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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왕릉 실록 이 책은 왕릉 탐방을 통해 당대의 역사를 추적해보는 히스토리텔링이다. 통일신라는 여전히 혼란 속에. 문무왕을 어어 내란을 수습하고 내치에 전념했던 31대 신문왕, 32대 효소왕, 새로인 중국 발해만에 등장한 고구려의 후예 해동성국 발해, 신라는 33대로 이어지고, 54대 경명왕 대에 이르러 후삼국의 선발주자 후고구려 궁예, 고려 왕건, 견훤군의 침입 소식을 듣고 자결한 55대 경애왕(景哀王)을 거쳐 견훤과 56대 경순왕(敬順王) 순리에 따랐던 왕, 지은이는 26대에 걸친 통일신라 왕릉을 따라 역사와 문화를 잇는 장정에 나섰다. 이 시대의 행정 체계와 관제를 들여다보면서, 왕권의 부침을 들여다본다. 누구도 찾는 이 없는 곳에 잠든 왕들의 묘, 왕릉은 지은이에게 어떤 말을 전했을까?, 인생무상이었을까, 권력 없이 그저 꼭두각시처럼 휘둘림만 당하다 스러져간 왕은 그에게 무슨 말을 전했을까?, 책 속에 실린 작은 묘비 속에서 왠지 모를 쓸쓸함과 애잔함이 전해져온다. 이 책 <통일신라 왕릉 실록>은 삼국 왕릉과 조선왕릉 사이에 끼인 통일신라 왕릉, 지은이는 주역과 명리, 사찰 풍수를 당대의 기라성들에게 배웠다. 종교를 다룬 언론사의 풍수 대기자라 소개됐다. 풍수는 죽은 이를 위한 게 아니라 살아있는 위한 것이다. 조상의 묘를 명당에 잡아야 후손의 운이 틘다, 즉 발복한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가 이러 저러한 이유로 명당에 들어앉아, 후일 왕이 됐다는 이야기도. 역사 교과서에 실린 통일신라를 연 김춘추 그는 성스러운 피를 물려받은 “성골”이 아닌 절반만 성스러운 피가 흐르는 진골 출신, 거기에 패망 가야국의 왕가의 후예 김유신의 활약으로 통일이 된 삼국, 역사란 가정(假定)이 통하지 않는다지만, 만약 삼국이 서로의 균형 속에서 존재했더라면 어떠했을까?, 부질없는 상상을 해본다. 물론 언젠가는 통일이 되었겠지만, 아니, 어느 한 나라에 정복됐을지도 모른다. 그게 고구려, 백제였다면…. 아무튼, 예나 지금이나 정권교체는 피를 부른다. 누군가는 숙청을 당하고, 누군가는 벼락출세하기도 한, 고인 물이 썩듯이 왕권교체는 권력의 재생, 정화, 자가발전의 엄혹한 질서였을까? 신라 임금 신분의 시대적 구분은 세 갈래다. 성골, 진골, 귀족 시대(37대 선덕왕(宣德王)에서 56대 경순왕까지), 누가 어떤 경로로 왕이 됐고, 또 어떤 과정을 통해 후대로 이어졌는가를, 하나의 긴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성골이 진골에게 밀려나 귀족이 되고, 와신상담을 꿈꾸며, 진골 또한 귀족들에게 밀려나면서, 통일 후 126년 만에. 지은이가 풍수가라는 이력은 은근히 왕릉이 거기에 선 까닭의 전후를 살피면서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려줄 것으로 기대하기에 십상이지만, 그런 대목은 별로 없다. 그저, 어느 왕이 어떻게. 지금 왕릉은 어디에 있고 어떤 사연이 있는지만을 짧게 소개할 뿐이다. 왕릉 이야기라기보다는 통일신라 왕들의 왕위계승과정과 치세 동안의 주요 사건과 죽음을 알려줄 뿐이다. 간략하고 알기 쉬운 서술이라는 책 표지의 소개말처럼 진짜 그런 것인가 싶기도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적어도 왕릉에 관련된 풍수 비화 등은 말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통일신라 26대 걸친 연대기로 당대의 왕들을 다루고 있으니, 전체 개괄로써는 꽤 의미가 있다. 신라 헌강왕 때 처용설화가 등장하고, 당나라에서 토항소격문으로 문명을 날렸던 최치원이 신라로 돌아온 것도 이때였다. 처용설화와 헌강왕 치세는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까지 논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역사와 문화를 잇는 것이었다면 말이다... 적어도 통일신라 시대 모든 왕이 무대의 주인공으로서 주목을 받았던 인기인들은 아니었다. 치열한 권좌 다툼 속에 암중모색하는 반왕파들…. 오히려 통일신라의 흥망성쇠를 이해하는 데는 그 나름대로 도움이 된다. 아무튼, 이 책을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읽느냐, 즉 관점에 따른 독해는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은 26대 왕과 관련된 일을 적어두고 있다는 점이다. 특정 영웅관이 없이 말이다. 곳곳에 설명된 제도 등은 이 책을 쓰기 위해 꽤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해왔음을 엿볼 수 있다. 우선 가볍게 일독하기를 권한다. 단편적으로 알려진 통일신라 역사를 실록이라는 접근 방법으로 전개하기에 당대의 시대상을 짐작해 볼 수 있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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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대가야의 고분군을 찾아 관련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마침 이 책 <통일신라 왕릉실록>을 마주하게 되니 '이쩜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나!' 