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마치 민간요법의 과학적 지침서 같다. 우리 주변에 널린, 출처가 불문명한 민간 요법들 중엔 하나마나 한 것, 놀랍게 효과가 뛰어난 것이 있는가 하면, 그 요법을 썼다가 잘못하면 병을 깊게 하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게 하는 엉터리 비법들도 있다. 어디선가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그게 뭔지 정확히 모르는 것들, 어떻게 써야하는지 애매한 것들을 작가는 요연하게 차근차근, 민간요법 중 쓸것과 버릴 것을 정리해 과학적 근거에 입각해 설명하듯 동화와 민담, 역사 속 인물과 자신의 경험을 들어 삶의 어려울 때, 기쁠 때를 어떻게 넘겨야 하는지 유쾌하게 얘기를 들려준다. '역사 에세이스트'가 왠 자기계발서? 했다가 역사가 자기계발의 가장 기본 항목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긴 세월 살며 산전수전 다 겪었으니 지금쯤이면 힘든 일은 이제 종지부 찍고 편안한 시간만 있으리라 생각하던 나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일들을 줄줄이 겪으며 인생에 배신당한 느낌이 들었다. 힘든 일 다 하면 해피엔딩-엔딩이란 뭔가 '끝'아닌가-이어야 하는데 어째 점점 더 힘든 일들이 생기니 말이다. 가끔 자려고 누워 이생각 저 생각하면 사는게 무서워 잠이 안오기도 한다. 이런 내게 저자는 동화 속 공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못된 계모 왕비나 마녀의 위협을 받던 아름다운 공주는 그들을 물리치고 늠늠한 왕자를 만나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다고 해피엔딩! 그러나 그녀들이 정말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을까 묻는다, 실제 역사 속 왕과 왕비들 예를 들어.
왕자는 시간이 지나 배불뚝이 아저씨가 되어 정부를 두고 이여자 저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아니면 전쟁에 나가 전사해 왕비는 포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왕비는 아픈 마음 달래며 늦바람난 왕을 기다리기도 하고, 시신이 되어 돌아온 남편의 장례를 치루고 남은 군사를 모아 복수에 나서기도 하고, 재혼하여 왕국을 먹어치우려는 공작의 협박에 정치력을 발휘하여 왕위를 지켜내기도 한다. 과거에 한번 위기를 극복해 승리를 맛보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인생의 영원한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정한 해피엔딩은 과거 해피엔딩의 경험으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여 새로운 해피엔딩을 이뤄내는것. 내 인생의 엔딩 타이틀이 내릴 때까지 해피엔딩. 개고생 후 다시 해피엔딩! 오호, 인생의 해피엔딩은 한번이 아니구나! 개고생은 해피엔딩의 필수 요소로구나!
저자가 얘기해 주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친정엄마와 나-나와 아들애, 나와 시어머니-시어머니와 남편의 관계를 생각해보게 한다. 어린시절 재미있게 읽었으나, 엄마를 호랑이에게 잡아 먹히고 하늘에 올라 해와 달이 되는게 슬픈 일인지 기쁜 일인지, 교훈도 깨달음도 모르겠는 전래 동화는 어디다 쓰는걸까 이상했다. 고개 하나 넘을 때마다 호랑이에게 있는 것 다 내주고 결국 잡아먹히는 엄마, 엄마인 척하며 아이들을 잡아먹으려는 호랑이. 하늘로 도망쳐 해와 달이 되는 아이들. 그 짧은 얘기에서 숨은 의미를 해석해내는 작가의 통찰력이 놀랍다. 나는 부모와 자식의 숙명이 그 안에 있는 것인지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내 아이를 하늘의 빛나는 해와 달이 되게 하려는 세상의 많은 부모들에게 얼마나 큰 교훈이 되는 얘기인지!
아들애에게 알려줘야겠다, '여우 누이'를 가까이 하지 말라고. 사회와 불화하는 내가 다시 읽을 동화 '돌맹이 수프를 맛있게 끓이는 방법'-사람들이 나서서 나를 돕게 만들라. 남편과 내게 필요한건, 소통-다리가 아니라 목소리일세-인어공주.......저자는 우리에게 '삐딱해도 괜찮다'고 말하지만 삐딱한 그의 시선은 곧다. 삐딱하게 여유를 가져도 삶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곧고 유쾌하다. 그래서 그 유쾌한 처방을 따라가다 보면 꼬이고 답답한 인생의 문제들을 다시 볼 여유가 생긴다.
맘에 안들고 걱정거리 많은 나날들, 작가의 방법을 나도 써본다. 리~디큘러스! 눈물은 웃음으로 닦는 법!
