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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십육일>은 4·16 재단에서 매달 16일에 발행하고 있는 세월호 참사 기억 에세이이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이하여 2020년 6월 16일부터 아직 공개되지 않은 2024년 10월 16일까지 50편의 글을 묶어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작가, 뮤지션, 정치가, 시인 등의 글쓴이가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애도하고 있는지 시, 산문, 편지, 에세이, 인터뷰 등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한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2024년에는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며 세월호 참사를 기억했으면 좋겠다. 희미해진 2014년 4월 16일이 글을 읽으며 점점 선명하게 그려졌다. 고등학교 1학년 수업 시간에 심각한 표정으로 세월호 소식을 전하던 선생님의 모습이, 집에 돌아가 티브이 앞에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며 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거대한 슬픔 앞에서 무력감과 죄책감을 느끼던 나는 그날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지만 자주 그날을 잊었고 외면했다. 이제는 안다. 슬퍼지기 싫다고 외면하는 건 옳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또 한 번의 참사가 일어났고 우린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참사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어떤 위로를 건네고 어떻게 기억하고 어떤 방식으로 애도를 표현해야 할까. 글쓴이들은 매달 열리는 304 낭독회에 참가하기도 하고, 관련 책을 읽거나, 노란 리본과 노란 꽃을 보며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매년 찾아오는 그날을 지나치지 않기 위해 달력에 4월 16일을 표시하기도 하면서. 내가 흘려보낸 시간 동안 작가님들은 여러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올해부터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먼저 이 책을 읽고 정혜윤 작가님의 <세상 끝의 사랑> 팟캐스트를 듣고 세월호 10주기 북토크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이랑 작가님은 친구와의 갑작스러운 이별 후, 가장 위로가 되었던 말이 “네가 그 친구를 계속 기억하면 된단다.” 였다고 한다. 그말을 들은 뒤, 갑자기 떠난 친구를 오래오래 기억하는 것으로 그와 함께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함께 기억하고 그 기억을 전달하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그의 다짐이 책을 덮고 난 후에도 자주 떠올랐다. 정지우 작가님은 “애도의 다음 단계는 그 사람을 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람을 더 정확하게 기억하고 간직하는 방식이다. 그 사람이 내게 주었던 가치들, 그 사람이 살고자 했던 삶, 그 사람이 가치 있다고 믿었던 것을 내가 실현하며 사는 삶이다”라고말한다. 슬픔에 잠식되지 않으려고 외면하는 일로 진실을 망각하는 일로 슬픔을 닦아내고 있었는데, 애도는 누군가를 계속 기억하고 정확하게 기억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살아 있다면 그들은 어떤 모습일지 여러 작가님이 상상하며 써 내려간 페이지를 보며 나와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마 그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다채롭게 자신의 일상을 살아내고 있을 것이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고 우리 그때 그랬지, 하며 추억을 회상하기도 하면서. 서로의 고민을 나누며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기도 하면서. 가족들과 밥을 먹고 산책을 하면서. 그렇게 우리의 일상 속에 있어야 할 사람들을 자주 상상하고 기억하고 싶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서평단 #월간십육일 #사계절 #세월호참사기억에세이 |
