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동 주 사람은“고독은 용기를 잃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위해 필요한 활동을 창조하게 만드는 힘을 주지.”(p.) - 『반 고흐 영혼의 편지2』 - 빈센트 빌럼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이다. 1853년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고흐는 평생을 독신으로 가난을 친구로 삼았다. 그러나 빛에 따라 변화하는 다채로운 자연의 색채를, 움직이듯이 살아있는 그림 안에 고스란히 담았다. 사상과 주의를 넘어서 화가들의 연대와 공동체를 결성하길 원했지만, 홀로 서야 했던 고독한 예술가! 일본 판화의 화려한 색채를 과감하게 수용한 뛰어난 포용력에도 한결같은 품성으로 배척당한 외로운 순교자였다. 그런 고흐에게 동생 테오는 형제이자, 좋은 친구였으며 편지를 읽어 줄 상대였다.
고흐는 십 대에 큰아버지의 주선으로 헤이그의 구필 화랑에서 일을 시작했다. 여러 나라의 화가와 다양한 화풍의 작품을 접하고 고객에게 소개하며 판매하면서 그림에 대한 안목과 작품의 가치를 알게 된다. 한 때는 잘 나가는 화상이었지만, 하숙집 딸에게 거절당한 후로 점차 종교에 심취한다. 채식의 검소한 식사를 하며 독서에 몰두하던 그는 선교학교에서 공부한 후에 벨기에의 탄광 지대에 간다. 평신도의 선교사로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집을 내어주고 빵을 나눠주나, 시찰단은 그의 모습을 보면서 성직자의 존엄성을 훼손시킨다며 해고한다. 성직자로서도 환영받지 못한 고흐는 어릴 때 소질이 있었던 그림을 떠올리면서 화가의 길을 걷는다. 1880년 11월 테오의 권유로 브뤼셀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들어간 고흐는 해부학, 소묘, 원근법 등을 배웠으나 특정한 화가의 화풍을 본받기보다는 혼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여인을 사랑하고 사랑받길 원했으나, 비너스 그의 옆에 있지 않았다. 아들이 있는 연상의 사촌에게도, 딸이 있는 매춘부에게도 합당치 않는 자신의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그림에 더욱 충실하게 된다. 파리에서는 화가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멋진 옷도 차려입고 카페에 가지만, 자신과 다른 삶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실망하고 프랑스 남부 아를로 떠난다.
자연을 사랑하면서도 동양의 강렬한 색감에 깊은 인상을 받은 고흐는 예전의 어둡고 침침한 색에서 깨어나 서서히 변화한다. 인물화를 그릴 때 모델의 보이지 않는 이면을 담고자 노력했으며 사물은 다채로운 색깔로 칠해 통일된 하나의 색으로 느껴지게 했다. 그의 그림은 순수하면서도 강렬한, 생생하게 살아있으면서도 왠지 모를 미묘한 감정으로 서서히 물드는 풍경을 보여준다. 고흐는 비싼 유화물감을 아끼기 위해서 수많은 데생을 스케치하면서 보는 순간에 최대한 빠르게 풍경을 담았다. 잠자는 시간과 식사 시간까지 아껴가면서 그린 작품을 속에는 시골의 일상적인 정경과 동네 이웃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평범하고 가난한 이들을 소중하게 여긴 화가는 세상을 조용히 품어주는 자연을 사랑했으며 진실한 삶을 그림에 담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고흐의 현실은 달랐다. 가족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동료 화가들은 그의 그림을 인정하지 않았고 여인들을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엄청난 독서광이었던 고흐는 넓게 읽고 깊게 성찰했다. 그리고 동생과 친구들에게 편지를 썼다. 한 세기가 지난 후에야 나는 그림이 아닌 그의 편지를 통해 고흐를 이해하게 되었다. 가난과 치열하게 싸우며 그린 그림으로부터 받은 강렬함은 멈추지 않는 그의 열정이며 조용히 눈길을 끄는 그림의 정경은 화가의 순수한 영혼을 담은 그릇이다.
그런데 왜 일까? 그런 고흐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은...
아버지는 배를 운행하는 1급 해기사였다. 1년을 해외에서 근무하시면 1년은 집에서 가족들과 지내는 일과 쉼을 교대로 갖는 생활이었다. 하지만 낮과 밤이 바뀌는 시간이 계속되자, 안정되지 않는 신체 리듬으로 아버지는 서서히 건강을 잃어갔다. 어느 날 십오 킬로그램이 더 빠져서 돌아온 아버지는 다시 배를 탈 수 없었다. 어머니는 원인을 찾기 위해 대학병원, 종합병원, 그리고 유명한 병원들을 다 헤매고 다녔다. 그 모든 병원을 돌고 나서야 동네의 작은 한 내과에서 들을 수 있었다. ‘갑산성 항진증’ 40년 전에는 이름조차 생소한 병명이었다. 어머니는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치열한 생활전선에 나섰다. 주위에서 좋다고 권유한 온갖 한약재와 처방들은 무의미했다. 다른 병으로 이동하는 발판이 되었으며 이를 기점으로 대부분의 성인병을 두루 거치게 되었다. 병원 입원 한달, 집에서 요양 두어달과 같은 생활이 선박과 집으로 교체되던 예전 생활처럼 반복되었다. 나는 한밤중에 화장실을 가면 항상 깨어있는 아버지를 보았다. 그가 하루에 8시간 이상을 연속으로 편안하게 주무시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갑자기 자기 일과 공간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자아는 병이라는 벽 뒤로 숨어서, 점점 혼자가 되어갔다. 십 대의 나는 아버지 용납할 수 없었고 이십 대의 나는 아버지가 싫었으며 삼십 대의 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불혹을 넘어 지천명이 되어서야 말하지 못한 아버지의 아픔과 외로움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때는 아버지여서 그랬다고! 그러니 이제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이해해달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어쩌면 내 그림의 거친 특성 때문에 더 절실하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 그런 경지에 이르고 싶다. 그것이 나의 야망이다.” _ p.64, 〈조용한 싸움〉 『반 고흐 영혼의 편지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