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때 어찌나 재미가 나던지 조바심이 날 지경이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만났을때였었다.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여러 인물들중 스승이었던 패튼 교수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패튼 역시 자신의 사상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학생을 발견할 때 행복감을 느꼈다. 그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정확하게 관찰하며, 관찰한 것을 명쾌하게 묘사하고, 또 동일한 것을 보고,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여 그것을 묘사하는 사람들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그가 바라던 바였다.』 ‘정확하게 관찰하다’ 라니! 내가 지금껏 살아온 나날도 별로 길다고는 볼수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느끼게 되는 것은 바로 사람들에게 ‘관찰력’이 없다는 것이다. 처음엔 깜짝 놀라듯 느꼈었고, 점점 기정사실화 되듯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처음 홍성으로 발령을 받았을때, 나는 학교 영양사로는 공채 2기였다. 영양사라는 직업은 다른 사람들에게 굉장히 생소한 것은 사실이었다. 도대체 영양사가 하는 일이란 무엇인가? 영양사실에 틀어박혀 있고, 배식시간에는 하얀가운 입고 슬슬 돌아다니고, 그 다음엔 다시 얼굴조차 구경할수 없는데. 남들이 보기엔 조리하는 분들만 하루종일 부산스럽게 음식하고, 설거지 하고 청소하고 있다. 어느날 친하게 지내던 40대 남자선생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 남들이 영양사란 참 한가하겠다고 생각한다는 것.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순진하게 내가 하는 업무에 대해서 말씀드렸다. 식단을 작성하기전엔 각 재료에 대한 가격, 배달규격, 출하시기 등에 대한 시장조사부터 식단내에 필요한 가격, 열량, 영양소, 색감, 질감, 온도, 단맛, 매운맛, 신맛의 조화와 일주일, 한달 간격의 각 식품간의 조화를 모조리 맞추기 위해 몇 번이나 다시 조정해야 하는, 또한 식사중에 사람들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잔반량과 기호도, 또 원하는 대로 맛이 나기 위한 조리원들에 대한 지도, 그리고 방대한 장부정리 등등. 내 얘기를 듣던 그 선생님은 자신이 종사하지 않는 직업에 대해 생각지 못했던 분주함에 대해 약간을 놀라면서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런 것을 알게 하기 위해 종종 장부를 싸들고 교무실에 와서 일을 한다던지의 행위가 필요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그 순간 나는 흥분하고 말았었다. 나를 한가하게 생각하는 것까지도 좋다. 하지만 왜 날 이해하려고만 들면 얼마든지 약간의 관찰만 해도 알수 있는 일들을 굳이 내가 그들 앞에서 쇼를 해야만 한단 말인가? 나야말로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만 교무실을 들르는 통에 늘 선생님들이 쉬고 있는 광경만 목격하지만, 오로지 무심결에 보는 모습만으로 그들의 하루를 지레짐작할순 없지 않는가 말이다. 그렇다. 관찰이란 그런 것이다. 바로 관심이고 따스한 눈길이고 존중이다. 그런 오해를 접하면서 순수한, 진심을 곁들인 관심도 없이 겉으로 보여지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사실을 왜곡할수 있는지 깜짝 놀라는 마음으로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내게 길들여져 조금이나마 무언가를 판단하기 전에는 없던 관심도 끌어모아 관찰을 하게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거기에 덧붙여 진리를 탐구하는 눈으로 정확하게 관찰하고, 그를 명쾌하게 묘사하고, 같은 것을 발견하고 같은 언어로 그것을 묘사하다니. 얼마나 멋진지! 이 책의 맨 앞부분에 스콧의 생애에 대해서 ‘진 헤이’가 쓴 글을 정리해 놓은 것을 보면 스콧이 방대한 관심의 영역과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스콧은 그 시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아동, 여성, 연금 등에 대해서 관찰하고 의견을 피력했으며 석유와 전쟁간의 관계에 대해 글을 썼고, 남들이 당연하게만 생각하고 마는 흑인들이 당하는 폭력에 대해서도 생생히 묘사하는 글을 썼다고 한다. 그것은 그가 평생을 그의 스승 패튼처럼 ‘정확하게 관찰’하는 일을 게을리한 적이 없다는 것이리라. 그렇기에 그는 남들보다 먼저 발견하기도 했지만 또 남의 말을 무턱대고 신봉하거나 세뇌당하지도 않았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전쟁에 동조하던 그 시절, 그가 전쟁에 반대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사회적 지위를 박탈당하고 그와 함께 하던 동료들도 하나둘 안정된 생활을 위해 돌아서고, 거의 홀로 그동안 온 정열과 정성을 기울여온 사회에 발 디딜곳이 없어졌을때 그가 한말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 내가 쓸데없이 풍차에나 덤벼드는 돈키호六눼?말인가? 나는 미쳤고, 현상유지를 주장하는 보수적인 내 동료 시민들은 제정신인가? 아니면 나 혼자 제정신이고, 그들이 다 미친것인가?』 늘 다수의 물결에 휩쓸리는것에 안정감을 느끼는 우리로서는 그의 그순간의 고뇌는 가슴을 파고든다.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그의 관심영역은 참으로 광범위하다. 개인적으로 영양사여서인지 그의 식생활만 하더라도 얼마나 선구자적인지! 우린 이제야 소박한 밥상 운운하며 건강을 되찾기 위해 덜 먹는 식생활을 추구하는데, 스콧이 살았던 시절은 권장영양량을 설정하며 더 큰 키와 더 큰 덩치를 만들기 위해 농약과 비료를 사용해 대량생산을 도모하기 시작하던 때가 아닌가 말이다. 스콧은 누가 만들어 준것도 아닌 스스로의 영양권장량을 만들 듯이 다음과 같이 식생활을 했다고 한다. 유기농 자연식품일 것, 신선한 식품일 것, 저단백 식사일 것(이것은 내가 대학때 배운 지식과 얼마나 다른것인지!! 그런데 요즘에서야 고단백이 위험할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다니!) 먹는 음식의 50%는 과일과 과일주스, 35%는 채소, 10%는 지방(식물성 기름과 견과류), 5%는 단백질(곡류, 콩, 씨앗, 견과류)라고 한다. - 어찌보면 지독하단 생각마저 들게 하는 대목이었다. 사회학자인 스콧이 이런 식생활 규칙을 세우고 평생을 실천했다니. 다들 알다시피 스콧은 100세때 스스로 곡기를 끊어 생을 마감했고, 아내인 헬렌은 99세때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는 평생을 자신이 스스로 관찰하고 연구하고 조사하고 선별하고 분류하여 세운 원칙들을 지키며 살았다. 하지만 그것은 몇가지 간단한 원칙으로 집약된다. 평화주의, 채식주의, 전쟁반대 같은 것들은 ‘생명존중의 원칙’이었고, 자본주의에 반대하여 사회주의자가 된 것은 ‘다른 사람의 노동을 댓가로 편히 지낼 수 없다 라는 원칙’이었을뿐이다. 그 말은 자본주의에 반하는 사회주의에 대한 그의 주장을 집약해놓은 말과 같았고, 그 어떤 이념에 내포된 광대한 내용보다 마음에 파고들며 흠칫 내 자신을 뒤돌아보게 했는데, 더욱 내게 간결하고도 파고들었던 말은 ‘평생 다른 사람에게 명령조의 말을 한적이 없다’라는 대목이었다. -엄청나게 찔리는. 내가 가장 큰 권력을 행사하는 내 아이들에게. 그가 농장생활을 하며 ‘4시간의 생계를 위한 노동과 4시간의 읽고 쓰는 영혼을 위한 시간과 4시간의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의 친교의 시간’으로 완벽한 하루를 이루었다는 말은 요즘 우리들에게 얼마나 갈망하게 되는 것인지.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별반 관심 갖지 못했던 자본주의와 과당경쟁, 육체적 노동과 저단백식사, 진심을 갖고 관찰하기, 권력과 명령, 그리고 휩쓸리지 않을수 있는 힘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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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좀 있겠지만 대개 서른을 넘기면서부터 우리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때 우리의 마음을 채우는 것은 뿌듯함보다는 아쉬움이, 당당함보다는 부끄러움이 더 많아서 때늦은 후회와 뼈아픈 자책을 피할 길이 없다. 