔의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세상에 나왔어요. 저자는 영화 <울지마 톤즈>를 제작하면서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은 사람으로 우리 사회의 리더들을 꼽았어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은 진정성에서 나온다고,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천박하고 부끄러운 것인지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는 소감을 말했는데, 진심으로 공감했어요.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영화와 책을 꼭 봐야 할 시기라고 생각해요. 세상이 각박해지는 건 우리 마음이 메말랐기 때문이에요. "돈, 권력, 출세, 욕망, 이기심으로 가득한 우리에게 그는 삶으로 사랑을 보여 주었다. 인간이 인간에게 꽃이 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그것을 목도하고 있었다." (26p)라는 저자의 고백처럼 이태석 신부님의 삶은 그 자체가 감동이며 꽃이네요. 이태석 신부님이 강연할 때마다 부르던 노래가 <슈쿠란 바바>인데 아프리카 딩카말로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뜻이래요. 2005년 북수단과 남수단이 평화협정에 사인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감격스러워 이 노래를 만들었다는데, 한반도 평화의 날에 이 노래를 부를 수 있으면 좋겠네요. 마지막으로 이태석 신부님이 중학교 3학년 때 가사를 쓰고 작곡한 성가 <묵상>의 가사를 읽으면서 다시금 뭉클했네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작은 밀알이 되어 서로 사랑하자고. "십자가 앞에 꿇어 주께 물었네 /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 / 총부리 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이들을 왜 당신은 보고만 있냐고 / 눈물을 흘리면서 주께 물었네 / 세상엔 죄인들과 닫힌 감옥이 있어야만 하고 인간은 고통 속에서 번민해야 하느냐고 / 조용한 침묵 속에서 주 말씀하셨지 / 사랑, 사랑, 사랑 오직 서로 사랑하라고 / 난 영원히 기도하리라 / 세계평화 위해 / 난 사랑하리라 내 모든 것 바쳐." (53p)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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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석 신부님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인 울지마톤즈를 2010년에 처음 접하였을때 정말 감동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이였던 이태석 신부님은 의사이자 사제로써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교육 및 의료활동을 펼치시며 많은 이들을 도우셨고 몇십년이 지난 지금도 신부님을 기억하며 그 뜻을 따르며 살고 있는 이들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영화를 아직 추억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인 저에게 울지마 톤즈 학교는 너무 반가운 책입니다. ![]() 당시 영화를 제작하였던 분께서 영화 제작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 이태석 신부님의 어머니께서 말씀해주신 이야기들, 그리고 현재 이태석 신부님이 계시던 톤즈에 방문하고 신부님을 기억하는 이들을 만난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모아 그 때의 감동을 더더욱 추억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뉴스에서 이태석 신부님의 도움을 받아 의대에 진학하였던 제자들중에 전문의에 최종합격하였다는 뉴스를 접하였는데 이 책과 더불어 여전히 남아있는 이태석 신부의 흔적과 발자취를 생각해보게됩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리뷰어클럽 #리뷰어클럽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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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중학교에서 학교를 살리기 위한 특별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태석의 삶을 통해 내일을 열다, 행복을 잇다,희망을 잇다.' 행사의 슬로건입니다. 이태석 신부의 교육에 대한 열정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찾자는 의미를 답고 있습니다. (-5-) 유엔 비행기가 남수단 와우에 착륙한다는 남자 승무원의 멘트가 들렸다. 그런데 창밖을 내다보는 순간 "아!"하는 소리와 함께 눈을 의심했다.아스팔트가 아니었다. 활주로는 황토를 다져 만든 흙길이었다.착륙하다 잘못되면 어떡할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행기가 착륙하자 공항은 붉은 먼지로 뒤덮였다. (-68-) 톤즈 주민에게 들은 이야기는 충격 그 자체이다.일곱 살짜리 아이까지 군대에 끌려갔다. 아이들에게 주어진 첫 임무는 가장 친한 사람을 죽이고 끌려갔다. 아이들에게 주어진 첫 임무는 가장 친한 사람을 죽이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열 살이 되면 사격 훈련을 받고 전쟁터에 나갔다. 