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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색해버린 사랑의 의미에 대하여.
할리우드 판 영화에서는 종종 진정한 사랑(True love)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을 묻는 영화들이 있다.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사랑해’라는 세 글자가 왜 이다지도 가벼워졌을까.
목신 판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자연에서 노니고 악기를 좋아했던, 숲과 들 그리고 양떼나 양치기들의 신이라고 한다. 공교롭게도, 밤길의 어둠과 적막이 사람들에게 공포를 불러일으켰고, 이처럼 전조 증상이 없이 갑작스레 느끼게 되는 공포를 판 때문인 것으로 미루어 Panic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 책의 표지는 노르웨이의 어느 자작나무 숲을 옮겨온 듯 평온하면서도 신비한 느낌을 주고, 그 사이를 자유롭게 노닐던 판의 모습이 어떻게 묘사될 것인지에 대한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목신 판>과 <빅토리아>라는 두 개의 소설을 한데 모아놓았다.
<목신 판>에서는 자연에서 수렵을 통해 생활하는 토마스 글린 중위가 등장한다. 그의 과거는 철저히 배제된 채, 회고록의 형식을 빌려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차분히 건네는 듯 진행된다. 어느 비 내리는 날 한 소녀를 만나 사랑이라는 감정을 마주하게 되면서 다른 사람들과 점차 많은 사람들과 교류를 하게 되지만, 그마저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충동적인 인물이다.
한편, <빅토리아>에서는 두 남녀가 신분적 차이에 의하여 엇갈린 사랑을 하게 되는 상황이 그려진다. 요하네스는 물레방앗간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자신의 공주라고 여기는 성주의 딸 빅토리아에게 연모의 감정을 키우지만, 그녀는 정작 다른 이와 약혼을 한다. 뒤늦게 자신의 신분적 차이를 깨닫지만, 그럼에도 요하네스는 시인이 되어 생활한다.
사랑은 한 남자를 망칠 수도 있고, 다시 일으켜 세울 수도 있고, 그에게 다시 낙인을 찍을 수도 있다. 사랑은 변덕스러워서,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내일 밤은 낯선 이에게 호의를 베풀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은 또 한편으로는 불변성을 갖고 있어서,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봉인처럼 굳게 지속될 수도 있고, 죽음의 순간까지 꺼지지 않고 타오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가? (p.230)
두 소설 모두 남자가 주인공으로 서술되는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목신 판>에서 등장했던 글린이 <빅토리아>에 등장하고 있어, 이 두 소설을 잘 엮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이 두 소설과 크누트 함순에 대한 소개를 담은 번역가의 해설 부분을 통해 작가의 생애와 함께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굶주림>이라는 책을 알게 되어, 그를 몰랐던 나에게는 또 다른 책을 소개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나는 일전에 북유럽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50개의 키워드를 읽는 북유럽 이야기(김민주 저)>라는 책을 읽었다. 그 책을 통해서도 북유럽에 대해 한발짝 이해할 수 있었지만, <핀란드 슬로우 라이프(나유리 외 공저)>라는 책을 통해 그들의 삶을 오롯이 동경해보았다.
이번에 만난 크누트 함순의 <목신 판>을 통해서는 내가 가지고 있던 북유럽에 대한 이미지가 꼭 그의 문체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사뭇 반가웠다. 그의 손에서 묘사되는 문장 하나하나는 간결하면서도 그 속에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이 배어있었다. 비록 2차 세계대전에서 굳건하게 독일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뒤늦게 재평가된 작가이지만, 근대 문학의 아버지라고도 일컬어지는 만큼 그가 이루어낸 문학사적인 생애는 헤르만 헤세를 비롯해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실로 위대하다 할 수 있겠다.
