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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는 쓰러진 아버지를 돌보며 돌봄에 관한 책을 쓰기 시작한, 돌봄 청년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조기현과 방문 진료의사 홍종원, 사회를 맡은 김경훈 편집자가 '돌봄'을 주제로 나눈 대화를 기록한 대담집이다. 목차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돌봄이라는 주제로 관계, 가족, 정부 정책, 문화, 권력 등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보통의 사람들은 돌봄을 생각하면 간호, 육아와 같은 신체능력이 제한돼있는 상태의 대상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전에 적혀있는,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는 관점에도 방점이 찍혀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돌봄은 약자에게만 한정돼있지도 않고 단순히 일방적이고, 시혜적인 것 또한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돌봄을 한 당사자기이도 한 조기현 작가와 많은 환자와 방문진료를 한 홍종원 선생은 돌봄의 현장과 어려운 상황에 있는 가족들의 현실을 봐왔기 때문에 돌봄에 관해서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와 당면한 문제들을 이야기한다. 돌봄의 관점에서 세상을 좀 더 개선해야 한다는 말이 때론 공상적이고 너무 이상적인 것이 아닌가 비판 받지만, 조기현 작가가 말한 것처럼 그것을 미래에 도달해있을 세상으로 생각하고 현재 우리가 논의해야 하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현실에 파묻혀지지 않고, 현실에 압도되지 않"(273p)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돌봄을 이야기하면, 여성에게 돌봄노동이 국한되어 있는 현실을 말할 수 밖에 없다. 이후에 언급되지만 노년의 여성들은 요양센터 입원을 선호하는데, 집안일에서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돌봄을 떠맡는 영 케어러(어린 보호자)들은 주로 이혼가정과 같은 상황으로 여성이 수행했던 돌봄을 이어받은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돌봄 노동은 현재 여성이 부담하는 경우가 많으나 남성 또한 돌봄의 주체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으며 남성의 돌봄 노동도 늘어가는 추세임을 말한다. 대체로 많은 돌봄은 권력관계에 있음을, 성별 불균형 문제뿐 아니라 가족 중에 가장 약자가 돌보는 일을 감당하고 중요한 결정은 지불 능력이 있는 사람이 하는 구조처럼 한쪽이 부담을 많이 지는 현실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돌봄에 대해 이야기할 때 돌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었다. 어릴 적 돌봄의 상황을 경험한 조기현 작가는 돌보는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갖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어야 자신의 의미를 지우지 않고 곳곳 하게 서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감당하는 무거운 짐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돌봄을 제공하는 자와 받는 자가 확실하게 나뉘는 현 제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기회를 준다. 더불어 돌봄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끼리 말을 나누고 서로 이해하며 좋은 돌봄 방법을 찾는 공간과 정부에 정챌 개선을 요구할 수 있은 공간 또한 필요하다.
돌봄을 받는 사람도 하나의 주체임을 생각해야 한다. 조기현 작가는 '장소 안도감' 개념을 이야기한다. 일본의 '이바쇼'에서 온 말로, 개인이 물리적인 공간 안에서 어떤 장소성을 획득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는 개념'이다. ‘장소 안도감’ 조사를 통해 사회와 연결됨을 느끼는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러면 돌봄 서비스의 방향을 더 효과적으로 바꿀 수 있다. 신체적 상태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고를 벗어나 관계에서 위축되고 주체로 서지 못한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돌봄의 대상은 그 누구나 될 수 있다. 청년도 충분히 돌봄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돌봄을 받을 자격이 정해져 있다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릴 필요가 있다. 또한 대담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이 돌봄은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돌봄을 한쪽이 제공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 않다. 대화를 나누는 것은 서로를 치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더 나아가 서로를 돌보면서 사회적 문제들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정부 정책에서의 고정관념들도 무너뜨려야 하는데, 조기현 작가는 현재 가족의 형태가 바뀌면서 전통적 가족 모델에 맞춘 정책을 변경할 필요성을 말한다. 이것은 돌봄의 주체를 가족 구성원으로 돌림으로써 사회 혹은 정부의 책임을 피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돌봄은 일종의 짐으로, 누군가에게 떠맡겨진다. 돌봄이 사회적으로 저평가되고 인정받지 못하니 경력 단절과 같은 현상이 생긴다. 사회적으로 가치가 낮아져 개인도 사회도 돌봄에 투자를 하지 않으니 사회문제가 반복된다. 우리는 돌봄의 가치를 낮게 보기 때문에 돌봄에 시간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홍종원 선생은 돌봄과 관련해 일종의 대안으로 '커뮤니티 케어'(지역사회 통합 돌봄)- "자기가 살던 지역에서 나이가 들어서 병을 앓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편안하게 맞을 수 있도록 여러 서비스를 주체적으로 이용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 를 강조하는데, 더불어 시민참여의 보장과 참여의 보상 등의 구체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말한다. 시설과 병원 중심의 돌봄 체계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커뮤니티 케어 정책은 사업의 하나가 아니라, 복지, 의료 분야 전체에 커뮤니티 케어의 철학을 담아야 해요. 일자리 정책도 지역 단위 일자리 정책으로 가야 하고요."