부모가 살해 당해 복수를 위해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 그곳에서 죽음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굶어 죽고 싸우다 죽고 총에 맞아 죽는 모습을 매일 같이 지켜보며 컸다. 슬퍼할 감정도 없고 그럴 여유도 없다. 그런데 한 외국인 신부가 떠났다고 아이들이 서럽게 울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모두가 기적이라고 했다. (-130-) 사람들은 떳떳하게 말한다., 위선을 벗어던지라고 세상에 외친다. 세상에 소리치게 한 사람. 그가 바로 이태석 신부였다.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고 좋아만 할 때가 아니었다.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다.리더십과 관련된 권위 있는 책을 읽으면서 이태석 신부의 삶을 비교했다. 그리고 또 한 번 충격을 받는다. 그 많은 책들과 전문가들이 말하는 리더의 역할과 모습, 그것을 <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210-) "집 고쳐 편안히 살면 뭐 합니까. 내 새끼 먹여야지. 내 새끼 먹여 살려야지.내가 불편하게 살면 되고 내가 좀 덜 먹으면 되고." 재차 울었다. 몸도 불편한데 편안하게 살면 좋지 않냐고. "풍족하게 살면 못쓰지. 내가 무슨 내가 노력을 했다고. 국가 혜택만 보고 사는데 뭘 풍족하게 살아.이만하면 됐지." (-251-) 이태석 신부는 2010. 1월 14일 세상을 떠났다. 남수단 톤즈(Tonj)에 선교사제로 파견되어 구호, 의료, 교육, 사목 활동에 힘써왔다.이태석 신부는 남수단 사람들이 살기 위한 기본적인 원칙과 의료,교육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그의 헌신적인 봉사 덕분에, 남수단 사회의 문제들을 남수단 사람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여기서 놓칠 수 없는 것,내전 상태인 남수단 아이들, 물을 길어 오기 위해서, 두 발로 걸어다녔던 오랜 시간들이 있다. 그 모습을 이태석 신부는 연민으로 바라보았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나섰다. 희망을 잇고, 행복을 잇고, 삶을 이었다.특히 남수단 지역의 열악한 의료시설, 도로 시설, 말라리아로 어린 나이에 사망했던 아픔도 존재한다. 그는 스스로 공부를 하고 , 한국의 의사들에게 직접 의료행위,응급조치를 배워서, 남수단에서 간단한 응급 의료행위도 하게 된다. 그는 섬김의 리더십, 희생의 리더십, 겸손의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가 사망한 이후, 그의 교육 혜택를 누렸던 아이들은 성장하여, 수십 명의 의사가 되었다. 다시 남수단으로 돌아가서, 그곳에 아이들이 살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조성하게 된다. 이태석 신부가 걸어온 길, 이태석 신드롬, 남수단 한센인 마을에서 살아오면서,그들의 아픔을 어루 만지고 눈물 흘리며, 위로했다. 이태석 신부가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진실하고,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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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인간에게 꽃이 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그것을 목도 하고 있었다. 흥분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분이 살아온 삶 속에는 방송을 하면서 정말 만들고 싶었던 세상, 하고 싶었던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26
이태석 신부로부터 배우는 네 개의 메시지, 울지마톤즈 학교! 작가는 이태석 신부와 생전에 직접 만나거나 그 분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었지만, 이태석 신부와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KBS PD로 30년 가까이 세상의 부조리와 부정의를 파헤쳐온 작가가 방송 아이템을 찾다가 우연히 인터넷 기사를 보게 되었고 그렇게 호기심으로 시작된 인연은 그를 머나먼 아프리카 남수단으로 향하게 했고, 톤즈에서 이태석 신부의 헌신적이고 인간 적인 삶과 그 곳 사람들에게 남긴 사랑과 헌신을 느낄 수 있었다. 이태석 신부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모습, 기억,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역시 가슴 뭉클하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태석 신부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의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을 찾아가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다. 묻고 싶었다.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났습니까? 왜 꼭 아프리카여야 했나요? 당신을 지켜준 힘은 무엇이었습니까? 생전에 만났다면 정말 묻고 싶은 질문이다. -30 의사로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명예와 성공이 보장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제의 길을 선택했고, 기아와 전쟁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를 자원한 최초의 한국인 신부가 되었고 공포에 떨고 절망하는 주민들에게 평화의 중요성을 가르쳤고 함께 학교와 병원을 세웠다. 이태석 신부는 자신의 꿈을 실천하고 현실로 만들었다.