![]() 2004년 4월, 나는 제주로 향하는 배에 있었다. 고2가 되면 떠나던 수학여행, 우리 역시 제주를 향하고 있었다. 그 때 내 기억은 굉장히 단편적이다. 다른 학교를 다니던 첫 사랑과 나는 하루 차이로 제주로 수학여행을 갔고, 우연히라도 마주치길 바라면 서로 기대감에 차있었다. 우연히 마주치지도 않았고, 수학여행 중 같은 반 친구가 마음이 통했나보다. 그렇게 수학여행 중 이별을 했던 것이 너무 강렬해서 단편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후, 2014년 4월의 나는 분식집에 앉아 난생 처음 혼밥에 도전하고 있었다. 그 전 한해를 대인기피증으로 보내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 참이었다. 1월은 운전면허를 따고, 3월에는 학원을 알아봤으며, 4월에는 수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종일 이어지는 수업 탓에 혼자 밥을 먹게 됐던 것이다. 조용한 분식집 구석에 앉아 음식을 시켜둔 후 켜져있는 텔레비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타인과의 눈맞춤조차 최소화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때, 속보가 흘러나왔다. 제주로 수학여행을 떠나던 배가 침몰했다는 이야기, 그러나 전원 구조했다는 이야기.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식사를 하고 학원으로 돌아와서 수업을 듣는 중 인터넷 속보는 계속 바뀌었다. 전원 구조가 오보였고, 에어포켓의 확률이나 생존확률등을 앞다투어 내보냈다. 배 주변을 맴도는 보트와 헬기, 그리고 점차 까맣게 변하는 바다를 보며 집에 돌아왔었다. 그리고 또 10년이 지났다.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여전히 멈추어 있는 누군가가 있음에도, 우린 기어코 살아내고 있다. 그래도 기억속에서나마 함께 자라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가족으로 오래오래 함께 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REMEMBER140416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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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주기... 10년이 더 흘러도 잊을 수 없는 그날 이후, 추모 리본은 제 빛을 잃지 않았고, 나는 여전히 기억의 힘을 믿는다. 잊지 않는 이들이 아주 많아서 안도하지만, 비극이 또 다른 비극을 위로하는 풍경은 너무 아프다. “그들이 누리지 못한 삶은 매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새롭게 갱신될 것이다. 그 어떤 말들 앞에서도 그 사실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이 무거워 쉽게 고개 들 수가 없다.”(김애란) ![]() 처음부터 연재 에세이를 읽지는 못했다. 읽기 시작한 후에도 더러 눈으로만 읽고 잊거나, 한동안 새하얗게 잊고 살기도 했다. 그러니 기록은 정말 중요하다. 기록이 있으니, 늦더라도 빠진 시간을 주섬주섬 채워넣을 수 있다. “직접 겪지 않고 옆에서 목격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해요. (...) 적어도 지금 유가족분들이 이뤄내려고 하시는 진상규명. 반복되지 않게 하는 것. 세월호 참사를 계속 유효한 이슈로 만드는 것. 이런 일들은 다른 사람들이 도울 수 있으니까.”(이슬아) ![]() “이전까지 나는 기억에 ‘굳히기’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 제대로, 맞는 형태로, 단단히 굳는 것을 지키고 서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잊제야 한다. (...) 이 공공의 기억을 확립하지 못하고서는, 우리 사회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정세랑) ![]() 그건 권고사항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국가 차원의 세월호 대책과 무관하다.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 이들이 읽고 기록하고 곁에 서 있던 그런 순간들과 관련이 있다. 여러 번 건넸지만, 늘 좋은 인사를 반가운 분들로부터 이 책 속에서 받고 나도 보낸다. “슬픔의 기억력이 좋아질수록 훗날, 이 슬픔을 그대로 물려주지 않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진실이 기억하는 느린 진심은 어떻게든 돌아오게 되어 있다. 우리는 떠나간 것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그 자리를 지켜낸다.”(서윤후) ![]() ‘전원구조’라는 악랄한 오보의 붉은 글씨는 흐려지는 법이 없다. 이후 지속된 눈물과 슬픔에 오래 잠겼던 질문들이 점점 더 분명한 윤곽선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기억은 같고도 다르다. 그러니 50분이나 다른 목소리가 더 반가운 큰 위로다. “편리한 세상 속에서 기억은 힘을 점점 잃을 것이다. (...) 인간성과 이타심을 유지하는 것은 이 사회에서 효율적이지 않은 일로 판정되고 미끄러진다. (...) 4.16이라는 숫자를 외워본다. 지킨다는 건 본래 효율적이지 않고 불편한 일이다.”