싶었다. 해당 프로그램에서도 가야고분군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주 소중한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는 설명을 했다. 그리고 너무도 거대한 그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것은 단순히 당대를 호령하던 누군가의 무덤인 것에 의미가 있기도 하겠지만 그 인물과 함께 남아있는 더 많은 자료들이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규원 저자는 고대에서 현대까지 한국과 세계 역사를 이끈 인물들의 무덤 수백 기를 현장에서 마주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그가 말하기를 인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사람들이 그곳에 묻힌 것 만으로도 그리고 그것이 사라지지 않고 이렇게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이렇게 남아 있는 무덤으로 인해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찾을 수 있고, 고증을 통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니 역사학자로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이렇게 고분을 연구하고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저자와 같은 분이 있기에 우리는 우리의 역사와 세계의 역사를 더욱 정확하게 알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 <통일신라 왕릉실록>은 저자의 '왕릉실록'시리즈 중 앞서 출간된 <조선왕릉실록>과 <삼국왕릉실록>에 이은 세번째 권이며 신라 개국 이후부터 삼국의 통일을 이룬 문무왕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삼국왕릉실록>의 속권이라고 한다. 먼저 국가와 영토, 삼국의 행정 체계와 관제, 고대 역사서라는 제목으로 역사와 문화에 대해 전체적으로 설명을 한 후 삼국왕릉실록에서 마지막으로 다룬 문무왕을 이어 왕위에 오른 신라 31대 신문왕을 시작으로 신라의 마지막왕인 경순왕까지 각 왕들의 왕릉을 사진과 함께 제공하고 해당 왕들이 집권할 때의 역사적 사실과 함께 당대의 특징적인 일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 외에도 발해와 후고구려의 궁예, 고려 왕건, 후백제의 견훤에 대한 페이지도 할애하여 해당 연대에 관한 역사를 아주 구체적이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부록으로 BC 70만년부터 AD 42년 금관가야 개국까지의 간략한 한반도의 역사를 정리하여 제공하고 있으며, 신라의 왕조 계보를 비롯하여, 고구려, 백제, 금관가야, 후기가야, 발해 왕조 계보와 당의 황제 계보, 일본의 천황 계보까지 싣고 있다. 책을 읽고 저자의 노력과 접근에 감사한 마음이다. 그리고 이렇게 무덤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음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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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원 작가의 “왕릉실록” 시리즈로 전작 『삼국왕릉실록』을 재미나게 만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번엔 그 속편인 『통일신라 왕릉실록』이 출간되어 반가운 마음에 책을 손에 들어봅니다. 책은 삼국을 통일했던 30대 문무왕 다음 왕인 31대 신문왕부터 시작합니다.
잠깐, 왕릉을 찾으며 이들 통일신라시대 왕들을 살펴보기에 앞서 책은 한반도에 자리 잡았던 국가들의 국경과 영토를 다루면서 시작합니다. 이후에는 고대 국가인 고구려, 백제, 신라의 관제에 대해. 그리고 고대 역사를 다루고 있는 역사서를 소개합니다. 상당한 분량을 “통일 신라 시대” 이전, 또는 직접적 연관이 없는 것만 같은 내용들을 소개합니다. 굳이 이 부분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아마도 “통일”로 인한 변화와 혼란, 그 대처를 말하기 위해 사전 작업으로 필요했겠지요.
이제 본격적으로 신라 31대 왕인 신문왕부터 시작하여 56대 경순왕까지를 왕릉 답사를 통해 그들의 역사를 이야기합니다. 왕릉 자체를 문화유산으로 살펴보기도 하고, 그곳에 묻힌 왕의 역사를 약술하기도 합니다. 여러 왕들을 살펴보는 가운데, 비운의 왕을 만나기도 하고, 다소 어리석은 왕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들의 이야기에 때론 안타까워하며, 때론 분노하기도 하며, 때론 통쾌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바다에 묻혔던 문무대왕 말고도 왕이 요구하여 화장하여 바다에 뿌려진 왕, 그래서 봉분이 없는 왕도 있었음을 알게도 됩니다.
