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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술의 경지에 대한 고뇌와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의 중요성 나는 책을 선정하는데 판타지 소설이나 자서전 보다는 일반 책과 달리 독특한 주제나 글의 구성을 가진 책에 흥미를 가지는 편이다. 이번에 읽은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 또한 그러한 경우이다. 예술가들의 주고받는 대화와 그 의미를 대략적으로 설명해주는 글의 구성이 나에게 흥미롭게 다가왔다. 예술과 미학 수업 중 처음 접하게 된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은 되게 딱딱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책을 읽어갈수록 예술가들이 하는 말에 내포된 의미를 생각하며 읽어가니 흥미를 가지게 되고 완벽한 예술가의 작품에서 모순이 발생하는 사건 등의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구성 또한 나를 이 책을 그만 읽지 못하게 하는 데 한 몫 했다. 이 글에는 젊은 풋내기 화가인 푸생, 자신의 작품에 대해 겸허한 충고를 받아 들 일줄 아는 포르뵈스, 마뷔즈의 제자 프랜호퍼 등이 나온다. 이 글의 배경은 1612년 12월 파리이다. 예술작품에 대한 지식이 적었던 푸생이 많은 예술가들을 만나며 자신의 예술작품에 대한 생각을 정립해나가는 과정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다가 프랜호퍼의 흐트러진 예술의 경지에 대한 고뇌로 글이 마무리 된다. 푸생이 고뇌하며 길을 걷는 도중 거장 프랜호퍼를 만나며 그 후 함께 여러 예술가들을 만나게 된다. 당시 유명화가였던 포르뵈스를 만나 그의 작품을 가지고 프랜호퍼와 의견을 주고받는 등 여러 과정을 통해 푸생은 점점 예술의 경지가 무엇인지 알아가게 된다. 하지만 푸생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가들에게 절대적 존재로 여겨졌던 프랜호퍼 자기 자신은 자신의 작품에 절대적으로 만족하지 못한다고 푸생에게 말한다. 그 말은 들은 푸생은 자신의 예술에 대한 개념이 점점 정립되어 간다고 생각하였던 터라 더 더욱이 고뇌에 빠질 수 밖 에 없었다. 포르뵈스의 작품을 보고 혹평을 하며 예술의 경지는 무엇이며, 그것은 수많은 지식으로 이뤄내는 것이 아닌 아직 자신도 알지 못한 것 이라는 프랜호퍼의 생각이 계속해서 주된 화제로 사용되고, 진정한 예술이 무엇인지 고뇌하던 프랜호퍼의 작품을 보기위해 간 푸생과 포르뵈스는 그의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여러 물감이 여러 군데 범벅 칠 되어 있고 그 밑에 두발만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프랜호퍼는 그의 작품을 불로 태우고 죽는다. 이 글은 예술가들에게 지적하는 듯싶지만 그 의미를 생각해보면 일상 우리 생활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는 문제를 지적한다는 점에서 모두가 한번쯤은 읽었으면 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포르뵈스가 그린 작품을 프랜호퍼가 격렬하게 지적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포르뵈스에게 개인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이 글을 배경으로하는 시대에 대부분의 화가들에게 지적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포르뵈스가 그린 작품을 보고 푸생은 감탄을 금치 못했지만 프랜호퍼는 한 번의 칭찬없이 단호하게 지적했다. 지적한 내용은 포르뵈스가 그린 그림은 윤곽선으로나 채색으로서 입체감등의 기본적인 형태는 갖추고 있으나 실제 사람이 존재하는 듯한 생동감이 결여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후 프랜호퍼는 파레트에 있는 색들은 생동감을 주는데 전혀 필요가 없다며 색을 섞은 후 몇 번의 터치만으로 생동감을 이끌어 낸다. 이 후 포르뵈스는 자신도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여러 부분에 노력을 하였다고 하였지만 프랜호퍼는“프로메테우스의 횃불이 자네 손안에서 여러 차례 꺼져 버렸네, 자네 그림의 많은 부분이 천상의 불길에 닿지 못한 것이네”라고 말하였다. 여기서 “프로메테우스의 횃불이 자네 손안에서 여러 차례 꺼져 버렸네”라는 부분은 포르뵈스가 자신의 작품의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해부학적인 부분만 고려하여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렸다는 의미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천상의 불길은 프랜호퍼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작품의 경지를 일컫는 다고 생각했는데 생명을 잃은 작품은 색체나 외형들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단순히 시체를 그린 것 이상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스펙들을 모두 갖추었을 때 자신이 완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 사람의 내면 즉 정말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왔던 내 생각과 유사했다. 이 글에서 제기된 문제점은 한 가지 더 있다.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서 한 가지 성질을 고집하여야 하는 상황이 필요하다. 두 가지 성질을 모두 고려하는 순간 이 그림에는 두 가지 성질이 겹치면서 정말 절망적인 그림이 탄생할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문제점을 드러내는 부분이 이 글에서는 프랜호퍼가 프로뵈스에게 아탈리아지역의 예술적인 특징과 프랑스지역의 예술적인 특징을 모두 고려하였다고 지적한 부분에서 알 수 있다. 