(황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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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에세이’라는 수식어처럼 <월간 십육일>에는 각자의 방식으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피해자와 남겨진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하나의 마음으로 기억하는 그날을, 삶에 깊이 새겨진 상흔을 기꺼이 꺼내어 말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끝끝내 잊지 않는 것이라고. 있었던 시간을 증명하면서 계속해서 말하고 귀 기울이는 것이라고. 우리의 기억은 이어지고 있다고. ![]() 가방에 달린 노란 리본. 매일 들여다보는 달력에 노랗게 표시된 칸. 산책로에 핀 개나리. 4월의 출퇴근길에 함께한 노란 표지의 책. 무언가를 보면 자꾸 울 것 같아지는 요즘. 그럴 때마다 눈을 꼭 감고 크게 숨을 들이쉬며 작게 기도를 올린다. 열 번째 4월이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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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 에세이 <월간 십육일> 국민들 모두가 겪은 트라우마, 세월호 참사. 그날의 충격이 아직도 어제일처럼 생생한 건 나 뿐만이 아니었나보다. <월 간 십육일>은 4월 16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은 에세이집이다. 2020년 6월 16일부터 4.16재단 블로그에서 꾸준히 연재되어 왔던 시리즈를 10주기를 맞아 책으로 발간했다. 에세이에 참여한 작가들은 시인, 소설가, 뮤지션, 정치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비유가족’이다. 그러니까 세월호 유가족이 아닌 일반 시민들이 쓴 그날의 기억 에세이인 것이다. 세월호의 기억이 유가족 만큼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국민이 겪는 감정은 모두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충격, 슬픔, 억울함, 비통함, 안타까움, 분노… 그런 감정들이 작가들의 글에서 뚝뚝 묻어난다. 이건 내가 쓴 건가, 싶을 정도로 같은 상황에서의 같은 감정을 느끼는 글도 있었고 누구보다 앞장서서 세월호 진상 규명과 위로에 동참했던 사람의 글도 있었다. 세상에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진데, 세월호를 기억하는 마음들은 어쩌면 이렇게 닮아있을까. <월간 십육일>은 세월호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그날의 경험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갈피를 못잡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날을 기억하고 진실을 마주보려 노력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담긴 눈물로 쓰여진 에세이. 바쁜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기억을 보존하려 애쓰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나의 10년을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무엇보다 원하지 않는 이별이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이별 당사자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생긴 갑작스러운 이별에 대해 어떻게 기억하면 좋을까요.” _이랑<네가 그 친구를 계속 기억하면 된단다> “내가 슬프기 싫어서 안 보는 마음이 얼마나 알량한 것인지 제 친구 요조의 글을 읽고 다시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내 마음 아플까 봐 못 보겠다, 이 말이 얼마나… 그것을 감당하고 맞서서 살아가는 사람들 앞에서는 진짜 얼마나… 작고 좁은 마음인지 알겠더라고요.” _이슬아 인터뷰<단단해지는 마음> “불응으로 기억을 훼손하고 있는 이들은 누구인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다시금 살피게 된다. 우리가 꼭 가져야 할 공동체의 기억이 우리에게 오지 못한 채 어딘가에 억류되어 있고, 그 지연의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아득하다.” _정세랑<기억이 굳어가는 동안, 울타리처럼 서서>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게 큰 빚을 졌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그 모든 것의 무게를 다 합한다 한들 그들이 온당히 누렸어야 하는 것들의 가치만 할 수 있을까.” _김애란<모두의 일곱 해> “시간은 계속해서 우리를 스치고 지날 것이다. 