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고전읽기를 순차적으로 하게 됐을때 수메르 신화에 대한 책들을 읽으며 새로운 역사를 배웠다. 고대그리스 나 고대이집트 이전에 수메르가 있었고 성경 이전에 신화가 있었다. 김산해님의 수메르 신화책은 정말 압권이었는데 함께 읽은 참고도서중 하나가 주원준님의 <구약성경과 신들> 이었다. 학자입장에서는 중립적일수 있다쳐도 종교인의 입장에서 중립적으로 쓰려 노력한 책이 있다는게 놀라웠었고 인상적이었다. 이 드물고 귀한 관점에서의 책이 새로이 나왔다니 관심up 기대upup
그래서 저자는 구약성경대신 '첫째성경'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렇다고 이 용어를 만든 사람이 저자인 것은 아니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가톨릭 구약학계에서도 저자와 같은 생각으로 '첫째성경'이라는 용어를 제안한 학자가 있었고 일부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교회가 참 많다. 그에 비해 성당은 좀 적은 것도 같은데... 여튼 서양에서는 교회는 그냥 교회이지 성당과 교회를 구분짓지 않고 부른다. 저자가톨릭계이지만 구분없이 교회는 그냥 교회라고 부른다. 어느쪽 교회이든 간에 바탕은 성경일 것이다. 하지만 저자 말마따나 우리나라 교회가 성경을 해석하기 위해 그 배경이 된 역사를 어느정도나 공부했는지 아니 공부한적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배경지식 없는채 글줄만 읽는 것이 과연 얼마나 성경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할수 있는 것인지도.
이 책은 저자가 EBS방송에서 진행했던 강연을 바탕으로 관련한 다른 내용까지 첨부하여 묶은 책이다. 역사와 종교에 관심있는 사람이었다면 공부해야 했을 내용들이었으나 저자가 공부한 내용을 우리는 그저 쉽게 읽기만 하면 된다. 게다가 더 공부하고 싶은 사람을 위해 참고도서들도 여럿 알려주고 있다.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이 책의 서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단어는 '전복의 서사' 라는 표현이다. 구약의 인물들을 현대적으로 해석해준 책인데 '전복'이라고?! 언뜻 어울리지 않아보일 법한 이 표현이 이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새삼 놀라게 된다. 구약이 이렇게 전복적이었나! 종교가 있든없든 성경을 알든모르든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인물들에 대해 새로운 해석이 펼쳐진다. 시작은 물론 아담부터다. 그리고 마지막은 욥 이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은 원죄 이야기, 이 첫번째 이야기부터 잘못 알려진 부분이 많다니 흥미롭지 않은가?!
'전복의 서사'는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전복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해석할 때 가능한 것이다. 저자의 관점은 신선하고 학문적으로도 깊이가 있다. 뭐랄까... 성경을 제대로 읽은 아우라가 느껴진달까. 저자는 '신의 초대'를 기껍게 맞이했고 풍부하게 즐기고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어한다.
사실 성경에는 그 이전에 있었던 신화들과 비슷한 이야기들이 상당히 많다. 세상을 창조하는 이야기부터 인간을 만들고 그 인간들이 겪어내는 일들까지 아주 새로운 이야기는 거의 없다시피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저자는 과거의 신화들을 조금 변형하여 묶은 에피소드들 처럼 읽혀질 수도 있을 성경의 이야기들이 어떤 차별성을 갖는지 명확이 짚어낸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이 구약을 '전복의 서사'로 읽게 만들수 있었다.
'인간은 신의 은총을 받아야 살 수 있다는 것 (p. 28)' 이 창세기의 가장 위대한 가르침이라고 하면저 저자는 구약에 등장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성 안에서 평안히 살던 사람들이 아니라 '성 밖의 가난한 백성 (p. 29)' 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그렇다. '희망' 이었다. 구약에서의 약속은 '희망'이었다.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부터 카인과 아벨, 노아, 아브라함, 요셈, 모세, 삼손, 다윗, 유딧, 엘리야, 예레미야, 요나, 욥 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물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은 결국 어떤 일이 생겨도 인간이 살 수 있도록 마음을 먹게 해주는 그런 일화들이었다. '용서하는 신이 우리와 동반한다는 점은 큰 위로이고 희망이다. (p. 35)' 라는 저자의 말이 조금씩 이해가 되도록 해주는 책이었기에 종교가 없는 내가 읽어도 아무런 저항감 없이 저자의 문장이 와닿았다. 그랬구나...하면서.