하지만 그런 후회와 자책,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곤 하는 결의에 찬 다짐으로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 것이 또한 우리네 삶이다. 마흔을 넘기면서 우리는 10년 전에 했던 것과 별로 다를 바 없는 후회와 자책을 다시 되새김질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쉰, 예순에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다가 일흔, 여든에 이르러서는 그저 만시지탄 끝에 혼자 중얼거리게 되리라. 아, 내가 10년만 더 젊었더라면……. 하지만 우리에게 10년 아니 20년이 다시 주어진다고 해서, 과연 우리가 말줄임표에 담고자 하는 다른 삶의 내용이 쉽게 채워질 수 있을까? 그렇지 않으리라.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삶을 꿈꾸는 한 언제나 우리의 삶은 불만족스럽고 미완의 것일 테니까. 아쉬움과 부끄러움, 후회와 자책은 다시 살아온 10년 또는 20년의 삶 속에서도 여지없이 느껴질 테니까. 그건 우리가 어떤 삶을 살든지 거의 대부분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삶을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삶을 살아가더라도, 그 삶이 완벽한 경우는 몹시 드물기 때문이다. 성인(聖人)이 아닌 한, 우리네 삶은 대체로 그렇다. 불만족스럽거나 아니면 불완전하거나. 그런데 여기 백 살이 되자 스스로 곡기를 끊고 “좋 - 아” 라고 흡족하게 말하면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있다. 청년시절에 열정적으로 탐구하고 또한 직접 체험하여 깨닫게 된 진리를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지켜내고,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온몸과 마음을 다해 그 진리를 실천함으로써, 자신의 삶에 조금의 아쉬움이나 부끄러움도 남기지 않은 남자가 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1백 년의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가장 완전하고 조화로운 삶을 산 사람’이라고 부르는 이가 있다. 그의 이름은 스콧 니어링. 그런 위대한 사람을 나는 이제야 비로소 만났다. 물론 이런 저런 책에 언급된 그의 이름과 간략한 생애를 접한 바 있지만, 그가 여든 살이 넘어서 쓴 자서전을 통해서 비로소 그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으니, 내게는 이 책이 그와의 첫만남인 셈이었다. 『스콧 니어링 자서전』의 본문을 몇 쪽 읽어나가는 동안 내가 느낀 첫인상은 자서전치고는 너무 딱딱하고 좀 계몽적이라는 것이었다. 서문에 그가 밝혀놓은 대로 ‘자서전은 한 개인의 기록이라기보다는 그 개인이 살아온 시대의 기록이어야 한다’는 신념이 본문의 내용에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궁금해할 흥미로운 개인적 일화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글의 흐름상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 아주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스무 살이나 어리지만 평생의 반려이자 친구이자 동지가 되었던 두번째 아내 헬렌 노드와의 만남도, 그는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배제한 채 몇몇 사실들만을 겨우 몇 줄로 적어놓고 있다. 나는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를 배웠고, 내 나름의 이념을 형성했으며, 세상을 보는 확고한 관점을 세웠다. 또 앞으로 다가올 세기에 대해 어느 정도의 통찰력을 갖출 수 있었다. 진지한 내용을 담은 자서전이라면 이런 관점이 당연히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이런 의미에서 내 이야기의 많은 부분은 권력자의 자리인 선교(船橋)가 아니라 돛대 위에 있는 망대(望臺)—여기에서는 수평선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다—에서 전하는 보고인 셈이다. (40쪽, 서문) 자서전을 집필하면서, 권력자가 아니라 조망자로서, 즉 선교가 아니라 망대를 자신의 자리로 삼겠다는 이 말은, 자신이 지나온 삶을 객관적이고 전일적인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집필을 하는 동안 혹시나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저지를 수 있는 자신의 삶에 대한 윤색과 합리화, 그리고 남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의 값싼 호기심이나 충족시켜줄 사소하고 지엽적인 개인사에 대한 서술은 피하겠다는 다짐일 터이다. 이 책의 영문 표제(The Making of a Radical)와 부제(A Political Autobiography)에도 명확히 드러나 있는 이러한 그의 다짐은 본문을 이루고 있는 내용과 서술 방식에서 보다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즉, 자신의 삶에서 인상적으로 떠오르는 추억들이나 중요한 일화들에 대해서 말하기보다는 자신이 사회주의자, 평화주의자, 채식주의자로서 한 평생을 살게 된 배경과 그 이념들을 급진적(radical)이라고 불릴 정도로 철저하게 실천하는 이유 등을 서술하는 데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또한 두 번에 걸쳐서 교단에서 해직된 경험과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반전논문 발표로 기소된 경험 등 자신의 순탄치 않은 인생 경험에 대해 언급할 때도, 직접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는 대신 당시 각종 매체에 보도된 기사나 지인들의 편지글을 인용함으로써 마치 남 얘기하듯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이러한 계몽적인 내용과 딱딱한 서술 방식은 분명 이 책의 미덕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결점도 아니다. 손에서 책을 떼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게 읽히지는 않지만 누구나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올곧은 사상을 담은 그의 열정적인 글들과 그 사상을 실천하기 위해서 분투하는 그의 곡진한 삶의 모습들은 묵직하게 우리의 가슴을 때린다. 삶에서 자극적인 재미와 의외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데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우리에게는 그의 사상과 삶은 지나치게 직언이고 바른 생활이어서 어느 면에서는 참 기이하게 여겨질 정도지만, 결국은 그의 말과 삶이 옳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1917년 전쟁이 시작되고부터 나는 일부러 강연에 유머나 가벼운 얘기는 넣지 않았다. ‘청중을 즐겁게 하는 잘 나가는 강사’이기를 그만둔 것이다. 나는 연단에 올라가 가능한 한 명쾌하게 강연 내용을 전달하고, 꼭 해야 할 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했다. 더 이상 청중이나 주최측의 환심을 사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리고 매번 강연에 앞서 내 자신에게 말했다. ‘이게 내가 연단에 서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 모르지만…….’ 그런 다음 연단으로 나가 시시껄렁한 얘기는 빼고 꼭 해야 할 말만 했다. 그럴 경우 그 연단에서 처음 한 강연이 마지막 강연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한 예로, 뉴욕 시의 쿠퍼 유니온에서 전쟁과 혁명에 관한 도발적인 강연을 한 일이 있었다. 