책은 남북국 시대를 열었던 발해, 후삼국시대를 연 견훤에 대해, 그리고 고려를 연 왕건과 고려 역사도 약술합니다. 하지만 책의 주된 관심과 한계는 통일신라의 왕릉을 위주로 그 역사를 들려주는 데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왕릉은 왕들의 무덤입니다. 즉, 죽은 자들이 묻힌 곳이죠. 죽은 자는 말이 없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 침묵의 장소를 통해 오히려 그들이 살아냈던 역사를 들려줍니다. 역사란 결국 죽은 자들이 들려주는 음성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니 그런 그들이 누워 있는 왕릉을 통해 펼쳐지는 역사가 흥미롭습니다.
부록으로는 고대 한반도의 역사를 약술하기도 하고. 신라 왕조 계보, 왕권 투쟁 절정기의 신라왕실 계보도, 신라 풍월주(화랑도) 계보, 고구려 왕조 계보, 백제 왕조 계보, 금관가야 왕조 계보, 후기가야 왕조 계보, 발해 왕조 계보, 당 황제 계보, 일본 천황 계보를 싣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책에 실린 왕릉들의 지도를 하나 정리해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무튼 그럼에도 죽은 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재미나고 흥미로운 게 분명합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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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왕릉실록 왕릉 스토리를 통해 읽는 역사의 숨소리 이규원 (지은이) 글로세움 2024-03-15 ![]() 삼국대륙설이라는 유사역사가 있습니다. 고구려, 신라, 백제가 전부 중국 대륙에 있었다는 이야기지요. 정말일까 하면서도 은근히 우리 고대의 나라가 그쪽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통일신라의 왕릉들의 사진을 하나씩 봤습니다. 신문왕, 효소왕, 성덕왕, 효성왕... 한두개는 있을 수 있겠지 했는데 거의 대부분 한반도에 있습니다. 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석, 탱석, 석상들도 제대로 있습니다. 찾아보니 경주에 왕릉이 37기나 있다고 합니다. 이래서 배워야 합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통일신라의 왕이 저렇게 많을 줄이야 생각도 못했습니다. 31대 신문왕부터 56대 경순왕까지의 역사서입니다. 왕릉을 하나하나 답사하면서 그 시절의 역사를 풀이합니다. 만파식적이라는 국난을 사전에 탐지하는 신기가 신문왕때 나왔습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인쇄가 성덕왕때였습니다. 효성왕과 왕비의 책봉을 당 현종에게 승인받았습니다. (글자가 명필입니다) 저 유명한 에밀레종이 성덕대왕 신종입니다. , 그럼 그전에는 어땠을까 하고 찾아보니 저자 이규원 선생의 삼국왕릉실록, 조선왕릉실록이 나와있습니다. 왕릉을 전부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눈 기록입니다. 일단 사진이 같이 붙어있으니 보기에 좋습니다. 마치 저 지역을 방문한 것같은 느낌도 받게 되고, 글을 읽으면 그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도 듭니다. 기존에 나와있는 고문헌을 해설해주는 부분도 좋았습니다. (화랑세기 필사본이 위서가 아니었습니다) 목차만 봐도 한눈에 살펴보는 통일신라 200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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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 가면 많은 고분군들이 있다. 가족여행으로 한 번, 수학여행으로 한 번. 경주를 갔었는데 어린 시절에는 불룩 솟아오른 릉이 왕들의 무덤인 지 모르고 언덕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워낙 오래전에 다녀왔기도 했지만 왕릉을 실제로 본 기억은 전혀 없다. 그저 언덕 같은 모습을 지나가면서 본 게 전부였던 것 같다. 오히려 조선시대 왕릉은 접근성이나 자료도 방대한 편인지라 익숙하지만, 통일신라의 왕릉 하면 고분군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서 책 제목을 보고 궁금하기도 했고 한편, 신선하기도 했던 것 같다. 이 책은 통일신라를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저자의 전작인 삼국 왕릉실록의 후편이라고 한다. 놀라운 것은 그 오래된 신라의 왕릉이 상당수 경주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주에 가면 불국사나 석굴암, 첨성대를 먼저 보기에 그런 면에서 왕릉은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지나가는 길에 보는 것 외에는 마주할 수 없었던 탓이다. (개방을 안 했던 게 아닐까?, 도굴이 되어서 볼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저자의 책을 읽고 나니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선 책의 두께가 상당한 벽돌이다. 