요양 시설과 장애인의 탈시설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요양 시설을 그저 편리한 해결책으로 봐야 할까? 조기현 작가는 요양 시설에 간 후 상태가 악화된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탈시설(탈요양원)을 한다고 해서 집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고 보호자가 조금 더 편한 사회가 될 수 있을까? 모두 확실한 해답을 내놓진 못한다. '탈시설' 문제는 정말로 민감하고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이다. 탈시설은 장애인의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조건이지만, 또 그 사회가 탈시설을 할 만큼 시설과 제도, 문화가 갖춰져야 하고 또 다른 피해 혹은 부담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어려운 주제에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돌봄'이라는 관점은 항상 살아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시설 장애인들이 탈시설을 원치 않는 진짜 이유 / 정다혜 - 비마이너
지금의 사회는 '반돌봄 윤리'가 지배하도록 향하는 사회가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한다. 조기현 작가는 '돌봄받지 않아도 되는 존재'를 신자유주의 체제가 강화하는 인간상이라 말한다. 서로를 책임질 필요 없이 독립적인 인간상을 만들고 약한 사람은 따로 처리하거나 관리해야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의존을 죄악시하는 문화가 돌봄의 의미와 이미지를 더욱 퇴식시킨다. 우리 사회는 강하게 독립된 한 인간상들로만 채워진 것이 아니다.
조기현 작가는 홍종원 선생의 방문진료를 따라간 일화에서 홍선생이 "사실 저는 잘 몰라요. 잘 몰라서 더 많이 들어요."라 말하는 걸 보며 "그는 누군가의 집에 방문할 때, 그곳에서부터 치료 방법을 찾는다고 했다." 말한다. 돌봄은 한 사람과의 관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학 공식처럼 적용시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나보고 부딪혀야 하는 것이다. "만남 속에서 길을 찾는 의지의 산물"(334p)로 표현되는 것. 의사와 환자라는, 어찌 보면 권력관계로 이어질 수 있는 이 관계의 벽을 허물고 서로를 관심있게 마주하는 것이 진정한 '돌봄'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 우리는 '돌봄'의 개념을 특정한 사람이 제공하는 행위라기보단, 서로를 때론 강하게 때론 약하게 돌보며 세상 안에서 숨 쉬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돌보는 행위를 해 본 사람은 혼자서 감당하는 것의 어려움을 알 것이다. 우리는 돌봄이라는 짐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힘,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 가기 위해 서로 나눠 갖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추가로 이 책은 김경훈 편집자가 주도적으로 질문을 만들고 조기현 작가의 책을 포함한 여러 돌봄책을 읽고 대화를 나눴다는 점에서 편집자의 역할이 돋보였던 책이다. 책 하나가 나오기 위해선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한데, 잘 보이지 않는 역할 중 하나가 편집자다. 편집자의 적극적 개입이 이런 대답집을 만든 것처럼, 사회도 서로가 맞닿아 적극적으로 개입해 같이 만들어 가는 것임을 생각해 본다.
한겨레 출판에게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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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직은 도래하지 않은 '돌봄이 순환하는 세계'를 함께 상상하고 만들어갈 돌봄의 동료에게 건네는 연서다. / p.13
이 책은 홍종원 의사 선생님과 조기현 영케어러 활동가님의 대담을 엮는 책이다. 직업적인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는 부분이 '돌봄'이지 않을까 싶다. 비소설 계열의 책들을 두루두루 읽지만 돌봄이 등장하게 된다면 자신도 모르게 다시 보게 되는데 그런 맥락으로 선택하게 된 책이다. 관심을 가지고 조금씩 생각하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기대하고 읽었다.