|
|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꿈보다 해몽'이란 말이다. 이 책에는 명작동화나 신화, 민담에 바탕을 든 52가지의 이야기들이 소개된다. 대부분 많이 알려진 것들이다. 그동안 나는 이 이야기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교훈이나 의미에 대해 전통적 프레임을 통해 모범답안처럼 배워 왔다. 그런데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해몽하는 저자의 이야기 풀이는 범생이었던 나로서는 듣지도,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것들이다. 기묘하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역시 꿈보다는 해몽이다. 어떤 프레임에서, 그리고 누구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보느냐에 따라 같은 이야기도 완전히 다른 것처럼 다가온다. 수없이 반복된 저자의 명작동화 읽기와 삐딱하게 세상보기의 생활화가 이런 분석을 가능하게 했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저자는 <인어공주>를 바보같다고 생각하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무섭다고 해석하며, 구미호 설화에 나오는 <여우누이>는 남친에게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는 여친의 모습이라고 해석한다. 그 동안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수많은 이야기들을 조금 색다른 각도에서 자세히 들여다 봄으로서 표면에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의미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국 저자는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면서 무엇을 보고, 듣고, 읽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는 점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셈이다. 반복독서, 조금 독특하고 삐딱한 시각에서의 다상량이 오늘날 우리들의 삶에 지혜가 될 수 있는 교훈을 찾을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다양한 옛날 이야기 속에서 발견한 저자의 인생철학은 결국 내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점이다. 내 인생은 나답게 살면 된다. 나답게 살고 싶다면 남들과 다른게 생각하고, 남들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없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추구하자. 세상에 휘둘리거나 변명하지도 말자. 스스로 읽고 고민하고 따지면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자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예스24 블로그 동료분이다. 지금까지 그 내공의 깊이를 잘 몰랐었는데 책을 읽어보니 개인적 배경과 생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문들까지 이해하게 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여기 소개된 내용 하나하나는 직접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자세히 소개하지 않는다. 역시 책은 저자의 brain-child인가 보다. 특히 예스 24 블로거 여러분들에게는 당연히 읽어볼 것을 권한다. |
|
마룻바닥에 배를 깔고 동화책을 읽을 때마다 책 속의 여주인공은 바로 나였다. 책을 읽고 동생들과 역할놀이를 할 때도 나는 반드시 주인공인 공주나 예쁘고 착한 선녀역할을 하고야 말았다. 동생들은 그냥 시녀 아니면 시종을 시켰다. 역할놀이 시간이 늘어갈수록 동생들의 원성은 커져만 갔다. 그래도 나는 굴하지 않고 큰언니만이 부릴 수 있는 온갖 횡포를 부리며 한참동안 공주와 선녀자리를 오갔다. 그러나 그 때뿐! 바쁘신 부모님이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되면 나는 어김없이 내 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동생들의 밥상을 차리고 청소를 하고 크고 작은 심부름을 하는 등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은 모두 나의 몫이었다. 동생들과도 분담하여 일을 했지만 모든 일의 결과에 대한 잘잘못은 바로 나에게로 향했다. 잘할 때는 그냥 본전, 못하면 홀로 야단을 맞기 일수였으니 과연 나에게도 해피엔딩의 동화속 공주처럼 될 날이 오기는 할까 하며 훌쩍이던 때도 있었다. 참으로 가당찮은 일로 좌절과 피해의식을 느꼈다. 하지만 나의 잘못만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부모님은 나에게만 지독하셨으니 그분들도 나의 피해의식에 일조를 하신 셈이다. 시간이 흘러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나의 착각과 피해의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세상에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일이란 아예 없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그동안 행복하게 읽었던 동화책 여주인공들과는 별개의 존재임을 알았다. 남들도 다 사는 인생이란 무대에서 나란 존재만이 주인공이란 생각, 이 얼마나 오만방자하고 사뜩한가. 여기서 주인공이 되란 의미는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표면적인 존재가 되라는 뜻이 아닌데 말이다. 그렇게 무지몽매한 시절에 [삐딱해도 괜찮아]를 읽었더라면 수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주인공의 삶만이 아닌 조연급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역할이 삶에 던지는 의미를 새겨보았을 것이다. 내 삶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며 일찌기 반성하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나는 왜 그렇게 안되게 돌아갈 수 밖에 없었는지, 선명하게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뒷심도 없이 앞에서만 자신만만했던 나의 태도를 고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내 눈을 바라보며 직설적으로 퍼붓는 충고가 마음에 와닿지 않아서 외면했던 일은 어쩔 수 없다. 나를 아껴서가 아니라 몰아붙이는 것처럼 들렸기에 내 심장이 거부했던 것이니... 그러나 글은 좀 다르다. 우리가 사는 일상은 두루두루 고만고만하지 않은가. 진정 내 삶의 주인공이 되려면 지금 바로 내 삶의 자세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많은 책들은 일러주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 읽고 그 순간 감명을 받아도 내 삶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저 타인의 이야기일 뿐이다. 타인의 일이니 실천하기도 만만찮다. 습관에 붙은 관성은 그렇게 쉽게 멈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래동화, 민담, 설화를 통하여, 영화속 이야기를 통하여, 익히 알고 있었노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작가의 갸우뚱한 시선을 따라 다시 한번 이야기속으로 들어가보자. 나와 다른 시선을 따라가보는 이야기속 여정은 현상으로만 바라보던 것들의 본질을 꿰뚫는다. <인어공주>는 분명 문맹이었겠구나 생각했었는데, 마지막 작가의 한마디에 뒤로 넘어져 웃었다. 인어공주의 표면적인 모습은 성적으로 억압된 이미지, 다리가 아닌 아랫도리는 생선이니 정신분석학적으로도 일리가 있지 않은가. <여우 누이>의 이야기에서도 나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못한 채 몸만 커버린 요즘 일부 젊은 여성들의 행동이 예전에 미처 누리지 못하고 시기를 넘긴 그들의 유아기를 보는 듯했다. 나도 따라하면 귀여울 것 같은, 걸그룹처럼 얼굴과 몸을 치장하고 만들면 섹시해질 것 같은, 그리고 목소리는 거의 아기귀신이 빙의된 것같이 귀여운 척하면 다들 뿅 갈것이라 착각하는 몰지각하고 유아기를 겪지 못해 이제서야 경험중인,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그런 귀염질(?)을 한국의 일부 여성들이 하고 있으니, 그렇게 몸을 만들어 남친의 간을 빼먹는다고 생각하니 이런 흉칙한 일이 또 있을까. 패션큐레이터인 김 홍기의 강의를 들으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는데 바로 이 간 빼먹는 이야기와 겹쳐서 적는다. 아들이 여친에게 명품가방 선물하려고 장기를 팔았다는 이야기! 무섭고도 공포스러운 현실이다. 52가지의 이야기는 길고도 짧다. 뒤로 갈수록 글의 힘이 넘친다. 솔직히 나는 뒤로 갈수록 국내 사회적인 현상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성숙하고도 세련된 글이 좋다. 옛날 이야기와 우리네 현실을 조화롭게 맞춤할 수 있다는 말은 바로 끝없는 읽기와 우수한 학습 능력을 가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작가는 머리가 좋다. 아니 세상을 바라보는 삶의 자세가 좋다. 첫 책과 더불어 두번째 책에서도 독자에게 숙제를 주었기에 나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후기에 엄선된 책들을 열심히 읽어보련다. 생각에 생각을 가래떡 내리듯 늘이며, 똑.똑.똑. 떡을 썰듯 읽을 것이다. |
|
최근 작가 강연회 한 곳을 다녀왔다. 시를 비즈니스에 활용하는 방법을 소개한 책의 저자 강연회였는데, 덕분에 시인의 마음과 관점을 이해할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사물을 의인화하는 시인의 관점과 사물이 느끼는 그대로 교감해내는 시인의 감성에 대해 배우고 이것이 비즈니스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남다른 생각과 상상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어도 시나 문학을 통해 이것을 키워보려는 생각까지는 미처 해보지 못했는데, 좋은 계기가 된 것이다. 앞으로 시를 주구장창 읽어댈 것 같다. 시인의 눈을 가지고 사물을 바라보게 되고, 절로 감성 충만, 상상력 만발해진 나의 미래를 꿈꾸며 한순간 마냥 즐거워하고 있다.