왕릉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역사를 어우르는 기반이 되는 배경지식들과 통일신라 각 왕의 이야기가 책 속에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통일신라와 같은 시기에 있었던 발해를 비롯하여 주변국이었던 당과 일본의 이야기까지 함께 만날 수 있다. 단편적인 왕릉의 이야기가 아닌, 통일신라를 중심으로 주변국의 정세와 역사적 사실까지 함께 망라할 수 있기에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해당 시기를 바라볼 수 있다. 책을 읽으며 놀랐던 것은, 통일신라의 왕들의 이야기가 조선왕조실록 못지않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 파란만장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박혁거세로부터 시작된 신라가 당과의 연합을 통해 백제와 고구려를 복속시킨 후, 당에 의해 신라 역시 사라질 뻔한 아찔했던 상황을 이겨내는 한편, 가야의 멸망 후 신라로 병합된 가야 귀족층과 원래 신라 귀족 사이에 권력을 놓고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축출되는 과정은 정말 한편의 영화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단종을 쫓아내고 왕이 된 비정한 삼촌 세조의 이야기보다 더 한, 통일신라로 판 삼촌들과 조카 간의 권력 다툼(이번에도 일방적으로 당한 거지만)은 이번에도 안타까웠다. 권력 앞에는 피도 눈물도 없는가 보다. 어린 아들을 대신해서 왕권을 잡은 모후의 이야기도, 정략결혼을 통해 세도정치에 휘둘린 이야기도 만날 수 있었다. 시대를 지우고 보자면 어느 시대인 지 구분이 안 갈 정도인 걸 보면 역사는 돌고 도는 게 맞는 것 같다. 한 번씩은 접해봤던 이야기들이 시대만 달리해서 반복되는 걸 보면 말이다. 유난히 자연재해가 넘쳐났던 시대에는 이 모든 것이 왕의 부덕으로 여겨지고, 자신이 물러날 수 없으니 나름의 해결책으로 상대등(왕 다음의 권력자, 현재의 국무총리?)을 갈아치우기도 한다. 어찌 보면 다른 형태이기는 하지만 현대에도 비슷한 상황(큰 문제를 가리기 위해 다른 이슈를 터뜨리거나 윗 사람이 옷을 벗는 등)을 적잖게 볼 수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이 책에는 31대 신문왕(30대 문무왕의 아들)부터 56대 경순왕까지의 왕릉과 그들의 집권기 이야기가 담겨있고, 중간중간 후고구려의 궁예, 고려의 왕건, 후백제의 견훤과 발해 그리고 당과 일본의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부록으로 각 왕조의 계보와 함께 신라 풍월주(화랑도)의 계보도 담겨있으니 중간중간 참고하면서 보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아쉬운 점이라면 한자가 많고, 실제 사용되는 용어도 다분히 한자 투라서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풀어쓰기에는 가뜩이나 벽돌인 책이 더 두꺼워질까 봐 염려해서 그런 게 아닐까 혼자 짐작만 해본다. 용어를 좀 더 쉽게, 요즘 자주 쓰는 단어를 사용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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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백제 무령왕릉이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근처에 있던 무덤의 배수로 공사를 하던 중에 우연히 발견되었네요. 한반도에는 많은 왕릉이 있었는데 대부분 도굴이 되었지만 무령왕릉은 땅속에 묻혀 있었기 때문에 무덤을 만들었던 당시의 모습 그대로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무령왕릉 발굴 소식에 기자들이 몰려들면서 졸속으로 발굴이 진행되어 아쉽지만 과거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으로 올수록 누구의 왕릉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으나 삼국시대의 경우 오랜 시간이 지나기도 했고, 그동안 전쟁이 반복되면서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왕릉도 많습니다. '통일신라 왕릉실록' 의 저자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시기부터 고려에 멸망할 때까지 통일신라의 왕릉을 돌아보면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네요. 고구려와 백제, 신라는 서로 오랫동안 전쟁을 벌였습니다. 시대에 따라 고구려가 패권을 잡기도, 백제가 다른 두 나라를 압도하기도 하였네요. 신라의 힘은 약한 편이었지만 중국 당나라와 손을 잡고 고구려, 백제를 차례로 멸망시켰습니다. 두 나라가 멸망한 이후 당나라는 신라를 공격해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고 하였지만 신라가 대항하면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네요. 