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작가상은 작품활동을 시작한 지 십 년이 넘지 않은 작가들이 발표한 중단편소설을 대상으로 한다. 봄이면 출간되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해마다 읽고 있다. 2024년 제15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작가들은 비교적 생소했다. 젊은작가상은 한국을 이끌 젊은 작가들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2024년에 수상한 작품들을 보니 다양한 주제와 다양한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는 내용이라 책 읽는 즐거움이 컸다. 좋은 작품들을 읽어 ‘신난다’라고 말할 수 있어 기쁘다.
수상작들을 읽으며 작가의 이력과 이름을 기억했다. 김멜라 작가의 작품은 이전에도 읽은 적이 있어 대상작 「이응 이응」이 반가웠다. 미래에는 어떤 세상이 올까. 개인의 욕망이 아닌 사회적 이익 때문에 쾌감을 느끼는 장치 이응의 탄생은 서글프기까지 하다. 미래에 이러한 상품이 개발되지 않는다고 보장하지 못하겠다. 공현진의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는 좋은 사람이란 뭘까, 라는 질문을 건넨다. 사출 성형기 작업장에 끼여 사망사고가 났는데도 멈추지 않은 공장을 바라보며 물속 깊이 가라앉는 느낌을 받은 남자와 교사를 그만두고 지구 환경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며 수영 강습을 받는 여자가 나와 변하지 않은 차별에 대하여 말한다. ![]()
김기태 작가와 전지영 작가, 성해나 작가의 작품이 특히 눈에 띄었다. 내 취향에 더 맞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혼모노’ 뜻이 무엇인가.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는 실제 무속인의 속내를 보는 듯했다. 30년 경력의 남성 무속인의 건너편에 신애기가 새로 들어왔는데 남성 무속인의 몸주였던 장수 할멈이 신애기에게 옮겨갔다. 즉 남성 무속인은 더 이상 신점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신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건 알겠는데 몸주가 옮겨간다는 건 생소했다. 능력이 없는 무당이 벼린 칼 위에서 작두춤을 춘다. 늙은 야심가의 행태가 씁쓸하고도 슬픈 ‘한 편의 굿판’ 같다.
전지영의 「언캐니 밸리」를 보자. 왜소증이 있는 주인공은 크로키 작가이며 야간 택시 운전사다. 청한동 꼭대기를 오르는 ‘당신’을 태웠고 누군가 ‘당신’에게 염산을 뿌렸다. 작가는 ‘당신’에게 염산 테러한 사람을 밝히지 않으면서 주인공이 일본에서 성 상품화되었던 수치심 가득한 기억을 떠올린다. 또한 택시를 운전하며 룸미러로 보이는 손님을 관찰하며 그의 얼굴을 그렸고 나머지 부분은 상상력에 의하여 동물의 이미지를 채워 넣었다. 동기들은 역겹다고 했다. 택시 운전사는 청한동 꼭대기 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습관이었다. 장신영 혹은 김승민이 없는 자리를 누군가 대신하는 거 같다. 집안으로 향하며 자갈을 밟는 남자는 어떤 마음으로 대문을 열었을까.