관심을 가지면 평소 안보이던게 보인다고 했던가. 한번의 작가 강연에 자극을 받고 보니 또다른 강연들이 눈에 쏙쏙 들어온다. 이번엔 '미술은 상상 이끌어내는 보물 창고죠' 란 말이 달린 작가 강연회를 찾은 것이다. 미술 교양서나 읽고 나면 잠시 미술에 관심을 갖는 미술 문외한인 내가 미술을 주제로 한 작가 강연회에 참가 신청을 하고 저자의 책도 구입한 상태다. 미술을 단순히 교양의 수준이 아니라 창의와 상상의 원천으로 소개하고 있는 책과 강연이기 때문에 급관심을 끈 것이다. 이 강연에 갔다오고나면 다시 부화뇌동하는 나의 모습이 절로 상상이 된다. 미술 관련 책을 열광적으로 읽고, 미술관을 찾아 다니겠지. 창의력이 넘치고 상상력이 풍부해진 나의 미래를 꿈꾸며 마냥 즐거워하게 되겠지.
그런데 다시 나를 부화뇌동하고 다른 책들을 사 모으도록 하는 책 한 권을 만났다. <삐딱해도 괜찮아> 이 책은 시와 미술로 인해 들떠 있는 나를 한차례 더 공중부양시킨 자극적인 책이다. 책표지에도 하늘로 공중부양하는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공중부양하려는 내 모습 같다.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 모습같지만 내가 보기엔 겨우 겨우 땅을 붙잡고 버티고 있는 모습이다(그래서 앞표지보다 뒷표지가 더 맘에 든다). '같은 생각만 강요하는 세상을 색다르게 읽는 인문학 프레임'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의 제목은 책을 내게 끌어당긴 결정타였다. 그래, 또 이 책으로 세상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배워보자 하고 펼쳤더니 이번엔 옛날 이야기들이 하나 둘 펼쳐진다. 이야기 한 편으로 이렇게 사람과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니, 저자의 내공에 감탄하며 몰입해 읽게 된 책이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스토리 텔링, 즉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특히나 아이들은 이야기에 열광하는 존재들이다.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갖는 힘을 내가 직접 느꼈고, 앞으로는 우리 옛날 이야기, 명작 동화에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쏟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야기를 토대로 한 교훈 전하기 방식이 우리 아이들 교육에도 무척 유익하리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야기와 색다른 관점이 가미된 이 책을 읽다보니 박신영 작가가 이 책에서 표현한 '사차원'이란 개념을 작가에게 적용하면 딱 들어맞겠단 생각을 했다.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미처 가보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펼쳐보여주고, 깨달음과 지혜를 전해주는 작가기 때문이다.
이 책의 말미에 맺는말에서 작가가 추천한 책들을 카트에 잔뜩 담아두었다. <삐딱해도 괜찮아> 이 책 덕분에 작가와 이야기의 팬이 되고 말았다(이 책은 우리 팀원들에게도 한 권씩 구입해 줬다). 앞으로 박신영 작가의 책은 줄곧 구입해 읽게 될 것 같다. 이로써 나는 이제 창의성과 상상력, 남다른 관점을 가지기 위해 또 한가지를 더하게 된 셈이다. 시를 읽고, 미술을 감상하고, 명작동화를 읽는다. 그리고 박신영 작가 강연회가 열리면 거기도 찾아 가 보겠지. 그리곤 상상력을 발휘한다. 시와 미술, 이야기 덕분에 남다른 관점을 가지게 된 미래의 나의 모습. 잘하면 나도 누군가에게 통찰력 넘치는 사차원의 멘토가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즐거운 상상도 해본다.
진정한 사차원 인간이란 이런 사람이다. 같은 현실에 살면서 다른 차원, 보다 높은 차원에서 지금의 상황을 내려다 보는 시각을 지닌 존재. 왜냐하면 사람들은 지금 같은 공간에 살고 있다고 해서 전부 같은 차원에서 살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P.133) |
|
고정관념이라는 것. 일반적인 생각을 하는 것.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생각의 주류. 그 틀 안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고, 나갈 생각마저 하지 않았다. 젊은 시절엔 조금.. 주류의 틀에서 벗어나봤지만 결국엔 주류의 틀로 돌아오는 것. 그게 원숙미라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아이로, 평범한 생각을 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들에게는 다르게 생각하고, 비틀어 생각하라고 말하면서 나는 예전과 똑같이 변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내 말을 들어줄까? 아직도 나는 보통의 엄마로, 생각의 틀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 만나게 되는 삐딱한 시선의 유쾌함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나와 친한 지인이 집안일로 심리적 스트레스에 빠져있었다. 전후좌우 상황을 종합해 보건데 쉽게 위로할 수 없었다. 같이 욕(?)을 해준다고 마음이 진정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침묵한다고 해서 기분이 나아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지인과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집어 든 책에서 위로의 말을 찾았다. 어떤 사람에게서 그런 부당한 평가를 받게 되면, 오해 살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근본 원인은 제거하라. 그리고 그 사람과 마음의 선을 긋고 더 이상 상처받지 마라. 남이 뭐라고 말하든지 너의 가치는 변함없다는 걸 잊지 마라. (220) 이 부분을 사진으로 찍어 카톡으로 보내 줬다. 그랬더니 지인이 정말 고맙다고, 100마디 말보다 이 말이 더 위로가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이 책 제목을 물어본다. 자신도 꼭 읽어보고 싶다고...
