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4)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25%
  • 리뷰 총점8 75%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8.0
  • 40대 7.0
  • 50대 9.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치유의 힘 성서《슬픔이 멈추는 시간》
"치유의 힘 성서《슬픔이 멈추는 시간》" 내용보기
슬픔이 멈추는 시간 삶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 때 나를 위로하는 성서 저자 이나미 | 민음인 | 2014.03.24 | 페이지 284 | ISBN 9788960173583     성경이나 불경처럼 종교 경전이 마음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절감해 종교와 심리학을 연결시켜 보고 싶었다는 이나미 저자님의 책 《슬픔이 멈추는 시간》은 성경을 기본 텍스트로 하고 있지만, 성경을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치유의 힘 성서《슬픔이 멈추는 시간》" 내용보기

 

슬픔이 멈추는 시간

삶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 때 나를 위로하는 성서

저자 이나미 | 민음인 | 2014.03.24 | 페이지 284 | ISBN 9788960173583

 

 

성경이나 불경처럼 종교 경전이 마음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절감해 종교와 심리학을 연결시켜 보고 싶었다는 이나미 저자님의 책 《슬픔이 멈추는 시간은 성경을 기본 텍스트로 하고 있지만, 성경을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주석서는 아닙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말하는 심리학적 해석이 성경의 본래 의도와는 다를 수 있다고 하며, 심리학 용어를 사용해 인간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심리학적 접근으로 봐달라고 합니다. 

 

 

고민이 생기면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불교신자들은 불경을 펼치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어떤 곳을 읽어야 하는지 난감해합니다. 그럴 때 성경의 어디를 봐야 할지 알려주는 가이드북처럼 읽어도 좋은 책이예요. 깊은 슬픔으로 마음이 무너질 때, 가족 때문에 상처가 깊을 때, 분노와 미움으로 마음이 병들어갈 때, 회의와 허무의 순간, 영혼이 허깨비처럼 텅 빈 상태로 자책감에 허우적거릴 때.... 약으로도 상처를 다루기 힘든 것이 정신건강일 겁니다. 고통을 삭히고 극복하도록 도와주려는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성경이라는 텍스트를 통해 진짜 자기를 발견하는 과정에 이 책이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합니다.

 

 

 

열심히 믿으면 내 가족이 행복해지고 그렇지 않으면 고통을 내린다는 기복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고통은 우리를 더 깊고 성숙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종교의 소중하고 가치있는 가르침을 제대로 받아들이는 진짜 건강한 종교적 태도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 인간에게 고통스러운 경험은 타인과 진실한 사랑과 공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격을 갖추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 - p36

 

 

 

『 흔히 결자해지라며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이 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주길 바라지만,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만약 그런 치유력이 있는 사려 깊은 사람이라면 애단초 내게 그런 상처를 줄 리 만무하다. 내 상처는 내가 고치는 것이다. 남에게 내 인생을 보상해 달라고 요구하느니, 차라리 시간이 흘러 뇌세포의 주름이 없어져서 분노의 강도가 약해지길 바라는 것이 어쩌면 더 현실적이다. 배신에 대한 증오심을 놓는 까닭은 상대방이 좋고 용서를 통해 행복을 보장받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쓸데없는 증오와 후회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기 때문이다. 』 - p184

 

저자는 또한 어떠한 신앙을 갖고 있는지 여부를 떠나 선과 악, 옳고 그름의 문제 등을 제기하며 종교가 오히려 사람을 더 잔인하게 만드는 배타적인 충성과 잘못된 집착에 대해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표지 분위기가 눈에 익다 싶었더니 얼마전에 읽었던 책 《사람들 앞에 서면 나는 왜 작아질까》 책에 이어 감정시리즈로 쭉 나오나봅니다. 다양한 사례를 스토리텔링 기법의 성경 이야기와 접목해 풀어내고 있어 기독교신자가 아닌 저도 거부감없이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어요. 온갖 비유를 담고 있는 인류의 고전인 성경과 함께 한 《슬픔이 멈추는 시간을 통해 심리적인 통찰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되겠네요.