총 다섯 차례의 만남으로 돌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편집자님의 사회로 두 분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총 다섯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4W1H로 가능할 듯하다. 왜, 언제, 누구, 어디서, 어떻게 이렇게 나름의 주제에 맞게 편집자님께서 질문하고, 두 분께서 생각하시는 부분들, 그리고 현재 돌봄의 상황들을 대답해 주시면서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여기에서 대담을 나누시는 두 분에 대한 정보를 언급하고 넘어가야 될 듯하다. 먼저, 홍종원 선생님께서는 왕진 의사로 의료적인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직접 찾아가 진료를 보시는 분이다. 예전 북 크리에이터 님의 월말 영상에서 "처방전 없음"이라는 작품을 소개받은 적이 있는데 작가로서도 활동하고 계신다. 또, 조기현 활동가님께서는 아버지와 함께 살고 계시는 분인데 영케어러 중 한 분이시다. 여기에서 영케어란 젊은 보호자를 뜻한다.
아무래도 관심 있는 분야이면서 주변에서 쉽게 접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기 때문에 보통 다른 책들과 다른 의미로 읽혔던 책이었다. 내용과 다르게 깊이 생각할 부분, 그리고 사회복지사로서 공부할 부분이 많아서 더디게 읽혀졌다. 페이지 수가 그렇게 두껍지는 않았는데 알면서 책장을 느리게 넘겼다. 이 부분 또한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전반적으로 인사이트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광의적으로 돌봄 직종에 종사하는 직업인이면서도 좁은 시야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인정하게 되었다. 특히, 보통 돌봄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을 본다면 "중년 여성"이라는 점이 인식이 박혀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유독 영케어라고 불리는 젊은 청년층의 돌봄 보호자들이 등장한다. 비교적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청년들, 또는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이 가족의 돌봄 노동에 종사하게 된다는 점을 자주 언급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자주 접하고, 또 경험한 적이 있음에도 머릿속으로 인식이 되는 순간 충격을 받았다.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그밖에 보통 짧은 시간 내에 환자를 보고 사망 선고를 내리는 의사와 달리 왕진 의사의 경우, 돌봄이라는 것 자체가 환자에 대한 객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너무 새롭게 느껴졌다. 의료적인 기술을 다룰 수 있는 인력과 장비가 있는 병원을 두고 자택에서 노후를 보내려고 하는 환자들, 학업이나 취업 준비를 포기하면서 가족들을 돌봐야 하는 영케어러, 행정적으로 많은 업무를 처리하기 때문에 환자에게 맞는 정책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사회복지 공무원, 성범죄에 노출된 돌봄 노동자의 산재 처리 등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문제들이 피부에 와닿았다. 지역사회에서 서로가 돌볼 수 있는 사회에 대한 두 분의 이야기는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반드시 논의되어야 할 부분이자 사회복지사로서 추구하는 이상향이기도 했다.
마지막 부분에 '사회복지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는 내용의 문장이 실려 있었는데 가장 크게 공감이 되었던 부분이었다. 어디까지나 직업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선택한 책이었지만 과연 내가 돌봄 노동을 모르는 다른 직종의 직장인이었다면 그냥 지나칠 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결론만 놓고 보자면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돌봄에 자유로울 수 없다. 언젠가를 위해 그들이 꼭 읽어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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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청년커뮤니티 n인분 대표, 책 <아빠의 아빠가 됐다>, <새파란 돌봄> 등을 썼고, 돌봄으로 연결된 동료들과 ‘돌봄의 새 파란’을 일으킬 궁리로 여러 실천을 이어가는 조기현과 방문진료 전문병원 ‘건강의 집 의원’을 열어 아픈 이들을 직접 찾아다니고 <처방전 없음> 등을 펴낸 홍종원의 돌봄이 순환하는 세계를 생각해보는 대화를 엮은 책이다.
오랜 병환으로 자리에 누워계시다가 돌아가신 엄마를 돌봤던 건 우리 삼 남매이다. 당시에도 돌봄 도우미가 있었지만 실질적인 주 돌봄은 가족의 몫이었다. 사회적 돌봄이 아닌 가족 독박의 돌봄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므로 책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나 역시도 부모 돌봄과 나의 노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시기이기도 하다. 조기현의 <아빠의 아빠가 됐다> 또한 책 모임으로 토론하고 저자와의 만남도 한 터라 반가움도 컸다.
