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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5.4 운동 이후의 기행이라 항일과 배일의 메시지를 접하며 다니던 아쿠다가와의 기록 근대인이 전근대와 만나 느낀 불쾌함은 위생의 문제 그리고 찬란했던 중화문화를 예찬하지만, 그 문화의 몰락과 그 몰락 이후 '생존'에 급급할 수밖에 없던 속물스러움을 관찰자로 볼 때 느낄 수밖에 없는 불쾌감(후자의 이 불쾌감은 오히려 읽는 나에게 불쾌감을 준다. 먼저 근대화화한 제국주의적 지배자의 오만함이 느껴지기에.)이 잘 표현되어 있다.
여학교 교사를 둘러 볼 때, 시종 불쾌함을 감추지 않으면서 일본인을 여학교 안으로 들여 안내해야 하던, 근대식 연필이 아닌 붓과 벼루를 쓰던 것은 배일의 의미였다는 것. 그리고 아쿠다가와가 여학생 기숙사를 보자고 할 때, 몇 일 전 일본 군인 4-5명이 침입해 여학생을 강간했는데, 거기에 다시 일본인을 들일 수 없다고 항변하던 중국인 선생의 장면을 그대로 적고 있던 것은 아쿠다가와의 반성적 기행문이기도 하다. 그가 기행문 중 그렇게 흔들리던 흔적도 있다. 그는 근대를 좋아하지만, 서양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으며, 중국의 현재는 경멸했지만, 중국의 고전과 옛 문화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반면 그가 본 중국은 화려했던 옛문화를 가졌지만, 지금은 일본과 서양에 의해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고, 전근대적 체제와 근대적 체제 사이에서 그리고 사회주의의 이념을 수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하나 흔들리지 않는 것이라면 여성에 대한 시선과 판단이라고 할까. 어머니를 잃은 아버지로서의 아들의 감상은 지속적으로 드러난다는...
무너진 폐허를 안고 현재를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생각하니, 오르한 파묵의 [[이스탄불]]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폐허를 안고 있는 근대의 풍경... 그리고 고궁을 둘러싼 최신식 빌딩 숲의 도시인 서울...
혐오하고, 경멸하고, 예찬하고, 아쉬워 하던 저 시선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결국 그 판단의 기준은 내 안에 있는 것을.... 기행이라는 것은 타국을 탐방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타국(타지)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다른 시선으로 다시 들여다 본다는 것...
간간이 조선의 흔적도 있다. 김옥균이 머물다 자객 홍종우에게 권총으로 살해당했던 상해의 동아양행에 대한 서술이 있다. (상하이에서 암살당한 그의 시체를 조선이 인수하여 양화진에서 효수하여 조리를 돌렸다. 역적의 응징을 민중에게 알리려는 전통적 방식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그의 시체는 양화진 언저리에 나뒹굴었는데, 그를 추종하던 일본인 가이(甲斐) 부부가 시신 일부를 거두어 도쿄 진정사에 매장했다(그의 묘는 아산군 영인면 아산리에 있다.) 아쿠다가와는 만주를 거쳐 부산을 지나 일본으로 귀국했다고 하니, 쑨원을 비롯 많은 사람들이 당시 부산을 통과했다는 것이 생각났다. 과연 부산은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까..부산은 어떤 도시였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