사랑이라는 것은 인류가 진화하고 성장해오면서 삶에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하지만, 그만큼 사랑을 하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의 관계가 복잡·미묘하기에 온전히 진정한 사랑에 대한 의미를 정의내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기에 많은 작가들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사랑에 대한 묘사를 하고 있지 않은가. 다만, 자신의 방랑자적인 생애에서 묻어난 고독한 존재에 대한 묘사, 자연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 그리고 사랑에 대해 풀어놓는 작가의 생각과 이야기들을 통해 퇴색해버린 진정한 사랑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떠올려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기회가 된다면, 그의 또 다른 명작이라는 <굶주림(Sult)>을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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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작가의 아름다운 문장들 <목신 판 - 크누트 함순>
After Reading
오래 전 읽었던 크누트 함순의 책 <굶주림>은 제목 자체에서도 보이듯, 극한의 상황에서 자존심과 신념을 지키려는 주인공의 처절한 움직임에서 울컥한 감정이 밀려들었던 책이었다. '굶주림'이라는 소재만을 가지고, 어떠한 사물을 보고 쏟아지는 서글픈 감정이 그렇게나 표현될 수 있다는 것에 놀랍고 충격을 많이 받았던 작품이다. 그렇게 '크누트 함순'이라는 이름은 뇌리에 박히게 되었고 (이름이 적잖이 특이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이지만 국내에서는 많은 작품을 만나보기 힘들었는데 새로 번역된 그의 작품을 발견하자마자 너무나 반가웠다. 국내 초역된 이 책은 중단편 소설이며, 이전에 봤던 <굶주림>과는 느낌이 확연히 다른 '고독한 사랑의 노래'다. 목신 판. 실제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산과 숲, 들판, 목축의 신 '판'은 로마식 이름으로 '파우누스'라고도 불리며, 실제로 우리들에게는 그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자유롭고 장난기도 많았던 목신 '판'은 어느 날 아름다운 님프였던 '시링크스'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시링크스'는 그를 거부한다. 그런 그녀를 '판'은 끝까지 쫓아다니며 구애하지만, 그것에 못 견뎌했던 '시링크스'는 강의 신에게 사정하여 갈대로 변한다. 상심한 '판'은 그 갈대로 악기를 만들어 불고, 그 악기는 '판 파이프'라고 불리는 악기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크누트 함순의 <목신 판>에는 '판'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 주인공이 나온다. 정열적이며 감정에 충실한 주인공 '글란'은 숲에서 살며 세상을 방랑하고, 사회와는 동떨어져있는 그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간혹 가끔은 돌출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기에 고독함을 안고 사는 그에게도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는데, 그녀는 잡힐 듯 말 듯, 이상한 행동으로 그를 갈팡질팡하게 만든다. 이 소설에는 그런 그녀의 대한 마음과 고민, 그리고 숲에서 사는 방랑자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부분들이 아름답게 그려진다. 특별한 점은 그들의 사랑이 - 이 소설은 꽤 오래전에 쓰였는데도 불구하고 - 너무나 자유분방하다는 것이다. 옮긴이의 해설에서는 이런 자유분방한 그들의 사랑을 선선하고 편안한 '북유럽'의 여름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의문을 품는다. 이후 2부에서 인도로 배경이 바뀌고 불타는 질투로 소설의 느낌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도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빅토리아>는 약간은 통속적인 로맨스를 그리고 있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소재다. 꼬이고 꼬이는 그들의 사랑,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아파하고, 절절하게 그 사랑을 읊는 주인공들의 말과 심리가 표현돼있으며, 초반부터 마치 동화처럼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작에서 읽어 감명을 받았던 그의 멋진 문장들은 그대로였고, 전작의 '굶주림'이라는 소재로 인한 무거움을 다소 환기시켜, 아름답고 산뜻했다. '크누트 함순'이라는 이름은 다소 잘 알려지지 않은 감이 있지만, 유럽의 많은 작가들, 심지어 영미 작가들까지 - 토마스 만, 카프카, 막심 고리키,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등 - 영향을 미친 '근대 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훌륭하게 평가한다. 소설에 대한 구조나 장면들까지도 해석한 그들의 평가에 온전히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었으나 (난 잘 모르니까요.), 자신의 체험이 가미된 그의 절절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읽는 느낌이 좋았다.
