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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힐리즘은 허무를 말하지만, 그 허무는 절망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의 공간이다.” 이 책이 독자에게 던지는 첫 번째 메시지이자,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는 철학적 핵심이다. 문성훈 작가의 '니힐리스트로 사는 법'은 니체의 철학에 대한 개론서가 아니다. 경쟁과 피로, 타인의 인정에 목을 매는 현대인에게 존재를 다시 묻고, 삶을 스스로 정의할 수 있는 용기를 건네는 안내서이다. ----- 이 드넓은 우주를 생각하면 무슨 의미와 차이가 있을지도 모를 돈, 학벌, 지위, 외모 등을 따지며, 마치 이런 것들이 우주에서 절대적 가치라도 갖는 양 이에 집착하며 사는 것이다. 44p ----- 우리가 신처럼 떠받드는 돈, 학벌, 지위, 외모. 이 책은 그것을 ‘우상’이라 부르고, 그것이 신의 자리를 차지한 시대를 니체의 시각을 빌려 해체하며 우리의 공허함과 허무함, 방황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다. 니체가 선언한 ‘신의 죽음’은 단지 종교의 죽음이 아니라, 이전 시대에 존재했던 종교, 신, 교리와 같은 절대적 가치의 붕괴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붕괴 이후에야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 ----- 니체가 생각하는 니힐리스트는 삶의 허무함을 강하게 긍정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이를 자기 창조의 기회로 삼는 사람이다. 114p -----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은 세계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새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도서 '니힐리스트로 사는 법'은 니체의 철학을 중심에 두되, 쇼펜하우어의 비관, 사르트르의 실존, 불교의 공과 연기, 장자의 허무, 심지어 아인슈타인 등의 현대 과학과 천체물리학까지 아우르며 철학적 사유의 범위를 확장한다. 단일 사상의 전달이 아닌, 수천 년간 인류가 축적한 지혜를 총동원하여 “왜 우리는 허무를 느끼는가”, “허무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답하려 한다. 특히, 니체의 사상 속 귀족다운 ‘고귀한 자’와 노예같은 ‘비천한 자’의 도덕적, 심리적 차이는 현대인에게 큰 질문을 던진다. 누군가는 타인을 부정함으로써 자신을 높이고, 누군가는 자기 긍정을 통해 삶을 창조한다. '니힐리스트로 사는 법'은 단호히 말한다. 허무속에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나가는 고귀한 '니힐리스트'는 예술작품처럼 스스로의 삶을 구성해야 하며, 타인의 시선은 지옥일 뿐이라고. 인정 투쟁에 갇힌 사회 속에서 ‘니힐리스트’는 가장 자유로운 자가 될 수 있다고. ----- 현대인은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며, 어디에 사느냐 하는 인생의 모든 문제를 스스로 정해야 한다. 159p ----- 그러나 이 자유는 쉬운 길이 아니다. 니힐리스트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룬 4부와, 니힐리스트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5부는 허무를 딛고 존재를 긍정하려는 고통스러운 여정을 보여준다. 극단적인 충동에서 예술적 창조까지, 무의미에서 생의 기쁨까지. 이 책은 철학을 삶으로 가져오려는 사람에게 가장 진지한 실천적 물음을 던진다. 니체의 철학은, '니힐리스트로 사는 법'은 허무를 피하지 않고, 삶의 출발점으로 삼을 줄 아는 이들에게 바치는 선언이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독자에게 닿는다 당신의 삶은 고귀한 삶인가, 노예같은 삶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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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신의 죽음을 선언했다. 니체가 말하는 신은 종교적 의미에서의 신이라기보다, 지금까지 서구 문화가 추구해 왔던 모든 절대적 가치를 대표한다. 따라서 그가 신의 죽음을 선언한 것은 지금껏 모든 인간이 마땅히 따라야 할 절대적 가치로 신봉해 왔던 모든 것이 사실 한낱 허구에 불과하다는 선언이다. 신의 죽음과 함께 이제 인간은 신의 종도 아니고, 돈, 학벌, 지위, 외모 같은 가짜 신의 노예도 아니다. 니체는 현세의 삶을 긍정하고,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자기 창조적 삶을 살라고 말한다. 이것이 니체가 말하는 니힐리스트의 삶이요, 초인의 삶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삶을 무겁게 느낀다. 사람들은 돈이 많은지, 학벌이 좋은지, 사회적 지위가 높은지, 외모가 출중한지로 사람을 평가하고, 등급화하고, 서열화한다. 따라서 누구나 더 높은 서열로 올라가기 위해 무한 경쟁에 몰두할 수밖에 없고, 반드시 경쟁에서 이겨야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삶이 힘들다. 삶이무겁고 힘든 사람에게 니힐리스트로 사는 것은 선택이아니라, 필수다. 니체가 생각한 니힐리스트는 '자유 정신'의 소유자다. 자유 정신은 절대적 진리도 없고, 영원한 사실도 없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자유 정신은 어떤 것도 절대시하지 않고, 그 어떤 절대적인 것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자유로움을 추구한다. 니힐리스트는 세상 만사의 가치를 스스로 정하고,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사람이며, 이를 위해서는 삶을 긍정하고, 삶에 대한 자기 지배를 강화할 수 있어야 한다. 니체는 당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던 것, 당신을 정말로 행복하게 한 것, 그리고 진심으로 존경한 사람 등을 자신 앞에 늘어놓고, 자신이 이런 것을 어떻게 실현할지,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될지 궁리 하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나만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길이며 이렇게 자기 창조적 삶을 산다면, 당신의 삶은 그 누구의 삶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니힐리스트는 인생의 허무나 무의미함을 형벌처럼 안고 살지만, 어떤 절대적인 가치를 통해 여기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삶을 비관하며 괴로움속에서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니힐리스트는 인생과 이 세계의 허무함을 적극적으로 긍정할 뿐만 아니라, 이를 자기 창조의 기회로 삼는다. 