전국이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는데 31대 신문왕은 나라를 안정시키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면서 통일신라의 토대를 세웠습니다. 전에 경주에 갔을때는 통일신라의 역사를 잘 몰라서 그냥 겉으로만 왕릉을 둘러봤는데 다음에는 하나하나 누구의 왕릉인지 찾아봐야 겠네요. 왕이 세습되는 경우 어떤 인물이 왕이 되는지에 따라 강력한 권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안정되기도, 권력 쟁탈전으로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박혁거세가 세운 신라는 초반에는 박씨, 석씨, 김씨 성씨가 돌아가면서 왕이 된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왕족에 세 가문이 있었고 귀족에도 성골과 진골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복잡한 관계는 언제든 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는데 통일신라 초반에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국정 운영을 하였으나 41대 헌덕왕 때부터는 왕이 살해되고 귀족들이 쿠데타를 일으키기도 하는 등 왕의 자리를 온전히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네요. 혼란이 지속되면서 옛 고구려, 백제 유민들이 다시 일어나 봉기하였고 후삼국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고구려를 계승한 궁예, 백제를 계승한 견훤은 모두 옛 국가를 재건한다는 대의명분을 내걸었고, 신라의 왕위를 놓고 왕과 귀족들이 다투는 동안 고통을 겪고 있던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단기간에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부 권력 다툼이 벌어지면서 다시 혼란에 빠졌는데 왕건이 등장하면서 고려가 전국을 통일하였네요. 1,0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신라도 56대 경순왕을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고려의 수도는 개성이었기 때문에 경순왕도 개성에 머물렀으며 사후에는 경기도 연천에 묻혔다고 합니다. 신라의 왕들 중에서 유일하게 경주가 아닌 곳에 왕릉이 있는데 연천까지 전철로 갈 수 있으니 주말에 한번 가봐야 겠네요. 통일신라의 왕 중에는 정확한 왕릉의 위치를 알 수 없는 왕도 있다고 합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완전히 파괴되어 사라졌을 수도 있고, 무령왕릉처럼 지하에 묻혀서 발굴될 때만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통일신라의 역사와 각 왕릉의 특징에 대해 읽어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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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왕릉실록>은 저자 이규원의 <삼국 왕릉실록> 속편이다.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하고 기자로 일하다가 다시 공부를 하고자 50이 넘어 들어간 대학에서 2번째로 전공한 학문이 장례 풍수학이다. 이런 전공이 있는지도 몰랐지만 주역과 명리를 인가받고, 사찰 풍수도 전수를 받았다고 하니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에 생소하지만 별도의 학문으로 공부하고, 전수를 받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처음 장례 풍수학을 배우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의 인체 부검 현장 참관을 하게 되며 삶을 새롭게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풍수, 장례 풍수라고 하니 최근까지 여전히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영화 <파묘>가 생각나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 민족은 예나 지금이나 풍수에 대해 진심인 민족이 아닐까 싶다. <통일신라 왕릉실록>은 신라 31대 신문왕부터 신라 천년 사직을 마감한 56대 경순왕까지 통일신라의 부흥과 운명을 풍수 물형을 풀어 써낸 책이다. 현재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서 고대사를 배정한 비율이 근현대사 75%, 고대사 25%라고 한다. 저자는 삼국시대와 남북국 시대(신라, 발해)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삼국의 수도가 어디였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허다하고 고구려와 발해가 왜 우리 역사였는지 올바로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다. 왕들의 역사와 왕실의 지긋지긋한 왕위 찬탈 과정은 31대부터 56대까지 어쩌면 그렇게 닮은 꼴로 일어나는지 놀라울 지경이었다. 