 

이달의 사락 l****5 2014.04.07. 신고 공감 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마음의 고통을 잠시 내려놓고 가실께요
"마음의 고통을 잠시 내려놓고 가실께요" 내용보기
살다보면 마음이 답답해지는 순간순간들을 만나기 마련입니다. 그 무게에 따라서는 금새 사그러드는 것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갈수록 무게가 더해지는 것도 있습니다. 이런 순간들을 지혜롭게 풀어내지 못하면 마음의 병이 되거나 나아가서는 몸의 병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특별한 분에게 이런 문제를 두고 의논을 하기도 하고, 혹은 종교에서 해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
"마음의 고통을 잠시 내려놓고 가실께요" 내용보기

살다보면 마음이 답답해지는 순간순간들을 만나기 마련입니다. 그 무게에 따라서는 금새 사그러드는 것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갈수록 무게가 더해지는 것도 있습니다. 이런 순간들을 지혜롭게 풀어내지 못하면 마음의 병이 되거나 나아가서는 몸의 병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특별한 분에게 이런 문제를 두고 의논을 하기도 하고, 혹은 종교에서 해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가톨릭계통의 학교를 다녔지만 종교에 마음을 의지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저로서는 그만큼 선택지가 좁은 셈입니다만,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마음을 다스리면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삶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 때, 나를 위로하는 성서’라는 부제에 끌리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서에서 얻을 수 있는 도움은 무엇인지 알아보는 기회가 될 것 같아서입니다. 이나미박사님의 <슬픔이 멈추는 시간>은 “깊은 슬픔과 절망감으로 주저앉고 싶은 순간 성서에서 다시 힘을 얻습니다.”라는 카피처럼 성경말씀을 이끌어와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마음의 상처를 달래는 길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정신의학과를 전공한 전문의로,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 뉴욕의 융 연구원에서 분석심리과정을 공부한 다음 유니언 신학대학에서 종교심리학 석사를 받은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신의학과 심리학을 종교와 결합하는 공부를 하신 셈입니다. 신학하면 기독교 혹은 가톨릭의 교리를 배우는 과정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저자는 신학에 매어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과 부처님과 공자님의 말씀은 물론, 마호메트와 힌두의 신들을 두루 믿는’ 그런 사람이라는 말씀을 서슴없이 하시면서 ‘위대한 종교의 위대한 가르침은 다 믿는다’라고 하시는 것을 보면 종교에 관한 달관의 경지에 오른 듯합니다.

 

<슬픔이 멈추는 시간>은 가톨릭계열의 월간 <생활 성서>에 연재하신 글들을 묶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성경에 대한 저자의 의견을 강요하려는 의도를 담은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기본 텍스트로 삼고는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불경이나 유교의 말씀도 인용하고 있는데, 종교에 대한 저자의 열린 마음은 융의 심리분석학의 영향을 받은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자가 ‘들어가며’에 적은 이 책을 제대로 활용하는 법은 이렇습니다. “고민이 생기면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불교 신자들은 불경을 펼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어떤 곳을 읽어야 하는지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성경의 어디를 봐야 할지 알려 주는 가이드북처럼 읽어 부셔도 좋을 듯합니다.(8쪽)” 말씀처럼 저자는 성경말씀 이외에도 다른 종교,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좋은 말씀을 끌어와 사례에 맞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성경말씀의 경우는 원전을 적어주고 있지만 다른 자료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심리상담을 통하여 만나온 분들의 심리적 고통의 예를 들면서, 이런 상황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지 조곤조곤 설명해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 겪어보았을 것들이기도 합니다만, 자식을 먼저 보내거나, 사랑을 잃은 깊은 슬픔으로 마음이 무너진 분들을 위한 위로의 말씀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가족들 혹은 가깝다고 생각한 주위 분들로 인하여 생각지도 않은 마음의 상처를 받은 경우, 배신과 질투로 생긴 분노와 미움으로 마음이 병들어갈 때, 회의와 허무감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마음을 다독이는 방법을 안내하기도 합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인간을 괴롭히는 온갖 고통이 세상에 튀어나왔을 때 ‘희망’이라는 치유를 준비했다고 신화는 이야기하기도합니다만, 제 생각에 만약 신이 있어 인간에게 선물을 주었다면, 그 선물들 가운데 ‘망각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군가는 마음을 흔드는 충격의 유효기간은 불과 몇 주일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잠시 혼란스러운 상황을 맞더라도 이내 그 상황에서 빠져나가는 길을 찾아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성경에서 자신과 부합하는 상황을 찾아 어떻게 풀어갔는지를 이해하다보면 쉽게 고통을 덜어내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y*****2 2014.04.16. 신고 공감 2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달라질 수 있는 것이란 오직 나란 존재일 뿐이다
"달라질 수 있는 것이란 오직 나란 존재일 뿐이다" 내용보기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삶의 무게 이 삶을 마냥 정직하게 고백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약간의 조미료가 들어가야 삶이 더욱 맛깔스럽게 드러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에야 앞으로의 삶이 희망적이라 말할 수 있지만, 오늘의 내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개를 넘고 또 넘었는지 모르겠다. 위기의 순간이 닥칠 때마다 나는 '인내'와 '복종'의 사이에서 혼란감을 느끼곤 했었다. 두 단
"달라질 수 있는 것이란 오직 나란 존재일 뿐이다" 내용보기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삶의 무게