살면서 우리는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나와 입장이 다른 사람들로 인해 상처받고 고통 받는다. 그들이 변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때론 싸움도 불사하지만 돌아오는 건 상처뿐이다. 나 역시 시어른과 함께 살기에 집안 식구들 때문에 느끼는 말 못할 고민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사람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별로 받지 않는다. 좋은 지인들이 곁에 있어 위로 받고 위안 받기도 하지만, 독서를 시작하고 나서 그 안의 글들로 나를 돌아보는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 덕에 남들과는 조금 다른 생각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남편을 바라보고 어른들을 바라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고나 할까?
어린 시절 알았던 혹은 읽었던 다양한 설화, 민담 안에 이런 의미들이 숨어 있었던 거야? 하는 호기심과 새로운 발견들이 나를 즐겁게 했다. 이렇게 생각을 삐딱하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배경지식이 필요한 거야? 하는 놀라움도 함께했다. 책을 읽으면서 포스트잇을 꼭꼭 붙였다. 혹 누군가 마음이 아파 괴로워할 때 이 부분을 찍어서 보내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삐딱한 시선의 가장 정점은 ‘해와 달이 된 오누이’편이었다. 엄마를 잡아먹고 오누이를 잡아먹으려는 호랑이. 공포의 대상이 같은 이유. 지친 엄마에게 힘든 고개는 인생의 고비를 말하고, 고개마다 나타나는 호랑이는 우리의 인생을 힘들게 하는 존재이다. 그 존재가 바로 엄마에게는 자식들이다. 그래서 맹목적인 희생은 결국 부모에게 손 벌리는 자식으로 자라게 된다는 것이다. 자식만을 위해 희생하고 지나치게 자식에게 집착하며 살아온 엄마는 인생의 힘든 고개를 하나씩 넘을 때마다 지쳐서 변해간다. 천사같이 자신을 위해 희생하던 젊은 엄마는 어느덧 사라지고 내가 너 하나만 보고 살아왔는데 어쩜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며 협박 반 푸념 반 섞어 잔소리하는 할머니로, 으르렁거리는 호랑이로 변한다. (중략) 자식들은 놀란다. 내가 사랑하던 엄마가 사실은 엄마 옷을 입은 호랑이였다니. (142) 관계란 그런 것 같다.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것. 사랑하는 데 거리를 두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성숙한 사랑과 관계를 위해서라면 적당한 거리는 서로에게 좋은 거 아닐까?
이 책을 통해 다양한 민담을 알게 되었다. 개중에는 내가 아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어떤 내용은 처음 들어보는 내용도 있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다양한 민담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는 건 그만큼 다양한 독서를 하지 않았던 이유겠지? 친절하신 작가님은 그래서 뒷부분에 우리나라 설화와 세계의 신화와 참고했던 책 목록을 설명해 놓았다. 기회가 되면 이 책들을 찾아 볼 생각이다. |
|
세상을 다르게 본다는 것은 생각이 깨어있음을 뜻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교육은 단 하나의 정답만을 찾아가는 과정만 있을 뿐이다. 다른 가능성은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보고 왜 세상을 삐딱하게 보냐고 다그친다. 아웃사이더같은 존재로 낙인찍히며 까칠하다거나 성격이 이상한 거 아니냐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넓혀보면 우리가 배운 것, 우리가 정답이라고 생각한 것이 전부 진실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양성을 잘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창조적인 생각이 나올리가 없다. 음악이나 예술을 제외하고는 우리 일상속에서의 모습은 매우 균일화되고 보편적인 것을 추구하도록 강요당한다. 튀지 않고 군중 속에 섞여서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에 익숙해지다보니 생각도 비슷비슷해진 것은 아닐까? 지금도 그렇지만 환승 지하철을 오가는 통로에서 기분 좋아지는 음악이 흘러나오거나 여기에 디스플레이 광고물이 있다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곤 했다. 누구나 음악이 나올 때 똑같이 춤춘다면 어떨지에 대한 상상은 내가 남들과 같지 않다는 만족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와중에 나온 <삐딱해도 괜찮아>는 우리가 익히 읽어왔던 문학작품부터 영화, 전래동화까지 저자의 관점에서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을 유쾌하고 재미있게 그려낸 책이다. 보다가 피식거리기도 하고 앗! 그럴수도 있겠네라는 생각을 하며 흥겹게 읽을 수 있었다. 마치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는 여자친구나 학교친구가 들려주는 것처럼 여성만의 감수성으로 녹여내었다. 우선 내용이 무겁지 않아서 좋다. 각각의 작품들을 가볍고 신나게 읽을 수 있어서 읽는 부담도 없다. 누구나 똑같은 작품을 읽어도 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을 다르게 내리듯 이 책도 그런 생각으로 읽고나면 깨달음을 뒤늦게 밀려온다. 저자는 자신만의 생각으로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는데 정작 나는 내 생각을 투영하여 해석을 내리고 있었나 하는 점이다. 그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남의 생각을 내 생각인 것처럼 오인하여 묵인한 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는지. 저자는 내 편견을 깨주는 책과 세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려주는 역사책을 읽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안중근 의사의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으로 글을 마무리 한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아니하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라는 뜻인데 이는 하루라도 책을 읽으면서 자기 성찰을 하지 않으면 남을 헐뜯게 된다고 한다. 다양한 책을 읽게 되면 세상을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고 편견에 사로잡힌 생각을 잡아준다. 그리고 52편의 이야기를 마치는 맺음말에는 저자가 도움을 받은 책과 강력추천하는 책들이 있으니 참고해보면 좋을 듯 싶다. 마치 메타북을 읽다가 번쩍 뜨이는 경험을 하게 된 것처럼 독서의 편식하지 않고 두루두루 읽어볼 일이다.