김기태의 「보편 교양」은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에 대한 단상이다. 국어 교사인 곽은 충분한 연금 수령액에 도달하려면 십오 년은 일해야 하며, 연금을 실제로 받으려면 이십오 년이 남아 있다는 걸 자각하는 장면은 직장인의 비애를 보는 듯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도 평범한 직장인일 수밖에 없다. 곽은 다른 교사들이 꺼려하던 ‘고전읽기’ 수업을 하기로 한다. 추천 도서를 선정해 아이들과 함께 읽을 예정이었다. 마르크스를 읽는다며 은재 아버지가 민원을 넣은 후 곽은 자신의 수업을 좋아하는 은재가 아버지를 설득했을 거라고 믿었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곽의 마음은 어땠을까. 서울대를 보냈다는 교사로서의 뿌듯함과는 반대로 컨설턴트에 의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 곽의 마음이 짐작되었다. 그런 법이다. 버리고 비우면서 일상을 살아가고 비움의 미학을 배운다. ![]()
나에게 파주는 책의 도시라 비친다. 김남숙의 「파주」는 군대 시절에 폭력을 가했던 정호를 찾아온 현철의 복수를 말한다. 매달 백만 원을 입금하라며 일 년 동안 똑같이 괴롭히겠다고 말한 현철의 심리와 그를 바라보는 ‘나’의 독백이다. 파주를 생각하면 현철이 먼저 떠오른다고 주장하는 ‘나’는 정호를 떠나지 않고 여전히 그와 함께 살고 있다는 건 아이러니다. 반려동물처럼 빚도 「반려빚」으로 불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자기와 함께 살아갈 빚이라 여기며 살아가는 정현을 본다. 정현은 서일에게 돈을 빌려주었고, 언젠가는 갚을 거라고 여긴다. 다시 돌아온 서일이 잠시만 함께 살자고 했을 때 선주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승낙을 했을 것이다. 반려빚이 꿈에 나오는 장면은 우리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반려빚이 0인 상태야말로 완전한 삶인 것 같지 않느냐 말이다.
작가는 이처럼 새로운 단어를 탄생시키기도 한다. 새로운 작가의 작품을 알게 되어 반가웠고, 김기태 작가의 소설집을 카트에 넣었다. 작가를 좀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이 자아내는 긍정적인 효과 아닐까. 책이 책을 부르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을 읽는다는 건 한국문학의 미래를 짊어질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거다. 새로운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젊은작가상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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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멜라 「이응 이응」 “이응의 현자는 바야흐로 새로운 로맨틱의 시대가 열렸다고 말했다. 번식과 성욕, 사유재산이 만들어낸 오랜 통치술의 사슬을 끊어내고, 진실로 사랑의 의미를 깨우친 이들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관계를 맺는 반려의 르네상스가 도래했다고 말했다...” (p.24) 오랜만에 만난 꽤나 독특한 소설이다. 이응이라는 물건이 발견된 이후 혼인율은 줄었지만 성폭력 범죄율은 줄었다. 교도소에 설치된 후 재범률이 낮아졌고, 병원에서는 환자의 회복율을 높였으며, 법원에서는 화해로 종결되는 사건이 늘어났다. 이 모든 것이 이응이라는 물건이 여기저기에 도입되고 설치된 다음 일어난 변화이다. 도대체 이응,이 무엇인지는,,, 소설을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 공현진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 총체적으로 문제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몸에 힘을 빼지 못하는 일이었다. 힘을 빼야 하지만…… 그렇다고 힘을 다 빼면 안 되고……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희주는 잘못된 답이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되는 느낌을 받았다. 힘을 빼는 거면 빼는 거고, 주는 거면 주는 거지. 그게 바로 균형이라고 강사는 말했다.” (p.86) 수영장, 그리고 강습생을 소재로 한 소설이 나올 줄 알았다. 위의 발췌 부분은 수영을 배우는 아내가 항상 품던 의문과 정확히 닮아 있다. 아내에게 위의 문장을 읽어줬더니, 내가 쓴 거 아니야, 라며 크게 놀랐다. 소설도 재미있다. 