이 삶을 마냥 정직하게 고백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약간의 조미료가 들어가야 삶이 더욱 맛깔스럽게 드러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에야 앞으로의 삶이 희망적이라 말할 수 있지만, 오늘의 내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개를 넘고 또 넘었는지 모르겠다. 위기의 순간이 닥칠 때마다 나는 '인내'와 '복종'의 사이에서 혼란감을 느끼곤 했었다. 두 단어는 얼핏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이 주는 시련에 대하여 '인내'로서 다스리는 것과 아예 '복종'하는 것은 극과 극이다. 이는 '받아들이겠다'는 뜻은 같을지라도 '나'라는 존재가 시련의 주체가 될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에는 똑같은 답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인내'를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시련에 굴하지 않는 당당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이 정도 쯤이야 나에겐 새털처럼 가벼운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 무엇에 굴하여 고개 숙인 자에게 어찌 '주도적인 삶'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래서 시련을 잘게 쪼개서 얼굴에 바르고, 옷에 달고, 가방에도 넣고, 신발에도 달고 다녔다. 시련은 머릿속에 집어넣고 숨길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치유의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날이면

<슬픔이 멈추는 시간>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성경 속에서 찾고 있다. 책은 우리에게 성경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기 위한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저자는 심리분석연구원을 운영하면서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성경이나 불경 같은 종교 경전'이 큰 힘이 되어주고 있음에 주목했다고 말한다. 하여 종교와 심리학을 연결시켜서 '성경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삶의 무게에 짓눌린 인간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정신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스스로 주문을 외우거나 기도를 하는 행위와 비슷하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자신을 신념의 힘으로 바로 세우려고 하는 것이다. 굳이 종교 경전을 읽지 않더라도 이와 같은 행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명상을 하거나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두 눈과 두 귀가 열려있음은 '주위를 둘러보아라. 그리고 두 귀를 기울여서 듣고 또 들어라.'와 같은 암묵적 메시지를 받아들여야 함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받아들이겠다'는 것은 나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 자기 자신을 인정한 사람은 그 어떤 시련도 당당히 이겨낼 수 있다. 세상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닌 '자신이 살고 있는 하나의 세계'를 통해서 자신의 참모습을 찾게 되는 것이다. 책은 이렇게 말한다. 

 

「중요한 것은 모든 성숙한 종교들의 가르침은 서로 통한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절대 신의 존재를 믿는 교조적 기독교 교리나, 부처님의 무량한 공덕만을 믿는 교조적 불교의 입장과는 제 당돌한 생각들이 무척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강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종교적 심성은 가장 내밀한 사적인 세계이기 때문에 특히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똑같은 설교를 듣고 똑같은 법회를 들어도 각자가 이해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종교를 갖고 있어도, 각자의 부처님과 하느님이 다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모두가 다 자기 보고 싶은 모습만 보는 것이니까요.」p.281

 