왕족의 순수 혈통을 잇기 위해 남매간에도 결혼을 하고, 조카를 자기 손으로 죽이고 왕위에 오른 뒤 조카의 여인을 아내로 삼는다. 어느 왕 하나 예외랄 것 없이 저마다의 손에 피를 묻히고 짧은 생을 마감하거나 나라에 큰 암운이 감돌게 하며 통일신라가 끝내 무너지는 역사를 써 내려간다. 채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왕위에 올랐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운의 왕도 있었다. 왕이라고 해서 모두 왕릉이 있는 것 또한 아니다. 48대 경문왕은 명당을 택지해 정중히 예장했다는 기록은 있으나 왕릉의 소재는 불명이다. 장지가 기록된 사서의 유실 때문에 알 수가 없으니 어딘가에 분명 있을 경문왕의 무덤은 왕의 무덤임에도 아무도 모르는 채로 무명의 무덤으로 남아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책에는 부록으로 고대 한반도 약사와 신라 왕조 계보, 왕권 투쟁 절정기의 신라 왕실 계보도, 신라 풍월주(화랑도) 계보 등 통일신라 시대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와 더불어 고구려, 백제, 가야, 발해 왕조 계보와 당, 일본 천황의 계보도 함께 싣고 있다. 현대 사회를 기준으로 고대 사회를 이해하려 하면 무엇 하나 이해가 가지 않는 것 투성이인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통일신라 시대 왕들의 계보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자 투쟁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다. 현재 우리의 삶과 생존 방식을 후대의 사람들이 보면 똑같이 이해하기 힘들다고 고개를 가로저을 수도 있는 일이다. |
![]() 기간 : 2024/04/08 ~ 2024/04/11 역사를 이렇게나 좋아하는 내가 세계사만 재밌게 느끼고, 상대적으로 우리나라 역사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민해본적이 있는데,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짧게 정리해보자면, 너무 지엽적이고, 권력다툼이 지저분한데다, 중국에 반 예속된 역사일뿐더러, 낭만조차도 없다. 죽고 죽이고 뺏고 빼앗고 중국한테 아부하고 밉보이면 침략당하고. 이게 전부다.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에는 참 재밌었는데, 성인이 되고 나서 더 깊이있게 공부를 하며 책을 읽어나가다보니, 어렸을때 공부했던 국사는 그저 국뽕만이 가득찬 허울 좋은 역사일뿐이라는걸 깨닫고 나서부터는 재미가 없어졌다. 통일신라의 경우도 그러하다. 기억의 왜곡일수도 있겠지만, 내 기억 속의 통일신라는 찬란한 천년 신라 어쩌고 저쩌고, 혼란스러웠던 삼국을 모두 통일해 당과 대등하게 경쟁하며 발해와 함께 밝게 빛나던 국뽕이 넘치다 못해 분수처럼 쏟아내는 역사였다. 그런 왜곡된 기억을 산산조각내어 진짜 리얼 역사를 보여주는 책이 여기 있다. 시간의 순서대로 통일신라의 왕들에 대한 설명들과 그들의 왕릉에 대한 소개가 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 찾아보면 아무리 오래된 과거의 역사라 하더라도 통일신라에 관한 책들도 은근 되게 많다. 그러나, 다른 책들과 달리 이 책은 지저분했던 역사 속 인물들의 혈통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당, 일본, 발해와 같은 당시 주변국들의 동시대적인 상황들에 대한 요약이 곁들여져 있고, 각 왕들의 왕릉을 모두 직접 답사하여 일일히 사진을 찍고 왕릉에 대한 풍수지리적 설명을 추가했다는 점이 특별한 차이점이다. ![]() 통일신라의 역사 뿐만 아니라, 양귀비로 대표되는 '안녹사의 난' 과도 같은 당의 역사도 실려져 있다. ![]() 책의 마지막에 실려 있는 가계도인데, 이게 이 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역사학계에서는 신라의 역사를 상대(上代), 중대(中代), 하대(下代) 로 구분한다는데, 상대는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부터 28대 선덕여왕까지이고, 중대는 백제를 멸망시켰던 29대 태종무열왕부터 37대 선덕왕까지, 하대는 38대 원성왕부터 마지막 56대 경순왕까지이다. 그렇다면 통일신라는 중대와 하대를 합친 기간인데 구지 38대 원성왕에서부터의 가계도를 이렇게 따로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성골, 진골이 아닌 신라의 귀족이 정권을 잡았기 때문이며, 이때부터 이 복잡한 가계도만큼이나 어지럽고 더럽기 짝이 없는 권력 다툼이 시작되었다. 158페이지부터 시작되는 이 혼란한 시기는 정말 한페이지 한페이지 읽을때마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혼탁하다. 형제, 가족, 친족들끼리의 살육은 뭐 기본이고, 42대 흥덕왕의 경우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42대 흥덕왕은 조카(40대 애장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인물로, 자기가 자기 손으로 직접 죽인 그 조카의 여동생을 부인으로 맞이했다. 근데 이 왕후가 죽은 뒤, 흥덕왕은 너무너무 슬퍼 정국을 제대로 돌볼 수 없다고 한다. 