김기태 「보편 교양」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보편적인 교양과 바람직한 인성을 형성하며, 학문이나 직업 활동에 필요한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고, 읽기는 물론 말하기와 글쓰기 등 통합적인 국어 능력의 향상을 꾀한다.’ (p.118) 고등학교 선생님인 곽은 ‘고전읽기’라는 3학년 선택 과목을 개설하면서 위와 같은 과목의 취지를 염두에 둔다. 하지만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그다지 그러한 취지에는 관심이 없다. 그럼에도 수업을 들은 ‘은재’라는 학생을 통하여 곽 그리고 곽이 만들고 운영한 과목은 일말의 성과를 거두게 된다. 김남숙 「파주」 “그건 미워하는 것보다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요. 근데…… 너무 무서워하다보면 미워지게 되거든요. 무서워하는 거랑 미워하는 마음이 나중에는 잘 구별이 안 가더라고요. 그게 그거 같고, 굳이 나눠야 하나 싶기도 하고……” (p.179) 괴롭힘을 당한 이와 그의 복수라는 설정. 그러한 설정과는 별개로 위의 문장에서 한참을 머물러야 했다. 아버지도 떠오르고... 나는 아버지를 무서워했고 또 그만큼 미워했다. 그러한 관계 맺기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생각하기도 싫다. 김지연 「반려빚」 “그날 밤 꿈에서 정현은 반려빚과 함께 산책을 나갔다. 목줄을 한 쪽이 정현이고 목줄을 쥔 쪽이 반려빚이었다는 점이 좀 다르긴 했지만 개와 산책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리라 생각했다. 정현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목이 말라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어져 반려빚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카페에 잠깐 들를까? 반려빚은 정현이 꽤 가엽다는 듯이, 그러나 목줄을 쥔 자로서 단호해야만 한다는 듯이 줄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집에 커피 믹스 있잖아. 정현은 카페 쪽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고 꽤 오래 낑낑거렸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p.207) 반려빚이라는 조어가 주는 블랙 유머의 강도가 세다. 서울 시민의 1인당 가계 부채는 1억이 넘고, 자영업자의 1인당 부채는 (2022년 기준) 1억 8천만 원이다. 혼자 사는 이이이든 가정을 이루고 사는 이이든 직장인이든 사업자이든 가리지 않고 모두가 (불)공평하게 부채를 가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참으로 찌질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소설이다. 성해나 「혼모노」 자신에게 들어와 있던 신이 빠져 나갔음을 알게 된 무녀, 게다가 그렇게 빠져나간 신이 자신의 근처에 거처를 삼은 신애기에게 들어갔음을 알게 된 무녀...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그렇게 진짜와 가짜를 판별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무엇인지... 전지영 「언캐니 밸리」 왜소증의 택시 기사와 그가 청한동의 저택에 실어 나른 여인 그리고 그 여인이 당한 사고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건 그렇고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는 ‘로봇이 점점 사람의 모습을 닮아갈수록 로봇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다가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다시 거부감이 급상승하게 된다’는 의미인데, 이 소설에서 어떻게 적응되는지를 정확히 짚어내기는 힘들었다. 김멜라 외 /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문학동네 / 369쪽 / 2024 |