책은 돌봄의 올바른 의미와 지금 우리 사회의 돌봄이 어디까지 왔는지 대화를 통해 알아본다. 저평가되어 있는 돌봄이 여성의 노동으로 전락하여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외주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단순히 아이 양육과 어르신 돌봄이 돌봄 영역의 다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우리가 일상에서 맺고 있는 모든 관계가 돌봄이라고 말한다. 연결된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서로를 돌보고 돌봄, 사람, 연대 속에 있어야 함을 제시한다. 지금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고 부를 때 이것이 선순환되어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꼭 나눠야 할 ‘돌봄’을 화두로 던지는 책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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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케어러 조기현 활동가와 방문 진료 의사 홍종원의 대담집이다. 이 두 사람의 수식어를 보면 어느 정도 예상되는 게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는데, 역시나 깊고 굵은 메시지를 가득 담은 이야기였다. 이 시대에 빠지지 않는 화두인 ‘돌봄’과 그 돌봄에 깊게 관여하고 있는 두 사람이 대화의 중심에 있다. 나 역시 지금 가족 돌봄에 관련된 한 사람으로, 이들이 하는 이야기가 낯설게 들려오지는 않는다. 더 나아가, 나도 언젠가 돌봄의 대상의 될 수 있는 게 자연스러운 변화이기에, 조금 더 집중해서 듣게 되는 이야기다.
이 책에서 하고자 하는 얘기를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돌봄이 사회적 책임 안에서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 돌봄의 역할에서 개인이 해야 할 부분도 있겠지만, 온전히 개인만의 책임에 묶어둘 수는 없다. 이 사회의 변화하는 과정에서 분명하게 보이는 돌봄의 문제를 사회적 책임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다. 누구나 경험하게 될 일이 돌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이 더욱 강조하는 게 돌봄의 주체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된다는 것. 그러니 돌봄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아야 하는 건 너무 당연하고, 사회가 돌봄 인프라 구축에 힘써 돌봄 위기 사회가 아니라 돌봄 사회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렇게 말로만 하고 있으니 막연하게 들리는데, 내가 최근 경험한 경우를 생각하다 보니, 사회가 같이 책임져야 할 돌봄의 문제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나 역시 처음부터 내가 돌봄의 주체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살아오지는 않았다. 어쩌다 보니, 또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 하는 일이 되었다. 아버지가 편찮으셨던 몇 년 동안, 혼자 감당할 수 없던 엄마와 함께 돌봄의 주체가 되었다. 응급실과 중환자실, 일반실을 거쳐 요양병원까지 입 퇴원을 반복했던 시간이 5년 정도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이제 돌봄의 시간에서 벗어난 우리는 이제 각자의 삶에 집중해야 했다. 마음의 부담과 피곤함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할 무렵, 이제 엄마가 아프고 몇 번의 병원 신세를 지곤 했다. 병원에서 생활하는 동안, 퇴원하고 집에서 지내는 동안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나는 또 하게 되었다. 물론 다른 형제자매도 있고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였지만, 이상하게도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하게 되는 게 돌봄이 되어버리는 건, 또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덜 피곤한 일이기도 했다.
사실 간병인을 고용하는 비용이 저렴하거나,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내가 병원에 상주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여건이었고, 보호자나 간병인의 상주를 원하는 병원생활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환자 본인도 혼자서 움직이기 어려웠으니, 뭐 다른 방법이 있겠나. 어쨌거나 엄마의 병원 생활은 끝났지만, 여전히 걱정은 남아 있다. 집에서 생활하는 엄마를 자주 살피러 가야하고, 혹시나 다른 일이 생기지 않을까 미리 걱정하는 일이 늘었다. 저자가 말하는 돌봄 위기의 근본 원인을 나는 여기에서 살피게 된다. 고령화 사회의 진입은 더 많은 돌봄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요즘은 나이 드신 분도 정정하시니 각자의 일상을 잘 살아가고 있지만, 나이 드신 분이 젊은 사람과 같은 몸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러니 돌봄이 필요한 건 너무 당연하다. 거기에 개인주의는 돌봄이 각자의 문제라는 인식을 만들 수도 있다.
돌봄이 관계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하는 저자들의 대화가 뜬금없어 보였는데, 듣다 보면 그 관계가 순환하는 돌봄의 문제에서 꼭 필요한 관계였다. 돌봄이 일방적으로 개인이 고통 속에서 견뎌나가야 하는 문제도 아니고, 사회와 국가만이 책임져야 할 문제도 아니었다. 그 사이에 엮어진 많은 관계 안에서 이뤄나가야 할 문제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인간이 많은 관계를 통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한 개인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서로 관계 맺음으로 돌봄 인프라가 형성된다고 한다. 이때 지역 사회의 발전은 중요한 과제가 된다. 아픈 가족을 돌보며 일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멀리 있는 병원에 가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지역 공동체의 도움으로 내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치료 받을 수 있거나, 내 집에서 돌봄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을 줄여야 한다. 이러한 환경을 만드는 게 돌봄을 수행하는 데 정말 큰 역할을 한다.