Underline
사방이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나는 밤이 이슥하도록 그곳에 누워 창밖을 내다본다. 그 시간에는 요정의 불빛이 들판과 숲 위를 떠다녔다. 해는 지고, 기름처럼 잔자난 수평선을 새빨간 빛으로 물들였다. 하늘은 어디나 탁 트이고 맑았다. 그 깨끗한 바다를 들여다보며 세상의 밑바닥과 얼굴을 맞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 심장은 드러난 그 밑바닥에 닿아서 따뜻하게 고동치고, 거기에서 편안했다. 그 수평선은 왜 오늘 밤 자줏빛과 황금빛으로 자신을 장식하고 있는지, 세상의 그곳에서는 어떤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를 거라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별들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오고, 넓은 강에서 사람들이 뱃놀이를 하는 웅장하고 화려한 축제가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뱃놀이 일행은 저쪽으로 향하고 있다! 나는 눈을 감고 뱃놀이 일행과 동행하며, 생각이 내 머릿속을 항해하는 것을 상상했다. (21p, 목신 판) "희망은 이상한 거야. 그래, 아주 야릇한 거지. 너는 어느 날 아침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기를 바라면서 어떤 길을 걸을 수 있어. 그 만남이 실현될까? 아니지. 왜? 그 누군가는 그날 아침에 바빠서 다른 곳에 가 있으니까. 나는 전에 산에서 눈먼 사미인 노인을 알게 됐어. 그 노인은 58년 동안 아무것도 보지 못했는데, 이제 일흔 살이 넘었지. 그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자기가 점점 더 잘 볼 수 있다고 느꼈고, 상황이 꾸준히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했어. 불운한 일만 일어나지 않으면, 몇 년 뒤에는 태양을 분간할 수도 있을 거야. 그의 머리카락은 여전히 검었지만 눈은 새하얀 색이었어. 진흙으로 지은 노인의 오두막에 함께 앉아서 담배를 피울 때, 노인은 눈이 멀기 전에 보았던 것들을 나에게 모두 말해주었지. 노인은 강건하고 대담했어. 감정도 없고, 파괴할 수 없는 존재였지. 노인은 희망을 잃지 않았어. 내가 떠날 준비가 되자, 노인은 나를 배웅하려고 밖으로 따라 나와서 여러 방향을 가리키기 시작했지. '남쪽이 있고, 북쪽이 있네. 우선 이쪽으로 가게. 산을 조금 내려가면 저쪽으로 구부러지게.' '알았습니다!'하고 나는 말했지. 그러자 노인은 즐겁게 웃으면서 말했어. '4,50년 전에는 그걸 몰랐으니까, 그때보다 지금이 더 잘보이는 건 확실해. 상황이 계속 좋아지고 있어.' 그러고는 허리를 숙이고 오두막으로 다시 들어갔지. 그 영원한 오두막, 이 지상에 있는 그의 집으로. 그리고 몇 년 뒤에는 태양을 분간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가득 차서 여느 때처럼 다시 불 앞에 앉았지. 에바, 희망이란 우스운 거야. 예를 들면 나는 지금, 오늘 아침 길에서 만나지 못한 사람을 잊기를 바라고 있어."(137p, 목신 판)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장미꽃들 사이에서 속삭이는 바람 - 아니, 피 속의 노란 인광. 가장 늙고 가장 쇠약한 심장조차 끼어들지 않을 수 없는 '죽음의 무도'. 사랑은 밤이 다가오면 활짝 피는 마거리트 같고, 가벼운 입김에도 꽃잎을 닫고 살짝 만지기만 해도 죽어버리는 아네모네 같다. 사랑은 그런 것. 사랑은 한 남자를 망칠 수도 있고, 다시 일으켜 세울 수도 있고, 그에게 다시 낙인을 찍을 수도 있다. 사랑은 변덕스러워서,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내일 밤은 낯선 이에게 호의를 베풀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은 또 한편으로는 불변성을 갖고 있어서,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봉인처럼 굳게 지속될 수도 있고, 죽음의 순간까지 꺼지지 않고 타오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가? 사랑은 하늘에 별이 빛나고 땅에 향기가 가득한 여름밤이다. 하지만 왜 사랑은 젊은이로 하여금 은밀한 길을 따라가게 하고 노인으로 하여금 외로운 방에서 발끝으로 서 있게 할까? 아아, 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버섯밭으로, 신비롭고 무참한 독버섯이 자라는 무성하고 뻔뻔한 밭으로 바꾸어놓기 때문이다. (230p, 빅토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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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노르웨이 작가 크누트 함순(이하 함순)의 두 편의 경장편인 《목신 판》과 《빅토리아》을 읽을 기회를 갖게 된 점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매우 의미있는 시간이었다.