2024.06월의 첫 번째 김멜라 외..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집 ☆☆☆☆ 젊은 작가상 수상집을 읽을 때는 작품의 제목보다 작가의 이름을 먼저 보게된다. 아마 타이틀이 '작가'라는, 그것도 '젊은'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는 작가이기 때문인 듯 하다. 내 기준으로 조금은 익숙한 작가도 있었고 생소한 작가들도 있었다. 젊은 작가상 수상집을 읽는 시간은 뭔가 새롭고 기발함(?)이 기대가 된다. 뭔가 살짝 어설픔이 느껴져도 그것마저 하나의 시도로 읽혀지기도 한다. 더불어 현재의 우리 모습을 좀 더 생생하게 대변해주는 역할을 기대하기도 한다. 세련됨이나 원숙함 보다는 날 것을 기대하는 마음일 수도 있다. 작가 활동이 10년 미만인 작가들의 글. 10년이라 함은 어느 분야에서 젊다,, 라고 표현하기는 좀 어려운 기간일 수 있지만 , 이후 더욱 꾸준히 오랫동안 활동을 기대한다는 의미일 수 있어서 나 또한 수긍한다. 이번 작품집속에도 생각지 못했던 소재, 젊은이들이 안고 있는 부채의 고통과 보편함을 추구하는 것의 기준, 야심의 끝은 과연 무엇일까 등등의 화제를 작가 특유의 소재와 서사로볼 수 있어서 재미있는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잃어버린 화살을 찾으려면 같은 방향으로 한번 더 활을 쏴야 한다고 할머니는 말했었다. 오래 고민할 것도 없다고 했다. "그것이 맞나 틀리나 긴가민가할 땐 똑같은 짓을 한번 더 해 봐." (p10 '이응 이응'中) ' '있는 꿈도 없는듯 주머니에 쑤셔넣고 문제집을 푸는 게 과거의 입시라면, 없는 꿈도 있는 듯 만들어서 스토리텔링을 하는 게 지금의 입시였다. (p117 '보편 교양' 中)' '근데 ...너무 무서워하다보면 미워지게 되거든요. 무서워하는 거랑 미워하는 마음이 나중에는 잘 구별이 안 가더라고요. 그게 그거 같고, 굳이 나눠야 하나 싶기도 하고... ( p179 '파주'中)' '빚이야말로 정현이 잘 돌보고 보살펴 임종에 이르는 순간까지 지켜봐야 할 그 무엇이었다. 빚 역시 앞으로 수년간은 정현의 옆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고, 정현이 죽었나 살았나 그 누구보다도 두 눈 부릅뜨고 계속 지켜볼 것이다. 빚이야말로 정현의 반려 였다. ( p206 '반려빚' 中)' '나이들어 야심까지 강하면 사람들도 그걸 알아채고 달아나. 좋은 운도 다 황이 되는 법이다. 늙어갈수록 본심을 숨겨야 약이 된다. 그래야 추하지 않다. 조언하며 그녀는 나지막이 덧붙였다.( p267 '혼모노' 中)' #젊은작가상수상집 #문학동네 #김멜라 #공현진 #김기태 #김남숙 #김지연 #성해나 #전지영 #중단편소설 #소설책읽기 #북스타그램 ![]() |
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올해에도 어김없이 만날 수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일곱 작가님들의 글과, 해설도 함께 있어서 보는 데에 어려움이 없었고요. 제가 생각했던 흐름이 맞을까 생각하며 확인하는 것도 좋았습니다. 평생 이어지기를 바라요. |
15000원이 넘어가는 책가격에 보고싶은책 선뜻 사기 주저되는 슬픈현실ㅜ. 하지만 매년 선물같이 찾아오는 젊은 작가상작품집. 너무도 착한가격에 7편의 주옥같은 작가님들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설레며 소중히 한편한편 읽는재미♡ 아는 작가님 만나면 반갑고 맘에드는 새로운 작가님 만나면 기쁘고 설렌다. 멜라작가님 작품들은 매번 독특한 상상력이 돋보이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 멜라 작가님이 멜라했다^^ 대상 인정.! 개인적으로 김지연 작가님 <반려빚> 공현진작가님<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가 좋았다 김지연 작가님은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한편 한편 모두 다 다른 매력이 있어서 전체적으로 다 괜찮게 읽었던 것 같다.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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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게 된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은 각기 다른 색을 뿜고 있는 일곱 명의 작가님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게다가 독파 챌린지를 통해 작가님과 만나는 소중한 시간까지 즐길 수 있어 책 한 권을 읽는 것 이상의 가치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었으니 내년에도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은 필히 구입해서 읽게 될 것만 같다. <이응 이응> "당연하죠. 좋은 이응은 이응 생각을 잊게 해요." p.19 "나쁘고 안 나쁘고를 떠나서 그게 사람이란 거야. 그게 이응이야." p.22 "쾌감을 느끼는 게 두렵나요? 죽는 게 무서워요? 삶과 죽음, 그 모든 것이 이응 안에서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걸 미지 못하는 거예요?" p.33 할머니는 죽는 것도 이응 같은 거라고 했다. 