편리한 세상 속에서 기억은 힘을 점점 잃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편안함과 편리함이 섬뜩하게 느껴진다.” _황예지<암기> “상처를 직면하여 그것을 내게 일어난 일로 만드는 작업은 우리 모두의 숙제다. 4월 16일 그날이 더 이상 숨겨진 과거, 슬픈 풍문이 아닐 수 있도록.” _유지혜<사랑은 시간을 얼린다> *출판사에서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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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97년생. 누가 나를 소개해보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이렇게 말할 것이다. 2024년을 맞아 27살이 된 저는 비운의 97년생입니다, 라고. 수학여행을 떠올려보자면 나에겐 기억이 없다. 그도 그럴게 초등학생 때는 신종플루 때문에 졸업여행이 취소되었고, 중학교 땐 팔공산에 야영을 가기로 되어 있었으나 무슨 멧돼지가 나오는 바람에 못 갔고, 고등학교때는 세월호 참사가, 대학교 후반부에 터진 팬데믹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이태원 참사까지. 이 모두 97년생인 내가 겪었던 일이라면, 비운의 97년생이 아니고 달리 뭐라고 표현한단 말인가. 그래. 2014년 4월 16일을 모두가 뚜렷하게 기억할 것이다. 4·16 재단에서 매월 16일 연재한 『월간 십육일』에 참여한 저자들도 그날 각자 다른 위치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던 사람,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던 사람, 길을 걷던 사람. 모두가 일상을 살아내고 있던 사람들일 뿐이었다.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나는 그때 교실 한 쪽 편에 앉아 졸업여행을 어디로 가면 좋을지 학급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가는 수련회는 아니었지만, 기념으로 삼을 만한 이벤트는 처음 맞아보는 셈이었다. 제주도가 좋을까? 해외에 갈 수 있을까? 부푼 기대가 여러 입을 통해 표출되고 있을 때 소식을 접했다. 배가 가라앉고 있다고. 거기에 우리와 꼭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 타고 있다고 했다. 수업 하나가 끝났을 때는 전원 구조였고, 다른 수업이 끝났을 땐 오보였고, 또 다른 수업이 끝났을 땐 참담한 소식이 전해졌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는데 습관처럼 틀어놓은 TV 뉴스에서는 연신 세월호 관련 속보가 이어졌다. 그때 나는 가족들에게 어떤 말을 했더라? 울지는 않았던 것 같다. 울 줄을 몰랐다고 하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지. 나는 그때 내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며, 어떻게 해야하는 지 전혀 알지 못했다. 후에 옆 학교에서 마침 타려던 배가 세월호였지만 모종의 사유로 일정이 미뤄졌었단 얘기를 들었다. 그것이 사실이든 와전된 것이든 간에 그제서야 좀 실감이 났다. 아, 이게 남의 얘기가 아니구나. 그게 우리였을 수도 있었겠구나. 바다 밑에 잠긴 아이들이 단원고 학생들이 아니라 우리였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무서웠다. 결국 졸업여행이 취소되었을 때 실망한 기색을 드러낼 수도 없었다. 당연한 슬픔과 애도의 물결이 온 국가를 뒤덮었고, 우리 또한 불쌍한 아이들이 되었다. 이슬아가 ‘딱 이맘때 아이들이었겠구나(34면)’라고 느낀 것처럼, 어른들은 나를 긍휼히 여겼다. 그런 내가 이제야 너무 슬프다고 고백하자니 미안해서 미칠 것 같다. 피해자 대부분이 내 또래였기 때문에, 그들은 살아보지 못한 10년이란 세월을 내가 대신 걸어왔기 때문에 나는 지독히도 슬프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들 하는 것처럼, 이태원 참사를 직접 겪은 나에게 세월호 10주기는 너무나 참담하게 다가왔다. 10년이 지나서야 더 깊은 눈물을 흘리고 공감하는 것이 희생자들에게, 유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까먹어서, 구태여 드러내야할까 싶어서 SNS에다 세월호 관련 언급을 건너뛰었던 날들이 떠올랐다. 제대로 슬퍼할 줄도 모르는 아이였던 내가 강산이 바뀌는 세월이 지나서야 지독한 슬픔에 잠겨버릴 줄 아는 성인이 되었다. 그게 자그마치 3,600여일이 지난 시점이라니. 죄스럽고 속상했다. 이 죄책감을 어떻게 하면 떨쳐낼 수 있을까 싶어 어제는 『월간 십육일』 북토크에, 오늘은 안산에 다녀왔다. 안산에는 난생 처음 가보았다. 겨우 마음을 먹고 방문할 곳을 이곳저곳 저장해놓고 갔는데, 추모식과 안산 문화예술의 전당 3, 4 전시실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10주기 기억물품 특별전 <회억정원>을 보고 나니 진이 빠져서 도망치듯 서울로 돌아왔다. 작은 물건들에 담긴 이야기들에도 눈물 콧물 쏙 빼는 게 힘들었다. 이걸로도 모자라 10주기를 맞아 개봉한 영화 <바람의 세월>까지 훌쩍이며 봤으니 그날 바다에 묻힌 이야기들을 꺼내어 보는 게 나에게, 모두에게 꼭 필요한 경험일까 싶은 의심마저 들었다. 김신지는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기억을 열어볼 수 있단 가정을 두고 느낄 점들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모르던 사실이 너무 많아서, 어쩌면 그제야 이 사람을 알아가는 기분이 들거야. 