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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적 자아 혹은 윤리적 주체의 길 - 정찬 소설집 『아늑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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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적 자아 혹은 윤리적 주체의 길 - 정찬 소설집 『아늑한 길』       소설집 『아늑한 길』(문학과지성사, 1995)에서 정찬은 인간은 이룰 수 없는 꿈의 세계, 곧 신성의 세계로 가는 길을 다양한 방법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현실세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 가면(변신)을 쓰지 않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꿈, 그 꿈으로 가는 길 위에 정찬의 소설은 자리하고 있다. 그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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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적 자아 혹은 윤리적 주체의 길

- 정찬 소설집 『아늑한 길』

 

 

 

소설집 『아늑한 길』(문학과지성사, 1995)에서 정찬은 인간은 이룰 수 없는 꿈의 세계, 곧 신성의 세계로 가는 길을 다양한 방법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현실세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 가면(변신)을 쓰지 않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꿈, 그 꿈으로 가는 길 위에 정찬의 소설은 자리하고 있다. 그 세계에는 과연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정찬 소설의 핵심 모티브 중의 하나인 연극적 자아, 변신하는 자아의 형상은 이런 물음에 대한 정찬 나름의 소설적 답변이라 할 수 있다. 윤리적 주체의 소설적 변용에 해당되는 연극적 자아의 형상은 정찬 소설의 주요 모티브가 될 만큼 많은 작품 속에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정찬 소설에 표현된 연극적 자아의 실상을 살핌으로써 정찬 소설의 신성과 사랑의 사상에 담긴 현실적 맥락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연극적 자아는 일차적으로 변신을 내포한다. 현재의 나가 아닌 다른 나로 변신하는 것이 연극적 자아의 목표이다. 그것은 현재의 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감당할 수 없기에 나타나는 자아인데, 연극적 자아가 본격적으로 드러난 중편 슬픔의 노래에서 그러한 상황은 현재의 를 끊임없이 옭아매는 비극적인 상황으로 제시된다. “갈라진 뱃속에서 튀어나오는 창자, 두개골이 으깨진 시체, 손을 적시는 붉은 피, 그 살인의 기억이 주체의 현실을 규정한다면, 그 현실에 근거하여 생성되는 주체의 삶에는 이미 비극성이 잠재되어 있다. 이러한 잠재된 비극을 벗어나기 위해 이 소설이 주인공은 변신이라는 모험을 감행한다. 고통스런 현실과 대면하는 변신이라는 점에서 그 변신은 윤리적인 맥락과 결부되어 펼쳐진다.

 

슬픔의 노래에 등장하는 박운형이라는 인물은 공수부대원으로 광주를 진압한 가해자의 인물유형에 속한다. 의 김장수가 얼굴로 현실화되는 광주의 잔상을 살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극복하려 했다면, 그리하여 전락의 상황에 봉착하는 존재였다면, 박운형은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죄의식과 하나가 됨으로써 가해자라는 얼굴과 직접 대면하려 한다. 죄의식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직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박운형이라는 주체가 두 개의 자아(가면)로 분열되는 만큼이나 세계 역시 두 개의 세계로 분리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두 세계는 공통적으로 광주에 기원을 두고 있다. 광주라는 기호가 가진 비극성의 기호가 그 분열된 두 개의 자아와 세계를 규정한다면, 그가 선택한 연극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저주받은 상상력의 세계가 아닐 수 없다.

 

텅빈 작업장처럼 꾸민 극장의 벽은 까맣게 칠해져 있었습니다. 무대 중앙에는 직사각형의 플랫폼이 있었고, 그 위에 머리가 없는 인형, 수레, 쇠 부스러기 더미가 보였습니다. 관객이 좌석을 찾는 동안 극장 안은 기이할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그 침묵이 무겁고 지리하게 느껴질 즈음 배우들이 무대로 걸어나왔습니다. 움푹 들어간 눈동자, 얼어붙은 웃음, 앙상한 볼. 그들의 얼굴은 죽음의 가면이었습니다. 그 죽음의 가면들은 수직의 전선에 쇠 부스러기를 매달고 망치질을 했습니다. 아크로폴리스를 짓기 위함이었습니다. 아크로폴리스, 그것은 바로 시체 소각실이었습니다. 그것을 짓는 동안 슬라브의 구슬픈 노래, 라틴어 성가, 히브리의 통곡의 노래가 흘러나왔지요. (272)