크킹3 통일신라판이다 정말. 모드 만드는 능력자들이 이 당시의 시나리오로 모드 하나 만든다면 그게 바로 진짜 현실성 있는 게임이지 않을까 싶다. 이 당시의 사람들은 지금 우리 현대인과는 사고 방식이 다르다고 받아들여야 하는걸까? ![]() 장보고에 대한 부분도 매우 흥미로웠다. 알고보니 장보고 사후, 장보고의 세력들을 죄다 전북 김제로 보내버렸다한다. 완도에서 활동하다 김제까지 떠밀려간 사람들. 나만 홀로 알고 있는 친숙함이 있어 반가웠다. 장보고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걸까? 힘 좀 썼던 지방 군벌? 통일신라를 멸망케만든 주범? 요즘의 역사학계에서는 이런 단순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훨씬 더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는듯하다. 당 - 통일신라(청해진) - 일본 해상 무역의 중심에서 역동적으로 활동했으며, 한반도의 역사가 중원과 일본으로 더 뻗어나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라고까지 보고 있다. 실제로도 장보고의 전성기에 해상 무역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었고, 장보고가 해상권을 완전 꽉 틀어쥐고 있었기 때문에 통일신라의 국제적 위상도 상승했다 한다. 실제로도, 장보고의 높은 위상은 천년이 훨씬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역대 한국 왕조의 모든 인물들중에서 왕이나 연개소문처럼 왕에 근접한 인물들을 제외하면 장보고만 유일하게 한중일 모든 정사 역사서에 그 기록이 실려 있으며, 또한, 전남 완도, 중국 신라방, 일본 쿄토 삼국에 모두 장보고의 기록들이 현재까지도 생생히 남아 있다. 심지어, 장보고의 세력들중 일부는 김제로 끌려가지 않고, 일본으로 건너가 귀화했다는 기록까지도 일본의 정사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장보고를 까는 주제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서라벌에서 멀리 떨어진 청해진에서 힘이 키워 왕권을 약화시키고, 반란을 일으킨 뒤 서라벌까지 가는 동안 길목을 완전 다 황폐화 시켰다는 내용들인데, 하나하나 반론을 해보자면, 왕권은 이미 장보고 그 훠어어얼씬 이전에 약화되어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또한, 장보고가 거느리던 만명의 병사도 서라벌에서 지원받은게 아니라, 장보고가 해적 소탕하고 중국 왔다 갔다 하면서 모은 병력이라 서라벌의 병권과는 1도 상관이 없다. 반란 이후에 장보고가 서라벌까지 가는 동안, 각 지방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것도 정사엔 전혀 나오지 않는 썰에 불과하다. 오히려, 삼국 해상 무역을 통해 사병 만명을 거느릴 정도로 부가 넘쳐나던 장보고의 입장에서 보자면, 김경은은 배은망덕한 놈이다. 하루라도 빨리 쫓아가 때려 잡아야되는데 어느 세월에 완도에서 경주까지 가는 길목의 마을마을을 하나하나 깨부수고 약탈하고 지나간단 말인가. 반란을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나? 어불성설이다. 내 사견으로는, 지역감정에 매몰되어 있는 일부 인간들이 까내리는 수작에 불과하다. 국뽕에 취해있는 사람은 이 책을 보기 힘들다. 그만큼 적나라하게 통일신라의 실상을 까발리고 있기 때문이다.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라 압박감이 들 수도 있지만, 사진이 중간중간 많이 실려 있어 페이지 넘기는 속도도 그렇게까지 느리지 않다. 어려운 한자들이 너무 많이 나오는 관계로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지만, 의외로(?) 어렵지 않다. 문맥에 의존해 대충 앞뒤 짜맞추다보면 의미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훙서(薨逝) 라는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낯선 단어이긴 하다. 풍수지리적인 부분과 왕릉에 대한 묘사 부분은 내가 아는 바가 1도 없어서 무슨 의미인지 도대체 알아먹기가 힘들었지만, 그 분량이 많지가 않았다. 때문에 통일신라의 역사를 제대로 일독했다는 점에 이 책의 의미를 두고 싶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통일신라왕릉실록 #이규원 #글로세움 #통일신라실록 #통일신라 #통일신라시대 #역사책추천 #추천역사책 #장보고 #완도 #청해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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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을 통일한 통일신라는 우리 역사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된 시기이다. 치열한 삼국 간의 다툼이 결국 외세의 힘을 빌린 신라에 의해 통일되면서 삼국 시절보다 오히려 한민족의 영토는 대폭 축소되었다. 이후 발해가 등장하면서 어느 정도 회복하지만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엔 요원했다. 