독자중에 인문학을 색다른 시점에서 읽고 공감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즐겁게 쭉쭉 읽어나갈 수 있는 <삐딱해도 괜찮아>를 읽어보길 권한다. 그리고 독서를 할 때마다 의문점을 갖고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똑같은 생각만을 강요하는 현재 프레임에 손을 번쩍 든 저자처럼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자. 그건 삐딱한 것이 아니라 편견을 갖지 않도록 이끌어주는 힘이기 때문이다. |
|
작가의 두번째 책. 내용에 어떤 것이 들어가 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가 책 먼저 받아들었다. 작가는 예스 블로그 활동을 하기 때문에 그동안 책의 집필 과정들을 종종 알려주곤 했었는데 이번 책은 사전정보가 거의 없었다. 전작 [ 백마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 다닐까]는 어떤 이야기들이 들어있고 어떻게 쓰여지고 있는지 알고 있다가 책으로 받았지만 이 책은 에세이라고만 했다. 재밌을 것이라고 하는 정도의 이야기만 들었다. 나보다는 좀더 나이어린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썼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제목이 [삐딱해도 괜찮아]라는 소식을 듣고는 조금 실망하긴 했다. 이런 제목보다는 더 깜찍 발랄한 제목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책 내용은 따로 이야기하지는 않으련다. 다만 이런 책이 나 젊었을 때도 있어서 읽어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아쉬움이 컸다. 여러 이야기를 매개체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이런저런 일상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고 있다. 작가가 나보다 젊지만 작가로부터 받는 삶의 지침이 꽤 묵직하고 한편으로는 통쾌하다. 고백하자면 나는 작가만큼이나 삐딱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인가보다. 책 속의 내용들이 유쾌하고 머릿속이 시원해지는 효과가 있으니 말이다. [인어공주] 이야기를 쓴 (문제는 다리가 아니고 목소리일세) 편에서는 마지막 문구를 머릿속에서 중얼거리며 읽고 있었는데 턱하니 그대로 써있는 것을 보았다.
[작은 아씨들] 이야기를 한 (굳이 자신과 싸울 필요는 없다)라는 편에서는 작가가 무겁고 큰 판넬을 들고 오면서 극기훈련을 해보는 이야기가 있다. 이 글을 읽는 요즘은 천주교신자인 내게 사순절이다. 아이들 교리교육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지고가신 십자가 장면을 재현시키기도 해보고 영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내가 걸어본 십자가의 길도 생각났다. 추운 겨울 맨발로, 무릎으로 걸어갔던 십자가의 길에서 나는 무언가 강렬한 종교적 체험이 있기를 바랐지만 아이들앞에 선 선생으로서의 체면이 더 급급했던 기억이 난다. 굳이 나 자신과 싸워가며 이겨야할 일보다는 현재에 누리는 작은 것에 감사하며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글에 공감 이백배.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이야기한 편에 나오는 작가의 말에 동의할 마음이 없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거니까 글에 딴지 걸 마음은 없는데, 그제서야 이 책의 어투(글투?)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같은 생각을 하는 내용의 글들은, 읽으면서 손뼉치고 웃으며 좋아했는데 생각이 다른 글을 읽다보니 걸리는 게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자, 이렇게 하라. 하는 표현들이 너무 단정적이지않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나같은 마음이 들어서 책을 읽다가 "난 싫은데....." 이런 생각을 하는 독자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점을 미리 서문, 작가의 말에 밝혀놓은 게 그제서야 생각나 또 한번 읽어보았다. 훈계하려는 의도없이 쓴 글이라는 작가의 양해를 받아들이면 좋겠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맺는말'이라는 책의 말미에 참고문헌을 정리해 준 것이다. 그래도 꽤 오랫동안 작가의 글벗으로 지냈던 시간이 있어서인지 대부분의 책 이름이나 작가 이름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뿌듯했다. 다만 나는 그 책들을 아직 읽어보지않았다는 문제가 있지만. 이 책 한권을 읽으면서 수많은 참고서적들이 뒤따라 이어져 풍부한 독서가 되고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이끌어 갈 젊은 독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입소문을 타고 청춘들이 꼭 읽어야할 도서목록에 오르내리기를 바란다.
궁금증 하나
62쪽 호미로 막을 일, 가래, 포크레인 --> 이게 모두 땅을 파는데 사용하는 도구인데 왜 막을 일에 사용하는 걸까요? 농사지어보니 너무 궁금해졌어요. 이 말의 어원이 무엇이었을까요? (나도 작가따라서 이런 거 고민해보는 것임)
유일하게 눈에 띈 오타 하나
64쪽 마상 시합의 시고로 --> 사고로 |
|
유교나라의 후손답게 우리나라는 책을 중요시하며 책 읽기를 권장하는 나라다. 해마다 책 소비가 줄어들고 그나마 남아있는 동네 서점들은 대부분이 참고서 위주의 서점들로 변한지 꽤 오래전이긴 하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이 책을 통해 새로운 지식이나 경험을 얻고 생각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한다. 어렸을때 나는 책을 좀 많이 읽은 편에 속했다. 좀 읽은 이들에 비한다면 꽤나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책을 좀 읽는 편이었다. 책이 좋았다. 지금도 책이 좋다. 그런데 책을 읽는다는 건 어떤 것일까? 재미에 의해, 간접경험을 위해 등등 다양한(반면 거기서 거기일수도) 말들이 나올 수 있겠지만 리스트를 없애 나가듯이 책을 읽던 때를 벗어나자(과연 벗어난게 맞을까싶기도 하지만) 책을 왜 읽느냐보다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그 책이 나에게 와서 어떻게 스며들었는지가 훨씬 중요한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이런 깨우침이 그리 오래전이 아니라서 늦된다 싶기도하지만 게으른 스스로를 탓할 수 밖에. 유홍준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에 대해 대중적으로 쉽고 즐거운 다가가기를 만들어 낸 것처럼 언제나 좋은 것은 '거기' 있는데 몰라서 못보고 봐도 모르고 보지 못한 것들이 책 또한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정혜윤 PD겸 작가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고, 최근 강신주의 감정수업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을 보면 책을 왜 읽는가보다는 어떻게 읽느냐가 얼마만큼 중요한지 또 필요한지 알 수 있다. 인간의 삶속에 중요한 많은 것들이 책 속에 다양한 예로 등장하고 있어서 우리는 그것들을 통해 인간을, 그 중에서도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이 아니어도 우리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존재는 분명 있다. 그 존재가 주위에 있는 가까운 사람이라면 특히 더욱 좋을 것이고 고맙겠지만 실질적으로 그렇게 도움 되는 사람을 인생에서 만나기란 참 어렵다. 