어느 것 하나만으로 돌봄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저자들의 대화 역시 단순하게 돌봄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만도 아니다. 돌봄 사회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찾으려고 애쓴다. 돌봄 노동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돌봄 인프라의 확충이 중요하다. 돌봄이 중심이 된 지역공동체의 역할과 관계도 탄탄해져야 하고, 돌봄 사회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의 실현이 따라와 주어야 한다. 거기에 우리의 역할도 분명히 있다. 우리 자신이 돌봄의 인프라가 될 때, 돌봄 위기 사회는 돌봄 사회가 될 것이다.
최근에 지역아동센터에서 실습한 기억을 떠올려 보고, 엄마의 병원 생활을 기억해 보면, 돌봄의 문제는 이 사회 전체의 분야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였다. 일상의 관계 맺음에서 돌아보는 일이 돌봄이라는 게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사회적 제도가 확충되어야 하는 일과 사람이 채워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기에, 어느 한 가지만으로 완벽하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돌봄이었다. 어느 날 늙고 병들어 돌봄의 대상이 될지도 모를 순간에, 나 자신을 혐오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까지, 돌봄의 가치가 올바르게 평가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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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033 Page 청년들에게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역량을 길러줘야 해요. 우리 사회가 청년들이 스스로 돌볼 역량을 기르는 교육을 하고 있나요? 돌보는 기술은 삶의 기술과도 맞닿아 있어요. 청년은 돌봄의 대상으로서 충분히 돌봄을 받았고 돌봄을 배웠는지, 그런 기회를 우리 사회는 제공하고 있는지를 한번 돌아봐야 해요. 034 Page 인간의 자립은 단순히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게 아니라, 남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을 확립하는 일이에요. 038 Page 저는 자녀 셋 중에 첫째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지가 궁금하네요. …… 이제 물어야 돼요. 이 아이는 이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동을 하고 있느냐고요. 069 Page 돌봄은 관계성을 기반으로 해요. 때로는 내가 누군가에게 의존하기도 하고, 남이 나에게 의존하기도 하죠. 돌봄 속에 들어 있는 그 관계성을 이해해야 해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이게 돌봄을 이해하는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231 Page 죽지 못하게 하는 곳도 병원이지만 죽음을 결정하고 죽음을 가능케 하는 공간도 병원이에요. …… 사실은 인위적이지만 자연스러운 죽음을 판단하는 사람도 의사예요. …… 병원의 권위가 애초에 죽음을 판단하는, 동시에 생명을 판단하는 역할에서 오죠.
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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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은 노인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다. 그는 30년이 넘게 전문의료인으로서 근무했지만, 보호자들에게는 불신의 대상이며 몇몇 환자들에게는 간호원이라는 부정적인 호칭을 듣는다고 했다. 그와 근무하는 요양보호사는 24시간 환자의 곁을 지킨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목욕와 식사, 그 외 생활에 필요한 모든 움직임을 대신하기도 한다. 그들의 노동은 임금을 대가로 이루어지는 것이나, 여전히 그들의 노동을 의심한다. 감히 노동이 아니라고. 조기현, 홍종원 저자의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에서는 이러한 인지부조화는 비단 개인의 그릇된 인식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돌봄에 대한 사회의 부당한 취급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돌봄노동이라는 담론은 유독 최근에 많이 듣게 되었다. 저출생에 따른 대안으로 육아 노동에 대한 인력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부당한 처우로) 고용하겠다는 정부의 정책과 아픈 가족을 부양했으나 끝내 가족을 떠나보낸 청년이 실형을 산 기사 등에서 돌봄노동이라는 단어가 회자되었다. 돌봄은 언제까지고 노동이었는데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노동이라 여기지 않았고 정상가족의 구성원인 누군가의 개인의 책임이라 여겨왔다. 시스템의 책임을 개인에게 묻게 했다.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는 돌봄 노동이 더 이상 개인의 과제가 아니며, 이를 시스템이 함께 분배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하는 영케어러와 방문의사의 좌담을 기록한 책이다.