이런 걸 기억했구나. 이런 순간을 좋아했구나. 이 사람, 마음이 오래도록 여기에 머물렀구나. 그러다 끝내는 어째서 이 깊고 넓은 존재가 사라졌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다시 울게 되겠지.(139면)’ 그 사람의 기억은 너무나 그 사람만의 것이라는 의견에 동의하기 전에, 이건 모두가 보유하게 된 기억임을 살펴야 한다. 우리들이 잊지 말고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기억이다. 기억은 힘이 세다. 방문한 전시의 총괄감독인 서영걸의 말을 빌리자면 ‘기억물품이라 칭해지는 세월호참사 희생자들의 유류품이 가져오는 기억은 개인적인 범위에 국한되지 않는다.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라면, 책임의 주체가 국가라고 한다면 사회적 기억으로 확장될 수밖에 없다’. 기억은 현재의 시간과 연결되고, 선형적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중첩된다. 예컨대 이태원 참사가 있은 이후, 강원도에 여행을 갔을 때 강릉에 산불이 크게 났다. 강풍주의보가 내려질 정도로 거센 바람이 불어서 불이 막 여기저기 옮겨 붙었다. 그때의 나는 인명 피해가 없길 기도하는 것보다, ‘아, 나는 왜 이렇게 재해를 몰고 다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최현수가 잇따른 참사를 두고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것 같다고, 하나도 변한 게 없는 것 같다(217면)’고 말한 것처럼, 살아있어도 사는 게 아니었다. 모든 사건·사고를 내가 직접 겪고 일으킨 것처럼 아팠다. 이걸 친한 친구에게 말했더니 너는 재해를 불러오는 사람인 게 아니라 재해에서 살아남은 인간이랬다. 죽음과 생명이 공존하는 곳에서 연대와 실천은 기억에 기반한다. 나는 그걸 유념하기로 했다. 그래. 우리는 살아남았다. 이 모든 일에도 살아남아서 애통해하고, 분노하고, 명복을 빌어주고, 서로를 위로하며 위할 수 있게 됐다. 나는 지금에서야 또다시 슬픈 한편, 슬퍼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 운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추모의 이유를 드러낼 수 있으니 현명하고 똑똑한 것이다. 그러니 살자. 살아남은만큼 살아서, 비통에 찬 울분을 터트리고, 낙루하고, 애쓰자. 그 결과가 어찌됐건 내 자리에서 슬퍼하는 것. 그것에서부터 모든 변화가 시작된다. 내 마음 아플까 봐 못 보겠다, 이 말이 얼마나…. 그것을 감당하고 맞서서 살아가는 사람들 앞에서는 진짜 얼마나…, 작고 좁은 마음인지 알겠더라고요. p. 29 이 정도 자랐고 키와 머리와 체구…. 딱 이맘때 아이들이었겠구나. 처음 실감하게 되었죠. 조금 다른 의미로 미치겠더라고요. 이름을 읽었을 때보다, 딱 그맘때 애들이 생생하게 움직이는 것을 가까이서 봤으니까요. p. 34 창문 하나 내지 않은 지하 공간은 사람들의 눈물과 회환, 피로로 공기의 밀도가 한계치에 다다른 듯했다. p. 81 그런 생각을 해봤어. 소중한 누군가를 잃었을 떄, 그의 기억을 열어볼 수 있다면 어떨까. 더 가까울 수 없을 만큼 가까웠던 사이여도, 그 사람의 기억은 너무나 그 사람만의 것이어서 나는 슬프고도 당혹스럽겠지. 모르던 사실이 너무 많아서, 어쩌면 그제야 이 사람을 알아가는 기분이 들거야. 이런 걸 기억했구나. 이런 순간을 좋아했구나. 이 사람, 마음이 오래도록 여기에 머물렀구나. 그러다 끝내는 어째서 이 깊고 넓은 존재가 사라졌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다시 울게 되겠지. p. 139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것 같다고, 하나도 변한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p. 217 304명의 죽음은 304가지 사랑의 소멸이라는 것. 304개의 전구가 꺼진 만큼 세상은 어두워졌겠고 304개의 사랑 이야기가 중단된 만큼 인간 정신은 쪼그라들었다. p. 265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 추모 프로그램은 아래에서 자세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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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기억하는 진심은 어떻게든 돌아오게 되어있다. -p15 어둠을 씻어내니 더 큰 어둠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나 불편한 빛으로 비추는 곳엔 아직 꺼뜨리지 않은 많은 빛들이 모여 있었고, 그곳에 있으니 어둠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우리의 기억력으로, 우리가 느끼는 슬픔으로 진실 없는 어둠의 칭얼거림을 달래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P17 누군가는 쉽게 말한다. "언제까지 이야기할 거예요?" -P155 어쩌다 우연히 살아남은 우리가 목소리를 보태고 손을 잡아야만 한다.