나는 종교가 없지만 무신론자는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불가지론자라고 해야하나... 신이든 무엇이든 영적인 무언가가 있다고는 생각한다. 인간과 다른 인간보다 대단한 어떤 존재가 있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이해되지 않아 믿지 못해 종교를 갖지 못하는 내게 일단 믿으면 다 이해된다는 그동안 만난 수없이 나를 전도하려 했던 이들의 말에선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그러나 저자의 문장은 달랐다. 쏙쏙 이해가 되고 종교가 새롭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내가 내일 당장 교회에 나갈 것 같진 않지만.
뭐든 원론적인 핵심이 나쁜 것이 오래 전해져올리는 없지... 원래 뜻이야 좋았겠지... 문제는 그것이 지켜졌는가 혹은 지켜지고 있는가 랄까... 그 '의로움'은 다 어디로 갔을까;;; 혹시 성경을 저자처럼 제대로 깊이있게 읽지 않아서 이렇게 된 게 아닐까...;;;
왕이 섬기고 제국이 모시던 거대한 신들은 모두 사멸되었다. 하지만 성 밖에서 떠돌던 한 가정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작은 신은 오래도록 전승되어 남았다. 게다가 그 가정의 이야기에서 장자의 권리는 박탈되고 힘없는 사람이 신에게 선택되곤 했다. '이런 면에서 첫째성경은 '전복의 시선'을 드러낸다. 세상의 시각을 뒤집어야 신앙의 논리가 이해되는 것이다. (p. 119)' 저자의 말을 읽으면 읽을수록 묘하게 성경이 새롭게 보인다.
성경이 신을 믿고 신에게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라는 말만 하는 책인줄 알았더니 이토록 진보적 시각을 보여주고 있는 책이었단 말인가. '우리는 흔히 성경에서 전하고 있는 메시지를 신에게 의존하고 순종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기 쉽다. 이것이 종교가 매력을 잃어가는 원인 중 하나다. (p. 206)' 라는 말은 다른 사람이 했으면 눈길한번 주지도 않았을 텐데 저자의 문장을 읽다보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종교가 없는 내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다. 그러게... 다들 성경 좀 공부하지... 싶고.
놀랍지 않은가? 고대엔 이스라엘 말고도 여성이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는 것이 당연했고 성경 속 여인들도 가부장의 권위에 눌리고 신의 선택에 늘 비껴나는 존재들인줄 알았는데 여성 영웅의 계보가 있고 그 절정이 '성모 마리아'라니. 이런 시각 정말 신선하다. 신선한 시각이지만 결코 저자의 주관적이라고 치부할 만한 그런 주장은 아니다. 저자의 고대근동에 대한 학문적 바탕은 책을 읽는 내내 탄탄하게 저자의 해석을 뒷받침해준다. 특히나 성경의 탄생에 있어 '일리말쿠' 에 대한 내용은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두었으면 싶은 부분이었다. 하지만 '고대근동 세계에 대한 문맹과 같은 한국 신학계의 처지가 안타깝다. (p. 248)' 라는 저자의 개탄이 비신자인 나조차 알 지경인데 누가 알겠나 그런 중요한 내용들을;;;
저자의 말마따나 참으로 절묘한 역사였다. 성경이 탄생하고 전승되고 현대에 이토록 광범위하게 퍼진 배경이 그 '전복성'에 있었다니. 읽으면 읽을수록 너무 기묘하게 다가오면서도 너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wow 대단한대!
그런 종교인이 한 명만 내 곁에 있었더라도 나는 바로 따라갔을 텐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아무래도 죽기전까지 한 명도 못날것 같다. 단 한 명도.
성경의 다른 에피소드들에 비해 욥기에 대해선 잘 몰랐는데 저자의 설명을 읽고나니 이해가 된다. 성경을 읽은 적이 없는데 성경을 다 읽은 기분이랄까. ㅎㅎ 종교에 관심이 있고 성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마 새로운 눈을 뜨게 될 것이다. 참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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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무릎을 탁 친 내용은 신화의 언어에는 빈구석이 많다는 것이다. 구성이 논리적으로 앞뒤가 딱 맞지 않아 성경을 읽을 때마다 현실과 동떨어지는 느낌을 받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거기에 대한 해답은 성경의 빈구석이 바로 신이 당신을 초대하는 자리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성경의 특징을 이해하고 나니 성경이 눈과 마음으로 쉽게 읽힌다.