작가는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남은 영상들을 바탕으로 이태석 신부의 삶, 깊은 감동과 울림을 주는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이태석 신부의 자취를따라 주인을 잃은 병원과 자동차, 그를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사람 들이 있는 톤즈까지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그 길을 나선 작가에게서 사명감마저 느껴졌다. 특히 이태석 신부가 톤즈로 다시 가져갈 물건이라며 남긴 가방, 유품이 되어버린 가방 이야기를 읽을 때는 끝내 참았던 눈물이 왈칵 터져버렸다. 전쟁과 가난으로 희망을 잃은 아이들에게 미래, 새로운 세상을 알려주었고 꿈을 꾸고 환한 웃음을 찾아주었다. 이태석 신부가 남긴 유산, 그가 우리에게, 세상에 남긴 메시지를 다시금 새겨본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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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울지마톤즈 학교>의 저자 구수환 PD는 이미 <울지마톤즈>를 영화로 제작해 故 이태석 신부님의 섬김과 희생과 사랑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나 역시도 그 영화를 보며 신부님의 모습을 통해 깊은 감명을 받았고 많은 눈물을 흘렸다. 생전에 그분을 만나 뵙거나 그분에 대해 직접 들어본 적이 없었음에도 영화 한 편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는 이타적인 사랑에는 뜨거운 울림이 있었다. 남수단 톤즈에 선교 사제로 파견되어 구호, 의료, 교육, 사목활동에 자신의 온 삶을 투신했던 이태석 신부님. 그의 헌신적인 봉사와 사랑은 현지인들을 진심으로 감화시켰고 천주교인들 뿐만 아니라 타종교인들과 무종교인들에게까지도 가슴 따뜻한 감동을 주었다. 이태석 신부님의 사랑에는 어떠한 힘이 있기에, 세상을 떠난지 어느덧 14년이 지났음에도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신부님을 그리워하며 가슴속에 간직하고 살아가는 걸까? "모두의 눈물이 한 사람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울지마톤즈 학교>의 저자인 구수환 PD가 이태석 신부님과 인연이 닿은 건 단순한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연히 방송 소재거리를 찾던 중, 이태석 신부님의 선종을 알리는 기사를 보게 되었고, 왜 이분이 뉴스의 주인공이 됐을까? 라는 궁금증에 그는 무작정 남수단의 톤즈로 떠난다. 오랜 내전으로 수십만의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읾었고, 남은 이들조차 극심한 가난과 고통 속에 살아가는 그곳. 그곳에서 구수환 PD는 10년 동안 사랑과 나눔과 섬김을 몸소 실천했던 이태석 신부님의 삶을 조명하게 된다. 한 사제의 삶에 대해 오래도록 잊지 못하고 빠져드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섬기는 나눔의 삶을 온몸으로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왜 사람들은 '이태석' 이라는 그의 이름 석 자에 무너지는 것일까? 그는 환자를 치료하기보다 아픈 마음을 위로해주는 의사였기 때문이다. 이태석 신부가 있는 곳은 평화의 나라였으며 그의 사랑은 절대적인 사랑이었다. 이제 신부님의 몸은 그곳을 떠났지만 그분이 남긴 사랑은 톤즈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히 남아 있었다. 전쟁과 가난밖에 없는 곳에 찾아와 자신들을 위해 애쓰는 신부님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그분을 믿고 따랐다. 그리고 아이들과 톤즈 사람들은 신부님에게서 희망을 보았다.