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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경험했던 자로서 읽는 "직업으로서의 대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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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경험했던 자로서 읽는 "직업으로서의 대필작가"정가가 18,000이나 하면서 200쪽 조금 넘기는 이 얇은 책을 왜 돈을 주고 사서 읽었냐고 하면 나도 한때 대필작가를 한 경험이 있어서였다. 물론 대필작가 경험이 있다고해서 이 책을 다 사서 읽을 필요는 없겠지만, 그냥 저 대필작가는 삶을 어떻게 살았나, 하는 것이 조금 궁금했을 뿐이다, 라고 말하면 거짓말이고, 좀 많이 궁금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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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경험했던 자로서 읽는 "직업으로서의 대필작가"

정가가 18,000이나 하면서 200쪽 조금 넘기는 이 얇은 책을 왜 돈을 주고 사서 읽었냐고 하면 나도 한때 대필작가를 한 경험이 있어서였다. 물론 대필작가 경험이 있다고해서 이 책을 다 사서 읽을 필요는 없겠지만, 그냥 저 대필작가는 삶을 어떻게 살았나, 하는 것이 조금 궁금했을 뿐이다, 라고 말하면 거짓말이고, 좀 많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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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필작가로 책을 딱 두 권 냈다. 한 권에는 내 흔적 자체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책의 80퍼센트는 내가 다 적었는데 내 이름은 어디에도 없는 책이었다. 다른 한 권에는 저자 인사말에 '시인 이태훈 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라고 적어 주셔서 고마웠다. 지금 그 책을 찾아보려고 하니 찾질 못하겠다. 출판사에서도 ISBN을 안 붙이고 출간했는지 출판사 목록에도 빠져 있다.

그 뒤에도 나는 그 출판사와 교회사 작가로 몇 권의 책을 더 냈지만 역시 내 이름은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원고료를 받지 못하고 관계가 끊어졌다. 나는 원고를 다 써서 넘겼는데 무슨 이유인지 출간계획 자체가 무산되었다. 나도 한때는 글노동자의 삶을 살 때가 있었다. 즉 남의 글을 쓰고 돈을 받고 살았다는 이야기다. 내 책을 내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노동으로서의 글쓰기, 즉 다른 사람이나 다른 기관의 출판을 위해 일시적으로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글을 쓰는  것이다. 말은 그럴싸하게 계약이라 했지만, 거의 대부분은 구두 계약이었다. 이번 건은 작가님에게 00원 드릴 게요. 같은 식이었다.

<직업으로서의 대필작가>를 쓴 이재영 작가가 15년차 대리작가라고 하니 따져보면 나는 그 업계를 떠났을 즈음이다. 그러니 내 상황과 이재영 작가와 차이는 크다. 책 중간에 통상 원고료 내용이 나오는데, 확실히 내가 받을 때보다는 금액이 많았다. 저자는 15년 동안 크게 오르지 않았다고 했는데, 내가 볼 때는 많이 받는 금액이다.

저자는 '당신은 뭐하는 사람이냐'는 질문 앞에서 '대필작가'라고 대답하기가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숨겼다고 했다. 나 역시 어디에서도 '대필작가'라고 말하고 다니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고 다녔으면 좀더 많은 일감을 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저자처럼 그게 왜 그렇게 부끄러웠는지 모르겠다.


성인이 되어 스스로를 먹여 살리기 시작한 이후 나에게 가장 큰 풍요를 가져다준 일임에도 나는 늘 이 일을  숨기기에 바빴다. 나름의 직업의식도 있었고, 글을 쓰는 사람이 남의 이야기를 대신 쓴다는 것이 왜인지 부끄러웠다. (7)

저자는 그러면서도 대필 작가 활동이 반드시 부정적이지만은 않다고 얘기한다. 타인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 것은 왠지 매력이 있다. 어차피 우리가 읽는 소설이 타인의 그럴 듯한 인생 이야기가 아닌가. 그러니까, 대필작가는 타인의 삶을 1차적으로 들어주는 사람이 된다. 우리가 소설을 읽으면서 간접 경험을 하고 인간적으로, 인격적으로 성숙해가는 것처럼 대필작가도 그렇게 된다고 얘기한다.