함순작가에 대해서는 거의 생경할 정도인데 이는 작품다운 작품을 많이 접하지를 못한 나의 게으름과 편독의 소치라고 자성한다.함순작가의 간단한 연보를 읽어 보니 1859년 노르웨이 중남부에서 태어나고 재봉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외삼촌댁에서 성장하다 경제적인 문제로 미국으로 건너가 막노동에 가까운 잡역을 하는 등 어려운 생활을 하다 20대 후반 다시 노르웨이로 귀국하게 된다.1952년 타계할 때까지 수많은 작품을 남긴 함순은 《굶주림》, 《흙의 혜택》으로 작가로서의 명성을 떨치게 되었고,헤밍웨이작가는 함순의 문학적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수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작품의 배경과 인물묘사 등은 일괄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가 태어난 노르웨이 중서부 지방의 자연과 바다,숲 그리고 그리스 신화를 비롯하여 생계를 위해 고향을 떠나 외지,타국으로 이동하는 등 젊은 시절의 방황과 그만의 고독이 작품 속에 짙게 배여 있다는 점이다.두 편을 읽으면서 내마음을 사로 잡은 것은 때묻지 않은 노르웨이의 자연과 숲,바다를 배경으로 사냥과 낚시,사랑과 질투,정신적 방황,도피 등의 소주제가 여기 저기에서 발견되고 있는 점이다.함순작가는 노르웨이(19세기 말경)의 대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주인공 글란의 방랑적인 떠돌이 생활의 단면이 짙게 배여 있다.이것은 《목신 판》에서 잘 나타나 있다.주인공 글란은 바다와 숲을 벗삼아 오두막 생활을 한다. 낚시와 사냥을 떠날 때에는 충견 이솝을 대동한다.섬에서 만난 에르바르다는 글란에게 반하여 키스를 하지만 글란은 사람 사귀는 것이 서툴러서인지 에르바르다가 주도적인 행세를 한다.또 한 명의 여인 에바는 조용하고 순종적이지만 이미 결혼한 유부녀이다.글란은 그의 연적(戀敵)인 마크로부터 질투를 받고 오두막에 불에 휩싸이면서 삶의 터전을 잃고 인도로 몸을 옮긴다.함순작가가 삶의 정처를 정하지 못하고 정신적인 방황과 생계를 위해 미국으로 떠나는 것과 동일한 느낌을 받았다.글란은 인도 여인 매기와 사랑을 나누고 사냥을 하는 등 노르웨이에서와 동일한 생활을 영위하지만 사냥꾼이 쏜 총에 맞아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빅토리아》는 신분차이에 의해 이루어질 수 없으리라 예견되었던 남녀 간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으로 승화되면서 깊은 울림을 안겨 준다.물레방앗간 자식으로서 후일 시인이 된 요하네스와 성주의 딸 빅토리아간의 사랑 이야기이다.둘은 마음으로는 사랑을 나누는 사이이지만 빅토리아 부모는 빅토리아가 요하네스와 혼인을 맺는 것을 원치 않고,돈과 물질이 풍족한 시종의 자식인 중위 오토와 혼인을 정략적으로 맺게 한다.요하네스는 물에 빠져 죽음의 위기에 처한 카밀라를 살려 준 적이 있는데,카밀라 역시 요하네스에게 사랑 아닌 사랑법으로 접근하지만 결국은 요하네스와의 연(緣)이 길게 가지를 못한다.빅토리아의 남편 오토가 사냥을 나갔다가 죽어서 돌아온 것이다.빅토리아는 상심과 실의에 빠지면서 죽음의 시간이 다가오면서 요하네스의 개인교사에게 편지를 보낸다.자신이 그에게 잘못한 점에 대해 용서를 빌고 모든 날들과 모든 시간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본마음을 편지로 대신한다.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장미꽃들 사이에서 속삭이는 바람-아니,피 속의 노란 인광.가장 늙고 가장 쇠약한 심장조차 끼어들지 않을 수 없는 '죽음의 무도(舞跳)',사랑은 밤이 다가오면 활짝 피는 마거리트 같고,가벼운 입김에도 꽃잎을 닫고 살짝 만지기만 해도 죽어버리는 아네모네 같다. -P230
사랑은 세상의 어떤 것과도 같지 않은 또 다른 무엇이다.사랑은 젊은이가 두 눈으로 두 눈을 보는 봄날 밤에 지구를 찾아온다.젊은이는 응시하고,입술에 입을 맞춘다.두 개의 빛이 그의 가슴속에서 만난 듯한 느낌.별을 섬광처럼 비추는 태양 같은 느낌이다. -P231
노르웨이 대자연의 풍광을 수채화처렴 묘사해 주고 있어 마음마저 정갈해진다.위도상 북극권에 가까운 노르웨이는 밤이 되면 '오로라'도 관측할 수 있어 대우주의 신비로움과 경이로움마저 느끼게 한다.