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랑. 그가 뿌린 사랑의 씨앗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아름답게 활짝 피었고 그 꽃은 영원히 남아 있었다. 사랑은 결코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겉으로 모든 사랑이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서만 그 깊이를 알 수 있을 뿐이다. 그 누구보다도 받는 사람은 그걸 안다. 이태석 신부님의 삶이 하나의 종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이유도 바로 그의 삶이 구현하고 있는 것이 사랑과 헌신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토록 거룩하고도 위대한 분과 동시대를 함께 숨 쉬며 살았음에 감사하다. 점점 냉혹해지고 무심해지는 세상에서 이태석 신부님의 이타적이며 헌신적인 나눔과 사랑은 우리에게 무엇이 진정으로 소중한 것인지를 알려준다. 저자가 이태석 신부님께 묻고 싶었던 말이자 나 역시 신부님께 궁금했던 말을 끝으로 서평을 마무리한다.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났습니까? 왜 꼭 아프리카여야 했나요? 당신을 지켜준 힘은 무엇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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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를 읽다가 전혀 구수하지 않은 구수환 PD의 이력이 놀랐다. 무모할 정도로 도전적인 행보는 故 이태석 신부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는 그는 남은 생을 한 사제가 전한 네 개의 메시지, '참을 수 없는 이타심' '죽음을 잊은 용기' '헌신적인 실천' '섬기는 마음'을 세상에 알리는데 전념하고 있다 한다. 故 이태석 신부를 잘 모른다. 개봉했던 <울지마 톤즈>도 TV 방영한 다큐멘터리도 보지 못했다. 그냥 아프리카 어디에서 봉사하다가 죽었다더라 정도로만 흘려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마음이 쓰였다. 내용은 어려운 가르침도 없고 이해 못 할 난해한 철학도 없다. 그런데도 눈앞이 자꾸 흐려지는 통에 책 한 장 넘기는 게 쉽지 않더니 결국 터져버렸다. <묵상> 때문에. 그 노래를 입에 달고 살았던 때가 있었다.
난데없이 목이 부러져 보통의 삶을 살 수 없게 되고 십수 년을 재활에 전념했다. 그 덕에 어설프게나마 직립보행이 가능해지자 경계인이 됐다.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시선에 예리한 날을 세워야 살 수 있었다. 그때 가끔 다니던 성당 청년부 행사에서 우연히 귀에 꽂힌 노래가 묵상이다. 갓등 중창단의 <내 발을 씻기신 예수> 앨범 중 한 곡이었다. 견디기 힘들 때 흥얼거리던 노래가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다. 그때의 나 역시 매일 눈물로 그분께 질문했었다. 다만 세계 평화가 아니라 왜 하필 나냐고 원망을 쏟아 냈었다. 펄펄 날던 스무 살 내 날개를 왜 꺾어야만 했냐고. 내게 세계 평화는 중요하지 않았지만 이 노래로 얼마간 시원하게 울 수 있었다.
내전으로 서로 죽이겠다고 총부리를 겨누던 이들이 적군 아군 가리지 않고 사제 앞에서는 길을 잃고 헤매는 순한 양이 돼서 웃고 떠들었다는 이야기가 신화처럼 들린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현신한 것이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종교적 신념을 떠나 사람이 사람으로 사람답게 대우하는 것, 삶이 결핍으로 뒤덮여 있더라도 그저 불쌍함만으로 동정하지 않는, 그렇게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사람으로 대하는 사제는 톤즈 사람들에게는 분명 그랬을지도 모른다.