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만 또 다른 4.16을 막을 수 있다. -P246 세월호 10년은 내 인생의 10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나는 원하든 원치 않든 그 실시간 생중계의 증인이기 때문이다. 기울어진 배를 속절없이 바라보면서 화면 안으로 손을 뻗어 한 명이라도 구해내고 싶었던 그 수많은 시청자들 중 하나였다. -P262 2014년 4월 16일 그날은 내가 나이트 근무였다. 병동 휴게실에서 긴급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고 뉴스 자막으로 전원 구조라는 문구를 보고 안도하며 돌아섰던 게 몇 분 되지도 않아 오보라며 정정된 문구에 '어떻게 어떻게..'만 되뇌이던 그 밤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언제나 돌아가면 그 기억이 떠오르고 실시간 상황들과 구체적인 이야기들에 상상을 더해갔지만 점점 낡아 가는 기억들이 슬픔에 슬픔이 더해지는 기분이었다. 스스로 4.16을 잊지 않으려고 카톡 프로필에도 노랑 리본을 떼지 않고 계속 달아놓고, 매년 4.16쯤엔 세월호 관련 기사를 찾아봐도 일 년 중에 며칠은 또 잊게 되는데 그때마다 참 미안하고 또 미안한 생각이 들곤 했다. 이번 해에도 역시 그렇게 비슷한 일상을 보내다 며칠 전 세월호 10주기 소식을 듣고 4.16재단에서 책이 나왔단 소식에 이번에도 빠르게 책을 구입하고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에는 시인, 소설가, 에세이스트, 가수, 배우, 기자 등 49인의 목소리를 담은 기억 에세이로 각기 다른 개인적 방법으로 세월호를 추모하고 있었다. 각자마다 그날의 기억을 담아내기도 했고, 다하지 못한 개인의 반성, 앞으로의 계획을 밝히며 10년 동안 혹은 앞으로 세월호를 기억하고 계속 이야기할지 담담히 털어놓는 이야기들이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고의적인 혼란의 기억을 자들을 막아서는 방어선을 견고하게 해야 하고 누구도 함부로 훼손하지 않는 오염시킬 수 없는 기억의 울타리가 돼줄 시민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정세랑 작가님의 이야기가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야 하고 우리가 모두 떠나도 변질되지 않을 기억으로 남아야 할 고유의 커다란 슬픔이 바로 세월호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그 얘기냐고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지금도 부족한 이야기라고 맞받아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지게 한 많은 용기를 주는 이 책을 나처럼 용기가 필요하거나 4.16을 계속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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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서평단 #월간십육일 #김겨울 외49인 #임진아 그림 #416재단 엮음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2014년의 4월 16일은 선명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여기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50번의 16일동안 세윌호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슬플 걸 알기에 쉽게 펼치기 힘들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함께 이 책을 읽어줬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작가님의 한 편의 글이라도 읽고 우리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월호를 함께 기억했으면 좋겠다. 다들 내게 조심하라고 했다. 세월호를 공적인 자리에서 언급하는 것을, 세월호와 관련된 활동을 하는 것을,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을.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겨우 가끔 기억을 했을 뿐이다. 지난 10년 간 세월호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고 우리는 세월호를 통해 무엇을 배웠나. 여전히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이용되고 사라지는 세상에서 세월호를 죽음을 고통을 참사를 이제 그만 잊으라고 한다. 제주 4.3이 그랬듯이, 광주 민주화운동이 그랬듯이, 수많은 학살과 사회적 재난이 겪었던 것처럼. 우리는 왜 역사를 배우는가. 나는 기다리라고 말하는 어른이 되었고, 침몰하는 배에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내 일상이 더 소중한, 책임지고 싶지 않은, 외면하는 사람이 되었다. 기억하는 힘이 너무나 약하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사람을 너무 쉽게 싫어하는 사람이라서 내가 싫고, 외면하는 사람들이 싫고, 방관하는 사람들도, 혐오하는 사람들도,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도 싫다. 