두 편의 글의 남자 주인공 글란과 요하네스는 성격상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주체적으로 이성에게 접근하지 못한 채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요하네스는 신분상 결합할 수 없는 제약조건이 뒤따르지만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빅토리아가 요하네스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잊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글을 접하면서 사랑은 신분,국경을 떠나 서로에게 맞는 사람들끼리 어울리고 결합해야 한다는 것이 사랑의 조건 중의 조건이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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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서, '목신 판'은 '빅토리아'와 더불어 노르웨이 작가 크누트 함순의 대표작이다.1920년 '흙의 혜택'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저자가 1894년 지은 작품이니까, 지금으로부터 자그마치 120년 전 소설이다. 우리나라에 소개되어진 북유럽 문학이라고는 옌스페터 야콥센의 소설을 한 번 읽어봤던 게 전부였다. 그 소설은 사랑에 관련된 내용의 글이었는데, 이번에 맞게 되는 '목신 판'과 '빅토리아' 역시 사랑을 주제로 삼은 소설이다. 사랑은 인간에게 있어서 모래알처럼 무척 흔하고 보편화된 주제이지만, 아마도 인류의 가슴에 불이 꺼지지 않는 한 영원불멸의 가치이며 그 자체로 구원을 담은 채 존재할 것이다. 크누트 함순은 어려서부터 일찌감치 글을 동경했던 사람이다. 그 목표를 위해 태어난 듯도 보인다. 그의 성장기와 환경이 그다지 유복하거나 넉넉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면에서 타오르는 글쓰기의 본능은 꺼지지 않았고, 결국 그 감성을 고스란히 글로써 전세계에 펼쳐보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목신 판' 안에는 사랑에 대한 동경이 갈등을 초래하고 그 갈등과 혼돈이 서정적이며 무척 감성적인 표현으로 드러나 있다. 19세기 말 유럽의 사회적 분위기를 대표하는 사회적 리얼리즘의 눈초리를 무시한 채 자신만의 자아로 형성된 서정의 문학을 추구하였다. '목신 판'과 '빅토리아'가 그러하였다. 내면의 외적 표현이 때로는 자극적이다. 그리고 서슴없이 구사되다가도 아무 일 없는 듯 평온하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능력이 보인다. 무척 뛰어난 수사와 표현력이 이 책 안에 담겨있다. 두 작품 모두 결과는 비관적이다. '목신 판',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정욕의 인물이며 사람의 마음에 그리움을 쏘아넣는 존재이다. 판에 대한 신화적 이야기를 먼저 접해본 후 이 내용을 접해보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사랑에 대한 저자의 불신일지 가치관일지는 모르겠으나, 집착과 갈등 끝에 사랑에 관련된 것들은 흩어짐으로 일괄했다. 툭툭 던지는 듯한 독백식의 문장들이 뛰어난 감성에 엉켜져 상당히 맛있게 전개되어졌다. 그리고 시대를 앞서가는 듯한 언어적 작용을 볼 수 있었다. 시대와 시대 사이에는 뛰어난 문장가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프란츠 카프카, 어니스트 헤밍웨이, 헤르만 헤세 등이 그 대표적 인물들인데, 그 문학적 거장들에게 글쓰기의 표상이 되었고, 감정 전개와 서정의 수사적 표현력을 연결해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크누트 함순은 얼마나 엄청난 문학인이었나 짐작할 수 있다. "내 마음은 숲에 있으면 편안해지고 강해졌다. 나는 날마다 이솝을 데리고 구릉지를 산책하곤 했다. 내 길동무는 이솝뿐이었다. 나는 나중에 이솝을 총으로 쏘아 죽였다." 내가 이 도서를 읽으면서 제일 처음 맞게 되는 짜릿한 문장이었다. 자신 있게 자기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면 되는 것, 때론 평온하게 때론 서슴없이, 때론 이 모든 것들을 혼합하여 쓰면 되는 것이다. 구태의연하고 자칫 신파적인 내용으로 일괄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사랑 내용의 글이 지루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도서는 아주 재미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갔다. 더불어 헤르만 헤세처럼 수사법과 표현력, 형용의 미학에 뛰어난 거장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던 것 만큼 나또한 이 도서를 읽으며 사고 전개와 구성력을 배웠고, 한 쪽으로 치우침 없는 감성과 서정의 표출을 보고 배웠다. 100년 넘는 이 전의 세상으로부터 내게로 날아 온 노르웨이의 거장 크누트 함순의 작품은 꽃의 사랑이 오가는 5월에 내게로 다가왔다. 아무리 시간이 흐른다 해도 사람의 사고는 어슷비슷하다. 하여 뛰어난 문장도 서로 닮았다. 그 아름다운 감성 작가의 멋진 서정을 만나보게 되어 너무 감사한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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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인 아름다움으로 사랑을 노래하다.