해당 도서를 한겨레출판으로부터 제공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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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케어러’와 방문진료 의사로 활동하는 저자 2명이 우리 사회의 돌봄 현실과 인식,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대담한 내용이 담긴 책이다. 개인적으로 편집자님의 역할이 돋보인다고 생각했다. 돌봄이라는 주제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의 눈높이를 고려하면서 적절히 반론을 제기해 두 저자에게서 더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이끌어내려고 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논의의 폭이 굉장히 넓었다. 사실 막연히 돌봄받는 자와 돌봄하는 자 사이의 이야기로만 한정해서 생각했는데, 그 둘 사이의 여러 이해 관계자들 간 관계뿐만 아니라 돌봄에 대한 사회 인식과 그 원인, 제도적 한계 등 다양한 내용을 접할 수 있었다. 신자유주의의 구조적 문제를 비롯해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 청년·노동 문제 등 폭넓게 이어지는 논의를 통해 우리가 평소 돌봄의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도 실은 돌봄 문제와 유사한 맥락으로 연결지어 이해해볼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줬다. 사회 구조적 모순에 대한 이해를 통해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을 짐작해볼 수 있게 해준 전개였다고 생각한다. 한편, 거시적인 제도에 초점을 맞출 때 발생할 수 있는 한계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돌봄을 수치로만 환산하려는 시도나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채로 이루어지는 제도화는 설익은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각 개인의 필요나 특성을 무시하고 획일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것은 시설의 문제와도 연관된다고 생각했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제도에 충실히 반영하는 것이 필수적임을 절감할 수 있었다. 스웨덴의 경우 돌봄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이 자신을 소비자로서 인식하기 때문에 돌봄 노동자를 감시하려고 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막연히 북유럽 국가는 복지 제도가 잘 되어 있으니까 돌봄 문제와 관련해서도 본보기가 될 만한 부분이 더 많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들 나름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나라도 ‘소비자 정체성’으로 돌봄 서비스를 대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개인 간 관계, 나아가 공동체의 관계 회복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한겨레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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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주변 지인들이 '요양보호사'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많이 전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간소화된 자격증 시험이 달라져서 망설이던 분들이 서둘러 지원하였다고 한다.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경력단절 여성들이 선호하는 자격증으로, 지인들도 은퇴한 이모도 큰 어려움 없이 합격하여 활동을 하였다. 이렇듯 '돌봄'의 영역에 속하는 직군에 종사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분명 사회 시스템 안에서 임금을 받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직업이지만, 그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는지는 의문이다. '여성'과 '돌봄' 그리고 '노동'의 삼각형, 이 조합을 받치는 토양은 메마른 사막같이 황량하게만 다가온다.
항상 취약하다고, 불합리하다고 생각에만 머물렀던 '돌봄'에 대한 영역에 관한 대담집이 눈에 띄어 한겨레 하니포터 8기 1월 활동 도서로 받게 되었다.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는 조기현 작가와 홍종원 작가의 대담집이다. 영 케어러와 홈 닥터가 만나 각자도생 사회에서 상호의존의 세계를 상상한다. 이 대담집을 접하면서 '돌봄 노동'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이나 선입견들을 조금씩 희석시켜가고, 살피지 못했던 앎의 페이지를 천천히 채워나가고, 무심했던 나를 돌아보고 '돌봄'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게 되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돌봄 노동자의 대부분이 '여성'이다. 돌봄 노동이 가사노동처럼 여겨 여성에 특화된 것처럼 보이는 이 현상을 조기현 작가와 홍종현 작가는 시작부터 뒤흔든다. 영 케어러인 조기현 작가와 방문진료 의사인 홍종현 작가는 '청년'의 입장에서 자신들이 경험하고 목격하고 들은 '아픔과 돌봄'의 오늘을 전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비판적 대화를 진행한다. '돌보는 남성' 다소 낯설게 느껴지지만, 현대사회에서 이미 '정상 가족', '공동체' 등 기존의 구조가 기초가 되지 않을 정도로 변하고 있다. 이혼가정, 조손가정, 1인 가정 등 다양한 형태로 뻗어나가는 가정에서는 더 이상 '돌봄 노동'이 '여성'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리고 여성에게 아니 가정 내 약자에게 부과되었던 돌봄 노동의 부당성과 불평등을 짚어낸다.