인간이 마땅히 따라야 할 삶의 의미, 목적, 가치가 없으니, 이제 인간은 자기 자신의 삶을 마음껏 창조할 수 있다. 저자는 니체를 비롯하여 사르트르, 에릭 프롬 등 다양한 철학자의 의견을 소환하여 니힐리즘을 설명하고, 진정한 니힐리스트로 '노인과 바다'의 노인과 시지프를 예로 든다. 시지프가 무의미함 때문에 고통스러워 삶을 포기한다면 이는 신들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이며 신들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지프가 무의미함에 괴로워하지 않는다면, 더구나 기쁨마저 느낀다면, 시지프는 신들을 당혹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형벌을 내린 신들에게 한 방 먹인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 시지프의 인생은 그의 것이고, 형벌 속에서 살아야 하는 운명 역시 그의 것이 된다. 시지프는 자신이 살아가는 날들의 주인이 된 것이고, 시지프의 기쁨이란 바로 자신의 삶에 주인됨의 기쁨이다. 인생이 허무하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니힐리스트, 시지프처럼 살 수는 없을까? <밑줄 쫙> 하지만 삶의 무게를 느껴보지 못한 사람에게 니힐리즘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삶이 마냥 즐겁고 행복한 사람은 굳이 니힐리스트로 살지 않아도 된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줄 서실 건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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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장점을 철학 책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술술 익혀진다는 점이다. 오히려 엄청난 철학자들의 철학이론과 개념 그리스 신화 부터 노인과 바다 ㆍ윤심덕의 '사의 찬미'까지 철학을 기본으로하여 나라와 도서, 인물, 사회, 종교, 과학 등을 넘나들며 지식과 지혜를 너무도 많은 인용과 비교ㆍ대비ㆍ분석 그리고, 현대 사회 상과 실생활을 적용해가면서 철학의 재미를 더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재미있고 즐거우며 차분하고 편하게 독자를 너무도 쉽게 《니힐리스트로 사는 법》으로 인도 해준다. ㆍ '니힐리스트' 로서의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물음에 차분히 여러가지 길을 보여주고 인도한다. 그것은 여러분이 스스로 '나답게, 나 다운 삶' 을 살라는 것이다. 삶의 이유와 목적을 스스로 창조하는 자기 창조적인 삶 이 세계와 삶의 무의미함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니힐리스트로서의 시간 ✨️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은 앙상하게 뼈만 남은 청새치를 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노인은 낙담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노인은 모든 것을 초월한 채 말한다. "아무것도 아니야, 너무 멀리 나갔을 뿐이야." 노인은 소년과 함께 다시 바다로 나갈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노인은 소년의 곁에서 깊은 잠이 든다. 노인은 사자의 꿈을 꾼다. "파멸당 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어!" 노인에게 인생은 행복하면 살고, 불행하면 죽는 인생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을 초월하여, 그러나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삶을 계획하고, 시도하고, 또 계획하고 시도하는 인생이다 바로 여기에 인간의 존엄함이 있기 때문이다. 니힐리스트에게 허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니라, 삶의 의지를 드러내는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니힐리스트는 세상만사의 가치를 스스로 정하고,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니체가 생각한 니힐리스트는 '자유정신' 의 소유자다. 자유 정신은 절대적 진리도 없고, 영원한 사실도 없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니체는 자유 정신을 뱀이 주기적으로 껍질을 벗고 새껍질을 얻는 '탈피'에 비유를 한다. 탈피하지 못하는 뱀이 죽을 수 밖에 없듯이, 자신의 신념을 바꾸지 못하는 인간은 인간의 정신 역시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각 개인의 삶의 조건이 다르듯 각자가 추구하는 목표가 달라지고 각자가 창조한 모습이 달라지면 이제 각 개인은 타인과 구별되는 고유성을 가진 존재가 된다. 그 누구와 비교될 수도, 그 누가 대체할 수도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다. 이것이 각인각색의 사회이고 개인이 무한한 가능성을 발휘하는 사회이다. ㆍ 개인적으로도 40여년을 읽고 담고 쓰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무엇을 담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표현하느냐? 도 대단히 중요하다 담는 것은 글과 말(言)이요 표현하는 것은 행(行)이라 할 수 있다. 즉, 언행일치(言行一致) 지행합일(知行合一) 이다. ㆍ 물론 니힐리스트에 한정된 담론(談論) 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 책이 이렇게 재미있고 쉽게 읽혀지게 된 것은 문성훈 교수의 필력일 것이다. 이 책에는 저의 생각과 질문으로 빼곡히 채워진 나의 또 다른 시간이기도 해서 행복하다 라고 전합니다. 담고 싶고, 쓰고 싶은 글들이 너무나 많아서 무엇을 어떻게 담아야 하느냐? 라는 고민이 행복한 책이였다고 감히 전해드리며 ~ 이 책은 글들은 다시 필사하고 담아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스스로에게 다짐을 해본다. ✨️ 이 도서는 @woojoos_story 서평단으로 참여해서 @isonomia6 로 부터 제공받아 쓴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ㆍ #책소개 #철학 #니체 #삶이무겁고힘든사람에게 #니힐리즘 #니힐리스트로사는법 #문성훈교수 #철학에세이 #우주서평단 #이소니미아 #철학의재미 #행복한독서 #책읽는시간 #책읽는즐거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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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신은 죽었다.” 