결국 프로뵈스는 통일성을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결정을 하게 되는데 한 가지만 선택하지 못하고 여러 선택에 헷갈려 할 때 많은 후회를 한다는 점에서 삶의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이 글에서 제기한 문제인 정말 걸작은 생명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문제는 요즘 예술에 단순모방을 목적으로 하는 예술가들의 문제와 연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창조해내는 그림에는 그 그림이 비록 풍경화나 정물화가 아니어도 그것을 모방이 아닌 자신이 표현한다는 점에서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이 이루어 질수 있지만 단순히 그림을 따라 그리려고 하는 더 전문적으로 해부학적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완벽하게 그림을 그렸다고 해고 그것은 단순히 모방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점을 망각하고 자신의 그림을 그리는 단순 모방을 목적으로 하는 예술가들에게 이 글에서 제기하는 문제점은 매우 연관될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글에서 제기한 문제점에 대해 나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물론 내가 미술작품을 보는데 전문적인 지식은 없지만 미술작품을 그리는데 있어 그 목적이 단순모방에 있다면 생명을 불어넣은 느낌의 유무는 중요치 않을 것 이지만 목적이 자신의 작품의 창조성에 있다면 생명의 유무는 아주 중요할 것이다. 프랜호퍼는 포로뵈스에게 프로뵈스의 작품은 단순히 채색,명암등에 충실한 그림과 비교해서는 월등히 뛰어난 그림이라고 하였다. 그 의미는 기본적인 그림의 구조만 봤을 때 프로뵈스의 작품은 정말 뛰어난 그림이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이라는 것에서 볼품없는 작품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나 또한 이 글을 읽은후 예술가들의 작품이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정말 오랜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일에 정도가 있듯이 그 정도를 따라야 하는 상황이라면 자신의 상황을 결단 할 줄 알아야한다. 결단이란 무엇인가를 자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고통과 인내 속에서 자신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정말 많았다. 그 중에 몇 가지를 추려보았다. 플랜호퍼는 자신이 그린 그림이 완벽하다고 생각했지만 아침에 일어난 뒤 햇볕에 비쳐진 자신의 그림을 다시 보았을 때 절망에 빠졌다고 한 부분이 있었다. 마뷔즈의 유일한 제자로서 예술가로서 오랜 과정을 거쳐 그림에 빠진 부분은 충분히 자각할 능력이 있는 프랜호퍼가 자신이 그린 그림이 완벽하다고 생각할 때 까지는 정말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예술의 끝은 없고 그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로 하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인상이 깊었다. 또 인상 깊게 보았던 부분은 프랜호퍼가“자네들은 너무나도 빨리 지쳐버려. 속된 자는 찬미하지만 진정한 전문가는 웃음을 짓고 말지.”, “그대는 도적, 그대는 생명을 빼앗아 가버렸어”위에서 말한 것처럼 속된 자는 나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에 대해 전문적 지식이 없는 단순히 그림의 외형만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속된 자는 예술에 대해 고민해본적도 없고 예술가들처럼 많은 시간을 작품에 열중한 적도 없기에 빨리 지친 예술가 즉 많은 고민과 시간을 작품에 투자하지 않은 예술가의 작품에도 찬미하고 경외한다는 의미이다. 도적은 많은 시간을 작품에 투자하지 않고도 예술에 경지에 올랐다고 만족하는 예술가들을 고생 없이 재물을 약탈하는 도적에 비유한 것 같다. 여기서 첫 번째 인상 깊었던 부분과 같이 모든 일에는 정도가 있고 많은 시간, 생각, 과정을 통해야만 진정으로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은 것 같아 인상 깊었다. “정성스레 잘린 선을 만들었으니까 올바르게 그렸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무식쟁이들이 하는 것과는 달리 ,난 형상의 바깥 테두리를 무미건조하게 표시하지 않고 가장 작은 해부학적 세부사항까지도 강조했네. 인간의 육체는 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니까” 라는 말에서 예술적인 부분이 아닌 인생에서 바깥테두리 즉, 외형만을 정확하게 표시했다고 그게 다 가 아니라, 그 속에 숨겨진 세세한 부분도 중시 할 줄 알아야한다는 프랜호퍼의 말에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고 여러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모두가 나는 외부에서 중시하는 것을 모두 갖추었다고 자신만만해 있지만 그곳에서 조금만 섬세하게 자신을 다 룰 수 있다면 진짜 모두가 인정하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 이라 생각한다. 이 책에서 프랜호퍼가 진정으로 예술을 알기위해 생각하는 과정이 나의 경험과 매우 비슷했다. 나도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무작정 명문대 진학을 위해 초중고시절을 공부에 매진했던 경험이 있는데 수능이후 대학교 원서접수 기간에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이지? 미래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 일은 오래 동안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물론 이 책이 많은 교훈을 주고는 있지만 그 교훈을 알기위해서 예술가들이 주고 받는 대화에 의미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 의미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아직 20살인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도 여러 부분 있었다. 매 부분 대화의 의미를 설명해주는 부분이 있다.하지만 독자의 의도가 독자의 생각을 유발하기위해서 인지는 몰라도 설명이 너무 간략하고 설명 부분조차 생각을 요구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있어서 조금 아쉬웠다. 예술의 경지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던 프랜호퍼처럼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의 목적을 정확히 모르고 무작정 앞으로만 달려가는 사람, 예술의 경지에 대한 오랜시간 고뇌해보지도 않고 자신이 예술의 경지에 오른줄 알고 만족하는 프로뵈스처럼 자신의 목적에 대한 고뇌없이 순간적인 만족을 자신의 평생에 목적인 냥 이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발자크의‘미지의 걸작’은 많은 교훈을 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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