크누트 함순의 <목신 판>을 접하기 직전에 읽었던 책이 노르웨이의 작가 토마스 에스페달의 <자연을 거슬러>였다. 우연찮게도 두 작가 모두 노르웨이의 작가였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사랑을 노래한다. 북유럴 소설로는 어둡고 습한 스릴러를 먼저 접했기에 순수문학으로 접하는 노르웨이의 문학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크누트 함순은 <굶주림>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알려져 있는 작가라고 하는데 나는 <목신 판>으로 처음 그의 작품 세계에 발을 들였다.
크누트 함순은 <위대한 개츠비>를 쓴 피츠제럴드와 <노인과 바다>를 쓴 헤밍웨이와 같은 미국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작가라고 한다. 그밖에 프란츠 카프카, 막심 고리키, 슈테판 츠바이크등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하니 그의 작품이 왜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다. 작가 중의 작가라는 글귀도 이 책을 주목하게 만들었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을 번역한 김석희 번역가의 손길이 이 책을 믿고 보게 만든다.
<목신 판>은 그리스 로마신에 나오는 목신, 판을 이야기한다. 토마스 함순은 목신 판의 모습을 토마스 글란 중위에 투영해 그를 만들었다. 사회와 동떨어진 생활을 하던 그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지만 그녀의 이상한 행동이 그를 머뭇거리게 만든다. 닿을 듯 말듯한 그들의 사랑이 그를 더 고민하게 만들고 그런 고민과 고독을 마치 판의 모습만 차용한 것이 아닌 그가 사랑한 모습까지도 빼놓지 않고 그려냈다. 신의 모습이 아닌 인간의 모습으로. <빅토리아> 역시 시적인 아름다움으로 사랑을 노래했으나 사랑의 쌉싸름한 모습을 그려냈다. 그럼에도 크누트 함순의 책이 오롯하게 좋은 것은 이룰 수 없는 사랑에도 바람이 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물 흐르듯 흘러가는 문장들 때문이었다. 국내 초역한 이 작품은 사실, 영어판과 불어판을 함께 보며 중역한 책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굶주림>이라는 작품 뿐 아니라 그의 대표작으로 손색없는 이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기쁘다.
요즘은 빠르고 편한 세상이라 사람과의 만남 역시 그런 트랜디한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 뿐 아니라 사랑을 갖는 감정 역시 인위적인 것이 많아 신화에 나오는 신과 님프 요정이 사랑을 속삭였던 것처럼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깃듯 이 책이 더 눈에 띄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계기로 그의 작품이 많이 번역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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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크 입센보다 나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작가로 크누트 함순의 이름을 먼저 알게 되었다. 하지만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며 20세기를 대표하는 근대문학의 아버지라 칭하던 크누트 함순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웨이를 점령한 나치에 동조한 일로 인해 전쟁이 끝난 뒤 반역 혐의로 구금되기도 했던 전력 때문인지 '현대극의 아버지'라는 불리우는 입센의 작품은 널리 알려진 반면 함순의 작품이나 그에 관한 글을 접하기란 쉽지 않았다. 어렵게 구한 그의 글을 아껴 읽으며 연애편지에 한 두 줄쯤 인용했던 기억도 난다, <목신 판〉(1894)과 〈빅토리아〉(1898)라는 두 작품을 한 권의 책에서 만나 보게 되어 반갑운 이유기도하다. 함순의 글을 읽으며 입센과는 전혀 다른 면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목신 판>이나 <빅토리아> 모두 소설이라기 보다 사랑에 빠진 고독한 한 남자의 솔직한 자기고백이며 사랑과 자연에 관한 함순의 생각과 철학이 담겨 있어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했다. 사랑의 감정을 솔직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써 내려간 글에서 함순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서정적인 목가적 분이기를 만끽 할 수 있다.