니체의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아 모든 것을 신의 뜻이라고 믿었던 것에서 벗어나자는 말이구나. 라며 막연하게 종교가 곧 진리였던 시절의 종말을 고하는 말이라고 이해했었다. 하지만 철학책을 몇권 읽고 나서는 저 말이 대변하는 니힐리즘(허무주의)가 인간이 마땅히 따라야 할 그 어떤 삶의 목적이나 가치도 존재하지 않고, 이 세계 역시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이 존재하며, 그저 무의미한 생성, 변화, 소멸만이 반복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힘든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방법이 바로 이 세상에 의미를 하나 둘씩 부여하며 나에게 소중한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인데 저렇게 모든 것을 부정해 버리면 삶을 살아가기가 너무 재미없고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두발 붙이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입장에서 공감하기 힘들었다(아니 하기 싫었다) 하지만 #니힐리스트로사는법 (#문성훈 씀 #이소노미아 출판)에서는 니힐리즘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모든 것이 의미없다는 것이 아니라, ‘신’은 종교적 신이 아니고 이 세상의 다수들이 모여 옳다고 만들어놓은 ‘절대적으로 보이는’것들을 의미한다며, 그러니 세상의 기준에 맞추지 말고 스스로가 납득하고 소중히 여길만한 것을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허무주의, 니힐리즘이라 말한다. 그래서 니힐리스트란, 세상만사가 다 허무하다고 보고 삶을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허무함을 강하게 긍정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이를 자기 창조의 기회로 삼는 사람이다. 자기 삶의 주인이며, 세상만사의 가치를 스스로 정하는 고귀한 사람인 것이다. 철학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왜?’라는 끝없는 물음이었다. 소크라테스도 하루종일 답보다는 ‘질문’을 하는데에 시간을 뷰냈다. 단 하나의 답을 구하기 위해서. 그렇게 철학도 이 세상에 ‘원래 그랬어’라는 이유로 막연하게 진리라 여겨졌던 것들에 왜?라는 의문을 가지면서 점점 발전해 나갔지 않은가. 그렇게 따지면 니체뿐만 아니라 철학의 다양한 학자와 이론들이 이렇게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어내며 세상을 재창조해내는 니힐리즘에 준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니힐리스트로 사는 법>은 그래서 니체뿐만 아니라 데카르트, 마르크스, 사르트르 같은 서양철학자 뿐만 아니라 공자, 장자, 노자 등 동양의 철학자들도 가져와서 실제 우리 삶을 스스로 규정하는 것들에 대해, 니힐리스트로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만한 방법들을 알려준다. 특히나 문학 작품들의 예를 보여주면서 ‘허무’가 삶의 종말이 아니라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여러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우리가 예술에 열광하는 이유도 아마 우리의 삶이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은 그것을 창조한 예술가의 삶에 대한 철학이 담겨져있다. 어떤 사건이 인생에서 벌어지면 그것을 자기만의 생각과 기준으로 받아들이며 번역한다. 그리고 그 번역한 것을 예술로 만들어낸다. 그 예술은 당연하게도 기존과 다르다. 그럼에도 수십년 수백년을 살아남아 현대인들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공감받는 것이 먼저가 아니다. 나만의 기준으로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세상에 두발을 딱 붙이고 걸어나갈 수 있는 힘이 되도록 세상을 나만의 방식으로 소화해내는 것.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인생을 예술가처럼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존재의 미학이자 니힐리스트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어느정도 세상을 인식하고 기억나는 순간부터 계속해서 무언가를 배우고 경쟁해온 우리다. 나도 덧셈, 뺄셈을 배우면서 엄마에게 꿀밤을 맞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상대적으로 빠른 암산 속도를 가지기 되었지만 그것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다 널위해서 그런거다라고 하지만 과연 그런지 확실치 않은 것들이 제법 떠오른다. 이 책은 그런 것들을 명확하게 구분할 기준을 가질 수 있게 한다. 그로인해 내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을 배우고 깨닫는데에만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눈 뜬 모든 순간을 내 기준으로 나에게 유의미한 것으로 꽉 채우게 해주는 가이드라인 같은 책이다. 앞으로의 인생 예술처럼 멋지게(죽이게)살고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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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joos_story 모집 #이소노미아 도서 지원으로 우주클럽_철학방 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우리는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한 경쟁사회에 돌입했다. 더 나은, 더 좋은, 더 높은, 더 출중해 지기 위한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중압감에 시달리며 패배감과 열등감, 자책감에 삶을 버리기 시작했다. 니힐리즘, 이제 청년들뿐만이 아닌, 대한민국 사람들 모두에게 니힐리즘을 말한다. 사람을 평가하고, 등급화 서열화는 과연 누가 평가하고 누구의 기준일까. 허무를 긍정으로, 허무를 삶의 출발점으로 기준을 바꾸어보자. '니힐리즘의 도래'를 예언한 철학자, 니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니체가 말하는 신은 종교적 의미가 아닌, 문화가 추구해온 절대적 가치를 대표한다. 