도통 사는 게 즐거울 것이 없다고, 회사를 그만 다니고 싶다고 징징거리던 시간이 머리에서 쿵 소리가 나고 난데없이 부끄러움으로 가득 찼다. 복지 현장, 그것도 장판이라는 장애인복지를 십 년을 넘게 하고 있으면서도 단 한 번이라도 기쁜 마음으로 남을 위해 한 일이 뭐라도 있던가. 기쁨은 고사하고 웃음기 띤 진심이 있었나. 어지러워 눈물 났다.
한센인을 생각하는 이 신부의 마음을 통해 대한민국 복지 현실을 꼬집는 저자의 일침이 그래서 더 마음 쓰였다. 나는 누구고 무얼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 것인지. 마음이 아팠다. 아버지가 죽어도 절대 울지 않는 톤즈 사람들에게 피부색도 다른 한 사제의 죽음이 어떤 의미였는지 더듬어 가는 내용은 옆에서 생생하게 직관하는 것 같았다. 마치 톤즈의 통곡이 들리는 듯했다.
이어지는 '이태석 리더십' 내용 중 경청과 관련해 정치인들 낯짝 두꺼운 이야기에 공감이 훅 밀려들었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요즘 정치인들이 복지관을 습격하듯 예고 없이 방문하는데 수행원 둘셋은 기본으로 딸려 온다. 그저 표심에만 관심 있는 정치인들은 이렇게 예고 없이 들이닥쳐 악수 한 번에 명함 한 장 돌리고 잽싸게 빠져나가는 일이 얼마나 무례한 행동인지 모른다. 선거철만 되면 매번 반복되는 정치인들의 이런 작태는 리더십이라곤 개미 오줌만큼도 없다. 이들에게 이태석 리더십을 배우라 명령하고 싶다. 이 책은 한 종교인에 얽힌 이야기로만 보기에는 많이 아쉬운 책이다.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존중하고 대해야 하는지, 그 안에서 어떤 신뢰와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리더십에 관한 책이자 인생 지침서다. 개인주의로 포장된 이기주의가 판치는 현실에서 오만가지 깨달음을 준다. 강력 추천한다. #울지마톤즈학교 #이태석신부 #구수환 #북루덴스 #서평 #책리뷰 #휴먼에세이 #인문 #리더십 #에세이추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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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보았던 예전의 극장판 다들 눈시울이 벌개지고 나는 우느라 일어설수도없었던 그날이 떠올랐다. 특정 종교가아닌 사랑. 그것을 가르친 휴머니즘 이태석 신부님의 리더십이 그리운 요즘이다. 사랑과 전하는 메세지로 의대생의 졸업과 바뀌어져가는 톤즈 앞으로 계속 기대된다. 사람이란 무릇.. 발자취가 남겨져야하는법 이태석신부가 걸어간 모는길의 결과가 보여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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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석 신부님을 <울지마 톤즈> 영화로 먼저 알게 되었다. 그분의 이야기를 책 서평을 만나게 되니 두근 두근 뛰는 가슴 멈출 수가 없다. 난 천주교인이지만 한번씩 하느님은 과연 존재하는 분일까? 가끔 의문이 들곤한다. 그럴때 마다 난 성당의 신부님을 바라본다. 이 세상의 하느님이 모든 사람을 돌 볼수가 없어 사제 즉 신부님들을 보내어 하느님의 존재를 알지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그 찰나, <울지마 톤즈> 이태석 신부님 이야기를 책으로 접하는데 삶이 왜 그리 예수님과 닮았는지. 영화를 볼때 선한영향력이 뇌리에 남았다면 책으로 읽을땐 그 분의 생각이 마음에 남아 첫장을 열때부터 닫을때 까지 이 뭉클함 쉬아 가라 않지 않는다. 이태석 신부로부터 배우는 네가지 메세지. 1부의 이야기는 어떠한 성장 과정을 거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신부님이 되기까지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 또 어떻게 신부가 되어 아프리카로 가게 되었는지를 담았다. 2부는 아프리카로 가서 그분이 남김 업적. 직업이 원래 의사였으니 한세병 환자를 돌보는 의사이자. 글을 못배운 사람들의 선생님이자.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선교활동을 하는 신부님이자. 이 글에서 그의 어머님은 그분은 팔방미인이라 말해요. 음악이면 음악.공부면 공부. 못하는게 없을 정도로 다재 다능 했으니깐요. 이 글 안에 <묵상> 이라는 신부님의 자작곡이 있는데 가사를 글로 읽고 유투브로 들으니 그 분의 삶에 한걸음 다가가 기분이었다.