첫 번째 이야기인 <목신 판>의 주인공 토마스 글란으로 말하자면 그는 숲 속 오두막에서 사냥을 하며 홀로 살고 있다. 전역한 장교로 그가 어디에서 왔으며 그의 정확한 나이를 아는 사람도 없다. 그가 짐승같은 눈을 지닌 꽤 매력적인 사람이란 설명뿐 나머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겨진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그는 술잔을 엎지르거나 사랑하는 여인의 구두를 강물에 던지는 등 그의 돌출행동은 사람들을 당황케 한다. 사냥개 한 마리와 더불어 숲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그는 허리에서 위쪽은 사람의 모습이고 염소의 다리와 뿔을 가졌으며, 산과 들에 살면서 가축을 지키는 목신 '판' 처럼 자연을 사랑하고 연애를 즐겼다. 판은 숲에 사는 다른 신들처럼 밤길 걷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밤길의 어둠과 적막이 사람들 마음 속에 미신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별 이유도 없이 갑자기 느끼는 공포를 판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해서 〈판〉적인 공포(Panic terror)라고 패닉이란 말의 유래가 돠었다고 한다. 글란 역시 숲에서는 편안함을 느끼지만, 사람들 사이에서는 실수하지 않을까 늘 불안해한다. 그의 매력에 사로 잡혀 그를 사랑한 여인들은 모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사랑에 실패하고 고독한 방랑 길에 오른 글란은 결국 인도의 밀림속으로 사라진다.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요하네스는 어릴적부터 아름답고 부유한 성주의 딸 빅토리아를 사랑하지만 물레방앗간집 아들이란 신분의 차이로 인해 이루어질 수 없는 외로운 사랑이다. 정작 빅토리아는 요하네스를 사랑하지만 씀씀이가 헤픈고 사치스러운 아버지의 낭비벽 때문에 부유한 시종의 아들과 결혼을 약속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린 이 작품은 사랑의 감정을 너무도 잘 나타내고 있다.
"사랑은 젊은이가 두 눈으로 두 눈을 보는 봄날 밤에 지구를 찾아온다. 두 개의 빛이 그의 가슴속에서 만난 듯한 느낌" (p 231)이며, 젊은이를 찾아온 사랑은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내일 밤은 낯선 이에게 호의를” 베풀 만큼 변덕스럽지만, 또한“ “젊은이로 하여금 은밀한 길을 따라가게 하고 노인으로 하여금 외로운 방에서 발끝으로 서 있게” 할 만큼 강력하다.
이젠 너한테 작별 인사를 해야 해. 어두워져서 더 이상 보이지 않아. 잘 있어, 요하네스. 날마다 고마워. 지구에서 날아갈 때도 나는 끝까지 너한테 감사하고, 가는 동안에도 줄곧 네 이름을 속으로 부를 거야. 평생 행복하게 살고, 너한테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줘. 네 앞에 몸을 던져 용서를 빌지 않은 것도 용서해줘. 나는 지금 진심을 다하여 너한테 용서를 빌고 있어. 행복해야 해, 요하네스. 그리고 영원히 안녕.(p344)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함순의 글은 간결하지만 상상력을 자극하고 우리의 마음을 휘어 잡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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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학사에서 보면 함순은 20세기 100년 동안 가장 영향력 있고 혁신적인 문장가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그는 의식의 흐름과 내적 독백이라는 기법으로 심리 문학을 개척했으며, 토마스 만, 프란츠 카프카, 막심 고리키, 스테판 츠바이크, 헤르만 헤세, 어니스트 헤밍웨이 같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365).
<목신 판>은 노르웨이 문학의 대표 작가라는 크누트 함순의 소설입니다. 크누트 함순은 1920년 <흙의 혜택>이라는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입니다. 책의 뒷표지에 보면, "함순은 나에게 글쓰기를 가르쳤다"고 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말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이 한마디가 이 책을 읽어야 할 충분한 이유였습니다.