절대적으로 신봉해 왔던 가치가 한낱 허구에 불과하다는 선언이었다. 내가 나의 삶의 주인이 아니라면, 나의 삶은 나 외의 그 무엇에 의해 조정되고, 지배당하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나는 나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위해 존재하는 '노예'가 될 뿐이었다. 니체는 이런 운명에 절망하거나 낙담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긍정하라고 말한다. 삶의 이유와 목적을 스스로 창조하는 자기 창조적 삶을 살라고,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니힐리스트의 삶을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고귀한 니힐리스트가 되기 위해서 자신의 '자기 창조적인 삶'뿐만 아니라, '타인의 자기 창조적 삶'도 인정과 배려, 협력하려는 도덕적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경쟁사회에서 니힐리스트로 매일을 살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나의 삶의 목적과 가치는 내가 창조할 수 있다는 생각, 이것으로 족하다. 아모르파티. 오늘도 [나다운, 너무나 나다운 삶]을 찾길 바란다. 니체가 전하는 철학은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위로였다. '삶이 무겁고 힘든 현대인'에게 타인의 노예가 아닌 나의 삶의 주인공이 되라고한다. 남의 시선보다 나를 중심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삶, 허무주의를 니힐리즘으로, 니힐리스트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니힐리즘은 마음의 위안과 치유로 순간순간 다가오는 삶의 무게를 덜어내도록 도울 것이다. #니힐리스트로사는법 #니힐리스트 #문성훈 #철학 #우주서평단 @woojoos_story #이소노미아 @isonomia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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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힐리스트로사는법 #문성훈 #철학 #우주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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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힐리스트로 사는 법』은 서울여대 철학과 문성훈 교수의 철학 에세이로 니힐리스트로 살아온 경험과 니힐리스트 철학자로서의 생각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니힐리스트로 사는 법은 니체의 사상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니체가 생각한 니힐리스트란 '자유 정신'의 소유자다. 자유 정신이란 절대적 진리도 없고, 영원한 사실도 없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니체는 자유 정신을 뱀이 주기적으로 껍질을 벗고 새 껍질을 얻는 '탈피'에 비유하는데, 탈피하지 못하는 뱀이 죽을 수밖에 없듯이 자신의 신념을 바꾸지 못하는 인간의 정신 역시 죽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니힐리즘은 흔히 허무주의로 번역되는데, 허무주의라는 번역어는 인간 삶과 세상만사가 다 허무하다고 들리게끔 한다. 그러나 니체가 말한 니힐리스트의 삶은 그런 것이 아니다. 삶에는 그 어떤 목적도 이유도 없지만 이것은 오히려 삶의 무한한 가능성과 지속적 자기 창조의 기회가 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진정한 니힐리스트란 세상만사의 가치를 스스로 정하고,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사람이며, 이를 위해 삶을 긍정하고, 삶에 대한 자기 지배를 강화할 수 있는 사람이다. 현직 철학과 교수님이 쓴 책이라 그런지 이 책은 아주 쉬운 서양철학 교양강좌처럼 읽혔다. 이 책은 노자 『도덕경』, 『장자』, 불교 철학의 '연기' 개념, 공자의 『논어』 등 동양의 철학과 사상도 소개하지만, 서구의 철학 중심으로 쓰였다. 니체의 철학을 중심에 두고 스피노자, 고대 그리스 소피스트, 미국의 현대 철학자 마이클 왈처, 쇼펜하우어, 플라톤, 중세 기독교 성직자, 마르크스, 헤겔, 키르케고르, 에리히 프롬, 사르트르, 애덤 스미스, 악셀 호네트, 카뮈, 푸코, 토마스 쿤, 에밀리 로티, 존 롤즈 등 다양한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이 호출된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와 포도』,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카뮈의 『시지프 신화』, 중국 당나라 시대의 한시들도 인용된다. 이 책에서 반복하여 이야기하는 니힐리스트로 사는 법은 미셸 푸코의 존재의 미학과 존 롤즈의 정의의 원칙과도 맞닿아 있다. 삶의 다양성이 인정받는 사회에서 각자가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자기 창조적 삶을 사는 것, 어떤 특정한 삶의 목표나 가치가 특권화되지 않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정상-비정상, 옳고-그름의 이분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 이것이 책의 지은이가 바라는 사회이자 니힐리스트로서의 삶이다. @woojoos_story 모집, #이소노미아 출판사 도서 지원으로 #우주클럽_철학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니힐리스트로사는법 #문성훈 #이소노미아 #철학 #우주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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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우주님 @woojoos_story 모집, 이소노미아 출판사 도서 지원으로 #우주클럽_철학방 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매일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남들이 정해놓은 성공의 기준에 맞춰 살아야 할까, 아니면 내 방식대로 살아도 괜찮을까? SNS에서 보이는 타인의 화려한 삶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끝없는 경쟁 속에서 지쳐가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런 질문이 고개를 든다. ‘도대체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는 비슷한 감정을 품고 살아간다. 