그리고 다른 외국어처럼 히브리어 원어의 해석이나 어원을 놓치면 엉뚱한 해석이 될 가능성이 큰데, 저자의 성경 재해석은 원어와 대조하면서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해석의 와전으로 카인과 아벨은 나이 차이가 있는 형제인 줄 알았지만, 히브리어 원어로 확인한 저자는 쌍둥이 형제였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처럼 여태껏 잘못 알았던 오류를 고쳐가는 대목이 많다.
또한, 유대인 대학살, 간토 대지진 때 조선인 대학살이나 코로나19의 음모론과 같은 사례들을 통해 카인때부터 내재되어 있는 희생양을 삼는 인간의 본성을 생각케 한다. 그리고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 노아의 홍수 이야기와 구약 성경의 다른 주요 등장인물들에 대해 새로운 의미의 재해석이 돋보인다. 과거에만 머물며 낡아만 보였던 성경이 새롭게 느껴진다. 이러한 반추를 통해 우리 인간이 신에게 한 걸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성경 안내서로 이 책을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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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인들은 독특하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체험했고, 그 체험을 고대근동의 언어와 문화로 해석했고 전승했다. 첫째성경은 고대근동 세계의 문학이었다"(7).
성경이 진리라고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인류의 기원이나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관한 지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올해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습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고대근동학자가 들려주는 구약성경 속 인물들의 이야기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동시에 가장 거세게 공격도 받는 인류의 고전으로서, '구약성경'은 인류가 간직해온 신화와 역사가 만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고대근동학자는 고대근동의 저작물들과 구약성경을 비교하여, 구약성경만이 담고 있는 톡특한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인류가 간직한 보편적인 이야기의 얼개 속에 구약성경을 구별짓게 하는 매우 독특한 서사가 우리를 놀라게 하고, 성찰하게 하고, 새로운 길로 이끄는 힘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먼저, 저자는 구약성경을 '첫째성경'이라고 부르자는 제안을 합니다. '구약', 즉 "옛 약속"이라는 이름 때문에 이것이 "낡고 해진 약속의 책으로 다가온다면, 이 이름을 재고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5-6). 이 첫째성경의 사람들은 고대근동인들이었고, 고대근동인들은 신과 함께 살았습니다. 고대근동 세계는 신의 뜻과 지혜에 따라 살려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는데, 그런 세계에서 유독 독특함과 유일함으로 도드라져 보이는 부류가 바로 고대 이스라엘입니다.
고대 이스라엘만의 독특함과 유일함을 한마디로 하면, 첫째성경이 전하는 '전복의 서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먼저 이스라엘의 첫째성경 속에는 다른 신화들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영웅이나 초인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괴수나 반신적인 존재도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첫째성경은 철저히 신과 인간에게만 초점을 맞춥니다. 무엇을 강조하는 것일까요? 바로 인간은 누구도 신이 될 수 없다는 것이며, 인간은 어느 누구도 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과 인간의 격차는 절대적입니다. 첫째성경이 강조하고 있는, 우리 모두는 피조물일 뿐이며, 황제라 하더라도 신의 피가 흐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이야기에는 예외를 인정할 만한 사람이 없다. 최초의 남녀는 죄인이었고 모든 인간은 그들의 후손일 뿐이다. 남자든 여자든 왕족이든 영웅이든 사제든 평신도든 모두 이 점에서 다르지 않다.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 바로 그 점 때문에 인간은 신의 은총을 받아야 살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창세기의 가장 위대한 가르침이 아닐까 한다"(28).
그런데 문제는 인간과 신의 관계가 허물어졌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이 인류가 가진 문제의 근원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에덴동산을 잃어버렸고, 이제 우리 앞에는 (신이 처음 목적한 것이 아닌)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에덴동산의 바깥입니다. 이제 (우리의 힘으로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첫째성경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의 끝에는 인간과 동행하는 신이 남습니다. 새로운 세상에서 사는 일은 당연히 고통을 동반하지만, 그러나 그 길을 신이 동행해줍니다. 고통이 시작되었고 땀 흘리는 삶이 시작되었지만, "용서하는 신이 우리와 동반한다는 점이 큰 위로이고 희망이다. 이것이 이 이야기가 들려주는 가장 중요한 삶의 조건일 것이다. 그렇다면 신과 함께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야 할까. 그 답은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한다"(35).