이응처럼 코스를 선택할 순 없지만, 이응의 컬러볼처럼 삶에서 죽음으로 굴러가는 거라고. 이색에서 저색으로 바뀌는 것뿐이라고. 이응을 하는 것처럼 억눌려 있던 게 풀리면서 기분 좋게 흩어지는 거라고 했다. p.41 ~ p.42 처음 김멜라 작가님의 <이응 이응>을 읽으면서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읽어나갈수록 '이응'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응'은 삶과 죽음, 고통과 기쁨, 그 외의 모든 감정들까지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이응의 형태를 가진 것이라는 사실. 연인과의 포옹에서 시작되었다는 이 이야기의 착안점 또한 독특했다. 어쩌면 미래 세계에는 작가님의 상상 속 '이응'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기후 위기는 윤리의 문제보다 희주의 생존방식에 더 연결되었다. 모든 게 사라질 건데. 내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게 얼마나 다행이야. 평범해서 다행이야. p.92 침묵. 고요했다. 물을 밀어내는 소리. 밀어올리는 소리. 튀어 오르고 가라앉는 소리. 세상이 멈춘 것 같은 순간에도 물결이 쳤다. p.95 희주가 먼저 간다. 주호가 뒤따른다. 물이 흔들리고 물이 휜다. 딱 그만큼 두 사람은 손안에 들어오는 물을 만진다. 움켜쥔다. 갈 수 있는 만큼 간다. p.98 희주와 주호는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 삶에서 최선을 다하던 그들에게 닥친 시련으로 잠시 주춤하고 있다. 희주와 주호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다. 위기로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의 우리 모습과 말이다. 그렇게 희주와 주호는 수영을 배우며 삶을 다시 나아가려고 한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는 그런 우리의 모습이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보편 교양> 곽은 스무 살도 안 된 아이를 밤마다 거리로 내모는 사회가 새삼 무서웠다. 각자의 삶에서 이 수업이란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차라리 오십분의 수면이 더 귀할 수도 있디 않을까. 그들을 교실에 가두는 것은 어른들의 욕심이 아닐까. p.123 ~ p.124 입시 준비에 한창인 고등학교 3학년에게 고전 수업을 하고 있는 곽의 이야기를 하는 동시에, 자신 또한 자신의 수업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따분하고 한가로운 과목임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은재의 아버지가 학교에 민원을 넣게 되고 혼란에 빠지지만 은재 아버지의 사과를 위기는 해프닝으로 끝나버린다. 아이들에게 자본론을 읽혔다는 이유로 민원을 넣었지만 다시 사과하기까지 하는 은재의 아버지를 통해 결국 삶도 모순임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파주> 거실 전등불은 약해 아무리 켜 놓아도 방의 절반은 어두웠다. 마치 절반은 늘 밤인 것처럼. 전구를 갈아도 마찬가지였다. 무엇이 잘못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사실을 알고 난 이후부터는 전구를 다시 갈지 않았다. 어차피 새 전구를 갈아도 잠깐만 밝을 뿐 이내 다시 어두워지곤 하니까. p. 155 ~ p.156 비열하고 역겨워도, 그래도 보상받고 싶다는 말. 나는 그 말을 내 생활의 여기저기 갖다 붙여본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 수가 없다. p.185 나를 만나기 전의 정호의 과거. 그것은 나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정호의 군대 후임 현철의 등장은 절반은 밤인 것처럼 지내던 나의 생활을 조용히 흔들었다. 그리고 정호가 아닌 현철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그 시절의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정호에게 사과를 하라며 위로금을 보내라는 현철이 모습은 당돌해 보였고, 정호는 현철의 말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잊혀버린 정호의 기억처럼, 나타나지 않는 현철의 모습도 이내 그곳에서 잊히리라. <반려빚> 빚이야말로 정현이 잘 돌보고 보살펴 임종에 이르는 순간까지 지켜봐야 할 그 무엇이었다. 