정해진 틀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안전하다고 여기면서도, 동시에 그 틀이 주는 답답함을 느끼는 모순적인 상황 말이다. 때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어지기도 하고, 다른 삶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기도 한다. 문성훈 교수의 『니힐리스트로 사는 법』은 바로 이런 고민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니체의 철학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서, 삶의 무의미함을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진정한 자유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니힐리즘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 인상과는 달리, 이 책에서 제시하는 니힐리스트는 허무함 속에서도 자신만의 의미를 창조해내는 적극적인 존재이다. 저자가 제안하는 해결책은 의외로 단순하면서도 혁명적이다. 기존의 가치 체계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말고, 스스로가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라는 것이다. 돈, 학벌, 지위, 외모 같은 사회적 기준들을 신처럼 받들지 말고, 나만의 가치관을 세워나가라고 조언한다. 이것이 바로 니체가 말한 '자기 창조적 삶'의 핵심이다.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저자가 단순히 이론만 늘어놓지 않기 때문이다. 동서양의 다양한 철학자들의 사상을 넘나들며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한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처럼, 모든 것을 잃었어도 다시 바다로 나가는 의지를 보여주거나, 카뮈가 그린 시지프처럼 무의미한 반복 속에서도 자신만의 기쁨을 찾아내는 모습을 통해 니힐리스트의 삶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신의 죽음' 이후의 세계이다. 전통적인 가치관이 흔들리고, 절대적인 기준이 사라진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의 기준에 의존해서 살기보다는, 스스로 의미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수확은 '허무함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삶이 본질적으로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다. 더 이상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고, 정해진 답을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대신 나만의 답을 만들어가는 창조적인 삶이 시작된다. 만약 당신이 지금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다면, 이 책이 하나의 나침반 역할을 해줄 것이다. 완벽한 해답을 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질문하는 방법은 알려준다. 그리고 때로는 좋은 질문 하나가 백 개의 답보다 더 소중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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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8. 1. 작성 글. #협찬 니힐리즘과 아모르 파티 1. 아모르 파티.. '아모르 파티'를 들어보셨나요?? 노래 제목이나.. 가사로 들어 본 분도 계실테죠?? (거기서 처음 들어본 사람..?!! 바로.. 접니다. ㅋㅋㅋㅋㅋ) 어떤 단어든, 그 어원을 찾아보면.. 조금 더 뜻이 명확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모르 파티는 라틴어에서 온 단어인데.. 아모르(사랑) + 파티(운명) 의 합성어 입니다. 한자로는 '운명애' 라고 번역되고.. 한글로 풀어서 쓰면 '운명에 대한 사랑' 쯤으로 보통은 해석되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종종 제 글에서.. '끌어당김의 법칙'과 '자기 충족적 예언'을.. 구분하곤 했었는데요.. (종종 까칠하게 구분했지만.. 이제는 부드러워지려고 합니다.) 둘의 차이를 다시 지금 비교해서 적는다면.. 이렇게 적을 수 있겠습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의 경우..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생각이 사람의 삶에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경험을 가져온다는 신사상 영적 믿음' 입니다. (출처: 위키백과, 디테일 생략..) 자기충족적 예언(자기실현적 예언)의 경우.. '사람의 믿음이 (긍정적인 방향이든, 부정적인 방향이든)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사회심리학적 현상의 한 예' 입니다. (출처: 위키백과, 디테일 생략..) 단순화 시켜 본다면.. 믿음과 현상의 차이.. 입니다. 믿음이 가끔 현상이 되어 나타나기도 할테지만.. 이건 명확한 '인과관계'라고 보기 어렵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반면, 현상의 경우.. 인과관계가 보다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 행동경제학을 떠올리면.. 조금 더 이해가 쉽게 됩니다. 작은 넛지 하나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생각보다 많은 현상의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보다.. 본능적으로 잘 이끌리곤 합니다. (의식하지 않는다면 더요...) '운명에 대한 사랑'은.. 약간 '끌어당김의 법칙'에 더 가깝다고 느껴집니다. 마치 이런 거죠.. "운명을 사랑해!! 그럼 다 잘 될거야!!"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 '아모르 파티'는 이것 보단.. "인간은 운명 앞에서 별 수 없어. 받아들이고, 너만의 사랑(혹은 의미)을 찾아!" 흠... 조금은 억지스러울까요?? --- 2. 니힐리즘.. '니힐리즘'을 들어보셨나요? 니힐리즘은 無(없을 무)를 의미하는 라틴어 nihil(니힐)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허무주의'로 번역되는데.. 원래 뜻과 비교할 때 차이가 너무 커서 이 책에서도 '니힐리즘'으로 그냥 사용됩니다. 