대필은 애매하면서 모호한 일이지만 분명히 매력적이다. ... 이런저런 생을 가까이에서 경험한다는 건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 일이다. 대필 경력이 쌓이면서 여러모로 스스로 조금씩 나아진다고 느끼는데 이는 단순히 나이를 먹어 성숙해지는 것과 다른 결의 성장이다. (8)

대필은 사람을, 그 사람의 인생을 만나는 일이다. 일을 하다 보면 실로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을 만난다. 어떤 인생은 근사한 조각품이 되고, 어떤 삶으로는 멋진 옷이 지어진다. 한 사람의 인생을 아름답게 매만지는 것, 곁에서 그 과정을 돕는 조력자가 되는 것, 책을 만들 때만이라도 그와 내가 세상에서 둘도 없는 특별한 관계가 되는 것, 생각보다 근사한 일이다. (47)

저자는 대필작가를 하면서도 자신의 책을 대여섯 권 출간했다. 참 열심히 산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대필을 하지 않아 시간이 많을 때는 오히려 자기 글이 더 잘 안 써진다고 했다. 희한한 일이긴 한데, 대필 일이 들어오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불안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람 마음이 요동치기 때문에 자기 글마저 안정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일이 없어 시간이 넉넉하다고 해서 내 글이 잘 써지진 않았다. 아이러니하게 내 글은 남의 글을 쓸 때 더 잘 써졌다. 뇌는 일이 있어야 활력이 넘쳤고, 일을 하고 남은 활력의 부스러기만으로도 글을 쓰기에 충분했다. 일이 없는 상태가 되면 그저 무, 아무 에너지도 흐르지 않는 무의 상태가 되어 작동을 멈췄다. 갑자기 쓸모 없는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젖었다. (206)

일이 없다는 건, 일이 빠져나간 자리에 불안을 가득 채우는 것이다. 불안에 잠식당한 삶은 피폐하다. 불안은 내 안의 다정함을 집어삼키고, 이해심도 먹어 치워 버리고, 그리움과 반가움도 너덜너덜 찢어 놓고 사나움만 남긴다 ... 일이 없을 때 나는 굶주린 맹수가 된다. 모든 일에 삐딱해진다. 사람을 대할 때도 날카로운 발톱을 한껏 오므리고 싸울 준비를 한다. 으르렁. (126)

공격은 나를 향하기도 한다. 마흔을 넘긴 나이에 유년의 나를, 10대의 나를, 청춘의 나를 잘근잘근 씹어 대거나, 생의 모든 선택을 후회로 짓이긴다. 엉망이 된 과거는 미래도 잿빛으로 물들이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매일매일 긴장하며 지낸다. (126)

그랬다. 대필작가로 연명한다는 것은 불안으로 내면을 채우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온통 나의 수입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속 편한 사람들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고는 자책하고 후회하고 불안해하며 하루를 버티고 견디는 것이다. 따박따박 월급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프리랜서는 째째해진다. 돈에 인색해진다. 그건 어쩔 수가 없다. 아주 풍족하게 돈을 버는 프리랜서라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프리랜서는 가난하다. 가난 앞에서 늘 겸손해지는 사람들이다.

정해진 날짜에 돈이 들어오는 월급쟁이와는 다르게 프리랜서라는 직업은 진짜 자꾸 치사해져야 하는 일이었다. (91)

모르는 사람들은 자유롭게 시간을 쓰고 흥미로운 일로 돈을 번다며 부러워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땐 서글펐다. 우리는 출근하면 일이 있고 말일이면 통장에 일정 금액이 찍히는 삶을 동경했다. 모두 업계에서 20년이 지난 베테랑들이었지만 20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더 큰 불안을 움켜쥐게 된 가련한 프리랜서 노동자들이었다. 일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다들 당장 해야 할 프로젝트들을 등에 업고 주말을 반납하고 피로와 싸우면서도 과연 다음이 있을까 하는 불안을 떨치지 못했다. (125)


또 사람을 자주 만나는 일이다. 사람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녹음하여 그걸 다시 글로 옮겨 적는 작업을 해야 한다. 사람 만나 대화하는 것이 서툴거나 불편한 사람은 대필작가도 힘들다. 나도 한 권의 책을 만들면서 예닐곱 명의 저자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글을 써준 적이 있다. 처음에는 다들 자기들이 적는다고 했는데, 한 명이 도저히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하여 출판사에서 나를 연결해주었다. 인터뷰를 하고 글을 보내주니, 다른 저자들도 모두 자기 글을 써달라고 해서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내가 쓴 글로 책이 만들어졌다.

나도 내성적이라 사람을 만나는 것을 활동적으로 하지는 못하는 성격인데, 돈을 버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 그런 성격도 쏙 사라진다. 그 사람의 인생을 어떤 식으로 이끌어낼지 질문지를 준비하고 녹음하여 글로 써냈다. 한 권의 책이었지만 여러 명의 저자가 들어가는 것이어서, 각 사람마다 글의 톤과 특징을 바꾸어 적느라고 애를 먹었다. 정말 그 사람이 되어서 그 사람 인생을 적어야 글이 나왔다.