고대근동신화와 '첫째성경'을 구별짓는 또다른 독특함은 '시선의 전복'입니다. 첫째성경에 등장하는 신은 그의 백성들에게 세상의 보편적인 시선들과 맞설 것을 요구합니다. 이 신은 백성들에게 위와 중앙이 아니라, 밖과 아래로 시선을 향하라고 말합니다. 야훼를 따르는 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조금씩 바꿔가는 개선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질서로 나아가는 것이었고, 그 일은 나를 넘어 밖을 향하고, 강함이 아니라 약자를 향하고,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자리를 향하는 발걸음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었습니다. <구약의 사람들>의 저자는 그 독특함과 유일함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고대근동 큰 나라들의 건국신화를 보면 임금의 조상이 신의 특별한 총애를 받아서 도시와 지역의 질서를 확립한 영웅적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런 조상을 두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은 대제국의 조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그는 성읍을 건설하지도, 어느 도시를 쟁취하지도 못했습니다. 대규모 전쟁을 이끌어 승리한 일도 없고, 세계의 패권을 다투지도 않았고, 큰 신전을 짓지도 않았습니다. 큰 영토는커녕 어떤 성읍도 가지지 못했고, 스스로 임금이 되지도 못했습니다.
첫째성경의 신, 아브라함이 경험한 야훼 하나님의 중요한 특징은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은 우르 사람이었지만, 그의 신은 우르의 성벽 밖에 있었습니다. 그의 신은 성 밖으로 나올 것을 요구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인류가 간직한 '금의환향'의 서사와 정반대의 길을 갔습니다. 그는 인생의 말년에 고향을 떠나, 온 가족을 데리고 평생을 떠돌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성 밖의 가정 공동체를 이끌었을 뿐입니다. "창세기를 전승한 백성들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일하고 아이를 낳아서 손수 먹이고 입히며 살아야 했던 성 밖의 가난하고 고단한 사람들이었다"(31).
이스라엘의 조상은 성 밖에 살던 작은 가정에서 출발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성 밖의 가난한 백성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나라 없이 성 밖을 떠돌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을 믿는 사람들은 늘 어딘가로 나가야 했습니다. 성읍이 없던 무리는 왕궁도 신전도 없었고 당연히 그런 문물도 전해지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신도 성 밖의 신이었다"(99). 야훼는 성읍도 없고 신전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야훼를 '나의 신'으로 고백하는 도시국가의 임금은 없었습니다. 야훼는 성 밖의 작은 무리가 섬기는 신, 변방의 작은 신이었을 뿐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은 가난한 가정과 함께 변방을 떠돌았습니다. 야훼는 스스로 성읍이나 신전에 거했던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가정의 모든 사연과 일화에 개입하시는 분이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맨 처음 지상에 오신 자리는 거대한 궁궐도 높은 신전도 아니었고 작은 가정이었다(121).
"고대근동의 수많은 신들 가운데 성 밖의 작은 신이었던 야훼만이 현대로 전승되었고 다른 신들은 모두 잊혔다"(102-103).
저자는 이것이 고대근동 종교사의 역설이라고 강조합니다. 거대한 신전에 정주하여 큰 백성을 거느리던 신들은 전부 잊혔지만, 작고 가난한 이들을 선택하여 그들과 함께 변방을 떠돌던 신만이 후대에 크게 확산되었다는 것입니다. 대제국을 세운 신들은 결국에는 모두 잊혔지만, 작은 가정에 오셨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온 인류의 이야기로 퍼졌습니다. 인류의 역사에 엄연히 존재하는 이 역설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사회에서 주류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이 써내려가는 역사가 있다. 지금은 보잘것없고 초라해 보이지만 신은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실 것이다. 그건 인간이 아니라 신이 허락하는 것이다"(142).