빚 역시 앞으로 수년간은 정현의 옆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고, 정현이 죽었나 살았나 그 누구보다도 두 눈 부릅뜨고 계속 지켜볼 것이다. 빚이야말로 정현의 반려였다. p.206 그날 밤 꿈에서 정현은 반려빚과 함께 산책을 나갔다. 목줄을 한 쪽이 정현이고 목줄을 쥔 쪽이 반려빚이었다는 점이 다르긴 했지만 개와 산책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리라 생각했다. p.207 반려동물이 아닌 빚과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글의 제목인 '반려빚'은 읽기 전부터 눈길이 갔다. 읽으면서 더욱 공감되었다. 여자친구인 서일과 동거하기 위한 전세 대출금 팔천 외에 그녀에게 빌려주고 받지 못한 돈까지 해서 총 일억 육천 정도의 빚만 남긴 채 서일은 사라졌다. 결국 자신의 곁을 지키고 있는 반려빚이라는 존재.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반려빚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그런 모습을 담고 있어서인지 정현의 모습이 더 와닿았다. 반려 빚을 청산하는 순간 정현은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혼모노> 지화를 쓰면 수고로움이 덜 하겠지만 어쩌겠냐. 할멈이 생화를 좋아하는걸. 혼모노라면 환장하겠는걸. 이렇게라도 그녀가 다시 돌아오길, 약속을 지켜주길 고대하며 줄기 끝을 사선으로 잘라 화병에 넣는다. 오래오래 생기있게 살아남기를 바라며. p.267 삼십 년 박수 인생에 이런 순간이 있었던가. 누구를 위해 살을 풀고 명을 비는 것은 이제 중요치 않다. 명예도, 젊음도, 시기도, 반목도, 진짜와 가짜까지도.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 장삼이 붉게 젖어든다. 무령을 흔든다. 잘랑거리는 무령 소리가 사방으로 퍼진다. 가볍고도 묵직하게. p280 신기가 떨어져가는 박수무당 문수. 게다가 자신의 집 앞에 동종업자인 신애기가 이사를 온다. 그곳으로 온 이유 또한 할멈이라니 그 배신감은 얼마나 컸을까? 할멈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혼모노는 자신이 다시금 무당으로 설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신애기와 함께 굿판에 서고, 그곳에서 장삼을 붉게 물들이고 만다. 그것이 그에게 어떤 의미였겠는가. <언캐니 밸리> "몇 시간 동안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요. 몸과 정신이 완전히 분리되는 기분이에요. 그러니까 타인처럼 내 몸을 볼 수 있죠. 그 기분이 반복되면, 다른 사람을 볼 때도 몸이 아닌 영혼이 보여요." p.304 "세상엔 돈으로 구할 수 없는 게 참 많아요." 당신 말이 맞았다. 나는 그제야 당신이 언덕을 오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도시 어디에도 없는, 그러나 청한동 언덕에는 존재하는 것들을 당신은 열망했다. 어쩌면 그 열망이 당신을 지치게 하는지도 몰랐다. 나는 상기된 당신의 얼굴을 외면했다. p.316 화가라고 소개하기에는 부족한 야간 택시 운전을 하는 나는 오늘도 그녀의 SNS를 통해 그녀가 있는 곳 주변에 있으면서 그녀가 앱으로 콜을 하기만을 기다린다. 여러 번 거절한 후에 나의 택시에 타게 된 그녀는 청한동으로 가는 그녀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그렇게 그녀에 대한 궁금증이 하나둘 해결되던 어느날 염산에 의한 사고를 당하면서 나 또한 용의선상에 오른다. 작은 키에 자신 없어하는 모습의 나는 어느새 용의선상에도 배제되고 범인이 밝혀지는 와중에도 그녀의 정확한 이름을 아는 이가 없다는 사실이 이상할 뿐이다. 호감이 가던 그녀에게 다친 사고, 나는 그녀의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나는 그녀로부터 무엇을 바랐던 것일까. #2024제15회젊은작가상수상집 #문학동네 #김멜라 #공현진 #김기태 #김남숙 #김지연 #성해나 #전지영 #독파챌린지 #레인보우챌린지 |
평소 단편 소설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읽게 되는 책이 있다. 바로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가끔 좋아하는 작가의 단편이 수록되기도 해서 즐겨 읽곤 하지만 단편이라 난해한 경우도 많다. 난해해도 해석을 내 마음대로. ^^