쿠퍼 유니온측은 그후로 두 번 다시 나에게 강연을 요청하지 않았다. (156쪽, 가르치는 자는 생각을 나누지 않으면 안 된다) 한창 시절에는 한 주에 평균 8~10회나 강연하기도 했을 정도로 뛰어난 연사였지만, 스콧 니어링은 이처럼 결코 대중의 입맛에 영합하지 않았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두 번의 세계대전이 포함된 역사의 격변기를 살아오는 동안, 사회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로서 누구 못지않게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자신의 체험담을 극적인 어조로 세세하게 묘사하는 대신, 그는 자신이 품고 있는 사상과 치밀하고 실증적인 탐구 작업을 통해서 밝혀낸 진리를 들려주는 데 더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그의 자서전을 읽는 게 아니라 마치 그의 길고 긴 그러나 참으로 감동적인 강연을 듣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대부분의 독자들은 쿠퍼 유니온과는 달리, 이 책을 두고두고 다시 펼쳐서 그의 강연을 다시 듣고 또 듣고 싶어하리라. 이 책에서는 여든이 넘은 노인의 육성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열정적이고도 신념에 가득 찬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오거니와, 아울러 그런 청년의 눈으로는 도저히 꿰뚫어 볼 수 없는 우리 사회와 현대 문명에 대한 냉철하고도 준엄한 비판의 목소리도 함께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출간된 지 벌써 40년이 지났건만,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스콧 니어링의 비판이 아직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 아니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절실하게 우리 가슴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은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문장들. 미국적 방식이란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에 기반을 둔 게 아니라 임금을 삭감하고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기업가의 결단에 바탕을 둔 것이다. 미국적 방식이란 가난한 자는 현재대로 놓아두고 부자는 더 부유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바로 ‘상류층 인사’들이다. 쇼의 흥행권을 쥐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것을 운영하는 자들이다. 1910년경 링컨 스테펀스가 필라델피아에서 한 강연이 생각난다. 유럽 봉건제 아래에서 ‘상류층’이란 지주와 성직자, 그리고 가신들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하의 미국에서는 은행가. 기업가, 상인, 그리고 그들의 가신들이 바로 ‘상류층 인사’에 속한다. (171~172쪽, 소수 독재체제와의 접촉 그리고 충돌) 어떤 전쟁에서든 최초로 희생되는 것은 바로 진리라는 옛말이 있다.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볼 때, 전쟁은 진리와 인간적 품위, 예절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과 사회의 진보에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재앙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나는 당당히 증언할 수 있다. 전쟁은 지옥이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극악할 수도 있다. 전쟁은 건설과 진보라는 인간 고유의 활동을 방해하고, 그들을 파괴자와 살인자라는 범주로 몰아넣는다. (240쪽, 마침내 총성이 울리다) 모든 계급사회의 밑바탕에는 ‘네가 일하고 나는 먹는다’는 원칙이 깔려 있다. 이 원칙은 사람들을 결합시키는 대신 뿔뿔이 떼어놓는다. 이 원칙은 협력의 반명제이다. 미국에 만연해 있는 이 원칙은 오늘날 건강한 공화국의 장래를 위협하는 가장 큰 독소 가운데 하나이다. (357쪽, 서구 문명과 결별하다) 스콧 니어링의 삶의 전반전은 이렇듯 사회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로서의 삶이었는데, 쉰 무렵 헬렌을 만나고 함께 시골생활을 하게 되면서부터, 세계와 삶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보다 원숙해지고 깊어지면서 새로운 차원을 더하게 된다. 그는 그저 채식주의자로서의 삶이라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지만, 그건 생태주의자로서의 삶이라 부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비용이 많이 드는 도시 생활이 야기한 경제적 궁핍에서 벗어나고 대자연을 좀더 가깝게 누리고 싶다는 현실적인 요청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헬렌과 함께 한 시골생활은 매우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시골생활을 통해서 그는 경쟁적이고 공업화된 사회양식에 필연적으로 따라다니는 네 가지 해악, 즉 물질에 대한 탐욕에 물든 인간들을 괴롭히는 권력, 다른 사람보다 출세하고 싶은 충동과 관련된 조급함과 시끄러움, 부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에 반드시 수반되는 근심과 두려움, 많은 사람이 좁은 지역으로 몰려드는 데서 생기는 복잡함과 혼란을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고 고백한다. 이렇게 해서 그의 인생 후반부는 본격적인 생태주의자로서의 삶으로 확장되는데, 그 삶은 그가 혐오하는 문명으로부터 벗어나 자존심과 품위를 지키는 생활을 누리고, 직업과 취미를 서로 조화시켜 나가며, 손수 농사를 지어 수확한 유기농 야채와 과일을 먹으면서 건강을 지켜나가는 삶이었다. 우리의 시골생활은 상아탑에 은거하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의 시골생활은 미친 세상에서 제정신을 갖고 사는 삶의 한 예이자 본보기이다. 시골생활은 사회와 접촉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자연과의 접촉방법이다. 시골생활은 이 폭력적인 세상에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살 수 있게 해준다. 시골생활은 기존 사회질서의 한 부분을 대신할 수 있는 바람직하고 흔치 않은 대안이며 비정상적인 정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 피난처이다. 또한 시골생활은 활동적인 사람들이 만년을 보내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기도 하다. (동양적 인생관에 의하면 가장의 시대가 지나면 은자의 시대가 온다고 한다.) 현자나 성숙한 인간이 자신의 직업과 취미에 종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시골생활이다. 문명의 유혹과 천박함을 간파하고 이 험난한 세상에서 자존심과 품위를 지키며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갈 길을 찾는 젊은이들의 수가 점점 늘고 있는데, 시골생활은 이런 젊은이들을 위한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411쪽, 뉴잉글랜드의 피난처) 보통의 미국인은 건강이 무엇인지, 혹은 건강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건강이 나빠진 것 같다 싶으면 의사를 찾아가는데, 이 의사라는 사람들은 병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엄청 많지만 건강에 관해서는 자신을 찾아온 환자만큼이나 아는 게 거의 없다. 의사는 ‘특효약’을 처방하여 환자의 고통을 덜어줄 수는 있지만, 부실한 건강에 따르기 마련인 질병을 예방하지는 못한다. 의사들조차 미국 사회에서 크게 문제가 되는 온갖 질병들을 앓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의사는 본래 건강에는 관심이 없다. 의사의 전문 분야는 질병이다. 만약 세상에 질병이 없다면,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이 다 건강하다면, 의사들은 사고로 인한 부상이나 유아기와 노년기의 불가항력적인 질병을 치료하는 것 말고는 할일이 없을 것이다. (395쪽, 뉴잉글랜드의 피난처) 사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스콧 니어링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치열하게 살아온 사회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로서의 면모가 아니라 이렇듯 헬렌과 더불어 버몬트 주와 메인 주에서 대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건강한 삶을 살아간 생태주의자로서의 면모에 더 많이 빚지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그러나 삶의 터를 도시에서 시골로 옮겼다고 해서 그의 삶의 자세가 열정적인 투사에서 명상하는 은둔자로 바뀐 것은 결코 아니었다. 