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우고 누군가의 관심을 못 받던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는 그분이야 말로 톤즈지역의 진정한 하느님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3부는 이글이 어떻게 글로 영화로 나오게 되었는지. 이 글을 적은 구수환 피디가 이태석 신부님을 만난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글을 담았다. 저런 오지에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짜증부터 내는나로선 어떻게 저런 삶을 8년이나 이어 갈 수 있었을까? 그냥 신부님이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더라. 4부는 이태석의 리더쉽 & 감사하고 섬기는 마음을 담았다. 실로 그분이 남긴 영향력은 대단하다. 오죽하면 영국의 알톤 경이 북한에도 <울지마 톤즈> 영화를 넘겨줬을 정도라니. 이거해라 저거해라 말이 아닌 진정한 실천으로 몸소 보여준 리더쉽. 그분은 여기 없지만 그분의 생각은 구수환 피디로 인해 영화로 책으로 널리 널리 퍼질것이다. 이분이 정확히 어떤 분인지 알게 해주고 지금 나에게 필요한 이태석 신부님의 헌신적인 삶을 기억하며 천주교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 갈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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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 실천, 교만보다는 겸손, 과시보다는 헌신의 중요함을 알려준 이태석 신부의 삶" 처음엔 '울지마톤즈'가 뭘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표지를 보고 이태석 신부에 대한 이야기라는 건 어느 정도 짐작했지만, 솔직히 그가 누구인지조차 몰랐기에, 궁금증은 더 커져만 갔다. 그리고 이 책을 쓴 저자를 따라 이태석 신부의 삶을 돌아보게 되면서 마침내 그가 세상에 남긴 선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참을 수 없는 이타심’, ‘죽음을 잊은 용기’, ‘절실하고 헌신적인 실천’, ‘감사하며 섬기는 마음’이라는 네 가지 메시지를 통해, 이태석 신부의 삶과 그가 남긴 깊은 정신을 함께 전한다. 구수환 피디는 우연한 계기로 이태석 신부를 알게 되고, 호기심에 그의 삶을 뒤쫓기 시작한다. 그러다 점차 이태석 신부의 헌신과 사랑에 깊이 매료되어, 그의 삶을 재조명하는 TV 프로그램과 영화를 제작하게 된다. 그는 이를 위해 전쟁 중인 아프리카 남수단을 찾았고, 그곳에서 이태석 신부가 남긴 마지막 사랑과 헌신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이태석 신부의 어머님께 마지막 유품을 전달하고, 사정상 함께하지 못한 톤즈 사람들에게도 그의 마지막을 전하며 모두가 함께 작별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준다. ===== 구수환 피디가 이태석 신부를 알게 된 계기 ===== 시작은 호기심이었다. 수단의 슈바이처, 의사 출신 사제, 아프리카를 자원한 최초의 한국인 신분. 주인공의 내력을 살펴보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는 그저 한 사람의 슬픈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나를 꾸짖고 있었다. 아니, 세상에 대한 준엄한 꾸짖음인지도 몰랐다. 돈, 권력, 출세, 욕망 이기심으로 가득한 우리에게 그는 삶으로 사랑을 보여 주었다. 전국 각지를 돌며 이태석 신부와 가까이 지내던 분들을 만났다. 기억은 곧 눈물로 이어졌다. 모두의 눈물이 한 사람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이태석 신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왜 사람들은 그의 이름 석 자에 무너지는 것일까?' 내가 만난 사람들처럼 나도 이태석 신부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 만약 이태석 신부를 만난다면 하고 싶은 질문 ===== 이태석 신부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의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을 찾아가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다. 묻고 싶었다.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났습니까? 왜 꼭 아프리카여야 했나요? 당신을 지켜준 힘은 무엇이었습니까? 