분명 첫째성경은 고대근동의 신화와 문학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고대근동학자는 역설과 전복의 시선으로 '첫째성경'을 읽을 것을 권합니다. 첫째성경에는 많은 것이 뒤집혀 있기 때문입니다. 역자를 소중하게 여기고 소외된 변방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전복의 시선을 갖지 않으면, 낮은 자리에 임하시는 첫째성경의 신을 만날 수가 없끼 때문입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성경의 빈구석을 채워주는 책입니다. 저자는 주의 깊은 학자로서의 상상력과 신앙인으로서 성찰을 통해 (감추어진) 의미를 찾아줍니다. 지금까지 들었던 그 어떤 설교보다, 더 강렬하게 마음에 새겨질 것 같습니다. 구약성경을 진리로 믿는 자들에게, 그들이 믿는 바의 독특함과 유일함이 무엇인지, 성경을 통해 우리 인생을 해석할 때,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를 잘 가르쳐주는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계속 해서 밑줄을 그어가며 페이지마다 별표를 남발할 만큼 배울 것이 많았던 강의이며, 마치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성경을 풀어줄 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던 것과 같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설교가들이 먼저 이 책을 읽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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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근동 학자 주원준 교수는 ‘첫째 성경’(구약)을 고대 근동의 신화와 문헌들과 비교하면서, ‘첫째 성경’ 인물들의 이야기를 새롭게 풀어냅니다. 이 책은 전통적인 교회에서는 쉽게 듣지 못하는 아주 흥미롭고 통찰력이 있는 해석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아담과 하와 이야기는 인간이 신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고대 근동 창조 신화에는 반신적(半神的)인 존재가 많이 등장하지만, 성경에는 그런 존재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인간이 죄인이기에 신의 은총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존재임도 힘주어 말합니다. 신은 거역하는 인간을 죽이지 않고 살 수 있게 용서해 줍니다. 인생에는 죄로 인한 고통과 땀 흘림의 수고가 가득하지만, 그래도 살아낼 수 있는 이유는 신의 한없는 용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카인을 부조리와 고통을 당하고 분노와 실망에 싸인 존재로 봅니다. 그런 자에게는 죄가 늘 가까이 있는 법이죠. 신은 카인에게 죄에 관해 경고하지만, 그를 죽이지는 않습니다. 자비와 용서의 신이 인간과 함께한다는 사실이 인간에게 궁극적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첫째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노아, 아브라함, 요셉, 모세, 삼손, 다윗, 엘리야, 예레미야, 요나, 욥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갑니다. 우가릿 문헌 <바알 신화>의 기록자인 ‘일리말쿠’는 이 책에서 처음 접해 봅니다. 주 교수는 ‘바알 신화’와 ‘첫째성경’의 차이를 설득력 있게 제시합니다. 다신교 문헌과 달리 ‘첫째성경’은 이스라엘의 야훼 하나님께 집중할 뿐 아니라, ‘역사’에 대해서도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알과는 달리 성경의 하나님은 ‘역사의 신’으로, 인간사에 구체적으로 개입하고 자신의 의지를 드러냅니다. 고대 이집트의 신관(神官)이나 메소포타미아의 예언자들이 권력에 봉사하는 것과는 달리 ‘첫째성경’의 예언자들은 저항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라가 멸망했기에 오히려 이런 예언자들의 글이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나는 근대 근동의 신화와 문헌들을 배경으로 구약성경을 해석하는 이 책을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읽어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완독한 후, 구약성경의 독특성과 유일성을 확신하게 되었고 통찰력 있는 인물 해석에 큰 유익을 얻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지한 일독을 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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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성경에서 전하고 있는 메시지를 신에게 의존하고 순종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기 쉽다. 이것이 종교가 매력을 잃어가는 원인 중 하나다.p206. <다윗: 실수를 딛고 일어서라> 중에서 가끔 책을 읽다 보면 비슷한 구절에서 막힐 때가 있다. 특히 내가 읽어보지 못한 동서양의 고전을 인용할 때, 많이 당황스럽다. 동양 고전, 논어, 맹자, 장자, 삼국지의 경우 학교에서 조금 배우기도 했고 생활 속에서 자주 접하다 보니 서양고전에 비해 비교적 익숙하다. 그러나 서양 고전으로 대표되는 고대 철학자들의 서적이나 성경의 경우 익숙하지 않아 다른 책을 읽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처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을때, 싱클레어가 카인과 아벨, 예수 옆에 못 박힌 사람들의 이야기에 왜 당황하는지 공감하지 못했다. 