집필과 강연 활동은 전보다 더 왕성하게 계속되었고 세계 곳곳을 직접 찾아 다니며 자료를 조사하고 체험하고 연구하는 기회로서의 여행도 그 목적지가 더욱 넓어졌다. 또한 그 동안 그가 정열을 쏟아온 사회 문제들에 대한 주제의 범위와 관심의 폭도 더욱 넓고 깊어졌다. 경제적 불평등, 전쟁과 소수 독재체제, 천박한 생활방식과 그걸 부추기는 매스미디어 등 미국 사회의 병폐를 신랄하게 고발하던 초기의 비판은 이제 자본주의와 서구 문명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확대되어 나갔다. 이 책에서는 주로 3부에 수록되어 있는 통찰력으로 가득한 이 문명 비판의 저변에는 그가 인생의 후반전에 대자연 속에서 생활하면서 느끼고 깨달은 생명과 우주의 원리가 깔려 있다. ‘위험은 명백하고, 사태는 급박하다’고 말하면서, 지금 이 시대의 부패한 사상과 병든 문명에 경종을 울리는 그의 목소리에서는 사뭇 예언자적인 풍모까지도 느껴진다. 자본주의를 꺾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대항마로서 그가 기대해 마지 않았던 사회주의가 이제는 무너져버리고 말았지만, 40년 전에 그가 우리에게 열정적으로 촉구했던 ‘치열한 싸움’은 아직도 유효하다. 한 세기나 더 이전에 살았던 옛사람이 된 스콧 니어링의 자서전을 우리가 지금 이 시대에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가 또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지구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치열한 싸움이 승리를 거두려면 우리가 서로 도우며 사는 법을 배우는 길뿐이다. 지구라는 한정된 땅덩어리에 35억 인구가 북적대고 무선통신과 신속한 이동이 보편화된 상태이고 보면, 평화롭고 인도적인 사회 관계가 더욱 절실하게 필요하다. 우리가 지구상에 계속 남아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려면, 우리는 반드시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치열한 싸움에서의 승리는 말보다 행동에 달려 있다는 믿음이 점점 확고해진다. 이념의 중요성은 갈수록 줄어들고, 지혜롭고 현명한 실천의 비중은 점점 커질 것이다. (491쪽, 치열한 싸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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씐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더랬다. 그런데 샤바샤바 알샤바 1982년에 왕자의 고백을 받았을 때, 씐데렐라는 왕자가 강남에 대형 아파트를 해오지 않으면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이후에 씐데렐라는 유리구두를 신고 파티장을 누비다 부잣집 놈팽이를 만나 결혼을 했다. 그러나 그 놈은 사상 최악의 사기꾼 가난뱅이에다 극악무도한 바람둥이였다. 씐데렐라는 화병이 나 27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았다. 평소 망자의 유언대로, 무덤 속에는 그 잘나빠진 유리구두 한 켤레가 함께 묻혔다. 당신이 구입한 고급 세단과 대형 아파트는 당신의 무덤을 지키지는 못한다. 당신은 빈손으로 태어나 빈손으로 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세상이 더! 더! 더!를 외치는 이유는 뭘까? 죽은 사람은 말이 없기 때문일까? 만약 시체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이 모든게 부질없는 짓이라고, 돈과 지위를 탐하기 보단 당신의 이웃과 가족과 사회를 사랑하는 편이 더 낫다고 말해준다면 세상은 바뀔 수 있을까? 내가 너무 바보같은 질문을 한 것 같다.
어떤 시대나 마찬가지로 대세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평생 외롭게 살다 고독하게 죽을 운명을 맞는다. 대세는 자신의 뜻을 거스리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대세가 반골들에게 내리는 최초의 형벌은 바로 사회로부터의 단절이다. 스콧 니어링은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아동 노동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9년 동안 일해 온 직장에서 - 펜실베니아 대학 교수직 - 해고 당했다. 어렵게 다시 찾은 교수직도 오래가지 못했다. 출판사와 잡지사들을 더 이상 니어링의 글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중 강연회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니어링 박사는 강연계의 섭외 목록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1917년에는 스파이 혐의로 기소되어 1919년 연방 법정에 피고로 섰다. 죄목은 '전쟁에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큰 어려움이 뭔지 아는가? 그건 이 위대한 이상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외면 당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안된다고 하는 일을 끈덕지게 밀어 부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건 세상의 인정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의 믿음이다. 그러나 대개는 가족과 친구들이 제일 먼저 등을 돌린다. 스콧 니어링은 자신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에 포획되어 부유하고 탐욕스런 인생을 선물 받는 걸 목격했다. 그 자신은 이미 오래전부터 부인과 별거 중이었다. 경제적 압박은 신념을 향해 나아가는 배를 가로 막는 또 다른 암초다. 스콧 니어링은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하던 시절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을 예감하고 아주 작은 연금을 마련해 두었다. 연금은 결코 넉넉한 액수가 아니었기에 스콧 니어링은 자신의 삶을 철저한 무욕으로 통제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인생의 두 번째 동반자인 헬렌을 만난다. 헬렌은 니어링 보다 무려 스무살이나 어린 처녀였으나 누구보다도 그의 신념을 믿고 따랐다.
1983년 8월 24일, 스콧 니어링은 곡기를 끊고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그의 나이 딱 100세가 되던 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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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생을 즐기거나 다른 사람의 노동에 의해지 살아가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다. 내가 이 땅에 온 것은 일을 하기 위해, 그것도 있는 힘을 다해 힘 닿는데까지 열심히 일하기 위해서다." (스콧 니어링)
스콧 니어링은 1883년에 태어나 1983년 1백살의 나이로 눈을 감을 때까지 완전하고 조화로운 삶을 추구했던 미국의 위대한 사상가이다. 평생을 진리의 편에서 타협하지 않고 맞서 살았던 니어링은 1백살이 되던 해, 자신의 소명이 다했음을 알고 스스로 곡기를 끊는 죽음을 선택한다. 그의 반려자 헬렌 니어링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단히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펜실베니아 탄광도시의 부유한 가정에 태어난 니어링은 1,2차 세계대전의 격랑속에서 전쟁의 광기를 강도높게 비판하며 미국의 정치, 사회, 경제적 문제를 신랄하게 꼬집었다. 열정적인 저술과 강연활동으로 인해 니어링은 1917년 스파이로 몰려 곤혹을 치르는가 하면 대학교수직에서 제명당하고 학계로부터 배척당했다. 비록 교수직은 유지할 수 없었지만 더 나은 사회질서를 꿈꾸며 토론, 강연, 연구활동을 지속적으로 벌였고 미국 젊은이들에게 존경받는 학자이자 사회운동가로 이름을 떨쳤다.