니힐리즘의 원래 뜻은.. "기존의 가치, 도덕, 의미를 전면 부정하는 철학적 관점" 에 더 가깝다고 느껴집니다. (출처: 네이버 AI 브리핑..) 범용적으로 사용된 맥락을 생각하면... 분명 원래 뜻에 더 납득이 됩니다. '허무주의'는 너무 단순화 시킨 것 같아요. (저만 그런건지 모르겠으나.. "허무하다." 라는 말이 뭔가 무력함을 상징하는 것 같아서.. 그리고 감정이 섞인 것 같아서.. ;;;;) "신은 죽었다." 라는 니체의 말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말일테고요... 모태 무신론자였고.. 딱히 종교에 대해 깊게 생각한 적도 없이 오랜 기간을 살아왔기에 어쩌면 더.. '니힐리즘'에 끌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 느껴진 의식의 흐름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떤 의식의 흐름이 담겼는지.. 첨부파일로 공유드립니다.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끝!! #니힐리스트로사는법 #문성훈교수 지음 #이소노미아 출판사 "운명이란 그런 것이다. 바라보는 것이다." #릴케 #두이노의비가 (오늘부터) #니힐리스트 #아모르파티 #북스타그램 #바닿늘 비슷한 주제의 글은.. #바닿늘철학 #우주서평단 @woojoos_story 모집, @이소노미아 도서 지원으로 #우주클럽_철학방 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아래에서부터는 해당 책의 내용을 일부 발췌하여 (최소한으로) 수정 되었습니다. 삶이 무겁고 힘든 사람, 니힐리스트로 사는 법(프롤로그) 오늘날 많은 사람이 삶을 무겁게 느낀다. 세상이 얹어놓은 짐 때문에 중압감에 시달린다. 한국 사회만 해도 우리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들이 많다. 어렸을 때 귀가 따갑도록 들은 말이 있다. "열심히 공부해, 그래야 돈 벌고 출세하잖아!" 사람들은 돈이 많은지, 학벌이 좋은지, 사회적 지위가 높은지, 게다가 외모가 출중한지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고, 등급화하고, 서열화한다. 따라서 누구나 더 많이 벌기 위해, 더 좋은 학벌을 위해,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위해, 더 출중한 외모를 위해 무한 경쟁에 몰두할 수밖에 없고, 반드시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삶이 힘들다. 경쟁의 승자는 돈, 학벌, 지위, 외모를 과시하며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양 우월감에 빠져 살 테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패배감은 물론 열등감과 자책감에 시달린다. 이 때문에 삶을 버리는 사람도 많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다. 그중에서도 2030 청년 세대의 자살 비율이 제일 높다. 우리나라 청년들은 삶을 시작하자마자 삶을 버리고 있다. 나는 이들에게 니힐리스트로 사는 법을 말하고 싶다. 니힐리즘이 청년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나는 한국 사람 모두에게 니힐리즘을 말하고 싶다. 한국 사회에서 승자의 기쁨만 만끽하며 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경쟁이 치열하면 아무리 승자라 해도 그 누군가에게는 패자이고, 경쟁이 치열하면 그만큼 서열화가 강화되어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사람은 점점 소수가 된다. 과연 이렇게 살아야 할까? 돈, 학벌, 지위, 외모가 과연 사람을 평가하고 등급화하고 서열화하는 절대적 가치일까? 더 나아가 이 세상에 인간의 삶을 평가할 절대적 가치라는 것 자체가 존재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말하는 니힐리스트로 사는 법은 니체의 사상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러나 이 책이 단순히 니체의 사상을 소개한 책은 아니다. 내가 니힐리즘에 대한 니체의 통찰과 니힐리스트로 사는 법에 대한 그의 혜안을 수용하지만, 그의 사상 전체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나는 특히 주인과 노예, 귀족과 무리, 강자와 약자, 고귀한 자와 비천한 자를 나누는 그의 엘리트적 사고방식에 반대한다. (…) 나는 그런 세속적 가치들이 마치 신처럼 추앙되며 인간을 짓누르는 절대적 짐이 된 오늘날,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포하듯, 이런 가치들의 죽음을 선포하고 싶다. 나는 어려서부터 니힐리스트였다. 지금은 철학 교수지만, 많은 순간 니힐리스트로 살았다. 이 책에는 니힐리스트로 살아온 나의 경험과 니힐리스트 철학자로서의 내 생각이 담겨 있다. p. 18~21 니체와 니힐리즘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내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일종의 전율을 경험했다. 그것은 니힐리즘과의 만남이었다. (…) 니힐리즘이란 인간이 마땅히 따라야 할 그 어떤 삶의 목적이나 가치도 존재하지 않고, 이 세계 역시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이 존재하며, 그저 무의미한 생성, 변화, 소멸만이 반복된다는 철학적 입장이다. 나는 이러한 니힐리즘을 통해 당시 나의 고민의 정체가 결국 니힐리즘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니힐리즘을 통해 나의 고민을 표현할 수 있는 철학적 언어를 알게 된 셈이다. 니체는 왜 니힐리즘을 주장했을까? 사실 니체가 니힐리즘을 주장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니체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가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면, 니힐리즘을 주장하진 않았을 것이다. (…) 그가 기독교인이었다면, 이 세계는 신이 창조한 것이며, 따라서 이 세계는 신의 섭리에 따라 운행하고, 인간은 신의 뜻에 따라 구원에 이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었을 것이다. 더구나 기독교에서 구원이란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과 행복을 보장하지 않던가! 그러나 니체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신의 죽음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니체의 「즐거운 학문」에는 신의 죽음을 선언하는 유명한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니체는 밝은 대낮에 등불을 켜 들고 광장에 나타난 미친 사람의 입을 통해 신의 죽음을 선포한다. 나는 신을 찾는다. 나는 신을 찾는다. 신은 어디로 갔는가? 