이 대담집은 단순히 '돌봄'의 필요를 외치는 목소리가 아니라 '돌봄'을 일상으로 가져와 '개인과 개인이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확장시키는 점이 고무적이다. 질병, 사고, 노화로 인한 아픔과 고통 옆의 돌봄이 아니라, 우리네 삶에서 만나는 존재들과의 관계를 맺어가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의 돌봄을 말한다. 우리가 '간병'을 받게 되는 상황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생산'이 중요한 사회에서 '건강한 노동력'으로 개인의 가치를 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의존해야 하는 자신을 인정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모두 서로에게 '의존'하며 살아간다. 내가 누군가에게 의존하기도 하고, 남이 나에게 의존하기도 하는 이 순환을 받아들여야 비로소 돌봄이 우리가 맺는 관계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전반적인 대화의 방향 - 돌봄의 관계를 상상하다. 왜 구체적이고 세밀한 대화 - 언제, 누구, 어디서, 어떻게 총 5번의 만남을 통해 '돌봄의 관계'를 열정적으로, 현실적으로 이야기 나누었다. 영 케어러로서 책을 쓰고 강연을 한 조 작가와 방문진료를 하는 의자로서 책을 쓰고 지역 활동을 하는 홍 작가의 전문적이고 심도 있는 대화를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이끌어주고 풀어준 데는 진행자인 김경훈 편집자의 공이 큰 듯하다. 그의 후기 속 '극진한 비효율성'이라는 단어처럼 이 책은 성장과 효율을 최고로 치는 오늘날에 비효율을 극진하게 다해야 비로소 가치가 빛난다.
현장에서 뛰고 있는 분들이라 다양한 사례들로 현장과 제도의 취약점과 사각지대 등을 살펴볼 수 있어서 더 와닿았다. '돌봄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돌봄 노동자도, 돌봄 수혜자도, 돌봄 가족도 제대로 존중받지도, 배려 받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깨달았다. 그리고 쉽게 떨쳐버릴 수는 없지만 '돌봄의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심어주었다. 가정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기준은 '돌봄'을 부담으로 만들고 죄책감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짊어지어 개인에게 과도한 책임을 전가하기보다는 연결과 협업을 통한 연대로 돌봄이 건강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담겨있다.
'돌봄'에서 시작하여 청년, 자기 돌봄, 사랑, 연대, 장소 안도감, 돌봄인지감수성, 생산과 재생산, 죽음, 애도, 치료, 행정, 장애인, 탈시설 등 다양한 개념과 의미, 가치로 뻗어나가는 대담집을 통해 돌봄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공동체를 그려볼 수 있었다. 그들은 분명 쉽지 않은 길이다, 모른다, 어렵다…… 진심으로 얘기하고 있다. 제도 개선과 확립으로, 가치관의 변화로 만들어가야 할 새로운 '돌봄'의 관계는 다양한 이들과 만나 대화 나누는 길에서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돌봄을 멀리 생각하지 말고, 작고 사소한 우리의 일상이 다 돌봄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나를 돌보고 남을 돌보고 더 나아가 세상을 돌볼 수 있는 사회, 생각만으로도 따뜻해진다.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는 단절되고 분절된, 각자도생의 경쟁 사회에서 돌봄의 순환을 다 같이 이야기하는 시작이 되어주는 책이다.
한겨레 하니포터 8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
누구나 돌봄이 필요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돌봄의 가치는 그리 높게 평가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지난 팬데믹 시기에 돌봄 공백 및 위기에 대한 이슈가 떠오르면서 돌봄의 가치가 재평가되는 것 같았지만 돌봄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돌봄의 공백은 언제나 존재했다. 돌봄은 주로 여성- 직업상에서 돌봄자는 중년 여성 대대수, 가정내에서 돌봄자도 중년 여성 혹은 미혼 여성-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가족의 형태나 구성원 등의 변화로 인해 이제 남성 돌봄자들도 많아졌다. 그중에는 '영 케어러'일 것이다. 아직 돌봄이 필요한 나이에 돌봄자가 되어버린 영 케어러의 삶은 남녀를 떠나서 참으로 난감해진다. 사회에 제대로 진출하기도 전에 돌봄자로서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에 경력 단절이나 사회 참여를 할 기회가 극히 줄어든다. 영 케어러가 짊어져야 하는 고달픈 현실은 결국 돌봄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그것은 영 케어러 뿐 아니라 돌봄을 감당하는 역할자들에 대한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결국 앞으로 돌봄은 남녀 구분을 넘어서서 같이 감당해야 할 우리 모두의 일이고, 오히려 왜 여성만 짊어져야 되는 일인지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좀 더 나아가서 돌봄을 누군가가 짊어져야 되는 부담이라고 보는 관점도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모두 함께 감당해야 할 몫이죠." (p27, 1장 돌봄의 관계를 상상하다) 이 책은 스무 살 때 쓰러진 아버지를 10여 년간 돌본 경험을 바탕으로 《아빠의 아빠가 됐다》 《새파란 돌봄》 등을 쓴 ‘영 케어러’ 조기현과 국내 최초의 방문진료 전문병원 ‘건강의집 의원’ 원장이자 《처방전 없음》의 저자인 홍종원의 대담을 실었다. 