스스로 평화주의자, 채식주의자이면서 사회주의라고 했던 니어링은 개량의 방법으로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다고 봤다. 그는 인류가 화목하고 창조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 체제 건설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변화는 급진적이고 혁명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통 나이가 들면 젊은 시절의 날카로운 주장도 무뎌지는 경우가 많은데 니어링은 달랐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사회혁명에 대한 그의 입장은 더욱 단호해졌다.
사회주의자였던 생의 마지막까지 니어링은 사회주의의 운명에 관해 고뇌했다. 그는 사회주의자이지만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그으면서 현실 사회주의가 보이고 있는 한계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했다. 그는 "사회주의 국가들과 사회주의 운동이 파괴적인 생존투쟁의 차원을 넘어 공동선을 보장하고 보편적인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창조적인 협동의 지평으로 인류를 끌어올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생명력이 있고 토대가 든든하며 헌신적일까?"라는 의문을 품었다. 또한 "사회주의는 완제품이 아니라 성장하고 변화하고 발전하고 전환하는 사회제도들의 결합체"라고 정의하며 정통 마르크스주의가 폭력 사용을 정당화하거나 인간 개인와 우주의 문제를 등안시하므로 새로운 통합 논리로 작용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실 사회주의에 관한 그의 혜안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니어링은 1945년 미국 정부의 원폭 투하를 지켜보며 서구 문명과의 완전한 단절을 선언하고 버몬트 지역으로 들어가 자급농이 된다. 이때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낸 그의 편지는 유명하다. 그는 "당신의 정부는 더 이상 나의 정부가 아닙니다. 오늘부터 우리의 길은 달라집니다. 당신은 계속 세계를 파괴하고 이 세상을 고통에 빠뜨리는 당신의 행로를 가겠지요. 그것은 자살행위입니다. 나는 협력과 사회정의, 그리고 인간의 행복에 기초한 사회의 건설을 돕는 일에 착수할 것입니다."라고 썼다.
스무살 연하의 매력적인 여성 헬렌과 결혼한 니어링은 자급농이 되어 직접 땅을 일구고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연구활동과 저술, 강연도 꾸준히 벌였다. 농한기에는 간단한 짐만 꾸려 아내와 함께 대중 강연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스콧과 헬렌은 1911년 니어링이 쓴 좌우명에 입각해 조화롭고 평화로우며 완전한 삶을 추구했다. 니어링은 "시골 생활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과 접하면서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생계를 위한 노동 네 시간, 지적 활동 네 시간, 좋은 사람들과 친교하며 보내는 시간 네 시간이면 완벽한 하루가 된다. 생계를 위한 노동은 신분상 깨끗한 손과 말끔한 옷, 현실 세계에 대한 상아탑적 무관심에 젖어 있는 교사에게서 기생생활의 때를 벗겨준다"고 했다.
간소하고 질서있는 생활을 할 것. 계급투쟁 운동과 긴밀한 접촉을 유지할 것.
스콧 니어링의 생애를 읽다보면 '앎'과 '삶'이 일치된 인생이란 이런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앎과 삶의 간극 속에서 번뇌하며 사는 것이 보통 인간의 인생이다. 니어링은 보통의 수준을 뛰어넘는 삶을 살았다. 혹자가 그를 '성인'이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생각하는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니어링의 생애와 꼭 들어맞는 경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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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니어링 저서전》에서 발췌하여 필사한 내용입니다.
시골생활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과 접하면서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생계를 위해 노동 네 시간, 지적 활동 네 시간, 좋은 사람들과 친교하며 보내는 시간 네 시간이면 완벽한 하루가 된다. 생계를 위한 노동은 신분상 깨끗항 손과 말끔한 옷, 현실세계에 대한 상아탑적 무관심에 젖어 있는 교사에게서 기생생활의 때를 벗겨준다.
우리는 돈을 벌려고 애쓰는 대신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년 1년을 그럭저럭 지내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월급은 얼마지?"
우리는 모든 계획과 목표를 고려하여 필요한 현금 액수를 정한 뒤, 그 액수를 벌어들일 수 있을 만큼만 환금작물을 생산했다.
그리고 일단 목표액이 채워지면 다음해 예산을 세울 때까지 생산을 중단했다.
꾸준하고 인내심있게 수동톱으로 산더미 같은 나뭇더미와 가지들을 16인치 크기로 잘라 부엌용 난로의 연료로 만드는 조그많고 깐깐한 노인이 1917년 반전 논문을 발표하여 스파이 혐의로 기소되어 1919년 연방법정에 피고로 섰었다는 사실을 상상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1백 년의 시간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으로 의미있고 충만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실천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의 메시지는 자본주의 소비문화가 극대화되면 될수록, 우리의 삶이 더욱 바빠지고 황폐해질수록, 더욱 강하게 되살아날 것이다.
1911년 그가 써놓은 좌우명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져 있다.
"…… 간소하고 질서있는 생활을 할 것. 미리 계획을 세울 것. 일관성을 유지할 것.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은 멀리할 것. 되도록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할 것. 그날그날 자연과 사람 사이의 가치있는 만남을 이루어가고, 노동을 생계를 세울 것. 자료를 모으고 체계를 세울 것. 연구에 온 힘을 쏟고 방향성을 지킬 것. 쓰고 강연하며 가르칠 것. 원초적이고 우주적인 힘에 대한 이해를 넓힐 것. 계속해서 배우고 익혀 점차 통일되고 원만하며, 균형잡힌 인격체를 완성할 것……."
이 같은 경제문제에 중압감을 느껴, 나는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지출을 최소한으로 줄일 것
둘째, 학교 밖의 수입원을 늘릴 것
셋째, 수입의 일부를 노후생활을 위해 적립할 것
이 세 가지 원칙 중에서 가장 지키기 힘든 것은 사치와 낭비가 미덕인 풍요로운 사회에서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일이었다.
나야 출세주의자가 될 의향도 없었고 출세주의자인 적도 없었으니, 갖고 싶은 것은 물론 꼭 필요한 것까지 최소한으로 줄이는 게 당연했다. 가능한 한 내가 먹을 것은 직접 재배해서 만들어 먹고, 빨래, 집짓기, 수선·수리도 하고, 병을 치료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드는 것을 피하기 위해 최상의 건강을 유지하고, 집세·이자·세금 같은 고정비용을 늘리지 않고, 이자를 물어야 하는 돈이나 물건은 절대 꾸거나 빌리지 않으며, 반드시 현금을 사용하고, 적어도 1년 간의 실직은 견뎌낼 수 있는 예비비를 적립해 두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살아야 한가는 것을 기정사실로 인정한다면, 우리는 질문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으로,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삶의 수단이나 목표가 비열하고 저급하다면, 그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없으며 자존심을 유지할 수도 없다. 지식을 습득하고 이용하는 데에도 올바른 동기가 밑바탕이 되어야 하며, 그 지식을 말과 행동에 적용하고 생계수단으로 삼아야 한다. 이 마지막 명제는 부처가 말한 팔정도八正道 가운데 하나이다.