성경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서 인터넷으로 성경 속 인물과 사건을 검색하며 속뜻을 알아갔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래서 문학적인 관점에서 성경을 배우고 싶었는데 이번에 EBS Books에서 EBS 인문 클래스 시리즈로 <구약의 사람들>이 나와서 읽어보기로 했다. 저자 주원준은 고대 근동(중동지역) 연구자이자 가톨릭 평신도 신학자이다. 즉, 가톨릭 사제가 아니고 학문으로서 고대 근동과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라는 의미이다. 성경은 예수 탄생 이전과 이후를 기준으로 구약과 신약으로 나눠져 있다. 저자는 <구약의 사람들>을 통해 고대 근동(중동지역) 신화인 메소포타미아 신화, 길가메쉬, 에누마 엘리쉬, 바빌론 신정론 등과 구약을 비교 설명한다. 오래된 약속을 구약, 새로운 약속을 신약으로 불렀으나 최근 구약에 대한 어감이 낡은, 오래된의 나쁜 의미로 변질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구약을 처음 약속, 첫째 성경으로 부르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 책은 15개의 소제목 속에 아담과 하와, 카인과 아벨, 노아, 아브라함, 창세기, 요셉, 모세, 삼손, 다윗, 유딧, 일리말쿠, 엘리야, 예레미야, 요나, 욥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톨릭 구약 성경에 나온 인물 외에, 구약 성경이 만들어지는데 참고가 인물인 일리말쿠(도시국가 우가릿의 재상)의 이야기도 담고 있다. 변방의 한 가난한 백성과 그들의 신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전해지는지, 학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구약성경의 앞부분은 구전을 통해 전해내려오다가 후대에 가서 글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창세기의 일부는 이웃 국가들의 신화를 모방하기도 하고 이웃 국가의 신화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창세기 전반부의 역사를 원역사라고 하는데, 원역사에서는 신과 인간을 부모(신)와 자식(인간)으로 비유한다. 인간 자식이 잘하면 부모 신은 칭찬하고, 인간 자식이 실수하거나 죄를 지으면 부모 신은 엄하게 혼내기도 하고 괜찮다고 토닥이기도 한다. 읽다보니까 맞는 말 같다. 신은 인간을 벌하지만 감싸주기도 한다. 또한 원역사를 보면 특정신이나 인물을 믿는다고 개인과 사회가 완전히 바뀔 거라고 하지 않는다. 이것이 구약성경이 사이비 종교와 다른 이유라고 저자는 말한다. 고대 근동 세계의 신들 가운데 고통스러워 울부짖는 작고 보잘것없는 종들의 소리를 듣고 불쌍히 여기는 신은 야훼가 유일할 것이다. 야훼 하느님의 독특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저 가없이 여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신음하는 백성을 위해 직접 역사하여 함께 싸우기까지 했다.p157. <모세: 나의 밖을 향한 시선> 중에서 성경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현대문학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서양문학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왜 성경을 읽기 어려운지 이 책을 읽으며 이유를 생각해 봤다. 1. 정서 차이가 있다. 우리는 성리학 중심 문화권에서 살았다. 고향을 중심으로 맏이를 기둥으로 세워 우리네 삶을 이어갔다. 그러나 요셉과 모세 등을 비롯한 성경의 인물들은 고향을 등지고 변두리로 떠난다. 그들은 맏이가 아닌 그 아래 아들들에게 의지하며 삶을 이어간다. 그래서 보기 불편한 점이 있었을 것이다. 2. 말이 어렵다. 성경은 가시 덤불이라는 말 대신 요즘에는 잘 쓰기 않는 떨기나무라는 말을 쓴다. 이집트를 정체불명의 애굽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어떤 단어는 중국식 한자로 표기하여 그 의미가 모호하다. 3. 종교 서적에 대한 거부감이다. 하나의 책이 아니라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들만 읽어야 할 거 같은 분위기가 있다. 저자는 구약 성경 속 유명한 인물들의 험한 삶을 살았다고 전한다. 가톨릭 신자들이 성경 속 인물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추천해달라고 했을 때, 평탄한 삶을 살고 평온한 죽음을 맞은 인물들이 별로 없어, 추천이 어려웠다고 전했다. 신과의 약속을 저버린 인물, 동생을 죽인 인물, 형제들에게 미움을 사 노예로 팔려간 인물, 신의 뜻을 따르지 않아 벌을 받는 인물, 아들을 죽이는 인물, 신의 말을 어겨 큰 물고기한테 잡아먹히는 인물, 착한 사람인데 그냥 시련을 겪는 인물 등 어느 하나 평범한 삶이 없다. 가톨릭과 개신교인들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골리앗을 이긴 다윗의 뒷 이야기와 솔로몬이 태어나게 된 배경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인물의 한 단면이 아닌 일생을 말이다. 변방의 작은 신(하느님, 야훼)이 이웃나라(이집트 등)의 큰 신들을 이기고 아직까지 남아있는 이유도 책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르네상스와 현대의 미술품, 문학소설에서 언뜻 본 인물들의 내면과 역사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사제가 아닌 고대 근동(중동) 문화연구자의 입장에서 쓴 글이라 구약 속 이야기와 구약이 쓰인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서양 문학을 읽다가 구약의 인물과 사건 때문에 멈칫하는 나 같은 사람이 참고할 만한 책이다. (EBS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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