대담 진행은 김경훈 편집자가 맡았는데, 그는 관련 서적이나 기사, 자료 등을 꼼꼼하게 천천히 읽어가며 대담을 준비했고(이 과정을 본인은 비효율적인 준비라고 언급했는데, 그런 비효율적 작업으로 인해 세상을 읽고 해석하는 눈이 하나 뜨였다는 말과 함께 효율이 세상을 지배해서 많은 존재가 소외되고 고통받고 있으니, 돌봄을 이야기하는 책에서만은 비효율적으로 작업하며,세계의 지배원리가 되어버린 효율의 원리를 의심하게 만들면 좋겠다고 했다.) 홍종원 원장은 프롤로그에서 "돌봄이 순환한다면 희망이 보이지 않아도 때로는 괜찮다"고 말하면서 이 책이 "아직은 도래하지 않은 '돌봄이 순환하는 세계'를 함께 상상하고 만들어갈 돌봄의 동료에게 건네는 연서"라고 표현했다. 돌봄이 순환하는 세계를 상상하는 이 의사와 "우리는 돌봄을 사회적 문제로만 접근하는 게 아니라 돌봄 그 자체의 가치를 말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부터 이제까지 우리 모두가 취약하기 때문에, 취약해지지 않기 위해서, 취약해졌을 때 서로 의존하며 살아냈다는 걸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하는 영 케어러 조기현 작가의 대담은 총 5장으로 이루어져있다. 각 장은 각각 돌봄의 관계, 돌봄이 필요한 시간, 돌봄의 동료들과 관계 맺기, 시설과 집의 이분법을 넘어서, 돌봄이 길이 되려면 이런 주제에 관한 대담을 담고 있는데, 눈에 보이는 돌봄의 현실적 문제만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돌봄의 지위와 가치를 만든 배경(배후)까지도 함께 설명한다. 예를 들면, 가장인 남성의 노동은 돈을 벌고 생계를 부양하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받지만, 여성의 가사노동은 돈이 안 되기 때문에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가부장적 인식의 배후가 있다. 돌봄은 생산성이 없어서 가치 없는 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생각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생산성의 논리와 맞닿으며 더욱 돌봄의 가치를 하락시켰다. 돌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회에서 돌봄을 새롭게 사유하고 재평가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고, 현재 닥친 돌봄 공백을 비롯한 여러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될 수도 있다. 돌봄위기사회가 된 한국 사회를 되돌아보며 돌봄의 시간을 어떻게 채워넣을 것인지 고민하고, 좋은 돌봄을 하는 방법과 개개인이 안도감을 느끼는 장소와 사회적 환경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대담은 돌봄을 중심에 둔 사회, 돌봄으로 재구성된 사회로 이행할 방안을 제시하며 긴 여정을 마친다. 돌봄과 공동체에 대한 대안은 현실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은 곳에 있으며 내면의 떨림을 진동시키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움직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대담자들의 이야기가 공동체의 이야기로 퍼져나가기를,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자리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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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까지만 해도 '돌봄' 이라는 개념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왜 돌봄을 이야기하는지, 무엇이 돌봄인지 알지 못한 채 단순히 아픈 사람들을 위한 연대를 형성하기 위한 움직임인가 생각하곤 했더랬다.
그러던 차에 몇 권의 책을 읽은 후 '돌봄' 이라는 언어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의 연대를 구체화한 거란 걸 알게 되었다. 이 깨달음을 얻고 나니, 나 또한 돌봄의 주체이자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이 세상 누구도 혼자 살아갈 수 없음을 다시금 인지하게 되었다.
책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는 나처럼 흐릿한 '돌봄' 개념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삶 속 다양한 돌봄의 형태, 돌봄의 필요성, 돌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돌봄은 과연 운에만 의존해야 하는 것인가? 늙고 아프고 병든 인간은 당연한 듯 형벌과도 같은 사회에서 유리된 삶을 살아야 하는가? 미디어가 사회 내 돌봄 주체를 재현하는 방식에는 문제가 없는가? 이러한 질문에 책 속 다양한 의견들은 목소리 모아 NO 라고 이야기한다. 더불어 우리의 상상력을 가두는 '정상' 신체, '정상' 가족, '정상' 제도, '정상' 국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극진한 비효율성" 을 꿈꾸는 이들이 만들어가는 이상. 그 이상이 만들어낸 따스함과 희망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리라 믿기에, 그 길을 함께 걸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하니포터, 한겨레출판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