사람을 만나는 일, 다른 사람의 인생을 자기 인생처럼 글을 쓰는 일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대필작가가 될 수 있다. 사람을 만나는 일과 글 쓰는 일을 분리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람을 만날 때는 참 좋았는데, 막상 글을 써서 보내고 나면 글이 마음에 안 든다니 하면서 마찰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알게 됐다. 일과 사람을 분리해야 하고, 특히 사람을 만나고 교감할 때는 굶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일과 관계는 다른 성질의 것이다. (52)

일은 일이다. 일은 인생의 큰 사건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매일 해야 하는 양치나 세수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뜻밖의 피드백을 받았을 때 왜 나한테 이런 말을 하냐며 부들부들 떨 일이 없다. 멘털 부서질 일도 없다. 일은 일일 뿐이며 상대적이라 나의 열심과 상대의 만족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다는 걸 인지한 상태에서 최선을 다한다. (53)

저자는 이제 대필작가임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고 한다. 뭐 이제 떡 하니 이름까지 걸고 책을 냈으니 여기저기서 대필 일이 더 많이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중간에 샘플로 쓴 글을 넣어 놓았는데 읽어보니 글을 참 잘 쓴다.

전엔 대필 일을 숨겼다. 출판사 사람들을 만나도 내 이름으로 출간한 책 이야기만 했다. 어느 순간부터 어차피 쓰는 일인데 굳이 숨기지 않기로 했다. 이런저런 계산 없이 툭 터놓으니 새로운 인연으로, 새로운 일로 확장됐다. (57)

저자는 마지막 부분으로 가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확립한다. 참으로 긍정이 넘치는 정체성이다. 일과 자신을 분리하는 것이다. 앞에서 일과 사람을 분리한 것처럼, 자신의 정체성에서 자신과 일을 분리함으로써 저자는 인생의 성공에 한 걸음 크게 다가섰다. 

어떤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사느냐로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이 만들어진다는 것. 그것을 가슴에 새길 때, 다른 사람의 글을 대신 써주는 대필작가라는 직업이 부끄럽지 않는다. 부끄럽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운 것이다. 

일의 의미도 다시 정의했다. 일은 나의 정체성과 아무 관련이 없다. 나라는 사람은 어떤 일을 하느냐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로 정해진다. 일은 하루하루를 잘 사는 데 필요한 재료 중 하나다.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에 초점을 맞추니까 의외로 모두 간단했다. 신기하게도 오늘 주어진 일이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178)

대필이라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이라는 걸 나는 조금 늦게 알게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글보다 사람에 방점을 찍었을 때 더 만족할 만한 글이 나왔다. (184)


책으로서 한 번 읽고 꽤 많은 문장을 필사하면서 두 번 읽었다. 그러면서 나도 저자의 생각에 좀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다. 이제는 나름 유명인사가 되어 대필작가로서가 아니라 책방 주인으로서, 그리고 자기 이름을 내 건 작가로서의 삶이 더 픙성하게 펼쳐질 것 같다. 하긴. 이런 책이 얼마나 읽히고 팔릴지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낭패긴 하다. 좀 팔려야 할 텐데.

꼼꼼하게 잘 쓴 책이다. 역시 여러 책을 대필하고 자신의 책을 펴낸 필력이 나타난다. 질서와 체계가 있고 서사와 감동이 있다. 대필작가가 되려는 분은 많지 않겠지만 혹시 작가로 책을 내고 나서 출판사에서 대필작가로 문의가 온다면 얼른 하겠다고 하라.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으니까. 그 일이 또 다른 일로 연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어떤 일을 하느냐로 내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로 정해지는 것이 맞는다면, 더더욱 그렇다. 어떤 일이든 일은 일이고, 사람은 사람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은 대필작가의 일도 없지만, 만약 들어온다면 두 팔 벌려 환영할 것이다. 대필작가의 내공이 단단히 박힌 책, 꼼꼼하게 쓴 책, 꼼꼼하게 읽고 후기로 올려본다.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는 책으로 다가가면 좋겠다. 다른 사람의 삶이 늘 궁금한 나는 이번에도 한 사람의 인생을 책 한 권으로 경험했다. 그래서 독서는 좋다. 이 책을 읽음으로 이 책 저자와 조금 더 가까워지고 친밀해진 느낌이 든다. 내가 아는 사람인 것만 같다. 언젠가 만난다면 말을 조금 쉽게 붙일 수 있을까.

북유럽 책방을 가게 되면, 나 이 책 읽은 사람이라고, 대필작가도 해 본 사람이라고 말을 걸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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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i*******n 2024.07.05.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