모두 7편의 단편. 김멜라의 ‘이응 이응’. 성적 욕망을 해소해주는 기계가 발명된 시대. 사람들과의 교류 없이 편리하게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세상. 반려 가족을 상실한 나는 신체 접촉을 그리워한다. 공현진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문화센터 수영 강습반에서 꼴찌를 도맡아 하는 주호와 희주. 누가 뭐라든 자신만의 속도로 수영을 배워 나간다. 김기태 ‘보편 교양’ 고전 읽기 수업을 맡은 국어 교사 곽.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수업에 한 아이가 집중한다. 이후 그 아이의 부모에게 수업에 관한 민원이 들어오는데. 김남숙 ‘파주’. 나의 남자친구 정호. 정호에게 괴롭힘당했던 군대 후임 현철이 찾아오면서 정호의 일상이 무너진다. 김지연 ‘반려 빚’ 전 애인과 동거 하면서 생긴 일억 육천의 빚. 가족처럼 빚을 생각하며 사는 정현에게 어느 날 전 애인에게 연락이 온다. 성해나 ‘혼모나’ 몸주로 모시던 할멈이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가자 ‘신빨’이 없어진 박수무당 문수와 문수 집 앞에 새로 들어온 신애기의 기싸움 이야기. 전지영 ‘언캐니 밸리’ 야간 택시 운전기사 ‘나’가 예전에 태웠던 손님이 염산 테러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벌어지는 스릴러.
아이가 군에 있어서일까? 파주라는 단편이 기억에 남는다. 가해자들은 왜 반성을 하지 않을까? 왜 기억조차 하지 못할까? 그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은 사는 게 이렇게 힘든데. 누가 시켜서 혹은 그때는 그게 장난이었어. 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피해자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성해나의 혼모나는 묘하게 재미있다. 신빨이 높았던 문수. 자신의 몸에서 신빨이 사라짐을 알았을 때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이 모신 할멈이 다른 이의 몸에 들어가 신빨을 준다면? 신빨의 유효 기간이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실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문수는 뭐. 문 닫아야지. 요즘 친구들도 점같은 걸 보는지 잘 모르겠다. 사주를 풀어서 보는 게 아니라, 신내림을 받은 무당의 점이라면. 무서울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궁금하다. 사주를 푸는 점괘와 신내림 받은 사람의 점괘는 어떻게 다른지. ^^
단편은 뭐랄까? 가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로 다가올 때도 있지만 짧지만 강하게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재료를 만나게 한다.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고 특별할 건 없다고 말하지만 사는 것 자체로 때론 힘들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별 탈 없이 잘살고 있는 나에게 감사할 때도 있다. 소설은 소설일 뿐. 우리 생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지만, 현실은 어쩜 소설보다 더 잔인할 수도. 내년에도 나올 텐데. 아마 그때도 읽게 되겠지? |
숙제처럼 읽고 있는 책이다. 하지만 가끔은 정말 좋다고 느끼는 단편을 보게 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름을 기억하게 되는데 내게는 그런 작가가 김멜라였다. 이번 젊은 작가상은 대상이 김멜라라 배송받기 전부터 두근두근했다. 단편집도 따로 구매하기 때문에 늘 중복된 작품을 보게 되지만 그래도 작품집만의 감성이 있어서 좋다. |
너무나 감사합니다. 좋은내용입니다. 좋은 내용이 많이있네요 그래서 더욱더 잘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내용 많이 부탁드리겠습니다.되었음에도 공허함을 느끼는 인물의 감정선을 좇는다. 반려 가족을 상실한 주인공 ‘나’가 사라진 존재와의 신체 접촉을 깊이 그리워하는 모습을 섬세하 |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신인 작가들의 신선한 목소리와 창의적인 이야기를 담은 작품집이다. 수상작들이 그려낸 다양한 사회적, 개인적 이슈들은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각기 다른 문체와 주제로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며, 젊은 작가들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문학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새로운 감각과 시각을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책이다. |