"바른 생활이란 다른 모든 생물들에게 해가 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이 되는 옳은 일에 종사하는 것이다."
내가 자급농을 하기로 결정했을 때는 이미 내 나이 오십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작은 마을레서 나고 자랐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도시에서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결정을 실행에 옮기는 데는 재적응 과정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자급농은 경제적 자립이라는 절박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뿐 아니라, 나에게 상당한 자유시간과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유익한 삶을 살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우리는 버몬트 주 남부의 '황무지' 지대로 가서, 스트래튼 산이 바라보이는 외딴 골짜기의 황폐하고 작은 농장을 샀다. 그리고 나중에 이웃해 있는 땅을 조금 더 사서 거기에 새로 돌집을 지었다. 집을 짓는 데 전문가의 손은 빌리지 않았다.
버몬트에서나 메인에서나 우리는 기본 식품과 집, 땔감을 스스로 마련하는 자급경제를 유지했으며, 일정한 목표를 정해 놓고 그것에 따라 생활했다.
자급농은 자신이 소비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시장을 거치지 않고 직접 생산하는 체제이다. 우리의 경우, 식품은 우리가 직접 재배한 것을 먹고 땔감은 직접 나무를 베어다 해결했으며, 집도 손수 지어 살았기 때문에 큰 현금이 들어갈 일이 없었다.
우리는 현금으로만 물건을 구입했다. 절대로 돈을 꾸는 일은 없었다. 돈이 없으면 없는대로 지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1차 생산자들에게 가장 무거운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하는 이자의 노예가 되는 일은 없었다.
우리는 마을에서 소유욕을 억제하고 상호원조를 실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우리가 가진 연장이나 생산물, 일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무료로 제공했다. 그 대신 우리도 이웃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뉴잉글랜드의 땅 가운데 적어도 4분의 3은 아직까지 숲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자급농 생활자로서 간접비를 적게 들이고 자급농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미국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정된 자본과 건강, 협력이 잘 되는 가정, 공들인 만큼만 얻는다는 원칙에 입각해 자연을 다룰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뉴잉글랜드는 미국에서 자급농을 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곳, 축에 든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도시보다는 시골에서 의식주의 해결을 위한 기본적인 필수품들을 더 적은 비용으로, 그리고 몸과 마음에 훨씬 이로운 방식으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상층 가정의 집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수많은 기계와 전자제품과 가재도구를 보면서 그것들을 손에 넣는다고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일까, 의문이 든다. 나는 타자기보다는 펜으로 글을 쓰고 싶다. 기계적인 운송수단을 쓰는 것도 내키지가 않는다. 자전거를 타는 것보다 걷는 게 좋다. 발을 땅에 대고,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고 기록할 수 있을 만큼 느릿느릿 움직이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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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삶의 모습을 들여다 보는 것에 대해 왜 흥미를 가질까? 가끔 품어보는 질문이다.
과연 나는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자꾸 힘이 빠지고 자신이 없어지지만 새로운 기운에 힘입어 삶을 고추세우고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에 다시 자신을 맡기고자 할 때 힘과 위로를 주며 지침이 될 수 있는 책이다.
한 사람이 인생이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좋은 친구와 동반자가 있었지만 이렇듯 철저하게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한 평생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이 그는 정말로 평생 청년으로 살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름답고 순수하고 무엇보다도 정직한 삶에 고개 숙여진다.
그가 추구하는 세계관이 다를 수 있고, 돌이켜 볼 때 그가 바라본 세계가 그의 예상대로 흘러갔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가 추구했던 인간애와 평화에 대한 절대추구은 아마 영원히 존중받아도 마땅하다.
한 평생 사회주의자이자 반전 평화주의자로 살았고, 환경을 사랑하고 생명과 자연을 사랑하였지만 자본주의 미국을 지배하는 소수자를 증오하고 그 탐욕이 야기하는 비극을 낱낱히 폭로한 그였기에 미국정부는 그에게 결코 우호적일 수 없었고, 그 또한 미국 정부에 대하여 한 평생 등을 돌리고 살수 밖에 없었다. 계속되는 사회주의 혁명과 이에 따른 사회적 실험(?)이 새로운 인간해방의 모습을 보여주리리고 평생 희망을 놓지 않았던 한 미국 시민의 삶의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고 이 이야기가 감동적인 이유는 그의 주장이라기 보다 그것을 일관적으로 추구한 실천적이고 근본주의적인 그의 삶이 아름답고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아주 좋은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행복했다. 그가 살았던 버몬트의 숲 속, 메인의 농장을 눈으로 보고 싶다.
참고로 그가 자신의 조국을 바라보는 시각에 혼란을 느낀다면 하워드진의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이 또한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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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갓 넘긴 딸내미 자는 동안 초조한 마음으로...시간나면 조금 더 성의있게 다듬어볼 계획임)
-자서전을 '개인事'에서 '역史'의 차원으로 써보고자 한 노력 -현대 문명과 사회를 비판하고, 신념을 지키는 삶 면에서 두 명의 지식인 리영희, 노엄 촘스키가 연상됨.(사실 이 둘밖에 모름) 그런데, 촘스키보다는 리영희와 더 가깝다는 느낌.
자신의 인생을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자서전을 집필. 첫째, 인생의 기초를 배운 시기(1883~1917), 간접교육과 주입교육의 순응교육위주의 시기. 인격형성에 큰 비중을 차지한 네 명 언급(p.53), 반전, 사회주의를 주장하다 대학에서 해고 당하고 비로소 대학과 정부 그리고 기업의 권력유착 현실에 깊이 눈뜨게 됨. (515쪽 가운데 253쪽)
둘째, 비로소 '나 자신의 곡을 작곡,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 시기, '인생역경대학'에 입학. 주체적인 생각을 갖게 된, 인생의 대 전환점이 된 시기. 채식주의자, 평화주의자, 사회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굳힌 시기. 소련, 중국, 스페인, 남아메리카 등 세계 각지로 집회, 연구, 강연을 다니며 견문을 넓히고 사상을 더욱 확장한 시기. 현대 세계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부분. (415쪽까지)
셋째, 1930년대(50대) 자급농을 시작한 시기, 1945년 8월 6일, 트르먼의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가 결정적 계기가 돼 서구문명과의 정서적 끈을 완전히 끊는 시기. '사회주의'에 대한 철저한 고민과 좌절, 희망을 동시에 느낀 시기. 80년 생애를 회고하며 정리하는 시간으로 우주와 자연의 섭리, '정글', '경쟁'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사회적 부조화에 대한 일침, 원숙한 그를 볼 수 있는 부분.
그가 살았던(1883년~1983년) 1세기의 세계는...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달, 그에 반비례하여 증가하는 부조화로운 삶 -자본주의, 자유주의 득세에 따른 소수 독점 체제 형성 -매카시즘으로 대변되는 반공주의, 냉전 언론탄압 -전쟁의 시기;1,2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 전쟁을 통해 미국은 세계최강국이 됨. -삶의 양식 변화;농촌에서 도시로...농촌도 도시로...