신이 사라졌나? 신이 아이처럼 길을 잃었나? 아니면 신이 숨기라고 했나? 나는 말한다. 신은 죽었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 당신들은 신의 시체가 부패하는 냄새를 맡지 못하는가? 지금 이 교회들은 신의 무덤과 묘비가 아닌가? 나는 당신들 앞에서 신의 영혼을 기리는 진혼곡을 부른다. ㅡ 니체, 「즐거운 학문」, 니체 전집 12, 책세상, 199-201쪽, <125. 광인> 축약 이렇게 니체는 신의 죽음을 선포하지만, 니체가 단순히 기독교 신을 부정하거나 자신이 무신론자임을 공포한 것은 아니다. 서구 문화에서 신이란 어떤 존재인가? 서구 문화에서는 중세까지만 해도 신은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최종 근거였다. 인간은 절대적이고 영원히 살아갈 때, 그 삶은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인간이 절대적 가치인 양 추구하는 것들은, 그것이 진리이든, 정의이든, 도덕이든, 결국에 가서는 신을 최종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많은 사람은 절대적이고 영원한 존재인 신에 대한 믿음을 상실했고, 신의 영향력 또한 사라졌다.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언한 것은, 신이 지배하던 중세 시대가 붕괴한 후 신의 존재가 점차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 인간은 본능에 따라 사는 동물과 달리 삶의 의미와 가치를 묻는다. "어차피 죽을 것 왜 살지?" 인간은 이렇게 삶 자체를 문제 삼는다. 그렇기에 인간은 삶이 아무리 괴로워도, 이 괴로움에 의미가 있다면 이를 견딘다. 그러나 아무런 의미 없이 괴롭기만 하다면 인간은 차라리 삶을 포기할지도 모른다. 기독교 교회는 흔히 내세의 구원을 말하며,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도록 설교한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이 사는 의미이자 목적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지금까지 삶의 의미와 가치, 그 방향까지 제시했던 바로 그 신이 죽었다는 선포는 삶 자체를 문제 삼는 인간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이제 인간은 삶의 의미, 가치, 방향 모두가 사라진 무(nihil)의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니힐리즘(nihilism)이다. (…) 나는 사춘기 시절의 나의 고민이 바로 니힐리즘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니힐리즘은 나의 고민을 표현할 철학적 언어일 뿐 해결책은 아니었다. 나는 나의 고민이 니힐리즘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면서 오히려 더 많은 고민을 갖게 되었다. 인간이 따라야 할 그 어떤 삶의 목적, 가치, 의미도 없다면, 이 세계가 그저 생성, 변화, 소멸이 반복되는 무가치한 세계라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회도 도덕도 법도 정의도 다 필요 없는 것일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까? 그리고 내가 지금껏 인간과 사회와 자연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다 허구일까? 나는 이 모든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나는 철학의 길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한때는 철학과 학생으로 지금은 철학 교수로 여전히 철학을 하며 산다. 그간 내가 무엇을 배웠고, 어떤 생각에 도달했든, 변함없는 사실은 이 모든 것이 결국 사람이 창조한 것일 뿐, 인간의 삶과 이 세계가 지금처럼 원래 그렇다는 것도,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p. 52~60 한도 끝도 없는 무한한 우주를 생각하면 티끌보다 작은 지구에서 티끌도 안되는 인간들이 서로 옥신각신하며 싸우고, 싸움이 커지면 폭력이 난무하고, 전쟁도 불사하고, 세계 대전까지 일어난다. 지금은 핵 전쟁으로 아예 인류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무한한 우주의 눈으로 보면 현미경으로 살펴보아도 찾을 수 없는 미미한 존재들이 이러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한마디로 우습지 않은가? 물론 우주가 제아무리 넓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 내 눈앞의 사소한 이익이라도 이게 제일 중요한 게 인간이다. 그러나 우주의 눈으로 보면 우리에게 아무리 큰 문제라도 작아 보인다. 따라서 무한한 우주를 생각하면 그만큼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p. 81~82 아모르파티 니힐리스트에게 인생이란 아름다울까? 고통뿐일까? 니힐리스트는 어떻게 인생을 살까? 나에게 니힐리즘이란 말을 알려준 니체는 많은 글을 썼고, 많은 생각을 남겼다. 나는 니체 전집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니체의 사상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나의 마음속에 각인된 한마디 말이 있었다. 나는 이 말을 통해 니체적으로 사고하고, 니체적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니체의 저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라는 책 제목을 빌자면, 나는 이 말이 '니체적인, 너무나 니체적인 것'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것은 '아모르 파티'다. 아모르 파티(amor fati)는 우리말로 '운명 애'로 번역된다. 말뜻만 보면 아모르 파티는 운명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이 운명이 앞으로 무엇을 하게 될지 인생의 과정마저 정해져 있다는 걸 뜻하지는 않는다. 니체는 이 세상이 존재하는 데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고, 인간의 삶이 따라야 할 그 어떤 이유도 목적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니체가 말하는 인간에게 닥친 운명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운명에 절망하거나 낙담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긍정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 삶의 이유와 목적을 스스로 창조하는 자기 창조적 삶을 살라고 말한다. 