이번에 시공사에서 '세계문학의 숲' 시리즈로 출판한 <목신 판>에는 크누트 함순의 2편의 중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1894년에 발표된 <목신 판>과 1898년에 발표된 <빅토리아>가 그것입니다. <목신 판>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토마스 글란 중위의 수기"라는 제목이 붙은 1부는 글란 중위가 2년 전 노르웨이의 노를란 지방에서 보낸 여름의 이야기를 회상하는 글이며, "글란의 죽음"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2부는 (제목이 스포인테) 한 정체모를 사람이 밝히는 글란 중위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남자의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라는 점에서 <목신 판>과 뼈대가 비슷해 보이는 <빅토리아>는 현실적 장벽 때문에 사랑을 이루지 못한 남녀의 슬픈 사랑을 그린 "순수한 멜로드라마"(361)입니다.
문학사적 위치와 가치를 떠나 그저 내용만 음미해 보면, <목신 판>과 <빅토리아>는 "남자가 사랑할 때"라는 말이 연상됩니다. 특히 <목신 판>은 다소 변덕스러워 보이는 여자의 행동과 사랑 고백 때문에 혼란스러워 하는 남자의 심리가 잘 그려져 있습니다. 주인공 글란 중위는 "목신 판", 그러니까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목축의 신이고 목동의 수호신"인 '판"과 같은 남자입니다. 스스로 "숲과 고독에 속해" 있다고 고백하는 글란 중위는 외딴 오두막에 이솝(개)과 함께 머물고 있습니다. 가끔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사냥과 낚시를 하며 자연의 숨결과 함께 호흡하며 사는 데 익숙한 사람입니다. 이 책은 그가 자연과 함께 교감하며 느끼는 충만한 행복이 아름다운 언어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런 글란 중위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는 서투르기만 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컵과 술잔을 깨뜨리기도 하고, 사랑하는 여자의 구두를 바다에 던져 버리기도 하고, 그 여자와 다정한 남자의 귀에다 침을 뱉는 이상 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목신 판>은 변덕스러운 여인의 사랑 때문에 혼란스러운 남자의 심리가 잘 묘사되어 있기도 합니다.
"밤에 나는 모든 게 다 끝났다고 생각했고, 결심을 굳혔다. 이 변덕스러운 사람 때문에, 머리가 텅 빈 이 계집애 때문에 왜 내가 눈먼 장님이 되어야 하는가? 그녀의 이름은 이미 오랫동안 내 가슴에 꽂혀 내 가슴을 다 빨아 없애지 않았던가? 이제 충분하다! 어쨌든 나는 그녀에게 냉담하게 굴고 그녀를 조롱하는 방법으로 오히려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아아, 나는 얼마나 매력적으로 그녀를 조롱했던가"(124).
<빅토리아>도 분위기가 다르지 않습니다. 사랑하지만 서로에게 다가갈 수 없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슬퍼하는 두 남녀의 애절함과 고뇌가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가장 강렬한 인상은 문장이 아름답다는 것, 그리고 남자가 사랑할 때 휘말리게 되는 격정을 읽는 즐거움이었습니다. 사랑은 매혹적이지만, 또 얼마나 잔인한지요. 행복감으로 그 영혼을 가득 채웠다가도, 연인의 사소한 몸짓 하나가 한순간 지옥불에 휩싸이게 만들어버립니다. <목신 판>과 <빅토리아>는 각각 1894년과 1898년에 발표된 책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오래전, 우리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 시절의 사랑 이야기인 셈입니다. 그러나 역시 사랑의 감정은 시대를 초월하고, 문화를 초월하여 동일한 것인가 봅니다. <목신 판>과 <빅토리아>의 사랑 이야기는 한결같이 불행한 결말을 맞이하지만, 그렇다고 사랑의 환멸에 빠져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에 태워지는 젊음을, 그 생기를, 그 혼란을, 그 야비함을, 그 정열을 아름답게 노래합니다.
이 책의 뒷편에 실린 "해설"을 읽지 않았다면 문학으로서 <목신 판>과 <빅토리아>의 가치와 의미를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해설"을 먼저 읽고 작품을 읽는 것도 이 책을 읽는 한 방법일 듯합니다. 문학사적 의미로도, 문학적 아름다움으로도, 순수한 로맨스 소설로도 읽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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