그래도 멈춰서서 듣는 사람들. 이야기를 보는 사람들. 기억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미워하는 내 마음은 너무나 옹졸하고, 내 고통은 한낱 먼지에 가까워서 그래도 기억하겠다는 희미한 다짐만 작게 내뱉는다. 누군가는 조심스레 내가 사회적 참사의 유가족이거나 지인인지를 묻는다. 그렇지 않다. 그래서 나는 얕은 눈물만 흘리거나, 때로는 기억하지 못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산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지만 피해자와 유가족의 아픔에 슬퍼할 수도 있다. 대부분이 그런 마음일 것이다. 아무도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당신도, 우리가 아무도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월호는 나에게 그런 의미다. #사계절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세월호 #세월호10주기 #기억은힘이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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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힘이 세다 세간에 떠도는 이야기가 내밀힘이나 쥘힘, 견딜힘이 되는 동안, 어떤 기억은 고스란히 안간힘이 되었다" - 오은, <그것> 중 #월간십육일 #416재단 엮음 #사계절 #세월호참사10주기 #기억에세이 어느새 10주기를 앞에 둔 #세월호 참사. 같은 기억을 갖게 된 우리가 '우리'일 수 있는 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합니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 생각한 바가 각각의 이야기 속에 적확한 표현의 활자로 담겨있네요. 슬프고 아프고 미안하고 화를 내기도하며, 50명의 작가가 쓴 '4월 16일'에 대한 에세이를 읽습니다. 내일이 4월 16일이라며 노란배를 접어준 아이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잊지 않는 힘으로 또박또박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연결되어있고 연대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다정한 다독임을 건넵니다. |
![]() 2020년부터 매월 16일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에세이를 4·16재단에서 연재해 왔다. 작가, 뮤지션, 배우, 시인, 정치인, 활동가란 이름이 아닌 그 사태를 목도한 평범한 시민들이 '4월 16일'을 실감나게 그려내 읽는 내내 2014년 4월 16일, 사건 당일이 생각났다. 갓 대학에 입학했을 때, 한국사 교양 강의를 듣고 있던 참이었다. 친구가 화들짝 놀라며 뉴스를 보라며 책상 밑으로 기사를 보여주었고, 나는 그걸 받아 읽던 차가운 공기가 선연하다. 집에 돌아왔을 때, 전원구조라는 기사를 보고, 안도했던 순간과 그것이 오보라는 기사가 연달아 터졌을 때, 나는 TV 앞을 떠나지 못하고 왼쪽 생존자 수의 숫자가 하나라도 늘어나길 간절히 바랐다. 10월 29일도 같았다. 이젠 성인이 되어 일하고 있을 때, 이태원에서 끔찍한 참사가 있었다고, 생존자들의 증언은 처참하기에 그지지없어서 10년 전, 그때 기억이 되살아나고 말았다. 그때와 달리 되도록 보지 않았고, 그저 속으로 이와 비슷한 사건을 경험한 나라이니 당연히 괜찮을 거라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는 우리 사회에 큰 상처를 남겼지만, 그 의미는 퇴색되어 '아직도 거기에 몰두해 있냐'는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묵음 처리해야 되는 상황이 되었다.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고,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기억이 되길 바랬는데 사회는 냉혹했고, 생활은 잔인하게도 흘러갔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이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연대까진 바라지 않는다. 그저 그날이 되면 차가운 바닷속에 잠들은 아이들의 눈망울을 기억해 줬으면 한다. 일상에서 그런 참혹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이 사회는 보장하지 못한다. 하지만 상처를 극복하고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목소리가 필요하다.
누군가의 가방에 노란 리본이 달려 있으면 좋겠다. 일상과 예술에서 계속해서 이야기가 되풀이되면 좋겠다. 그렇게라도 잠시 우리가 겪은 아픔이 누군가에겐 몇백 배는 더 처절하고 뼈저렸음을 알았으면 한다. 노란 리본 대신 노란 인덱스를 붙이면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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