그나마 삼국이 하나로 통일되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지만 지금도 남남갈등이 극에 달한 것처럼 당시도 아마 서로 원수처럼 생각했을 듯하다. 암튼 통일신라 시대는 통일 이후 얼마 동안만 반짝하고 그 이후엔 골육상쟁의 피바람이 불면서 민생은 도탄에 빠졌던 시기라 알고 있는데 이 책은 통일신라 왕릉을 차례대로 답사하며 통일신라와 주변 국들의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한다. 기존에 '궁궐과 왕릉, 600년 조선문화를 걷다'. '왕 곁에 잠들지 못한 왕비들' 등 주로 조선왕릉을 다룬 책들을 접했다면 통일신라의 왕릉은 조금 낯설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에선 31대 신문왕부터 56대 경순왕까지 통일신라 시기의 왕릉을 직접 답사하면서 해당 왕 시기의 역사를 간략하게 들려준다. 나름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아는 편이라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다 보니 통일신라시대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부분임을 새삼 깨달았다. 특히 38대 원성왕부터 48대 경문왕까지 혈족끼리 죽고 죽이는 왕권 쟁탈전이 벌어지던 시기는 복잡한 족보(?)를 제대로 알기 어려웠는데 부록에서 이 시기의 왕실 계보도를 이해하기 쉽게 정리를 해놓아 큰 도움이 되었다. 혈통의 정통성 유지라는 명분 하에 자행된 근친혼이 아이러니하게도 골육상쟁의 비극을 낳았으니 인간의 탐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었다. 신라 왕들의 재위 시기에 대응하는 발해, 당, 일본의 왕들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어 동북아의 정세도 파악할 수 있게 해주었다. 마지막 경순왕릉을 제외하고는 모두 경주 권역에 왕릉이 있는데 조선왕릉과 달리 찾아가기도 쉽지 않은 외진 곳에 있는 왕릉들을 모두 답사한 저자의 열정도 대단한 것 같았다. 부록으로 삼국은 물론 가야, 발해, 당, 일본 왕실의 계보까지 수록하고 있어 여러 참조할 만한 자료가 많았다. 그동안 잘 몰랐던 통일신라시대의 역사를 왕릉을 중심으로 제대로 정리할 수 있게 해준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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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첫 천만 영화가 된 '파묘'에는 지관이 등장한다. 지관은 풍수설에 따라 땅의 길흉을 판별하는 사람들로 작게는 집터부터 한 나라의 수도를 정하는 데까지 깊게 관여해 왔다. 물론 지금은 주거형태가 달라지고 사람들의 생활 공간이 확장되면서 그만큼 자연이 파괴되고 있지만 지금까지도 명백이 유지되고 있다. 통일신라 왕릉실록의 저자는 독특한 전공의 소유자로 장례 풍수학을 전공했다. 장례 풍수학이라는 명칭은 낯설지만 예로부터 '무덤을 잘 써야 한다.', '묘 터가 좋지 않다'라는 말을 현실은 물론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매체에서 자주 들어본 말이라 원리는 몰라도 어떤 의미인지 대략 가늠할 수 있을 거다. 개인들도 무덤을 어디에 모시느냐가 큰 관심사인데 왕정시대 선왕의 무덤을 어떻게 만드느냐는 국가의 중요한 행사이자 왕권을 곤고하게 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왕릉은 역사 문화적 가치를 지닌다. 『통일신라 왕릉실록』은 신라 31대 신문왕부터 신라 천년 사직을 마감한 56대 경순왕까지 통일신라의 부흥과 운명을 풍수 물형을 풀어낸 책이다. 학창 시절 경주로 수행여행을 간 경험이 있다면 다들 신라시대 왕릉이 익숙할 테지만 상대적으로 고대사에 대한 교육이 적어 정확하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나마 사극을 통해 접하는 정도지만 드라마와 영화는 정보 전달보다는 오락이 목적이기에 고대 한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통일신라 왕릉실록』은 영상 콘텐츠에서 만나지 못한 신라시대 정치와 생활상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고대 한반도 역사와 신라 왕조 계보, 신라 풍월주(화랑도) 계보 당시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도표들도 수록되어 있어 계보를 따라 읽어나가면 좋다. 한자와 명리학 부분등은 한번에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런 사실들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익숙하지 않은 만큼 새롭게 접하는 사실들이 많다. 치열한 왕권 찬탈의 과정과 결과를 통해서는 정치가 욕망의 정점이 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새삼 확인하게 된다. 한 역사학자는 통일 신라시대는 지금보다 더 개방적인 시대였다고 하는데, 역사를 물론,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신라의 진짜 모습들을 만나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