누군가는 그런 이의 도움없이도 선견지명으로 인생을 잘 헤쳐나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 그 중에서 나같이 더딘 사람에겐 꽤나 부족한 부분이다. 성공을 최우선으로 바라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우리는 궁극적으로 행복한 삶을 원하고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반드시 내가 똑같은 경험을 해봐야만 타인을 이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다 이해 할 수는 없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그랬데~" "나만 아니면 돼." 정신으로 가득한채 정해진 대로만 따라가려 할 때 그것에서 벗어나는 순간 혼란스러워지고, 반대로 타인의 아픔을 안타까워하면서 공감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픔에는 대처하지 못하고 남들에게만 끌려다니며 스스로 자책만 하는 경우도 많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란 어렵다. 나와 타인 사이의 균형을 잡는 기준은 무엇일지 사회적으로 어떤 마음 자세로 살아가야 좀 더 단단하고 지혜로워질지, 우리가 책을 비롯한 많은 문화컨텐츠를 통해 느끼고 알아가며 쌓아가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삐딱하다' 는 말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모습을 나타낸 말이다.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사전적인 의미외에 우리가 쓰는 여러 의미를 생각해 보자면 비아냥거린다거나 말의 의미를 나쁘게 해석할때 주로 쓰이는 말이지만 대놓고 태도의 불량함을 나무라는 의미보다는 똑바로 맞추어 있지 않은 상태로 모가 난 모양으로 정해진 기준, 틀에서 벗어나서 튀는 이에게도 쓰인다. 고로 '너 참 엉뚱하다.' 라는 뜻으로도 많이 쓰인다. 엉뚱하다는 말은 이상하다는 의미이다. 흔히들 생각하는 것과 다를때 이상해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엉뚱은 삐딱이 되고 삐딱은 4차원이 된다. 실제로 우리가 사는 현실속의 기준점은 하나가 아니며 모든 사람이 자로 잰듯 똑바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똑바르지 않다면? 그 똑바르지 않은 기준에 맞추기 위해 현재 우리가 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삐딱하다면?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도는 것이 아니라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돈다고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 바다의 끝에서 떨어져 죽을 것이라는 데도 신대륙을 찾아 떠났던 콜럼버스 모두 희대의 삐딱이들이었다. 사회의 통념에 굴복하지 않고 온전한 자신으로 살아간 인물들. 이라며 우리도 그들을 따르자 이런 거창한 의미가 아니다. 새로운 패러다임(273쪽)으로 보다 유연한 사고를 해 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사회에 적응하면서 나를 나답게 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가치를 확립하고 타인과 더불어 살기와 타인과의 이해속에서 자신의 거리를 두는 법. 즉 상처를 받더라도 이겨내는 법등을 알아야 한다.그렇다면 이런 것들을 어디에서 볼 수 있나? 작가는 '삐딱해도 괜찮다'며 무언가 딱 맞아 떨어져 있지 않아 불안한 우리가 어려서부터 읽고 들었던 쉬운 이야기에서부터 대중적으로 많이 접한 영화등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에서 새롭고 다양하며 풍부한 이야기들을 끄집어내어 들려준다. 이 책에 앞서 작가는 전작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에서 역사적인 배경과 함께 이야기속에 숨겨져 있던 의미들을 재밌게 풀어놓으며 이야기를 단순히 쫓아가는데 머물지 않고 마음껏 상상하고 생각하는 길을 보여주었었다. 「삐딱해도 괜찮아」는 주제별로 5부로 나누어 모두 쉰 두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생각하기의 폭을 한층 더 넓히는 반면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글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럴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누구나 한 번쯤 보았거나 들어보았을 쉬운 이야기들에서 끄집어 내는 친숙함일 것이다. <크리스마스 캐럴>이나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 <홍길동>, <피터팬>등등 모두가 친숙한 작품인 반면 모두 교훈이 강요되던 작품이들이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교훈이란 참고할만한 것이지 절대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아니 실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체 살아왔는지도 모르겟다. 많은 이야기들 중에 각 파트별로 딱히 가장 기억에 남아서가 아니라-작가의 이야기는 모두 다 재밌고 이야기속에 풀어놓는 지식은 풍부하고 감성도 깊다-가장 많은 생각을 주었던 이야기를 하나씩 기억해보자면 1부 나답게... 에서는 자신의 가치관, 자아에 대한 이야기 중 모파상의 <목걸이>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아마 중학교시절쯤에 읽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모파상의 <목걸이>를 읽으면서 새삼 나는 이미 읽었어. 그래서 어떤 이야긴줄 알아. 라며 줄거리로만 기억하고 있었던 자신을 깨달았다. 읽을 책들이 얼마나 많은데, 라며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게 더 어렵다고 변명해 볼 수도 있겠지만 책이란 건 아무리 어렸을 때 많이 읽었어도 나이를 더하면서 다시 읽어야 하는구나 하고 반성해 보았다. 어려서 읽었을때 내가 생각한 것은 마틸드가 가짜 목걸이때문에 안해도 될 생고생을 하게 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마틸드가 그래도 자신의 책임을 다했구나 했던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럼 이제라도 진짜 목걸이를 갖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애초에 왜 마틸드가 목걸이를 위해 그녀의 인생을 저당잡히게 되었는지데 대해서는 이후로도 쭉 생각하지 않은 채 지냈던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문득 궁금해져서 몇몇 리뷰들을 검색해보니 허영심, 사치에 대한 감상이 많이 보인다. 그런 글들을 보니 또 이런 생각이 든다. 일생에서 가장 예쁠때 빛나보이고 싶은 마틸드의 욕망을 욕할 수만은 없는 것이지않느냐고. 마틸드가 집이나 남편의 월급을 저당이라도 잡혀 무리하게 목걸이를 산 것은 아니라 친구에게 하룻밤 빌린 것뿐이지 않느냐고. 그리고 그것을 잃어버린 후 역으로 가짜 목걸이를 사다 주었을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았잖느냐고. 또 한편으론 마틸드의 친구가 끝까지 참 덜 된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친구를 믿지 못해서 가짜 목걸이를 빌려주었던 이 친구, 마틸드가 고생한 이유를 듣자 이후 진짜 목걸이를 보내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자리에서 마틸드를 안되어 하며 너 그거 가짜였어. 몰랐구나. 하는 모양새가 얄밉다. 모파상의 이야기들은 사실 간단한 이야기듯 하면서 복잡한 많은 것들이 들어있다. 