따라서 운명을 사랑하라는 것은, 이 세계와 삶의 무의미함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니힐리스트의 삶을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세계와 삶을 무의미하게 보는 니힐리스트에게 니체는 왜 자기 창조적 삶을 살라고 말할까? 니체는 쇼펜하우어와 마찬가지로 인간에겐 누구나 삶의 의지, 즉 살려는 의지가 있다고 본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치고 살지 않고, 죽으려는 사람도 있을까? 물론 사는 것이 고통스러운 사람도 있고, 그래서 삶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에게도 삶의 의지가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 사람은 삶의 의지가 없는 게 아니라, 삶의 의지를 실현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p. 96~98 어차피 죽을 것인데 왜 살지? 이런 질문에 아무런 답도 내릴 수 없다면, 인간이 아무리 삶의 의지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삶의 이유나 목적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이 삶의 이유나 목적을 찾기 위해서는 죽음의 설교자들이 말하는 참된 세계나 천국이 필요하다. 그러나 반대로 이는 삶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참된 세계나 천국에 관한 이야기는 현재 인간의 삶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절하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삶의 주인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설교자들에게 순종하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이 살면서도 삶을 부정하는 자기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그것이 바로 아모르 파티, 즉 이 세계와 삶의 허무함을 긍정하는 데서 시작한 자기 창조적 삶이다. 그러나 아모르 파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니힐리즘에서 출발한 자기 창조적 삶은 지금까지 사람들이 절대적 가치를 부여한 모든 것을 부정할 수밖에 없으며, 이 절대적 가치에 대한 복종이 주는 안도감을 거부하고, 영원한 세계의 유혹마저 떨쳐버릴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길에서 인간은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무한한 삶의 가능성을 해방하며, 자기 삶의 주인이 될 뿐만 아니라, 누구도 대신할 수도 누구와 비교될 수도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로 거듭난다. 이런 점에서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 아모르 파티가 '인간의 위대함'이 발휘되는 공식이라고 말한다. p. 104~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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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삶은 어렵다. 그래서일까, 어려운 삶을 건너는 데 도움이 될 사상가들과 철학자들의 생각이 점점 더 주목받고 있다. 『니힐리스트로 사는 법』은 철학을 전공한 철학자이자 교수인 문성훈 저자가 ‘니힐리즘’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니체의 철학을 알기 쉽게 풀어낸 교양 철학서이다. 니힐리즘은 삶의 본질에 아무런 목적이나 이유, 가치가 없다고 보는 철학적 입장이다.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하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니체의 니힐리스트는 단순히 허무주의에 빠진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 허무함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창조해가는 사람이다. 삶의 무의미함을 ‘무너짐’이 아닌 ‘기회’로 삼는 태도다.
처음엔 다소 낯설고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는 니힐리즘의 개념이지만, 저자의 친절한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문성훈 저자는 니체의 철학을 중심축으로 삼되, 공자·장자·노자와 같은 동양 사상가들, 그리고 데카르트·마르크스·사르트르·푸코 등 다양한 서양 철학자들의 사상을 유기적으로 엮어낸다. 이 과정에서 철학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주제가 실제 삶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특히 푸코의 ‘존재의 미학’ 개념을 소개하며, 일상의 행동 하나하나를 예술가처럼 살아가야 한다는 철학은 니힐리즘의 부정성을 넘어선 실천적 가능성을 열어준다. 푸코의 말처럼, “자기 삶의 창조자”가 된다는 것은 결국 자기만의 방식으로 의미를 만들어가는 용기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며 내 안의 ‘삶의 가치관’이 정말 나의 것인지 되돌아보게 됐다. 과연 내가 중요하다고 여겨온 것들이,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목소리에서 비롯된 것인지 성찰하게 된다. 또한 진정한 니힐리스트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단지 생각을 바꾸는 것을 넘어, 지속적인 실천과 용기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니힐리스트로 사는 법』은 허무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토양 삼아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철학적 격려다. 이 책을 통해 나 역시 삶의 방향을 조금씩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고, 무엇보다 ‘스스로의 의미를 창조하는 삶’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누구나 니힐리스트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니힐리스트로 살아갈지를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woojoos_story 모집, #이소노미아 출판사 도서 지원으로 우주클럽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협찬 #서평 #독서 #책추천 #철학 #철학책추천 #베스트셀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