우리에게 펼쳐진 세상, 우리가 볼 수 있는 세상은 어디에

주어진 것에 족하여 살아도 늘 궁핍감을 떨쳐버릴 수 없는 세상이다. 나는 만족한다고 말하고 있으나, 사람들은 부족하지 않냐고 물어본다. 내가 괜찮다고 말을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의심스런 눈초리로 쳐다볼 뿐, 나를 도와주지는 않는다. 냉정함으로 가득찬 사회의 모습일지라도 이에 쉽게 좌절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매 순간 '신념'의 실체와 필요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 무엇을, 누군가를 믿고 따른다는 것에 얼마나 큰 용기와 힘이 필요할 것인지, 나는 늘 궁금했다. 어느 날 갑자기 섬광처럼 나타난 책 한 권, 그림 한 폭, 노래가사 한 구절이 나의 신념을 툭 치고 지나갈때면 흠칫 놀라다가 깨닫게 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모든 것은 받아들이기 나름이라는데, 정작 나 자신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지도 의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 아픈 구절은 과감히 건너뛰어버렸다. 굳이 알고 싶지 않은, 몰라도 될 부분은 읽지 않았다. 그리고 종교활동을 꾸준히 하면서 심신을 다스리는 사람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그들은 어떤 현상에 대한 설명을 하기에 앞서서, 언제나 자신의 신앙심에 대한 강력한 신념을 이야기했다. 믿음으로 불가능한 것이 없다고 말이다. <슬픔이 멈추는 시간>을 읽으면서 왜 '신념'이란 단어를 계속 생각하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결국, 이 책 역시 '인간의 신념'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본래 취지가 '종교와 심리학의 결합'이거늘, 마지막에 다다르니 이는 본래 서로 하나였음을-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려본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a****5 2014.08.2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성서가 내 눈물을 닦아준다면
"성서가 내 눈물을 닦아준다면" 내용보기
최근들어 기독교 관련 서적을 연이어 두 권 읽었는데 신자가 아닌지라 이런 책을 읽으면 즐거운 마음보다는 불편한 마음이 더 든다. 하지만 이 책은 기독교 신자가 아니고 성서 내용을 잘 몰라도 읽을 만했다. 저자 이나미는 융 연구로 유명한 정신과 의사. 저자 역시 독실한 기독교 신자는 아니라고 한다. 어느 쪽이냐고 하면 예수님과 부처님, 공자님, 마호메트와 힌두의 신들을 모두
"성서가 내 눈물을 닦아준다면" 내용보기

최근들어 기독교 관련 서적을 연이어 두 권 읽었는데 신자가 아닌지라 이런 책을 읽으면 즐거운 마음보다는 불편한 마음이 더 든다. 하지만 이 책은 기독교 신자가 아니고 성서 내용을 잘 몰라도 읽을 만했다. 저자 이나미는 융 연구로 유명한 정신과 의사. 저자 역시 독실한 기독교 신자는 아니라고 한다. 어느 쪽이냐고 하면 예수님과 부처님, 공자님, 마호메트와 힌두의 신들을 모두 인정하는 다신교도(나랑 똑같다). 종교가 인간을 구원하는 절대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몇 년 전 어떤 이들에게는 과학이나 의학적인 심리 상담보다도 큰 위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한다. 그런 생각으로부터 태어난 이 책은 이별로 인한 고통, 가족으로부터 입은 상처, 분노와 미움, 허무 등 사람들이 흔히 느끼는 심리문제의 해답을 성서에서 찾는 '성서 치유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신자들 중에는 좋은 일이 있으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서 복을 주는 것이라고 믿고, 나쁜 일이 있으면 벌을 주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길가나 지하철에서도 자주 '예수 믿고 천국 가라', '예수 믿고 복 받으라'는 식의 말을 들을 수 있는데,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다 지옥 가라는 것인가, 복 받지 말라는 것인가, 그런 자세로 종교를 믿는 사람을 과연 좋은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역시 이런 인과응보, 기복신앙 적인 종교적 태도는 지양한다. 좋은 일이 생기면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나쁜 일이 생기면 겸허하게 수용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건강한 종교적 태도라고 설명한다. 이는 가족이나 연인 등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이별이나 불화 등 좋지 않은 상황을 내 탓 또는 남 탓으로 돌리는 것은 바람직한 종교적 태도가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운명이나 팔자려니 하고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것도 옳지 않다. 저자는 바람직한 삶의 자세를 성서속 인물과 구절을 인용해가며 설명한다. 신자가 아닌지라 모든 사례를 알고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신자라면 새로운 발견이 될 것 같다.



비단 성서의 내용만을 담고 있는 에세이는 아니다. 정신분석, 심리치료에 관한 이야기도 많다. 나는 특히 예수의 삶을 통해서 '나는 이러이러해서 어려운 일은 못해', '내가 어떻게 그런 위험한 일을 해'라며 끊임없이 '나'만 강조하는 자아를 버리고, 더 큰 무언가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참 자기'를 실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p.45). 자아, 초자아, 자기 같은 용어들을 이제껏 심리학 책에서 여러번 봐왔지만, 이렇게 예수의 삶에 빗대어 설명을 들으니 느낌이 달랐다. 신자 중에도 예수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겠다고 기도하는 이는 많아도, 예수처럼 자기를 희생하고 극복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이는 드물지 않을까? 기독교를 믿는 지인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달의 사락 j****y 2014.04.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