생전에 만났다면 정말 묻고 싶은 질문이다. ===== 이태석 신부의 가족관계 ===== 이태석 신부는 부산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10남매 중 아홉째로 태어났다. 열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생활이 막막해진 어머니는 자갈치 시장에서 옷도 팔고 수선을 해주며 악착같이 일했다. 이태석 신부와 맏형은 12년 터울로, 밤늦게 돌아오는 어머니를 대신해 어린 태석을 돌봐준 것은 누나들의 몫이었다. ===== 이태석 신부가 '신부'라는 꿈을 꾸게 된 계기 ===== 이태석 신부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가난 때문에 영화 구경은 엄두도 못 내던 시절, 동네 성당에서 영화를 보여 준다는 소식을 듣고 형제는 한걸음에 달렸다. 영화는 하와이의 외딴섬에서 한센병 환자를 돌보다 그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 한 사제의 이야기였다. 바로 다미안 신부의 이야기로, 그는 16년 동안 한센인을 위해 온전히 자신을 바쳤다. 신부 스스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선교사라고 이야기하는 그는 2009년 로마교황청에 의해 성인으로 추대된다. 그런 다미안 신부의 삶은 형제의 가슴속 깊이 스며들게 된다. 그리고 이내 성직자의 길을 걷고 싶은 마음을 품게 된다. 이태석은 어릴 적 자신에게 약속했던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리고 다미안 신부처럼 한센병 환자를 헌신적으로 돌보다 다미안 신부와 같은 마흔아홉의 나이에 대장암으로 선종했다. ===== 울지 마 톤즈의 흥행 ===== ●2010년 4월 4일 부활절에 맞춘 최초 TV 방송 ●천안함 피격 사건으로 연기됨 ●4월 11일 방송으로 변경(시청률 저조) ●한 달 후 영화 배급사에서 <울지 마 톤즈>를 영화로 상영하고 싶다는 요청을 받게 됨 ●90분짜리 영화로 완성되면서 8월 25일 서울극장에서 시사회가 열림 ●언론의 주목을 받음 ●9월 9일 추석 특수로 14개 상영관에서 개봉 ●인기 급상승 ●12월 초 스크린에서 사라짐 ●12월 중순 '밝은청소년지원센터' 임정희 이사장의 요청으로 재상영 ●학생들의 단체 관람으로 인기 폭발 ●다큐멘터리 '성탄특집 이태석 신부, 세상을 울리다'로 인해 또 한 번 이슈가 됨 ●설날 다음날 TV 특선 영화로 편성 ===== 이태석 신부에게 배우는 삶 ===== 1. 이태석 리더십의 핵심은 '말보다 실천' '이태석 리더십'에는 거창한 구호가 없다. 말보다는 실천이었다. 헌신과 겸손 그리고 진정성, 이것이 톤즈의 기적을 만든 것이다. 2. 진심이 담겨 있는 경청 경청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다. 듣기 위해서는 현장을 찾아가야 한다. 그리고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무엇이 필요하고 무슨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본질을 말할 수는 없다. 농민들이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면서 농촌 정책을 얘기하고 서민들의 삶이 어떤지도 모르면서 서민 정책을 이야기한다면 불만과 무관심만 불러온다. 경청은 진정성이 담겨 있어야 한다. '쇠귀에 경 읽기'라는 속담이 있듯이 진심으로 걱정하고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이태석 신부가 한센인을 찾아갈 때마다 박수를 치며 '쫄리'를 외치던 반가움도 이 신부의 진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마무리 ===== 이런 큰 이슈를 몰고 온 인물인데, 여태껏 모르고 살았다는 점이 오히려 놀랍게 느껴진다. 천안함 사건은 기억하지만, 이태석 신부에 대해서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종교와 상관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이토록 타인을 위해 헌신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동네 성당에서 영화로 마주한 다미안 신부의 삶을 마음에 품고 있다가 그대로 답습했다는 점도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당시 한센병 환자는 별도의 섬에 격리하고, 사람들이 가까이 가는 것조차 꺼리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태석 신부는 거리낌 없이 맨손으로 그들의 발을 만지며 치료했다. 그리고 나아가 아프리카 오지 톤즈 마을로 간 그는, 진심 어린 경청과 사랑을 베풀며 그들과 깊은 교감을 나누게 된다. 