아마 작가가 일반적인 리뷰에서처럼 허영심에 대해서 이야기했다면 어린시절에 읽었던 목걸이에 대한 기억을 더듬기까지 해가며 여러가지면에서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작가는 마틸드를 단순히 허영심에 들떴던 여자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본질적인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흔히 우리가 멋을 부리기 위해 명품백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은 하지만 우리가 물질적인 과시에서 스스로가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역시 내려놓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되돌아보게 되는 이야기였다. 2부 사랑... 편에서는 공감가는 이야기들이 특히나 많았는데 마지막 이야기 <은교와 우렁이각시와 선녀의 공통점>에서는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점들이라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남자들이 결혼하는 이유는 섹스파트너와 가정부가 필요해서라던 말이 떠올랐다. 어디에선가 읽었던 그때는 단순히 핵심을 찌르는 우스개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은교는 차치하고서라도 우렁각시와 선녀를 생각하니 배울점이 많은 이야기다. 그런데 은교를 두고 말하자면 나도 은교나이때 밥도 잘하고 찌개도 잘 했다. 은교가 이상한거 아니다. 집안 형편이 그러면 대부분 하게 되는게 밥하기니까 말이다. 그런데 은교는 그렇다치고 여자들 스스로가 우렁각시가 되야한다고 틀에 사로잡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디 남자들뿐이겠는가. 여자도 마찬가지고. 부부나 연인사이뿐이 아니라 친구사이도 마찬가지로 바라기만 하는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3부 자신과 타인...간의 행동에서는 특히 생각하고 느껴지는 것이 많았는데 그 중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으면서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생각했던 이야기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처음 읽은 것이 중학교즈음이거나 이전 이었을 것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필독서같은 책이었다. 그런데 도통 나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무를 찾아오는 아이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다 세 번째 읽었을 때였던가, 아이는 자식이고 나무는 부모 혹은 어머니를 의미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더랬다. 그러니까 어머니(부모)의 자식을 향한 사랑의 희생이 이토록 무한한 것이구나 하고 말이다. 그러다 이후 20대때 다시 한번 읽었을때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라는 말이 공감갔을 때가 있었다. 어머니의 사랑에서가 아니라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항상 변함없는 편안함 혹은 힘이 되어주고 싶다 라는 생각에서였다. 작가의 말처럼 나 자신이 발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먼저 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나이 들어서야 깨닫게 되고보니 그때 작가같은 언니가 있었다면 좋았겠다.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이유다. 4부 사람들에게... 와 5부 세상에 변명하지 말고... 는 위로와 함께 스스로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스스로에 대한 응원의 힘을 준다. 유머의 힘, 리디큘러스는 특히 웃음이 나는 한편 아주 커다란 삶의 지혜란 생각이 든다. 엄청나게 힘든 상황에서 작가가 뱉어낸 한 마디, "반사" 는 작가만-의 귀여운 한편 엄청난 용기의 똘끼로 인해-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명징하고 호쾌한 기분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을 준다. 흔히 아무리 좋은 글이나 말이더라도 들을땐 좋지만 한편으론 여러가지 면에서 "당신은 나와는 다르지 않나." 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게 마련이다. 특히나 화자가 이론적으로만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고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즉 책에 있는 말로만 여겨질때가 있다. 그렇기에 삶에 방향성을 제시하는 글을 보면 무조건적인 유연함으로 대하기 어려워진다. 그런면에서 「삐딱해도 괜찮아」의 글을 통해 보는 작가는 마음을 여는 힘을 가졌다. 아픈 마음을 헤집어놓기만 하는 힘이 아니라 상처가 아물도록, 또 덧나더라도 대처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응원을 보내며 스스로를 사랑해야하고 사랑할 수 있는 이유를 남긴다. 박신영작가의 글은 재밌고 즐겁게 읽힌다. 작가 스스로의 아픈 면면을 드러내지만 리디큘러스의 이야기처럼 재치있는 유머의 기운과 따듯한 진지함으로 다독인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그러나 무엇보다 생각의 고정방식을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일깨워 준다는 점에서 즐겁고 유익하다. 책을 읽으면서 말 그대로 남녀노소가 함께 읽고싶어지는 책이다. 특히 아이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아이들을 둔 부모들도 함께 읽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논술을 대비하는 사람들에게 유익할 것이란 생각도 든다. 이런 생각을 하고보니 문득 책속의 그림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일러스트레이터에겐 죄송하지만) 상당히 단순하기 그지없는 그림은 이 책의 대상을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물론 이 책은 어린아이들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지만 앞서 말했듯이 남녀노소가 모두 읽으면 좋겠는 책이다. 게다가 그림이 자주 글의 의미와 잘 맞지 않아 보이는 것들도 많다. 책 역시 실제로 받아보면 살짝 청소년대상의 책마냥 디자인이 좀 유치하다. 그래서 글이 굉장히 좋았던 독자로써 좀, 아니 많이 아쉽다. |
|
'삐딱하다' 란 말에는 컴컴한 뒷골목 풍경이 감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슬쩍 비껴가고 싶고, 피해가고 싶은 맘이 드는 게 그리 탐탁지 않은 단어임을 알 수 있다. ‘삐딱하다’란 말의 뜻을 찾아보니 ‘물체가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와 함께 ‘마음이나 생각, 행동 따위가 바르지 못하고 조금 삐뚤어져 있다’고 적혀있다. 분명 다소곳하고 얌전한 단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싫어 할 이유도 없는 단어다. 단지 조금, 아주 조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삐뚤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바르게, 바르게를 외치며 살아왔다. 한마디로 사회가 원하고, 세상이 원하는 것은 레고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깔끔함 그 자체다. 그래서 우리에게 '삐딱하다'란 말은 너무도 어색하다.