그리고 현재... -'신자유주의'로 소수 독점체제 굳히기, 대중매체의 공작, 무이념/무사상의 시대, 오로지 돈과 권력의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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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에 태어나 1983년에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꼬박 1세기를 살았던 스콧니어링. 스콧니어링은 100세 생일을 한 달 앞둔 시점에 곡기를 끊고 7주후에 숨을 거둔다. 죽음을 자유의지로 선택했다는 사실이 놀라워 읽게 된 책이다. 죽음을 자유의지로 선택한 사람들은 인류 역사상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의 동기나 방법은 대부분 난폭한 형태로 이루어지며 지금 세대에서는 그것이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다. 스콧니어링의 자발적 죽음을 난폭한 형태의 죽음과 구별짓는 것은. 평생 자신의 노동을 통해 의식주를 해결하며 생활했던 스콧니어링이, 땔감조차 들지 못할 정도로 노동력이 쇠했음을 느끼고는 더이상 음식을 먹지 않음으로서 느리고 품위있는 에너지의 고갈로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통해 사람은 결국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환의 과정을 몸소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죽음. 올 가을내내 마음을 옥죄며 어둡게 했던 단어이다. 죽음이란 단어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이 앞선다. 죽음은 어떤 형태로 내게 다가올까. 삶을 마감하는 순간의 고통은 미루어 짐작하기조차 어려운 것이라 짐작하기 어려운 정체만큼이나 거대한 공포의 대상이 된다. 오래 앓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지부진하게 넘나들게 될 수도 있을텐데 그 또한 두렵고 만약에 죽음 너머에 사후세계가 있다면, 끊임없이 생사 윤회를 겪는 일도 두렵다.
그런데 스콧니어링은, 죽음을 우주적 존재로서 인간이 갖는 또 다른 형태의 존재방식, 즉 다른 경험으로 옮겨가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 죽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과 어떻게 맞이하는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스콧 니어링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이렇듯 우주적 관점에서 삶의 분명한 원칙을 세우고 평생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결국 잘 죽는다는 것-죽음을 평화롭게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일생을 잘 살았다는 것을 대변하는 것이다.
1세기를 살았던 그의 삶은 굵직하게 두 줄기로 나뉜다. 학자로 살았던 삶과 농부로 살았던 삶.
학자로서의 삶은 1906년 워튼스쿨에서 시작하여 1917년에 톨레도 대학에서 해직됨으로써 끝이 난다. 스스로도 사회주의자라 칭했던 스콧니어링은, 당시 미국의 소수독점체제의 운영이나 분배방식에 반대 의견을 제시하며 알맞게 나누는 것을 실현해 줄 수 있는 방법으로 사회주의 노선을 지지했다. 그리고 전쟁을 잉여(상품이든 사람이든)의 소진장에 불과한 거대한 광기라고 비판하며 반전을 주장했는데. 이렇듯 사회주의와 평화주의를 옹호하고 실천에 옮기려했던 스콧니어링은, 반대세력을 제거하려는 속셈에서 제정된 스파이법에 연루되어 학계에서 영원히 추방당하게 된다.
학계에서 축출되고 가족에게서도 외면당한 스콧니어링은 최악의 상황속에서 헬렌니어링과 만나게 된다. 자신의 삶의 방식을 지지해 주는 스무살 어린 헬렌니어링과 함께, 경제적 궁핍을 면하고자 버몬트의 숲속으로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그 시작은 그의 삶에서 또 다른 굵직한 줄기를 이룬다.
"시골생활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과 접하면서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생계를 위한 노동 네시간, 지적 활동 네 시간, 좋은 사람들과 친교하며 보내는 시간 네 시간이면 완벽한 하루가 된다"는 그의 말처럼. 스콧니어링은 버몬트와 메인의 자연속에서 53년동안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의 생활을 했고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추운 겨울에는 여행을 떠나고 강연을 하고 저술을 하며 지냈다. 검약하고 절제된 생활로 진정한 자유가 무엇이며 충만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실천하며 살았다.
스콧니어링의 삶에 기준이 되었던 사상은 세가지였다. 사회주의, 평화주의, 채식주의. 사회주의와 평화주의를 지지하다 학계에서 영원히 추방되었지만. 버몬트나 메인에서는 채식주의를 온전히 실천하며 살 수 있었다. 자연속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은 인간과 형제애를 지닌 객체임을 강조하며 평생 채식주의자이기로 살았다.
"인류는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체 가운데 하나일 뿐 이땅에 사는 동물과 식물같은 다른 삶의 양식을 지닌것들 모두 서로 기대면서 살아가는 생존방식을 취하며 이러한 존재 양식은 저마다 어떤 목적을 지닌 에너지가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모든 것이 여기서 살고 성장하며 발전하고 기여한다. 우리와 같은 생명체들은 우리와 마차가지로 살 권리가 있다."던 그의 생각은 내게도 큰 여운을 남긴다.
삶은 원칙을 분명하게 정하고 그 원칙을 은둔과 노동, 절제와 겸손으로 실천하며 살았던 스콧니어링에 경의를 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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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태>
하드카바에 판형은 어른 장지갑 마냥 얇고 길죽하게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보여지는 판형은 아니다. 다만 커버 다음 페이지부터 니어링을 찍은 몇장의 사진(녹색풍으로 되어 있음)이 있고, 그 사진위에 사진내용이 글로 인쇄되어 있다. 바다출판사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마틴루터킹 자서전)가 처음부터 글로 시작하는 것에 비하면, 이러한 사진의 수록은 독자들로서는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비주얼한 방법이 이해를 돕는다고 하니까.. 또 이 책은 그 내용이 좋아서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 하드카바가 아깝지 않다. 물론 개인마다 관점의 차있는 있겠지만.. 따라서 별 4이다.
<책 내용="">
1. 말 그대로 스콧 니어링의 일생의 기록이다. 미국의 소규모 광산이 있는 시골마을의 광산소장의 손자로 태어나, 어렸을 적부터 노동을 하는 습관을 몸에 익혔고, 근로대중의 가혹한 생활형편, 분배의 부정의를 보았으며, 세계1,2차대전을 겪으면서 자본주의의 한계를 느끼고 한 때 미국 공산당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사람. 어떤 사람인지는 읽어보면 대번에 알 것이다.
2. 놀랄 만한 것은 이 사람은 자기가 알고 느끼는 데로 살아갔다는 것이다. 자기 사상을 소리높여 외치는 자가 탄압을 받는, 그러니까 모난 정이 돌맞는 시기에, 손해보게 될 줄 뻔히 알면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묵묵히 갔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귀감이 된다.
3. 특히 읽어볼 만한 것은 니어링이 펜실베니아 대학교수로 있으면서 당시 미국내 분배의 부정의 대한 대중강연을 많이 하자, 이사회에서 니어링을 해고하였던 부분이다(정확히는 재임용탈락이다), 우선 니어링의 사상에 반대하는 다른 교수들도 대학의 사상의 자유, 학문의 자유를 들어 대학측의 니어링의 해고에 대해 거세게 저항하는 장면이다. 예전에 서울대 미대 김모교수의 재임용탈락시 미대교수님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짚어볼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내에서 대학내 교수들의 파벌문제, 재임용제도가 교수 길들이기로 사용되었던 사실을 알고 있기에 이 부분은 읽어볼 만하다. 즉,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 교수가 해고되었지만 그 일은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하는 다른 교수들의 목소리..