그 뒤엔 어머님의 눈물과 그리움이 깔려 있었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간다.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깊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대장암 판정을 받고 나서도 어머니에게는 이를 숨긴 채, 늘 웃는 얼굴로 대면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깊은 사랑을 품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프리카 남수단의 톤즈 마을에서 '쫄리'라 불리며 무한한 사랑을 베풀었던 이태석 신부. 그의 삶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우선시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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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이슈가 의대 정원을 놓고 정부와 의사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의료대란이 염려되고 있다. 그런 뉴스 중에 이런 뉴스가 눈에 들어왔다. 아프리카 남수단의 톤즈 지역 출신의 의사 2명이 한국 전문의 자격시험을 통과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정식 의사 자격을 얻었고 의사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들은 한 유명 프로그램에 출연해 하루에 3시간 자면서 의대 공부를 했다고 했으며, 한국어 역시 유창했다.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너무도 잘 보여주었고 이 두 의대생은 고(故) 이태석 신부의 제자였다. 이들은 한국에서 의사로 생활할 수 있지만 다시 남수단으로 돌아가 의료 활동을 하고 후배 의사를 양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두 사람의 기사를 보면서 이태석 신부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었는지 알 수 있었다. 고(故) 이태석 신부는 부산에서 태어나 인제대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된 뒤 사제가 되었다고 한다. 2001년 아프리카 남수단의 오지 톤즈에서 병원과 학교, 기숙사를 짓고 구호와 의료, 선교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2010년 대장암으로 선종했다.
<울지마톤즈 학교>는 고(故)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준 PD가 들려주는 톤즈와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이다. 2010년 우연히 알게 된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는 너무나 호기심을 자극했다. 수단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의사 출신 사제의 이야기는 아프리카를 자원한 최초의 한국인 신부였다. 톤즈의 이태석 신부를 만나러 가는 길은 너무 멀고도 험난했다. 톤즈는 남수단의 시골 중에서도 시골이었고 외국 언론사 취재를 거부할 수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태석 신부를 만났지만 실제로 본 톤즈는 더 열악했다. 엄청나게 더운 날씨와 말라리아 모기와의 전쟁이었다. 톤즈 병원은 규모로 보면 시골의 조그마한 의원 수준이었지만 진료 과목은 종합병원이었다. 의사는 단 1명이다. 톤즈 공동체에는 가난과 전쟁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태석 신부가 고민하고 애쓴 흔적이 남아 있다. 아이들을 위해 농구 코트를 만들고 집이 먼 아이들을 위해 기숙사를 만들어 열악하지만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키워나갈 수 있게 했다. 이태석 신부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아이들은 신부님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린다. 이태석 신부는 우리의 곁을 떠났지만 너무나 많은 것들을 남겨두고 떠났다. 이기심이 팽배한 현대사회에 이타심을 몸소 보여주며 깊은 사랑을 남기고 간 고(故) 이태석 신부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