하지만 삐딱하게, 즉 조금 다르게 사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세상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피카소가 형태의 면과 선을 모두 살려 있는 그대로를 그려내고자 했다면 시시한 정물화나 인물화로 싸구려 술집 벽면을 차지했을 것이고,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그저 그렇게 바라보다 한입 베어 무는데 끝났다면 만유인력이라는 어마어마한 법칙은 없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세상이 그대에게 원하고 남들이 생각하는대로가 아닌 조금 비틀리고 삐뚤어진 시각, 그것이야말로 세상을 보는 새로운 안목이자 진정한 가르침의 시작인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한번 뒤집고, 비틀고, 쭉 짜서 털털 말려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저 재밌는 옛날 이야기, 유명한 명작동화쯤으로 읽어왔던 이야기가 작가의 눈에서 비틀리고 뒤집혀서 새롭게 태어나는 깨달음을 보고 있자면 작가의 속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싶기도하다. 우리는 책상 앞의 오브제가 아니기에 줄곧 앉아만 있을 수 없다. 몸을 비비꼬기도 하고, 기지개를 쭉 필 수도 있고, 짝다리를 짚고 서 있을 수도 있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이젠 정자세로 앉아만 있을 것이 아니라 조금 다른 자세로 세상을 바라 볼 필요가 있다. 삐딱하게 돌려 쓴 모자가 정직하게 쓴 모자보다 훨씬 더 멋있는 것처럼. |
|
다른 사람들이 평점을 박하게 준 것 같다. 별 다섯개는 까라마조프가네 형제들,같은 책에만 박아야하나?? 흥!!
나는 개인적으로 그녀의 첫번째 책보다, 이 책이 조금 더 마음에 든다. 물론 박신영 작가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처음 찍어낸 책에 더욱 애착이 가기 마련이겠지만, 책을 소비하는 입장에서는 이 책이 더욱 편안했고...사실 내 정신건강에도 부담스럽지 않게 도움이 되었다. 뭐랄까...백마탄~,은 사실 조금 교과서 같은 면이 있었던 반면, 이 책은...긴장감은 살짝 빠져 더 내츄럴하다고 해야할까? 여하튼 오전 출근에, 그리고 오후 퇴근에 책을 읽으면서 덕분에 많이 편했던 것 같다.
인어공주나,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경우에는...나와 비슷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나는 각종 공주년들을 별로 안좋아하는데...예를들면,
신데렐라가 신발짝을 던지고 도망가는 장면에서는...나였다면 악착같이 구두를 집어 갔을 것 같다. 물건 아까운줄도 모르는 것들은 평생 거지로 살았으면 좋겠다. 백설공주는, 차라리 사냥꾼이나 계모한테 죽임을 당해야 된단 생각도 했었다. 얘는 뭐 지가 한 일이 하나도 없다. 도망쳐서 난장이들 빨래해준거 밖에 말이다. 책에도 나왔던 인어공주는...좀 웃겼다. 생선이면 생선답게 문어나 오징어랑 살 것이지, 왜 뜬금없이 왕자랑 살겠다고 저 고생이나 싶었다. 말이 나와서 말이지..내가 무척 잘생겼는데, 어느 날 바다의 도다리나 명태가 변신하고 찾아와서는 결혼하고자 한다면 기가막힐 것 같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그렇다. 나무는 어쨌거나 나무다. 밑둥만 남아서 늙은 소년이 찾아와서 쉬게 해줬다는데..나같으면 밑둥마저 파서 장기판을 만들었을 것이다. 아무리 동화라지만...그러면 나무 잘라서 알뜰하게 쓰면..그게 나무한테 희생인건가? 소년을 위한? 그럼 나물 뜯어먹는 나는 뭔가? 살인자냐?? 그리고 저런 동화쓰고 화장실에서 밑은 휴지로 닦았을까??
여하튼, 박신영 작가의 책을 읽다보니...평소에 맘에 안들었던 부분에 대한 지적에 슬그머니 대리만족이 밀려왔다. 그런 공감대가 좋았다.
물론 살짝 아쉬운 점도 있다. 50가지가 넘는 꼭지로 글을 쓰다보니 뒷심이 살짝 부족하다. 즉, 뒷부분으로 가면...살짝 지루해진단 말이다. 또 어떤 이야기는 조금 억지스럽게 끼워맞춘듯한 것도 종종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메가톤급 히트를 치고 있는 강신주나 김미경과 비교하자면, 나는 당근 박신영 작가의 손을 들어주겠다. 그들의 글이 슬쩍 피로감을 느끼게 한다면, 박신영 작가의 글을 슬금 슬금 좇아가다 보면, 과연 정의는 무엇이며, 청춘은 무조건 아파야 하는 건지,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해보게 된다. 난 이런 글들이 좋다.
책장을 덮고나면...생각이 몇 가지 정도로 정리된다. 양질의 독서가 얼마나 중요한지와...타인의 시선에서 우리는 자유로울 필요 있다는 것. 그리고, 나는 잘먹고 잘 살아야한다는 소중한 존재라는거. 너무 유난떨지 않고...조근조근한 이야기들. 벚꽃이 피는 요즘에 만나서 더 따뜻했던 것 같다.
덧붙임 1. 그녀의 세번째 책은 조금 다른 느낌이였으면 좋겠다. 역사,책이 그녀의 글쓰기 주된 소재일테지만...역사와 명작과 동화와 민담 같은 것들을 또 한 번 버무리게 된다면...세번째에는 살짝 식상해질 수도 있겠다. 양귀자가 원미동에서 못벗어나고, 신경숙이 언니문학에 서 재생산하다보니..어느 순간 약발이 떨어졌다. 박신영 작가님 나름의 크리에이티브가 필요한 시점일수도 있겠다. 뭐..이젠 초보작가도 아니니까.^^
덧붙임2. 백마탄~이나, 이 책이나...표지와 책속의 내용 편집은..참 뭐시기 하다. 일단 책꽂이에 꽂아두면...책 제목이 이쁘지 않고...좀 촌스럽게 보인다. 앞 표지의 물구나무 여인은...좀생뚱맞다. 책 속에 중간 중간 삽입되어 있는 그림은...살짝 뜬금없다. 그런데, 책은 거죽보다 컨텐츠가 중요하기 때문에 별은 한개만 살짝 빼버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