4. 또 메카시선풍이 불 때 니어링이 반전사상을 고취하는 팜플렛을 만들었다고 스파이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는 장면이다. 재판에서 이기려고(?) 하기보다는 사상과 학문의 자유, 미국의 전통적 가치를 높이 외치는 부분은 매우 감동적이다. 대학에서 헌법을 배우면 언론의 자유에 대한 미국이론을 자세히 공부할 기회가 있을텐데 그런 사람도 이 책을 읽어볼만하다. 흔히 회자되는 '전투적 민주주의' 즉, 민주주의의 적(비민주적 사상을 퍼뜨리는 자)에게는 민주주의가 허용될 수 없다는 이론이 맞는지, 아니면 스튜어트 밀의 사상의 자유시장, 즉 사상의 자유시장을 보장하라, 그러면 (사람은 그리 우매하지 않아서) 진실이 승리할 것이다.라는 이론이 맞을지 생각해 볼 일이다.
5. 다만 '조화로운 삶', '조화로운 삶의 지속'을 읽고, 니어링 부부의 시골에서의 삶을 자세히 읽은 사람이 이 책에서도 그러한 것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이 책은 주로 스콧 니어링의 성장과정과 사상적편력을 그린 것이고, 시골에서의 삶을 그린 부분은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그들의 전원생활(이것도 매우 재밌는데)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는 별로 얻을 것이 없다.
6.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니어링의 사상은 매우 근본적이다. 어떻게 보면 지당하고 옳은 말들이어서, 심지어 진부하다는 생각조차 든다. 더구나 스스로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더더욱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또 어쩌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니어링이 그런 자신의 사상 그대로 삶을 살았다는 점에 촛점을 맞추어보자, 무엇이 다른 사람에게 쉽게 말하는 '나의 의견'에 불과하고, 무엇이 진실한 의미에서 '나의 사상'인지 생각할 기회를 얻을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다행히도 하나의 사회체제가 소멸해 가고, 대안적 사회가 발전하는 초기단계에 살고 있고, 미력이나마 그 변화에 동참할 수 있었다. 다행이 나에게 주어진 인생의 몫이 이게 전부라 할 지라도 그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삶을 산 셈이다. (515면) - 현대를 볼 때 니어링이 말한 '대안적 사회'는 아직 그 싹만 보이고 '소멸해 가는 사회'는 아직도 소멸의 끝이 멀어 보인다는 점에서 인상깊은 구절이다.책>책상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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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니어링은 1883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 있는 모리스런이라는 한 탄광도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1983년 메인 주 하버사이드에서 숨을 거두었다.
1백 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은둔과 노동, 절제와 겸손, 그리고 삶의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생활하였고, 그런 이유로 후세의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가장 완전하고 조화로운 삶을 살았다고 평한다. 성인이나 수도자로서가 아닌, 우리와 같은 일반인으로서 그런 완전한 삶을 산 사람들은 아마 드물 것이다. 이 책은 그가 80세가 되던 1963년에 집필을 한 것으로, 그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오랜 세월 동안 몸으로 부딪혀 온 위험한 싸움에 관한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리뷰를 쓰는 것에 고민을 했던 바, 몇 가지 주제로 나누어 쓸 수 밖에 없다고 결론 지었다. 그의 삶을 평가함에 있어 약력만 기록한다는 것이 무의미하기도 하거니와, 한 장의 리뷰를 쓰기에는 지나치게 길고 장황한 이야기로 끌고 갈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리뷰의 첫 주제로 그의 자서전의 첫머리에 나오는 '스승'에 대하여 쓰고자 한다.
6남매의 장남이었던 스콧 니어링은 고등학교 이전까지는 정규 학교에 다니지 않았고, 그런 까닭에 그의 유년시절의 스승은 그가 밝히고 있듯 그의 어머니였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에 나오는 대목을 손녀에게 보내는 편지에 인용하는 그의 어머니는 칼릴 지브란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개별적인 인격체로 대우하였고, 가족의 건강을 위하여 과일과 신선한 야채로 독특한 식단을 고집하셨으며, 늦은 오후부터 초저녁까지 아이들에게 다양한 책을 읽어주셨고, '니어링 토론회'라 명명된 가족 토론의 장을 만들어 민주적인 가족 사회를 이끄셨다. 이런 어머니는 스콧 니어링에게 친한 친구이자 현명한 의논상대였다.
청소년기에 영향을 미친 그의 두 번째 스승은 친할아버지 윈필드 스콧 니어링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문학과 그가 살아가야 할 세상에 대해 인문적인 지식을 전수했다면, 할아버지는 과학과 기술, 그리고 간단한 토목공학의 세계로 안내한 장본인이었다. 할아버지의 서재는 인근에서 가장 많은 장서를 보유하고 있었고, 학교라고는 두 해 다닌 게 전부였던 할아버지는 독학으로 엔지니어가 되었으며, 모리스런에 있던 광산회사의 실질적인 최고 책임자가 되신 분으로, 필요한 물건을 손수 만들기도 하셨다. 그의 할아버지는 뛰어난 기술자였고, 뚜렷한 철학이 있었으며, 여러 분야에 걸쳐 깊이있는 지식을 지녔을뿐 아니라 독창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의 인생을 결정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친 세 번째 인물은 펜실베이니아 대학 워튼 스쿨의 경제학부 학과장인 사이먼 넬슨 패튼 교수였다. 한계와 제약을 뛰어넘어 영원한 청년정신을 간직했던 패튼 교수는 질문과 토론을 통하여 학생들의 지적활동을 자극하였고, 졸업 후에도 학생들을 만나 조언과 일자리를 제공하였다. 사회의 개선과 조절이 가능하다고 확신했던 패튼 교수는 사회사업에도 활동적으로 참여하였으며,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스콧 니어링 자신과 의견이 같았다고 밝히고 있다. 역사와 사회철학, 사회학, 정치학 등에 정통했던 패튼 교수에 대해 스콧 니어링은 자기 존재의 원칙을 가르친 분으로 기억하고, 강의실에서 배운 것 못지 않게 그의 삶 자체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적었다.
그의 네 번째 스승은 그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 톨스토이였다. 톨스토이의 모토였던 '서로 화해하고 사랑하자'는 스콧 니어링의 험난한 인생에 있어 한 줄기 빛이 되었고, 그의 안내자요 조언자 역할을 했다. 톨스토이의 생각을 전파하려 노력하는 한편, 톨스토이를 본받아 그의 삶을 단순화하고자 힘쓰고, 결국은 톨스토이처럼 채식주의자, 평화주의자,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원칙과 소신으로 평생을 성자와 같이 살았던 스콧 니어링의 스승에 대한 기록에서 '나의 스승은 과연 누구였던가?' 생각했다. 되돌아 보면 나에게는 '가난'이라는 최고의 스승이 나를 이끌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