 

소설과 연극의 근본적인 차이가 시제에 있다는 점을 통해 우리는 정찬 소설에서 연극의 세계가 중시되는 이유에 접근할 수 있다. 정찬은 소설의 시제가 과거라는 점을 중시한다. 이미 일어난 사건의 추체험에 근거하는 소설의 형식은 그런 특성으로 해서 반성의 양식으로 손꼽힌다. 그렇지만 과거의 사건이 다만 반성의 대상으로 변해버려 주체의 내면에서 풍경화될 때, 다시 말해 주체의 내면이 과거의 사건을 해석하는 기원이 될 때, 소설 속의 반성은 현실적으로 거짓 화해에 이르는 조건으로 변용될 수도 있다. 작가는 이런 맥락에서 상상 속에서 위안을 얻는 소설의 방식을 문제 삼는다. 소설이라는 반성의 양식을 다시 반성하려는 욕망이 작가의 내면에는 내재되어 있다.

 

슬픔의 노래의 박운형은 상상 속에서 표명되는 거짓 화해의 방식을 거부하고, 연극적 세계의 시제, 곧 현재시제를 선택하여 광주의 체험을 현실화하려고 한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무대 위에서 광주를 추체험하는 것이라 볼 수 있는데, 박운형에게 연극적 무대가 허구적 세계일 수 없는 이유는 이런 까닭에서이다. 연극적 자아가 존재하는 세계는 그에게 현실의 자아가 존재하는 세계이다. 아니, 연극적 자아가 존재하는 무대만이 그에게는 현실세계이다.

 

박운형은 무대 위에서, 광주의 고통을 현실화하고 그 고통과 하나가 된다. “황폐한 풍경, 어두운 빛, 죽음의 정적가난한 연극의 무대를 구성하듯, 그의 내면 역시 그와 같은 풍경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내면으로 변화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침으로써 박운형은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권력욕망이나 두려움이 인간의 본질적인 조건임을 깨닫는다. 그것은 (가해자의) 죄의식이라는 관점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인간의 생래적인 무의식과 연결된다. “가난한 연극은 그런 점에서 박운형에게는 자신의 운명과 대면하는 양식이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그가 광주의 고통을 감싸 안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박운형은 이렇게 자신에게 부여된 운명을 견디려 한다. 그 운명을 견디지 못하면 세계는 입을 벌려 그를 삼킬 것이기에, 박운형의 가난한 연극은 그만큼 고통스런 연극으로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처럼 연극적 자아를 사유하는 바탕에는 인간의 윤리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가로놓여 있다. 그 윤리성의 관점에서 볼 때, 고통스런 과거와의 화해는 과거의 고통과 일체가 되어야만 가능하다. 연극적 자아에게 요구되는 것은 윤리적 가치의 완벽함이다. 그것은 신성의 현실화로도 표현될 수 있거니와, 이를 통해 우리는 연극적 자아의 궁극적 지점이 신성의 현현과 연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찬 소설에 나타나는 연극적 자아는 신성을 향한 도저한 저항정신, 그리고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의 정신과 더불어 의미화된다. 그것은 고통스런 현실에서 벗어나는 수단의 일종인바, 연극적 자아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자아를 창출하는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맥락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연극적 자아가 자아중심적인 시각에 빠져들 때, 그들이 추구하는 세계는 그들만의 세계로 축소되지 않을 수 없다. 소설 속 인물들이 꿈꾸는 세상은 독백과 대화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이 어쩌면 정찬이 빚어내는 관념의 성채를 돋보이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의문은 남는다. 종교적 인물에게 어울리는 윤리적 감성의 미학은 정찬 소설에서 인물의 구체성을 사상하는 과정으로 발현된다. 관념소설의 전통이 희박한 한국문학의 현황에서 보면 정찬의 관념소설은 독특한 위상을 부여받고 있다. 문제는 그 독특함이 단지 관념소설의 독특함으로 한정되어 나타날 수 있다는 데 있다. 관념이 현실로 내려서는 자리를, 그래서 다시 현실이 관념 속에서 풍부해지는 자리를 끊임없이 성찰할 때 정찬 소설의 문학적 위상 역시 제고될 수 있을 것이다.

 

o*****s 2017.12.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